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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50년 여름 제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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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10,050회 작성일 20-02-11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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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jpg


 12 장

 

추악과 혼돈속에 죽어가던 서울은 그 낡은 수의를 벗어버리고 신천지의 부활을 맞았다. 미국산 군화와 미국산 군복을 떨쳐입고 거리와 골목을 휩쓸며 다니던 괴뢰군들은 사라지고 이 나라 어데서나 나는 목화로 실을 자아 짠 천에 이 땅의 가을색을 입힌 군복을 입고 지하족을 신은 어제날의 로동자, 농민들이 미소를 담고 거리에 밀려나온 사람들의 환호에 손을 저어주었다. 골목마다에서 쏟아져나온 사람들은 귀가 아플 정도로 들은 《이마에 뿔이 나오고 손도 얼굴도 빨간》 《빨갱이》들이 의외로 자기의 형제, 자식들과 다를바없는 애된 보통젊은이들인것을 신기롭게 보며 박수를 쳐주고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호화주택가의 높이 솟은 대문들은 굳게 닫겨있었고 창문마다에는 음울한 눈길들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될가. 어느 시각에 타도가 올가.) 하고 바깥동정을 주시하고있었다. 그렇게 닫혀있던 돈의동의 김규식 집대문이 시가전의 총성이 채 사라지기전에 찌쿠덩-하고 열리였다. 김규식이 앞에 서고 뒤에 흰 두루마기의 최동오와 한쪽테가 깨여진 안경을 낀 안재홍이 따라나서자 안채의 식구들이 신발도 제대로 못찾아신고 마당에 달려나와 이들의 신상에 재액이 없기를 바라며 길게 절을 했다. 김규식의 호위병이 먼 상해에서부터 들고다니던 도이췰란드제 모젤권총을 괴춤에 찌르며 따라서자 김규식은 낯을 찡그리였다.

《그만 들어가게. 그놈의 피스-톨 한자루로 지켜질 목숨이 못되네.》

이들은 한밤을 꼬바기 눈뜨고 밝혔다.

새벽녘에 이 집으로 뛰여든 안재홍은 이들에게 또하나 눈물의 폭탄을 던졌다. 지난밤 안재홍은 서울에 남아있으면 다 죽는다는 국회족속 마나님들의 아우성에 기가 질린 가족들한테 포박되다싶이 되여 남으로 가는 차에 올랐다.

한강교어귀에서 앞질러나가는 장갑차꽁무니에 들이받기운바람에 차가 도랑창에 굴러떨어졌을 때 한강교의 폭발이 일어났다. 안재홍은 눈앞에서 한강다리가 거꾸로 서고 앞서가던 차와 사람들이 순식간에 재처럼 날려 한강에 수장되는바람에 반정신을 잃었다. 더구나 차가 도랑창에 빠져들었을 때 옆으로 지나가는 리윤병의 차에 성송암이 타고있는것을 본 그는 친구의 죽음에 더욱 비감했다. 가족들을 도로 집에 끌어간 그는 혼자의 심경으로는 그 비극의 인상을 이겨낼 힘이 없어 김규식의 집으로 달려왔던것이다. 세사람은 천고에 없는 그 참사에 다 울었다.

《제편이… 제 사람들을 죽이다니!》

날이 밝아 총성이 즘즉해졌을 때 김규식의 신변호위원이 대문짬으로 내다보고 와 인민군땅크들이 세종로에 들어섰다고 했다.

《국군 다섯개 사단이 그렇게 쉬이 물러설수 있나?》

반신반의하는중에 나가보자거니 말자거니 의논이 벌어졌다. 안재홍은 나가는것을 꺼려했다.

《대형들에게야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수심찬 그의 말에는 미군정시 《민정장관》이요 현재 《국회의원》인 자기의 수치스런 처지를 비겨보는데서 오는 불안의 빛이 력연히 비꼈다. 《대의》를 안고돌던 두뇌가 일단 신변에 대한 문제로 떨어지자 얼굴색들이 달라져갔다.

《민세나 나나 피장파장이요.》

김규식이 말을 받자 안재홍은 거의 쓸쓸한 눈길로 그를 보았다.

《대형들이야 년전에 김장군님을 만나뵈였을제 과거를 불문하시겠다는 말씀을 듣지 않으셨습니까?》

그 말에 김규식은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평양에 갔을 때 내전만은 없으리라고 다짐했는데 그게 빈말로 끝났으니 산다 해도 무슨 낯으로 뵈인단 말이요?》

한생을 내 나라, 내 민족을 위해 애썼다는 일문의 긍지마저 다 잃어버린 그들은 이 순간만은 하나같이 인종과 체념속에 죽음을 바라보는것이였다. 최동오가 분연히 떨쳐일어났다.

《어쨌든 한번 시내구경을 하는것이 어떻소? 한강교를 우선 봅시다. 송암의 시신이라도 찾아야지 않겠습니까?》

《찾지는 못할겁니다. 무리죽음사태이겠는데. 허나 마지막으로 나가라도 봅시다.》

안재홍도 결국 따라일어섰다.

날씨는 밝았다. 하늘에는 희디흰 구름 몇점이 떠돌고 때늦게 밥짓는 연기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여흘렀다. 모든것은 잠시의 꿈이런듯 불바다가 되리라던 시가는 이제까지의 상상과는 너무나 다르게 구태의연하였다. 세사람은 너무나 뜻밖의 모습에 넋을 잃은것처럼 서있었다.

《모나리자》라고 쓴 다방옆에 인민군대 포차 한대가 하수도홈채기에 바퀴 한쪽이 빠져들어 서있었다. 그 차가 달고온 어마어마하게 큰 대포옆에는 장농과 식기따위를 실은 달구지 한대가 놓여있고 나귀 한마리가 그 달구지채에 비끄러매이여 머룩머룩 보고있었다. 그런데 그 포차에는 장총을 등에 진 인민군대 군인들과 함께 이 주변에서 다 떨쳐나온듯 장년과 로인들, 아낙네들과 아이들까지 달려붙어 《영차 영차》 하며 밀어대고있었다. 《영차!》소리를 지를 때마다 자동차는 부릉부릉하고 요란한 소리를 지르며 배기구에서 검은 연기를 뿜었고 그때마다 달구지채에 매인 당나귀는 기겁을 하여 길길이 올리뛰였다. 차에 붙지 못한 아이들은 그것을 보고 좋아라 떠들썩했다.

《어찌된 일이시오?》

최동오가 거기서 떨어져 팔짱을 낀채 서있는 흰모시샤쯔에 파나마모를 쓴 중년사나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 사나이는 세사람을 알아보고 몹시 놀란 기색이 되였다가 안재홍에게 알릴듯말듯 목례를 하였다.

《5개사단의 대군이 막지 못한 인민군을 저 달구지가 멈춰세웠습니다.》

어딘가 이지러진 역설조의 말투였으나 얼굴에는 감동의 빛이 력연했다.

《인민군을 피해 교외로 나가던 저 달구지가 용약 돌따서 인민군을 맞받아 들어왔습니다. 저 나귀의 사령관은 아마 피난도중 자기가 피압박 민중임을 깨닫고 새 제도가 분명 호의를 베풀수 있을것이라 믿었던가 아니면 포위망을 치고 들어오는 인민군선동가의 말에 공감했던가 했기에 돌려세운것이지요. 정처없는 타향 행각보다 제 보금자리가 좋아 성수나 달리던 저 나귀는 골목을 에돌때 진군해오는 군용포차도 못알아보고 냅다 달렸지요. 어떤 국군의 반격보다 더한 영웅적인 육박돌격에 저 인민군대 포차 운전수는 그만 조향륜을 꺾어 차를 길밖으로 돌렸습니다. 나귀의 사령관은 죽었구나 했는데 차는 나귀를 빗서며 저처럼 멈춰섰습니다.

그 값으로 나귀도 달구지군도 다 깜장콩알을 먹는구나 했는데 오히려 저 인민군들은 까무라치듯 서있는 나귀의 사령관-달구지군에게 다가가 상하지 않았는가, 놀라지 않았는가 걱정을 해주고 그 달구지에 탔던 아이를 안아다가 총소리가 무섭지 않더냐, 밥은 먹었느냐 하면서 건빵까지 주고 안고돌았습니다. 창문으로 이걸 지켜보던 사람들은 너무나 신기한 이 군대를 더 잘 알려 몰려나왔고 지금은 차를 끌어내려 자원적인 부역에 투신하는것이지요.》

관조자의 랭정한 태도를 잃지 않으려 애쓰며 하는 그의 말을 유심히 듣던 김규식과 최동오가 호기심을 감추지 못한채 외따로 떨어져있는 포를 향해 슬밋슬밋 걸음을 놓을 때 안재홍은 그 사람에게 의아한 빛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선생은 소설감을 찾아 남았소?》

《글쎄요. 이렇기도 저렇기도 하지요. 북에 간 옛 동료들도 만날겸, 우리같은건 맑스의 리론대로 봐도 사회간층이니 독재대상은 아닐거구요.》

그 사람은 벙긋 웃고 동정어린 태도로 말을 이었다.

《선생님이야말로 예 남은게 이상하군요. 공산주의자들한테 생명담보라도 받은게 아닙니까?》

안재홍은 이마살을 찡그리였다가 허허 웃고 《좋은 글감을 찾기를 바라오.》 하고는 걸음을 떼였다.

《몸조심하십시오.》

통속련애소설가로 이름이 짜한 이 작가는 일행을 더없이 측은한 눈으로 전송했다.

군복을 입어 표날뿐 막사람과 다를바 없는 순진한 군인들이라는데서 오는 위안과 동시에 달구지군을 살리려 자동차를 길녘에 꺾어돌렸다는 놀라운 사실에서 받은 감동으로 순간적이나마 불안을 잊은 김규식과 최동오는 대포의 포가다리에 걸터앉아 소년들의 말동무로 되고있는 팔에 붕대를 칭칭 동인 스무살이 될가말가 한 인민군전사에게 다가갔다. 인민군전사는 두루마기차림에 단화를 신은 여느 사람들과는 뭔가 달라보이는 세사람이 나타나자 두 눈길이 간자름해지다가 귀밑에 허옇게 불린 은발과 조글조글한 주름살들을 보고 다시 그 유쾌하면서도 방심한듯 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임자, 이 대포의 최대사거리가 얼마나 되는가.》

최동오가 불쑥 묻자 전사의 눈은 또다시 가느스름해졌다. 로인들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자리에서 일어섰으나 군사술어인 《최대사거리》를 묻는데서 경각성이 머리를 쳐든 모양이였다. 최동오는 빙긋이 웃었다.

《허허, 달리 생각 말라구. 나두 임자만할 때 왜놈들과 해보려 총포를 배우던 사람일세.》

붙임성좋은 최동오의 너그러운 얼굴빛과 말이 전사의 의혹을 훌 가셔버린듯 발그레한 뺨에 웃음이 감돌았다.

《이 포는 말입니다.》

전사는 매우 자랑스러운 기색으로 자기를 우러보는 졸망구니까지 휘둘러살피고 말을 이었다.

《수십리밖의 콩크리트구조물도 단방에 박살을 냅니다.》

《그러면 대단한 위력일세. 분명 이 포도 전투에 참가했겠지?》

《우린 전투를 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예까지 들어오면서 싸워보지 못하다니?!》

번쩍거리는 페쇄기를 만져보던 최동오가 놀라 고개를 쳐들며 물었다. 전사의 얼굴빛이 심각해졌다.

김일성장군님께서 포사격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포를 쏘면 어떻게 됩니까. 시내가 다 날아날 판인데. 장군님께서는 한채의 집, 한사람의 인민도 상하지 말게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인민군대는 인민의 생명재산을 첫째로 여기는 군대이니까요.》

전사는 마지막 말을 점잖게 하고나서 어딘가 시뜻한 눈길로 최동오를 바라보았다.

《장군님께서?》

세사람은 다같이 감심한 얼굴로 굳어졌다.

이때 중앙청쪽에서 《만세!》소리가 터져나왔다. 뒤미처 군악의 나팔소리와 소고소리가, 살벌한 침묵에 잠겼던 도시를 잠깨웠다. 세사람은 허둥이는 걸음으로 중앙청과 세종로가 한눈에 보이는 덕수궁쪽 등길로 올라갔다. 고궁의 푸른 담벽밑에 이른 그들은 너무나도 황홀하고 장엄한 광경에 한동안 얼빠진듯 아무 말도 못하고 서있었다. 북악산쪽으로부터 밀려든 인민군땅크대와 보병부대가 근감하게 렬을 지어 중앙청앞을 지나 세종로로 빠져나가고있었다. 넓은 광장과 대도로에는 시민들이 꽉 몰켜나와 장사진을 이루고있었다. 언제 준비했는지 손에손에 꽃다발과 수기를 든 사람들은 인민군대렬을 향해 만세를 웨치며 환성을 올리고있었다.

《저 흐름을 어떻게 막는단 말입니까. 이야말로 민심의 철리가 아니겠습니까.》

최동오가 감격하여 부르짖었을 때 김규식이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진행된 삶에는 수정이 있을수 없지만 이 도시는, 우리의 력사는 갱생을, 수정을 보게 되였소. 망조의 력사는 종지부를 찍고…》

《여하튼 도시가 살았습니다. 새 세상, 새 도시! 그러고보면 나같은건 저 흐름에서 밀려난 과거의 그림자일것이고.》

안재홍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경알밑에서 눈물이 솟구쳐 볼로 흘러내렸다.

《국회의사당》후문으로부터 인민군군인들이 나타났다. 김규식이네를 발견한 그들은 수상쩍은 기색을 감추지 않고 다가왔다. 《순찰》완장을 두른 그들은 누구에게라없이 건성으로 경례를 붙이고 매우 례절바르면서도 딱딱한 태도로 말했다.

《증명서를 봅시다.》

세사람은 뭔가 례사롭지 못한 일, 바라면서도 바라지 않던 일이 닥쳐왔다고 생각했다. 김규식이 먼저 증명서가 아닌 명함장을 꺼내 내밀었다. 그러자 안재홍이 하얗게 질린 얼굴에 한줄기 웃음을 머금으며 국회의원의 신분을 증명하는 빠스포르트를 꺼내여 내밀었다. 김규식의 명함장에서 민족자주련맹 총재라는것을 보고 잔뜩 긴장하였던 하사관은 안재홍이 내미는 국회의원신분증까지 보자 얼굴이 험하게 이지러지였다.

《반동들이군, 갑시다.》

따라선 전사가 자동총을 벗어들었다.

최동오가 다급히 말했다.

《총기는 쓰지 마우.》

《아바이, 증명서를 봅시다.》

하사관이 예리한 눈길로 최동오를 훑어보았다. 최동오는 어깨를 으쓱했다.

《난 없소. 구태여 말한다면 이전 국회의원 최동오요.》

《한통속이군. 우리와 함께 갑시다.》

그들은 네거리교차점에 있는 순찰장인듯 한 군관에게 끌려갔다. 하사관이 그에게 김규식의 명함장과 안재홍의 신분증을 주며 뭐라 말하였다. 중성 한알의 군관은 김규식과 안재홍을 날카롭게 쏴보았다. 당장 《이자들을 쏴갈기시오.》라고 할듯 한 기상이였다. 그러나 안재홍의 옆에 낯이 해쓱하여 서있는 최동오를 향해 물을 때 인상과는 달리 온화한 목소리였다.

《성함을 어떻게 부르신다구요?》

《최동오라고 하오.》

군관은 흥미있게 최동오를, 다음에는 김규식을 보다가 무뚝뚝히 말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선생님과 김규식선생님은 돌아가십시오.》

《간다는건?》

최동오가 얼떠름해 묻자 군관은 여전히 표정변화없이 말했다.

《가십시오. 선생님들이야 평화통일을 바라지 않았습니까. 남북협상에도 참가하신분들이고-》

그리고는 그들을 체포한 하사관에게 안재홍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국회의원만은 경무부에 호송해가시오. 미군정시 장관까지 해먹던 령감이요.》

《그렇습니까. 대단한 놈이군.》

하사관은 안재홍에게 독기어린 눈길을 주고는 《갑시다》 하고 호령조로 웨쳤다.

《군관선생, 데려가려면 다 데려가시오.》

최동오가 용기를 내여 나서자 군관은 유심히 그를 살폈다.

《저 안재홍선생으로 말하면 반동이 아니요. 량심적인 사람이요. 왜정때 독립지사고-》

《선생님, 량심이 있다 해서 죄가 없다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떠나십시오. 혹 가다가 단속이 있을수 있는데 남북협상때 장군님을 만나뵈였던분들임을 밝히십시오.》

군관은 이 말을 하고는 더 응대할 기분이 없는지 하사관에게 재촉하는 눈길을 보냈다. 창졸간에 변화된 사태앞에 안재홍은 웃음을 지으려 애썼으나 하얗게 질린 얼굴가죽만이 실룩거렸다.

《민세!》

김규식과 최동오가 동시에 부르자 안재홍은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인과응보지요. 가족들을 부탁합니다.》

김규식은 표연한 태도로 서있다가 군관에게 다가갔다.

《저 사람을 어떻게 하려고 하시오?》

《전 모릅니다.》

《저 사람은 당신네가 생각하는것처럼 반동은 아니요.》

《네-?!》

군관은 싸늘한 어조로 반문하고는 격분을 억제 못하며 말했다.

《선생님, 저러루한 <정객>들때문에 우리 인민이 얼마나 고통을 받은지 모르십니까. 수많은 인민들이 노예처럼 짓밟히고 죄없는 사람들이 감옥에 갇혀 살해되였습니다. 저 사람이 설사 량심이 있었다 해도 그 학살의 법에 손을 들고 아전노릇한 죄는 죄로 남을것이 아닙니까. 모든 불행의 화근에는 저런 사람들, 아니 선생님들까지의 죄도 있단 말입니다.》

군관의 얼굴은 비참할 정도로 이지러지였다. 김규식은 낯을 흐리였다.

《그 말은 옳소. 나도 그런데서는 례외가 되지 않지. 그러니 우리도 죄책에 해당한 처분을 받겠소. 그것이 맘편한 일이기때문이요.》

김규식과 최동오는 군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끌려가는 안재홍의 뒤를 죄인처럼 따라갔다.

 

모터찌클을 앞세운 몇대의 찦차가 중앙청을 지나 푸른 기와지붕으로 유표한 경무대를 향해 경적을 울리며 달려왔다. 정문보초병은 호각을 입에 물다 말고 황급히 굳어지며 영접들어총을 했다.

최용건보위상의 일행이였다. 경무대에 먼저 와있던 시위수사령관이 최용건을 맞았다. 최용건은 위수사령관의 안내로 경무대안에 들어섰다가 도로 나오고말았다. 복도와 량하 좌우에는 전사들이 빼곡이 쓰러져있었다.

연 3일동안, 제대로 자지도 쉬지도 못하고 달려온 전사들은 괴뢰 《대통령관저》에 대한 호기심도 다 꺼버린채 잠에 곯아떨어져있는것이였다.

《저 동무들을 정식 오침을 시키오. 목욕도 시키고… 승리자들이 아니요.》

최용건은 위수사령관에게 조용히 말하고는 언짢은 빛으로 경무대의 외경을 한동안 묵묵히 살펴보다가 분수대밑에서 어린애들처럼 물을 맞으며 떠들썩 웃고있는 자기의 부관들을 보자 얼굴색이 좀 밝아졌다.

뒤따르는 장령을 향해 그는 매우 유쾌한 어조로 물었다.

《이 집 령감이 지금쯤 어데 있을것 같소?》

《모름지기 쌘프랜씨스코로 가는 배에 올랐던가 아니면 하와이의 옛집에 가서 여기를 그려보겠지요.》

《그럴듯 하오.》

최용건은 싱긋이 웃으며 차에 올랐다. 잠시후 차들은 태평로를 거쳐 한강교쪽으로 내달렸다. 다리목은 수백대의 차량으로 막혀있었다. 다리가 폭파되는바람에 주저앉고만 차들이였다. 두대의 땅크가 포신을 뒤로 돌린채 그 차들을 밀어내고있었다. 우릉우릉 하는 땅크의 동음과 우지끈 지끈 하며 차들이 굴러나는 소음에 강반은 무척 소란스러웠다. 최용건은 다리목에서 300m 떨어진 지점에 차를 세우고(그 이상은 길이 막혀 나갈수 없었다.) 길을 에돌아 걸어갔다. 발밑의 모래는 검은 재먼지를 뒤집어써 검스레 했다. 여기저기에 콩크리트쪼박과 쇠쪼각이며 찢겨진 군복천들이 널려있었다. 다리는 중가운데부분이 뭉청 날려버렸다. 굴러떨어져내린 수백대의 자동차들이 덮치고 덮치여 쌓여있었다. 사품치는 물속에 드러난 자동차들우에서 수십명의 군인들이 움직이고있었다. 다부진 몸매의 한 군인이 다리란간우에 올라서 교예사처럼 량팔을 쳐들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비칠할 때마다 옆에 담벽처럼 련달려 늘어선 자동차들의 문짝이나 적재함을 짚어가며 균형을 잡고는 다시 달려왔다.

최용건은 그가 공병부국장임을 알아보았다. 장화가 푹 젖은 공병부국장은 목에 건 쌍안경을 바로잡고는 최용건에게 절도있는 동작으로 다가와 거수경례를 하였다.

《보위상동지, 공병국 기술부국장은 다리파괴정형을 료해하고있습니다.》

《며칠이면 다리를 복구할수 있겠소?》

공병부국장은 무슨 롱말인가 하는듯 놀랍게 보다가 보위상의 심각한 얼굴빛을 보고는 정색하여 대답했다.

《보름은 걸립니다. 그것도 목재와 철근콩크리트가 제대로 보장되는 조건에서입니다.》

부국장은 웃주머니에서 조그마한 수첩을 꺼내였다.

《초보적으로 계산한데 의하면 철근은.》

《나에게 그런 증명은 필요없소. 저 아래 철다리를 알아봤소?》

《네, 거기도 파괴상태가 심합니다. 삼분의 일가량이 내려앉았습니다.-》

《저건 며칠이면 되오?》

《그건 철도건설전문가들이 와야 알것 같습니다. 우선 거기에는 침목과 레루를 제쳐놓고라도 기중기차라든가 여러가지 복구할수 있는 기술설비들이 있어야-》

《지금은 전쟁이요. 그 평시건설방법은 운운하지 마오.》

부국장은 보위상의 눈동자가 까딱하지 않고 자기를 지켜보고있는데 당황해하며 성급히 대답했다.

《지금 상태에서 가장 빠를수 있는것은 중도하창을 개설하는것입니다.》

《동무네 중도하창은 51사에 보내지 않았소?》

《56사의것을 당겨올수 있습니다.》

《그건 나도 아오. 그러나 그것이 오자면 이틀을 예견해야 되오. 그것이 오면 얼마동안에 부설할수 있소?》

《하루, 아니 한겻에 하겠습니다.》

《동문 2차작전방침사상을 알고있소?》

《네, 장군님께서는 적들이 강하천장애를 리용하여 방어를 강화하기전에 급속히 한강을 도하하여 패잔병들을 포위소멸하라고 명령하시였습니다.》

《동무네 임무가 간단치 않소.》

최용건은 거무죽죽하게 흐린 강물을 바라보았다. 무너져버린 다리모퉁이에서는 허연 거품을 일으키며 물갈기가 일었다. 강건너 대안은 아득히 멀어보였다. 물우에 부딪친 해빛이 아지랑이처럼 뛰놀며 눈을 시굴게 만들었다.

철교와 인도교가 모두 폭파된 조건에서 부득불 여기서 지체되게 되였다는 생각이 가슴에 파고들었다. 일부 보병들은 신변기재를 리용해 강행도하를 시킬수도 있으나 포와 땅크가 안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 적들앞에 나타난다는것은 무모한 희생만 초래하는 결과를 빚어낼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목재와 철근?… 그런데 그것이 오기를 기다리느라면 세월이 없다. 중도하창!… 그것이다. 잘하면 오늘 밤안으로 올수 있다… 그렇게 되면 래일은 길이 열린다. 결국 하루의 지체로 된다. 하루?… 그까짓것은 회복할수 있다.)

뜨겁게 내리쬐는 해빛에 눈시울이 아파들며 머리가 지끈지끈 쏴들었다. 피곤이 무섭게 몰려들었다. 경무대안에서 자고있던 군인들의 지친 모습이 불쑥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지금 지휘관이건 병사들이건 4일간의 련속작전에서 언제한번 쉬여본적이 없다는 생각이 뇌리를 쳤다.

그러자 부대들에 보충해야 할 유생력량이며 탄약과 무기, 지어 피복과 식량에 대한 문제까지 련줄 떠올랐다. 부대들을 정비보강하고 지친 전사들의 기운을 북돋고… 이런 식으로 생각하자 해야 될 일들이 무척이나 많아졌다. 예비대가 없는 조건에서 지금의 부대들을 가지고 남해까지 나가자면 여기서 단단히 준비를 갖춰야 할것이다. 이것 역시 불리한 역경을 유리한것으로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 아니겠는가. 땅크가 밀어낸 자동차옆에서 괴뢰군 장성표식의 철갑모를 본 그는 경무대를 돌아봤을 때처럼 싱긋이 웃었다.

승용차에 앉자 눈까풀이 저절로 내려앉으며 졸음이 무섭게 엄습해왔다. 옆으로 휙휙 스쳐가는 건물과 가로수들을 안개속에서처럼 바라보는 그의 눈앞으로는 적들이 반땅크구조물로 설치하려고 쌓아둔 레루무지며 모래가마니따위들이 얼핏얼핏 띄였다가는 사라지군 했다.

보위상은 점점 밀려드는 잠의 그물속에 묶여 고개를 떨어뜨리고말았다. 그는 잠속에 길게 늘어선 중도하창우로 굴러가는 땅크의 대렬을 보고 입가에 고즈넉이 미소를 그렸다. 중앙청까지 가는 로상에는 환영군중들로 인산인해였다. 수기와 기발을 든 시민들이 차나 군인들이 지나갈 때마다 만세를 부르고 손을 저었으나 보위상은 그것을 몰랐다. 전쟁이 일어나 처음으로 그는 큰 시름없이 잠들었다.

중앙청앞마당은 각이한 형태의 승용차와 포의 전시장같았다. 군인들이 주변에 널려진 차와 포들을 밀고와서는 렬을 지어 세워놓았고 날쌘 종군기자들은 마치 그것이 더없이 좋은 보도사진감인듯 카메라를 들이대고 샤타를 눌러댔다. 한쪽에서는 장부책을 든 군관이 《포드 두대!… 군기 하나!》 하고 경매판 와주처럼 소리를 치며 그것들을 등록하고있었다. 차가 멎는바람에 깨여난 최용건은 꿈속에서처럼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청사직일관이 앞에 와선것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강건동무가 있소?》

《네, 상동지를 기다리고계십니다.》

《방을 어데로 잡았소?》

《상동지의 옆방입니다.》

《내 방이란 어데요?》

《저… 리승만이 있던… 그전에는 미나미총독이 있었답니다.》

중앙청안은 아직도 화약내가 빠지지 않았다. 최용건은 둥근 원주와 바닥에 깐 빨간 모자이크를 약간 경멸하는 눈길로 보다가 탄피와 담배꽁초가 너저분히 깔린 복도계단으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강건은 전투보고서를 작성해놓고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최용건은 방안의 색다른 기물들을 다 둘러보고 미국제 상표의 타자기는 만져까지 본 후 강건으로부터 동해안의 강릉이 해방되였다는 사실을 들으며 보고서초안을 집어들었다.

《좀 빈약하오.》

보고서를 읽고난 최용건은 활짝 열려진 창문으로 안겨오는 세종로와 그쪽변의 건물들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다시금 말했다.

《빈약하오. 조직된 집체로서의 적은 없어졌소.… 문제는 수자가 아니라.… 적은 정신도덕적으로 완전히 패했다는것이요. 나는 한강교폭발에서 그것을 보았소.…》

최용건은 보고서를 쥔채 방안을 거닐며 흥분을 제어하지 못하고 말했다.

《전쟁개시 3일, 작전개시 3일! 3일만에 우리는 적의 괴뢰 <수도>까지 점령했소. 적은 절망했고 모든것을 포기했소. 다시말하지만 조직된 적은 없소. 우리의 보고는 한 전쟁에서 승리를 총화하는 보고로 되여야 하오. 솔직한 말로 나는 반공격작전이 이런 기적을 이루리라고는 생각 못했소.》

그 불안스럽던 새벽으로부터 오늘까지는 80여시간이 흘러갔다. 우주의 무한대한 시공간속에서 눈깜박임과 같은 그 짧은 시간속에 어떤 기적이 이루어졌는가.

최용건은 이런 흥분속에 한강도하보장대책안을 다시 검토해볼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저녁켠에 적의 야간정찰비행기가 날아오는것을 보고 중도하기재수송에 대해서 일정한 위구를 느꼈을 따름이다.

 

네거리, 전차길 복판에 한 군관이 서있었다.

온 얼굴에 붕대를 칭칭 동인 그 군관은 초점없는 눈길로 하늘과 땅, 집과 사람들을 보았다. 향방도 목표도 잃어버린 사람처럼 망연자실한 자태였다.

떼지어 밀려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이 한번씩은 꼭꼭 그에게 멎군 하였으나 그는 그에는 개의치 않았다. 아니 애당초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있다. 《빙과, 빙수, 화채, 수정과… 인민군대님들에게 무상봉사!》라는 간판을 세우고 흰 차일이 드리운 그늘아래에서 부채질을 슬슬하며 오가는 손님들을 불러들이던 청량음료의 대머리는 몇번이고 일어나 그에게로 갈듯 하다가도 그 군관의 시선과 부딪치면 절레절레 머리를 저으며 앉았다.

《단단히 상심이 든 장교로군.》

이렇게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차도로 해방된 수인들이 탄 차가 굴러왔다. 수기를 젓고 노래를 부르는 하얀 얼굴의 수인들을 눈청이 흐릿해 바라보던 대머리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뛰여나오며 그 차를 막았다. 다짜고짜로 내리라고 소리치고는 운전칸에 앉은 사람부터 끌고내려서는 차일밑으로 끌어갔다. 화채인지 수정과인지를 버치채로 식탁우에 올려놓고는 고뿌에 떠 권한다. 그리고는 차에서 내리는 족족 매 수인과 악수를 하고는 고뿌를 권하고 그 마시는양을 지켜보며 만족한 웃음을 그들먹이 채운다. 전차길에 섰던 군관이 그 수인들을 보다가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방된 이 수인들이 다시 차에 오르자 더 따를념을 안하고 다시 멍청히 굳어져있다.

《장교님!》

대머리가 용기를 내여 말을 걸었다.

《수정과외에 막걸리도 있습니다.》

군관은 무슨 말인가 하는듯 대머리를 물끄러미 보다가 《고맙습니다.》 하고는 그대로 서있었다. 대머리가 달려가 알른알른거리는 놋그릇에 수정과를 담아오자 군관은 머리를 젓고 돌아섰다. 대머리는 실망한 기색으로 몇걸음 쫓아가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원 장교님, 너무합네다. 내 이래뵈두 려수항쟁때 아들을 바친 사람입죠.》

군관은 대머리의 말에 전혀 무감각이였다.

그는 림운학이였다. 땅크우에서 화상을 입은 그는 후송치료를 요구하는 땅크련대 군의의 말에 귀도 기울이지 않고 형무소의 감방들을 뒤졌다. 련화를 찾아내지 못한 그는 지나가는 군인들의 차를 얻어타고 서대문감옥으로 갔다.

감옥에서는 안전일군들이 도망치지 못한 감옥관리들을 심문하고있었다. 문건들을 선별하던 한 안전군관이 그의 사정을 알고 심문중의 사찰계장에게 물었으나 수만명의 《죄인》을 상대한 놈의 기억에서 림운학의 아버지나 성련화의 존재란 남아있을수가 없었다. 운학은 경비소대전사들의 충고로 감옥뒤의 묵정밭을 돌아보았다. 죄인들을 학살하고 대강만든 가무덤들이 널려있는곳이였다. 거기서 헛탕을 친 그는 홍제원화장터에까지 갔다.

사람들로 인산인해인 홍제원화장터는 《아버지!》, 《오빠!》를 부르는 녀인들의 목멘 통곡소리로 차고넘쳤다. 운학은 통곡하는 사람들사이를 헤집으며 구뎅이에 줄느런히 쓰러진 임자가 나타나지 않는 시체들을 하나하나 돌아보았다. 거기에도 없었다. 화장터를 내리다가 그는 조총의 일제사격소리를 들었다. 아카시아숲속에 커다란 봉분이 있고 열댓명의 군인들과 꽃을 든 녀인들, 맨 머리바람의 수인들 몇이 서있었다. 봉분앞에는 커다란 흰 무명천이 주렴처럼 드리워있었다. 《고이 잠드시라! 우리 생명의 구원자들이여… 서대문형무소 수감자일동…》이라는 먹붓글씨가 유난히 눈을 찔렀다. 운학은 수인들속에 행여나 아버지가 있지 않을가 하고 살피다가 단념하고말았다. 화상에서 오는 열감과 동통으로 쑤셔대는 몸을 끌고 3년전까지 하숙으로 정하고있던 무교동의 먼 친척집으로 찾아갔었다. 그 집에서는 낯모를 녀인이 나와 원래 살던 가족은 이미 48년도에 《부역자》집안으로 몰리워 어딘가 먼 산골로 추방당했다는것을 말해주었다. 운학은 그처럼 환희에 넘쳐 그려보군 하던 상봉의 꿈이 가닥가닥 찢겨나가는 뼈저린 고통을 감수했다. 이젠 두번다시 아버지를 만날것 같지 못한 절망감이 그를 윽죄였다. 대돌에 주저앉은 그는 얼굴을 싸쥔채 한식경이나 까딱않고있었다.

감옥 면회실 창구에서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을 그리자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집주인녀자가 어쩔바를 모르며 찬물사발과 무슨 고약을 들고나타나 권할 때에야 간신히 자신을 다잡았다. 그는 림천이라는분이 혹시 오게 되면 아들이 왔다는것을 알리라 하고는 친절한 녀인의 동정어린 눈길을 받으며 그자리를 떴다.

걸음걸음 다가서는 아버지에 대한 상서롭지 못한 예감에 짓눌린채 계동의 성련화네 집에 이르니 그 역시 빈집이였다. 몽우리 앉은 무궁화나무를 우두커니 서보는데 한 녀인이 쪽문옆에 서서 지켜보다가 누구냐고 물었다. 운학은 이 옆집에 살던 두부장사아낙을 알아보았다. 운학은 그 녀인에게서 성련화의 아버지가 오늘 새벽 괴뢰장관의 차를 타고 도망쳤다는 기막힌 소식을 들었다. 련화에 대해서만은 그 녀인도 아는것이 없었다.…

독립문쪽에는 많은 시민들이 몰켜서서 인민군대만 나타나면 《만세!》를 목터지게 불렀다. 따뜻한 미소가 어린 감사의 눈길들이 가는곳마다에서 맞았다. 남대문에 이르자 꽃과 기발로 장식된 커다란 물체가 그를 향해 달려왔다. 전차였다. 땡, 땡, 땡.

연거퍼 울리는 종소리에 운학은 부지중 미소를 머금었다.

활짝 열린 차창마다엔 공화국기와 빨간 수기들이 내밀리여 흔들리였다. 운학이 성급히 전차길에서 물러나자 전차는 그를 위해서인듯 불시에 제동소리를 내며 멈춰섰다.

《타십시오!》

량볼에 진한 홍조가 물든 젊은 운전수가 상냥스럽게 미소하며 소리쳤다. 운학이가 전차에 오르니 초만원이였다. 온 서울이 전차에 오른셈이였다. 아이, 어른, 할머니, 젊은 녀인들까지 있었고 운학이처럼 초청을 받은듯 한 군인들 몇이 만족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운학은 로동복차림의 한 청년이 내주는 자리를 마다하고 전차안을 깐깐히 훑어보았다. 모두가 명절맞이를 가는 얼굴빛들이였다. 어디 일이 있어 가는 사람이란 하나도 없었다. 누구도 무엇때문에 이 전차를 탔는지 모르고있었다.

(이 전차를 련화와 함께 탈 때면 그는 늘 맨 앞에 서곤 했고…)

운학은 길게 드리운 손잡이끈에 머리를 대이고 잠시나마 아릿한 추억에 눈을 감았다.

(련화, 련화는 지금 어데 있는가. 아버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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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아버지와 너를 구하려 온 내가 아닌가. 그런데 아버지도 너도 없구나.)

그러자 또다시 조총소리가 귀에 울리고 죽은 전사의 모습이 눈앞에 지나가며 이 기쁨에 젖은 군상과 엇섞여 돌아갔다.

《장교동지, 앉으십시오.》

캡을 쓴 사민 한명이 또다시 일어나 자리를 권하였다. 운학은 자기가 비칠거렸음을 깨닫고 몸을 꼿꼿이 펴고 밖을 내다보았다. 거의 집집마다 공화국기가 걸려있었다. 큰것, 작은것, 창가와 마당에 선 사람들마다 전차를 향해 손을 젓고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종주먹을 쥐고 달려오고있었다.

《동해면옥!》

커다란 낯익은 간판이 보였다. 운학은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추운 겨울날 그 엄동의 날에 무슨 바람이 불어 련화앞에서 그처럼 희떱게 놀았던가.

《국수를 좋아해요?》

《그렇소. 우리 평양사람들은 랭면이라 하면 다 두세그릇씩이요.》

《그럼 세그릇 살가요, 랭면으로.》

《사오.》

그 찬국수를 다 먹고 밖에 나와 덜덜 떨 때 련화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지.

《바보!》

《그렇소. 난 바보온달이고 동문 평강공주.》

《공주란 좋지 않아요. 차라리 선녀 아니, 눈꽃이라고 부르세요.》

련화는 뱅글뱅글 떨어져내리는 눈송이를 잡아쥐려 손을 뻗치며 재롱스럽게 말했다.

국수집은 안에는 물론 밖에까지 사람들이 서있다. 중절모 쓴 점잖게 생긴 사람이 국수를 받아들고 서있는것이 우습게 보였다. 먹을 자리가 탐탁치 않아서인것 같다. 긴 의자마다 사람들이 줄져앉았다. 한사람이 일어나며 그 중절모를 앉히자 마치 그들은 친구이런듯 인사를 건넨다.

중절모는 역시 점잖게 나무저가락을 쪼개여 국수를 한번 휘젓는다. 이제 후루룩- 삼키겠지 하는데 중절모는 지나가는 수인 한명을 보더니 벌떠덕 일어서 내달렸다.

아는 사인가? 아니였다. 중절모가 뭐라 말하자 수인은 머리를 저었다. 그러나 끝내는 그 손에 끌려와 중절모가 받았던 국수 그릇앞에 앉았다. 중절모는 그 죄수복이 저가락을 들고 먹는것까지 지켜보다가 국수집안으로 사라진다.

거리의 군상은 다양했다. 리야까를 끌고가는 군인, 그옆에서 황송해 어쩔바를 모르며 따르는 로인, 리발의자를 아예 문밖에 내놓고 머리를 깎는 위생복차림의 리발사, 그옆의 리발소 표식판에는 긴 종이장이 너펄거렸다.

《해방리발을 해드립니다. 오늘 당일만은 무료!》

아이들이 오구구 떼지어 줄지어 서있었다. 림운학은 왜서인지 눈앞이 흐려지였다. 눈앞에 스쳐지나는 건물, 번쩍이는 유리창… 유리창까지 그대로 있다…

그늘진 담벽밑에서 총들을 껴안은채 잠든 군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들의 옆에는 말아놓은 돗자리며 방석들이 있었다. 집으로 끌어들이려다가 끝내 성공 못한 사람들이 해방자에 대한 정성으로 꺼내온것들일것이였다.

전차가 급제동을 거는바람에 운학은 정신을 차렸다.

모든 사람들의 머리가 창밖으로 나갔다. 어떤 사람들은 전차문을 열고 뛰여내렸다. 운학은 무슨 일인가 하여 밖을 내다보았다.

전주대밑에 숱한 사람들이 둘러싸여있었다. 그 전주대꼭대기에는 통신병 한명이 가름목에 넌쩍 올라앉아 주둥이가 삐죽이 나온 확성기를 통신줄로 비끄러매고있었다. 그 확성기에서는 힘찬 노래소리가 왕왕 울려나왔다. 운학은 성부와 화음이 맞지 않는것으로써 방송국을 장악한 군인들이 부르는것임을 알아맞혔다. 만세와 돌격함성속에 쉬여버린 목청이였다. 그러나 감격과 열정에 목메인 그 소리는 어떻게나 가슴을 세차게 치는지 운학은 한동안 주변의 움직임도 잊다싶이했다.

운전수로부터 로파에 이르기까지 홀린듯 노래를 들었다. 전차안이 인차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노랜가?》

《그것도 몰라?》

《당신 알아?》

《저 노래도 모르는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난 48년도 단선반대때부터 저 노랠 불렀지.》

림운학은 눈을 감았다. 뜨거운 눈물이 줄줄이 볼을 타고 내렸다. 그는 차창에 머리를 대이고 오래도록 눈물을 진정할수 없었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조선민족의 얼이고 정신이고 량심이다. 우리 전사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예까지 왔고 또 갈것이다.)

그는 이 전차안에 대고, 아니 이 맥박치는 도시전체를 향해 목이 터져라 웨치고싶은 불같은 충동에 휩싸였다.

서울사람들이여, 당신들은 아는가. 그대들이 웃으며 활보하는 이 도시 이 거리가 어떻게 남아있게 되였는가를 당신들이 자자손손 살며 물려온 집들과 당신들의 안녕을 위해, 력사깊은 도시의 유적들을 위해 민족의 봄을 가져오기 위해 이 길에서 흘린 전사들의 피와 땀, 우리 장군님의 거룩한 뜻을.

서울이여, 서울사람들이여, 이것을 잊지 말라…

 

련 3일간을 꼬박 밝히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서울해방에 제하여 보내는 축하문을 작성하신 뒤 집무실과 맞달린 휴계실에서 30분가량 휴식을 하시였다. 그이께서 벗었던 웃옷을 걸치실 때 강부관이 곤색 제낀양복과 넥타이를 가지고 나타났다.

외국사람들과의 접견이 있다는것으로 준비했겠으나 명절때나 간혹 입군 하시던 의복을 가져온것이 김일성동지로서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였다.

《동문 전쟁이 다 끝난걸로 생각하는게 아니요?》

《사회주의나라 사람이 아닌 기자도 있다고 하던데요.》

《허허, 그 사람들이 내 옷차림을 보자고 오는것은 아니요.》

오늘 서울해방소식이 발표되여 한시간도 채 못되였을 때 김일성동지께 여러 나라 대사들의 공동명의로 접견요청이 제기되였다. 서울해방을 축하하여 찾아뵈옵겠다는것이였다. 접견형식은 비공식방문인데 담화까지 포함시켰으면 하는것이 그들의 희망이였다.

외무성을 통해 그 보고를 받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쾌히 수락하시였다. 그들의 방문목적이 단순히 서울해방에 대한 축하가 아닐것이며 보다는 이 전쟁의 성격과 발전전망에 대한 정부의 견해와 립장을 알려는것이 기본일것이라고 짐작하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회견에 크게 의의를 부여하시였다. 세계의 적지 않은 나라들에서 이 전쟁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고집스럽게 붙안고있는 조건에서 유익한 기회라고 보셨다.

그이께서 접견장소인 내각 소회의실로 가시자 미리 와 대기하고있던 외교관들이 열렬한 박수로 그이를 맞이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신임장봉정식때라든가 명절행사에서 가끔 만나군 한 외교관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고 집사람들의 건강에 대해서까지 물어주시였다. 외교관들은 거의가 다 오늘 본국정부에 서울해방소식을 통보했다는것을 말하였으며 일부 대사들은 자기 나라에서 대대적인 조선지원깜빠니야가 예견되고있음을 암시하기도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주탁에 와앉으시다가 분명 모란봉이던가 대성산에서 꺾어온듯 한 꽃을 보시였다. 싱싱한 산 냄새와 향기가 물씬 풍기였다. 그이께서는 그 꽃을 보시며 매일 매시 싹트고 피여나고 커갈 무성한 성장의 계절인 여름을 새삼스레 느끼셨다. 갓 모를 낸 벼밭이며 강냉이밭들, 꽃향기가 진동할 과원을 발목이 휘도록 돌아보고싶으신 충격이 가슴을 짜릿하게 훑으시였다.

(두달전에는 이 동무들과 5. l절 들놀이를 하였었지.)

그이께서는 담담한 오후해빛이 아름으로 쏟아져들어오는 창문쪽을 마지막으로 보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먼저 아무런 준비도 없이 회의실에서 귀빈들을 맞지 않으면 안된데 대하여 량해를 구하고 서울해방을 축하하여 찾아준데 대하여 사의를 표시하시였다.

《어저께와 오늘 사이 모스크바, 베이징, 베를린, 부다뻬슈뜨, 지어 로마와 뉴욕에서까지 미제는 조선에서 손을 떼라고 군중집회와 시위가 있었습니다. 나는 이것을 나와 우리 인민에 대한 가장 큰 고무로, 축하의 선물로 여깁니다. 이에 대하여 나는 매 정부와 인민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합니다.》

통역이 채 말을 끝내기전에 열렬한 박수가 터져나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손을 한번 쳐들어 답례를 표하고 시간상 긴 담화는 할수 없으니 필요되는 질문에 대답을 주겠다고 하시였다. 예견하신대로 질문은 인차 제기되였다.

《수상각하.》

맨 구석진데서 나이 지긋한 외국인이 일어섰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가 북유럽의 정치평론계에서 이름있다고 하는 사람임을 알아보셨다.

《저는 1차대전시기부터 기자였습니다. 에스빠냐전선도 가보았고 쏘도전선도 아프리카의 2전선도 보았습니다. 실례지만 지금 각하의 적국으로 되는 나라들의 사령관과 수상들과도 인터뷰를 했습니다.… 서투른 감상을 지레 발표하는것은 이르지만 지금 저는 이 나라가 생사존망의 위험에 직면한 상태라는것을 잊지 않고있는가 할 정도로 각하의 여유있는 태도에 감탄을 금할수 없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서두가 요란한 기자의 이야기에 각성을 가지고 주의를 집중하셨다.

《각하, 저는 이 전쟁의 현재와 미래를 두고 각하의 전체적인 견해를 듣고싶습니다. 이 전쟁을 단순한 동족분쟁으로 봐야겠는지, 세계정치세력의 대결로 보겠는지… 다 알고싶습니다.

외교관제씨들, 저의 질문을 량해해주십시오.》

외교관들 거의가 그 기자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정치평론가는 모두의 관심사를 한데 묶어 질문한셈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의깊이 그를 응시하다가 말씀을 떼시였다.

《현재와 미래에 대하여 말하자면 부득불 과거부터 소급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격앙되는 흥분을 느끼며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계속하시였다.

《력사를 파헤쳐놓고 볼 때 인류에게 무서운 참화로 새겨진 2차대전은 뮨헨협정에 의한 체스꼬의 비극으로부터 시작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미제는 조선을 그러한 도이췰란드의 <체스꼬>로 만들려고 하고있습니다. 11년전 세계의 비렬하고 어리석은자들의 묵인하에 체스꼬를 먹은 나치스는 큰 맹수로 둔갑하여 뽈스까를 삼키고 프랑스를 걷어쥐였고 영국에 포문을 돌렸습니다. 그때야 세계는 <파쑈도이췰란드>의 위험성을 깨닫고 무장을 갖추기 시작하였으나 늦었습니다. 그 깨달음의 지체는 수천만의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세계의 일부 사람들은 1939년에 영국이나 뽈스까의 정치가들이 리해하던것처럼 미국을 딸라의 나라로만 알았지 세계를 통채로 위장에 집어넣으려는 허기증에 시달리는 맹수임을 모르고있으며 포츠담회담에서 코를 떼운 트루맨이 뒤에 돌아가 군수독점체의 지령밑에 얼마나 무서운 열전의 무기를 제작하는가 하는데 대해서는 외면하였습니다. 이렇게 이발과 발톱을 벼른 미국은 오늘 조선을 자기의 첫 침략대상으로 찍었습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조선전쟁을 다만 프로레타리아와 부르죠아지의 반목과 모순에 의한 계급투쟁의 일환으로, 사상과 제도와 리념의 차이로부터 오는 민족공민전쟁으로만 보고있습니다. 유엔마저 미국의 대변조합이 되여 세계라는 이름을 걸고 우리를 비방공격하고있으며 미국은 이에 더욱 기고만장하여 자기의 기도실현에 박차를 가하고있습니다.

그러나 리승만군대는 덤벼드는 첫걸음에 된탕을 먹었고 오늘은 저희들의 이른바 수도라던 서울까지 내주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워싱톤의 선전내용으로 따른다면 민족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북조선 공산주의자들의 리념상 적의로 시작된 이 <동족상쟁>의 내란은 이미 승부가 내린것으로 됩니다. 그러나 전쟁은 이제 시작된데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전쟁은 앞으로 어떻게 될것인가. 지금 미국내에서는 전쟁을 반대하는 운동이 그칠새 없지만 트루맨행정부와 펜타곤, 월가의 전쟁상인들은 그 목소리에 관계없이 전쟁의 불을 더 크게 지피려 하고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리성을 돌이킨다면 전쟁은 멈춰질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승냥이가 양으로 변할수 없는 리치와 마찬가지로 한갖 꿈에 불과한 일일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전쟁은 미국이 조선과 나아가서 아시아, 씨비리 전체를 먹으려는 침략의 야망에서 시작된것이기때문입니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이 전쟁은 미제국주의가 조선과 나아가서 아시아와 사회주의진영전체를 병탄하려는 세계적인 싸움의 첫시작으로서 우리에게는 반제민족해방전쟁으로 되는것입니다. 현재 미국은 7함대와 5공군으로 이 전쟁에 참가하고있습니다. 그러나 래일에는 미지상군까지 덤벼들것입니다. 그때면 싸움은 매우 어려워질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굴하지 않을것이고 반드시 승리할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예측은 기자선생… 그때에 가서 더 봅시다.》

김일성동지의 말씀에 방안은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모두의 얼굴빛이 그 엄청난 사변을 그려보듯 긴장되여있었다. 그때 유럽인치고는 키가 작다고 볼 암팡진 몸매의 한 대사가 비장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언젠가 신임장봉정식때 자기를 사냥애호가라고 소개하면서 《장군님의 사격술이 신묘하다는데 그 비결을 가르쳐주십시오.》라고 청하던 일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를 그리였다. 대사는 외교적호칭을 뛰여넘어 그때처럼 《장군님!》 하고 부르고는 잠시 있다가 힘겹게 말을 떼였다. 《지금 장군님께서 분석하신것처럼 미국은 딸라와 선전수단으로 적지 않은 나라들을 매수하고 국제련합으로 신생공화국을 짓밟아버리려 하고있습니다. 예언대로 미국의 륙군까지 총 출동한다면 비례상 대비도 안되는 싸움으로 될것입니다.

비록 귀정부의 군대와 인민이 매우 용감하고 영웅적이나 그앞에서는 매우 바쁠것입니다. 그러니만치…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서울까지 나가서 위력을 보인이상 더 나가지 않는것이 어떤가 하는것입니다.

지금의 경이적인 승리에 세계가 놀라고있을 때 철수한다면 아무리 파렴치한 미국도 더는 덤벼들 구실이 없지 않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긴장된 눈길로 김일성동지를 주시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가슴속에 태풍같은 격한 감정이 치솟는것을 간신히 억제하고 물으시였다.

《당신네 집에 강도가 뛰여들면 어쩌겠습니까?》

대사는 긴장어린 태도로 김일성동지를 응시하다가 통역의 말을 듣고는 씽긋 웃었다.

《수상동진 저에게 쏴잡아야 한다는것을 권고하는군요.》

《그렇습니다. 동무야 렵총의 명수가 아닙니까. 양우리에 기여든 승냥이는 때려잡는 길밖에 없다고 이미 이소프시대에 다 밝혔습니다. 그냥 둬두면 또 달려들것이 아닙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대사를 보시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지금 우리의 처지에서는 끝까지 싸우는 길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민의 한결같은 의지이며 결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민은 원체 가축을 물어가는것이 호랑이라 하더라도 다 쫓아가 때려잡는것이 생리로 되여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전쟁에서 우리가 이길수 있는가 하는 문제인데 나는 각성된 인민의 의지는 불패이라는 진리로 대답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 전쟁에서 우리 인민은 모두가 영웅으로 될것입니다.》

《수상동지!》

대사는 뭔가 격렬한 웨침을 터뜨릴듯 하다가 두손을 높이 들어 박수를 쳤다. 우뢰같은 박수소리가 뒤따랐다. 누군가 《코레아! 게로이(영웅)!》 하고 감격하여 웨쳤다. 그러자 박수소리는 더 높아졌고 《브라보!》 《게로이》라는 말이 합창처럼 터져울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가볍게 손을 저어 그들의 환호에 답례를 표시하시였다. 접견담화가 끝난 뒤 스티꼬브를 비롯한 몇몇 대사들은 따로 남아 그이께 본국과의 합의가 있었다고 하면서 필요되는 원조품목들을 알려달라고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들의 제기가 고마우면서도 한편 서글픈 느낌을 체험하셨다. 어저께만도 전쟁의 추이를 불안스럽게 주시하던 그들이였다. 그들과의 접견을 마치고 집무실에 이르신 그이께서는 심한 피곤을 느끼셨으나 휴식할수 없으셨다. 전선동부와 중부의 전투정황을 료해하시고 해당 지시를 떨구시였다. 간난신고를 거듭하여 서울측방에 이르렀다가 남한강으로 진출하는 최현부대에는 원래의 수원이 아니라 진천방향으로 계속 진격을 다그치라고 명령을 주셨다. 저녁켠에는 만경대의 김보현할아버지가 오셨다. 서울해방을 축하하여 보내는 만경대사람들의 소박한 선물인 과일꾸레미를 힘겹게 가지고 온 할아버지는 김일성동지의 축가신 신색에 놀라며 오늘밤만은 꼭 집에 들어가 쉬라고 간곡히 당부하셨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리하겠다고 대답하셨으나 일감은 그것을 허락치 않았다. 새로 꾸리는 군수공장문제를 두고 김책이며 정준택국가계획위원장과 저녁시간을 다 보내고난 뒤끝에는 재정상을 만나 남반부해방지역에서 전시수송사업에 동원된 사람들의 생활보장문제까지 토론하시였다. 그 담화가 끝날무렵에 전방지휘소의 전투보고서가 련락군관편에 도착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강건의 편에, 그리고 어제밤 련락군관을 통해 보낸 2차작전방침에도 강조하여 밝히신 한강을 급속도화하여 진격속도를 멈추지 않을데 대한 지시에 따라 늦어도 래일 저녁으로 한강도하를 개시하겠다는 한줄짜리 대목을 보시고 좀 늦는다고 생각하셨으나 지방자재를 모아 다리복구를 하자면 그만한 시간이 걸릴수밖에 없다고 보셨다. 전화가 개설되였다면 실행여부를 다시 확인하고싶으셨으나 무선은 전파장애로 잘 안되고 46년에 끊어진 평양-서울전화선은 아직 회복되지 못하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보고서 마감부분에 밝힌 체포한 적 고위급인물들의 명단을 보시고 보위성 문화부상 김일을 찾으셨다.

오늘밤 서울에 나가게 된 김일은 인민군화보의 표지규격을 가지고 찾아왔었다. 그이께서는 화보와 인민군신문의 편집내용에 대하여 몇가지 의견을 주시고 포로된 남조선 고위급인물처리에 대하여 말씀을 주시였다.

《<정부>나 <국회>의 인물들을 구속하는 놀음을 하지 말아야 하겠소. 물론 리승만이나 그 졸개같은 극반동들은 제외요. 나라를 팔아먹고 손에 인민들의 피를 묻힌자들은 용서할수 없지요. 그러나 여기 안재홍이같은 사람들까지 잡아둔다는것은 말이 되지 않소. 사상이 좀 다르다는것이 무슨 큰 문제겠소. 제나름대로 보고 사느라면 다 생각이 있겠지요. 늙은분들인데 생활보장에까지 우리가 관심해야 할것 같소. 그리고 김규식이나 최동오선생같은 분들에 대해서는 자택경비까지 서줘야 할것 같소. 적들의 도발적인 테로가 있을수도 있소. 그리고 홍명희선생의 부탁인데 성송암이라는 학자에 대해서 알아보오.》

김일을 떠나보내신것은 10시 조금 지나서였다.

그이께서는 밖에까지 그를 배웅해주시며 마지막으로 한강도하대책과 관련된 문제에 대하여 다시금 강조하여 말씀하시였다.

11시부터는 군사위원회를 지도하시였다.

인민군대렬을 보충하며 부대들의 후방공급사업조건을 잘 보장할데 대한 문제를 토론한 뒤 공화국영웅칭호를 제정할데 대한 문제를 제기하셨다. 영웅칭호제정에 대한 김일성동지의 제기는 전폭적인 지지찬동속에 채택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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