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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조선의 힘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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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676회 작성일 19-12-14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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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9월 21일.

이날도 맥아더의 상륙부대는 서울시가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있었다. 월미도에 대한 미증유의 폭격과 포격을 시작하던 그날로부터 어언 열흘가까운 날들이 흘러갔으나 제1선의 미1해병사단은 아직 영등포에서 부절히 한강도하전투를 거듭할뿐이였다.

닷새면 인천-서울작전을 끝내겠다던 맥아더의 호언장담은 웃음거리로 되고말았다. 두번째 닷새가 다가왔으나 아직도 서울공략의 전망은 어두웠다. 맥아더는 눈에 띄게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그는 전투장가까이에 나가 전투를 참관하며 아울러 피흘려 싸우는 1선장병들을 고무해야겠다면서 분연히 영등포구 안양촌을 향해 떠났다. 그곳에서는 정예의 1해병사단이 한강도하작전을 위한 공격전투를 벌리고있었다.

저녁 6시, 검은색 크라이슬러 승용차는 수많은 땅크와 포차들이 짓이겨놓은 농촌길을 힘들게 굴러가고있었다. 어데선가 벌쪽으로부터 웅뎅이의 썩은 감탕내가 풍겨왔다. 길좌우의 뽀뿌라나무줄기우에서 저물어가는 해빛이 얼씬거렸다. 까마귀 한마리가 그쪽에서 깃을 활 펴들었다. 그것을 띄여보자 맥아더는 황황히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감았다. 그는 그 날짐승을 무던히도 싫어하였다…

(오늘도 한강을 도하하지 못하면…)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상륙작전에서 기대했던 거대한 성과는 거의 가망없다. 래일이면 그 의의가 또 절반이상으로 줄어들것이다. 벌써 우리는… 기습공격의 주도권을 잃었다…)

지겨운 불안이 가슴을 짓누르고있었다. 그 순간 차가 멎었다. 크지 않은 폭음소리가 울리고 자동총들이 뚜루룩거렸다. 앞에 앉아있던 부관이 문짝을 열어젖히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맥아더는 까딱않고 앉아있었다. 검은구름장들이 서둘러 날아가는것이 보였다. 그것들은 이 땅우에 벌어진 끔찍한 살륙에 진저리를 치는듯 황황히 날아가고있었다.

부관이 돌아왔다.

《각하, 농군 한놈이 선두차에 수류탄을 뿌렸습니다. 호위병들이 방금 그자를 사살했습니다.》

《농군이라고?》

《조선사람 농사군입니다. 각하!》

《혼자서?》

《예, 혼자서 달려들었습니다. 허리엔 낫을 차고…》

《?!》

맥아더는 가볍게 손짓했다. 눈치빠른 부관이 다시 뛰여나가 차문을 열어주었다. 서쪽으로부터 누기차고 싸늘한 해풍이 불어오고있었다. 맥아더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호위병들이 사살했다는 조선농민의 시체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미식소총을 지여총한 호위병이 죽은 사람의 시체에서 무엇인가 찾다말고 허리를 쭉 폈다. 그의 손에 무슨 종이장이 쥐여있는것을 얼핏 스쳐보았다.

고급승용차들에 수류탄을 던진 농군은 주걱턱이 쑥 나온 좀 겉늙어보이는 사람이였다. 흙물이 밴 낡은 베적삼을 입고 미투리를 신었는데 어떤 연고로 죽음을 각오한 이 습격에 나섰는지 전혀 알수 없었다. 맥아더는 자기 차있는데로 돌아가려다가 돌연 호위병이 쥐고있는 종이장에 시선을 던졌다.

《그건 뭐요?》

《이 죽은 농군의 품속에 있던것입니다. 무슨 문서장같습니다.》

《문서?!…》

부관이 통역관을 불러왔다.

《이게 무슨 문서인지 보오.》

통역관은 종이장을 받아들자 경멸하는듯 입술을 비쭉거렸다.

《각하, 토지분여증서입니다.》

《뭐라고?》

《공산군이 남하한 이후 이북정부에서는 토지개혁을 실시했는데 매 농군들에게 이런 증서를 하나씩 쥐여주었습니다.》

맥아더는 승용차로 돌아갔다. 고르로운 발동소리를 울리며 승용차는 다시 농촌길을 짓이기기 시작했다. 맥아더는 안양촌 서쪽의 118고지에 오를 때까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알몬드소장, 스미스미1해병사단장 등 현지지휘관들이 118고지에서 맥아더를 영접하였다. l해병사단의 군악대가 《100개의 피리》라는 곡을 연주했다. 태평양전쟁시기 련합군해군에서 류행되던것으로서 맥아더가 특별히 좋아하는 곡이였다. 군악대는 폭격기들의 출격이 시작되여서야 연주를 그쳤다. 하늘이 통채로 무너져내리는듯 했다. 사나운 태풍처럼 폭음이 휩쓸고 지나가자 뒤이어 원거리포들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공격열에 도취된 미제1해병사단의 5해병련대, l해병련대 및 32련대들이 영등포남쪽의 안양촌, 한강남안 행주나루쪽으로 공격을 거듭하고있었다. 포탄이 날아갈 때마다 목화송이같은 포연들이 먼 구름지대에 무수히 피여났다. 작렬하는 폭발의 섬광속에서 허리를 굽힌채 달려가다가 밑둥잘린 풀대처럼 쓰러져서는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해병대원들의 모습이 쌍안경의 렌즈에 얼핏얼핏 찍혔다.

맥아더는 눈살을 찌프렸다. 그를 기분나쁘게 한것은 무리로 쓰러지군 하는 해병대원들의 모습때문만이 아니라 아무리 눈밝혀보아도 쌍안경의 렌즈속에 북조선공산군들의 자태가 포착되지 않는때문이였다.

그의 표정을 살피던 알몬드가 뜨직뜨직 말했다.

《참관이 너무 이른것 같습니다. 각하!… 시가전이 시작되면 즉시 알려드리겠습니다.》

아직은 참아달라는 소리였다. 맥아더는 피끗 눈길을 돌렸다.

《아니요. 너무 늦었소!》

다시 쌍안경을 올렸으나 곧 내리고말았다. 무엇인가 따끔히 오금을 박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었다.

《당신들에게 묻고싶소.》하고 그는 알몬드와 스미스소장을 우울한 눈빛으로 더듬었다. 《며칠이면 서울을… 탈환할수 있소?》

알몬드와 스미스 두 소장은 서로 마주보았다. 이윽고 알몬드가 결연히 머리를 곧추 들었다.

《각하! 이제 3일이면 탈환할수 있습니다.》

《아니, 당신은 래일 서울로 들어가야 하오.》

맥아더의 어성은 높지 않았다. 그러나 심히 고압적이였다. 그는 결코 험한 욕설과 고함소리로 부하들을 위협하는 일이 없었다. 어떤 경우에도 저급한 인격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강하게 요구하려고 애썼다.

《지금 우리는 시간과 싸우고있소. 적아가 다같이 시간과 싸우고있다는것을 잊지 마시오!》

알몬드와 스미스는 덤덤히 서있었다.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된 이래 벌써 수십번도 더 되풀이된 말이였던때문이다.

《그러자면 지금 정면공격 하나만으로는 절대불가능하오. 공산군은 지금 서울의 서북쪽과 여기 서남쪽에 견고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있는것만큼 방어가 홀시되고있는 저 동남방향에 주타격을 지향시켜야 하오. 적이 없는 곳을 치라!…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립증된 군사리론이며 바로 인천상륙작전의 출발점이요!》

알몬드는 여전히 침울한 눈빛이였다. 잠시후 무거운 어조로 뜨직뜨직 입을 열었다.

《공산군은 벌써… 서울시 원형방어를 구축해놓았습니다.》

《뭐라구?…》

《서울의 동남기슭에만도 2개의 보병련대, 로동자련대, 철도복구대와 독립땅크구분대, 박격포대대들이 전개되였습니다.》

《…》

잠시 맥아더는 눈섭을 잔뜩 찌프리고있었다. 그러다가 불쑥 물었다.

《그게 다요?》

《그렇습니다. 각하!》

《보잘것없는 무력이요!》 맥아더는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에겐 어울리지 않는 변명이요.》

알몬드는 주걱턱을 쑥 내밀었다.

《월미도에서도 그들은 보잘것없는 병력으로 각하의 무력에 대항했습니다.》

맥아더는 목에 경련이 이는것을 느꼈다. 자기가 늘 신뢰해왔고 역시 그에게 충실해온 이 스핑그스같은 사나이의 무례한 대답에 그만 숨구멍이 틀어막히우는듯 했다. 그러나 금시 독살스러운 말이 튀여나오려던 껄낏해진 목구멍을 애써 눌렀다. 차라리 월미도를 상기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것 같았다. 월미도란 말만 들어도 그는 추위를 타는듯 했다.

그 작은 섬은 맥아더가 지난 태평양전쟁때 최초의 미해병대상륙작전을 지휘한 타라와섬보다 더 무섭게 생각되였다. 중부태평양의 산호섬 타라와는 수로의 폭이 좁아서 미해병들이 수백m를 걸어서 들어가야 했는데 그때 일본군은 사전에 있은 가혹한 포격과 폭격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고있다가 미해병들을 바싹 접근시켜놓고 치명적인 집중사격을 가했던것이다. 해안에 구축된 l. 5m높이의 통나무벽 장애가 또 해병대에 섬멸적인 죽음을 준 원인으로 되였다. 그 섬을 점령하는데 수천의 희생자를 내였었다.

맥아더는 쌍안경을 들어 전투가 벌어지는 한강류역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알몬드와 스미스소장도 슬며시 그쪽으로 눈길을 옮기고있었다. 그들은 별안간 벌어진 대화로 하여 거북스러움을 느낀것 같았다. 하지만 맥아더는 아무런 감촉도 느끼지 못하는듯 처신했다.

랭담한 의지, 자기를 나타내려는 집요한 노력과 거만한 자기과신- 이것이 바로 맥아더를 특징짓는 주되는 성격이였다. 사생활에서는 깨끗하나 군복은 일부러 조잡스럽게 입었고 기자들앞에서는 늙은티를 내지 않으려고 안경을 삼가했고 연약한자는 멸시하고 강력한자는 증오하고 현실보다는 력사를, 녀자보다는 힘을, 소란스러운 연회보다는 조용히 혼자있기를 더 즐기는 모순투성이의 완고하고도 고독한 71살의 맥아더- 그는 지금 쌍안경의 광학렌즈가 가까이 당겨온 전투장의 여기저기를 지꿎게 살펴보고있었다. 무엇인가 찾고싶었는데 눈에 띄는것이 없었다. 폭발의 불기둥, 연기타래, 사슬을 풀어헤친 땅크, 짓이겨진 논두렁, 또 폭발, 화염… 모든것이 월미도와 다름없었다. 철불의 파도가 휩쓸던 그 월미도에서도 공산군은 눈에 띄지 않았었다.

…그날도 맥아더는 사령함 《마운트 맥킨레》호의 갑판우에서 쌍안경을 들고 서있었다. 맑은 아침이였었다. 바다에 떠있던 고기배들과 주변섬들에서는 흰옷입은 주민들이 바다에 꽉 들어찬 군함들을 바라보고있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상륙작전부대였다.

미7함대의 중순양함 《로체스터》, 《토레도》, 구축함들인 《맨스필드》, 《데헤이븐》, 《콜레트》, 《칼크》와 영국해군 중순양함 《케니아》, 《져메이커》 등 카나다, 오스트랄리아, 뉴질랜드, 프랑스군의 각종 항공모함, 중순양함, 구축함, 로케트지원함, 상륙용함선들 수백척에 l 000대의 비행기, 미10군단의 1제대 1해병사단, 7보병사단을 비롯한 5만의 대병력이였다.

오전 11시, 3척의 로케트지원함이 로케트발사기 10대를 가지고 15분동안에 도합 4 400발을 발사하는것으로서 월미도에 대한 미증유의 타격은 시작되였다. 로케트탄들이 꼬리에 불을 달고 쉬임없이 섬으로 날아갔다. 귀에서 뜨거운 바람이 쟁쟁 울었다. 끊임없이 잇대여지는 눈부신 섬광으로 하여 눈섭이 죄여들고 이마빼기의 피가 끓다 못해 말라버린듯 했다.

그때 맥아더는 함교우에서 한 해병이 갑판우에 무너지듯 꿇어앉는것을 보았다. 꿇어앉자바람으로 해병은 열심히 가슴에 십자를 긋기 시작했다.

맥아더는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허나 다음순간 그역시 불안한 심정에 휩싸여 월미도에 쏟아지는 무서운 불의 소나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음속깊이 부르짖었다.

《오, 주여! 신의 영광을 찬미하는 저 소리를 들으시옵니까! 천국의 문을 두드리는 저 노성을 들으시옵니까!…》

그렇게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마음을 진정한 맥아더는 다시 눈가에 쌍안경을 가져갔다. 콜세아전투기들의 나팜탄공격과 더불어 지원포격부대사령관 히기스소장의 기함인 중순양함 《토레도》호에서 함포들이 한바탕 울부짖고있었다. 련이어 《맨스필드》, 《콜레트》 등 6척의 구축함들이 섬을 에워싸며 십자포화를 소낙비처럼 퍼부어댔다. 월미도는 온통 불과 연기에 싸여 아무것도 가려볼수 없었다. 펑끗거리는 섬광들과 오불꼬불 비꼬이며 타래치는 화염들뿐 공격을 담당한 미1해병사단의 5해병련대를 실은 《에이 피 디》형 수송선들조차 암갈색의 장막에 가리워 보이지 않았다. 맥아더는 쌍안경을 눈에서 떼였다. 이러한 장면들은 태평양상의 섬들에서 지칠지경으로 보아온 그였다.

《나는 몹시 피곤하오.》 갈린듯 한 목소리로 알몬드소장에게 말했다. 《내가 할 일은 더는 없는가본데… 이젠 좀 쉬여야겠소. 량해해주오.》

사실상 그는 피로했었다. 모험적인 이 《크롬마이트작전》을 추진시켜오기까지 며칠밤을 제대로 자지 못했던것이다. 그동안 맥아더는 인천상륙을 반대하는 대통령과 그의 측근자들을 설복하고 납득시켜야 했고 자기수하의 해군장령들도 끌어당겨야 했다.

민정국 제13처에서 조선전쟁준비를 위해 극력 봉사해온 전 일본군참모 대좌 미끼 다께오는 인천대신 군산상륙을 주장했었는데 해군측은 그에 전적으로 동감했었다. 그 모든 반대를 짓부시고 작전을 추진시켜왔다. 목이 쉬도록 설복을 하고 숱한 전보용지를 없앴다. 그러나 이제는 쉴 때가 된것 같다.

알몬드소장이 선망어린 눈빛으로 그를 지켜보며 말했다.

《각하, 가서 쉬십시오. 얼마든지 푹 쉬십시오.》

맥아더는 흐뭇한 마음으로 곰방대를 물었다.

《아니요. 월미도를 점령하면 곧 알려주오. 10분후에라도 일없소.》

알몬드는 미소했다. 맥아더나 다름없이 그도 월미도를 점령하는데는 몇십분이면 된다고 생각했던것이다.

《알겠습니다. 각하!》

맥아더는 선실에 내려가자 가운을 걸치고 장식용선반에 놓인 사진을 집어들었다. 맥아더와 처 지니, 아들 아써가 나란히 앉아 그 무엇인가를 몽상하는듯 야릇한 미소를 짓고있는 사진이였다.

《귀여운 지니.》하고 그는 서글픈듯 한 인상을 하고있는 19살아래의 처를 여겨보며 속삭이였다. 《래일이면 당신에게로 돌아가겠소. 래일은… 나와 당신이 축복받는 날로 될것이요. 그럼 난 좀 쉬겠소.》

그는 그때부터 누군가 손기척을 하고 들어설 때까지 71살의 늙은이답지 않게 반쯤 몸을 꼬부리고 죽은듯이 누워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것은 시종 아. 츄였다. 《저녁식사시간입니다. 각하.》 바퀴달린 상에 간단한 식사를 챙겨가지고 온 아. 츄가 공손히 말하였다. 《식사시간을 어겨선 안되지요. 각하께서 쉬시는동안 누구도 출입해선 안된다고 하지만 이건 별다른 문제올시다.》

《지금 몇시요?》

《저녁 7시입니다.》

맥아더는 급히 일어났다.

《젠장, 금방 누운것 같은데 벌써…》

하인은 숙련된 동작으로 작은 탁자를 주인앞으로 밀어왔다. 커피, 군빵, 빠다, 순대, 계란부침, 브란디… 여느때와 다름없이 간소하고 알뜰한 식탁이였으나 맥아더는 잠을 깬 직후여서 그런지 전혀 식욕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때문인지 두통이 나는것 같았고 참을수 없는 압박감이 가슴을 짓누르는것을 느꼈다. 그는 포크를 상우에 놓고 태평양전쟁때부터 시중을 들어온 충실한 하인의 작은 두눈을 들여다보았다.

《휘트니준장은?… 그는 저녁을 했는가?》

《아니올시다. 각하! 이제 곧 모셔오도록 합지요.》

오랜 세월 그를 섬겨온때문에 맥아더의 눈빛언어까지도 죄다 알아맞추는 아. 츄는 은쟁반우에 커피잔과 브란디잔을 옮겨놓고 공손히 물러갔다. 맥아더는 눈살을 찌프리며 선실안을 오락가락 했다. 정신없이 두손으로 얼굴을 문질러대기도 했다. 그런즉 아직도 월미도를 점령하지 못한것이다. 그 작은 섬을, 손바닥만 한 그 섬을 수백척의 전함, 순양함, 구축함들이 둘러싸고 포화를 들붓고있었는데 아직도 살아있다는것이다. 아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변괴란 말인가. 오 주여! 굽어살펴주소서! …

그때 맥아더의 첫째가는 측근자인 민정국장 휘트니준장이 들어섰다. 여전히 가운을 걸치고 방안을 오락가락하던 맥아더는 그의 표정부터 살펴보았다. 순간 자기의 예감이 확실하다는것을, 월미도는 아직 살아있으며 저항하고있다는것을 깨달았다.

맥아더는 맥없이 쏘파에 주저앉았다.

《앉소, 코트!… 앉아서 아무 얘기나 좀 해주오.》

휘트니는 그와 마주앉았으나 침울한 기색으로 두팔을 쩍 벌려보였다. 맥아더를 흡족하게 할것이 전혀 없다는 의미였다. 그것은 마치 제발 아무것도 묻지 말아주십시오 하는것과도 같았다. 그리하여 또 맥아더가 입을 열었다.

《인천상륙을 맨처음부터 끝까지 반대한것이 누구인지는 당신도 잘 알고있지. 어떻소, 당신의 관할하에 있는 그 미끼 다께오는 왜 인천상륙을 무모한 무력시위라고 했을것 같소?… 나는 아오. 그자는 대본영의 참모본부 작전과장시절에 벌써 김일성장군유격대와 겨루어보았다는것을 턱에 걸고있는거요. 그래서 북조선공산군의 작전전술적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권고했던거요. 참 어처구니 없지, 내가 북조선공산군을 과소평가한다구?… 천만에!… 나는 한번도 적수인 대방을 과소평가해본적이 없소. 더우기 북조선공산군은… 그들은 무서운 사람들이요. 그렇치 않다면야 내가 왜 부산교두보에 밀려가 롱성을 했겠소. 또 보는것처럼 저 월미도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소? 지금 저 땅우에 생명가진것이 남아있다는 그자체가 벌써 기적이 아니요?…》

휘트니준장은 그어떤 장광설도 참을성있게 들을 차비가 되여있다는 의미로 무릎우에 두손을 포개고앉아 조용히 머리를 끄덕이고있었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지휘관으로서의 맥아더는 우선 고독한 로인이였으므로 자타가 공인하는 맥아더의 측근자인 그로서 할수 있는 가장 유효한 봉사는 조수나 조언자로서가 아니라 다만 벗으로서 그와 이야기하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와 함께 침묵을 지키는것이였다.

맥아더는 다시 성급하게 방안의 구석구석을 밟고 돌아가다가 탁자우의 커피잔을 들었으나 곧 도로 놓고말았다.

《코트, 나는 불안하오. 이럴 땐 어떻게 하면 좋소?… 당신은 왜 말이 없소? 당신생각을 좀 말해보오. 과연 다께오의 말이 옳았단말인가?… 정말 놀라운 일이요. 무슨 힘이 저들을 불사신처럼 싸우게 하는것일가. 태평양의 일본군 같았으면 벌써 동쪽을 향해 무릎꿇고앉아 배를 갈랐을게 아니요?…》

맥아더는 극동군총사령부 민정국제13처에서 미군을 위해 봉사하고있는 이전 일본군참모본부 작전과장이며 일본륙군에서도 가장 유능한 소장파장교였으며 뛰여난 군사외교관이기도 했던 미끼 다께오가 쓴 보고를 다시 상기하였다. 그는 맥아더의 인천상륙을 다음과 같은 리유로 반대하였다.

《…우리는 지난날 관동군의 작전수행과정에 김일성장군유격대토벌에 직접 관여해본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있다. 그들은 게리라전의 능수들로서 그 어떤 포위망도 뚫고나가며 그 어떤 협착공세에도 파렬구를 뚫는다. 그들과 싸우자면 전선이라는 개념을 버려야 한다. 한정된 전선이 없어지고 모든 부대들, 적아간의 무장인원들이 뒤섞이고 혼란된다. 유능한 작전가도 군사령관도 숲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과 같이 되고만다. 그러므로 인천은 너무 멀다. 인천상륙이 성공한다고 해도 북조선공산군주력부대들을 포위섬멸한다는 작전적의도는 현실성이 없다. 용의주도한 그들을 포위한다는것은 채로 물을 치는것과 같게 될것이다. 때문에 북조선공산군의 배후에 상륙하기를 원한다면 군산을 택해야 한다.…》

그의 이 주장엔 휘트니준장도 동감을 표시했었다.

그렇다면 과연 내가 허세를 부리고있단말인가? 군산상륙을 주장한 다께오가 옳았단말인가? 과연 그의 주장처럼 저 북조선공산군은 결코 이겨낼수 없단말인가?… 그는 목에서 피대가 부풀어오르는듯 했다. 바로 그때 휘트니가 처음으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각하, 도박에 이기려면 한시도 자기를 의심치 말아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맥아더는 추운듯 어깨를 으쓱했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 아침까지도 월미도는 저항을 계속했다.

상륙함대의 모든 포문들이 불을 토하고 함재기들이 동체에 불이 일 지경으로 출격을 계속했다. 순양함의 400mm주포, 203mm포, 로케트포, 4인치고사포, 8련발속사포, 버커즈포들에서 오렌지색의 불길이 예광탄에 이어 섬광처럼 날카로운 탄도를 그었다. 섬은 쉴새없이 이글거리는 화염속에 몸부림치고있었다. 그속에 생명체가 살아있다고 과연 어느 누가 믿을수 있겠는가!… 그러나 벌써 첫날에 구축함 《콜레트》호가 포탄 9발을 얻어맞고 침몰되고 다시 《칼크》호가 3발을 얻어맞는 등 참사가 계속되는 가운데 20척의 중소형함선, 함정들이 전투서렬에서 물러났을 때 맥아더의 불안은 극도에 달하였다. 그는 해군상륙지휘관 도일소장을 자기 방에 불러들여 말하였다.

《워커중장이 보내온 전문에 의하면 락동강전선의 북조선군은 아직 끄떡없다고 하오. 어쩐지 불길하거든… 아무래도 생각을 바꾸어야 할가 보오. 이제라도 군산에 새로운 상륙작전을 실시합시다. 계획을 추진시켜주오.》

《…》

도일소장은 아무말도 못하고 물고기처럼 입만 넙적거리고있었다. 그것을 띄여보자 맥아더는 피나는 증오감에 몸을 떨었다. 월미도에서 완강히 저항하는 그 알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증오감, 자기가 상대하여 싸우는 이 나라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미칠듯 한 증오감이였다. 그는 안면근육이 굳어져있는 도일소장을 이윽토록 지켜보다가 강경하게 덧붙였다.

《시간이 없소. 빨리 준비하시오. 군산으로!…》

그런데 15일 아침, 운명적인 보고가 들어왔다. 5해병련대 3대대가 《엘 씨브이 피》함 16척에 분승하여 11대의 땅크와 함께 섬에 첫발을 올려놓았다는 보고였다. 맥아더는 다시 도일소장을 불러 처음으로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만두겠소. 군산상륙은 그만두겠소.》

상륙대대의 1진이 섬안으로 전진한다는 보고를 받자 부관인 번커대좌를 불러 중순양함 《로체스터》호의 미7함대 사령관에게 축전을 보내게 했다.

즉석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생각해내여 불러주었다.

 

《미해군과 해병대에 오늘아침보다 더 영광이 빛난적은 일찌기 없었다. 당신들에게 신의 축복을!…
                       더글라스 맥아더.》

 

오후 2시가 지나서 맥아더는 월미도에 오르겠다고 해서 막료들을 놀라게 했다. 휘트니와 도일소장이 극력 만류했지만 그는 섬을 직접 돌아보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었다.

아직도 화약연기와 눈을 쓰리게 하는 검푸른 불구름이 거침없이 굼실거리며 기여다니는 속을 그는 걸어다녔다. 무너진 교통호에서 한참동안이나 지꿎게 무엇을 찾기도 했다. 발밑에 밟히는 파편과 탄피, 불타다 남은 보총, 빈 탄약상자… 어느 한 갱도입구에서 또 오래도록 걸음을 멈추고있었다. 그는 71살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미칠듯 한 흥분에 몸을 떨면서 그 어둑컴컴한 갱도속을 들여다보았다. 엿가락처럼 녹아휘여든 포신, 형체없이 타버린 고무바퀴, 포탄깍지, 아직도 끄물끄물 연기를 피워올리고있는 동발목… 그는 숨을 죽이고 생각하였다. 이들은 모두해서 4문의 포를 가지고 우리와 맞섰다. 포병 1개중대와 보병 1개중대가 그토록 어마어마한 상륙함대와 감히 맞섰고 3일동안이나 상륙을 저지시켰다. 보통 상식으로써는 도저히 상상할수 없고 믿을수 없는 일이 여기 월미도에서 벌어졌다. 하다면 불가사의한 그 힘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것일가, 무엇이 그들을 불사신으로 만든것일가?…

별안간 목이 타들고 숨을 쉬기가 헐치 않았다. 그는 그것이 쓰린 연기때문만이 아니라는것을 알고있었다. 어쩐지 자기의 눈앞에 불길한 검은구름이 빈틈없이 조여드는것 같이 생각되면서 눈이 바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오스스 몸을 떨면서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그것으로 눈굽을 찍으며 돌아서려고 했을 때 갑자기 온통 불에 그슬린 갱도안벽에 새겨놓은 글발을 발견했다.

그는 흠칫했다. 무엇때문에 놀랐는지는 그자신도 알지 못했다. 무슨 글일가, 무엇이라고 새겨놓았을가?… 통역관을 소리쳐 부르자 여러 막료들까지 밀려왔다.

통역관은 꺼멓게 탄 동굴벽을 손으로 더듬더니 큰소리로 바위에 정으로 새겨놓은 글발을 읽었다.

김일성장군 만세!》

그때 맥아더는 온몸이 오싹해나는것을 느꼈다.

갑자기 무서운 공포에 휩싸인듯 엉겁결에 손으로 굴벽을 짚으며 뒤걸음쳤다.

그것을 상기하자 또 가슴이 흠칫 떨려났다.

바위벽에 정으로 새겨놓은 그 글발이야말로 그가 찾고있는 그 신비의 근원에 대한 대답이 아닐가?…

그것이야말로 그처럼 적은 력량으로 어마어마한 상륙부대를 3일동안이나 저지시킨 그들에 대하여 그리고 오늘 허리에 낫을 찬 한 농군이 단신으로 수류탄을 던지며 달려든 그 놀라운 일에 대한 대답도 주고있는것이 아닐가?…

맥아더는 여전히 쌍안경을 내다보고있었지만 속으로는 가지가지의 복잡한 생각을 굴리고있었다. 갱도벽에 새겼던 글줄과 오늘 길가에서 사살된 농군의 품에서 나온 토지분여증서의 글줄간에는 확실히 무슨 련관이 있을것이다… 만약 그것만 밝히면 보잘것없는 병력으로 어마어마한 상륙부대의 전진을 걸음마다 못박고있는 그 믿어지지 않는 힘의 근원도 밝혀질것이다.

그는 쌍안경을 내렸다. 피로해진 두눈을 비비며 어두워지고있는 전방을 바라보았다. 콜세아전투기들이 또 출격을 시작했다. 하늘이 무너져내리는듯 요란한 굉음이 머리우에서 파도쳤다.

피할길 없는 죽음에 부닥쳤을 때 사람들은 누구나 다 영악스러워지는 법이다. 태평양전쟁시기 일본군들도 포위된 섬들에서 필사적으로 항거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농군은?…

서울의 상공에 검누른 구름이 덮였다.

그때 모터찌클 한대가 요란스러운 재채기소리를 터뜨리며 달려왔다. 스미스소장이 마주나가 한 해병중좌의 보고를 받더니 맥아더에게로 달려왔다.

《각하, 5해병련대에서 돌파구를 열었습니다. 선견대의 땅크들이 방금 잠실나루쪽으로 뚫고들어갔다는 보고입니다.》

《?!…》

순간 맥아더는 기쁨보다도 무서운 의혹심이 휩싸였다. 이곳의 전쟁관현악은 벌써 불협화음을 울리기 시작했었는데 그처럼 쉽게 돌파되다니? 혹시 이것이 적들의 계책이라면?… 보병도 같이 돌파했는가 아니면 땅크들만이 뚫고나갔는가를 묻고싶었다. 그러나 그러한 세부들까지 총사령관인 자기가 관심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 중요한것은 사소한 성과라 해도 그것을 귀중히 하고 성공에로 부르는 한점의 불빛처럼 비쳐줄줄 아는것이다.

《좋소, 아주 좋은 일이요.》 맥아더는 자기를 과장하는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 소식이 있기를 기다렸소. 오늘 다시 온 세계는 당신과 당신의 사단을 알게 될것이요.》

그는 큰소리로 말하며 가죽잠바호주머니에서 륙군은별훈장을 꺼내였다.

《빛나는 사단의 빛나는 지휘관에게!…》

얼굴을 붉히는 스미스소장의 가슴에 훈장을 달아준 다음 맥아더는 오른손으로 상대방의 오른손을 잡고 왼손으로 상대방의 팔굽을 누르는 그에게만 고유한 독특한 악수로 친절과 격려의 뜻을 표했다.

《인젠 때가 된것 같소. 난 도꾜로 돌아가겠소. 장군, 곧 서울에서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라오.》

《그렇게 약속합니다. 각하!》

스미스의 청높은 대답이였다. 뜻밖의 감명에 젖은 그는 자기가 얼마나 엄청난 약속을 하는지 미처 깨닫지 못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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