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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시대 제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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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3,491회 작성일 19-10-22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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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4.jpg

(제 10 회)

제 2 장

5

 

농민들의 심정을 잘 반영한 농업현물세노래는 전국각지에 급격히 퍼져 농촌늙은이들까지 즐겨 불렀다.

발이 센 무명바지저고리에 재빛벙거지를 쓰고 잔등에는 쌀짐으로 보이는 대짜배기 넉새무명자루짐을 진 중늙은이가 흥얼흥얼 현물세노래를 부르며 교구동 큰길을 걸어가고있었다. 큰길 좌우로는 풀빛도색을 한 전차들이 풍경소리같은 맑고 은은한 종을 울리며 분주히 달리였다. 전차길 옆으로 늘어선 가로수들은 서느러운 갈바람에 술렁이고 하얀 송이구름이 뜬 넓은 하늘에선 기러기들이 줄을 지어 날아갔다.

민주의 첫 가을이 깊어가고있었다.

거리 여기저기에는 《11월 3일은 도, 시, 군 인민위원회 위원선거의 날이다》라는 표어들이 나붙어있고 전보대에 달아맨 확성기에선 선거의 노래가 울려나왔다.

늙은이는 옆으로 지나다니는 전차들이며 거리를 마주하고 비좁게 늘어선 형형색색의 건물들이며 시가지의 온갖 풍경을 두리번두리번 살펴보며 그냥 코노래를 불렀다.

60대밑에 이른듯 한 로인이였으나 두말들이 자루짐을 지고도 겅정겅정 헝그럽게 걸어가는것이 젊었을 때는 힘꼴이나 썼을듯싶었다.

보폭이 크게 내짚는 검은 고무신을 신은 버선발은 희고 말쑥하였다. 통이 너른 무명바지와 고름을 맨 저고리도 비록 발이 센 넉새무명천으로 지은것이였지만 다림발까지 세워서 차림새가 산뜻하였다.

흥얼흥얼 코노래를 부르던 늙은이는 우뚝 멈춰서서 사방을 두리번거리였다. 여러 가닥길이 나져서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몰라서 그러는것 같았다. 이때 어디선가 호각소리가 새되게 울리였다. 누런 제복을 입은 보안서원이 급하게 달려왔다.

《령감! 나가시오. 정신나가지 않았소? 길복판에서 흥타령을 부르며.》

《뭐, 정신나갔다구?》

로인의 짙은 눈섭이 송충이처럼 꿈틀하였다.

《빨리 나가라요!》

목탄자동차 한대가 로인과 보안서원이 서있는 사이로 검은 염기를 뿜으며 지나갔다.

《빨리 나가라요, 나가!》

호각줄을 목에 건 보안서원이 성이 독같이 나서 쌀자루를 진 로인의 잔등을 떠밀었다. 그 서술에 로인이 비칠하면서 한쪽발을 쳐드는것과 함께 고무신이 떨어져나갔다. 젊은 보안서원의 완력행사에 늙은이도 완연히 노하였다.

《이 녀석! 보안서원이면 보안서원이지 제 아버지같은 사람을 보구 뭐 어쩌구 어째?》

보안서원은 로인의 강한 반격에 어리둥절해졌다.

《너 지금이 어느때라구! 왜정때 순사처럼 떡떡거려? 내 발 가지구 내 땅을 밟고있는데 나가긴 어디 나가란 말이야?》

《아바지, 여긴 차가 다니는데야요. 저쪽 인도로 다니라요.》

로인의 추상같은 고함소리에 기가 좀 죽은 보안서원은 큰길옆으로 난 인도를 가리켰다.

《그럼 진작 그렇게 알려줄게지 무슨 소래기질이야! 너 이름이 뭐야? 어느 보안서야? 내 당장 김일성장군님께 일러바치겠다. 보안서원이 옛날 경찰처럼 백성들앞에서 꽥꽥거리면 안된다구 장군님께서 몇번 말씀했어. 어서 대라, 이름이 뭐야?》

《내 잘못했시요. 차에 치워 사고날가봐 그랬시요. 한테 어디서 오는 아바지야요?》

《어디서 오든 무슨 상관이야?》

로인은 보안서원에게 눈을 흘기였다. 그러나 인차 성이 가라앉은듯 조용히 물었다.

김일성장군님 댁을 찾아가자면 어느 길로 가야 하나?》

《장군님댁이요?》

보안서원의 눈이 둥그래졌다.

《역에서 내려 한참 올라가다가 대동교가 있는 어방에서 왼쪽으로 꺾어들어가야 된다던데 평양에 처음 오는 촌령감이다보니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구만.》

《아니 정말 장군님댁을 찾아오나요?》

보안서원은 로인의 말이 믿어지지 않는듯 의아스러운 표정을 짓고 재차 물었다.

이 로인이 바로 후날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지게 된 김제원농민이였다.

김제원은 농민들에게 땅을 나누어주신 장군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자고 난생처음 제땅에서 농사지은 재령햇쌀 두말을 지고 평양에 찾아온것이다.

어디에 가야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올수 있을지 알지두 못하면서 덧대놓고 집을 나섰다. 촌령감이 어떻게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온다고 망녕된 소리를 하느냐며 로친이 만류하는것도 뿌리치고 떠났었다.

보안서원도 장군님의 댁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아바지, 먼저 해방산쪽으로 가보시라요. 이쪽으로 쭉 올라가느라면 십자길이 생겨요. 왼쪽으로 가로질린 길을 가다가 보초서는 집이 있으면 거기가서 물어보시라요.》

《고맙네.》

김제원은 가로수옆으로 난 인도로를 따라 시적시적 대동교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가고오는 사람들과 기관 보초병들에게 물어서 마침내 김일성장군님의 저택을 알아내게 되였다. 그러나 아직 미타하였다. 김일성장군님의 댁으로 보기에는 집이 너무도 작고 수수하기때문이였다.

담장을 둘러친 2층벽돌집이였다.

어쨌든 김제원은 집앞에 서있는 보초병을 향하여 조심스레 걸어갔다.

《섯!》

긴 총을 옆에 딱 붙이고 서있는 젊은 군인의 야무진 구령소리에 김제원은 엉거주춤 서버렸다.

《아버님, 어딜 찾아오십니까?》

군인의 구령소리는 야무졌으나 용무를 물어보는 목소리는 사뭇 친절하였다.

《여기가 김일성장군님의 댁이 옳은가요?》

《예, 옳습니다.》

보초병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김제원농민의 행색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바루 찾아왔구나!)

방금전까지도 기연가미연가하던 김제원은 불현듯 가슴이 울렁거리였다. 그는 모두숨을 쉬고나서 자기는 황해도 재령군에서 사는 김제원이라는 농민이라는것, 우리 농군들에게 땅을 주신 장군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저 약소하나마 내 땅에서 농사지은 햇쌀 두말을 지고왔다는것을 떠듬떠듬 말하고는 이렇게 덧붙이였다.

《이 미거한 농군의 청을 막지 말고 부디 장군님을 만나뵙게 해주오.》

농촌늙은이의 지성에 감심된듯 보초병은 인정이 배인 따뜻한 웃음을 지었다.

《아버님, 잠간 기다리십시오. 장군님께서 방금 들어오셨습니다.》

김제원의 가슴은 한층 더 세차게 걷잡을수없이 뛰놀았다.

무슨 신호를 받았는지 한명의 군인이 마당으로 나오더니 보초병과 소곤소곤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김제원의 귀가에 얼핏 《장군님께서 시간이 바빠 점심을 드시고 인차 나가야 한다셨는데…》 하는 말소리가 들리였다.

그제야 김제원은 지금이 점심때라는것을 생각하며 민망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로 머리우에서 붉은 해가 빛나고있었다.

(아뿔싸, 이게 인사불성이 아닌고? 체신머리없이 점심진지를 드실 때 찾아오다니.)

하기는 국사에 바쁘신 장군님이시니 점심시간이 아니고야 어찌 댁에 계실가싶었다. 그러고보면 하늘이 도와 신통한 시간에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장군님께서 바쁘시다면 내 여기 서있다가 점심을 들고 나가실 때 인사라도 올리고 가야지.)

김제원은 그렇게 하는길밖에 없다고 보았다.

보초병과 소곤거리던 군인이 대문밖에서 마음조이며 서있는 김제원을 한번 스쳐보고는 마당으로 되짚어 돌아갔다. 도대체 어쩌자는것인지 알수 없어 보초병에게 눈길을 돌리였다.

보초병은 무슨 의미에서인지 웃음을 머금고 머리를 끄덕여보이였다.

김제원이 놀란것은 바로 그 순간이였다.

아, 아 이것이 꿈이냐 생시이냐, 군인과 함께 마당으로 나오시는분은 틀림없이 매일 때없이 우러르는 자기 집의 초상화로 익히고익혀온 김일성장군님이시였다.

갑자기 눈이 부시도록 주변이 환하게 밝아지는듯했다.

절세의 영웅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 분명 무지렁이농군인 자기한테로 걸어오고계시였다.

김제원은 너무도 감격스럽고 놀라와 머리가 어찔해지고 두다리가 후들거리였다.

《로인님, 어서 들어오십시오. 먼길에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저릉저릉한 장군님의 음성을 듣고 김제원은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미처 인사도 드리지 못한 그는 자기가 어떻게 마당으로 들어섰는지 알수 없었다. 때늦게 정신을 가다듬은 그는 벙거지를 벗고 골박으로 짊어진 쌀자루를 등에 진채로 땅바닥에 넙적 엎드리였다.

《장군님!》

그는 이렇게 한마디 목메여 불렀을뿐 다른 인사말을 더 올리지 못하였다.

《로인님, 이러지 말고 어서 일어나십시오.》

장군님께서는 김제원의 팔을 잡아 일으켜세우시였다. 젊은 군인이 김제원의 두어깨를 꽉 재운 멜빵을 벗겨 쌀자루를 받아주었다.

《장군님, 제 황해도 재령군에 있는 김제원이라는 농군이올시다.… 땅을 주신 장군님께… 어허… 고마우신 장군님께…》

김제원은 목이 꽉 잠겨서 말을 잇지 못하였다.

《땅은 내가 준게 아니라 인민정권이 주었습니다. 이 무거운 쌀을 지고오느라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로인의 년세는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제 기축생입니다. 올해에 세는 나이로 쉰여덟이올시다.》

김제원은 황공스러워 갈퀴같은 손으로 벙거지를 주물럭거리였다.

《예순이 가까와오는 나이에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오셨군요. 어디 재령쌀이 어떤지 구경을 해볼가요.》

장군님께서는 자루목을 꽁꽁 비끄러맨 굵은 노끈을 푸시려고 허리를 굽히시였다. 그러자 김제원이 얼른 자루목에 손을 가져갔다.

《제 풀어올리겠소이다.》

제원은 잠간새에 노끈을 풀어 자루아구리를 헤치였다.

기름이 도는 흰쌀알이 말그대로 백옥같이 반짝이였다.

장군님께서 자루목에 손을 넣어 한웅큼 쥐여내시였다.

《재령쌀이 좋다는 말을 여러번 들었는데 정말 옥백미라 부를만 한 쌀입니다.》

장군님께서 밝은 웃음을 지은채 흰 쌀알을 비비고 또 비벼보시였다.

《예. 옛날부터 재령땅을 궁땅이라 했습니다. 입쌀(이쌀), 이팝(이밥)이란 말두 재령쌀에서부터 생겨난 말이읍지요. 이씨(리씨) 왕조가 먹는 쌀이래서 그랬다 하옵니다.》

김제원은 어느새 어려움도 잊고 성수가 나서 재령쌀을 자랑하였다.

《이제는 〈궁땅〉이 아니라 〈민땅〉, 인민의 땅이 됐습니다. 로인님은 분여받은 땅에서 얼마나 소출을 냈습니까?》

《제 난생처음으로 66가마니나 고간에 채워넣었습니다.》

김제원농민의 목소리는 물기에 젖어있었다. 웬일인지 그는 불시에 마음이 억해져 아낙네처럼 울음이 터져나올것 같았다.

황해도 재령군 북률면 대흥리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여난 김재원은 일찌기 부모를 여의여 열세살 어린 나이에 지주집 머슴으로 들어가야 하였다. 그때부터 옹근 16년동안 혈혈단신의 외로운 몸으로 지주집 외양간에서 소와 함께 살아가다가 스물아홉살에 김길가라는 부엌데기처녀와 가정을 이루고 행랑살이를 하였다. 서른여덟살에야 처음으로 풍막이나 다름없는 오막살이집 한채를 마련하고 일제의 동양척식회사 땅 2 800평을 얻어 소작살이를 하였다.

《한일합병》을 날조한 후 《토지조사령》이라는것을 조작하여 돈 한푼 안 들이고 조선에서 수많은 땅을 차지한 일제의 동척회사에서는 조선농민들을 개, 돼지처럼 취급하면서 악착하게 쌀을 빼앗아냈다.

김제원은 2 800평의 논에서 나오는 소출의 60프로이상을 동척회사에 바치고 비료값, 전기값, 물값에 봄에 꾸어먹은 리자붙은 대여곡을 물고나면 마당에 비자루와 빈 벼껍데기만 남군 하였다.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되는 과정에 일본놈들에 대한 증오심이 자라나 동척회사족속들이나 일본순경놈들과 자주 주먹싸움을 하군하였다.

한번은 그가 동뚝에 앉아 노를 결으고있는데 북률면 주재소 순사부장이란 놈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가 《이놈의 새끼 대낮에 노를 걷지 말고 논판에 들어가 일이나 해라.》하고 눈을 부라리며 생트집을 걸어 《이놈아, 노를 겯든 김을 매든 무슨 상관이냐.》하고 뛰여일어나 그놈의 멱따시를 잡아 멨다꼰져 자전거와 함께 동뚝밑으로 내굴린 일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류치장에 끌려가 며칠동안 죽도록 매를 맞고 나왔다. 그러루한 일이 한두번이 아니여서 그의 성미는 점차 이지러져갔다. 그럴수록 가난과 굶주림은 점점 더 무섭게 그의 몸을 얽매여놓았다. 그러던중 1940년대초 어느날 낯선 젊은이가 찾아와 혼자서 왜놈들과 주먹싸움을 해야 얻을것이란 하나도 없으니 마을 농민들과 힘을 합쳐 3. 7제소작쟁의를 하라고 부추겼다. 그때부터 소작쟁의를 하기 시작하였는데 어느해인가는 마을농민모두가 동척사무실유리창을 들부시며 들고일어나 재령일판을 들썩하게 하였다. 그러다 해방을 맞이하였다. 공산당에서 농민들의 3. 7제소작운동을 도와줄뿐아니라 장차로는 토지개혁을 한다는 소리를 듣고 그는 마을에서 제일먼저 공산당에 들었다.

토지개혁당시에는 농촌위원회 위원으로 선발되여 지주의 토지를 몰수하는 계급투쟁에 앞장을 섰다. 토지분여시 가난한 빈농민이며 마을의 첫 공산당원인 김제원에게는 좋은 땅이 차례졌으나 그는 좋은 땅을 남에게 주고 스스로 나쁜 땅을 받았다. 그는 땅을 걸구고 직심스레 농사를 지은 덕에 례년에 없는 많은 소출을 내여 소달구지를 사고도 고간에 쌀을 66가마니나 채워넣게 되였다. 그것이면 현물세와 일년 먹을 쌀을 계량하고도 여유곡이 30가마니이상이나 되는것이였다. 이것은 김제원의 한평생에서 아니, 수백년 조상대대에서 있어보지 못한 일이였다. 김제원은 꿈과 같은 이런 땅복을 얻은것이 김일성장군님의 덕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으므로 알알이 고른 쌀 두말을 지고 그이의 댁을 찾아온것이였다.

하지만 가슴속에 쌓인 이 만가지 사연을 어찌 한자리에서 장군님께 아뢰일수 있겠는가. 그저 목이 메이고 눈물이 나와서 갈퀴같이 구부러진 손가락으로 땅빛같이 검붉은 두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칠뿐이였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농군이 흘리는 그 소리없는 눈물속에 깃든 만단사연을 죄다 헤아리고계시였다.

《로인님네 식구가 얼마인지 66가마니를 고간에 채웠으면 십여명되는 대가정도 일년계량은 될것 같습니다.》

《저의 식구는 단출합니다. 로친네와 딸 하나뿐이옵니다.》

《그러면 대단합니다. 기쁩니다, 정말 기쁩니다.》

더없이 기뻐하신 장군님께서는 방에 들어가서 점심을 같이하면서 재령소식을 더 들어보자고 하시였다.

김제원은 놀라고 민망하여 어쩔줄 몰라했다. 무지렁이농군이 나라의 령수이신 장군님과 언감 밥상에 마주앉을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장군님의 손에 이끌려 마루방을 지나 완자문을 낸 방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조선지도가 한쪽벽에 걸려있을뿐 별다른 가구가 없는 깨끗한 장판방 한가운데에 이미 음식을 차린 까만 두리소반이 놓여있었다.

(원… 이를 어쩌나?!… 장군님께서 점심진지를 드시다가 나오셨구나!)

김제원은 머리를 치는 이런 생각에 벙거지를 떨구고 두손을 비비며 허둥거리였다.

《로인님, 어서 나와 앉으십시오. 오늘은 정숙동무가 혁명가유자녀들을 돌보러 나간데다 로인님이 갑자기 오시다보니 따로 점심밥을 짓지 못했습니다. 차린것이 없지만 있는대로 같이 나누어 먹읍시다.》

부엌에서 손님몫으로 방금 점심밥을 담은듯싶은 놋주발과 국사발이 더 들어왔다.

장군님의 권에 못이겨 김제원은 밥상앞에 꿇어앉았다.

《허허허… 로인님, 제집이라 생각하고 올방자를 틀고 편안히 앉으십시오. 방석을 깔아드릴가 하다가 우리 할아버지랑 보면 원래 농군들은 방석이 아니라 이렇게 맨 방바닥에 올방자를 틀고앉기를 좋아하길래… 자, 국이 식기 전에 듭시다.》

그제야 김제원은 앉음새를 편히 하고 황공스레 숟갈을 들면서 두리소반을 내려다보았다. 순간 그는 깜짝 놀라 하마트면 숟갈을 떨굴번 하였다. 장군님앞에 다문다문 당콩이 섞인 수수밥이 놓여있기때문이였다. 자기눈을 의심하고 다시한번 건너다보았으나 분명 수수밥이였다.

자기앞에 놓인 놋주발뚜껑을 여니 역시 당콩 불개를 안친 수수밥이였다.

시래기된장국, 열무김치, 장아찌와 건뎅이젓 이것이 상에 차린 음식의 전부였다.

평범한 농군의 밥상과 다른것이 하나도 없었다. 논고장에서 사는 김제원이도 수수밥은 먹지 않았다.

우리 농군들에게 땅을 나누어주신 장군님께서 흰쌀이 모자라 수수밥을 드신단 말인가. 도저히 생각조차 할수 없는 일이였다. 재령에 돌아가 로친네와 마을농군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여도 곧이들을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것이다.

장군님의 밥그릇에는 오목하게 패인 숟갈자리가 있는것으로 보아 당초에 그가 생각했던대로 진지를 드시다 나온것이 분명하였다.

숟갈을 쥔 김제원의 손이 가볍게 떨리였다.

《장군님, 어찌 수수밥을 드십니까?》

아프고 죄송스러운 마음에 모지름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문득 튀여나온 말이였다.

그이께서 수수밥주발을 묵묵히 내려다보시였다. 재령농민으로부터 한마디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받으셨는지 몰랐다.

지금 나라의 쌀독에는 보리와 밀, 수수, 조 같은 올해의 조기작물들이 밑창에 조금 깔려있었다. 그것을 바가지로 박박 긁어서 이번 10월배급을 가까스로 로동자, 사무원들에게 풀었다. 장군님께서도 수수와 밀, 조를 타시였다.

황해도를 비롯한 북조선의 여러 농촌벌들에 례년에 없는 만풍년이 들어 벼가을을 하고 탈곡도 끝내서 집집마다 벼가마니를 실어들이고 곳곳에 농업현물세창고가 일어서고있지만 아직 만기작물 현물세징수사업에 대한 총화가 완료되지 못하였다.

아무튼 지금 나라는 식량난의 마지막 어려운 고개를 넘어서고있다고 말할수 있었다.

11월부터는 햇쌀공급을 하게 될것이다. 나라의 쌀독에 이제 얼마만한 량곡이 채워질지 아직 정확히 계량할수 없으나 토지개혁의 덕으로 농민들도 살아나고 나라도 허리를 펴게 되였음은 틀림없었다.

이해에 북조선의 방방곡곡 거의 어디에서나 다 례외없이 대풍이 든것은 결코 하늘의 조화가 가져다준 우연적인 행운이 아니였다. 나라에서 매 농가마다에 비료를 푼푼히 대준데다 땅을 받은 농민들의 지성이 고여져서 얻어진 필연적인 귀결이였다.

논밭에 뿌려진 비료에는 장군님의 로고와 함께 배고픔을 이겨내며 필사적인 비료생산투쟁을 벌린 로동자들의 눈물겨운 애국의 피땀이 스며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이 비료생산때문에 지난해 12월 초순과 올해 4월 중순에 흥남비료공장에 가시여 암모니아가스냄새가 풍기는 류안직장, 류산직장 등 여러 생산직장들을 돌아보시며 군중토의도 붙여 그곳에서 기적이 일어나게 하시였다. 특히 올해 4월 흥남비료공장 로동자들앞에서 하신 그이의 연설 《새 조국건설에서 모두다 로동영웅이 되라》는 말그대로 북조선의 모든 로동자, 기술자들을 전대미문의 기적을 창조하는 로동영웅으로 변모시키고 농촌에 만풍년을 가져오게 한 사상정신의 영양소였다.

이해 봄 《정로》에는 흥남비료공장 로동자들이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농촌에 비료를 보내주기 위하여 콩깨묵으로 끼를 에우면서 공장을 복구하고 비료생산을 다그쳐 벌써 1945년말에 하루 80톤이상의 비료를 생산하였으며 토지개혁을 앞두고는 하루 350톤의 생산을 정상화하고있는 사실을 소개하였다.

그러나 비료공장로동자들도 10월 식량공급에서 강냉이, 조, 보리, 밀 같은 잡곡이 80프로이상이였다. 그것도 푼푼히 주지 못하였다.

그이께서 잡곡밥을 드시는 리유에는 참으로 한마디로 말할수 없는 깊은 내용이 있었으나 례사롭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원래 잡곡밥을 좋아합니다. 당콩을 섞어서 지은 수수밥은 맛도 구수하고 몸에도 좋습니다. 오늘 점심은 재령땅의 풍년소식을 들어서 더욱 밥맛이 납니다. 재령땅의 풍년소식을 들으면 로동자, 사무원들이 다 기뻐할겁니다. 래달에는 백미와 잡곡을 5 대 5로 푼푼히 공급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농민들이 큰일을 했습니다. 자, 듭시다.》

그이께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여오르는 장국을 한술 뜨시였다.

김제원은 국문이나 겨우 해득한 농군이였으나 궁냥이 넓고 리해력이 빨랐다. 그는 장군님께서 결코 수수밥이 식미에 맞아서 드신다고 생각지 않았다. 아직은 나라에 식량이 넉넉치 못하고 로동자, 사무원들에게 흰쌀배급을 주지 못하고있으니 자신께서도 수수밥을 드실것이다.

이 순간 김제원은 당장 돌아가서 여유곡 30가마니를 몽땅 나라에 바치리라 마음다지고있었다. 마을농민들에게도 장군님께서 수수밥을 드신다는 말을 전하면 가만히 있지 않을것이다.

(장군님께서 수수밥을 드시는데 그분의 덕으로 땅을 받은 농군이 고간에 흰쌀을 쌓아놓고 혼자서 배를 두드리며 먹는다면 그게 무슨 사람이겠는가.)

김제원은 수수밥을 한술 듬뿍 떠서 입에 넣었다. 그는 자기가 수수밥을 사양한다면 장군님께서 섭섭해하실것 같아 정말 제집처럼 장국물도 훌훌 마시고 열무김치며 장아찌, 건뎅이젓에 부지런히 저가락을 가져갔다.

장군님께서 장국물을 뜨시다가 문득 김제원에게 물으시였다.

《재령땅에 풍년이 들었지만 나쁜 땅을 가진 농민들도 있겠는데 그 사람들도 일년 먹을 농량은 나왔습니까?》

《예, 제가 받은 논이 재령에서는 제일 하등땅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많은 쌀이 나왔습니다. 장군님, 우리 재령농민들에 대해선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로인님이 왜 제일 나쁜 땅을 받았습니까. 년세도 많고 고생도 많이한분이겠는데 제일 하등땅을 주다니요. 거기 농촌위원회에서 일을 잘못한것 같습니다. 우리가 토지분여사업을 편중되는 일이 없게 하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농촌들이 더러 있습니다. 거기 토지분여위원회 책임자가 누구입니까?》

《장군님, 그런게 아니옵니다.》

김제원은 황급히 손을 저었다. 잘못하면 애매한 위원장이 욕을 먹을수 있어 그는 어쩌는수없이 자기에게 차례진 좋은 땅을 남에게 주고 스스로 나쁜 땅을 받은데 대해 사실 그대로 말씀올리였다. 제 자랑으로 되는것 같아 어디에 가서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던 김제원이였다.

《아, 그랬습니까?》

그이께서는 몹시 감동하신듯 숟갈을 쥐신채 새삼스레 김제원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시였다.

대대로 땅때문에 무서운 고생을 겪었고 피눈물을 흘려온 농민들이 자기의 운명이며 생명인 땅을 양보한다는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였다.

《좋은 땅을 남에게 주고 스스로 나쁜 땅을 받았단 말이지요? 로인님은 정말 훌륭합니다. 애국자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자기의 살과 피 같은 땅을 남에게 양보하는 그의 인간성에서 진정 서로 돕고 힘을 합쳐 나라를 받들려는 깊은 애국심을 보시였다. 인간성은 바로 애국심의 기초인것이다.

이때 웃방에서 전화종소리가 울리였다.

장군님께서 수저를 놓고 웃방으로 올라가시였다.

전화를 받으시는 그이의 목소리가 김제원의 귀전에 뚜렷이 울려왔다.

《…평양시 목사들이 산하 교인들을 이번 선거에 참가시킬수 없다고 정식으로 의사를 발표했단 말이지요. 강량욱선생이랑 안신호녀사랑 찾아가서 아무리 설복해도 요지부동이라? 그날이 안식일이기때문에?… 예수의 계시문이라는걸 가지고있단 말이요?… 잡아가두다니, 그러면 안되오. 우리가 민족력사에서 처음으로 민주선거를 하면서 사람을 잡아가둘내기를 하면 되겠소. 목사들이 나쁜게 아닙니다.… 뒤에서 반동들이 작간하고있습니다. 알겠소, 김책동무한테 말해서 래일이나 모래 목사들을 찾아가보라고 하겠소. 놀랄건 없소, 다 제대로 될게요.》

(예수쟁이들이 선거를 파탄시키려는 모양이구나, 천하 못된것들.)

김제원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부르쥐였다. 그가 어렸을 때 머슴살이를 한 지주집령감이 바로 하느님을 믿는 례배당 장로였다. 《자비》와 《박애》를 설교하는 그 지주가 바로 김제원을 외양간에서 소와 함께 살게 했었다. 그때문에 그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장군님께서 전화를 다 거시고 아래방에 내려와 진지를 드시는데 또 전화종소리가 울리였다.

(정말 장군님께서 바쁘시구나!)

문득 김제원은 아까 보초소에서 하던 군인들의 말이 상기되였다.

눈치없이 오래 앉아있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그는 서둘러 장국을 다 비우고는 수저를 놓았다.

《왜 수저를 놓습니까? 국을 더 가져오게 할테니 주발의 밥을 다 드십시오.》

《아니올시다. 제 배불리 먹었습니다. 실은 기차칸에서 군음식질을 좀 했습니다.》

손님을 위해 일부러 천천히 밥을 뜨시던 장군님께서도 국사발을 비우시고 수저를 놓으시였다.

김제원은 벙거지를 들고 잠시 머밋머밋하다가 일어섰다.

《장군님, 제 이젠 돌아가겠습니다.》

《돌아가시다니요. 오늘 밤은 우리 집에서 쉬고 래일 평양구경이랑 하고 가십시오.》

오후일정이 바쁘신 그이께서는 밤시간을 리용하여 김제원로인의 살아온 경력과 재령농민들의 생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들어보실 생각이시였다.

《장군님! 제 당장 돌아가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저는 이제 죽어도 한이 없소이다. 장군님을 만나뵙고 겸상을 해서 점심까지 먹었으니… 장군님! 우리 백성들을 위해서 부디 옥체건강하십시오.》

김제원은 깊숙이 허리를 굽혀 작별인사를 올리였다.

《그런데 이제 나가면 황해도쪽으로 내려가는 기차가 있는가요?》

《예, 아까 역무원에게 물어봤습니다. 낮 3시께 있다고 했습니다.》

3시라면 지금쯤 차비하고 역으로 나가야 했다. 그러나 아직 렬차운행이 정상화되지 못하여 려객차들이 시간표에 맞춰서 다니는 경우가 그리 많지 못하였다.

《가시겠다니 할수 없구만요. 돌아가면 재령농민들에게 인사를 전해주십시오. 래년에는 농사를 더 잘 지어봅시다. 농민들은 농사를 잘 짓는것이 건국을 돕는 일입니다.》

《장군님, 명심하겠습니다.》

《같이 나갑시다.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 평양백화점구경이라도 하고 가십시오.》

원래 장군님의 오후일정은 평양백화점을 시찰하시고 오후 4시부터 로동자, 기술자, 사무원들의 식량공급규정과 평균로임계산규정을 제정하기 위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를 지도하시도록 짜있었다.

평양국영백화점은 지난 7월 우리 나라에서 제일 처음 생겨난 첫 국영백화점이였다. 이 백화점에 진렬된 모든 상품들은 거의다 해방후에 복구한 우리 나라 공장들에서 우리 로동계급이 만들어낸것들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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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장군님께서는 이것을 김제원농민에게 보여주고싶으시였다.

《로인님, 자 갑시다.》

장군님께서는 웃방으로 올라가 회색가을외투에 중절모를 쓰시고 복도로 나가시였다.

복도창문으로 비쳐드는 해빛이 벙거지를 들고 그이를 따라가는 김제원농민의 전신을 어루만지듯 쓸어주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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