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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도에는 오늘도 선생님이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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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1,670회 작성일 19-12-24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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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도에는 오늘도 선생님이 계신다

 

공화국의 서해바다의 물결을 헤가르며 기세좋게 달리는 배머리에 서서 저멀리 수평선에 눈길을 주고있는 한 처녀의 모습이 유표하게 눈에 띄운다.

2시간 남짓이 배길로 달려서야 2개의 거뭇한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륙지와 멀리 떨어져있는 섬인 자매도이다.

(저 섬에서는 과연 어떤 생활이 나를 기다리고있을가?)

이 처녀가 바로 남포시에서 교원생활을 하다가 자원하여 자매도분교의 교원으로 배치된 20살이 갓 지난 전복순녀성이였다.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수십여년전 8월의 어느날이였다.


 


비록 몇세대가 살고있는 한적한 섬일지라도 전복순녀성에게 있어서는 보람차고 행복한 섬생활이였다.

학년이 서로 다른 몇명의 학생들에 대한 수업을 마치고는 그들과 한데 어울려 탁구도 치고 바다물에 뛰여들어 수영도 하였다. 명랑한 처녀교원의 가슴속에 어떤 꿈과 포부가 자리잡고있는지 그때까지는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그것은 단 한명의 학생을 위해서도 분교를 세워주고 교원을 보내주는 고마운 조국, 외진 산골마을의 학생들을 위해 통학뻐스, 통학렬차가 달리게 해주고 직승기까지 날게 해주는 이 좋은 제도를 위해 한생을 빛나게 살려는 이름없는 한 처녀의 심장의 맹세였다.

그 맹세를 지키는 일은 결코 헐치 않았다.

섬에는 선천적인 기능부전으로 말도 제대로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어린이가 있었다. 그의 부모들도 손맥을 놓고 나앉은 상태였다.

전복순녀성은 그 애의 부모들을 찾아가 분교의 학생으로 받아들일 자기의 결심을 터놓았다.

그 나날에 무슨 일인들 없었으랴. 그 학생이 제손으로 또박또박 《우리 나라》라고 쓰고 류창하게 읽었을 때 그의 눈가에서는 맑고 뜨거운것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날과 달이 흘렀다. 비가 오고 눈이 오고 풍랑세차도 변함없이 울리는 섬마을의 수업종소리와 더불어 학생들은 몸도 마음도 몰라보게 자라났다. 등대초소주변에 나무도 심고 등대의 유리도 닦으면서 아이들은 조국의 고마움을 새겨안고 희망의 나래를 더욱 활짝 펼쳤다.

한해, 두해 해가 바뀔수록 섬사람들에게는 걱정거리가 생겼다. 처녀교원이 학생들에게 정이 푹 들어 혼기를 놓치는줄도 모르고있는것이였다.

부모들로부터 이제는 섬생활을 그만두고 본교로 돌아와 가정을 이루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는 편지가 한달이 멀다하게 섬으로 날아왔다. 그러나 전복순녀성은 그들을 기쁘게 해줄 회답편지를 보낼수가 없었다.

얼마후 외진 섬분교에서 후대교육에 순결한 량심을 바쳐가고있는 전복순녀성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실리고 많은 독자들속에서는 축하의 편지들이 날아왔다.

어느날 편지대신 름름한 청년이 섬에 찾아왔다. 섬에 닻을 내릴 결심이니 일생을 같이하자는 그 진정이 처녀교원의 심장을 움직이였다.

전복순녀성은 만사람의 축복속에 그 청년과 한가정을 이루었다.

생활은 흘러 전복순녀성도 어느덧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였다. 그는 교육자로서, 어머니로서 누구보다 바삐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녀교원을 섬사람들이 더욱 극진히 위해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뭍에 나갔던 전복순녀성이 한 어린 처녀애의 손목을 잡고 배에서 내리였다.

그가 부모잃은 처녀애를 데려다 키우기로 결심했다는것을 알게 된 섬의 늙은이는 말없이 눈굽을 훔치였다.

《선생님은 할 일도 많을텐데 그 애를 내게 맡기는게 어떻습니까? …》

전복순녀성은 웃으며 대답하였다.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 어찌 고생이겠습니까. 전 기쁩니다. 우리 분교에 또 한 학생이 늘어나서말입니다.》

10년, 20년, 30년, 섬생활은 이렇게 거침없이 지나갔다. 한 녀성의 청춘시절과 한생이 외진 섬분교의 교단에서 흘러갔다.

그가 쉰고개를 넘어서자 형제들의 《공세》는 또다시 시작되였다. 그동안 섬에서 해놓은 일도 많으니 이제는 뭍에 나와 함께 살자는것이였다. 편지들이 연방 날아들었다.

전복순녀성은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었다.

《저는 아직 한 일도 없는 저를 공훈교원으로 내세워준 조국의 믿음과 사랑에 보답하지 못했어요. 한생을 섬의 아이들을 위해 바치겠어요.》

전복순녀성은 끝내 자기의 결심을 굽히지 않았고 등대장이 된 남편의 방조속에 교육사업에 지혜와 열정을 다 바치였다.

처녀시절부터 머리에 흰서리가 내린 오늘까지 그가 소학교를 졸업시킨 제자들은 무려 20여명이다. 그들가운데 3명은 부모들의 뒤를 이어 현재 섬에서 등대원으로 생활하고있다.

륙지와 멀리 떨어진 외진 섬에서 흘러간 성실한 한 교육자의 삶을 값높이 빛내준것은 어머니조국의 따사로운 품이였다.

전복순녀성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존함을 모신 시계표창을 받은데 이어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원수님을 모시고 사랑의 기념사진을 찍는 최상의 영광을 지니였다.

(우리 아이들을 제일로 사랑하시던 위대한 수령님들과 꼭같으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그 사랑을 전해가는 한줄기 빛이 되리라.)

오늘도 섬마을의 아이들을 위하여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바쳐가고있는 전복순녀성, 이런 애국자들이 있어 공화국에는 외진 섬에서도 아이들의 글읽는 소리 랑랑히 울려퍼지고있다.


 

본사기자             조선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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