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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조선의 힘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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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422회 작성일 20-01-0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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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군단장 최현은 박정덕에게 철원해방과 동시에 평강의 적비행장을 습격할것을 명령했다. 38°선 중부지대의 가장 큰 요충지인 철원은 물론 평강의 적비행장을 습격하는것은 자못 중요한 임무였다. 적들은 전선가까이 비행장을 하나 더 두고 공세를 강화할 목적으로 태평양전쟁말기 일제가 공사를 벌리다가 만 비행장을 다시 닦았다. 폭격기중대들이 날아들고 연유와 폭탄이 산더미처럼 쌓이고있었다. 괴뢰군 17련대의 한개 대대병력이 이 비행장을 경비하고있었다.

박정덕은 련합부대의 무력을 제2차 철원해방전투에 진입시키는 한편 일부 구분대들을 비행장습격을 위한 모의훈련에 동원시켰다. 비행장에는 공병시설물들이 조밀하게 설치되여있으므로 류현수의 공병별동대도 준비시켰다.

사실 박정덕은 만나자바람으로 현수에게 류다른 친근감을 느끼고있었다. 그가 용감하고 날파람있는 중대장이래서만이 아니다. 장군님께서 그를 친히 료해하시고 적구의 박정덕에게 파견해주셨던것이다.

박정덕은 비행장습격임무를 받자 먼저 류현수부터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를 불러 습격조들의 통로를 개설하는 공병보장임무를 주었다.

《모의훈련을 조직하오.》하고 박정덕은 말했다. 《동무네가 제때에 통로를 개설하지 못하면 일을 망칠수 있소. 그러니 정찰자료에 근거하여 면밀하게 준비해야겠소. 다시는 여기서 놈들의 비행기가 날아오르지 못하게 해야 하오!》

훈련이 시작되였다. 비행장주변과 비슷한 지형지물을 선택하였다. 시간은 하루밖에 없다. 그런데 공병별동대는 전문지식과 훈련이 부족한 전사들이 태반이였다. 각이한 소속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주영섭이 림시 지휘하던 구분대이다. 여기엔 한때 특이한 인연으로 현수와 운명을 같이하던 로지봉도 있었다.

 

로지봉은 추위를 참을수 없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잔등과 어깨는 물론 앞가슴, 허벅지까지 온통 젖어버렸다. 진눈까비가 목덜미를 후려쳤다. 그는 팔굽으로 짚으면서 개울바닥을 기여가고있었다. 질적한 물이 배허벅으로 스며들자 그는 진저리를 치면서 기침을 터쳤다. 그 순간 등뒤에서 날카로운 웨침소리가 날아왔다.

《그만! 제3조 일어섯!… 뒤로 돌아- 출발위치롯!》

중대장이다. 엊그제 만나자바람으로 얼싸안고 볼을 비비던 류현수이다. 지봉은 일어섰다. 누군가 투덜거렸다. 로지봉의 기침때문에, 그가 꾸무적거리며 로출되기때문에 벌써 여라문번이나 반복동작을 하고있다. 지봉은 현수와 눈길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로획한 미식소총을 둘러메고 지금껏 얼어든 몸을 끌면서 기여왔던 출발위치로 걸어갔다. 턱이 덜덜 떨렸다. 참을길 없는 오한에 잔등이 쩌개지는것 같았다. 그는 줄줄 물이 흐르는 군복상의를 자꾸만 아래로 쥐여당겼다. 그것이 말려올라가 잔등을 드러낸것만 같아 모지름을 쓰며 꽛꽛해진 군복을 잡아당기다가 돌연 멎어섰다. 눈앞에 현수가 있었다. 먼 북만에서 그를 살려준 사람, 병든 지봉이를 업고 수십리 진펄을 건너온 둘도 없는 은인… 지난밤에도 화토불을 마주하고 앉아 지봉의 고향소식이며 젊은 안해 순금이에 대해 물었었다. 밤을 새워도 끝이 나지 않을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그가 말했었다.

《춥지?… 우리 옛날처럼 등을 맞대구 자자.》

밤중에 깨여보니 낡은 모포는 고스란히 지봉의 몸을 감고있었다. 현수는 잔뜩 허리를 꼬부리고 등뒤에 누워있었고… 지봉은 한동안 그를 내려다보다가 크지 않은 모포를 씌워주었다. 그러자 현수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리 와. 같이 덮구 자자.》

《현수.》 지봉이 말했다. 《우린 늘 같이 있게 되겠지?》

《그럼.》

《고향에두 같이 가구.》

《그럼.》

《난 말이여 거기 락동강에서…》

《지봉이, 명령이야, 이젠 자자.》

그렇다. 그는 생명의 은인이였고 친구였고 또 그의 지휘관이였다. 그는 명령하고 지봉은 집행해야 한다. 아무리 뼈속까지 얼어들었어도 그가 명령하는만큼 또 개울바닥 20여m를 기여가야 한다. 기침도 하지 말고 등어리도 드러내지 말고 질벅질벅한 개울바닥을 배밀이해야 한다. 젖은 옷이 갑옷처럼 꽛꽛해지건만 이 고집불통인 현수는 무자비하다. 사정없이 날카로운 웨침소리로 다시, 다시! 하고 부르짖는다.

지봉은 으드득 이발을 마주치며 흐느꼈다. 다리가 무섭게 와들거리는것을 느끼며 현수를 마주보았다. 《무슨 말을 하자는거유, 중대장동무?…》 속으로 이렇듯 고통스럽게 물었다. 《또 추궁을 하려는거유?》

《춥지?》

현수의 말이였다. 그에게 손을 내밀고있었다. 지봉은 그의 손바닥우에 놓여 있는 굵은 소금알들을 보았다.

《기침이 나서 정 참기 어려울 땐 이걸 입에 넣어 녹이면 돼.》

와들와들 떨리는 지봉의 손을 벌리게 하고 소금을 쥐여주었다.

《이 길이 바로 고향으로 가는 길이야, 지봉이. 이걸 잊지 말자구.》

《…》

지봉은 잠자코 있었다. 그가 놓아준 소금을 꽉 움켜쥐였을뿐이다. 또 훈련이 시작되였다.…

짤막한 휴식시간에 현수는 비행장습격의 중요성에 대하여 또 설명했다. 적들의 경계초소, 지뢰원(인발지뢰였다.), 3선철조망 등 갖가지 차단물배치상태도 일일이 기억시켰다. 모두 앉지도 못하고 빙 둘러서있었다. 진눈까비가 세차게 퍼부어져 눈도 제대로 뜨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지봉은 몸을 떨며 오직 한가지 소원만을 거듭 생각하고있었다. 불, 따뜻한 화토불… 그것이면 되였다. 지금 당장은 그이상 더 절박하고 간절한것이 없었다. 그때 공병별동대를 인계한 주영섭이 다가왔다. 비행장습격전투에 참가하고 자기 구분대로 떠나겠다고 했다. 류현수가 망설이는것을 보자 사단참모장한테서 직접 허락을 받았노라고 했다.

로지봉은 반가왔다.

그는 문화부중대장이라기보다 말이 적은 분대장같았으며 그들 모두의 형님벌 되는 혈육과도 같았다. 사랑하는 안해와 자식마저 잃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목격한 로지봉이외에 그것을 아는 사람은 아직 하나도 없다. 그보다 더 큰 아픔과 슬픔이 또 있으랴만 그는 멀어져가는 메아리에 귀를 기울이듯 홀로 그것을 묵새기고있었다. 그와 함께라면 견딜수 있을것 같다. 그는 소리치는 일이 없다. 아픈 소리도 할줄 모른다. 그저 대원들과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생각할뿐이다. 지금의 로지봉에게는 마음속 가장 가까이 서있는 사람들중의 한사람이다.

생각에 잠겼던 로지봉은 류현수가 《위치 앞으로!》하고 웨치는 구령소리에 와뜰 놀라며 습관처럼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러자 한 전사와 이마를 세게 부딪쳤다. 맵짜게 후려치는 진눈까비를 피해 모로 서있었다는것을 잊고 그대로 나갔던것이다. 다들 소리내여 웃어대는 가운데 그의 팔소매를 잡아끌며 주영섭이 롱조로 말했다.

《어떻게 된 일이요. 지봉동무? 한다하는 구대원이 동서남북도 모르다니… 그러다가 고향으로 가는 길도 삭갈릴게 아니요?》

지봉은 속이 뜨끔해났다. 주영섭의 그 말이 의미심장한 뜻으로 해석되였다.

《원 그럴리야…》하고 그는 무안하여 중얼거렸다. 《그걸 삭갈리면 되겠어유. 멀지도 않은 길을.》

《그래, 멀지 않지. 멀지 않아… 그렇지만 피로써 헤쳐가는 길이지.》

그다음 그들은 질척한 개울곬을 따라 기여가기 시작하였다. 이발이 떡떡 맞쪼이고 탐침을 쥔 손끝에서 감각이 잃어져갔다. 공병가위를 쥔 주영섭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낮게 속삭였다.

《새로 온 중대장이 아주 늘차거던, 그렇지?》

《…》

지봉은 여전히 이발을 맞쫏고있었다. 늘차다. 늘차다!… 가까스로 그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옳은말 같다. 박영일이라는 친구도 그 비슷한 말을 했던것 같다.

《우리 중대장동진 완전히 급사격이군요. 기관총같이.》

그래, 그래, 옳은 말이다. 군대식으로 말해서 류현수는 기관총이다. 열을 올려 말할 때는 련발사격처럼 격한 말마디들이 튀여나온다. 반면에 주영섭은 122mm 곡사포(까비츠)이다. 그 포성처럼 깊고 웅글지다.

 

지봉은 감탕바닥을 밀며 기여나갔다.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직 감탕내를 구별할수 있는것만도 다행이다. 기침이 나오려 했다. 입안에 넣은 소금이 거의 다 녹아 없어졌다. 뒤이어 중대장이 주의를 주었다.

《탐침!… <적진>이요.》

로지봉은 탐침을 찌르며 또 언몸을 움직여갔다. 등뒤에서 공병가위소리가 울렸다. 진짜 철조망을 늘여놓은 이 지뢰매설구역에서는 숨소리조차 저어해야만 했다. 자칫하면 《적》의 중기, 경기들이 《총탄》을 퍼부을것이고 《탐조등》이 대낮같이 밝히며 강렬한 불빛으로 비질할수 있다. 그리고 보다 더 안타깝게는 저 인정사정없는 중대장이 《다시! 뒤로 돌아-출발계선 앞으로- 갓!》하고 웨칠수 있다. 지봉은 그의 《다시!》하는 구령소리만 상기해도 눈앞이 아뜩해졌다. 이제 또 한번 이 참기 어려운 노릇을 반복시킨다면 자기 친구에 대한 애착심이 여지없이 줄어들것 같았다. 그런데 로지봉의 이 마음속 최후통첩이 가닿았던지 그들이 통로를 개설하고 가상적인 대상물에로 달려가고있을 때 《그만- 휴식!》하는 구령이 울렸다.

류현수는 문화부중대장 주영섭을 불러 무슨 일인지 흥분해서 말했다. 그들곁에는 박원철이라는 련락병이 서있었다. 상급참모부에서 급한 련락이 왔는가싶었다. 재빠른 말들이 한참 오갔다. 그러나 추위에 언 전사들은 불을 피우는 일에만 정신을 팔았다. 젖은 삭정이와 졸가리를 무져놓고 벌써 우물처럼 둘러쌌다. 류현수가 소리쳤다.

《동무들, 계속 몸을 놀리오. 이제 곧 새 동복이 도착하오. 그새 몸을 녹이고 신발도 말리시오!》

그는 주영섭과 소대장들까지 불러 어데론가 급히 달려갔다. 그가 가면서 무슨 말인가 또 했지만 로지봉은 제대로 가려듣지 못했다.

가슴앞섶에서 김이 문문 솟아올랐다. 불과 연기가 눈앞에서 흐느적거렸다. 앞가슴이 녹는듯 했다. 그러나 진눈까비에 푹 젖은 엷은 여름옷잔등으로는 선뜩선뜩한 칼바람이 거침없이 날아들었다. 많은 병사들이 그처럼 모닥불주위에 쪼그리고앉아 까딱 움직일념을 않고있었다. 큰일이다. 중대장이 말한것처럼 몸을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불앞에서도 얼어죽을수 있다. 젖은 잔등쪽으로 늙은이들이 말하듯이 랭이 속까지 배여들면 얼던가 병에 걸리든가 어쨌든 일어나지 못하고 만다.

진눈까비도 멎고 구름발도 성글어졌으나 차디찬 새바람이 점차 사정없이 불어치기 시작하였다. 흐릿한 하늘가에서 이따금 흰눈송이들이 펄펄 날렸다. 그러나 세찬 바람질로 미루어 본격적으로 눈이 퍼부을것 같지는 않았다.

로지봉은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을 거듭하였으나 사정없이 눈까풀이 내려덮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것이 피로와 주림의 첫 징후라는것을 그도 알고있었다. 허기진 처지에서 순간이라도 이렇게 잠들어서는 안된다. 앞에는 뜨거운 불길, 뒤에는 차디찬 칼바람의 습격, 두 극의 한가운데 내던져진 몸이 차츰 굳어지는것 같이 여겨졌다. 생각도 흐릿해지고 너울너울 혀를 날름거리는 불길마저 꿈결에서 본 기괴한 그림자와도 같았다. 누구든지 소리쳐 불러일으켰으면 싶었다. 아니 그렇게 해야 한다는것은 알았지만 감각을 잃고있는 육체는 맹렬히 그것에 항거하고있었다. 한순간, 다문 한순간이라도 편히 잠들고싶다. 제발 잠시라도 건드리지 말아주렴! 하고 끝없이 속삭이고 부르짖고 애원하는것이였다. 몸집이 실하고 억대우처럼 든든한 로지봉조차 불앞에서 머리를 떨구고 움직이지 못하는 형편에 누가 그처럼 사납게 일어섯! 구령을 웨칠수 있겠는가. 어제도 모닥불앞에서 새우잠을 자고난 그들이였다. 그제는 철원- 련천간 도로부근에서 온밤 불도 없이 매복해있던 그들이였다. 이틀간 따뜻한 국 한그릇도 먹어보지 못하였었다. 속이 비고 몸이 얼고… 아니, 이제는 추위도 감각에 닿지 않는듯 했다. 눈앞에서 타오르는 모닥불이 그들을 고요와 안정과 혼탁된 꿈나라에로 이끌어가고있었다. 아지랑이와 같은 세계였다. 소리없는 물결, 너울거리는 해빛, 반짝이는 하늘, 불타는 산봉우리, 검은 나무숲, 흰수건… 흰수건을 들어 소리없이 부르고 또 부르는것은 채순금이였다. 《에그머니!- 끝내 왔네에-》그 목소리는 젖어있었다. 《그새 소식 한장 없이… 어쩜 그리두 오래…》 초물처럼 눈가에 굳어진 이슬에서 반짝이는 불빛, 붉은 눈송이, 또 흰수건… 별안간 《동무들!-》하는 웨침소리와 부산스러운 움직임의 감촉이 그를 아지랑이의 세계에서 끌어내였다. 떠들썩한 환성, 그의 어깨를 끌어올리는 아귀센 손길 《지봉동무, 이것 보오. 솜동복이요.》 흐느낌소리가 더 많은 귀에 익은 그 목소리, 그 목소리의 임자가 그의 가슴에 두툼한 솜옷을 안겨주었다.

《이게… 웬… 솜동복이여, 응… 웬 솜동복?!…》 로지봉은 꿈꾸듯 솜동복을 부둥켜안고 두눈을 슴뻑거렸다.

《장군님께서 보내주셨소. 지봉이! 장군님께서 우리들에게 이 솜옷을 보내주셨단말이요, 응? 왜 멍청히 서고만 있어. 이 곰같은 사람아!…》

마침내 로지봉은 감각을 잃고있던 자기의 얼어든 몸으로 따뜻한 온기가 흘러드는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온몸이 봄볕속으로 하염없이 휩싸여드는듯싶었다.

그는 생시임을 확인하려는듯 서둘러 솜옷을 펼쳐들고 안감에 찍힌 검임도장을 이윽토록 들여다보았다. 호수를 밝힌 수자, 공장이름 그리고 서툴게 써넣은 수수한 재봉공녀인의 이름.

 

     № 397

           리 순 녀

국영강계피복공장       45.jpg

 

로지봉은 다른 전사들이 누빈 솜옷을 입고 서로 돌아가며 살펴보는 때에도 그 정다운 이름에서 눈길을 뗄수 없었다. 그의 누이벌이나 어머니벌 되는 녀인인지 아니면 순금이또래 처녀인지 알수 없으나 한없이 귀중하고 다정한 혈육임에는 틀림없었다. 한뜸한뜸 정성들여 누벼놓은 혼솔을 더듬어보고 안주머니에도 손을 넣어보았다. 그러자 마치 자기가 예견했던것처럼 느껴지는 쪽지편지를 더듬어쥐였고 그것을 꺼내들자바람으로 흥분어린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침 그의 곁으로 류현수가 다가오고있었다.

《현수!… 중대장동무!》하고 지봉은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기 이게 편지가 아니유? 이게 도대체 웬일이유?…》

현수와 여러 전사들이 삽시에 그를 에워쌌다. 모닥불이 탁탁 튀면서 불꽃을 흩날리고 뜨거운 불길로 전사들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곱게 접은 편지를 받아진 류현수가 먼저 빠른 시선으로 훑어본후 목청을 돋구어 읽기 시작했다.

《적후에서 싸우는 인민군대동무들! 얼마나 고생하십니까, 어제밤 우리 공장에 찾아오신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지금 적후투쟁을 하는 전사들이 엄동설한에 여름군복을 입고있다고 걱정하시면서 더 많은 솜옷을 지어 동무들에게 보내주자고 간곡히 말씀하시였습니다.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우리는 오늘부터 매 사람이 5벌씩 더 지어 적후의 영용한 인민군대동무들에게 보내줄것을 결의하였습니다. 부탁할것은 이 솜옷을 입고 더 용감하게 싸워주세요. 미국놈들에게 천백배 복수를 하여주세요. 승리의 그날까지 몸성히 잘 싸울것을 간절히 빌면서
                               1950년 11월 18일
                                 리순녀 올림.》

아직 지봉은 그 누구에게서도 편지를 받아본적이 없다. 그는 류현수가 여러 전사들의 요청으로 편지를 다시 읽는동안 울렁거리는 가슴을 누를길 없어 안절부절하였다. 다음 그의 손에서 다른 전사들의 손으로 편지가 넘겨지는것을 보자 더 참지 못했다. 슬그머니 편지를 당겨다가 흐릿해진 눈길로 글줄들을 더듬었다. 아직 글을 채 익히지 못한 그였으나 하나하나의 글발이 눈에 익었다. 글씨까지도 눈에 익고… 정든 사람의 손길이 여기에 닿아있다. 뜨거운 사연이 여기에 씌여있다. 그는 편지를 다시 접어 솜옷 안주머니에 정히 건사하였다.

박영일이 다급한 소리로 《나두 좀 보자요!》하며 손을 내밀자 로지봉은 벌거우리해진 눈을 돌리며 속삭이듯 말했다.

《후에 또 보자구. 응?… 후에 얼마든지 또 보자!》

아무도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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