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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시대 제5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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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7,567회 작성일 19-11-2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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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장

3

 

9월 하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제3차전원회의가 소집되였다. 긴급히 열린 전원회의였다.

무임소상 리극로는 어수선한 기분으로 회의장에 들어섰다.

그도 요즘 수풍발전소 에프론이 크게 파손되여 위험한 지경에 이른 사실을 알고있으므로 그와 관련된 모임일것이라고 짐작하였다.

(장군님께서 얼마나 속이 타실가?)

리극로는 국가요인들의 좌석으로 정해진 맨 앞줄에 가앉았다.

얼마후 김일성장군님께서 주석단에 나오시고 뒤따라 농림상이 연탁앞에 나와 개회를 선언하였다.

첫 안건이 토론된 다음 집행자가 다시 연탁에 나와 《다음은 평남관개건설을 적극 추진시킬데 대하여라는 안건을 가지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수상 김일성동지께서 보고를 하시겠습니다.》하고 장내에 알리였다.

리극로는 몹시 흥분하였다. 어려서 농사를 지은 가난한 농민의 아들인 그는 관개건설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있는것이다.

장군님께서 연탁에 나오시자 열렬한 박수갈채가 울리였다.

박수소리가 가라앉았을 때 장군님께서 조용히 말씀을 떼시였다.

《나는 성문화된 보고문을 작성하지 않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며칠전에 목격한 사실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평남관개공사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될것입니다.》

이렇게 허두를 떼신 장군님께서는 며칠전에 평남관개건설의 추진정형을 알아보러 가시는 길에 우연히 광업처 탐사과사업을 맡아보고있는 지질조사원출신의 최석견을 만나보시게 된 이야기를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를 만나시자 이미 많이 들으신 금광개발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최석견은 활기를 띠면서 길옆 풀밭에 1대 5만지형도와 1대 1만광상지질도를 펼쳐놓았다. 그런데 여러가지 색갈과 부호들이 복잡하게 그려져있는 1대 1만광상지질도에는 뜻밖에도 《묘향산금광상지질도》라는 표제가 새겨져있었다. 장군님께서는 크게 놀라시였다.

도면에는 묘향산 곳곳에 숱한 시추기를 박고 탐사굴을 뚫도록 설계되여있었다.

《그러니 동무네가 금광을 개발하겠다는데가 묘향산입니까?》

《그렇습니다. 장군님, 이제 보니 묘향산이 이처럼 절묘한 천하일경으로 된것은 많은 금을 깔고앉아있었기때문인것 같습니다.》

최석견은 묘향산의 광상지질에 대하여 한참 성수가 나서 설명하다가 그이의 안색을 일별하고 문득 굳어졌다. 장군님께서는 최석견에게 백만톤, 천만톤의 금을 가지고도 묘향산을 사지 못한다, 묘향산이 어떤 산인가? 유구한 세월 우리 인민이 사랑하고 귀중히 보존해온 조선의 명산이다, 거기에 시추를 박고 굴을 뚫어 남포질을 해서 기암괴석에 상처를 입히고 맑은 옥계수와 일만봉우리에서 풍기는 청신한 공기를 어지럽히겠는가고 나무람하시였다.

최석견은 그이의 말씀을 듣고 《제가 하마트면 천추만대로 인민의 저주를 받을 역적이 될번 했습니다.》 하고 몸서리치면서 광상지질도를 찢어버리려고 하였다.

《묘향산의 지질을 그린 도면인데 찢을 필요야 있소. 잘 보관해두시오.》

장군님께서는 그러시며 광상지질도옆에 펴놓은 1대 5만지형도에 눈길을 돌리시였다. 광범한 지역을 포괄하고있는 그 도면의 서쪽 부분에 먹으로 삼각부호를 새긴것들이 많았다.

《저 삼각부호는 뭡니까?》

《예, 토질병이 있는 마을을 표시한겁니다.》

《토질병이 있는 마을이 저렇게 많습니까?》

장군님께서 놀라며 물으시였다.

최석견은 서해지구의 해변마을엔 거의 다 토질병이 있다고 하였다. 불결한 수토에서 서식하는 골뱅이, 가재, 갈게, 애기우렁이따위를 먹는 해변사람들속에 웨스테르만 페지스토마에 걸려 고통을 받는 환자들이 많다는것이였다. 그곳에서는 물이 없어 나무꼬챙이로 땅구멍을 뚫고 꼬장모농사를 짓는다고 하였다. 지어 어떤 마을에서는 마실 물조차 없어서 곤두벌레가 득실거리는 마타리물(웅뎅이에 고인 비물)을 백반에 삭여 천에 밭아서 먹고있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온 마을 사람들이 토질병에 걸려 하늘소기침(어린이들의 백날기침)같은 발작적인 기침을 깇으며 고통스럽게 살아간다고 하였다. 최석견의 말에 의하면 서해지구의 해변은 바다와 강물의 영향으로 점도층이 두텁게 쌓여 샘물이 나올수 없고 사막처럼 증발이 빨리 진행되여 사흘만 비가 오지 않아도 논밭이 거북등처럼 갈라터져 꼬장모농사를 할수밖에 없다는것이였다. 지난날 봉건통치배들과 일본침략자들의 탄압을 피해 가다가다 바다가 막혀 더는 가지 못하고 뭍의 한끝에 정박하게 된 불운아들의 후손들이 오늘도 서해의 한끝에서 고통을 받으며 살고있다고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날로 서해지구의 해변을 돌아보시였는데 모든것이 사실이였다. 평원군 서해면 보원리의 어느 한곳에 가보니 농민들이 허허벌판에 반토굴식으로 된 떼장집을 짓고 마타리물을 마시며 살고있었다. 그들은 봄이 되면 나무꼬챙이로 바른 진흙땅에 구멍을 뚫어가지고 벼모를 꽂는다고 하였다. 농민들은 토질병에 걸려 어른, 아이 할것없이 모두 기침을 깇었다. 기침도 보통기침이 아니라 한번 터지면 그치지 않는 줄기침이였다. 어느 마을에는 뇌지스토마, 간지스토마에 걸려 페인이 되기나 젊은 나이에 죽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날 하루종일 서해지구를 돌아보신 장군님께서는 그냥 거기에서 하루밤을 묵어가시기로 하였다. 그런데 수행일군이 《여기선 주무시지 못합니다. 여기 마타리물이 얼마나 불결한지 숙천의 목사는 사탄의 오줌이라고까지 하였습니다.》 하고 늦어도 꼭 평양으로 가셔야 한다고 하였다.

《여기 농민들은 매일 사탄의 오줌을 마시며 사는데 하루밤도 못 묵겠습니까?》

이렇게 되여 장군님께서는 어느 한 떼장집에서 하루밤 묵게 되시였다.

장군님께서 오시였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농민들이 그이께서 계시는 곳으로 꼬리를 물고 찾아왔다. 60여명이나 모여들어 떼장집 방안은 사람들로 빼곡이 들어차게 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들과 허물없이 무릎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하시는데 어느 한사람이 갑자기 기침을 하였다. 그러자 그 무슨 조건반사라도 일어난것처럼 여기저기서 입을 싸쥐고 조심스레 잔기침을 하기 시작하다가 점차 걷잡을수 없는 곤두기침을 터치였다. 금시 숨이 넘어갈듯 얼굴이 피처럼 새빨개지고 두눈에는 눈물이 질벅하게 내배이였다.

이것이 《사탄의 오줌》, 마타리물을 마시는 사람들의 고통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농민들의 자지러진 기침소리때문에 이야기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시고 가슴이 아파 날이 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시였다.

아침에 지형을 료해하시기 위해 근처의 언덕산에 오르시니 농민들이 기우제를 한듯 넙적돌우에 떡부스레기와 고기점들이 널려있는데 그것들을 날라가느라 새빨간 불개미들이 오글거리였다.

거기서는 동, 서, 남, 북 사방이 한눈에 바라보이였다.

억새풀이며 엉겅퀴며 갈풀따위의 여러해살이의 잡초들이 우거진 무연한 벌판은 서해바다쪽으로 아득히 뻗어나가고 갈라터진 진흙짬으로는 갈게들이 기여나와 불개미처럼 보글거리였다. 갈바람에 설레이는 풀밭에서는 이따금 기러기떼들이 날아올랐다.

벌은 얼마나 넓은가, 여기 해변마을에 물을 끌어오면 숱한 쌀이 나올수 있었다.

그이께서는 비단 농사만이 아니라 토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맑은 음료수를 주기 위해서라도 관개공사를 크게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시였다.

(빨리 평양으로 가서 내각회의를 열자!)

내각 제3차회의는 이렇게 되여 소집되였다.

장군님께서는 회의장을 쭉 둘러보시였다.

《동지들! 우리는 토지개혁이후 3년째 년년이 풍작을 이루었지만 농사 만세를 부르기는 아직 이릅니다. 나는 마타리물을 마시며 꼬장모농사를 하는 보원리 해변마을농민들과 담화를 해보고는 평남관개공사를 대규모적으로 벌려 이 땅에 있는 모든 기우의 제당과 토질병들을 영영 없애버려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긴급대책으로서 묘향산 금광개발에 동원하기로 예견하였다던 로력, 설비, 자재 일체를 서해지구 물탐사에 돌려야 하겠습니다. 나는 평남도 평원군과 숙천군의 모든 해변지역을 몽리면적에 포함시키는 대규모적인 평남관개공사를 적극적으로 벌릴데 대한 의견을 제기하면서 여러분들의 의견을 들어보자고 합니다.》

회의장은 물을 뿌린듯 조용하였다.

리극로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도 가난한 농민의 아들이였다. 그의 눈앞에서 마타리물의 곤두벌레가 얼른거리고 귀가에서는 해변가농민들의 기침소리가 들려오는것 같았다.

그는 움쭉 일어나서 고개를 돌려 좌우를 번갈아보았다.

《여러분! 저는 긴 토론을 할 필요가 없기때문에 연단에 올라가지 않고 선자리에서 간단히 의견을 제기하겠습니다.

물때문에 고생하는 서해지구 해변농민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우리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더우기 김일성장군님께서 그들의 떼장집에서 같이 주무시면서 농사문세, 물문제를 의논해주신 그 로고의 이야기는 저를 울게 했습니다.

저는 서해지구의 모든 해변마을들에 물을 보내주는 대규모적인 평남관개공사를 진행할데 대한 장군님의 제안에 전폭적으로 동의하면서 그 공사에 대한 내각결정을 채택할것을 제기하는바입니다.》

그는 김일성장군님께서 1946년 봄부터 나라의 관개공사에 큰힘을 넣어 1947년에 이미 마탄, 흥의 관개공사를 비롯하여 60개에 가까운 중소규모의 관개공사를 완성시키시여 우리 나라를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나라로 전변시켜주신데 대하여 력설하면서 예로부터 농사와 치산치수는 천하지대본이요, 먹는것은 천지천이라 일컬었으니 그런 의미에서도 평남관개공사를 마땅히 중대국사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래년도부터 실시되는 2개년인민경제계획기간에 평남관개건설을 완공하자고 하였다.

리극로의 발언은 회의참가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때 박창옥이 천천히 일어나서 깊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무겁게 말을 했다. 《다 아시는것처럼 저는 지난 기간 계획경제의 불가능설과 시기상조론을 주장하여 사람들의 가슴에 찬물을 끼얹고 굴러가는 산업렬차에 제동을 걸었던 사람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반성할 이야기가 많지만 생략하고 기본문제에 대한 저의 소견을 말하자고 합니다.》 회의장에 가벼운 소음이 일어났다.

박창옥은 그 소음의 의미를 가늠해보려고 한동안 귀를 강구고 서있다가 계속하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리극로무임소상동지의 토론에 공감합니다. 평남관개공사는 많은 로력과 자재와 높은 기술을 요구하는 공사이니만큼 타산을 잘해야 된다고 봅니다.

여기서 말하자고 하는것은 지나치게 조급성에 사로잡히거나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는것입니다.》

지난날과는 달리 박창옥은 무척 조심스럽게 토론을 전개해나갔다.

《지금 우리의 경제는 부흥하고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나라의 경제실태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지금 많은 기계가 요구되는데 우리 힘으로 만들수 없어 김책부수상동지가 사방에 뛰여다니고있습니다. 수풍발전소가 지금 어떤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이런 형편에서 서해의 한끝까지 몽리구역으로 포함시키는 그처럼 큰 규모의 관개공사를 식은죽먹듯이 쉽게 할수 있겠는가?》

박창옥은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목소리를 높여 말을 이었다. 《가만 보면 지금 우리 사람들속에서 지난 기간 산업건설에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해서 자만도취하는 경향이 나타나고있는것 같습니다. 이런 때 주의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에게는 두개의 적이 있는데 하나는 실망과 비관이고 다른 하나는 자만입니다. 여기서 더 무서운 적은 자만입니다. 수풍발전소 지배인 리지찬동무를 보시오. 자만하고 과신한 까닭에 어떤 엄중한 과오를 범했는가?》

회의장이 수선거리였다. 박창옥은 마른 기침을 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러니 부장동지의 의견은 무엇인가요? 관개공사를 하지 말자는건가요? 토론의 의도가 잘 알리지 않습니다.》

리극로가 어정쩡해하며 박창옥을 다소 언짢게 지켜보았다. 대뜸 박창옥의 표정이 표표해졌다.

《그건 무슨 소립니까. 누가 하지 말자고 했는가요? 여기 관개공사를 반대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말하는것은 장군님께서 구상하신 평남관개공사는 규모로 보아 2년동안에는 할수 없는 큰 공사라는겁니다. 즉흥적으로 2년동안에 완공하자는 식의 현실성이 없는 구호를 불러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마타리물을 마시며 꼬장모농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물을 보내는 문제는 매우 절박한 문제이고 농민들모두가 갈망하는것이지만 그들의 그 갈망이 곧 공사가능성의 전제로 되여서는 안된다는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저는 부장동무와는 반대로 관개공사의 가능성을 담보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그 공사가 전인민적인 요구이고 전체 농민들의 절절한 갈망이라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46년에 진행한 보통강개수공사가 그걸 말해주고있습니다. 더 긴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여기 모인 모든 동지들이 다른 의견이 없으리라고 믿으면서 평남관개공사를 실시할데 대한 내각결정을 시급히 채택하자는것을 다시금 강력히 제기합니다.》

회의참가자들은 열렬한 박수갈채로 리극로의 제기에 절대적인 찬의를 표명하였다. 박창옥은 참기 어려운 좌절감에 리극로를 흘겨보며 박수를 쳐야 할 손으로 턱을 만지였다.

여러 일군들이 련이어 건설적인 토론을 하였다. 리병남보건상은 의료진을 무어 토질병을 앓는 농민들에 대한 검진과 치료사업을 조직할데 대한 창발적인 의견을 제기하였다.

장군님께서 회의결속에서 이렇게 강조하시였다.

《오늘 모두 좋은 토론들을 했습니다. 박창옥동무가 말한것처럼 우리가 구상하고있는 평남관개공사는 결코 간단한 공사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5년, 6년씩 질질 끌수 없습니다. 그렇게 끌어도 되는 일이라면 내각회의를 조직하지도 않을것입니다.

리극로무임소상동무가 아주 중요한 발언을 하였습니다. 인민의 요구와 갈망이 경제건설의 성패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보는 견해는 잘못된것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일을 하든, 지어 어떤 규정이나 조례를 작성하든 그것이 인민의 리익에 부합되는가, 인민들이 요구하고 좋아하는가, 인민들의 리익을 대변하는가 하는것부터 고려하여야 합니다.

인민의 지향과 요구, 이것이 바로 력사의 수레바퀴를 굴러가게 하는 추동력입니다.》

회의에서는 평남관개공사를 본격적으로 추진시킬데 대한 내각결정 제7호를 채택하였다.

이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창건된 후 최초에 실시된 가장 큰 인민적시책들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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