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전선의 아침 제9회 > 통일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통일게시판

장편소설 전선의 아침 제9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6,576회 작성일 20-01-19 22:25

본문

01.jpg


제  2  장

 

릿지웨이대장은 미8군사령부를 거쳐 도꾜로 다시 돌아오자 자기가 근 한해동안 틀고앉아있던 미극동사령관방을 찾아갔다.

그는 그만 허구픈 미소를 짓고말았다. 며칠사이 방안장식이 온통 달라져버렸던것이다. 자기가 품을 넣어 구입해왔던 흑단책상이며 일본《천황》 히로히도가 생색을 내여 보내왔던 명치시대의 옛참대팔걸이의자들은 간데온데없이 사라지고 록색비로도를 씌운 낡은 사무탁과 응접탁, 색이 벗겨진 수수한 참나무걸상들이 벽면을 따라 주런이 놓여있을뿐이다.

여전한건 호두나무쪽무이벽과 1941년 12월 7일 미국회청사에 날렸던 성조기가 사무탁뒤에 세워져있는것이다. 결국 클라크는 맥아더가 이 일본보험회사건물의 6층에 처음 자리잡았을 때 야전식으로 차렸던 모양새를 복구한셈이다.

릿지웨이는 록색비로도를 씌운 응접탁옆에 주저앉으며 이마살을 찌프렸다.

무엇인가 자기, 릿지웨이라는 존재를 전면부정하려는 클라크의 로골적이고 완강한 심리가 엿보였던것이다.

아마빛 장발에 목과 허리와 다리가 가는 녀성장교가 커피잔을 들고 방에 나타났다.

허벅지를 먼저 앞으로 내미는 그 률동적인 걸음이 이 초라한 야전식 방풍경을 대번에 바꾸어버리는듯 싶어 릿지웨이는 애써 불쾌한 감정을 털어버렸다.

《귀하는 아직 잠자리에 계시오?》

《지금 면도를 하는중입니다. 곧 이리로 오십니다.》

녀서기는 커피잔을 놓아주고 쌀쌀하게 돌아서서 방을 나가버렸다.

릿지웨이는 비위에 거슬렸지만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턱으로 다가갔다.

이 서쪽의 큰 창문에서는 《천황》의 《황궁》이 환히 보였다.

소나무숲과 봄빛에 번쩍이는 물홈너머로 푸른 기와를 얹은 고색창연한 옛 건축물이 뚜렷이 안겨든다.

(흠, 결국은 《가미가제》가 저 환란의 건물을 2천 600년동안이나 지켜주었단 말이지… 신의 바람이라… 하지만 미국사회에서는 력대적으로 적극적이면서도 진취성이 있는 개척정신만을 존중해올뿐이다. 우리는 자기 행동에 대해 오로지 자기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보편적인식만을 갖고있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그 어떤 신의 도움도 얻지 못했을뿐더러 이 침체기의 전역을 실패한 로병으로서 묵묵히 떠나간다. 나의 마지막 주패장, 서천기습작전도 결국 북조선군의 붉은 무한궤도앞에 짓이겨지고말았지. 오, 불우한 땅, 신령스러운 조선, 영원히 저주가 있으라.

그래 클라크, 자네가 이젠 나대신 진창길에서 쇠수레를 끄는 역마가 되여주게…)

릿지웨이는 클라크가 미국방성에서 훈련국장을 할 때 시종일관 극동군전략통수부를 로골적으로 비난해왔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귀하는 일본땅을 떠나며 벌써 감상에 젖어버리는게 아닙니까?》

방에 들어선 클라크의 활기있는 목소리에 릿지웨이는 태연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예, 어쩌면 저 황궁의 살풍경도 언젠가 쓰게 될 나의 전쟁회상록의 한페지를 장식할지 모르지요.

맥아더장군의 상급부관인 페라쯔준장이 늘 외우던 말이 떠오릅니다.

〈사람이 전세계를 얻었다가 그다음 자기의 목숨을 바치게 될터인 즉 거기에 무슨 리익이 있는가.〉》

릿지웨이의 말에 클라크는 억지로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건 구약성서의 한 구절이군요.…》

클라크는 푸릿푸릿한 턱의 면도자리를 손으로 슬슬 쓸어만졌다.

릿지웨이는 마음이 다시 쓰려드는것을 느꼈다.

클라크는 상두대에 놓인 커피잔을 집어들며 솔직한 어조로 말했다.

《귀하, 나역시 큰 강을 건느다 군마를 갈아타지 말라는 격언을 중시합니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하나의 강을 건는셈이지요. 귀하는 이미 조선전선이라는 이 지옥의 강을 강행도하하였고 이제 런던교외의 부쎌공원옆으로 가서 성실한 군인으로서 전쟁회상록을 시작할수도 있을것입니다.》

클라크의 말에는 아이젠하워를 대신하여 이 릿지웨이를 나토군총사령관으로 임명한 인사리면에 자기의 공적도 숨어있다는 은근한 암시가 력력히 내배여있는것이다.

그러자 릿지웨이는 5군사령관시절부터 자기우에 서있었고 사교술과 처세술이 높은 이 사나이에 대해서 한결 호감이 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호감이라기보다 후임자에 대한 안도감이라고 해야 정확할것 같다.

(나토군사령부가 있는 런던교외의 부쎌공원이라…)

오래전, 청년시절에 몇번 체류하였던 런던의 모습이 안개속처럼 뿌옇게 떠올랐다.

영국시인 워즈워스가 매혹적으로 묘사했던 웨스터 민스터 대사원을 감도는 아침안개, 면사포를 쓴것같은 템즈강의 물결, 고지크식건축술의 표본으로 알려진 국회의사당의 첨탑, 벽면에 설치된 《빅벤》이라고 불리우는 옛 리챠드왕시절의 시계종소리…

릿지웨이는 이 순간 이제는 자기의 야전군인시대가 끝나버렸다는 허무감과 동시에 일종의 안도감이 체내에 차오르는것을 쓰겁게 느꼈다.

릿지웨이는 한결 누그러진 시선으로 얼굴이 납작하고 눈이 랭철하게 빛나는 클라크의 활력이 깃들어있는 거동을 유심히 살폈다.

문득 그가 좋아하는 록펠러의 명담이 떠올랐다.

《눅거리를 사서 그것을 비싸게 만들라. 그리고 인차 비싸지지 않으면 도로 팔아버리라!》

릿지웨이는 결국 마음의 안식을 되찾은 기분이였다.

《엘자아가씨, 오늘 아가씨의 머리모양이 류달리 눈부시오. 우리들의 담화가 끝날 때까지 아무도 들여놓지 말아주오.》

클라크의 살뜰한 말에 어느새 다시 나타나서 면도수건을 받아든 녀서기는 도이췰란드식으로 한다리를 살짝 구부리며 흰이를 드러냈다.

《알겠어요.》

허벅지를 먼저 내미는 그 녀자의 독특한 걸음걸이를 보며 릿지웨이는 그만 한숨을 내쉬고말았다.

《귀하, 이제는 인계도 끝났으니 전선전략과 관련하여 나에게 고견을 줄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클라크가 커피잔에서 차숟가락을 꺼내며 의미심장한 눈길을 던졌다.

《당신은 철저히 진실을 알고싶겠지요?》

《내게 필요한건 군인의 랭철한 분석입니다.》

클라크는 딱 잘라 말했다.

릿지웨이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클라크의 질문은 그의 마음을 다시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대통령과 국방성은 결국 실패한 장군인 그를 더글라스 맥아더와 같은 궁색한 처지로까지는 비하시키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군대를 떠나 꼴롬비아대학총장으로 있었고 지금 강력한 정치가로 다음기 대통령선거전략에 나선 아이젠하워의 영향력을 떠나 생각할수 없다. 군인의 한생에 왜 실패와 좌절이 없겠는가. 그래, 나의 마지막기습상륙작전도 끝나버렸다. 황금의 해안은 없다. 문득 일본군에게 되게 혼나 쫓기웠다가 필리핀해안으로 다시 상륙할 때의 맥아더원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맥아더는 보슬비를 맞으며 필리핀해안에 기여올랐을 때 화이바모를 벗어들고 환희에 차서 유모아적으로 소리질렀다.

《여보시오, 필리핀! 내가 돌아왔소! 내가 돌아왔단 말이요. 그러니 나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기 바라오!》

곁에서 부관과 호위병들이 웃어댔다.

《왜 웃는가, 응?》

《모두들 당신이 로병답지 않다고 웃습니다.》

페라쯔준장이 설명했다. 맥아더는 두팔을 벌려보였다.

그날 맥아더는 전장을 돌아보다가 적군시체무지속에서 일본제 시계 하나를 발견하고 큰 보물을 얻은듯이 기뻐하였다. 그는 부하들을 돌아보았다.

《여보, 페라쯔, 미안하지만 이 시계를 기념되게 나의 개인소유물로 해야겠소.》

맥아더는 시계를 군복 웃주머니에 넣어버렸다.

그후 그 전리품을 브리스메인에 있는 젊은 안해에게로 보냈다.…

(하지만 나에게는 영원히 그《명예의 해안》이 차례지지 않을것이다. 그래, 행운은 없다. 신은 이미 이 전쟁에서 밴플리트에게만 아니라 우리 미국에 등을 돌려버렸다.

클라크씨, 아직 우리는 강을 건느지 못했소.…)

릿지웨이는 클라크에게 돌아섰다.

《귀하,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커다란 암벽을 마주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나의 지난해의 두차례의 공세는 결국 전선에서 지상돌파는 불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져왔습니다.》

《귀하는… 얼마전 서천기습작전도 시도했던것 같은데… 지상과 해안작전… 그러니 정전담판만이 유일한 출로라는것입니까?》

클라크가 낯색을 바꾸며 의심쩍은 눈길을 들었다.

《아니, 나는 락관주의자도 아니지만 더우기 비관주의자도 아니지요. 정전담판은 현재형편에서 전략적인 제스츄어에 불과합니다. 북조선군수뇌부는 안개속과 같습니다. 나를 괴롭히는건… 그들의 정신력을 돌파할수 있겠는가 하는것입니다.》

《귀하는 너무… 형상적표현을 쓰는군요.… 하긴 옳을수도 있습니다. 나역시 이 며칠간 연구해보았는데 그보다 더 명석하고 정당한 결론을 찾을수 없었습니다.

지상작전이 불가능하다는 귀하의 의견을 류의합니다. 그리고 북조선군수뇌부가 대단히 세련되고 전략적면에서나 작전전술적면에서 수가 높다는것을 인정합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팽덕회사령원의 전술이 어느 정도 맥아더원수에게 일진일퇴의 전쟁다운 면모를 보여주었으나 귀하는 그 덕을 보지 못했습니다.

팽덕회는 국내전쟁의 경험을 살려 적은 력량과 맞다들면 소멸하고 큰 대상과 맞다들면 싸우면서 퇴각하여 깊이 끌어들인 다음 유리한 지역에서 점차적으로 상대측의 익측과 배후로 기동하여 주력과 배합작전으로 넘어가 타격하였는데 이 전쟁에서는 그것이 크게 맥을 추지 못했습니다.

김일성장군의 전격전의 전략과 불일치가 조성되였다고 할가요?

그렇다면 공격정신이 강한 김일성장군은 지금의 침체기적인 전선을 어떻게 분석할것 같습니까?》

《?!…》

클라크의 눈빛이 번쩍였다.

《옳습니다. 지상공격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해상작전도 역시… 공중타격만이 출로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강력한, 무자비한 그리고…》

클라크는 실눈을 짓고 빈 커피잔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문득 말을 멈췄다.

두 장령의 눈길이 출입문으로 향했다.

눈이 휘둥그래진 터너대좌가 급히 방에 들어섰던것이다.

《각하, 비상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방금 8군사령부에서 련락이 왔는데…》

《대좌, 도대체 무슨 일이요?》

클라크는 바위처럼 든든히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고급부관을 올려다보았다.

《거제도포로수용소 소장 돗드준장이 북조선군포로들에게 포로되였답니다.》

《뭐라구? 포로들에게 포로가 되다니?… 그건 무슨 추태요?…》

클라크는 아연해진 눈빛으로 얼핏 릿지웨이를 돌아보았다.

터너대좌가 조심스럽게 전신용지를 내밀었다.

클라크는 전신용지를 나꾸어챘다. 그의 앞뒤로 눌린듯 한 얼굴이 저으기 이지러졌다.

릿지웨이는 쓰겁게 랭소를 지었다.

 

…1952년 5월 7일 13시 30분, 거제도포로수용소 소장 돗드준장은 장갑차와 기관총소대의 경계하에 군용차를 타고 서북쪽의 수용소로 갔다.

포로수용소 북조선군 및 중국지원군포로들이 전면적인 단식투쟁에로 넘어가 수용소측과의 담판을 제기해왔던것이다.

수용소철문앞에서 돗드준장은 북조선군포로대표들과 만났다.

북조선군포로대표들은 돗드에게 이른바 《자원송환》에 의한 《선별》놀음을 걷어치우며 이를 거부하는 전쟁포로들을 학대하고 식량과 물공급을 중단하는 등 국제협약을 위반하는데 대해 강력한 항의를 들이댔다.

제네바협정 제17조에는 다음과 같이 규제되여있다.

《전쟁포로들로부터 어떠한 종류의 정보를 입수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육체적 및 정신적고문 또는 기타 어떠한 강박도 가해서는 안되며 답변을 거부한 전쟁포로들을 위협하거나 모욕하며 또한 그들에게 어떠한 종류의 불리한 대우를 하여서는 안된다.》

제10조에는 이런 규정도 있다.

《전쟁포로들은 모든 경우에 있어서 인격과 명예를 존중받을데 대한 권리를 가진다.》

돗드가 조중포로들의 항의를 묵살해버리자 그들은 눈깜짝할사이에 와락 달려들어 준장을 사로잡아 수용소 철조망안으로 끌고 들어가버렸다.

대경실색한 미군은 이 수용소를 땅크와 장갑차로 겹겹이 포위하였다.

이윽고 수용소철문앞에 허술한 면내의천에 대충 쓴 영문글발이 나걸렸다.

《우리는 포로수용소 소장 돗드준장을 생포하였다. 그의 생명안전은 담보한다.

우리는 그와 정당한 담판을 진행한후 안전하게 당신들에게 돌려보내겠다. 만일 엄중한 무장행동으로 하여 좋지 못한 후과가 빚어진다면 당신들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뒤따라 돗드준장의 명령도 밖으로 전달되였다.

《사태가 확대되지 않도록 하고 나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절대로 사격하지 말것을 명령한다. 그리고 조중전쟁포로대표와의 회의를 즉각 소집하고 협상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는데 동의하면서 칼슨대좌가 대표들을 영접하고 부대들을 수용소주변에서 적당히 철수시킬것을 명령한다.》

5월 9일, 수용소에서 조중포로대표들이 대표자대회를 열고 《전쟁포로대표자대회가 전세계인민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작성한후 돗드준장에게 다음과 같은 요구조건을 제기하였다.

1. 폭행을 즉각 중지하며 모욕, 고문, 강제혈서, 위협, 감금, 학살을 중지하고 독가스와 세균무기실험을 중지할것.

2. 조중포로들을 비법적으로 《자원송환》시키려는 행동을 중지할것.

3. 조중포로들에 대한 강제《선별》놀음을 즉각 철회할것.

4. 조중포로들로 구성된 전쟁포로대표단을 인정하고 긴밀한 협조를 제공할것.

소장대리 콜센과 돗드는 전환련계를 가지고 다음과 같은 공동성명에 서명하였다.

1. 당신측이 제기한 제1항에 대하여 우리는 류혈사건이 있었다는것을 인정한다.

우리는 앞으로 국제법의 원칙에 따라 전쟁포로들에게 인도적인 대우를 해주겠다는것을 약속한다.

2. 조중포로《자원송환》문제는 지금 판문점에서 토의하고있다.

우리는 정전담판의 결정에 대하여 권한이 없다.

3. 강제《선별》에 대하여서는 돗드장령이 안전하게 석방되면 더는 진행되지 않을것이라고 담보한다.

4. 돗드장령이 나의 비준에 따라 조중전쟁포로대표단을 구성하는데 동의한다.

 

조중전쟁포로대표자대회의 호소문과 미군 두 준장의 공동성명은 영국의 《레스뉴스》5월 18일부가 전문 발표하였다.

세계는 경악하였다.…

 

클라크는 전신용지를 침착하게 릿지웨이에게 넘겨주었다.

전신용지를 더듬는 릿지웨이의 얼굴은 거의 무표정해보였다.

《릿지웨이귀하, 나는 밴플리트대장의 용의주도한 〈섭정〉에 감동되였습니다. 당신은 돗드준장이 아이젠하워씨의 신임에 보답했다고 생각합니까?》

클라크의 은근한 비난에 릿지웨이는 그제야 입귀를 벌리며 활짝 웃었다.

《포로속의 포로라… 어쩐지 랑만적인 색채가 진하지 않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제부터 전략가인 귀하의 의지와 림기응변에 기대를 걸것입니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습니다.

본관이나 귀하가 돗드의 처지에 빠졌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가요? 북조선군은… 불굴의 족속들입니다.

공중타격이라… 북조선군이 분사식비행대를 소유했지만 아직까지도 미군은 전선에서 제공권을 확실하게 유지하고있습니다. 귀하의 공중타격설은 폭탄구뎅이에 폭탄을 더 떨구는격이 되고말것입니다. 전설적인 빨찌산대장인 김일성장군은 나의 개인적견해로 볼 때 대단히 출중한 인물입니다.

나는 지난해 1211고지전역에서 그의 정신력과 전략가적인 세계를 안셈입니다.》

클라크는 자제력을 잃은듯 분주하게 방안을 오가기 시작했다. 그는 문득 멈춰서서 미심쩍은 눈길로 릿지웨이를 돌아보았다.

《솔직한 말에 또한번 감동되였습니다.

참, 한가지 묻고싶은데 귀하는 맥아더원수와 교대할 때 자신의 뚜렷한 전략적구상이 있었습니까?》

릿지웨이의 얼굴에 쓸쓸한 표정이 지나갔다.

그는 려송연곽을 집어들었다.

《동양의 옛글에 천명이면 따르고 사람의 작간이면 경계하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8군사령관시절에 한번은 이 방에 들렸는데 맥아더원수가 나에게 도죠 히데끼의 유서를 보여준 일이 있습니다. 그가 왜 그 유서를 가지고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도죠는 유서에 썼더군요.

〈…이번 사형은 나 개인에 대한 위안이라고 본다. 이것은 내가 국민앞에 씻을수 없는 죄를 졌기때문에 죽음으로써 그것을 다 갚을수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국제적인 성격을 띤 범죄자라는 측면에서 나는 무고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강자앞에 패배했을뿐이다.… 이번에 나에게 내린 형벌이 천황페하에게까지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니 내 마음은 더없이 가볍다.…〉

어떻습니까? 역시 군인이지요?

그래, 귀하, 우리에게 순수 상징적인 인물이라 할지라도 엘리자베스녀왕이나 일본천황같은 〈정신적기둥〉이 있습니까? 실례지만 트루맨이나 아이크가 미국을 대표할수 있습니까? 루즈벨트대통령은 모르겠습니다. 당신이나 내가 어디에 의존해야 할가요?…》

릿지웨이는 한순간 입술을 깨물었다. 자기가 너무 흥분해서 넘지말아야 할 한계선을 밟은것은 아닌가.

클라크대장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실눈을 지었다.

《귀하, 우리는 군인입니다. 나는 솔직한 말로 전쟁에서 정신적인 령역을 무시합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유물론자〉입니다. 하지만 도죠 히데끼의 유서는 의미심장합니다.

같은 군인으로서 동경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우리의 위치, 우리의 오늘, 우리의 전망에 대해… 위안감을 가지게 됩니다.》

릿지웨이는 이 사나이가 솔직한 품격을 가지고있는데 놀랐다.

릿지웨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하, 떠나기전에 자그마한 부탁을 하나 할가요?…》

댓글목록

profile_image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귀하, 떠나기전에 자그마한 부탁을 하나 할가요?…》

《말씀하십시오. 본관의 권한이라면 기꺼이 들어주겠습니다.》

클라크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나는 유럽어들에 정통한 당신의 엘자양을 나의 녀서기로 썼으면 합니다. 또 녀서기의 걸음걸이가 퇴역에 가까이 이른 나의 마음을 진정시킨다고 할가요?》

《그래요?!》

클라크의 눈가에 놀란 빛이 가득찼다.

이윽고 클라크는 큰소리로 웃어댔다.

《릿지웨이장군, 나는 정말 감동됐습니다. 공자가 말했던가요? 선을 사랑하듯 인생을 가꾸라고 말입니다.

좋습니다. 당신이 출발하기전에 려장을 꾸리도록 지시하겠습니다.》

클라크는 만족하여 입을 쩝쩝 다시기까지 하였다. 릿지웨이는 물론 클라크의 심중을 리해할수 없었다.

사실 녀서기는 클라크가문의 세습적인 《시녀》나 다름없었다. 클라크부인이 결혼할 때 데리고 온 유모의 딸이였던것이다. 클라크부인은 사람이 원숭이에게서 기원되였음을 분명 확신할수 있을만큼 인물이 박색이였다. 그런 연고로 전장을 돌아치는 남편에게 총명하고 엄격한 감시자를 붙이는것이 그 녀자의 장기였다.

엘자를 떼버리는것은 클라크의 정신적자유를 의미하였다. 물론 《원숭이》후예를 가정의 마님으로 《모셔》서인지 클라크는 사실 녀색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면에서 릿지웨이의 후각은 잘못된것이였다.

 

×

 

릿지웨이대장이 떠나가자 클라크는 미극동공군사령관 웨일랜드대장과 미극동해군사령관 브리스코중장을 불러들였다.

클라크는 당황한 눈길로 자기를 쳐다보는 두 장령에게 손짓했다.

《앉으시오. 제군들! 나는 부임인사로 당신들에게 묵은 샴팡주가 아니라 내가 국내에서부터 오래동안 무르익혀온 첫 행동계획을 알려주는것으로 대치하고싶소.

국방성의 비준을 받은 이 작전계획을 비밀상 〈클라크의 8가지 타격계획〉이라고 명명해도 나쁘지 않을것 같소.

1. 수풍발전소를 강력한 공중타격으로 파괴한다.

2. 평양에 대한 공중타격을 배가한다.

3. 평양ㅡ개성 보급선을 공중타격으로 완전 제압한다.

4. 북조선의 모든 경제대상물들을 비행대로 타격한다.

5.〈반공〉전쟁포로들을 지체없이 석방한다.

6. 정전담판을 가급적으로 중단시킨다.

7. 대만의 장개석군을 동원하는 계획의 연막을 친다.

8. 주요타격대상, 좌표…

이거요. 구체적인 세부계획은 극비밀리에 웨일랜드대장, 귀하가 작성하시오.…》

며칠후 클라크는 《천황》궁에 들려 동대청연회장에서 향기로운 훈제순대와 새빨갛게 구운 왕새우, 조선특산인 바스레기볶음료리를 포식한후 즉시 대구에 있는 미8군사령관 밴플리트대장과 전화련락을 가졌다.

《나는 거제도사건을 백악관밖의 정치적분위기에 맞게 로숙하게 처리한 귀하의 결단성에 대단히 만족합니다.

나는 지금은 〈철혈정책〉을 제창한 비스마르크가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인정합니다. 콜센대신 내가 파악이 있는 미2사 부사단장 보트너를 수용소 소장으로 임명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보트너에게 지시하시오.

미187항공륙전부대와 92, 94해병대대 등을 동원하여 그 수용소를 기관총과 무한궤도로 무자비하게 짓뭉개버리시오. 조금도 사정을 봐선 안되오. 마치가 가벼우면 못이 솟는 법이요.》

《사령관각하, 돗드준장이 풀려나와 공동성명을 홱 뒤집어엎은 기자회견을 가진것때문에 판문점에서 어제 북조선측 남일대장이 강력히 항의해왔습니다. 백색테로라는 딱지가 붙지 않을가요? 정전담판도 힘들게 마지막고비까지 왔는데 또다시 파탄될수 있습니다.》

밴플리트가 우는 소리를 하자 클라크는 랭소를 지었다.

《나는 귀하에게 루즈벨트대통령의 명담을 상기시킵니다. 아니, 이건 우리의 저명한 작가 마크 트웨인의 말을 인용한것이였지요.

〈담배를 끊는 일은 쉽습니다. 난 벌써 백번이나 담배를 끊었으니까요.〉귀하, 내말을 알겠습니까? 전쟁은 역시 정치입니다. 나도 요즘 그걸 깨달았다고 할가요.》

《각하의… 명철한 말씀에 감동됐습니다. 곧 집행하겠습니다.》

클라크는 이마살을 찌프리고 송수화기를 내던졌다. 만약 아이젠하워가 아니였다면 저 불우했던 밴플리트가 어깨에서 대좌정도의 견장을 영원히 내리우지 못했을수도 있었다.

밴플리트는 아이젠하워와 웨스트 포인트동창생이다. 그는 노르망디상륙작전시 아마하해안의 미29사보병련대장으로 전투에 참가하였다.

그가 속한 사단은 운수가 나빴다. 해안에 상륙한지 5일이 지났으나 그 계선에서 한걸음도 전진할수 없었다. 만슈테인밑에서 길들여진 철의 적장갑사단이 완강히 저항해나섰던것이다.

전선을 시찰하던 아이젠하워가 사태를 료해한후 즉시 옛 동창생인 밴플리트를 사단장대리로 임명하고 공격에로 내몰았다. 밴플리트앞에 행운의 길이 열리였다. 사단은 순풍에 돛단듯이 전진하였다.

그는 인차 군단장으로 승격하였다.

클라크는 이 점을 무시할수 없었다. 기실 그는 부임인사차로 아이젠하워를 만났을 때 8군사령관후임으로 파악있는 테일러를 천거할 생각이였으나 단념하고말았다.

클라크는 전화를 끊은 후 터너대좌를 올려다보았다.

《대좌, 곧 전선을 시찰해야겠소. 군용기를 준비하시오. 웨일랜드 대장에게 전달하시오.》

《알았습니다. 각하, 그런데… 일본 요시다수상이 믿음직한 녀서기를 알선해왔습니다.》

《됐소, 됐소! 이제부터 나는 녀서기를 쓰지 않겠소. 우리와 함께 온 장교들중에서 견실한 젊은이를 한명 고르시오.》

다음날 군용비행기로 대구의 미8군사령부에 들린 클라크는 밴플리트대장으로부터 거제도포로수용소에 대한 보복작전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였음을 보고받았다.

클라크는 해가 비쳐들지 않아 컴컴한 미8군사령관방의 접이식침대에 걸터앉아 두눈을 감았다.

《보트너준장이 집계한데 의하면 이번 작전으로 전쟁포로 276명이 죽고 많은 부상자가 났다고 합니다.》

밴플리트가 위스키병을 따며 의기양양해서 중얼거렸다.

클라크는 술잔 부딪치는 소리에 눈을 뜨고 뒤를 돌아보았다.

인사차로 방에 들어와 기다리고있던 루빈 젠킨스중장과 정일권중장이 차렷자세를 취했다.

클라크의 눈빛이 환하게 빛났다.

《아 정중장, 군단장으로 승격했다지요? 반갑습니다. 축하합니다.》

《각하 전선중부의 2군단을 맡았습니다. 스승의 지휘를 받게 되여 대단한 영광입니다.》

클라크는 밴플리트에게서 술잔을 두개 받아들고 정일권에게 내밀었다.

《밴플리트대장, 난 이 정장성과 구면입니다. 우리 두 나라의 극적인 우호관계의 상징이나 같습니다.

미국류학기간 가끔 웨스트 포인트에 출연하군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나의 강의를 진짜 리해하는건 이 정일권씨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각하의 상륙전략과 공중타격전술에서 미래의 전쟁구도를 느꼈습니다.》

클라크는 만족하여 두눈을 쪼프렸다.

《음 젠킨스중장, 내 한번 당신네 전선을 돌아보겠소. 제인 리쎌고지던가요? 그 〈철의 삼각지대〉가 중요합니다. 난 이미 워싱톤에서부터 그곳 지대를 연구해보았소. 정중장과 린접이지요?》

젠킨스는 두팔을 벌려보였다.

《우린 귀하의 선봉대역할을 할 전격전의 준비가 되여있습니다.》

클라크는 두 장령이 나가자 다시 눈을 감았다.

(운명에 도전하라.… 이건 어머니의 말이였어. 그런데 왜 이리 마음이 불안한가? 이 전쟁의 운명을 역전시킬 방도는 무엇인가? 8개타격안은 릿지웨이장군에 대한 나의 일종의 도전으로 될것이다. 새로운 획기적인 안을 모색해야 한다.… 거제도… 수천명의 사상자라… 이게 가혹한 처사인가?…)

클라크의 눈앞에는 별안간 검은 면사포와 성조기를 씌운 루즈벨트대통령의 령구가 펜실바니아거리를 지나가던 그 어두운 저녁이 떠올랐다. 그때 그는 령구를 뒤따라 슬픈 기색으로 걸어가고있었다. 분명 그는 그때 슬퍼했었다.

그는 루즈벨트와 개인적으로도 친교가 있었다.

령구차뒤에는 자갈을 물리고 굴레를 씌운 프랑스산 말 한필이 따랐다. 안장우는 비여있고 등자에 보검 한자루가 걸려있었다. 그것은 무사가 이 세상을 떠났다는것을 상징해주고있었다. 의장대가 3렬종대로 령구앞에서 천천히 박자를 맞추어 전진했다.

대통령부인인 엘리노아가 령구를 루즈벨트의 고향 뒤산 풀밭에 안치할 때 남편의 정부인 녀서기 미스아가씨의 우표수집책을 함께 넣어주었다.

훌륭한 성품을 갖춘 미국적인 녀성이였다.

클라크는 불쑥 지금 아들을 따라 도꾜로 오고싶어하는 자기 어머니를 상기했다.

소년시절… 클라크는 무척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동정심이 많은 아이였다.

조상이 아일랜드출신인 뼈대가 굵은 어머니는 엄하게 그를 키웠다.

클라크는 무서움을 잘 타고 아이들과 쉽사리 휩쓸리지 못하였으나 머리가 명석하고 판단력이 빨라 소학교교원들의 은근한 사랑을 받았다.

그는 어머니의 완강한 요구에 못이겨 크리스마스날 《구약성서》를 받아들었을 때 별로 흥미가 동하지 않아 대충 훑어보는데 그쳤다.

어머니한테 호되게 얻어맞고서야 강심을 먹고 한달만에는 글자한자 빼치지 않고 아예 외워버리고말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만족을 몰랐다.

사춘기가 끝나갈무렵 이웃집 상급생인 두살우인 마돈나가 그를 자기 집에 초청하였다. 대학부총장의 따님인 그 녀학생은 륙군대학 학생들이 누구나 침을 흘리는 선망의 대상이였다.

처음으로 위스끼를 취하도록 마셨다.

아리숭해지는 눈길로 침대에 걸터앉아 눈을 이상하게 번쩍이며 다가드는 처녀를 바라볼 때 클라크는 오싹하는 공포를 느꼈다. 거의 그녀자의 머리만큼 큰 분홍빛앞가슴이 흔들거리고 덜퍽진 음란한 몸매가 눈에 비껴들어 피줄을 싸늘하게 얼구었다. 그때부터 그는 녀자를 멀리하며 본능적으로 의심했으며 다만 어머니의 강요에 못이겨 명문가인 《원숭이후예》, 지참금많고 상원의원의 당조카인 지금의 안해와 결혼하였다.

륙군대학에서 소좌를 달고 교원으로 있던 아버지는 자주 집에 찾아오는 학생인 더글라스 맥아더의 술잔을 받아마시고는 한쪽에 앉아 책을 뒤적이는 아들을 넘보며 한탄 비슷이 중얼거리군 했다.

《더글라스군, 저 녀석말이요. 글뒤주인걸 보면 앞으로 목사로 자랄것 같아. 동정심이 있거든. 바퀴를 죽이는것도 끔찍해한단 말이요. 하지만 탐구심이 있는걸 봐 군복무를 시키면 하사관은 벗어나 기술근무계통의 소위보쯤으로 발전할수는 있을게요. 하긴 군목사가 더 맞을수 있지.》

말없이 옆에서 남편의 예언을 듣는 클라크의 어머니만은 견해가 다른듯 날카로운 눈초리로 두사람을 쏘아볼뿐이였다.

운명은 상록수가 설레는 그 륙군대학 장교촌 두칸짜리 세방에 앉아있던 두사람을 몇십년후에 일약 이 행성을 뒤흔드는 극동전구야전사령관들로 만들어버렸다.

이 얼마나 얄궂은 운명의 장난인가. 그는 하사관이나 소위보가 아니라 한 대륙의 군권을 틀어쥔 《유엔》군 총사령관이 되였다.

클라크는 두눈을 뜨고 우울한 표정으로 밴플리트를 올려다보았다.

《장군, 나의 8개항목 타격안에 따라 당분간 모든 작전을 다시 검토하시오.

그리고… 포로병부상자들을 치료해주어야겠소. 북조선군, 지원군전쟁포로들에게 하루분의 위스키와 통졸임들을 나의 명의로 보내주시오.》

《알았습니다, 각하.》

밴플리트는 기절초풍한 낯색이 되여 엉겁결에 큰소리로 대답했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