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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시대 제5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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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893회 작성일 19-11-23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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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장

5

 

1948년 10월 31일이였다. 저녁이면 음산한 바람이 불어 가로수밑으로 누렇게 시든 가랑잎들이 굴러다니고 화단의 꽃들은 이울어 볼상없이 되여갔다. 먼산에 불타던 단풍도 사위여가는 불더미처럼 재빛으로 변색되여가고있었다.

조락의 계절이 다가오고있는것이다. 허나 변함없이 약동하고 생의 활력으로 충만되여있는것은 평양거리였다.

거리의 인도들로 퇴근길에 오른 로동자, 사무원들이 물결처럼 흘러갔다. 사람들이 제일 붐비는 저녁퇴근시간에 중성동쪽으로 뻗은 대동교십자거리로 승용차 한대가 서서히 미끄러져갔다.

요즘 평양거리에서 가끔 보이군 하는 그 이채로운 승용차안에는 내각 무임소상 리극로와 그의 안해 김공순이 앉아있었다. 그들 부부는 이 저녁 김일성장군님의 석찬초청을 받고 가는 길이였다.

그들은 장군님의 분에 넘치는 은정에 감격하고 황송하여 집을 나설 때부터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고있었다.

남조선에서 건민회 위원장사업을 하던 리극로가 남북련석회의 차로 평양에 온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그 반년동안 북조선의 거창한 민주건설의 모습과 인민들의 행복한 생활상을 보고 얼마나 감동했으랴. 10월 한달만 하여도 북조선에서는 격동적인 변혁이 일어났다.

양덕-천성, 개고-고인사이의 전기철도건설을 시작할데 대한 10월 7일 내각 제5차전원회의 결정을 받들고 산업성 전기처와 교통성산하의 로동자, 기술자들이 작업도구를 둘러메고 현장으로 달려나갔다. 나라에서는 여기에 무려 1억 5천만원의 공사비를 지출하도록 예산을 세웠다. 리극로는 이 막대한 자금예산에서 북조선경제의 잠재력을 보았다.

이번에 하게 되는 철도전기화공사는 60도의 급경사진 산발을 타고다니면서 200리 로반에 전주를 운반하고 전선을 늘여놓아야 하는 난공사라고 할수 있었다.

리극로가 정확히 기억하고있건대 일제는 해방전에 그와 거의 같은 거리인 북계-고산간의 철도를 전기화하는데 3년 4개월이 걸리였다. 그런데 전기철도건설자들은 양덕-천성, 개고-고인간공사를 금년전으로 완공하여 1949년 새해첫날부터 개통하도록 하겠다는 맹세문을 장군님께 올리였다. 말하자면 석달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공사를 끝내겠다는것이다.

범경제전문가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것이지만 그네들은 빈말을 하지 않는 로동계급이였다. 이달 10월에 시작된 하나의 방대한 공사는 방직공장건설이였다. 10월 10일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김일성종합대학 새 교사 준공식에서 축하연설을 하시고 이어서 김정숙녀사와 함께 진펄길에 신발을 적시며 방직공장건설터전을 친히 잡아주시고 방추 3만추에 기계 3천대의 대규모공장건설을 2개년계획기간에 완성할데 대한 계획안을 세워주시였다.

3만추이면 인구 1인당 3메터의 천이 차례진다.

경제전문가들은 1944년 우리 나라 천생산량은 137만메터로서 인구 한사람당 14센치메터밖에 차례지지 않았다고 말하고있다. 그러나 리극로의 계산에 의하면 14센치메터가 아니라 정확히 4센치 5미리메터밖에 되지 않았다. 리극로자신도 나이 열대여섯살되는 더꺼머리총각때까지는 겨우 험한 살이나 가리운 꿰진 홑잠뱅이를 입고다녔다.

해방후 3년사이에 북조선에서는 이미 직조공업을 대대적으로 발전시켜 지금은 한개 화학공장(평양방직공장)에서 생산되는 천만으로도 전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일년에 옷 한벌씩 해입힐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되였다. 하지만 아직 산골농민들속에는 잠뱅이를 입고다니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장군님께서는 3만추에 3천기대규모의 현대방직공장건설을 끝내 계획에 물리고 내미시는것이였다.

북조선의 방방곡곡에서는 공화국의 창건을 로력적성과로 빛내일데 대한 궐기모임을 가지고 생산적앙양을 일으켜 평양곡산공장, 사동탄광을 비롯하여 25개의 큰 공장, 기업소들에서 벌써 년간계획을 완수하였다.

이달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당당한 자주독립국가의 자격을 가지고 다른 나라들과의 첫 대사관계를 맺은 력사적인 달이기도 하였다.

우리 인민은 이제 비로소 독립국가의 외교권을 당당히 행사하는 자랑스러운 어머니조국을 보게 된것이다.

다만 하나 리극로의 마음을 어둡히고있는것은 수풍발전소 에프론이였다.

(에프론공사는 어떻게 되고있는가?)

리극로는 지금 장군님께서 얼마나 걱정이 많으실가싶었다. 그런데도 자기네 부부를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여 저녁식사까지 마련해주시니 황공하고 송구스럽기 그지없었다.

어느덧 승용차는 저택근처에 이르렀다. 차를 타고 장군님의 저택으로 들어서는것은 심히 무엄한 일이라고 생각한 리극로는 승용차를 먼발치에 세우게 하고 부부가 나란히 걸어서 들어갔다.

한데 이 무슨 일인가. 장군님께서 마당에 나와 여태 자기네 부부를 기다리고계신것이 아닌가.

《장군님!》

리극로는 그이께로 급히 달려갔다. 힘껏 그이를 불렀으나 목이 꽉 잠기여 소리가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그들 부부의 인사를 따뜻이 받아주신 장군님께서는 차를 타지 않고 왜 걸어왔는가고 의아해하시였다.

《장군님, 차를 타고왔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제야 정문밖 먼발치에 세워둔 승용차를 띠여보고 리극로의 심정을 읽으신듯 웃으시였다.

《선생은 참 고정하십니다. 차를 십리밖에다 세워놓았군요, 허허허.》

그이께서는 부관을 불러 차를 마당안에 들여놓게 하시고 리극로부부를 방안으로 안내하시였다.

한쪽벽에 커다란 조선지도가 걸려있고 탁상과 의자, 초물방석 몇장이 방바닥에 놓여있을뿐 특별한 가구가 없는 깨끗하고 검소한 방이였다.

《정숙동무가 선생부부를 위해 저녁식사를 준비하였는데 별로 차린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제 집처럼 생각하고 많이 드셔야 하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이 방에서 좀 이야기를 하다가 저녁을 들자고 하시며 새로 이사한 집이 어떤가고 물으시였다.

《예, 집이 정말 좋습니다. 아들녀석도 건강해서 학교에 잘 다니고있고 저도 능력은 없는 사람이지만 나라의 중책을 맡고 마음껏 일하고있습니다. 제 평생에 이렇게 마음편히… 보람있게 살아보기는 처음입니다.》

《자, 앉읍시다.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장군님께서는 리극로부부를 초물방석에 자리를 권하시고 자신께서도 허물없이 마주 앉으시였다.

《선생한테 조선어문연구회를 맡기였는데 재미가 있습니까?》

《장군님, 그야 더 이를데가 있겠습니까.》

리극로의 목소리는 감격에 떨리였다. 그의 눈앞으로 지나간 인생길들이 마치 되돌려보는 영화의 필림처럼 연줄연줄 흘러갔다. 경제학으로부터 어학으로 키를 돌리던 일, 서울로 돌아와 《조선어학회》를 조직하였으나 경제난으로 하여 가산을 다 팔아먹어 나중에는 일생 간직하여야 할 결혼금반지까지 없애버리고 안해의 손에 투박한 구리반지를 끼워주던 일, 경제난에 허덕이던 어학회가 일제의 검거선풍에 휘말려 손톱, 발톱을 다 뽑히우며 옥살이를 하던 일, 출옥후 병든 몸으로도 어학회와 연무관을 비롯한 민족회들을 운영하기 위해 건민회를 조직하였으나 미제의 정치적탄압과 경제난으로 하여 어느 하루도 편한 생활을 해보지 못한 그 모든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눈물겹게 되새겨졌다. 피할래야 피할수없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정치적박해와 경제난이였다. 허나 이제는 북조선에 넘어오니 그 두가지 악마의 그림자가 다 사라지고 하고싶은 일을 마음껏 할수 있게 된것이다.

리극로는 감회가 깊어져 저도 모르게 자신의 소경사를 장군님께 두서없이 말씀올리였다.

묵묵히 앉아계시던 장군님께서 조용히 말씀을 떼시였다.

《선생이 늘 경제난으로 울었다고 하는데 나도 알고있습니다. 조선어학회를 운영하기 위해 가산을 다 없애고 나중엔 부인의 결혼금반지까지 팔아야 했으니 오죽 가슴이 아팠겠습니까. 이젠 자금걱정은 하지 말고 마음껏 어문을 연구하십시오. 사실 우리 말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의 언어보다도 우수합니다. 선생도 아시겠지만 우리는 지금 문맹퇴치사업을 건국운동의 중요고리로 보고있습니다. 해방초에 장악해보니 북반부에만도 성인문맹자가 230만명이나 되였습니다. 그래 곳곳에 성인학교를 세워가지고 문맹퇴치사업을 한 결과 이제는 성인문맹자가 30만정도 남아있습니다. 200만을 퇴치했습니다.》

2~3년사이에 200만의 문맹자를 퇴치한것은 놀라운 일이였다.

리극로는 가슴이 벅차올라 흥분을 띤 어조로 장군님께 말씀올렸다.

《30만이 남았으면 이젠 문맹퇴치가 다된셈입니다.》

《아닙니다. 이 30만이 어렵습니다. 지금 남아있는 30만은 글을 배우려 하지 않는 로인들과 녀인들입니다. 나는 이런 문맹자들을 만나면 가끔 선생의 이야길 하군 합니다. 일제의 탄압속에서도 우리 글을 보급하기 위해 투쟁하다 감옥살이를 한 애국자들이 있는데 마음껏 글을 배울수 있는 이 좋은 세상에서 왜 글을 배우지 않겠는가, 모두가 글을 배워야 나라가 부강해진다, 또 제 나라 글도 몰라서야 어찌 사람값에 들겠는가, 우리 글을 보급하다 감옥살이를 하고 감옥에서 죽은 애국자들을 생각해서라도 글을 배워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8월 리계산이라는 강원도 녀성농민이 토지개혁의 덕으로 제땅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하면서 낟알을 가지고 나를 찾아온 일이 있습니다. 알아보니 그 녀인도 글을 몰랐습니다. 그래 만년필을 주면서 글을 배워가지고 자필로 나에게 편지를 하라고 했더니 약속대로 편지를 써보냈습니다. 우리는 리계산운동을 벌려 이제부터 한 네댓달사이에 고령의 로인들과 학령전어린이들을 제외하고는 글 모르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게 하자고 합니다.》

(아, 그렇게 되면 우리 나라가 세계최초의 문맹자가 없는 나라로 되겠구나! 과시 장군님은 애국자이시다, 절세의 애국자이시다.)

리극로는 격정에 설레이는 가슴을 진정할수 없었다.

《그전에 우리 어머니도 무송에서 부녀회사업을 시작하실 때 녀인들에게 우리 글을 배워주는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우리 아버님도 무송에서 활동하시면서 조선어린이들에게 우리 글을 배워주기 위하여 백산학교 재개교를 발기하고 그 인가를 받기 위해 애쓰셨습니다. 인가를 받은 다음에는 백산학교의 명예교장으로 사업하셨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다음에는 우리 어머님이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그 학교를 운영하기 위하여 별의별 고생을 다 하셨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가슴아픈 추억을 더듬으시는듯 흐려진 안색으로 얼마간 묵묵히 계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벽에 걸어놓은 조선지도에 눈길을 돌리시였다. 이 나라의 애국자들이 언땅에서 초근목피로 끼를 에우며 피흘려 싸울 때 그려본것이 무엇이였겠는가? 그것은 만백성이 다 잘사는 독립된 하나의 조선이였지 둘로 갈라진 조선은 아니였다. 그런데 해방이 된지 3년이 돼오도록 나라는 갈라져있고 조선인구의 절반은 왜정때보다 더 혹독한 생활고를 겪고있는것이다.

《우리가 산에서 싸울 때 늘 눈앞에 그려본것은 산좋고 물맑은 이 땅에 압박과 착취없는 새 사회를 건설하고 풍만한 자원을 우리 힘으로 개발하여 모든 인민들이 의식주와 학교, 병원걱정없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상천국이였습니다.》

《장군님께선 벌써 그러한 천국을 북조선에 세워놓으셨습니다. 지금 서울바닥엔 거지와 방랑고아들이 욱실거리지만 평양에선 단 한명의 거지도 볼수 없습니다. 지난날 마소처럼 천대받던 로동자, 농민들이 나라의 주인이 되고 국사를 의논하는 대의원이 된 세상, 이것이 지상천국이지 다른게 지상천국이겠습니까?》

리극로는 흥분하여 북조선의 인민시책을 찬탄하였으나 장군님께서는 정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시였다. 《아닙니다. 지상천국이 되자면 아직 멀고멀었습니다. 기형화된 식민지경제에서 우리는 아직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 인민들이 고생합니다. 선생도 아시는것처럼 수풍발전소 에프론이 파손되여 지금 위험지경에 이르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다 병들대로 병들었던 식민지경제의 후유증입니다.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절대로 만족하거나 조그마한 성과에 도취해서는 안됩니다.》

리극로는 그제야 수풍발전소 언제에프론을 상기하였다.

《장군님, 정말 지금 수풍에선 어떻거구 있습니까?》

《너무 걱정할건 없습니다. 이제 대책이 세워질겁니다. 수풍발전소 전체 종업원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장엔 수풍발전소가 새겨져있다, 전기생산이 중단되면 모든 산업이 다 중단된다, 전기를 생산하면서 에프론을 더 좋게 만년기초가 되게 만들자! 하고 떨쳐일어났습니다. 수풍의 전기는 절대로 멎지 않습니다. 나는 그것을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장군님의 고무적인 말씀에 리극로는 힘이 생겨났다.

이때 수수한 무명치마저고리에 행주치마를 두르신 김정숙녀사께서 밝은 웃음을 짓고 방안으로 들어오시였다.

《장군님, 이젠 식사를 하시지 않겠습니까?》

장군님께서 시계를 들여다보시였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는가? 정숙동무, 그럼 그걸 가져오시오. 그걸 먼저 드리구 식사합시다.》

《예, 가져오겠습니다.》

녀사께서 선뜻 대답을 올리고 되짚어 아래방으로 내려가시였다. 리극로는 장군님께서 가져오라고 하신 물건이 무엇인지 자못 궁금하였다.

장군님께서 리극로를 정겹게 돌아보며 조용히 물으시였다.

《선생이 조직한 남조선건민회성원이 2만 5천여명이나 된다지요?》

《예, 그쯤 됩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남조선에 있을 때 고리타분한 오합지졸이라고 흉보고 비웃었습니다.》

리극로는 서글픈 웃음을 지었다.

《오합지졸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선생이 조직한 건민회는 어학회, 한글문화보급회, 연무관 씨름협회 같은 비정치단체들로 구성되여있는것만큼 합법적활동을 할수 있습니다. 남조선에서 지금의 조건에서는 건민회와 같은 합법적조직을 통하여 군중을 조직하여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위한 사업을 하는것이 좋습니다.》

장군님께서 일어나서 조선지도앞으로 걸어가시였다. 리극로부부도 정중한 몸가짐을 하고 일어섰다. 그이께서는 생각깊은 표정으로 38도선이남지역을 오래도록 훑어보시였다.

《공화국의 내각을 구성할 때 김책동무를 비롯한 여러 동무들이 경제박사인 선생에게 산업상의 중임을 맡기자고 제기하였지만 나는 선생을 무임소상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그것은 무임소상의 직책을 가지면 선생이 남조선인민들을 조국통일의 기치하에 묶어세우기 위한 사업을 더 잘할수 있다고 생각하였기때문입니다. 그러고보면 선생은 무임소상이 아니라 조국통일을 담당한 상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

리극로는 반사적으로 온몸을 떨었다. 불현듯 전신의 혈맥으로 뜨거운 피가 줄달음치는듯 했다.

(장군님의 이 깊은 뜻을 나는 여태 모르고있었구나!) 리극로는 안해를 돌아보았다.

젊은 시절엔 미모의 녀성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끈 안해의 흰 이마우에서 은실같은 한오리 흰 머리카락이 유난스레 반뜩거리였다. 가는 실주름이 잡힌 눈귀에 한방울의 눈물이 맺혀있었다.

김정숙녀사께서 주먹만 한 정방형의 나무곽을 들고 들어오시였다. 반들반들 윤기도는 푸른빛나무곽이였다. 나무곽을 받으신 장군님께서 뚜껑을 여시였다. 불현듯 빛발치는 금빛광채에 리극로는 두눈을 껌뻑거리였다.

장군님께서 금반지를 손에 들고계시였다.

《리극로선생, 부인의 손에서 구리가락지를 빼내십시오.》

리극로는 장군님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 알고있었다. 심장이 뛰놀고 다리가 휘친거린다. 어딘가 무한히 높은 곳에서 장군님의 음성이 울려오는듯 했다.

《선생은 일제시기 늘 경제난으로 울었다는데 부인의 손에서 결혼금반지를 빼서 낯선 사람에게 팔아버린 그날이야말로 누구도 보지 않는 곳에서 통곡했을것입니다.》

오열하는 안해의 흐느낌소리를 듣고있는 리극로의 눈앞에도 시뿌연 안개가 어리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장군님의 목소리가 그의 가슴을 울려주고있었다.

《이 금반지는 선생과 부인을 위해 준비한 금반지입니다. 성의로 알고 선생의 손으로 부인에게 끼워주십시오.》

김공순은 드디여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무릎을 꺾으며 주저앉았다. 리극로는 몇걸음 비칠거리다가 벽에 걸어놓은 조선지도에 손을 짚었다. 손톱이 다 빠져버린 그의 상처많은 손가락들이 지난날 눈물속에 헤매이던 경기도지역을 짓누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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