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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조선의 힘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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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812회 작성일 20-01-01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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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노래를 잊지 못해하시였다. 차를 달리실 때에도 작전도를 마주하실 때에도 그날의 시와 노래가 줄곧 머리에 떠오르시였다. 《싸우리라 싸우리라 끝까지 싸우리라》는 그 노래에 맥박치는 전투적기백과 의욕과 불굴의 신념이 귀중하게 여겨지신때문인지… 가끔 자신도모르는새에 기억에 새겨진 격조높은 그 시와 노래를 상기하군 하시였다.

 

오 전우들아

탄환을 재우자

복수를 재우자

 

그날도 김일성동지께서는 만포에서 새로 조직되는 군단의 장비정형을 료해하고 돌아오는 도중 줄곧 속으로 그 선률을 더듬고계시였다. 림성골에 돌아왔을 때 어데선가 와- 와 하는 환성이 울려왔다. 그제서야 그이께서는 친위중대원들이 오늘 마을사람들을 도와 추수마당질을 하기로 되여있다는것을 상기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시계를 보시였다. 잠시 생각해본 끝에 떠들썩한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친위중대원들이 들어있는 농가의 뜨락엔 온 동네가 다 모여온것 같았다. 늙은이들은 구팡돌우에 앉아 종자로 쓸 조이삭을 자르고있었고 부관들과 친위중대원들은 앞을 다투어 번갈아 도리깨를 잡아보았다. 장군님께서 오시자 뜨락은 명절같이 흥성거렸다. 늙은이들에 이어 조무래기들까지 와 밀려와 그이께 인사를 올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동네사람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웃저고리를 벗으시였다. 손수 도리깨질을 하시려는것이였다. 그러자 동네 늙은이들은 장군님께서 어찌 그런 일까지 다 하시겠는가 하면서 극력 만류해나섰다. 바로 그때 부관 김수명이 《아야!-》하고 비명소리를 지르며 손에 들고있던 도리깨를 떨구었다. 서툰 일을 덤벼치며 하다가 도리깨아들로 자기 귀를 때린것이였다. 그는 두손으로 귀바퀴를 움켜쥐고 망돌처럼 뱅뱅 돌아갔다. 그러자 숱한 사람들이 웃어대고 조무래기들은 토담우에서 와- 환성까지 질러댔다.

김일성동지께서 역시 웃으시며 그를 살펴보시였다. 얼굴이 벌개진 김수명은 《일없습니다. 그저 얼얼할뿐입니다.》하고 중얼거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가 떨군 물푸레나무도리깨를 들고 눈여겨보시였다.

《그것 참 이상한 일이구만. 구멍도 커지지 않았고 칡줄도 닳아먹지 않았는데 어떻게 자기 귀를 때린단말이요!》

멀찌감치 물러났던 김수명이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그것두 뭐 도리깬가?!…》

그 모양을 보고 구팡돌우의 늙은이들까지 호함지게 웃어댔다. 조무래기들이 신이 나서 떠들고 녀인들도 껴들었다.

《저 아저씨 괜히 애꿎은 도리깨만 욕하는구려.》

《손에 익지 않아 그럽지요. 도리깨를 탓할게 있수.》

《괜한 소릴 함무다. 부관어른!》

한 늙은이가 그를 두둔해나섰다.

《그만들하슈. 처음이니 그럴수 있지.》

김일성동지께서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수명동무, 동네어른들 말씀이 옳소. 도리깨를 탓할게 아니라 서툰 일솜씨를 탓해야지. 아무일이나 손에 익히자면 감각이 있어야 하오. 도리깨채를 우로 쳐들 때 도리깨아들이 고르게 펴지는가 서로 얽히지 않는가 하는걸 눈으로 보지 않고도 감각으로 느껴야 한단말이요. 그럼 내 좀 해볼가…》

그이께서 김수명이 나무라던 도리깨를 쳐드시였다. 세가닥의 도리깨아들이 하늘로 훌쩍 날아오르더니 쫙 펴든 손가락들 모양으로 벌려지면서 힘껏 내려졌다. 휘딱 짚더미를 두들겨대는가싶더니 또다시 훌쩍 머리우로 날아올랐다. 경쾌한 반원을 그리며 훌썩! 때리고 휘딱! 솟구쳐오르고는 또 훌썩! 때리고… 모든 사람들이 경탄에 찬 눈길로 그이의 일솜씨를 지켜보았다. 짚검불이 묻어올라 춤추듯 날아가는가 하면 골고루 펴놓은 수수이삭들이 털썩, 흐물썩거리며 뒤집히군 했다. 진정 그이께서는 이 단순한 로동도 호흡과 가락을 가진 환희로운 률동으로 변화시키시는것이였다.

늙은이들이 채수염을 비다듬으며 황홀해서 바라보았다. 어느덧 입을 다물지 못하고있는 아낙네들의 눈굽은 번지르해졌다.

장군님께서 도리깨질을 하신다. 우리 장군님께서 준엄한 전쟁도 다 잊으신듯 여기서 수수마당질에 여념이 없으시다!…

도리깨를 휘두르시는 그이의 마음속에도 사무치는 격정이 있었다. 2천리 먼길을 헤쳐온 인민군협주단배우들이 부르던 노래 《싸우리라 싸우리라 끝까지 싸우리라》는 격조높은 합창의 선률에 맞추어 두드리고계셨다. 하얀 와이샤쯔바람이였지만 그이의 어깨우에서는 어느덧 흰김이 무럭무럭 피여오르고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얼굴에 온통 웃음이 버무러져있는것 같은 강부관장이 달려왔다.

《장군님!》

도리깨질을 멈추신 그이께서는 땀배인 얼굴을 돌리시였다.

《장군님! 서문거리 작전국에서 전화가 왔는데 좀전에 최현동지가 그곳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최현동무가?!》

《예. 이쪽으로 막 떠난다고 했습니다!》

《그래?!…》

흔히 반가운 소식은 전혀 예기치 않았을 때 불쑥 찾아오는 법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가까운 곳에 있는 한 친위중대대원에게 도리깨를 넘겨주시였다. 그다음 상의를 벗어 걸어둔 삽짝문으로 걸어가며 흥분어린 음성으로 거듭 뇌이시였다.

《드디여 왔단말이지. 최현동무가!…》

 

최현은 작전국직일관이 전화를 걸고있을 때 벌써 앞마당에 있는 승용차에로 급히 가고있었다. 무엇인가 손질하고있는 운전사를 보자 큰소리로 물었다.

《최고사령부까지 얼마면 가댈수 있나?》

《저… 걸어서말입니까, 아니면…》

《차를 타구!》

《예. 차로 가면 한 5분정도…》

《그래?!… 그럼 빨리 가자구!》

최현은 대바람으로 승용차에 훌쩍 올라앉았다.

《뭘해! 빨리 최고사령부로 가자!》

작전국의 운전사는 어리둥절하여 눈섭이 무섭게 곤두서있는 장령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지싯지싯 중얼거렸다.

《저… 작전직일관동지가… 대기하라고…》

《이 따라지같은녀석! 지금 장군님께서 기다리고계신단말이야. 알겠어?》

최현은 벼락같은 호령으로 운전사를 재촉하여 차를 들이몰았다. 서문거리에서 장군님 계신 림성골의 한 농가까지는 5분도 채 안걸렸다.

장군님께서는 계시지 않았다. 부관실도 비여있었다. 보초병은 강부관장이 그의 도착소식을 알려드리려 방금 뛰여나갔노라고 했다. 최현은 ㄷ자형으로 된 농가를 재빨리 돌아보았다. 맨 웃방이 장군님의 집무실이였다. 자주색책상보가 눈에 익었다. 전화기, 자개박이벼루함, 필통, 펜대, 《별》표 색연필… 책상을 마주한 원형등받이 쏘파와 개인의자들까지 다 눈에 익었다. 오래전부터 그이께서 사용하시던 그대로 옮겨와있다. 웬일인지 머리가 핑 돌았다. 소박하고 아담한 이 집무실이 한없이 귀중한 많은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삿노전우를 손으로 더듬었다. 싸늘했다. 사납게 얼굴을 찡그리고 가운데 세살문도 열었다. 그 방도 매한가지였다. 맨아래 식당칸을 내놓고는 모두 싸늘했다. 그는 아무도 없는줄 알면서 또 한번 부관실을 벌컥 열었다. 잠시 망연히 서있다가 대뜸 부엌문으로 다가갔다. 문을 열자 부엌안에 뽀얗게 서려있던 뜬김이 그의 얼굴을 휘감았다. 후덥고 눅눅한 증기발속에서 점심식사준비에 여념이 없던 료리사와 그를 돕던 기술서기 오영혜가 반갑게 부르짖었다.

《어마나- 사단장아바이!》

《그래 잘들 있었나?》

그는 찌뿌드드해서 내던지듯 한마디 하고는 부엌을 훑어보았다. 국이 끓는 가마와 함석버치, 놋대야, 물초롱, 망돌… 장단지까지 열어보고나서 맥없이 문턱에 주저앉았다. 료리사와 기술서기가 하얀 행주치마에 두손을 싸안고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있는것을 보자 그만 가슴이 찌르르해났다. 그 어떤 험한 욕으로도 풀리지 않을 그런 노여움이 가슴에 마쳐왔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방은 차고 부엌에선 고사리나물로 굼때고… 소갈머리없는 녀석들 하는 짓들이… 오뉴월 더부살이다!… 부관실이 비여있지 않았더라면 한바탕 체조를 시켰을것을… 허리를 쭉 편 그는 주눅이 들어버린 녀자들을 일별하고 문밖으로 나섰다. 구팡돌을 짚고 내려서려니 마음속에 걸린것이 또 한번 가슴에 마쳐왔다. 아무리 어려운 때이기로서니 이럴수가 있는가?!… 별안간 걸음을 옮길수 없이 마음이 무거웠다. 그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그것도 미처 정하지 못한채 망연히 서있었다. 그순간 무엇인가 전류처럼 온몸을 진감시켰다. 귀에 익은 발자국소리, 친근한 음성,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최현동무!》

《장군님!》

발을 걸채며 달려나가던 최현은 급기야 뚝 멎어섰다. 아래도리를 후려맞은것처럼 비칠거렸다.

《장군님!》

그이께서 어느새 그를 붙안으시였다. 뜨거운 손길로 그의 어깨를 꽉 잡아주시였다.

《최현동무, 드디여 이렇게 돌아왔구만!…》

《장군님!… 제가 그만… 죄송합니다.》

《이렇게 올줄 알았소. 기어이 돌아오리라고 믿었소!… 그새 정말 고생이 많았겠소. 몸이 편치 않아 몹시 신고한다던데… 지금은 어떻소?》

《장군님, 이젠 다 나았습니다. 열이 좀 오르군 했지만… 최고사령부가 가까와지니 아예 싹 나았습니다.》

《그렇다니… 다행한 일이요. 그런데… 몹시 축갔구만. 련합부대 지휘관들과 전사들도 다 건강하오? 정말 고생들이 많았겠소.》

최현은 목구멍에 그들먹이 차오르는 뜨거운것을 꿀꺽 삼켰다.

《장군님! 장군님께서 건강하시면 우린 다 건강합니다.》

《고맙소. 최현동무!》

 

알봉의 그늘진 소나무숲너머에서 한무리의 새들이 날아와 산기슭의 조밭머리에 쫘- 악 흩어져내렸다. 그것들은 정오의 해빛에 녹아 성깃성깃해진 눈더미들과 그루터기만 남은 밭고랑사이로 종종 뜀박질을 하는가 하면 가까와오는 발걸음소리에 고개를 돌리고 앙증스럽게 눈알을 굴리다가는 일시에 포르르 날아가기도 했다.

따스했다. 후더워진 마음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것인지도 모른다. 최현은 장군님과 나란히 구절골로 이어진 소로길을 걷고있었다. 그는 후퇴를 시작하던 때부터의 일들을 죄다 말씀드렸다. 방차대의 임무를 스스로 맡아하며 양양, 고성, 통천 등 여러 지방을 해방한 사실도 보고드렸다. 장군님께서 그처럼 기다리시는줄 모르고 제일 뒤늦게 돌아온것을 죄송스러워했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최현동무야 군집단의 리탈을 보장하느라고 마지막까지 락동강방어선을 지켜 싸우지 않았소. 게다가 후퇴하면서 동해연선의 여러곳을 해방하고 많은 애국자들과 인민들을 구원하였으니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요?…》

그이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최현의 수척해진 모습을 눈여겨보시였다.

최현은 눈굽이 찌르르해졌다. 그이의 눈빛에 어린 비애의 그림자를 알아보았다. 그이께서 무엇인가 망설이며 괴로와하신다는것을 깨달았다. 무엇일가, 무슨 일로 그처럼 괴로와하시는지?…

《장군님!》

무겁게 입을 열었으나 더 이을수 없었다. 웬일이십니까, 무슨 일로 그렇듯 마음쓰십니까?… 하고 묻고싶었는데 목이 잠기여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장군님께서 역시 한동안 아무 말씀도 못하시였다. 이제 최현에게 알려주셔야 할 그 비통한 소식이 그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있었다.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그 어려운 후퇴의 길을 헤쳐왔는데… 최현이 그리도 애지중지하던 외동딸 룡옥이가 잘못되였다는것을 어떻게 알려주겠는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릿저릿해지시였다. 하지만 더 미루실수도 없을것 같다. 이제 당장 적후에로, 더 어려운 싸움터로 떠나보내셔야 하는만큼 오늘 말해주지 않으면 안된다…

그이께서는 또 걸음을 옮기시였다. 안타까울 지경으로 느리고 무거운 걸음이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계시였다. 아무말없이 묵묵히 따라오는 최현을 피끗 돌아보시였다.

《최현동무.》 마침내 그이께서 조용히 부르시였다. 하지만 아프게 가슴을 허비는 그 말은 또 잠간 묻어두기로 하시였다. 《최현동무가 오기를 몹시 기다렸댔소. 어떤 사람들은 최현동무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거라고 했소. 상식으로 보면 돌아오지 못할 길이였으니까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린 최현동무가 이렇게 꼭 올줄 알고 중요한 임무를 준비해두었소.》

《장군님!》

《몸이 편치 않은 최현동무인데 적후에서 나오자바람으로 또 새로운 임무를 맡겨야 하니… 어쩌겠소, 최현동무, 하루이틀 휴식할 시간도 줄수 없구만!…》

《장군님! 어서 임무를 주십시오.》

《최현동무, 당에서는 이미 최현동무에게 적후에서 활동하고있는 군단을 책임지우기로 했소. 제2군단장이요.》

《!!…》

최현은 두주먹을 힘껏 그러쥐며 굳어져있었다. 숱진 눈섭이 움쭉움쭉 일어서고 두눈은 숯불처럼 타오르고있었다. 그이께서 마주보시자 목이 멜 정도로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어려운 임무요.》하시며 그이께서는 최현의 팔굽을 잡고 걸음을 옮기시였다. 《이제 최현동무가 활동하게 될 중부산악지대로 말하면 군사행동지대로서는 매우 불리한 험산준령들이요. 그러기에 적들도 중부산악지대는 내놓고 동서로 갈라져서 침공해들어오고있소. 그 험한 산지에서 싸우자면 어려운 일이 한두가지가 아닐거요. 엄동설한에 몸도 녹일새 없이 하루에 수백리씩 행군을 하고 전투는 끝이 없을것이요. 게다가 식량이며 탄약의 부족은 말할것도 없고 부상자들과 환자들이 늘어날거요. 이제 기필코 적들도 대병력을 들이밀텐데 그러면 매일같이 적의 포위속에서 싸울것이요. 그러나 현단계에서 제2전선은 이제 시작될 반공격의 디딤돌과 같소. 제2전선의 활동여하에 따라 반공격의 승패가 좌우된다고 말할수 있소. 그러므로 우린 이 어렵고 중대한 임무를 최현동무에게 맡기는것이요. 생각해보면 늘 제일 위험한 곳에 최현동무를 보내군 하는데…》

그이께서 더 말씀을 잇지 못하시자 최현은 또한번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생각같아서는 《장군님, 그토록 신임해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하고 부르짖고싶었으나 여전히 입을 열수가 없었다. 입을 열기만 하면 치밀어오르는 세찬 격정이 그대로 터져나올것만 같았다.

《최현동무!》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그이께서 조용히 계속하시였다. 《한달만 견디여내시오. 아무리 어렵더라도 이제 한달만 견디면 사태는 역전될것이요. 이제 우리는 전선서부 즉 청천강일대에서 주타격을 가할것이요. 이를 위해서 제2군단은 강원도와 황해도 일대의 넓은 지대를 장악하고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한편 남으로부터 올라올 적증원집단을 맞받아쳐서 놈들의 중간방어기도를 완전히 분쇄해야 하겠소.》

《장군님! 장군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놈들을 짓뭉개놓겠습니다!》

최현은 확확 열기를 뿜고있는 얼굴을 들어 장군님을 우러르고있었다. 마음속으로는 격정에 사무친 어조로 계속 부르짖고있었다.

《장군님! 이 최현이 장군님의 믿음과 사랑이 없으면 무엇이겠습니까. 정말이지 이 최현이야 최현이기 전에 장군님께서 키워오신 한 전사가 아닙니까. 내 이제 적구에 나가 싸우다 죽드래두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에 꼭 보답을 하리다!…》

차츰 칠성산마루에 구름발들이 감기기 시작하였다. 따스한 볕을 즐기던 잡관목우의 메새들이 푸시시 털을 날리며 떨기 시작하였다. 바람이 세차게 불자 길섶의 말라버린 어저귀, 쐐기풀들이 파르르 떨며 나가누웠다. 또 한바탕 눈이 내릴것 같았다.

그때 림성골어귀에 강부관장이 나타났다. 급한 걸음으로 거의 반달음쳐오더니 《장군님!》하고 부르짖었다. 희소식을 가지고 오는듯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장군님!》 부관장이 보고드렸다. 《방금 김책부수상동지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전기관리국 리성조기사장이 송전작업을 끝냈다는 보고입니다.》

《그래?! 송전작업을!…》 장군님께서 큰소리로 되받으시였다. 《그러니 끝내 해냈단말이지!…》

최현은 장군님께서 처음 밝게 웃으시는것을 보았다. 무엇때문인지 줄곧 괴로와하시던 장군님이시다. 마음속 아픔을 참고 누르며 내색하지 않으려 무진 애를 다 쓰시던 장군님이시다. 그런데 지금은 그 모든 아픔과 괴로움을 다 잊으신듯 했다.

《이제부턴 좋은 소식이 더 많을것이요.》하고 그이께서 흥분어린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최현동무, 이게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지 다는 모를거요… 리성조라고 산업성 전기관리국 기사장을 하던 동무가 적후인 박천군 맹중리에까지 들어가 송전작업을 해냈소. 그래 이제부턴 군수공장들을 만부하로 돌릴수 있게 됐소. 더 많은 무기와 탄약을 전선에 보내줄수 있게 되였소!》

최현은 가슴이 뭉클해서 그토록 기뻐하시는 장군님을 우러러볼뿐이였다. 지금까지 어느 정도로 전기가 걸려있었으며 얼마나 많은 전기를 끌어왔는지 그로서는 전혀 가늠할수 없었으나 중요한것은 그것이 아니였다. 오랜 세월 장군님을 모시고 싸워온 그로서는 누구인가 그이께 크나큰 기쁨을 드렸다는것, 군사적으로 말하면 어느 한 요충지를 장악함으로써 장군님께서 의도하신 주공방향의 작전에 커다란 기여를 했으며 그것이 장군님을 기쁘게 해드렸다는 바로 그점에 중대한 의의가 있는것이였다.

(리성조!… 리성조란 말이지.) 하고 그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어째 나는 여태 모르고있었을가. 아무튼 괜찮아. 이제 그 량반을 만나게 되면 단단히 인사를 차려야겠군. 장군님께 큰 기쁨을 드렸는데야 무엇인들 못해줄라구. 필요하다면 백마에 태워 군단열병식도 사열하게 할수 있는것이지. 못할게 뭔가!…)

그러자 지금까지 전혀 알지 못하던 한 기술자의 이름이 무던히도 친근하고 정답게 여겨지는것이였다.

(좋은 친구로군, 꼭 사귀여야지…)

여전히 최현은 장군님의 웃음어린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그러나 장군님의 안색을 흐리게 하던 그 마음속 아픔은 가셔지지 않고있었다.

최현은 두리반을 사이에 두고 장군님과 마주앉았다. 어느덧 작전지도를 통한 구체적인 임무료해도 끝난지 오래고 지금은 적구로 떠나기에 앞서, 작별에 앞서 저녁상을 마주하고있는것이다. 최현의 어깨우엔 장군님께서 지어주신 황갈색의 윤기나는 털외투가 걸쳐있고 두리반에는 검소하나 알뜰한 지성이 깃든 식사가 준비되여있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겨 수저를 드는것도 잊고계시였다.

최현은 아무 기척없이 마른 입술을 혀로 추겼다. 분명 크나큰 아픔을 안고계신데… 어째 그러실가, 어째 그렇게 괴로와만 하실가?…

고즈넉한 침묵, 흉중에 사무친 그 많은 사연들을 더듬는 아릿한 회오의 침묵이였다. 등갓을 씌운 전등아래 한줄기 연기처럼 가물가물 서려오르던 뜬김도 잦아들었다. 어느 주추돌밑에선가 유정하고도 간절하게 읊조리던 귀뚜라미의 뜻모를 노래가락도 그쳐버렸다.

고요했다. 웃방의 탁상시계가 채칵거렸다. 그때였다. 장군님께서 머리를 드시였다.

《가만, 우리가 왜 이러고있소?… 어서 드시오.》

《예.》

아직 최현은 장군님께서 손수 따라주신 술 한잔을 들었을뿐 식사는 념두에도 없었다. 장군님께서 무슨 말씀이든 하시기를 가슴조이며 기다리고있을뿐이였다.

갑자기 장군님께서 혼자말씀처럼 조용히 뇌이시였다.

《적후에선 아직도 여름옷을 입고있을테지…》

《…》

최현은 숨을 죽였다. 그때문이였는가? 그것이 장군님께 그리도 어두운 그늘을 지워드렸는가?…

《이번에 갈 때 매 군인들이 솜옷을 몇벌씩 지고 가도록 해야겠소.》

그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최현은 제꺽 대답올렸다.

《솜옷말입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군님!》

《전선형편이 이렇지만 않아도 적후의 전사들에게 뭘 좀 많이 보내주어야겠는데…》

...

최현은 또 입을 꾹 다물고있었다. 마음속으로만 목메여 울먹이며 부르짖고있었다.

《장군님! 우린 얼지 않습니다. 장군님께서 그리도 따뜻이 보살펴주시는데 어째 우리가 얼겠습니까. 그 어떤 무서운 추위도 절대 우리를 쓰러뜨리지 못합니다!…》

또 한동안 침묵이 계속되였다. 국이 다 식은것도 몰랐다. 별안간 그이께서 무슨 말씀인가 하시려다가 눈길을 피하시였다. 최현은 가슴이 떨렸다. 문득 무엇인가 예감되였다. 그 어떤 커다란 불행에 대한 예감이였다. 숨길이 뻑뻑해지며 뜨금뜨끔 미쳐왔다. 그는 두리반우의 종지에로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장군님께서 먼저 그것을 잡으시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주전자를 기울여 잔에 한가득 부으시였다.

《최현동무, 쭉 마시오.》

《장군님, 자꾸 이러시면…》

《일없소. 자 어서 잔을 비우오.》 잔을 권하시는 그이의 손끝도 가늘게 떨리였다. 《최현동무, 마음을 굳게 먹고 내 말을 듣소… 사실 이 말은 후에 할가 했는데… 이런 기회가 쉬 올것 같지 않아서 말해주기로 했소.》

《장군님!》

《놀라지 마오, 최현동무. 얼마전 후퇴하던 도중에 룡옥이가… 그만 잘못되였소.》

《?…》

《우리가 잘 돌보지 못해서 그런 불상사가 있었소. 최현동무가 그렇게도 끔찍이 귀애하던 룡옥이를 그만… 잃고말았소.》

《…》

《이제 적후의 어려운 싸움길을 가야 할 최현동무에게 이런 가슴아픈 소식을 말하게 되여… 정말 안됐소.》

별안간 최현은 헉- 하고 흐느꼈다. 그리고는 세차게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떨구었다. 목구멍으로 울컥울컥 치밀어오르는것을 삼키느라고 입귀가 사뭇 실룩거렸다. 소리없이 어깨를 떨었다. 그러자 장군님께서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며 갈린 음성으로 나직이 말씀하셨다.

《우오. 내 앞에서 울지 않으면… 어데가서 울겠소. 맘놓고… 우오.》

《…》

최현은 마침내 온몸을 와들와들 떨기 시작했다. 가슴을 비트는 슬픔때문만이 아니였다. 자기자신의 슬픔과 아픔보다도 장군님께서 더 큰 고통과 아픔을 겪고계시기때문이였다.

(어서 입을 열어 말씀드려라!) 하고 그는 자기자신을 매질하였다. (지금 장군님께서 얼마나 가슴아파하시기에 그걸 알면서도 노전바닥만 쥐여뜯구있어?… 이 허챙이같은눔아, 어서 입을 열고 여쭈어야지, 너무 속쓰지 마시라구 왜 한마디 말이라도 올리지 못하는거야?!…)

최현은 서리가 불린듯 희여스름하게 질린 얼굴을 들었다. 코를 울리며 비틀린 입술을 움직였다. 그러자 목을 졸라맨듯 거쉰 소리가 터져나왔다.

《장군님!-》

다음 순간 그는 넙적 무릎을 짚고 그이앞에 꿇어앉았다.

《장군님! 내 기어이 장군님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서… 백번이구 천번이구 쓰러지면 또 일어나 장군님 주신 임무를 꼭 수행하겠습니다.》

그는 꿇어앉은 자세그대로 종지에 가득 술을 따랐다. 후들후들 떨리는 두손으로 그것을 받들어쥐고 말씀드렸다.

《장군님! 장군님을 하직하면서 드리는것이니… 부디 사양하지 마시구 받아주십시오. 이 최현이 적후로 가면서 장군님께 드리는 맹세루… 받아주십시오!》

해쓱해진 그의 광대뼈어름이 경련적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또 무엇인가 말씀드리려다가 그만두는듯 했다. 장군님께서는 마르고 터갈린 그의 입술이 근엄하게 꾹 다물려지는것을 보면서 손을 내미시였다.

《고맙소. 최현동무!…》

최현은 두손으로 종지를 쳐들며 또한번 목구멍에까지 치밀어오른 뜨거운것을 꿀꺽 삼켰다. 어느덧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끓고있었다.

… 이렇게 최현은 떠나갔다. 그는 먼저 후퇴의 길에서 함께 싸워온 련합부대 군인회의를 룡림에서 열었다. 수백수천의 전투원들이 수림속에 빽빽이 죄여앉아있었다.

여기서 그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주신 적후투쟁임무에 대하여 세세히 이야기하였다. 전투원들의 기세는 불길마냥 타올랐다. 이윽고 부대는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다시 적후에로 행군을 시작하였다. 목적지는 강원도 이천군 가려주리- 장군님께서 찍어주신 적후활동의 중심이 될 열점들중의 하나였다.

말고삐를 잡은 최현이 앞서고 총포탄과 여러벌의 솜옷까지 자기의 배낭우에 덧진 전투원들이 깊은 눈속을 헤쳐나갔다. 나날이 혹독해지는 추위속에서 행군은 힘겨웠다. 대오의 선두는 골짜기를 지나고 앞산을 넘었는데도 대오의 후미는 아직 골짜기를 내리고있어 기나긴 총창의 흐름은 끝이 없는듯싶었다. 캄캄한 밤에도 몇길씩 되는 절벽을 톺아오르는 간고한 행군길에서 초급정치일군들은 《산에서 살고 산에서 싸우는 법을 배우자!》라는 구호를 전사들의 배낭뒤에 붙여놓군 하였다.

숙영하라는 신호가 나면 모든 전사들이 부르튼 발바닥을 성냥불로 지지였고 얼음을 까고 찬물에 발을 씻고 발싸개를 빨아 말리였다. 오랜 세월 산에서 싸워온 최현군단장의 엄한 명령이였다. 때로 강행군에 지친 전투원들이 휴식구령과 함께 불도 피우지 않고 바위에 기대여 잠드는것을 발견하면 당장 눈속을 파고 들어앉도록 하기도 했다. 사나운 눈보라가 눈구뎅이속에 들어간 전사들을 영영 묻어버릴것처럼 태질하는 가운데 다시 출발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울리면 소대장, 중대장들이 권총을 탕탕 쏘며 대원들을 불러일으키군 했다. 그리하여 깊고도 험한 골짜기에 묻혀 보이지 않던 대오가 다시 움직이고 설핀 해빛에 총창들이 번쩍이군 했다.

어느덧 북대봉산줄기의 험산준령들을 뒤에 남기기 시작했다. 무선수들은 나날이 더 멀어지는 최고사령부와의 통신을 결속하여 행군로정을 보고하는가 하면 적후에서 싸우고있는 련합부대들에 보내는 군단장 최현의 명령을 전하기 위하여 얼어든 두손을 오래동안 입에 대고 불군 하였다.

아호비령산줄기를 타면서부터 차츰 먼 포성을 자주 듣군 하였다. 적후에서 활동하는 부대들의 소식을 알리는 포성이였다. 이무렵 군단장 최현은 군단 군사위원과 무선통신을 주고받던중 어느날 심상치 않은 보고를 받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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