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번영의 시대 제57회 > 통일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통일게시판

장편소설 번영의 시대 제57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713회 작성일 19-11-25 02:39

본문

image

제 11 장

9

 

최고인민회의 제2차회의는 경사로운 명절행사처럼 즐거운 분위기속에서 진행되고있었다. 이 회의에서 1948년도인민경제발전계획을 빛나게 총화하고 보다 큰 희망과 행복을 약속해주는 새 2개년인민경제발전계획을 발표하였으니 회의장이 명절처럼 흥성거리였다.

회의 마지막날 중간휴식시간에 장군님께서는 휴계실의자에 앉으시며 간부들에게도 자리를 권하시고 황해도 김제원농민을 불러오라고 이르시였다.

간부들이 장군님의 옆에 김제원이 앉을 자리를 틔여놓고 빙 둘러앉았다.

장군님께서 좌중을 둘러보며 말씀하시였다.

《이제 회의장에서도 강조하겠지만 지금부터 각 성들에서 준비할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언고 하면 8. 15해방 4돐기념 종합전람회 준비사업입니다. 올해에는 좀 크게 하자는겁니다.》

지난 시기에도 북조선에서는 해마다 8. 15해방일을 계기로 하여 전국적규모의 종합전람회를 조직하군 했었다.

1946년 해방 1돐때에는 변변한 장소가 없어 몇개 학교교실을 빌려서 《민주전람회》의 이름으로 전시회를 가졌다. 그리고 다음해에는 중구역에 있던 평양교원대학 마당에 가설건물을 크게 짓고 북조선의 건설을 자랑하는 전람회를 가졌다. 1948년에는 광성중학교 운동장에 굴식의 특이한 목조건물을 짓고 전람회를 특색있게 하여 인민들속에서 큰 반향이 일어나게 하였다.

전람회를 보고나온 사람들마다 모두 대단하다고 혀를 찼다.

장군님께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8. 15해방 4돐기념 종합전람회는 지난 시기보다 몇십배 더 크게 대규모적으로 하자는겁니다. 모형물을 하나 만들어도 크게 만들어 현실감이 나게 해야 합니다. 가령 흥남비료공장모형이라면 비료가 생산되여 나오는 과정을 직접 볼수 있게 하자는겁니다. 그러니 부지를 넓게 잡아야 합니다. 내 생각엔 대동교건너 선교동쪽에 부지를 잡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큰 공장을 짓는것에 못지 않게 자금도 들이고 품도 들입시다.》

이때 회색고급모직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기름을 발라 머리를 맵시있게 빗어넘긴 멋쟁이령감이 휴계실로 들어서는 바람에 그이의 말씀이 중단되였다. 모든 간부들의 시선이 그 로인에게로 쏠리였다. 멋쟁이령감은 장군님앞으로 곧추 걸어가 깊숙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리였다.

《장군님! 그새 옥체건강하옵니까?》

《예, 나는 건강합니다. 이렇게 또 만나니 반갑습니다. 대학에 가있는 딸도 공부를 잘합니까? 어서 여기 앉으십시오.》

장군님께서 황송한 몸가짐을 하고 엉거주춤 서있는 로인을 옆자리에 앉히시였다.

《예, 저의 집안은 다 무고합니다.》

로인은 두손을 무릎우에 포개고 앉아 정중히 대답을 올리였다.

《집안이 다 무고하면 됐습니다. 그런데 그새 로인님이 아주 멋쟁이가 됐습니다. 아까 회의장에서 내려다보고 처음엔 김제원농민인줄을 몰랐습니다. 로인님이 이렇게 넥타이에 양복을 쭉 빼입고 와있을줄은 몰랐지요, 허허허…》

멋쟁이령감이 바로 김제원이였다. 그가 갑자기 멋쟁이가 됐기때문에 장군님께서 좀 의아하게 생각되여 부르신것이였다.

김제원은 살거죽이 온통 터갈린 갈퀴같은 손으로 뒤덜미를 만지면서 안절부절하였다.

그는 집에서 떠나올 때 군간부들의 강권에 못이겨 고급모직외투에 중절모를 쓰고 갈구리손잡이가 달린 멋진 참나무단장까지 짚고 차에 올랐었다. 평생 무명바지저고리를 입고 다니던 농군이 양복차림을 하니 몸에 붙지도 않고 거북스러워 본래대로 무명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를 입었으면 좋겠다고 하였으나 간부들이 두말을 못하게 하였다.

《아바이, 이젠 아바이가 온 나라 인민이 다 알고있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라는걸 생각해야 합니다. 이젠 막농군처럼 처신해선 안됩니다. 바깥에 나다닐 때에는 의관을 정제하고 걸음걸이도 점찮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단장까지 만들어드렸는데 무명바지저고리를 입고 회의에 참석하겠다는게 무슨 소립니까. 이제 보십시오. 아바이가 이렇게 쭉 빼고 나선걸 장군님께서 보시면 기뻐하실겝니다.》

김제원은 장군님께서 기뻐하신다는 말에 군에서 해준 웃을 그대로 입고왔었다.

《양복천이 아주 좋습니다. 양복점에서 해입었습니까?》

장군님께서 김제원의 옷을 만져보시였다.

《예, 군의 간부들이 양복점에 가서 몸을 재라고 해서 옷은 좋은데 몸에 붙지 않고 거북스러운걸 입고왔습니다.》

김제원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짓고나서 양복차림을 하고 오게 된 전말사연을 말씀올리였다.

《그러니 군간부들의 강권에 못이겨 울며 겨자먹기로 입고왔구만요, 허허허… 그렇게 모직양복을 빼입고 나서니 동네농민들은 좋아하던가요?》

《옷이 날개라고… 보기가 좋다고 하면서도 서먹서먹해하는것 같았습니다. 여보게, 제원이! 하던 사람도 그랬는가요? 하고 옙을 쓰면서… 저도 그 사람들을 보기가 점직하고 민망스러워서

김제원은 옷차림으로 하여 받아안은 심리적인 불안감을 표현할길이 없어 뒤말을 잇지 못하였다.

《내 생각에는 누가 뭐라고 하든 옷차림도 걸음걸이도 본래대로 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그게 김제원로인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장군님께서 터갈린 김제원의 손을 따뜻이 잡아쥐며 웃으시였다.

《옷차림을 본래대로 해도 된다면 저는 정말 큰 시름을 놓겠습니다.》

김제원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본래대로 합시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기때문에 옷차림과 걸음걸이를 달리해야 된다는데 나는 반대로 대의원이기때문에 옷차림과 걸음걸이를 본래대로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의원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인민의 대표자입니다. 그러니 동네농민들과 모습이 달라지면 안됩니다. 또 김제원농민이 달라질수도 없습니다.》

장군님께서 안락의자팔걸이대를 짚으며 일어나시였다. 휴식시간이 거의 다 지나간것이다.

김제원이도 황급히 일어섰다.

장군님과 김제원로인의 대화를 듣고있던 휴계실안의 모든 간부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로인님, 회의장으로 갑시다. 시간이 다 됐습니다.》

장군님께서는 휴계실출입문을 향해 걸어가시면서 홍명희부수상에게 8. 15해방 4돐기념 종합전람회를 본때있게 조직해보자고 다시금 이르시였다.

《전람관이 그대로 나라의 립체축도판이 되게 합시다. 그래서 전국인민들이 번영부흥하는 조국의 모습을 한눈에 볼수 있게 합시다. 종합전람관 꾸리는 사업을 아무래도 홍명희선생이 맡아서 해야 할것 같습니다.》

홍명희는 자못 어깨가 무거워졌다. 아직 집안의 문짝 하나도 손질해본적이 없는 자기가 과연 국가적인 대규모종합전람관을 맡아낼수 있겠는가 하는 걱정이 생겼다.

회의는 계속되였다.

회의집행자가 연단에 나왔다.

《이제부터 영명하신 지도자 김일성장군님께서 본회의에 대한 연설을 하시겠습니다.》

회의장에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가 울리였다.

연단에 오르신 장군님께서는 뜨거운 눈길로 수백명 대원들을 둘러보시였다. 그들의 절반이상이 지난날 지주집 부엌대기와 머슴, 부자집 아이보개와 몸종, 소작살이와 고용로동으로 인간이하의 천대를 받던 사람들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연설서두에서 1948년인민경제계획에 대한 총화를 하고 인민경제발전 2개년계획을 심의한 최고인민회의 제2차회의의 의의와 성과에 대해서 언급하시였다.

1948년인민경제계획이 완수됨으로써 1947년도에 비해 공업생산이 50. 6프로나 높아졌으며 강서전기기계제작소, 평양기계제작소, 남포판유리공장이 새로 건설되고 평양화학공장을 비롯한 많은 공장들이 완전복구되였거나 개건확장되였다.

그이께서는 3년작업량을 석달에 해제낀 수풍발전소 에프론개건공사와 양덕-천성, 개고-고인 전기철도공사 등 전대미문의 기적물이 수없이 창조되였다고 하시면서 계획수행과정에 모범을 보인 로동자, 농민, 기술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시며 높이 치하하시였다.

이어서 2개년인민경제발전계획의 중요한 의의에 대하여 강조하신 장군님께서 초보적인 성과에 자만하지 말고 더 빠르게 전진하고 힘있게 달려나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아가는 조선인민은 반드시 승리하고야말것이라 하시자 전원이 일어나서 만세의 환호성과 박수갈채를 올리였다.

이날 회의를 마치면서 집행부에서는 2월 하순에 김일성장군님을 모시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대표단이 쏘련을 방문하게 된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회의장에는 감격의 폭풍이 일어났다.

이것은 해방후 우리 나라가 처음으로 당당한 독립국가의 외교권을 가지고 가게 되는 자주독립국가수반의 첫 공식적외국방문이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최고인민회의 제2차회의가 있은 때로부터 20여일이 지난 2월 하순에 정부대표단을 인솔하고 쏘련방문의 길에 오르시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