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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조선의 힘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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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5,575회 작성일 19-12-13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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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밤은 깊었다. 창밖은 물론 집무실의 구석구석과 방바닥에도 빈틈없이 두터운 어둠이 둘러싸고 겹치고 깔려있었다. 등갓을 씌운 탁상등불빛만이 탁자로부터 창가에 이르기까지 가까스로 어둠을 밀어내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 그 창가에 서계시였다.

밤은 평온과 안정을 가져다주며 휴식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심각한 사색에 잠겨 이밤도 시간을 잊고계시였다.

서울과 락동강전선에 조성된 어려운 정황때문만이 아니다. 후퇴가 시작되면서 나타난 일부 심중한 문제들때문이였다.

물론 승리적으로 줄기차게 전진해가던 공격부대들을 그 목적지 바로 코앞에서 멈춰세우고 돌려세운다는것은 례사로운 일이 아니다. 최대속력으로 달리던 기관차에 급제동을 건다면 모진 충격으로 차량들이 세차게 흔들리고 련결부위가 끊어져나가고 부딪치고 찢겨지고 레루에 쓸린 차바퀴들에서는 불이 펄펄 일것이다. 바로 그처럼 많은 지휘관들이 충격을 받고 뒤흔들렸었다. 최현은 격하여 제발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고함을 쳤다고 한다. 전쟁의 승리를 이제 며칠안팎으로 내다보고있던 그였으므로 피흘려 넘어간 락동강을 도로 건너오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부터 너무도 분하고 절통하여 고질적인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류경수는… 부드럽고 단정한 그였지만 전선사령부의 문앞에까지 땅크를 타고 들이닥쳤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땅크에서 뛰여내렸을 때 김책이 폭우속에 나와 버티고 서있는것을 보고는 기가 죽어서 사령관을 만나 사실여부를 확인하려 했다고 중얼거렸다 한다. 그 말을 하는 김책의 목소리도 떨리고있었다.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보고도중 몇번이고 말을 멈추군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것들은 예상외의 일이 아니다. 놀라운것은 일부 지휘관들속에서 나타나고있는 혼란과 동요, 절망의식의 표현들이다. 그 한 실례로 무정은 권총을 빼들었다고 한다. 가차없이 벌하고 징계함으로써 칼날같이 군기를 세워야 한다고 부르짖는다고 한다. 후퇴를 하는 때인만큼 사람들을 무섭게 달구고 닦아세우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는것이다.

무정은 오늘 한 공병중대장을 체포하여 총살할것을 명령하였다. 그 중대장이 명령에 불복하여 엄중한 후과를 빚어냈기때뿐이였다. 그런데 그 중대장은 10여명에 달하는 부상병들이 오지 않아 기다리다가 불의의 습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자신이 희생적으로 위기를 막았으나 무정은 가차없이 벌하기로 했다. 누구든 군사적과오를 범하면 죽음으로 징계된다는것을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피의 교훈으로 새겨주기 위해서였다.

물론 처벌은 당연하다. 군법은 엄하며 전시하에선 더욱 가혹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여기엔 무엇인가가 결여되여있다. 날이 안선 장검처럼, 아픔이 없는 추억처럼 애매하고 어정쩡한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10여명에 달하는 부상병들의 문제이다. 왜 무정은 그들 부상병들에 대해서는 외면하였는가? 련합부대들을 적의 포위속에서 구출할 생각은 하면서도 10여명이나 되는 부상병들은 왜 구출할 생각을 못했는가?… 적어서? 도무지 여라문명밖에 안되기때문인가?… 위험한 견해이다. 보통 병사가 아니라 군집단을 지휘하는 군사지휘관인 까닭에 더욱 위험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탁자앞으로 돌아오시였다. 송수화기를 들고 《백두산》 (최고사령부 통신결속소)을 찾으시였다.

《서해안방어사령부에선 아직 소식이 없소?》

《없습니다. 장군님! 지금 계속 련계를 취하고있습니다.》

《좋소. 기다리겠소.》

탁자우에 펴놓은 지도를 묵묵히 내려다보고계시였다. 최고사령부 총참모장으로 임명된 남일이 자기 사업의 첫시작으로 작성한 정황지도와 전투상보였다. 인천, 서울 지역의 엄중한 정세, 락동강전선에서 방어로 이전한 전선련합부대들의 전투행동이 낱낱이 그려져있었다. 그러나 그이의 생각은 여전히 무정과 한 이름없는 공병중대장에게로 달리시였다. 그 공병중대장을 체포하여 총살할 임무를 받고간 상급예심원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투장에서 전사들과 담화하고 사태를 료해하는 과정에 어려운 때일수록 더 사람들을 아끼고 보호해야 할 자기의 책임과 사명감을 깊이 자각하였다. 하여 그는 대담하게 자기의견을 상부에 제기하였고 김책은 공병중대장을 전사로 강직시켜 전투장에 내보내면서 피로써 과오를 씻으라고 명령하였다. 그 공병중대장사건은 단순한 군법상의 문제만이 아닌것이다. 그런데 무정은 외곬으로 비뚤게 생각하고있다. 호기있고 결패있는 군사지휘관인 무정은 우리 혁명군대의 모든 규정과 교범은 뜨거운 동지적사랑과 원칙적단결에서 출발하고있음을 망각하고있다. 그는 또한 이 전쟁에 떨쳐나선 우리 인민군전사들이 책벌이나 군사재판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참된 삶을 안겨준 우리 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도 억세게 잘 싸우고있다는것을 모르고있다. 그리하여 전사들의 운명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립장에 선 지휘관만이 군기를 세울수 있다는데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저릿저릿한 아픔을 누르며 여전히 탁자우의 지도에 눈길을 주고계시였다. 남일이 작성한 정황지도, 각일각 엄중한 정세가 조성되고있는 인천, 서울 지역과 락동강전선의 실태가 낱낱이, 정확하게 반영되여있는 지도… 별안간 흠칫 놀라시였다. 고즈넉한 정적을 깨뜨리며 전화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있었다. 그이께서 급히 송수화기를 드시였다.

《장군님, 최용건입니다. 행주나루방어진지에서 금방 방어사령부에 돌아왔습니다.》

《아, 최용건동무, 기다렸습니다. 그새 정황이 달라진것은 없습니까?》

《장군님, 보고드리겠습니다.》

최용건은 서둘지 않고 천천히 보고드리기 시작했다.…

어제부터 적들은 미제1해병사단과 괴뢰군해병대들로 한강좌안을 강점하며 미제7보병사단과 괴뢰군 17련대로는 서울을 동남쪽으로부터 타격하려고 시도하였다.

날이 밝자부터 인천앞바다에서 날아오른 수백대의 비행기들이 인천-영등포사이의 큰길을 따라 파도식으로 밀려들었다. 그리하여 소사, 약대리, 할미산 일대를 비롯한 한강좌안은 아침부터 낮까지, 낮부터 밤까지 수십수백차례이상 불에 휩싸였다. 공습이 끝나면 바다우에 뜬 수백척의 함선들에서 각종 구경의 함상포들이, 지상에서는 200여대의 땅크와 수백문의 곡사포, 평사포, 박격포들이 일시에 울부짖었다. 그러나 가혹한 그 초토화작전에도 불구하고 영등포일대에서 한강을 도하하려던 적들의 기도는 파탄되였다. 닷새동안이면 서울을 점령하고 우리의 전선과 후방을 차단하겠다고 그리도 호기있게 선언해온 맥아더였지만 아직 한강도 건느지 못하고있다.

적들은 다른 출로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돌연 영등포일대에서의 한강도하를 포기하고 김포방향에로 주타격방향을 바꾸었다. 이러한 정세를 요약하면서 최용건은 보고를 계속하였다.

《한편 적들은 미제1해병사단 주력을 수색-서울사이의 큰길과 철길로 공격케 하고있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문천에서 기동해온 독립부대와 제143땅크련대를 중심으로 반돌격력량을 편성하고있습니다. 오늘밤… 계획하고있습니다.》

《음-》 김일성동지께서는 연필로 지도에 《143》이라는 수자를 써넣으시였다. 《봉대산일대의 방어부대들은 누가 지휘합니까?》

《김증동동무입니다. 어제 도착하자바람으로 지휘에 착수하였습니다.》

《좋습니다!-》 그이께서는 또 지도에 표식을 하시였다. 《그런데 최용건동무, 적들이 서울 동남쪽 서빙고일대와 성동구방향에로 침입하려는 기도는 보이지 않습니까?》

《아직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찰을 강화하겠습니다.》

《아니, 그래가지고는 늦습니다. 영등포일대와 서대문구의 공격에서 실패한 적들은 우리의 방어가 약한 동남쪽으로 주공방향을 바꿀수 있습니다. 그때에 가서 부대들을 기동시킨다면… 혼란만 가져올뿐입니다. 즉시 서울시 원형방어를 조직하여야 하겠습니다.》

《원형방어말입니까?》

《물론 병력도 물자도 시간도 부족한 형편에서 대단히 어려울것입니다. 그렇지만… 지체해선 안됩니다. 그쪽에도 방어축성물을 만들어야 합니다. 참, 서울시 내부방어공사는 어떻게 되고있습니까?》

《예,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전선부대들이 차지한 진지의 후면으로부터 시가중심에 이르기까지 벌써 700개이상의 방어축성물을 만들었습니다. 수십만 서울시민들이… 놈들의 폭격과 포격이 계속되는 속에서도 계속 동원되였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최용건은 흥분한것 같았다. 별안간 어조를 바꾸어 이렇게 덧붙였다.

《한덕모라는 기관사를 만났습니다. 지금 철도기관구 로동자들로 지원병대대를 뭇고 싸우고있습니다.》

《음- 반가운 소식입니다.》

《제가 장군님께서 보내시는 인사의 말씀을 전했더니… 그 동무뿐아니라 전대대가 감격하여… 마지막 피한방울까지 바쳐 싸울것을 맹세다졌습니다. 오늘아침 그들은 행주나루계선의 방어진지로 자원해나갔습니다.》

《그렇습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다. 지난 7월 전선수송지원대를 뭇고 첫 렬차를 몰아가던 그 기관사가 오늘은 서울방어의 최전연에서 로동자지원대대를 지휘하고있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최용건동무, 래일까지 서울시 원형방어준비를 끝내야 하겠습니다. 서대문구와 영등포일대의 방어부대들중 일부를 떼여 기동시키고 의정부계선에서도 증강할수 있습니다. 방어축성물공사는 서울시민들에게 호소하시오.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는 전인민적항전의 바리케트로 서울에서 놈들의 침공을 저지시켜야 합니다.》

《장군님, 알았습니다!》

최용건의 힘찬 대답소리는 공명판을 쩡쩡 울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전화를 끝내고 지도우에 몇가지 표식을 더하시였다. 그리고나서 쏘파에 가서 앉으시였다. 자정이 넘은지 오래다. 창밖에는 여전히 짙은 어둠이 재빛의 융단처럼 드리웠고 한줄기 찬이슬이 얼룩을 그리며 유리우를 천천히 오불꼬불 기여내리고있었다.

그이께서는 눈을 감으시였다. 다문 얼마동안이라도 눈을 붙이셔야 했다. 아늑한 집무실, 숙연한 정적이 발밑의 주단우를 안개처럼 흐르는듯 느껴지시였다. 그 유연한 흐름은 소리도 없이 계속 멀고먼 기슭으로 이어져갔다. 화광에 물든 강물이 그 흐름을 덮씌우기 시작했다. 불타는 강, 화염의 강 락동강이였다. 배떼다리가 흔들거렸다. 적땅크들이 소리도 없이 그리로 달려들고 다리우에서는 권총을 쥔 무정이 무섭게 웨치고있었다. 키는 크지 않으나 튼튼한 두다리를 떡 뻗치고 선 그의 모습은 위엄찬것이였다. 말총처럼 빳빳해보이는 검은 머리칼이 장령모의 귀밑에 삐여져나와있었다.

무정!… 본명은 김병희, 고향은 청진이다. 젊은 나이에 혁명의 웨침소리로 들끓던 동북지방과 산해관너머의 중국내륙각지를 찾아다녔고 그동안 여러번 족쇄를 차고 감옥살이도 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무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견결하고 굽힐줄 모르는 투지로 하여 그는 8로군의 중급지휘간부로까지 되였다. 2만 5천리장정때엔 모택동을 옹호하면서 당시 중앙의 통수권을 장악하기 위해 비렬하게 책동하던 장국도의 반혁명적기회주의로선을 대담하게 반대해나섰다. 8. 15해방직후 곧 조국에 달려나온 그는 조국과 인민을 위해, 혁명을 위해 헌신분투할 굳센 결의에 넘쳐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견결한 정신과 의지의 소유자인 그를 아껴주시였다. 그의 투쟁경험과 담찬 투지를 믿고 인민군대의 고위군사지휘관의 일원으로까지 내세워주시였다. 그런데 그 무정이 지금 군벌관료주의적경향으로 나가고있다. 동지들을 아끼지 않고 가혹하게 벌하는것을 서슴지 않는다. 혁명의 나날에 모진 시련도 수없이 헤쳐온 그가 벌써 동지의 귀중함을 잊다니!… 그 동지 한사람, 한사람을 얻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을 바쳤던가!… 그런데도 10명이상이나 되는 부상병들, 그들을 후송하러 간 간호원, 담가병들을 감히 버리다니!… 참을수 없으시였다. 가슴이 찢기는듯 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어느새 날이 밝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집무실을 나가시였다. 밖에 나서자 근무를 서고있던 호위원 리병섭이 차렷자세를 하였다. 그이께서는 한손을 들어 인사를 받으시였다.

《가서 말을 끌어오오.》

리병섭은 깜짝 놀란듯 했다.

《장군님! 아직 시간이…》

《어서 끌어오라구.》

리병섭은 발뒤꿈치를 딱 소리나게 모았다.

《예, 알았습니다!》

그는 인차 돌아왔다. 기세좋은 황부루가 대가리를 주억거리며 따라오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능숙한 솜씨로 말잔등에 오르시였다. 고삐를 툭툭 채자 황부루는 뚜걱뚜걱 힘차게, 차츰 속도를 높여 빠른 구보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새벽에 말을 타고 달리는것을 새날의 첫 일과로 삼으시였다. 새벽의 고요한 정적을 깨뜨리며 네굽을 놓고 달리는 말발굽아래 편자에 부딪친 돌들이 반디불같은 불꽃을 사방 튕길 때, 땀으로 미역을 감은 말들이 거품침을 뭉치뭉치 떨구며 푸릉푸릉 코김을 불어댈 때, 갈기사이로 갈라지는 세찬 바람을 맞받아 내달리는 그 박력있는 운동감과 육체적 및 정신적인 변화와 도약, 새날의 첫 출발에 원기를 북돋아주는 그 모든 가락과 리듬을 즐겨하시는것이였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그것은 단순히 례사로운 아침일과로만 된것이 아니였다. 그이께서 마음이 괴로우실 때마다 어뜩새벽에 말을 달리신다는것을 사람들은 알게 되였다. 속도가 빠른 절다말, 가라말, 황부루 할것없이 번갈아 잔등이 푹 젖어 돌아오군 하였다. 돌아오는 즉시 그이께서는 일에 착수하시였다. 그리고 그런 날은 하루의 긴장한 사업이 18∼20시간이나 계속되군 하였다.…

갑자기 김일성동지께서는 고삐를 힘껏 당기시였다. 황부루는 한발을 높이 들고 곤두서더니 요란스러운 호용소리를 질렀다. 그이께서는 한동안 놀란 눈길로 주위를 살펴보시였다. 얼마후에야 왜 그리도 거리가 조용한지 알아차리시였다. 호위원 리병섭이 하던 말이 생각나시였다. 자정이 넘은 한밤중에 벌써 새벽일과를 시작하신것이였다.

그이께서는 말에서 내려 고삐를 잡고 천천히 걷기 시작하시였다.

거리는 잠들어있었다. 미친듯이 하늘을 썰던 폭격기들의 앙칼진 쇠소리와 지동치는 고사포소리는 물론 하늘을 샅샅이 뒤지던 탐조등마저 눈을 감아버렸었다. 파괴된 거리, 인적없는 거리, 불빛도 없다. 허리 꺾어진 가로수가 무너진 바람벽우에 넓은 잎가지를 한아름 편채 동댕이쳐있었다.

이 거리에 비좁게 들어앉았던 가게방, 료리점, 약국, 사진관, 려관 등의 간판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어둠, 싸늘한 정적, 규칙적인 말발굽소리만이 죽은듯 잠들어버린 거리에 뚜걱뚜걱 단조롭게 울렸다.

그이께서는 비로소 손목시계를 눈가까이 바투 가져다보시였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도 멀었다.

…실실이 드리운 버들잎들이 어깨에 스쳤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말고삐를 잡고 기울어진 전주대쪽으로 걸어가시였다. 그때 길가에 멎어선 승용차가 눈에 띄시였다. 그곳에서 두사람이 기관실덮개를 열어젖히고 머리를 맞대고있었다. 한사람은 운전사일것이고 다른 사람은 중절모를 쓴것으로 미루어 차를 타는 일군인듯 했다.

말발굽소리가 다가오자 두사람이 동시에 머리를 돌렸다. 먼저 중절모가 길우에 뛰여내렸다. 모자를 벗어들고 부르짖었다.

《장군님!-》

다음순간 급작스럽게 기침소리를 터쳤다. 병기생산국 서병호국장이였다. 몸이 체소하고 늘 얼굴에 병색이 도는 사람인데 사업에서는 놀랄 정도로 이악하고 내밀성이 있다는 평판이였다. 언제나 현장에서 침식을 하고 로동자들과는 허물없이 대하나 공장간부들은 무섭게 다몰아친다고 했다. 아까운 일군인데 건강이 좋지 못하다고 언젠가 김책이 걱정스럽게 말한 일도 있었다.

《서동무, 이 새벽에 무슨 일이요?》

그이께서 가까이 마주가시자 서병호는 몸둘바를 몰라하며 쭈밋거렸다.

《장군님! 실은 저…》 말씀드리기 딱한듯 바재이다가 더 낮아진 목소리로 계속하였다. 《이 문제는 따로 보고드릴가 했습니다만… 한 일군이…》

《어서 말하오.》

《예, 리성조라고 전기관리국에서 기사장을 하던 사람이… 도주했습니다.》

《도주?…》 김일성동지께서는 놀라시였다. 《도주하다니, 그가 왜 도주한단말이요?… 사실을 확인해봤소?》

《예, 확인해봤습니다. 얼마전 내각사무국에서 그를 우리 병기생산국사업에 인입시켰는데… 제가 직접 그를 군수공장에 파견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공장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도주했다고 볼 근거야 없지 않소?》

《그렇지만 집에도 없습니다. 알아보니 그의 처도 사흘전인가 짐을 싸들고 어데로 가버렸다고 합니다. 그것도 밤중에 몰래 사라졌다고 합니다. 장군님! 벌써 해당일군들이 다 확인했습니다.》

《?!…》

황부루가 발을 저겨디디며 투레질을 해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도 모르는새에 고삐를 계속 감고계시였다. 팔목이 저려나는것도 미처 의식하지 못하시였다.

리성조는 광복전 일본와세다대학 전기공학과를 나온 기술자였다. 그의 아버지는 지난날 평안도지역에 가지고있던 많은 땅을 팔아 대구소림광업주식회사의 주권을 산 이후 서울로 옮겨갔으나 그는 남았다. 그만은 왜 남았는가 하는 문제로 일부 사람들이 고개를 기웃거린 일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더우기 해방후 서울에서 사람이 데리러왔었고 리화녀전졸업생인 그의 후처가 서울로 나갈것을 눈물로 간청하여 행장을 꾸린적도 있다는데 무슨 일로 다시 주저앉았는가 하는것이였다. 북에 남아있어 그에게 유리해보이는 점을 그들은 아무리 해도 찾아볼수 없었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 그를 처음으로 아시게 된것은 1946년 4월 어느날이였다. 그날 장시간의 담화가 있었다. 여기서 리성조는 자기의 필생의 뜻이 《조선의 전기불이 꺼지지 않게》하는것이라고 했다. 그의 이 말을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적으로 믿으시였다. 그가 해방전 아무런 보수도 없이 순수 자비로 조선북부 강하천들을 답사하며 수력자원을 찾았다는 단 하나의 사실에 깊은 주의를 돌리시였던것이다.

얼마후 리성조는 산업성 전기관리국 기사장으로 임명되였다. 다시 얼마후 그는 수풍발전소가 전례없는 대홍수로 물이 넘어나면서 언제물받이구조물(에프론)이 크게 파손되였을 때 현지에 파견된 기술자일행을 책임졌었다.

진지하고 소박하면서도 끈덕진 사람이였다. 넥타이 매는 법을 종시 배울수 없어 려행을 떠나서는 늘 그 모양대로 늦춰놓은채 걸어둔다고 했다. 미인으로 소문난 후처를 끝없이 사랑하나 그들사이엔 자식이 없다고 한다. 전처에게서 난 딸은 대학을 다닌다고 했던것 같다. 참, 이름이 뭐랬던가?… 체육과 예술활동에서 또 학과실력에서 뛰여난다고 했다. 수풍발전소의 에프론공사때문에 현지에 가 계실 때 그런 말을 들으신 일이 있었다. 그날 리성조는 류달리 얼굴이 밝았고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있었다.

《무슨 좋은 일이 있는게 아니요. 성조동무?》

이렇게 그이께서 먼저 물으시였다.

《장군님!》 리성조는 서슴지 않고 대답올렸다. 《종전에 라지오에서 제딸이… 웅변을 했습니다. 전국대학생웅변대회 우승자들의 연단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렇소?!… 그거 참 반가운 소식입니다.》하고 그이께서도 기뻐하시였다. 《그걸 왜 나한텐 알리지 않았소? 나도 함께 들어보았을걸…》

얼굴을 붉히며 면구스러워하는 그에게 따님의 이름이 무엇인가고 물으시였다.

《리숙이라고 합니다. 장군님!》

리성조의 대답이였다.

그렇다. 리숙!… 비로소 생각나시였다. 인상적인 두자 이름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날 유일한 살붙이인 자기의 외동딸에 대해서 무한한 애정을 담아 말하던 리성조의 얼굴을 그려보시였다. 순진하고도 열정적인 인간이였다.

과거를 결별하는데서도 주저를 몰랐던 강한 의지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서병호를 유심히 바라보시였다. 어둠때문인지 아니면 워낙 체질이 약해서인지 그의 얼굴은 유별나게 까시시해보였다. 오한이 나는듯 했다.

《리성조라면 나도 잘 아는 동무인데… 국장동무, 좀더 알아보시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서병호는 체소한 몸에 비해 류달리 굵은 목청을 가지고있었다. 그런데 그 목소리에 자신심은 없었다. 무엇인가 우려되는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닌듯 했다.

《장군님!》 마침내 그가 또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 인민군대가 후퇴한다는 소문이 돌면서부터 일부 사람들속에서 동요가 일어나고있습니다. 지어 어떤데서는 반동적인 요언이 떠돌고있는 형편입니다. 그런것만큼 저는…그 리성조라는 사람이 우리 국사업과 관련된 비밀도 적지 않게 알고있으므로 제때에 일부 사업을… 변경시키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인적없는 밤길에 나섰을것이다. 온밤 잠을 못자고 뛰여다녔을수도 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고삐를 당겨 말의 갈기를 쓸어주시였다.

《물론 동무의 심정은 리해되오. 하지만 서동무, 우선 믿고봅시다. 어려운 때일수록 사람들을 더 믿어야 하오. 이 믿음이 없이는 어려운 싸움을 이겨내지 못하오.》

잠시후 그이께서는 말고삐를 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웬일인지 마음이 무거우시였다. 서병호가 하던 말들이 계속 상기되시였다. 리성조가 도주했다, 사람들이 동요하고있다, 반동요언들이 떠돌고있다!…

물론 위급한 정세에 기가 질린자들이 적지 않다. 때를 기다리고있던 반동놈들 역시 도처에서 머리를 쳐들고있다. 흔히 그 어느때나 시대의 벽장틈에 몸을 숨기고 빈대처럼 살아가는자들이 있는 법이다. 어둠이 깃들면 기여나오고 불을 켜면 다시 숨어버린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개별적현상에 사로잡혀 보다 큰것을 보지 못하는 거기에 있다. 한그루의 나무에 사로잡히면 숲을 보지 못하는 법이다!…

부지중 무정의 일이 또 상기되시였다. 그도 승리적으로 진격할 때엔 지금같지 않았다. 후퇴가 시작되자 정신적변동이 일어났다. 앞으로 이러한 비정상적인 사태들이 또 얼마든지 있을수 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제 적들의 침공을 저지시키는 어려운 싸움뿐아니라 패배주의와의 심각한 투쟁이 또 시작되였다는것을 발견하시였다. 그것도 하나의 큰 전선이다. 적들과의 피어린 싸움에 못지 않은 중요한 전선, 간고한 사상전선이다. 그러므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승리의 신념으로 전체 인민을 튼튼히 무장시켜야 한다.

그이께서는 돌아가시는 즉시 서울에 나가있는 문화선전상 허정숙을 급히 소환하실것을 결심하시였다. 그리고 인차 각 도당위원장들의 협의회를 여실 생각이였다. 그 협의회에서 토론될 주요의제들을 생각하며 언제 날이 밝기 시작했는지도 알지 못하시였다.

멀리 강건너 사동중앙병원쪽에선가 수탉이 홰를 치며 울어대고있었다. 어느새 대기는 투명해지고 도처에서 선잠을 깨는 은밀한 음향이 느껴지시였다.

갑자기 그이께서는 걸음을 멈추시였다. 기총탄자욱으로 흉하게 된 국립예술극장앞마당에서 웬 로인이 마당을 쓸고있는것을 보신것이였다. 보통키에 흰옷차림을 한 로인이였다. 머리도 희끗희끗하고 송라같이 내리드리운 아래수염도 희여스름했다. 전설에 나오는 백설로인처럼 깨끗하고 근엄했다. 로인은 로타리건너편에서 걸음을 멈춘 황부루를 멀거니 보더니 허리를 굽혀 무슨 깨진 기와장이며 벽돌쪼각들을 주어던지고 다시 천천히 비자루질을 계속 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로인에게서 한동안 눈길을 떼실수 없었다.

마음이 뜨거우시였다. 새벽안개속의 수염발드리운 로인이 고맙고 귀중하게 느껴지시였다.

그렇다. 인민은 드팀없다. 어느때든 인민의 마음은 굳건하다!…

그이께서는 다시 말잔등에 오르시였다. 차츰 속도를 놓기 시작하면서부터 련속 박차를 차시였다. 편자밑에서 불꽃이 튀였다. 말갈기에서 갈라진 바람의 에이는듯 하는 휙휙 소리가 끊임없이 귀전을 스쳐갔다.

모락모락 연기를 뿜는 굴뚝들이 늘어갔다. 구기자넝쿨이 성한채로 남은 어느 울바자 안쪽에서는 뒤덜미에 커다란 비녀를 꽂은 아낙네가 걸싸게 뽐프질을 해대고있었다. 서평양조차장쪽에서 목메인듯 한 기차의 기적소리가 울려왔다. 전쟁의 하루가, 례사로운 수도의 새날이 또 시작되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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