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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선의 아침 제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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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7,823회 작성일 20-01-26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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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jpg

제  3  편

                             

                                 오, 오, 조상의 땅이여…  (조기천의 시중에서)

 

제  1  장

 

클라크대장은 벌써 두끼씩이나 식사까지 건느고 커피만 찔금찔금 마시며 이찌게야에 있는 옛 륙군성의 천정이 높은 방에서 작전지도를 펴놓은채 밤을 꼬박 밝히고있었다.

그것은 저으기 보풀이 인 낡은 지도였다. 전번에 밴플리트대장의 방에서 가져온것이였다. 야전사령관의 손때묻은 군용지도라 복잡한 사색의 흔적이 여기저기 그대로 반영되여있고 동시에 전과들과 실패의 자욱들도 적라라하게 찍혀있다. 아마 그래서 밴플리트대장이 내놓기 아쉬워했고(혹은 두려워했는지도?) 부관이 가져다놓군 하는 새 군용지도를 뒤전에 제쳐놨는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일부러 이름까지 박은 9군단장 젠킨스의 제안이며 10군단장 알몬드, 남조선군 2군단장 정일권의 작전방안제의까지 그대로 기입되여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일기, 아니 군사가들의 고백록이나 다름없다.

만족을 모르는 군사령관들의 야심과 열망과 질투가 그대로 내배인 흥미있는 작전지도였다.

클라크는 쓴 웃음을 지었다. 쇼펜하우에르의 검질긴 주장이 상기되였던것이다. 인간의 생활은 모두 자기를 위하여 타산하는 리기심으로부터 출발한것인데 그것은 영원히 이루어질수 없게 되여있다. 그로부터 인류력사에는 략탈, 억압, 전쟁이라는 악몽이 나타난다.…

헤겔의 랭담한 명언도 떠올랐다. 《전쟁은 일종의 진정제, 정화제이다. 어지러워진 대지우로 폭풍이 불어 생존능력이 없는 잡것들을 걷어가는것처럼 부패한 사회와 인간의 륜리관념을 청결해버린다.》

전쟁에 대한 례찬은 아돌프 히틀러도 했었다.

… 전쟁은 강자의 월계관이다. 전쟁은 일종의 도취이다. 사회발전의 추동력이다.…

바로 나의 미국이 이런 전쟁으로 생겨나고 전쟁으로 부흥하지 않았는가. 전쟁을 운명으로 걸머진 군인에게 그것은 하나의 축복이고 활력의 서정시였다.

하지만 전장에 나선 군인은 서정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서정시가 아니라 땅크와 비행기를 달라, 력사를 진보시키자면 문사가 아니라 완강한 군인과 재력을 틀어쥔 어벌큰 군수재벌이 많아야 한다는것은 이미 수세기의 세월이 증명하였다.

호머나 괴테, 굴원, 바이론은 귀족들의 쌀롱과 중학생들의 력사책, 혹은 문학교과서에나 몇줄씩 자리잡고있지만 케자르나 아더왕, 씨저와 나뽈레옹, 칭기스한, 광개토왕은 세계의 군사령관들의 심장속에 간직되여있다.

이 동방의 나라 조선의 력사를 대충 뒤져보아도 문관들은 나라를 어지럽혔고 무관들은 나라를 정돈하지 않았는가.

력사란 무자비하며 그것은 되풀이되지 않는다. 훌륭한 군사가의 무대는 넓다. 그들은 국경을 무시할수도 있고 지킬수도 있으며 《전쟁문화》라는 특수한 문명을 인류에게 가져다주기도 하는 력사의 성실한 사도들이다.

청초한 얼굴에 《오바》로 개미허리를 동인 일본녀성이 방에 들어섰다. 뛰여난 용모는 아니였지만 공순한것이 풍겨왔다. 미인이 되려다 못된 바람에 인내성있는 가꿈으로 부족되는 측면을 닦은 분명 알짜 일류급녀서기형이였다. 클라크는 랭소를 지었다.

《누군가?》

《저… 터너대좌님이 들어가라고 하기에…》

클라크는 어제저녁 자기 보좌관인 터너대좌가 요시다수상으로부터 멋진 《선물》을 보내왔다고 하던 말을 상기했다.

하버드대학의 최우수졸업생으로서 타자와 서양료리에도 밝은 미모의 일본인처녀라고…

그때는 무슨 소린가 하는 식으로 스쳐보냈으나 일단 맞다들고보니 마음이 요글조글해졌다. 하지만 자기의 어마어마한 직분과 지금의 전쟁형세를 생각하게 되자 아쉬운대로 무시하는수밖에 없었다. 초인종을 눌러 터너대좌를 찾은 다음 엄엄한 태도로 말했다.

《이 녀성은 주방에서 일하게 하오. 가끔 타자도 칠수 있소. 하지만… 내앞에는 승인없이 나타나게 하지 마시오. 그리고 저녁 만찬엔 나의 어머니를 모시도록 하게. 비행기를 타고오시느라 몹시 지쳤을게요.》

《알았습니다, 각하!》

그들이 나가자 클라크는 큰일을 처리한 기분으로 대형군용지도앞을 오락가락 했다. 그는 면도를 하여 매끈해진 볼편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또 명상에 잠겼다.

얼마전 그는 이 전쟁의 승리적국면을 열어 아이젠하워의 선거전에 믿음직한 구명대를 던지는 심정으로 자기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이고 혁신적이라고 생각되는 중요한 제안을 국방성에 제출했었다.

현재의 남조선군을 배가로 늘이고 야전경험이 풍부한 장개석총통의 대만군을 조선전선에 인입시키며 정세발전의 추이에 따라 원자탄을 중국동북지방에 투하함으로써 중공의 기세를 누르고 전선을 단숨에 압록강너머 동북3성까지 신속히 내밀자는것이였다. 이러루한 안은 이미 맥아더가 해보려다가 기각된것이라는것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하여 그는 대구에 날아가 남조선군 장성들과 자리를 같이하고 자기의 새로운 구상과 설계를 비치였다.

전국을 일변시킬 너무나도 요란스러운 《명안》앞에서 얼떠름해진 그들에게 클라크는 그 구체적인 방안까지 토설했다.

보충무장은 미국에서 얼마든지 보내준다. 당신들의 《제 2국민병》까지 동원하면 5개 군단쯤은 쉽사리 불쿼낼수 있다. 대만군의 조선출병도 즉각적으로 해결할수 있다.

미군이 이미 대만에 믿음직한 전초기지를 두었으므로 미7함대가 동원되면 대만군의 병력기동은 순간에 완료된다.

미13항공대가 대만해안에 지휘소를 설치했고 팽호렬도의 마공과 고웅, 기륭등에는 미해군기지가, 대북, 신죽, 대중, 대남등지에 미공군기지들이 있다. 대만군총참모장 주지유와 륙군총사령관 손립인, 정치국장 장경국 등은 60만의 자국병력중 전투력이 높은 국민당근위대격인 륙군특전대 25만명이 싸울 준비가 되여있다고 정식 통보해왔다. 그들은 자기 무력을 중공군이 도사린 전선서부에 배치해줄것을 강력히 요구하는바 이렇게 되면 전선국면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리고 원자탄을 생각해보라. 중국본토에 한발만 떨궈도 중공군은 그 즉시 흰기를 들려고 할것이다.

클라크의 이런 결심에는 아이젠하워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였다.

아이젠하워는 비공식적인 통로로 장차 조선전쟁양상을 《조선사람들끼리》, 《중국인들끼리》, 나아가서 《아시아인들의 싸움》으로 바꾸자는 전략적인 구상을 제기해왔던것이다. 아이젠하워의 이 구상은 군수공업도시 데트로이트에서 한 《조속한 승리》라는 연설의 보이지 않는 밑뿌리일것이다.

그런데 리승만군장성들에게 용기를 북돋군 《명안》을 도꾜에 돌아와 백악관과 미국방성에 제의하였을 때 그 반응은 침묵이였다.

며칠 지나서야 옛지기들로부터 알쏭달쏭한 귀띔이 날아왔는데 제안에 새로운것이 전혀 없다고 한다는것이였다.

클라크는 크게 실망하였다. 이미 원자탄세례가 가져온 후유증의 쓴맛을 보았고 한직의 정신적압박감에 눌려있는 트루맨의 애매몽롱한 처지를 예견못하고 던진 잘못겨냥한 부메랑이였던것이다.

하여 클라크는 다시 밴플리트의 낡은 군용지도와 릿지웨이가 인계하고간 작전방안들을 검토하기 시작한것이다.

《철의 삼각지대》에 기갑력량을 총집중하여 전선중부에 쐐기형의 삐죽한 돌파구를 형성하고 동서량해안방향으로 전과를 확대할데 대한 릿지웨이의 최근 작전구상안은 이미 두차례의 공세에서 실패한 구태의연한것이였지만 한편 참고할만 한 점도 없지 않았다. 그것은 작전이 성공하는 경우 그 쐐기형의 날카로운 맹금의 부리를 어느 쪽으로 돌리는가, 그 방향점만 잘 잡으면 성공의 문턱을 짚을수 있기때문이였다.

예전대로 동북산악으로인가, 아니면 중부산악지대에로의 전진인가?…

문득 클라크는 낡은 군용지도우에 표기된 밴플리트대장의 《해시계작전》안에 눈총을 쏘았다.

그것은 동해안의 원산, 통천지역을 위협하여 인민군을 그들의 전선사령부가 있는 회양분지계선에서 압축포위소멸한다는 구상이였다.

클라크의 눈이 순간 번쩍하고 빛났다. 발견의 계시로 하여 손이 떨렸다. 지어 로병답지 않게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하였다.

(이것이다! 미8군의 력량을 총집중하여 전선중부의 《철의 삼각지대》를 빼앗은 다음 전선동부산악을 누르고 그 독수리의 부리를 원산, 양덕쪽으로 돌리며 통천해안에 강력한 해군분함대들과 함재기를 만재한 항공모함들을 전개한다면 북조선군을 산악지대의 야전턴넬에서 밀어낼수 있다. 문제는 두더지같은 북조선군을 견고한 《동굴》들에서 끌어내는것이다. 쐐기의 방향에 운명이 걸려있다. 만약 이 독수리의 부리와 발톱이 강철처럼 거세지고 상륙작전이 성공하여 암초같은 추지령을 넘는다면 금화ㅡ통천간의 북조선군 기동로를 공중과 지상에서 믿음직하게 통제하게 될것이다. 이 기동로를 한달동안만 장악해도 《두더지》들은 어차피 요새들에서 기여나오지 않을수 없다.

천연요새라고 말할수 있는 동북산악지대, 이 전쟁에서의 승패는 바로 이 동부산악지대를 장악하는데 있다.

릿지웨이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단지 그는 맞받아치기로 동부에만 머리받기를 했기에 실패한것이다.

전선중부를 쳐서 동부산악을 무너뜨릴 계략까지는 생각못했다. 그렇다. 그것은 나 클라크만이 찾아낼수 있는 천재적인 안이다.

이렇게 볼 때 《철의 삼각지대》는 이 동북전략지역의 관문에 지나지않는다. 이 산악지대를 거머쥔다는것은 그대로 그 동서쪽까지 평정하는 최단의 지름길로 될것이다. 이 산줄기의 동쪽은 바다이므로 아군의 믿음직한 보급로로 될것이다. 서천은 포기해야 한다. 인천의 교훈이 그들을 각성시켰다. 하지만 나의 독수리는 전선서부는 물론 평양, 청천강, 동북3성까지 위협하게 될것이다.

그렇게 되면 단테의 《지옥》같이 지긋지긋해나는 이 전쟁도 화려한 전승열병식으로 이어질것이다. 그것이 또한 어차피 오고야말 이 클라크의 영예로운 퇴역기념일로 될수도 있을것이였다. 그렇다. 이것은 창조적인 발견이다. 저명한 릿지웨이씨, 고명한 밴플리트귀하, 바로 이런 작전구상을 두고 클라우제위쯔가 눈앞에 보이는 평범한것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비범한것을 끌어내는 명장의 기질이라고 했던거요. 새로운 공세, 이 전쟁의 운명을 획변시킬 공세를 시작하자! 이걸 10월공세, 아니 《금화공세》라고 명명하자!

그렇다, 나는 이미 정신적으로 《침체기》의 강을 건너섰다!… 주사위를 던질 시각이 왔다!…)

클라크는 심장이 터져나가는것 같은 정신적앙양에 눈앞이 어질어질하였다.

그는 송수화기를 들고 터너에게 작전국장 위트니를 호출하라고 소리쳤다.

 

×

 

문소리가 나자 클라크는 활기있게 눈길을 들다가 그만 이마살을 찌프렸다.

위트니중장의 뒤를 따라 정보국장과 방첩과장 캐논중좌가 소리없이 방에 들어선것이다.

클라크는 은근히 기분이 잡쳐 아직도 피속을 배회하는 발견의 흥분을 애써 눅잦혀버리며 랭담한 눈길로 위트니중장을 건너다보았다.

《중장, 지난해 공세때 전선에는 장마가 졌다지요?》

위트니는 침착한 자세로 서있었다.

《사령관각하, 여름철의 장마비는 조선땅의 어길수 없는 특이한 자연현상입니다. 이 장마로해서 전선동부의 북조선군은 근 보름동안 보급로가 차단되여 하루 풋강냉이 한이삭으로 식사를 대신했다고 합니다.》

클라크는 다시 활기를 회복하였다. 눈가에 웃음이 피여났다.

《아주 좋습니다. 바로 이것이 릿지웨이대장의 과오요!…》

《예?!…》

위트니는 리해되지 않는듯 두팔을 들어보였다.

《좋소. 래일은 루빈 젠킨스중장네의 〈철의 삼각지대〉를 다시 돌아봐야겠소. 극동전략폭격기사령관 틈메소장과 필요한 수행인원들을 준비시키시오.》

《알았습니다, 각하.》

클라크는 아닌보살하고 여전히 낡은 군용지도우에 눈길을 박았다.

《각하, 우리는 대단히 심중한 문제때문에 왔습니다. 물론 바쁜 시간을 오래 빼앗지는 않겠습니다.》

정보국장의 말에 클라크는 마지못해 얼굴을 들었다.

《말하시오, 소장.》

《전번에 구체적으로 보고드렸지만 우리는 군사정보작전과 병행으로 특수작전을 마감단계에서 추진하고있습니다. 남조선군정보국과 특무대, 대만의 람의사, 특히 이 캐논방첩기관이 적극적으로 협력하고있습니다.》

《당신들이 전쟁의 제5렬이라고 하는 그 〈리, 브〉(리승엽, 박헌영의 략칭)작전말이요?》

클라크는 그들의 좀스러운 작전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정보국장은 묵묵히 곁에 서있는 캐논중좌를 얼핏 돌아보았다. 캐논의 얼굴은 무표정이였다.

《북조선지도부에 깊숙이 침투한 이 캐논중좌가 관여한 선은 지금 공작의 절정에 이르렀는데 이제는 그것이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운명적인 기로에 놓였습니다.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모르겠소.》

클라크는 자리에서 움쭉 몸을 일으켰다.

《북조선군 두뇌진을 일격에 소멸할수 있는 천재일우의 작전입니다. 이건 이 전쟁의 운명에 결정적영향을 미칠것입니다.》

허우대가 큰 캐논중좌가 랭철한 어조로 말했다.

《그 믿음직하다는 선이 우리가 직접 관심하는 군수뇌부에까지 접근했소?》

클라크의 물음에 정보국장이 대답했다.

《각하, 제가 알건대 군수뇌부하고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리, 브〉는 정부급에서 발언권을 가지고있으며 북조선여당인 로동당의 정책작성에 관여하고있고 군사위원회에도 참석하고있습니다. 그리고 그 산하의 조직망은 철저히 위장되여있습니다.》

클라크는 심중해졌다. 하지만 랭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리하르트 조르게같은 최상급정탐명물은 인정하오. 하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내가 더 중시하는건 전략정찰이나 군사정찰이요. 부언한다면 나는 그들과 군사작전상으로 전략적으로 당당히 맞서 싸우고싶소.》

클라크는 속으로 미소를 짓고있었다. 만약 자기가 마음속으로라도 직업군인의 품격에서 소외된 캐논류의 인간들에게 기대를 건다면 그것은 총체적으로 군사전략가로서의 위엄을 잃는것이고 나아가서 존엄있는 명문가신사의 인격을 손상시키는것이였다. 지금은 그에게 강력한 주패장이 쥐여진 셈이다. 그는 자기의 판단력과 통찰력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또 지금까지 그의 이런 추리와 작전적구상은 그를 배반한적도 없었다.

《각하는… 진주만의 패전이 어디서 온것인지 벌써 잊으셨는가요?…》

캐논은 뜻밖인듯 두눈을 쪼프렸다.

클라크는 이발을 드러내고 입가에 미묘한 웃음을 띄웠다.

《중좌, 당신은 자기 분야에서는 줴르쥔스끼인지 모르겠소만 역시 순진하오. 진주만타격계획은 이미 석달전에 루즈벨트대통령에게 알려져있었소. 로련한 정치가는 앞을 크게 내다보는것이요. 일본첩보망의 활동도 그렇고 대통령은 당일의 일본비행대습격도 알면서 침묵했소. 워싱톤으로서는 태평양전쟁의 대의명분이 반드시 필요했던거요. 로씨야곰들에게 월계관을 통채로 넘겨줄수 없었기때문이야. 내 말을 알겠소?…》

클라크는 그들을 턱아래로 측은하게 여겨보았다.

캐논중좌는 입술을 깨물었다.

《…》

《좋소. 당신들의 사업에 차단봉을 내리지는 않겠소. 계획대로 미중앙정보국의 의도대로 집행하시오. 결과만 보고하시오. 그대신 소장, 전선의 북조선군실태는 매일, 필요하다면 시간별로 보고하시오. 이건 대단히 중요하오.… 참, 북조선군 전선사령부를 이끄는 미지의 새로운 장령이 임명되였다면서?…》

정보국장이 미간을 모으며 눈길을 들었다.

《예, 얼마전에 박정덕이라는 인민군중장이 전선동부의 회양에 있는 전선사령부에 도착하여 일을 시작했습니다.

북조선군 최고사령관의 특별신임을 받는 그는 74군단장때까지 전승을 기록해온 행운을 지닌 스타, 명석한 작전가입니다. 북조선이 덕을 본 〈제2전선〉도 실지 작전실행은 그가 했다는것을 〈리, 브〉가 구체적으로 통보해왔습니다. 40년대초에는 김일성장군빨찌산의 남만부대로 추측되는 부대에서 독립지대장을 하며 중국내전에도 끼여들어 복건성함락과 해남도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전쟁전 북조선 고급지휘관학교를 최우수로 졸업한후 군의 중진으로 활약하였습니다.》

《음, 그러니 푸룬제출신은 아니구만.》

《그렇습니다. 전쟁초기 련대장시절에는 상급인 군사위원과 크게 다투며 권총까지 빼들고 자기 식대로 지휘하여 강릉을 점령했는데 군사위원이 몹시 노여워했지만 김일성장군은 오히려 그를 표창하고 54사단장으로 임명했다는겁니다.》

《음, 맥아더장군에게서 들으니 54사단이 그중 악질이였소.》

정보국장이 다소 아첨기있게 미소했다.

《옳습니다. 원래 한국인들이 4자를 죽을 사자라고 싫어하는데 김일성장군은 54사단을 편성하고 박정덕을 사단장으로 추천했다고 합니다. 아마 거기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북조선식의 사고가 있는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 총공세때 다 소멸된줄 알았던 이 54사단이 건재하여 강철군단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여담이지만 지금 남조선군에는 4자달린 부대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13자와 비슷하겠소?》

클라크가 흥미있는듯 정보국장을 바라보았다.

《예… 바로 그 박정덕신임참모장이 작전을 시작했습니다. 전선사령관이 한직으로 나앉은 정황에서 말입니다. 결국은 전선지휘의 실권을 쥔 셈이지요. 양득지부사령원이 곁에서 맴돌고있습니다.

어제는 빨찌산출신의 류경수 73군단장과 함께 854.1고지정면에 나타났댔습니다.》

클라크는 선채로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동북쪽에 351고지가 있고 서남쪽으로는 1211고지와 접하고있으며 고성으로 뻗은 도로를 끼고있는 전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군사적지탱점이였다.

클라크는 실눈을 지었다. 자기의 새로운 공세구상에서 이 854.1고지는 실로 관건적인 의미를 가진 전략적요충지였던것이다. 그는 아까부터 꿔온 보리자루처럼 서있는 위트니를 넘겨다보았다.

《이 지대의 방어선은 어떻소?》

《미군 2개 련대가 지난해부터 견고한 방어진지에 의거하여 믿음직하게 견제하고있습니다.》

클라크의 눈빛이 번쩍이였다.

《증강된… 한개사단을 종장배치해야겠소. 그리고 참모부는 이와 관련하여 북조선군의 움직임을 더 예리하게 분석해야겠소. 854.1고지는 〈철의 삼각지대〉 못지 않게 중요하오. 공격형의 신임참모장이라?!… 심중해야겠소. 작전안들을 이 각도에서 검토하시오. 시간이 걸리더라도… 북조선군을 얕봐서는 절대로 안되오.》

 

×

 

클라크는 후렁후렁한 군복우에 그냥 만또를 걸친채 창문쪽으로 다가갔다.

이 방은 륙군대신 도죠 히데끼가 있던 방이다. 얼마전 클라크는 돌발적으로 방을 옮길 결심을 하였다. 릿지웨이에게서 도죠의 유언을 들은 순간부터 줄곧 불우한 일본군장령의 혼이 이상야릇하게 자기를 부르는것 같았다. 이것이 좋은 징조일것이라고 굳이 믿고 말았던것이다.

《황궁》의 붉은 소나무(왜송ㅡ주)숲너머로 멀리 늦여름의 해가 지고있었다. 아주 미묘한 풍치다. 도꾜의 상공은 평온하였다. 하긴 북조선군의 로씨야제 분사식비행기들이 이 도꾜를 공습하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무엇인가 료원한것이 느껴졌다. 중공군과 함께 만약 로씨야군이 정면으로 끼여든다면 그것은 미쏘간의 전쟁으로 되고말것이다. 그 박정덕이가 밴플리트와 맞서 어떤 훌륭한 장면을 연출할것인가. 물론 심중해야 하며 이 기습적인 인사조치를 여러모로 따져봐야 한다. 품을 들여… 하지만 와씰리옙쓰끼나 꼬네브, 몬트고메리나 만슈테인같은 거장들도 내심 눈아래로 내려다본 클라크로서는 배심이 든든하였다. 산이 커야 그늘이 큰 법이며 높은 산에 올라야 천하를 굽어볼수 있는것이다. 문득 클라크는 한숨을 내쉬였다. 자기의 사색과 군인적기질을 깡그리 빼앗고있는 이 조선전선이 이 순간 너무나 협소하게 느껴졌던것이다.

(이 좁은 땅우에서 맥아더와 릿지웨이같은 명장이 수치를 당했다.

아, 력사란 얼마나 야박하고 오묘한가. 때로는 한 인간의 실수로 전쟁의 열매를 빼앗기기도 하는것이다. 그러나 력사는 력사고 현실은 현실이다. 우리는 어제나 래일이 아니라 오늘에 발붙이고있다. 그 력사를 인식하고있는 이 클라크는 기어이 이번 공세를 통하여 전선을 저 넓은 중국대륙까지 넓혀 력사의 새장을 펼칠것이다.…)

등뒤에서 조용히 문이 열리고 자박자박하는 힘없는 발걸음소리가 들렸다. 클라크는 조용히 돌아섰다. 아직 늦은 여름날이건만 얇은 회색털내의를 껴입은 허우대큰 백발의 메마른 녀인이 서글픈 눈매로 방안을 둘러본다.

클라크는 금시 눈길이 풀어져 어머니앞으로 공손히 걸어갔다.

《어머니, 이젠 식사를 해야지요. 물론 만찬회는 아니고 수수한 야전식식사입니다. 아버지의 습벽 그대로이지요.…》

그가 다정한 마음으로 손을 잡으려 하는 순간 늙은 녀인은 어디서 그런 기력이 솟아올랐는지 손을 홱 뒤로 가져가며 아들을 노려보았다. 클라크는 깜짝 놀라 허리를 곧추 폈다.

《아니, 어머니.…》

뼈대가 굵은 늙은이의 눈에 갑자기 사나운 빛이 어리였다.

《난 널 그런 용렬한 인간으로는 키우지 않았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봐라, 이걸 보면 챨스 클라크가 국립묘지에서 벌떡 일어날게다.》

클라크는 어머니가 내미는 보풀인 서류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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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클라크는 어머니가 내미는 보풀인 서류들을 마지못해 뒤적이였다. 미군병사 포로의 아버지 코들과 다른 포로의 어머니인 시들부인을 위시해서 미군실종자유가족들의 련명수표가 달린 호소문사본이였다.

클라크는 오만상을 찌프렸다.

《어머니, 이런 문제는… 전쟁의 종식문제는 이 아들의 권능밖입니다. 그걸 아셔야지요. 나야 명령에 복종하는 전구사령관이 아닙니까!》

《그걸 내가 모르겠니? 아크씨도 조속한 정전을 미국시민들앞에서 약속했지만 그가 정식 백악관주인이 될 때까지야 어림도 없지. 하지만 왜 너희들은 비행기로 북조선의 미군포로수용소까지 공습해서 그렇지 않아도 모국과 처자를 그리는 숱한 우리 젊은이들을 죽였느냐.…》

《그건…》

《얘, 클림. 난 네가 전쟁을 해도 하느님의 아들답게 공정하고 정직하게 하길 바란다. 우리 청교도집안에는 너같은 살인장군이 없어. 아버지를 생각해봐라. 제자인 맥아더장군도 너같진 않았어. 이건 가문의 수치다. 너는 그 쌍년이 아니라 녀자다운 맛이 있는 마돈나에게 장가들었어야 에미 의도대로 그리스도적인 성실한 정치가가 되였을게다.》

클라크는 볼이 부어 만또를 집어던졌다.

《어머니, 녀자답다구요? 그 마돈나를 처로 데려왔다면 이 아들은 륙군대장이 아니라 아버님말대로 소위보신세를 면치 못했을거예요.》

《그렇지 않다! 그 마돈나남편인 브래진스커박사가 이번에 국회하원의장으로 됐다. 알겠니?…》

클라크는 한대 되게 얻어맞은 기분이였다. 브래진스커박사는 고향도시에서 학교야구팀주장을 하던 동급생이였던것이다.

《이 호소문은 누가 줍디까?》

클라크는 불쑥 의심이 들어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나와 함께 비행기로 도꾜에 온 리지아부인에게서 얻었다.》

《아, 뉴욕타임스 녀기자?》

언젠가 클라크는 워싱톤에서 정일권과 함께 나타난 그 녀자와 유쾌한 흥취속에 동석식사를 한 일이 있었다. 두뇌가 비상하고 정치감각이 있는 놀랄만 한 녀자였다.

《지금 나와 함께 같은 호텔을 잡았다.》

클라크는 어머니의 눈치를 보다가 터너를 불러들였다.

《대좌, 그 사찌꼬양을 래일부터 어머니에게 붙여야겠소. 도꾜교외의 온천지역들을 유람시키시오. 캐논에게 말해서 특수호위를 붙여야겠소.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있는 리지아부인도 동행하도록 편의를 보장해야겠소. 사소한 불편도 있어서는 안돼!…》

어머니의 입가에 느슨한 미소가 어렸다.

《얘야, 내 말을 명심해라. 넌 명문가출신답게 예수 그리스도에게 충실한 성실하고 정직한 군인이 되여야 한다.》

《어머니, 명심하리다.》

클라크는 호소문사본을 꿍쳐쥐고 무서운 눈길로 터너대좌를 쏘아보았다.

고급부관의 낯가죽은 금시 방금 잡아 부리나케 털을 뽑아버린 닭살모양이 되였다.

《각하, 존귀하신 부인님들을 제가 직접 모실가 합니다. 그리고 호위는 캐논중좌가 아니라 요시다수상에게 의뢰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오.》

클라크는 기분이 잡쳐 지도쪽으로 홱 돌아섰다. 그는 지금 길을 잃은 길안내자가 된 기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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