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번영의 시대 제 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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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3
양덕군은 사방 어디에나 큰 산줄기들이 뻗어있고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져있어 함지박같은 분지형을 이룬 산간지대였다.
예로부터 산이 높고 물이 맑아 어디 가나 경치가 좋은 곳으로 알려진 양덕지구에는 운치있는 폭포들과 약효가 좋은 광천들이 많아 여름과 가을철이면 풍류객들이 많이 찾아들군 했었다. 겨울철에 펼쳐지는 백설의 준령과 수정같은 얼음에 덮인 산간계곡의 경치가 또한 장쾌하다. 전기총국산하 청년작업대와 양덕군에서 동원된 로력이 련합하여 이해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하게 된 양덕군 동양리 노루골이라는것도 여간 경치가 좋지 않았다.
노루골에서 5리 남짓이 올라가면 범골이라는 건설용 림지가 있는데 누런 개털모자에 푸른 솜옷을 일식으로 갖추어 입은 발전소건설자들이 요즘 며칠째 그곳에서 통나무를 끌어내고있었다. 그 솜옷과 개털모자들이 바로 개인기업가들인 송대관이와 고영훈이 기부한것들이였다.
고영훈의 출생지인 동양리에는 지금도 그의 형님이 살고있고 양덕군 소재지에서는 외동딸이 중학교교원을 하고있었다.
두달전만 하여도 동양리 노루골과 범골사이의 울창한 밀림지대에는 사냥군들이 다니는 가느다란 오솔길 하나가 휘뚜루 풀어놓은 새끼오리처럼 오불꼬불 늘어져있었을뿐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소발구도 다닐수 있는 넓은 길이 곧추 틔여졌다.
이날 아침도 일렬종대를 지은 《푸른솜옷부대》가 굵은 통나무를 삼바줄로 비끄러매가지고 얼음처럼 매끈매끈하게 다져진 숲속의 눈길로 끌어내리고있었다. 《어이샤! 어이샤!》 하고 소리치며 행군하는 통나무운반대렬을 보고 산새들이 놀라서 푸릉푸릉 날아오르고 뭇짐승들이 투닥거리며 달아났다.
두명의 후방성원을 제외한 발전소건설대젊은이들이 30여메터정도의 간격으로 한줄로 쭉 늘어서다보니 림지에서부터 발전소건설장까지 5리 남짓한 길이 통나무운반대렬로 잇닿아있다. 웃음소리, 어이샤소리, 눈길에 미끄러져 엎어지고 자빠지며 아부재기치는 소리, 온 산판이 들썩하였다. 수백수천년세월 인적기없이 고요하고 적막하던 수림이 들끓는 건설의 활무대로 변해버린것이다.
푸른 솜옷을 입은 젊은이들이 길게 늘어서서 통나무를 끌고가는 광경이 참으로 장관이지만 그중에서도 작업대 대장 오천행이 나무끄는 모습은 더욱 볼만하였다.
나무통개가 굵어서 억대우같은 젊은이들도 가까스로 통나무를 한대씩 끌고갔지만 오천행은 단번에 4대나 끌었다. 지금도 그는 량어깨에 바줄을 각각 두개씩 걸어메고 코끼리처럼 슬금슬금 발을 옮기며 4대의 통나무를 끌고갔다. 그의 앞에서는 곰처럼 몸이 퉁퉁한 젊은이가 가고 뒤에서는 오천행이 못지 않게 체구가 큰 장골의 청년이 나무를 끌었다. 그들도 역시 한대씩이였다. 그러니 오천행은 혼자서 장정 네사람의 몫을 하고있었다.
발전소건설장에 와있는 한달새에 오천행의 얼굴은 추위에 얼고 바람에 터서 시꺼멓게 되고 입술은 온통 부르터서 딴사람처럼 되였다.
처음으로 하나의 큰 로동집단을 책임지다보니 지난 한달동안 그는 언제한번 발편잠을 잘수 없었다. 발전소위치선택으로부터 작업공정과 작업방법, 작업기간에 이르기까지 일체 기술경제적타산을 그가 책임지고 하였다.
원래 오천행은 양덕군을 종단하는 물량이 많은 남강을 언제로 막아 5만키로와트출력의 큰 발전소를 건설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전기총국에서 계획에 물리지 않은 대공사를 허락해줄수 없었다. 현실적으로 대형발전소를 건설할만 한 발전기도 없었다.
하지만 오천행은 소형인 동양발전소뿐아니라 대형발전소도 건설하여 장군님의 믿음에 보답하고싶었다. 사실 수풍발전소와 같은 동양일류급의 대형발전소만을 보아온 오천행의 눈에는 동양마을 노루골의 소형발전소따위는 눈에 차지 않았다.
지금 이들이 끌어내리는 통나무들은 노루골소형발전소가 아니라 《남강발전소》와 양덕군의 공장건설에 쓸 목재들이였다.
양덕군의 경제일군들도 동양마을 발전소건설은 크게 어려운것도 없으니 함께 힘을 합쳐 먼저 군의 공장건설과 목재생산을 해제낀 다음 온 군이 달라붙어 노루골발전소건설을 하자고 오천행을 부추기였다. 사람좋은 오천행은 《목재생산을 도와야지요. 성냥곽만한 노루발전소는 온 군이 달라붙을것도 없습니다. 앞으로 언제이든 남강에 큰 언제식발전솔 건설하자구 하는데 그때는 군의 지원이 있어야 할것 같습니다.》 하고 흔연히 동의했었다.
《어이샤! 어이샤!》
그는 입속으로 어이샤소리를 규칙적으로 내면서 한걸음한걸음 힘을 주어 눈길을 걸어갔다. 그에게 끌리여가는 넉대의 통개 굵은 통나무는 두덜거리듯이 퉁당퉁당 소리를 내며 요동을 쳤다. 넉대의 통나무가 서로 부딪치며 뜀질을 할 때마다 오천행의 어깨우에서 바줄들이 빠져나갈듯이 꿈틀거리였다. 림지에서 떠날 때에는 넉대의 통나무를 떼목처럼 무어서 량어깨에 바줄을 걸어 끌었지만 내려오는 동안 나무를 묶은 삼바가 닳아 끊어져서 통나무 넉대가 제뿔내기로 요동을 치면서 끌려왔다. 마치 따라가지 않겠다고 행악질을 하듯이…
토장근처에 이르렀을 때 오천행은 갑자기 귀청을 울리는 《어마나!》하는 녀자의 목소리에 우뚝 멎어섰다. 분홍빛외투를 입고 흰 양털목도리를 손에 든 한 처녀가 통나무 넉대를 끌고온 오천행을 놀랍게 지켜보고있었다.
《아니, 은옥선생이 어떻게 오셨습니까?》
《이렇게 굵은 통나물 혼자서 넉대나 끌고옵니까?》
《은옥선생》은 휘둥그래진 눈으로 통나무를 지켜보았다.
흰 살결에 눈매가 곱고 얼굴의 선들이 부드러운 미모의 처녀였다. 그 처녀가 바로 발전소건설자들에게 솜옷과 털모자를 보낸 고영훈기업가의 딸이였다.
오천행은 20여일전에 동양수력발전소 전망설계모형도를 부탁하기 위해 읍초급중학교 도화선생을 만나러 갔다가 그를 우연히 알게 되였다. 고은옥이가 도화선생이였던것이다.
《어떻게 왔습니까?》
오천행은 느닷없는 처녀의 출현이 의아스러웠다.
《동양리소재지에 저의 큰아버지가 계셔요. 래일이 생일이여서 이틀 말미를 얻어가지고 왔어요. 그리고 오동지네가 건설한다는 발전소건설장도 보고싶고…》
오천행은 그제야 처녀의 발옆에 가죽트렁크가 놓여있는것을 보았다.
《저걸 들고 여기까지 왔습니까?》
《아니예요. 큰길까진 화물차를 타고 오고 걸은 길은 10리밖에 안됩니다. 오동지네가 길을 닦아놓아 헐하게 왔어요.》
무거운 트렁크를 들고 10리길을 걸어오느라 땀에 떠서 머리에 둘렀던 목도리를 벗어버린 모양이였다.
《오동지, 발전소건설을 어떻게 하는지 설명해주시지 않겠어요? 큰아버지한테 그 얘기를 해주자구요.》
고은옥은 트렁크를 들며 밝은 웃음을 지었다. 그 처녀의 요구는 오천행을 은근히 기쁘게 해주었다. 때마침 오전운반작업을 그만하려던 참이였다.
노루골발전소건설현장을 보려면 나무무지를 돌아서 좀더 걸어가야 하였다. 그곳에 고은옥이가 그린 발전소전망설계모형도를 붙여놓은 게시판도 있었다.
《양덕군 목재생산계획을 도와주느라 발전소건설은 아직 하지 못하고 준비작업을 하고있습니다. 아무튼 모처럼 왔는데 현장엘 가봅시다. 트렁클 주십시오.》
오천행은 처녀가 힘들게 들고있는 트렁크에 손을 내밀었다.
고은옥은 사양하지 않고 오천행에게 트렁크를 맡기였다.
일제시기 평양도회지에서 녀고보를 다닌 그는 사내들앞에서 얼굴을 붉히며 내우를 하는 봉건적인 녀성들과는 전혀 다른 개방적이고 활달한 현대녀성이였다.
오천행이 앞에서 천천히 걸어갔다. 얼마후 산을 끼고 종심깊이 꿰여들어간 노루골의 긴 계곡이 바라보이였다. 맑은 골개물이 조용히 흘러내리고있었다.
리소재지와 10여리 떨어져있는 노루골에는 여라문채의 귀틀집이 띠염띠염 널려있었다. 그중의 여섯채가 이번에 새로 지은 발전소건설자들의 숙소였다.
《여기 내물은 갈수기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요.》
고은옥이 문득 걸음을 멈추며 하는 말이였다. 강바람에 처녀의 머리카락이 흩날리였다.
《목도리를 두르십시오. 감기 걸리겠습니다. 여기 골개물은 샘줄기와 련결되여있어 갈수기나 겨울에도 물량이 줄지 않습니다. 다만 물량이 적은것이 결함입니다. 저쪽으로 올라갑시다. 거기에 선생이 그려준 발전소모형도가 있습니다.》
오천행은 은옥을 데리고 물기슭을 따라 거슬러올라가다가 게시판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널판을 무어서 세워놓은 나무게시판에 미래의 동양발전소를 원색으로 그린 모형도가 붙어있었다.
골안을 가득 채운 넓고 푸른 저수지, 물을 가로막는 높은 언제, 저수지의 물을 끌어들인 굴길과 굴밖으로 떨어지는 세찬 폭포수, 아담한 발전소건물과 산너머로 뻗어간 전기선… 멀리 마을에선 전기불이 반짝인다.
물론 이 모형도는 오천행이 작성한 초안에 기초해서 그린것이였다. 고은옥은 세시간동안 정성을 들여 그렸었다.
《이다음 발전소가 건설되면 예술풍경화를 그리겠어요. 이 모형도는 어디까지나 기술설계도의 일종이지요.》
고은옥은 긴 속눈섭을 슴벅이며 모형도를 생각깊이 지켜보았다.
오천행은 잔잔하게 흘러내리는 골개물을 가리켰다.
《이 강을 막아 물을 잡아놓고 저쪽 산앞으로 곧추 수로를 짼 다음 산굴을 뚫어 락차를 지어 발전기를 돌리자는겁니다. 물량 곱하기 락차가 곧 전기출력으로 되기때문에 발전소건설에선 언제나 두가지 문제에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물량과 락차입니다.》
오천행은 마치 학생에게 물리학을 가르쳐주는 교원처럼 열성적으로 설명하였다.
《고보에 다닐 때 전기에 대해서도 좀 배웠는데 이젠 다 까먹었어요. 전기불신세를 지면서도 전기의 원리를 모른다는건 부끄러운 일이지요.》
《발전소건설을 신비하게 생각할건 하나도 없습니다. 강물을 막아 락차를 얻고 거기에 발전기를 돌릴수 있게 나무나 철판으로 수차를 만들어놓으면 됩니다. 그러니 여기 사람들도 비록 작기는 하지만 발전소라는걸 만들지 않았댔습니까?》
《전 양덕군에 있으면서도 여기에 극소형발전소가 있었다는것도 몰랐어요. 그런데 장군님과 김정숙녀사께선 언제 그걸 다 아시고 건설자들을 보내주셨으니 정말 고맙고도 놀라운 일이지요.》
은옥은 이제 굴을 뚫게 될 소나무 우거진 야산에 눈길을 보냈다.
《바로 장군님께서 저 산에 굴을 뚫으면 락차고를 높여 전기를 많이 생산할수 있을거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와보신적도 없는데 그런 신통한 방안을 내놓으셨지요. 언제든 장군님께서 동양마을에 꼭 오실겁니다. 어떻게 해서나 남강에 언제식발전소를 건설해서 보여드려야겠는데… 이까짓 화전마을에 전기불이나 켜게 하는 조그만한 발전소야 어디 눈에 찹니까.》
《고콜불을 켜고 살던 농민들에게 전등불을 보게 하는것도 얼마나 큰 일이예요. 행복과 문명을 창조하는 대단한 건설이지요.》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그것은 작업량에 비해 얻어지는 결과가 너무도 보잘것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력발전소건설에 30프로의 력량만 돌리고 70프로이상을 양덕군의 목재생산을 돕는데 힘을 넣고있습니다. 군의 간부들과도 그렇게 약속했습니다.》
오천행은 그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듯 주먹을 들어보이였다.
《어마나, 그러다가 발전소건설을 계획대로 하지 못하면 어쩌자구요? 강물을 막구 굴을 뚫구 하는 일들도 다 헐치 않겠는데…》
고은옥은 걱정스러운듯 낯빛을 흐리였다.
《일없습니다. 국가적견지에서 우선 경제적리익성부터 보아야지요. 그리고 강물을 막는것도 그렇고 산굴을 뚫는것도 그렇고 문제 없습니다. 피가 한동이씩 찬 청년들이 모이지 않았습니까.
이까짓 중소형발전소는 한 보름동안 전투를 벌리면 완공할수 있습니다.》
은옥은 높이 쌓인 토장을 새삼스레 바라보았다. 방금 네개의 통나무를 끌고온 오천행의 입술은 온통 부르터있었다. 건국을 위해 바친 그 뜨거운 헌신의 흔적이 처녀의 가슴을 쩌릿하게 하였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려왔다. 귀여운 한쌍의 콩새가 연한 밤빛날개를 잽싸게 휘저으며 그들의 머리우로 날아갔다.
《오동지,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20일동안에 동지의 얼굴이 무척 상하셨어요. 제 보기에는 발전소건설만도 힘에 부친 일 같은데 무엇때문에 군에서 할 일까지 도와주어요?》
돌연히 울리는 말투레질소리에 오천행이와 고은옥은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누런 외투를 입은 보안서원이 살진 공골말을 타고 다가오고있었다. 코김을 힝힝 불어대는 공골말 옆에서는 구레나룻이 더부룩한 털보사나이가 마치 견마군처럼 따라오고있었다. 그는 변대걸이였다. 영제상점 협잡사건으로 두달동안 검찰소의 예심을 받은 그는 지금 여기에 와서 로동단련을 하고있었다. 운명의 동아줄은 이상하게도 오천행이와 변대걸을 떼여놓지 않고 계속 한길우에 묶어놓고있었다.
《저 동무가 오천행입니다.》
변대걸이 오천행을 가리키며 보안서원에게 말하였다.
말잔등에 올라앉은 보안서원은 미모의 처녀와 나란히 서있는 오천행을 잠시 말없이 지켜보다가 등자를 디디고 내리였다.
《여, 오대장. 평양시보안서에서 오신분이여.》
변대걸이 어정쩡히 서있는 오천행에게 보안서원을 소개하였다.
오천행은 여전히 어리둥절한채 불의에 나타난 두사람을 번갈아보았다.
《절 찾아왔습니까?》
《그렇소, 뭘 좀 알아볼게 있어서 왔소.》
보안서원은 제복 외투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여 오천행의 코앞에 내밀었다. 마치 체포령장이라도 꺼내는것처럼 보안서원은 엄한 표정을 짓고있었으나 그의 손에 들려있는것은 《독고칠성》이라는 이름이 새겨있는 신분증이였다. 변대걸은 겁먹은 얼굴을 하고 서있는 고은옥을 돌아보며 한쪽 눈을 희롱하듯 찌프리였다.
《은옥선생이 어떻게 우리 오대장하구 같이 다니오?》
고은옥은 그를 한번 흘겨볼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앙숙으로 된 사이였다. 변대걸은 해방직후 감찰과장을 할 때 개인기업가인 은옥이 아버지한테도 여러번 달려들어 가택수색을 하며 못되게 굴었었다. 물론 변대걸이도 자기를 고발한 무기명신소자가 고영훈기업가라는것을 알고있었다.
이전의 시보안서 감찰과장이 별을 몇알 달지도 못한 오늘의 시보안서원의 견마군처럼 따라다니고있으니 만화와 같은 우습강스러운 일이기도 하였다.
《뭘 물어보자고 평양에서 여기까지 왔습니까?》
오천행은 보안서원의 신분증을 보고나서 한층 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조용한 방이 좀 없을가? 여긴 춥구만.》
오천행은 은옥에게 고개를 끄덕여 작별인사를 하고 보안서원을 지휘부숙소로 데리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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