장편소설 번영의 시대 제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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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회)
제 3 장
3
굴길이 1키로메터이상 되는 사동탄광 4호갱은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는 굴이였다. 갱도입구에서 탄차가 굴러내려가는 컴컴한 굴길을 내려다보느라면 끝간데 없는 미궁의 나락으로 떨어져들어가는듯싶어 처음 오는 사람들은 머리칼이 곤두선다. 반대로 깊은 막장에서 아득히 높은 갱도를 올려다보면 캄캄한 광야에서 굉장히 큰 태양이나 달을 보는듯 한 신비로운 느낌을 받게 된다.
일제시기 이 굴간에서 많은 조선사람들이 죽었다. 돌에 치워죽고 석탄에 깔려죽었으며 고역과 굶주림으로 하여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탄부들처럼 까만 작업복에 로동화를 신은 김책은 양철안전모를 쓰고 탄차에 올라앉았다. 이제 운전공이 신호줄을 당기면 굵은 쇠바줄에 련결된 다섯대의 탄차가 덜컹거리며 미궁의 나락으로 내려가게 된다. 탄광부문 계획에 대한 군중토의를 하기 위해 사동탄광에 온 김책은 먼저 모범탄부인 김고망이네 채탄작업반 사람들을 만나보려고 4호갱을 찾아왔었다. 석탄생산계획을 매일 200~300프로씩 넘쳐수행하는 이 작업반의 작업방법을 알아가지고 전국 탄광들에 보급하고싶어서였다. 그래야 가장 힘들고 어려운 채굴공업부문에서도 1947년도인민경제계획을 수행할수 있기때문이였다.
4호갱 작업반장 김고망은 김책이 잘 알고있는 사람이였다. 신문에도 여러번 소개된 김고망은 아직 국가적으로 영웅메달이 나오지 않은 때이지만 김일성장군님으로부터 로동영웅이라는 치하의 말씀과 표창장을 받은 탄부공산당원이였다. 후날 국가훈장이 제정되여 나라의 공로자들에게 공로메달을 수여하게 되였을 때 처음 공로메달을 받은 사람이 김고망이였다.
해방직후 탄광의 전기시설들이 마사져 채탄장들이 모두 침수되였던 그 어려운 시기 탄광로동자들의 앞장에서 채굴장을 하나하나 살려내여 석탄생산의 첫 발파를 울린 사람도 김고망이였다.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다 량모라는 평양물주가 사동탄광을 경영하던 구한국시기부터 이 4호갱에서 탄을 캤는데 일제시기 락반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김고망은 여라문살되던 때에 벌써 질통을 지고 이 굴속을 두더지처럼 기여다니며 일하였다.
드디여 탄차가 덜컥하더니 쭈르륵쭈르륵 덜커덩덜커덩 쇠부딪침소리를 내며 30도의 비탈굴길을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김책은 조금 가슴이 떨리였다. 그는 여태 제철소와 제강소, 기계공장과 철도공장 등 가보지 않은데가 없었지만 무연탄굴간에 들어와보기는 처음이였다.
아득한 지하에서 무수한 불빛들이 반짝이고있었다. 탄차들이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 매캐한 돌가루냄새를 머금은 굴바람이 마주 불어오고 성에빛같은 하얀 이슬솜이 돋은 동발목들이 옆으로 지나갔다. 탄차가 내려가는지, 동발목들이 올라가는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물매를 지어 내려가던 굴길이 얼마후 경사가 없는 평평한 굴길로 되더니 어딘지 모를 깊은 곳에서 련결탄차들이 떠날 때처럼 덜컥하며 멎어버렸다.
《왔다. 퍼담자!》
그것은 분명 김고망의 목소리였다. 삐죽삐죽 각이 난 양철모자에 축전등을 단 다섯명의 탄부가 넙적삽으로 막장에 쌓인 탄을 탄차에 퍼담기 시작하였다. 탄벼락을 맞을것 같아 급히 탄차에서 뛰여내린 김책은 부리나케 삽질을 하는 탄부들을 흘린듯이 바라보았다. 그토록 맵시있게 률동적으로 삽질하는 사람들을 김책은 처음 보았다. 석탄무지에 삽날을 박아서 떠올리는 다섯명의 손동작이 무용동작마냥 거의 일치하였다.
풀싹! 하고 삽날 박히는 소리가 나면 어느새 시커먼 다섯삽의 검은 석탄이 공중에 날아올랐다가 철써덕하고 탄차에 떨어졌다. 허리를 굽힌 탄부들은 탄차를 보지도 않고 삽질을 하는데 마치 롱구공이 그물에 들어가듯이 다섯삽의 석탄이 어김없이 목표하는 탄차함안에 동시에 떨어져 합쳐지군 하였다. 처음에는 탄차중심에 그다음에는 가녁에 빙빙 돌아가며 차곡차곡 석탄이 쌓여졌다. 풀싹하는 삽날 박는 소리와 철써덕하는 석탄 떨어지는 소리가 또한 무용가락에 맞추는 장단소리처럼 규칙적이고 음악적이였다.
로동이 곧 예술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자면 여기에 와보아야 했다.
다섯명중 맨 가운데에서 삽질을 하는 사람이 21년의 탄부경력을 가지고있는 김고망이였다. 그의 량옆에 각각 두명씩 나란히 서서 삽질을 하는 네명의 탄부는 모두 20대의 젊은이들이였다.
이들은 채탄과 적재의 두가지 작업을 하는것 같았다.
김책은 탄무지옆에 놓여있는 넙적삽 한개를 찾아쥐고 그들과 좀 떨어진 곳에서 삽질을 하였다. 탄부들이 세네번 삽질을 할 때 그는 겨우 한번이였다. 그것도 탄차함안에 명중되지 못하고 옆으로 흘리는것이 많았다.
《동문 어디서 왔소?》
다섯명중 한 청년이 소리치며 김책을 바라보았다. 눈길은 김책에게 가있으나 률동적인 삽질은 중단되지 않았다. 김책은 잠시 생각해보고 일부러 늘어진 소리로 《예, 탄광을 지원하러 온 사람이올시다.》 하고 대답하였다.
《여긴 지원이 필요없소!》
그 청년이 여전히 삽질을 하면서 성난듯이 거칠게 소리쳤다.
이때 어디선가 휘파람소리가 났다.
《야, 거 어느 망할놈의 새끼야! 휘파람 부는게?》
묵묵히 삽질을 하던 김고망이 소리를 질렀다. 휘파람소리가 뚝 그쳤다. 김책은 김고망을 놀랍게 지켜보았다. 김책은 지난 5월 1일 저녁 모범로동자축하연에서 김고망탄부와도 깊이 낯을 익혔었다. 지하의 석탄벽처럼 침중하고 듬직하며 백날 가도 큰소리 한번 치지 않을 사람으로 보았던 김고망탄부의 입에서 김회일의 《기적소리》를 무색케 하는 발파소리같이 요란한 고함소리가 터져나온것이다.
굴안에서는 휘파람이 엄금되여있었다. 지압에 눌리워 굴이 무너질 때 괴이한 휘파람소리가 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미신적관념이 생겨났는지는 알수 없으나 탄부들에게 있어서 굴안에서의 휘파람은 저승의 목소리와도 같은것이였다.
김고망은 한번 무섭게 고함을 질렀을뿐 그다음에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더냐싶게 입을 꾹 다문채 묵묵히 삽질을 하였다. 그대신 청년들이 푸념질을 하였다.
《어느 생둥이가 들어와서 휘파람질이야.》
《지원로력을 들이밀지 말라는데 로동과에서 자꾸 그짓을 해!》
이야기를 벌리는 속에서도 청년들의 삽질률동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놓고 끝!》
김고망의 구령소리에 다섯개의 삽이 동시에 멎었다. 오륙분 되나마나할 사이에 한톤짜리 탄차 다섯대에 윤기도는 검은 석탄이 가득 채워진것이다.
어디론가 사라졌던 운전공이 어느새 김고망의 작업중지구령소리를 들었는지 달려와 운전칸에 뛰여올랐다. 그가 신호줄을 당기자 련결탄차들이 덜커덕하더니 아득한 갱구를 향해 치달아올랐다.
채탄막장에는 캐낸 석탄이 아직 수백톤이나 잠겨있었다.
다섯명의 탄부들은 탄차를 보내고나서 채탄장옆을 누비여나간 굴진갱도를 따라 걸어갔다. 앞에서 착암기소리가 들리였다. 얼마간 들어가자 시꺼먼 돌무지가 보이였다. 그것은 굴진갱도막장에 쌓인 돌들이였다.
김고망작업반은 채탄막장에서의 석탄캐기와 석탄상차, 굴진갱도막장에서의 막돌상차 등 세가지 작업을 병행하고있었다.
이삼분 지나자 련결탄차가 덜컹덜컹 굴간을 울리며 굴러내려왔다.
《왔다! 퍼담자!》
김고망이 구령을 치자 굴바닥에 앉아 잠간 휴식을 하던 탄부들이 또다시 률동적인 삽질을 시작하였다. 무겁고도 굳은 돌무지인데도 석탄무지에서와 다름없이 경쾌하게 삽질을 하였다. 그들을 따라 들어온 김책은 삽날이 딴딴한 돌모서리에 부딪쳐 도무지 삽질을 제대로 할수 없었다. 그가 삽질을 몇번 해보지 못했는데 《놓고 그만!》 하는 김고망의 구령소리가 울리였다.
탄부들은 막돌상차도 오륙분사이에 말끔히 끝내고 다시 채탄막장으로 돌아갔다. 한 청년이 김책의 옆으로 다가와서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난 젊은 친군줄 알았는데 아바이웨다래.》 하고 의외로와하였다. 탄부들은 행사때마다 주석단에 앉아있는 김책을 보군하였지만 알아보지 못하였다. 삽질을 몇번하는동안 김책의 얼굴이 검댕이에 매닥질되여 딴사람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이 깊은 막장에 그가 들어오리라고는 바이 생각할수 없는 일이였다.
《나이도 있는분인데 무슨 지원을 한다구 그래요. 근데 어느 직장에서 왔시요?》
《나두 탄광에 있소. 실은 지원을 온게 아니라 김고망작업반이 늘 생산계획을 넘쳐수행한다길래 작업방법을 배우러 왔소. 동무넨 삽질을 멋있게 하누만. 꼭 무용을 하는것 같소.》
《이게 다 우리 반장한테 배운거야요. 삽질에도 요령이 있어요.》
탄차가 또 내려왔다. 그러나 탄부들은 작업을 시작하지 못하였다. 자루가 긴 딱따구리마치를 든 사람이 탄차에서 뛰여내리면서 작업을 중지시켰기때문이였다. 탄부들이 꼼짝 못하는것으로 보아 대단히 권세가 있는 사람같았다.
그는 탄부들이 쓰고있는 안전모들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딱따구리마치로 천정을 하나하나 두드려보면서 막장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오래동안 막장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딱딱》하는 딱따구리마치소리만 들려왔다.
《젠장, 좀 빨리 할게지.…》
한 청년이 낯을 찌프리며 딱따구리마치소리가 울리는 막장쪽을 흘겨보았다.
《저 사람은 뭐요?》
김책이도 작업을 중지시킨 《교만한 권력자》에 대한 불쾌감을 가지고 방금 투덜거린 청년에게 물었다.
《탄광에 있다면서 그것두 몰라요? 안전기술원 아닌가요!》
청년은 신경질적으로 언짢게 대답하였다.
안전기술원? 그는 탄부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굴간의 위험요소들을 검열하는 사람이였다. 그는 《권력의 절대자》였다. 그가 위험하다고 작업중지명령을 내리면 지배인도 그 명령에 복종하여야 했다. 바로 김일성장군님께서 안전기술원에게 최대의 권력을 부여하시였다고 한다. 얼마나 좋은 세상이 왔는가. 지난날엔 버럭덩이처럼 버림을 받던 탄부들이 이제는 나라의 품에 안겨 생명의 보호를 받고있었다. 그러니 김고망이와 같은 탄부들의 가슴에서 이 좋은 세상을 받들려는 애국의 마음이 불타지 않을수 없었다.
《젠장, 정말 꾸물거린다! 굼벵이반찬을 먹구 왔나, 쯔쯔…》
청년이 또 투덜대며 혀를 찼다.
《우리 탄부들의 안전을 위해 굴간을 깐깐히 보아주는 안전기술원인데 그러면 못쓰지.》
김책이 조급해하는 청년의 등을 두드리며 달래였다.
《아바인 모르면 가만있으라요! 우린 지금 신창탄광의 박창술작업반하구 경쟁을 한단 말이요.》
지금 무연탄광적으로 사동탄광 김고망작업반과 신창탄광 박창술작업반이 1, 2등을 다투는데 조금만 헛눈을 팔면 자기네가 질수 있다고 하였다.
김책은 조급해하는 청년의 어깨를 두드리고 앞에 놓인 버럭더미에 걸터앉았다.
《자, 너무 속태우지 말고 안전기술원이 나올 때까지 여기 와서 다리쉼이나 하기요. 모두 와서 한대씩 피우오.》
김책은 작업복안주머니에서 《수선화》담배곽을 꺼내였다.
청년탄부들이 모여들어 담배가치를 받아들며 한마디씩 하였다.
《아바이가 피울 담밸 우리가 다 피우면 어떻겁니까?》
《사양말구 피우게. 그대신 공짜라군 생각마오. 내 사실은 동무네 김고망작업반원들의 소문을 듣고 긴히 물어볼게 있어 왔소.》
《우리한테 뭘 물어볼게 있어요?》
청년들은 김책의 두리에 빙 둘러앉았다.
《뭔가 하면 계획에 대한 문제요. 다 알고있는것처럼 지금 모든곳에서 계획토의사업을 하고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탄광부문에선 계획화할수 없다는거요.
말하자면 좋은 탄맥이 나올 땐 석탄을 꽝꽝 캐내지만 탄줄이 끊어지면 어쩔수 없다는거지요. 탄광, 광산은 투기업인데 어떻게 계획화하겠는가 이거요. 동무넨 어떻게 생각하오? 내가 알아보자는건 그거요.》
《다른 탄광에선 모르겠는데 우린 계획화할수 있어요.》
한 청년이 담배대를 한손에 쥔채 불쑥 입을 열었다.
《우리 작업반에선 금년에 비해 래년도에 석탄생산을 3배이상 높이겠다고 결의했습니다. 김고망반장이 하는 말은 굴진을 선행시키고 예비채탄장을 미리미리 장만해놓으면 능히 계획화할수 있다는게야요. 사실 우린 여태 계획을 못해본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할수 있단 말이지요?》
김책은 귀맛이 좋아 벙실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막장에서 나오지 않는 안전기술원때문에 투덜거리던 례의 그 청년이 동을 달았다.
《옛날 탄광일은 투기업이지만 지질탐사를 해서 예비매장량을 단단히 잡아놓고 탄을 캐고있는 지금은 투기업이 아니란 말이요. 탄광문셀 모르는것들이 그런 헌소리를 한단 말이요. 누가 그따위 소리들을 해요?》
청년이 사무러운 고리눈을 치떴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는 그것으로 끊어졌다. 막장에 들어갔던 안전기술원이 나타났던것이다. 그뒤로 김고망이 따라나왔다.
안전기술원이 김고망을 돌아보며 미타한 말을 하였다.
《막장 안쪽에 동발목을 하나 더 받쳐야 될것 같소.》
《거긴 든든하웨다.》
《하긴 이쪽으로는 단층선이 가지 않았다니까 일없을거야. 됐수다. 어서 일을 하시오.》
안전기술원이 왼쪽편도로 걸어갔다.
상차작업이 시작되였다. 김책이도 껴묻어 삽질을 하였다. 이때 화가처럼 그림판끈을 왼쪽어깨에 걸어메고 귀바퀴에 연필을 끼운 사람이 안경알을 번쩍이며 걸어왔다.
《김책동지가 4호갱에 들어오셨다는데 어디 계신지 모르오?》
《김책동지가 들어오셨대요?》
탄부들이 놀라며 일제히 안경 낀 사람을 바라보았다.
《지배인동지가 4호갱에 들어갔다구 했소. 자기가 모시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지배인은 제일이나 하라〉면서 어느새 나가셨다오.… 이거 야단이로구만. 김일성장군님께서 급히 부르신다는데…》
김책이 더는 자기를 숨길수 없었다.
《동무, 내가 김책이요. 장군님께서 부르신단 말이요?》
안경쟁이는 흠칫 놀라며 한걸음 뒤로 물러서기까지 하였다. 놀란것은 그 사람뿐이 아니였다. 모든 탄부들이, 더우기는 김고망이 소스라쳐놀라며 김책이곁으로 달려왔다.
《김책동지,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허허허… 안됐소. 동무네 작업반을 보고싶어 왔지만 일에 방해를 끼칠것 같아 모른척 했지.》
김고망은 뒤꽁무니에서 수건을 꺼내여 김책에게 내밀었다.
《얼굴 닦으십시오.》
《일은 눈곱자기만큼 하구 얼굴은 석탄으로 매닥질한 모양이군.》
김책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무슨 일로 장군님께서 급히 부르실가 생각하였다. 문득 한가지 일이 마음에 걸리였다.
김책은 선거기권운동을 벌리고있는 목사들을 설복하기 위하여 세번씩이나 찾아갔으나 종시 그들의 마음을 돌려세우지 못했었다.
이른바 《예수의 계시문》에는 《안식일》에 선거에 참가하면 하느님의 벌을 받는다는 글이 씌여있었는데 목사들은 이것을 실지 《예수의 이야기》로 생각하고있었다. 그래서 김책이 《례배를 다 보고 선거에 참가하면 되지 않겠는가.》 또는 《하느님께 기도를 올려 허락을 받으면 안되겠는가.》 하고 별의별 말을 다하였으나 전혀 먹어들지 않았다. 나중에는 너무 화가 나서 이 세상에 하느님이란 실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계시문은 선거를 파탄시키기 위해 반동들이 조작한것이라고 하자 목사들은 몹시 노여워하였다. 이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별다른 기색이 없이 됐다고, 이제 더는 그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주시였다.
(혹시 목사들이 무슨 불집을 일으킨건 아닌가?)
김책은 저으기 불안한 마음으로 안경 낀 사나이를 돌아보았다.
《장군님께서 무슨 일로 부르시는지는 모르겠소?》
《그건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질조사원입니다. 굴안지질조사를 하러 들어가려고 하는데 지배인이 저에게 그런 말을 전하면서 김책동지를 모셔오라고 했습니다.》
지질조사원은 김책에게 빨리 나가자고 서둘렀다.
내려올 때는 빈차를 타고 내려왔으나 규정에 집을 만재한 굴차는 타지 못하게 되였으므로 어차피 걸어올라가야 했다.
《갱구까지 걸어올라가자면 뻐근하겠군.》
《제가 힘들지 않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이야기하며 걸으면 힘들지 않습니다.》
안경쟁이지질조사원이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하는 말이였다.
김책은 탄부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지질조사원을 따라갔다. 굴차가 덜컹거리며 옆으로 지나갔다. 지질조사원은 굴차에 다치지 않도록 김책의 몸을 뒤에서 부축여주었다.
《약속대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여야지요. 우선 제 이름을 소개하겠습니다. 제 이름은 최석견입니다. 돌 석자, 개 견자이니 돌사냥개라는 뜻입니다. 올해에 저는 서른다섯살입니다. 부모처자가 없는 혈혈단신입니다. 걸써 장가라는걸 갔댔는데 홀아비가 됐습니다. 허허허…》
최석견은 단 한명의 혈육도 없는 자신의 외로운 처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대범하게 큰소리로 웃었다. 길둥그런 얼굴에 코마루가 높고 이마가 훤칠한것이 첫눈에 지식인으로 보이는 사람이였다.
《지질기술은 어디서 배웠습니까? 대학을 다녔는가요?》
《허, 대학이요? 전 소학교중퇴생입니다. 한 15년동안 야마모도라는 일본지질박사밑에서 시료채취공을 하면서 두루 배웠습니다. 자습도 하고요, 도끼기술자입니다.》
최석견의 아버지는 가난한 석공이였다고 한다. 세상을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며 많은 묘비에 비문을 새긴 방랑석공이였다. 애국자의 묘비도 새기고 매국노의 묘비도 새기였다.
《우리 아버진 친일파라고 할수 있습니다. 맨 마지막에 쪼은 묘비가 일본군의의 묘비였으니까요. 〈천황페하께 충성다한 황군남아가 여기서 숨졌도다!〉 하고요. 이걸 쫏고 죽었습니다, 허허허.》
그는 약혼식과 결혼식도 없이 맞은 안해 역시 해방전에 자식 하나 보지 못한채 병사하였다며 껄껄 웃었다. 그는 웃기를 잘하고 말이 좀 다사한 사람같았다.
《동문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겠다고 하고는 가슴아픈 이야기만 하누만. 하긴 우리의 과거는 모두 그렇게 슬펐지. 나라를 잃었댔으니까.…》
김책의 목소리는 물기에 젖었다. 그 역시 얼마나 많은 혈육, 친척을 잃었는가.
《이제부터는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지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지질의 력사는 인간사회처럼 몇개의 혁명단계를 거쳐 변화발전하였습니다.》
최석견은 굴바닥에서 돌 한덩이를 집어들며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이 무심한 한덩이 돌에도 자기의 년령이 있고 다난하게 흘러온 기나긴 력사의 기록이 있습니다. 이 돌은 규암이라는것인데 년령이 한 3억 2천만살쯤 되고 혁명의 시련속에서 굳어지고 강해진 〈로혁명가〉입니다, 허허허…》
김책은 지질조사원의 이야기에 끌리기 시작하였다. 최석견은 주머니에서 누런 유색금속광물 한덩이를 꺼내였다.
《이것을 보십시오. 이 광물에도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열렬한 사랑의 포옹속에서 이 광물이 태여났습니다. 지질학에서는 그런것을 접촉교대광상이라고 하는데 이 광물의 아버지는 화강암이고 어머니는 석회암입니다.》
《그러니 무생물체인 바위나 돌도 사랑의 세계가 있단 말이지요?》
《있고말고요. 모든 창조물은 사랑과 열정의 산물이지요. 바위돌에도 사랑이 있기때문에 그속에서 은금보화가 생겨나는것입니다.》
평평하던 굴길이 물매지어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아득히 먼곳에 보름달같이 둥근 갱구가 바라보이였다. 최석견은 자기 사업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긍지를 가지고있는 사람이였다. 그는 한층 더 열정적으로 말을 이었다.
《영명한 김일성장군님을 모시고 보화의 땅을 가지고있는 우리는 이제 잘살게 됩니다. 이 평남북부지구에는 수백년동안 몇대를 두고 캐도 다 캐지 못할만큼 석탄이 무진장하게 매장되여있습니다.》
갑자기 눈이 부시여 김책은 고개를 쳐들었다. 갱구가 가까와진것이다.
김책은 태양처럼 밝은 빛을 뿜고있는 갱구를 향해 힘있게 걸음을 옮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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