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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조선의 힘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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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5,732회 작성일 20-01-04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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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이슥한 밤중이였다. 먼 산봉우리에서 신호탄이 날아올라 확 불타더니 물속에 잠기듯 꺼져버렸다. 겨울치고는 류달리 잠풍한것이 곧 눈이 올것 같았다.

리숙은 군단장의 발꿈치에 바싹 붙어가고있었다. 군단장이 직접 인솔한 10여명의 일행이 깊은 계곡을 따라 서남쪽으로 전진하고있었다. 자동총을 휴대한 기마통신중대의 련락병들과 부관이 말을 타고 앞서나갔다. 그 나머지는 군단장과 같이 도보로 걸었다. 오래도록 말없이 갔다. 군단장 최현은 그림자처럼 묻어가는 리숙이도 거의 돌아보지 않았다. 《유격대행진곡》의 악보를 두고 벌어진 담화후부터 아직 한마디 말도 없었다. 약속한 시간에 리숙이 군단장을 찾아갔을 때 돌연 《폭풍》경보가 울리고 군단지휘부의 이동이 시작되였다. 느닷없이 벌어진 일이였다. 그것을 명령한 군단장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그 내막을 알지 못했다. 군단장은 아무런 사전예고도 없이 불의에 군단지휘부를 1시간내 이동할것을 명령하였다. 그자신은 군단통신련락소와 함께 행동했다. 부관과 간호장 리숙, 군단통신기마중대에서 련락병 2명을 일행에 보충했을뿐이였다. 기타 군단지휘부 각 부서들은 참모장이 인솔했다. 목적지는 군단참모장에게만 알려주었다.…

그 어떤 불안스러운 예감이 지꿎게 최현을 휘감고있었다. 그는 3명의 무선수들을 선발하여 공작파장을 맞춘 상태에서 행군하도록 했다. 2명의 무선수는 2차 철원해방전투를 지휘하는 박정덕, 개성- 금천강도로상에 매복한 한창봉과 직결되여있었으며 1명은 최고사령부와의 교신을 위해 특별히 준비되여있었다.

이윽고 밤하늘에서 눈송이들이 흩어져내렸다. 쏟을듯말듯 그칠듯말듯 너불너불 눈앞을 스치는 눈송이들을 보면서 리숙은 저혼자의 생각에 묻혀 자주 돌을 걷어차군 했다. 두서없고 갈래많은 생각이였다. 군단장이 왜 쫓지 못해할가. 나의 무엇이 마음에 안들가 하는 생각을 자꾸 했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아주 가느다란 한숨같이 남몰래 류현수를 생각했다. 지금 어데 있을가, 무얼 하고있을가. 철원해방전투에 참가했을가, 아니면 공병이니만큼 어느 도로에 매복하고있을가?… 그와 같이 개울가를 걸을 때, 분명 무엇인가 의미깊고 길이 잊혀지지 않을 말 한마디를 하려고 벼르면서도 끝내 평범한 인사말밖에 더 번지지 못했을 때 까닭없이 치밀어오르던 서운함과 야릇한 반발심이 상기되면서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어수선해졌다. 흐릿하던 갈망, 눈물, 그때 눈물은 왜 솟구쳤던지 어째서 가슴은 그리도 뻐근했던지?… 눈물없는 사랑이란 없다고 한다. 사랑이란 기쁨이기 전에 먼저 아픔이라고들 한다. 아픔!… 허나 그것은 따스한 아픔, 온기를 품고있는 눈물의 아픔이다. 하다면 리숙은 언제 어느때부터 그를 사랑하게 되였을가? 도하장에서 처음 보았을 때 무척 낯익게 여겨졌던 그 시각부터일가, 아니면 보총을 겨누어들고 당장 쏴갈길것처럼 무섭게 으르대던 그때부터일가.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오래전 그를 알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것일가? 사내애들과 두렴없이 아귀다툼을 하던 밸통머리 사나운 소녀 리숙이 별안간 거울앞에 서서 자기의 눈매를 이윽토록 들여다보던 그때, 문득 자기의 매력을 발견하고 자기자신에게 반하기 시작하던 그때, 호기심어린 처녀의 눈길이 동년배인 총각애들은 멸시하고 좀더 어른스러운 사람들께로 은근히 옮겨가던 그때부터였을가?… 그러다가 처녀의 꿈속에 그려지던 그 젊은이가 불쑥 눈앞에 나타난것이나 아닌지… 뉘 알랴, 사랑은 자기의 출발을 점찍어놓지 않는다. 별안간 사랑에 빠진 자기를 발견할뿐이다!…

리숙은 지금 자기가 어떻게 발걸음을 옮기고있는지 알지 못했다. 컴컴한 야공에서 푸실푸실 눈송이들이 떨어져 수그린 목덜미에서 녹아버리군 한다. 별안간 걸음을 멈추었다. 앞을 막아선 군단장에게 가볍게 부딪쳤다. 그러나 군단장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산너머 먼곳 어데선가 발동기의 소음이 들려오고있었다. 군단장은 귀를 강구어 그것을 듣고있는듯 했다. 둔중한 폭음이 울려왔다. 잠시후 화재가 일어난 모양 벌거우리한 불빛이 눈꽃 날리는 밤하늘을 물들이고있었다.

《저건 우리가 떠나온데가 아닌가?》

최현군단장이 처음 입을 열었다. 즉시 통신련락소의 소대장을 불러 보고가 들어온것이 없는가고 물었다. 소대장은 아직 아무런 보고도 없다고 했다.

《이상하거든.》 다시 걸음을 옮기며 그는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오늘은 꼭 심상치 않은 일이 있을것 같단말이야.》

리숙이와는 달리 군단장은 이 야밤의 행군길에서도 전투와 작전, 있을수 있는 각종 정황 등의 군사실무에서 헤여날수가 없는 모양이였다. 리숙은 누빈 솜옷의 웃단추를 마저 채웠다. 그다음 눈을 밝히고 귀를 강구었다. 지금까지 자기가 너무 감상적인 상념에 잠겨있었다는것이 죄스러워졌다. 그때 무슨 생각인가 골똘히 하고있던 군단장이 또 입을 열었다.

《10여년전 일인데… 그게 아마 1937년 여름이였던것 같아. 내가 한 소부대를 이끌고 행군하다가 휴식을 하댔는데… 너무 피곤해서 당장 말뚝잠에 들고말았지. 헌데 별안간 꿈속에 웬 백발로인이 나타나질 않겠나. 커다란 지팽이를 쥐고있는데 꼭대기에 룡대가리를 새긴거였어. 온통 하얀 옷차림이구 한발이나 넘는 채수염도 새하얗더군. 그 백발로인이 지팽이로 나를 두들겨대며 노해서 소래기를 지르더라니. <최현아, 눈을 떠라. 천길 낭떠러지가 무너져내린다!-> 해서 난 후닥닥 일어났지. 헌데 이게 웬일인가. 숱한 적들이 우리를 포위하고있는게 아닌가!… 참 그때 일을 생각하면…》

리숙은 군단장의 발꿈치에 바싹 묻어갔다. 이제 또 무슨 말이 있겠는지 잠자코 기다리자 최현이 또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말했다.

《오늘은 왜 그런지 그때 일이 자꾸 생각나거든.》 그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길것 같단말이야.》

《군단장동지! 그건 너무 과로한탓입니다. 제 말을 믿으십시오.》

《허-》 최현은 털외투자락을 활 열어젖혔다. 《리숙이, 그 성미가 마음에 들어. 그렇지만 않았어두 당장 쫓아보내는건데…》

《군단장동진 그러지 않아도 한번 쫓아보냈습니다.》

《그런데 또 왔지. 의뭉스럽게!》

《어마나, 제가 머…》

《괜찮아, 나무라는 소리가 아니야. 헌데 리숙이, 집에 부모랑 다 계시나?》

《예, 아버지와 또…》

《아버진 무얼 하시나?》

《전기관리국 기사장을 했습니다.》

《뭐?》 군단장은 무엇인가 기억의 갈피를 더듬는듯 했다. 《가만있자. 아버지 이름이 혹시 리성조가 아닌가?》

《아니 그럼, 우리 아버질 아십니까. 군단장동지?!》

최현은 걸음을 멈추고 새삼스럽게 리숙을 뜯어보았다.

《알지, 내 그 량반을 알아!… 숙이, 아직 만나보진 못했다만… 얘길 들었지. 얼마전 적후에 들어가 전기를 끌어왔더군. 목숨을 걸구말이야!》

《우리 아버지가요?》

《응, 그렇게 해서 우리 장군님께서 걱정하시던 전기문제를 풀어드렸단말이야. 대단하지. 정말 대단해!…》 최현은 리숙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 거의 껴안다싶이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내가 이번에 장군님을 만나뵈올 때말이야. 그런 기쁜 소식이 왔어. 리숙이 아버지가 적구에 들어가 전기를 끌어왔다는거야. 그래서 전기때문에 애를 먹고있는 군수공장들이 만부하를 걸수 있게 됐다는거야.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아나?… 모를거야. 리숙이도 다 모르지.

장군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더군. 장군님께선 무기생산이 걸려 몹시 걱정하시였는데 그 문제가 풀렸거든. 대단해. 그날 나는 말이야. 장군님을 그렇게 기쁘게 해드린 전기기사장이란 량반을 아무때건 꼭 만나봐야겠다구 생각했지. 우리 군단에 초청해다 사열식이라도 해줘야겠다 하구 말이야. 헌데 그게 바로 뒤웅스러운 리숙이 아버지댔군!…》

최현이 이렇듯 길게, 숨도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간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리숙은 그림자처럼 소리없이 걸어가고있었다.

아니 최현의 팔뚝에 받들려 둥둥 떠서 간다고 해야 옳을것이다.

가슴은 터질듯 부풀어올랐다. 바로 군단장인 최현장령을 통해 아버지소식을 듣는것이 기뻤다. 아버지가 장군님께 그토록 큰 기쁨을 드렸다는것이 놀랍고 벅차고 눈물겹도록 기뻤다.

《아버지!》하고 리숙은 마음속으로 뜨겁게 속삭이였다. 《전… 믿고있었어요. 아버진 변치 않으리라고 말이예요. 정말 아버진… 좋은분이예요. 아버진 훌륭해요. 훌륭한 아버지를 가지고있는 내 마음 얼마나 기쁜지… 아버지를 자랑해요. 자랑해요. 아버지!…》

최현이 휘친거리는 리숙을 끄당기며 물었다.

《숙이, 웬일이야. 왜 말이 없어?》

《군단장동지!》하고 리숙은 불같이 속삭였다. 《전 너무 기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군단장동지, 정말 고맙습니다!》

《원, 무슨 소릴!… 난 되려 이렇게 리숙일 알게 된게 더 기뻐! 참 좋은 사람들이야. 리숙이도 숙이 아버지도!…》

그 말을 듣자 리숙은 웬일인지 눈굽이 쿡 쑤시는것을 느꼈다. 어찌된 셈인지 막 울고싶었다. 소리내여 울고 웃으며 어린애처럼 막 매달리고싶었다. 울고 웃으며 어둠속으로, 골짜기로, 숲속으로!… 저도모르게 리숙은 코를 훌쩍거리며 최현에게 매달렸다. 마치 손을 놓으면 영영 떨어지기라도 할듯이 힘껏 매달리며 걷고있었다.

어느덧 일행은 계곡을 빠져나왔다. 산자드락으로 작은 오솔길이 나있었다. 그곳으로 들어갔던 부관이 말을 달려왔다. 앞으로 약 300m쯤 더 들어간 곳에 야장간이 있다는것을 보고했다. 최현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여기에 무슨 야장간이 있단말인가. 사람발길도 닿지 않는 이런 골채기에말야.》

《우리도 그래서 살펴보았는데 분명…》

《분명하단말이지. 그럼 어떤 도깨비들이 있는지 가보자!》

《도깨비》는 셋이였다. 60에 가까왔을 로인들이다. 최현이 들어서자 일시에 허리굽혀 인사했다. 모루우에서 쇠붙이들이 꺼멓게 죽어갔다. 화독의 연기를 뽑기 위해 뚝처럼 쌓은 토벽연통을 등대고 제일 년장자다와보이는 늙은이가 서있었다. 범가죽으로 지은 큰 덧저고리를 걸치고있는것이 자못 위엄이 있었다. 로인은 최현의 털외투깃속에 드러나있는 누런 장령견장을 자꾸 곁눈질했다. 최현은 스스럼없이 웃으며 자기를 소개한후 로인들에게 담배를 권했다.

《깊은 산골막바지에 야장간이 있다 하니 들렸습니다. 로인장들, 어서 편히 앉으십시오. 그런데 이건 뭡니까?》

범가죽덧저고리를 입은 늙은이가 먼저 대답했다.

《우린 인민유격대외다. 수류탄을 만드는 유격대지요. 군단장어른, 이것들이 <통졸임수류탄>이고 저 두상이 집고있는건 머 대포에 쓴다는 결탁쇠라나보웨다. 그게 고장나 애먹는다기에 군대일을 도울가 해서 고쳐봅지요.》

《?!…》

그제야 최현은 물론 부관과 리숙 등은 구석구석에 놓인 각종 병들, 통졸임들과 포탄깍지, 탄약상자들까지 둘러보았다.

《이건 탄약상자가 아닙니까?》

《예, 옳쉐다.》 범가죽덧저고리를 입은 포수같아 보이는 로인이 또 나섰다. 《병기수리소 군대들이 그걸 가공하기에 우리도 해보는겁지요. 머 독일제총탄이 돼서 약간 손질해야 쓸수 있다고 하웨다.》

《참 대단하시군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하셨습니까?》

《머 처음엔 병기수리소군대들을 좀 돕느라고 한 일인데… 판이 커졌습지요. 한번은 한창봉이라고 련대장을 하는분이 파편쪼각과 폭약을 다져서 <통졸임수류탄>만드는법을 대주며 부탁하더군요. 그때부터 보잘것 없긴 해두 우리가 만드는게 미국놈들을 조겨댄다니 성수가 나구 욕심이 더 커졌습지요. 그렇지만 군단장어른, 말은 내가 하지만 일은 저 두상들이 다 합네다. 강원도아근에서 한다하는 야장쟁이들이웨다. 나는 그저 포탄깍지나 날라다주구 보초를 서주기도 합니다만…》

《예, 그러리라고 보았습니다.》

최현은 부지중 마음이 후더워졌다. 도처에서 인민들은 적후투쟁부대들을 원호하기 위하여 타다 남은 벼낟가리를 헤치고 수천컬레의 버선과 장갑, 지어 나무껍질로 물을 들인 솜옷까지 지어보내고있다. 양주와 화천에서는 묻어두었던 현물세량곡가마니를 적들 몰래 파내여 운반하던 도중 5명이 희생되였고 철원군 묘장면의 한 농민은 적들에게 체포되여 끌려가던중 인민군대에 의해 구원되자바람으로 어혈이 진 몸도 아랑곳 않고 눈바람 세찬 논밭에서 떨어진 벼이삭들을 줏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 일도 있었다…

최현은 포탄깍지며 통졸임수류탄을 하나하나 만져보고 어떤것을 어떻게 수리하고 만들어내는지 알아보았다. 그러느라고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인차 자리를 뜨고싶지 않았다. 장군님께서 당부하시던 일들이 하나하나 상기되기도 했다. 60에 이른 이 늙은이들에 대하여 장군님께 말씀드리고싶었다. 무선통신으로가 아니라 직접 보고드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장군님!… 이 《도깨비》령감님들을 좀 보십시오. 산속에 병기창을 차려놓고 제2전선을 돕고있습니다. 정말 온 나라가 떨쳐일어나 싸우고있습니다!…

최현은 부지불식간에 도처에서 적들과 싸우고있는 인민유격대들이 생각났다. 후퇴하여 들어가던 때 자기가 만나본 소년빨찌산 참모장녀석도 생각났다. 그때 최현은 《금강인민유격대》에 180여정의 무기를 넘겨주었다. 그들과 2시간이나 마주앉아 유격활동에 대해 말해주었다. 군사훈련도 주었다. 그들도 지금 그곳에서 적들과 피어린 싸움을 벌리고있을것이다.

최현은 군단활동지역의 평강, 이천, 철원, 김화, 세포 등지의 인민유격대들도 군단의 작전에 인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그 생각이 떠오른것이 놀라왔다. 바로 이 《도깨비》들이 귀띔해주었다.

최현은 얼마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늙은이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누었다. 로인들의 소행을 거듭 치하하고 문을 나서려는데 범가죽덧저고리를 입은 포수가 한가지 청이 있노라고 했다. 사연인즉 자기를 군대에 받아달라는것이였다. 기골이 장대한 그 로인이 최현이 미처 대답할새도 없이 걸걸한 목소리로 또 말을 이었다.

《여기 이 두상들두 다 알지만 나두 한땐 소문을 낸 포수웨다. 아직도 범같은건 문제가 없쉐다. 그러니 그깐놈의 양코배기들이야 더 말할것두 없습지요.》

그는 기어이 자기를 군대에 받아달라고 간청했다. 최현은 웃었다.

《로인장이 아니라도 싸울 젊은이들은 많습니다. 여기서도 할 일이 좀 많습니까. 놈들이 얼씬 못하게 이 야장간을 잘 지켜주십시오. 저는 로인장만 믿고 가겠습니다. 정 우기신다면 군대들을 떼여 이 야장간을 지켜야 하겠는데… 꼭 그리해야 옳겠습니까?》

로인은 서운한듯 코밑을 주물러대다가 불쑥 최현의 손을 꼭 잡아쥐였다.

《실은 내같은게 짐이나 되겠습지요. 하지만 군단장어른! 아직 여기까진 미국놈 양코배기들이 한번도 기여들지 못했수다. 하상 그런 일이 생긴다쳐두 내 다 해치우리다. 그것만은 장담하웨다.》

《그렇게 해주시면 작히나 좋겠습니까. 로인장, 믿겠습니다.》

《그럼 군단장어른! 한가지만 더 약속해주시우. 전쟁이 끝나면 꼭 한번 여기에 오겠다는걸 말이웨다. 리왕조때 대대로 사냥을 나오던 소문난 고장이 아니웨까. 워낙 산짐승이 많아서 본때나게 사냥을 할수 있습지요. 더우기 군단장어른이야 장군님수하 장수들가운데서두 총 잘 놓기루 유명한분이라는걸 다 아웨다. 그러니 꼭 와주시우.》

《고맙습니다. 로인장들, 약속합니다!》

…심산속의 야장간을 떠나 금화쪽으로 1시간가량 더 갔을 때였다. 통신결속조의 3명통신병들이 공작파장을 맞추고있는 무선기에 맨 처음 군단지휘부 암호 《북극성》을 찾는 전파가 있었다. 서울제4보병사단 통신이였다. 련합부대장 박정덕이 직접 철원포위에 대하여 보고하면서 아침까지는 전투가 결속되리라고 했다. 그런데 평강의 적 야전비행장기습이 뜻하지 않은 적들의 증원으로 악전고투를 벌리고있다고 했다.

최현은 야전비행장습격에 참가한 력량을 물었다. 보고에 의하면 2개의 보강된 보병중대, 새로 조직한 공병중대(별동대)인바 적들의 차단물 깊숙이 잠입한 공병들이 보병중대와 분리되여 위험에 처했다고 하였다. 이제는 적진 깊숙이 들어간 공병전투원들의 힘과 인내, 과감무쌍한 돌격에 모든것이 달려있었다. 그때 최현은 간호장 리숙이 숨소리조차 없이 말뚝처럼 박혀있는것을 알지 못하고있었다. 다른 통신병의 무선기에 군단작전부장의 보고가 들어왔는데 1시간반전 적들의 폭격기가 종전 군단지휘부위치에 맹렬한 폭격을 가했다는 소식이였다. 아까 둔중하게 울리던 폭음과 밤하늘의 구름장들을 벌거우리하게 물들이던 화광이 우연한것이 아니였다. 대오안에, 그것도 군단지휘부 아주 가까이에 나쁜놈들이 있는것이 틀림없다. 그것을 예감하고 급작스러운 지휘부이동을 명령했었다. 최현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악물었다. 이제부터는 군단의 모든 련합부대들과의 지휘통신을 군단장에게 집중시키도록 해야 했다. 작전협의대상을 극소수로 제한하되 그 성원들을 엄선하며 그 어떤 명령이든 군단장의 구두 혹은 수표가 있는 서면이외의것은 일체 무효로 하며 그것을 어길 경우엔 엄벌에 처할 결심이였다. 전군단을, 그의 사소한 움직임까지도 최현 그자신의 손아귀에 꽉 틀어쥐여야 했다.

최현은 이렇게 마음을 도사리며 걸음을 옮겼다. 행군이 시작되면 생각이 쉬이 정리되는 그였다.

(평강비행장습격을 힘들게 치르구있다했지, 공병들만으로 돌격해야 할 형편이라구 했지…)

최현은 박정덕에게서 받은 소식을 두고 생각에 잠겨있다가 느닷없이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힘을 더 내라, 힘을!… 절대 주저앉아선 안돼!…》

최현이 다시 걸음을 옮기자 뒤를 이은 군관들과 무선수들이 서둘러댔다. 리숙이도 앞서가는 군단장의 발자국을 열심히 따라짚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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