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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50년 여름 제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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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6,596회 작성일 20-02-07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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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jpg

 7 장

 

운학은 철원읍에 들어서며 처음으로 포소리를 들었다. 그는 전방지휘소 참모진에 배속되여 보위상의 일행을 따르게 된것이다.

운학은 오늘아침 《반공격》이라는 소리에 온 참모부가 들썽해있는 시각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갔다온 강건총참모장이 그의 작업대앞에 이르렀을 때 전선에 보내줄것을 제기했다. 물론 최현장령에게 청탁했던 사실도 꺼들면서.

강건은 매우 놀라운 기색이 되여 운학을 쳐다보았으나 성은 내지 않았다.

《동문 지도작업에 재간이 있소. 다른 생각 말고… 내 고향도 남이요. 경상북도 상주를 아오? 상주.》

강건은 이렇게 말했지만 부탁은 들어준것이다…

《저것 보우.》

최용건의 부관이 손짓하였다. 둔덕진곳에 학교가 있었다. 흰위생복을 입은 군인들이 마당에 선 차에서 부상병들을 들어내리우고있었다. 아이들과 로인들, 밥함지며 국통을 인 녀인들이 그 주변에 몰켜서있었다. 그 학교를 지나 솔숲그늘이 드리운 골짝길로 들어서는데 세채의 담가가 마주오고있었다. 맨앞 담가병은 모자도 없이 얼굴이 온통 땀에 젖어 입을 벌린채 가쁘게 숨을 톺았다. 그런데 그뒤 담가의 백포가 풀썩하더니 소매가 찢어져 너덜거리는 팔이 쑥 삐여져나와 흔들거렸다.

보위상의 차가 그 담가앞에서 불시에 멈춰섰다. 예까지 오면서 한번도 차를 세운 일이 없던 보위상이였다. 최용건이 차에서 내려서자 제일 뒤채의 담가를 들고오던 키가 작달막한 군인이 담가를 놓고 달려와 《민족보위상동지! 조선인민경비대》 하며 규정영접보고를 하려 하였다.

최용건은 《수골 하오.》라고 하며 손을 내젓고 팔을 흔들고있는 부상병에게 다가갔다. 부상병의 왼쪽견장은 날아나고 바른편견장만 붙어있었다. 색갈구분을 할수없이 흙범벅이 된 바탕에서 노란별 하나만은 알아볼수 있었다. 목에서부터 머리까지 붕대로 칭칭 감긴 그 경비대군관은 이제 스물한두살 될가말가하게 어려보였다. 코밑과 눈언저리를 약솜으로 닦은듯 발기우리한 피부가 드러나고 뺨에는 온통 피와 흙먼지가 엉겨붙었는데 맑은 두눈이 희뿌연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보고있었다. 최용건이 내려다볼 때도 그의 눈동자는 까딱않은채 무엇을 호소하는듯, 묻는듯 하늘만 쳐다보고있었다. 보위상은 분명 담가대 책임자인듯한 키작은 특무장에게 눈길을 돌렸다. 특무장은 바지혼솔에 두손을 딱 붙이고 기다렸던듯 재빨리 입을 열었다.

《이 소대장동지는 흙속에 절반 묻혀있는걸 찾아냈습니다. 정신을 잃고 계속 헛소리만 하고있습니다. 적의 새벽기습을 맨처음 겪은 경비초소의 소대장인것 같습니다. 초소전호는 포사격에 다 없어지고 그앞에 백여명의 적이 쓰러져있었습니다. 이 소대에는-》

부상병의 신음소리가 그의 말을 중단시켰다. 팔이 아까처럼 뻗쳐 흔들렸다. 최용건이 그 팔목을 잡았다. 그는 마치 부상병의 팔목을 잡고 맥을 세는듯 아무말없이 그 군관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보위상동지시오.》

특무장이 그가 알아듣도록 큰소리를 질렀으나 군관의 눈표정은 여전했다. 그러다가 잠시후 무슨 꿈에서 깨인듯 부상병이 속삭였다.

《용서해주십시오.》

너무나 예상외의 말에 모두가 흠칫하며 숨까지 멈추었다.

운학은 긴장하여 그 군관의 입을 지켰다. 그 군관은 여전히 같은 눈표정이였으나 마치 정신이 돌아선듯 또렷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초소를 사수… 못했습니다. 무조건 사수하라는… 명령을… 못지켰습니다. 한시간을 견뎠습니다. 그러나 포사격에 전원… 그리고 대대가… 밀려들었습니다. 제가… 정신잃고 쓰러졌을 때… 적의 장갑차가… 우리 초소를 깔고 지났습니다… 우리는… 퇴각한것은 아닙니다. …그저 죽었고… 나는… 보았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 하지만 용서받을수 없었지요. … 소대는 희생되였습니다. 그러니 조국땅을 잃고… 전사도 잃고… 내가 왜 살겠습니까… 죽어야지요… 허나 용서해주십시오.》

《군관동지!》

특무장이 격하게 불렀다.

《소대는 다 죽지 않았습니다. 열세명이나 살았습니다. 그리고… 초소를 다시 탈환했습니다. 인민군대가 나왔습니다. 괴뢰군은 38°선너메로 쫓겼습니다.》

특무장은 목메여 웨치고는 보위상에게 어줍은 얼굴을 쳐들었다.

《아까부터 계속 이렇게 헛소리를 칩니다.》

최용건은 얼른 그의 눈길을 외면하며 낯을 찌프린채 꾸중하듯 말했다.

《헛소리가 아니요. 이 동문 듣지 못하고… 시신경장애로 잘 보지 못하오. 빨리 후송하오… 그리고 군의들에게 말하오. 이 동무가 회복되는 즉시… 잘 싸웠다는 나의 감사를 전해주게 하시오.》

차에 오른 최용건은 엄한 눈길로 앞을 쏘아보며 짧게 말했다.

《갑시다!》

차가 떠났다. 운학의 모터찌클에 탄 소좌는 담가대를 뒤돌아보며 매우 통절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한개 소대에서 열세사람이 남았단말이지… 저 소대장동문 두다리가 다 부서졌소… 애국자들이요…》

운학은 아무 말도 못했다.

그는 이제껏 별로 생각 못했던 전쟁의 한 단면을 보았다. 그것은 비장하고 준엄한 세계였다. 한때는 농가들이였으나 오늘아침부터 전방지휘소 건물들로 된 초가와 동기와집들이 몰켜있는 산기슭으로 운학이네가 들이닥친것은 이때로부터 30분 못미쳐서였다. 보위상이 부관들과 함께 전화선묶음들이 빨래줄처럼 늘어진 동기와집으로 들어간후 운학은 사단급에서 온 군관들속에 끼여들어 두서없이 오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가 새벽에 지도작업을 하면서 보았던 전선이 6~7시간 사이에 얼마나 크게 변하였는가를 커다란 놀라움과 경탄속에 들었다. 52사는 벌써 38°선을 넘어서 적을 춘천쪽으로 압박하고있고 53사는 포천을 향해 905땅크려단과 협동하여 내닫고있으며 54사는 동두천에 이르렀다는 믿기 어려운 기적같은 공격이였다. 바지가랭이가 온통 흙투성이이고 겨드랑과 잔등에 비맞은 자욱이 아직 마르지 않은 소성 네알을 단 군관이 화제의 중심이 되였다.

그의 이마에는 무언가 스쳐놓은듯 갈퀸 상처자리가 나있었고 채 마르지 않은 피자국이 붙어있었다. 분명 본인은 그것을 알련만 씻을념을 않고 주변의 좌급 군관들까지 너나들이 동무가 된듯 허물없이 친근하게 말했다.

《…놈들이 된찌를 갈겼지. 글쎄 우리가 이렇게 쎌줄이야 꿈엔들 알았겠습니까? 그저 다리야 날 살려라 하고 줄행랑인데 뭐 평양에 가서 먹자던 도시락은 물론 총이건 모자건 다 집어치고 들구뺐지요. 들에는 그놈들이 줴버리고 간 물건짝들로 쫙 깔렸지요. 참 이런걸 봤습니까? 전리품인데 한대들 피워보십시오.》

그 군관은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여 매 사람에게 담배를 권했다.

운학은 해방직후 서울에서 미군들한테 붙은 장사군들이 내다 팔던 《럭키 스트라이크》를 알아보았다. 그 군관은 한쪽켠에 우두커니 서있는 깨끗한 군복차림으로 유표한(여기 군관들의 옷은 죄다 비맞아 험상궂은데다가 위장망을 풀단처럼 쓰고있었다.) 운학이에게까지 너그러운 태도로 그러면서도 어딘가 약간 깔보는듯한 태도로 담배를 권했다.

《고맙습니다.》

운학은 이 군관들이 모두가 전투에 참가하여 어려운 첫 세례를 이겨냈다는 그 한가지 리유로 자기가 몹시 주눅이 드는것을 느끼며 담배를 공손히 받아쥐였다. 바로 그때에 보위상의 부관인 소좌가 그를 찾았다. 소좌는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보위상으로부터 54사의 전선형편을 직접 보고 오라는 과업을 받았다고 하면서 필요한 경우에 현장에서 지도작업까지 하여야 되기때문에 운학이도 가자는것이였다. 운학은 보위상 부관이 한갖 전선을 돌아보는것뿐만아니라 주요한 명령서들도 동시에 가지고 갈것이라는것을 알았으나 더 알려 하지 않고 반갑게 응했다. 안내 및 호위로 두 자동총수가 탄 모터찌클 한대가 나타났다. 자동총수들은 옷이 찢긴것으로 보아 새벽부터 이 싸움판에 뛰여든 군인들같았다.

운학은 모터찌클에 다시 올라탔다.

차가 오불꼬불한 산길을 돌아 골짜기를 빠져 언덕에 올랐을 때 운학은 두대의 자동차에 열댓명의 군인들이 붙어 법석이는것을 보았다. 가까이 가보니 두대중 한대는 자동차가 아니라 《U. S. A AR MY》라는 영어문자가 또렷이 찍힌 장갑차였다. 한쪽바퀴가 떨어진채 볼성없이 찌부러진 그 장갑차에 쇠바줄을 걸고 화물차가 끌고 그뒤에서 공병견장을 단 군인들이 나무토막과 쇠장대로 장갑차바퀴에 든장을 먹이며 떠밀고있었다.

《엠-8형 장갑차로군.》

보위상 부관이 중얼거리며 모터찌클을 멈춰세우고 누구에게라없이 물었다.

《동무들, 뭘하고있소?》

《박물관에 가져가렵니다.》

웃통을 벗어붙이고 장갑차바퀴밑에 든장질을 하던 군인이 웃으며 대답할 때 공병하사관이 나타났다. 그는 경례를 하고 기름이 발린 손으로 얼굴의 땀을 닦으며 근심낀 기색으로 말했다.

《이놈의 장갑차가 길을 막아서 굴려치우려 하는데 끄떡않습니다. 우릴 먹겠다고 달려들어올 때는 몹시 빨랐겠는데 깨진 다음에는 영 바위산입니다.》

《뭣에 맞았소?》

《반땅크수류탄에 주저앉았습니다.》

《허허, 반짜리에 너부러졌군. 저쪽 바위밑을 파고 좀 끌면 도랑으로 굴러떨어질것 아닌가.》

부관의 말에 공병하사관은 활기있게 대답하였다.

《네. 지금 그렇게 하고있는중입니다. 근데 밭곡식이 손해봅니다.》

그는 파아랗게 밭을 덮은 콩포기들을 손짓하였다.

《어쩌겠소. 놈들한테 그 값까지 받아내면 되겠지. 아니… 저놈은 전쟁이 끝난 다음 놈들이 어떻게 쳐들어왔는가를 알리는 증표로 그대로 밭에 두면 멋지겠군. 동무들, 수고하오.》

부관은 매우 유쾌한 표정이였다. 언덕을 내려 다시 골짜기에 들어섰을 때 그들은 근 한개 중대가량의 푸른 군복차림과 부딪쳤다.

《포로병이다.》

누군가 웨쳤다. 비와 흙탕에 범벅된 포로병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였다. 피로한 겁먹은 눈길들이 힐끔힐끔 운학이네를 견줘보았다. 앞 모터찌클에 탄 두명의 자동총수들은 《여! 맛이 어때?》 하고 놈들을 향해 소리치며 그대로 옆을 지나갔다. 부관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모터찌클병에게 차를 세우라고 하였다.

맨앞에 서서 피발이 선 눈으로 흘끔 쏴보는 괴뢰군대위를 향해 큰소리로 물었다.

《공격출발진지를 몇시에 차지했댔소?》

대위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외로 틀었다.

《아침은 먹었소?》

대위는 그 물음에도 침묵을 지켰다.

《흠.》

부관이 쓰겁게 웃을 때 대위의 바로 뒤에서 불평에 찬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낯이 파랗게 질린 괴뢰군 사병 한명이 대위를 밀어젖힐듯하며 나와 섰다.

《이놈은 먹었을지라우. 그러나 우리는 못먹었습니더. 궁평리를 점령하면 아침을 먹을것이라고 했는데 궁평리에 오니 장수면소재지까지 가서 먹자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총으로 몰아대는데 어쩔수 없었습니더. 한데 장수면으로 쳐들어가다가 인민군대 포위공격에 걸려 대대가 다 포로됐습지요. 인민군님들이 점심밥을 주어 고맙게 먹었습니더. … 이놈은 지주자식입니더.》

《닥쳐!》

대위가 돌아서 꽥 소리치자 갑자기 그놈한테 서너명의 포로가 때릴듯이 달라붙었다.

《늬 이놈아, 아직도 장교나. 이젠 늬나 내나 다 포로다. 이 옴뚜께비 대대장아.》

호송병이 말리지 않았으면 란투극이 벌어질번하였다. 부관이 역스러운 연극이나 본듯 찌프린 얼굴로 《가기요!》 하고 말을 떼고 운전수가 기야를 밟을 때 문득 《림형!》 하는 소리가 울렸다. 키가 껑충한 괴뢰군장교가 운학이를 향해 오른팔을 내밀고 주춤주춤 걸어나왔다. 대모테안경이 해빛에 번쩍거렸다.

공포와 비굴, 아첨과 수치 이 모든 저속한 감정이 환을 그린듯 이지러지고 창백해진 대모테안경은 울상이 되여 운학이를 쳐다보았다.

운학은 숨이 딱 멎는것 같았다. 그앞에는 성련화의 언니 성계화의 남편인 리영준이가 서있었다. 해방전 서대문감옥에 다닐적에 알게 된 인연으로 해방후에도 만나면 문안정도는 나누군 하던자였다. 더구나 성련화의 형부라는것으로 그뒤의 더러운 배경을 애써 보지 않으려 하며 비록 경원하고 멸시하면서도 타매하지는 않았던자였다.

해방직후 미국에 공부하러 간다던 저자가 이날 도적고양이처럼 밀려든 적군의 무리속에 섞여 나타날줄이야 상상이나 했던가.

《너도?》

운학은 공기를 뽑듯이 말을 하였다.

《림형!》

영준은 운학의 싸늘한 시선안에 눈길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쳐들며 애걸하듯 말했다.

《나를 도와주오.》

운학은 자기가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보병총을 멘 두줄배기 호송병의 시선이 의혹과 멸시를 담고 자기의 얼굴을 일별하고 부관과 운전수가 호기심에 차 자기를 본다는것을 알았을 때 괜히 자기가 무슨 나쁜짓을 하다가 들킨듯한 당황함과 모욕감을 동시에 느끼며 얼른 이 자리를 떴으면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운학은 그의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에 풀물이 퍼렇게 든것과 바지무르팍에 온통 흙투성이인것을 보며 이자가 살려고 몹시 애를 썼다는 생각을 하며 구슬픈 조소를 머금었다. 그에 용기를 얻었는지 아니면 반발을 느꼈는지 영준은 방금전의 절망적인 기색을 버리려 애쓰며 한결 고집어린 태도로 입을 열었다.

《한가지만 말해주오. 우릴 죽이오? 살리오?》

운학은 영준의 허리춤에 매달려있는 권총갑을 바라보았다. 그 권총갑은 순간적으로 그의 눈앞에 중상당한 경비소대장의 피기 잃은 얼굴과 눈동자를 그려주었다.

《림형, 거기서는 포로에 대한 국제법을 적용하오?》

재차 묻는 영준의 비굴한 목소리에 운학은 치솟는 격분을 느꼈다.

《여보, 날강도로 쳐들어온 당신네가 무슨… 법이라는 공정성을 론할 자격이 있소?》

《림형, 난 통역이요. 난 누구도 죽이지 않았소. 림형은 나를 알지 않소.》

《알지, 그러나 나는 총을 찬 당신이 아니라 학생이던 당신을 알고있었을따름이요.》

《림형, 나를 도와주오.… 난… 난… 그래도 림형의 련화씨를 구원해주려 했소!》

《련화?》

《그렇소. 련화는 〈빨갱이〉로 륙군형무소에 수감되였소. 내가 그를 빼내게끔 했소. 륙군형무소에서 놓여나왔을것이요. 정말이요. 내 동료가 아… 림형도 잘 아는 백정식군이 빼낸다고 장담했소. 난 어찌되오?》

《우린 교형리가 아니요.》

운학의 가슴은 뭔가 무거운것으로 지지눌리운듯 가빠났다. 그 중압을 뿌리치듯 그는 운전수를 향해(이 순간 자기의 상급이 옆에 있다는것도 잊고) 소리쳤다.

《뭘하고있소. 떠나지 않고.》

운학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를 악물었다.

《아는 사이요?》

차가 얼마간 달렸을 때 보위상 부관은 낯이 컴컴하게 질려있는 운학이를 보며 물었다.

《네.》

《그런데 성련화란 누구요?》

《저의… 녀동무입니다.》

운학은 태연하게 대답하느라고 했으나 목소리가 떨렸다. 불현듯 심장이 옥죄여들었다.

(과연 사실인가?)

련화의 신상에 끔찍한 불행이 닥쳐들었다는 생각에서 그는 헤여날수 없었다. 한편 백정식이가 그앞에 어두운 망령처럼 나타나 마음을 어지럽혔다. 련화를 억지로라도 데려오지 못한것이 또다시 아픈 후회로 살아올랐다. 련화는 한생 운학이만을 알고 살겠다고 하였다.

(과연 그는 어떻게 변했을가?)

38선을 넘자 길에는 남으로 나가는 포차며 보병행군대렬이 꽉 차있었다. 경무관완장을 끼고 자동총을 앞가슴에 걸멘 군관이 갈림길목에서 대렬을 좌우로 뽑고있었다.

그 경무관에게 앞의 자동총수들이 뭐라 말할 때 운학은 경무관뒤에 한쪽 널판이 톱에 잘린듯 떨어져나간 리정표가 있는것을 보았다. 《서울-32km》라는 글자가 확 안겨왔다.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54사참모부에 들렸을 때 운학은 서울해방이 결코 먼 꿈이 아니라는것을 실감했다. 54사 선두구분대는 벌써 동두천쪽으로 진격해나가고있었다. 운학은 작전참모방에서 정황지도를 펼쳐놓고 사단의 진출계선을 그려넣다가 이 진출계선을 확정한지 몇분이나 지났는가고 물었다. 작전참모는 30분전에 보고된 자료에 기초하여 작성한것이라고 하면서 개별적중대들은 더 나갔을지 모른다고 하였다. 운학은 보위상부관이 사단장을 만나고나온 후 그에게 지도를 넘기며 정색하여 제기했다.

《소요산을 공격하는 5련대의 진출계선을 정확히 알기 위해 제가 그쪽으로 나가야겠습니다.》

운학은 자기가 전투에 참가해보지 않고는 아무 일도 손잡히지 않으리라는것을 알았기때문이였다. 보위상 부관은 그의 이글이글 타는 눈을 보다가 한숨섞인 소리로 말했다.

《우린 이이상 나갈 권한이 없소.》

《여기에 무슨 권한이 있습니까. 보다 정확한 보고를 하자면 전방에 나가보고… 》

《동무!》

부관은 억이 막힌 웃음을 짓고는 타이르듯 말했다.

《동문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그래 난 뭐 지도작성을 할줄을 몰라 동물 데려온줄 아오. 그리고 공격하는 부대의 진출계선을 우리가 와서 그려가지고 가 보고한다는것이 19세기도 아닌 현대전쟁에서 말이 되오. 전화도 있고 무전도 있는데. 다만 동무가 이리로 온것은 아바이의 교육학적배려지. 아바인 화약내를 못맡은 참모부 군관들에게 전선바람을 쐬여야겠다고 했소. 그래서 내가 동물 데려온것이요. 나도 이렇게 여기까지 나온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일거요. 정식 련락군관제가 생길테니까. 동무가 오늘같은 행운이라도 계속 얻자면 빨리 가서 전방지휘소 련락군관자리라도 하나 버젓이 따는게 상책이요.》

《화약내를 맡으라면 전방에 가야 하지 않습니까. 정 안된다면 전 도망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운학은 그의 팔을 꽉 붙잡았다. 부관은 물끄러미 그를 보았다. 동정어린 눈빛이였다.

《동무 심정은 알만해. 그런데… 아니, 가보오. 그러나 게서 머무를 생각은 마오.》

《고맙습니다.》

사단 경비중대군인을 안내로 태운 모터찌클은 미국제 대형트럭과 포들이 어지럽게 널린 사이를 날새처럼 빠지며 쏜살같이 달렸다. 소요산을 언덕 하나로 사이둔 길목에는 완전전투준비를 갖춘 한개 대대가 엎드려있었다. 경적을 울리며 그대로 길목을 벗어나려 하자 중성 한알을 단 군관이 성이 독같이 나 권총을 빼들며 소리쳤다.

《미치지 않았소. 서라!》

운학의 군인증을 보고 《전방에 나가보라는 보위상동지의 지시집행중》이라는 과장된 변명을 듣고나서도 그는 성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저 동무들까지 자꾸 내닫겠다는걸 겨우 막고있는데 알만한 동무까지 이러면 어떻게 하오.》

《그래도 전 나가봐야 합니다. 저앞에는 두개 중대가 전개하지 않았습니까?》

《전개했소. 하지만 화력이 어찌나 심한지 고지기슭에 붙어 더 움직이지 못하오. 그래도 전사들이 마구 나가 희생이 많았소. 련대지휘부에 안들렸댔소? 련대에선 더 돌격하지 말고있다가 나팔신호가 울린 다음 일체 돌격을 하라고 했소. 무슨 우회전술을 쓰는 모양이요.》

《그러면 이 대대도 좀 더 접근했다가 앞의 중대를 지원하면 안됩니까?》

《저길 보오.》

언덕을 가리켰다. 뽕나무들이 빗살처럼 촘촘히 서있었다. 마치 센 우박이 쏟아질 때처럼 나무이파리들이 나폴나폴 날아떨어졌고 나무아지들이 문질러져나갔다.

《쫓겨간놈들이 몽땅 모여서 미친듯 쏴갈기오. 저기로 내닫는것은 무모한짓이요.》

그의 마지막말에 운학은 불쾌감과 함께 그 어떤 의분을 느꼈다.

《전… 최전방을 가보게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모터찌클병에게 그대로 여기 대기하라는 말을 하고는 군관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돌아섰다.

언덕우에 오르자 발밑에서 흙덩이들이 뿌리쳐날았다. 총탄이 비오듯 쏟아지는것이였다. 그는 숲으로 뛰여들어 아카시아가시에 얼굴이 찢기는것도 모르고 내달았다. 첨벙! 하고 파아란 모가 들어찬 논판에 뛰여들었을 때 총탄에 모자가 벗겨져 달아났다.

《엎디시오!》

논뚝밑 물탕에 한사람이 엎디여있는것이 보였다. 그의 얼굴은 흑인처럼 시꺼맸다. 흙물이 튀여 그런것이였다. 특무장의 견장을 단 그 군인의 량옆에는 늄밥통 두개가 놓여있었다. 밥통은 둘 다 흙탕에 버물러지고 우그러진것이 처참할 정도였다. 한쪽 밥통의 쭉 터갈라진 짬새기로는 팥밥알들이 비죽비죽 내밀려있었다. 온몸을 뜨스한 논물에 잠근 운학은 불시에 웃음이 나갔다. 밥통마저 이처럼 된탕을 겪는 때에 자기는 조금도 상하지 않았으며 주요하게는 자기가 겁먹지 않고 탄우속을 달려왔다는 자긍심때문인것 같았다.

《이건 점심입니까?》

운학은 헌헌한 태도로 특무장을 향해 물었다. 무엇때문인지 내처 얼굴을 찌프리고있던 특무장은 그의 말에 매우 찔리는 표정이였다.

《중대는 아침도… 점심도… 못… 먹었습니다. 〈기상, 전투!〉 한 다음부터 계속 나가는판인데… 국은 끓였으나 국통은 포격에 잃었습니다. 국통을 지였던 전사도 죽고…》

운학은 속이 뜨끔해 자기가 웃은데 대하여 후회를 하였다.

《하여튼 잘됐습니다. 난 이걸… 어떻게 고지까지 가져갈가 했는데…》

운학은 그의 입술이 파란 빛을 띠고있음을 놀라움속에 보았다.

《어데 아프오?》

《배에 맞았습니다.》

《뭣이-》

운학은 황급히 기여가 특무장의 어깨를 잡아돌려 눕혔다. 상처는 보기 끔찍할 정도였다. 확 헤쳐진 옷자락밑 배꼽옆에 펑하니 뚫린 구멍이 나타나고 희끗희끗한것이 보였다. 개인붕대포를 풀어 상처를 동일 때 특무장은 《음음》 하고 앓음소리를 쳤다.

《꽤 견디겠습니까?》

운학은 이 특무장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망설였다. 특무장은 담배진이 누렇게 앉은 이를 드러내며 비죽이 웃어보였다.

《난 됐수다. 이제… 담가대가 오겠지요. 그저 저 식사를… 부탁합니다. 지금 중대원들은 이 특무장을… 뭬라 하겠습니까. 이런 때 제구실 해야 되는데…》

《몇중대요?》

《…3중대…입니다.》

운학은 특무장의 손을 꽉 잡았다놓고 밥통을 량팔에 하나씩 끼였다. 그는 속으로 뜨거운것을 삼키며 무릎걸음으로 기여나가기 시작하였다. 논배미 하나를 넘어 얼마간 더 나갔을 때 갑자기 나팔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나팔소리는 고지를 둘러싼 사방에서 련이어 울리고 고지기슭으로 수많은 군인들이 내달리는것이 보였다.

운학은 열들이밥통을 그대로 껴안은채 벌떡 일어서 내닫기 시작했다. 너무 덤벼치는통에 감탕판에 꼬꾸라지기도 했다. 그러나 밥통은 어떻게 해서든 붙안고 떨구지 않았다.

고지중턱에 이르러 자지러진 총성과 만세소리를 들었을 때는 밥통을 훌 팽개치고 다문 몇놈이라도 제껴버려야겠다는 생각이 꼭뒤까지 치밀어올랐으나 특무장의 어줍은 눈길과 간절한 말이 떠오르며 그것을 밀막았다.

온몸이 그대로 땀자루가 되여 고지에 올랐을 때는 이미 전투가 끝난 뒤끝이였다. 적들의 새까만 무리가 행길과 논밭으로 하여 동두천시가지쪽으로 몰려가는것이 육안으로도 빤히 보였다. 운학은 밥통을 껴안은채 연기 자욱한 고지우를 오가며 《3중대!》를 소리쳐 찾았다. 열댓명의 포로를 꿇어앉힌 앞에서 백골표식이 그려진 흰 기발을 가리키며 뭔가 연설을 하던 군관과 마주쳐 그가 3중대장인것을 알았다. 운학은 특무장을 만나본 사연을 짤막히 말하고 밥통을 인계하였다. 중대장은 몹시 반가와했다.

《아침에 건빵 한쪼각씩 씹은것밖에 없지요. 그리구 세차례의 전투를 치르며 예까지 장 달려왔습니다. 무엇때문이겠습니까.

바로 이때문이지요. 놈들은 우리 땅을 백골로 뒤덮자는것이 아니요. 특무장이 안됐군. 글쎄 무슨 귀신인들 식사보장을 할수 있겠습니까. 우린 계속 내달려가지.》 하면서 중대장은 특무장이 어떻게 좋은 사람이였는가를 한창 말하다가 운학에게 식사를 함께 하자고 했다.

《무어니무어니해도 배가 든든해야지요. 참모동무 아니면 어쩔번했습니까?》

개인밥통에 밥을 담아들고 모여앉은 전사들도 특무장에 대하여 평소에 인정이 많았다거니 힘이 세고 용감했다거니, 이제 나으면 꼭 중대에 다시 오게끔 해야 된다거니 하며 떠들다가 운학에 대해서도 들으라는듯 수군거렸다.

《특무장동지의 상태를 알고 저 총참모부 군관동지가 직접 식사를 날라왔어.》

《대단한데.》

《이젠 서울까지 죽 달릴수 있구나.》

운학은 이들과 함께 있었으면 하는 끈질긴 유혹을 간신히 털어버렸다.

중상을 당한 상태에서도 식사보장때문에 논판에까지 기여온 특무장의 인상이 더욱 그렇게 했는지 모른다.

(나도 빨리 전투임무를 받아야 한다.)

그가 전방지휘소에 도착했을 때는 밤 9시 30분이였다. 운학이 부관을 찾아 늦게 온것을 사죄하고 목격했던 싸움에 대하여 말하려 하자 부관은 그까짓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듯 희색이 만면해 말하였다.

《여보, 53사와 905땅크려단은 벌써 포천으로 들어가고있소. 서부의 51사도-》

그는 이 말을 끝맺지 못했다. 찦차 한대가 불을 죽였다 켰다 하며 맹렬한 속도로 들이닥쳤다. 보초선을 통과하여 보위상의 지휘처로 쓰는 동기와집앞에 와멎은 차에서는 비옷을 입은 장령 한명이 뛰여내렸다. 그는 보위상의 호위군관에게 신분증을 보이고는 아무말없이 방문으로 사라졌다.

《누굽니까?》

운학이가 귀속말로 묻자 부관 역시 속삭이듯 말했다.

《52사 사단장 위청동지요.》

그리고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계속했다.

《52사의 전투보고는 없었는데-》

부관은 입을 다물었다. 최용건의 방 양피지를 바른 창문이 드르릉 울리며 무섭게 노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던것이다.

《뭣이?… 한개 대대나?… 그따위 싸움이 어데 있소? 〈돌파교범〉이 싸우는가. 머리가 싸우지.》

운학이와 부관은 거의 동시에 흠칫 하였다.

《아바이요.》

《왜 저럴가요?》

《글쎄 방금까지는 기분이 대단히 좋으시였댔는데-》

운학은 여기 더 있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하였다. 부관실에서 나오는 그의 머리에는 현훈증에 걸릴만 한 승리적인 작전이 벌어지고있는 이때에 무엇때문에 보위상이 저처럼 성을 낼가 하는 의문이 줄닿게 뻗쳐올랐다.

 

최용건은 칼자리가 알릴듯말듯 난 위청장령의 뺨이 재빛으로 변해가는것을 한동안 보다가 눈길을 내리떨어뜨렸다. 퍼런 정맥이 죽죽 뻗쳐오르는 부르쥔 주먹을 내려다보며 터져오르는 분노를 눅잦히느라 애썼다. 전선중부에서 전진하던 52사는 춘천앞 소양강에서 전진을 좌절당했을뿐아니라 적지 않은 유생력량의 손실을 가져왔던것이다. 최용건에게 있어서 이것은 하나의 비상경보처럼 안겨들었다.

38선 이북에 들어선 괴뢰군사단들을 구축소멸하는것으로부터 작전을 개시한 인민군부대들은 단 몇시간안에 적의 공격전선을 허물어버리고 38선이남의 여러 지역을 해방하였다. 적은 수세에 빠져 전투의 주도권을 잃고말았다. 주타격방향부대들인 53사와 54사, 905땅크려단의 공격은 전광석화와 같이 눈부신 속도였다.

최용건은 예상외의 성과에 기뻤으나 한편 불안을 느꼈다. 52사와 56사가 예정된 계선으로 진출하지 못한것이였다. 이런데서부터 53사와 54사의 빠른 공격이 적의 어떤 음흉한 함정으로 되지 않겠는가 하는 억측까지 일어났다. 그런만치 그는 전반공격전선의 균형에 대해서 각별히 신경을 썼다.

매 부대들이 독자적으로 유리한곳을 택하여 자유자재로 싸우는 유격전이 아니라 일정한 전선을 차지하고 부대들간의 긴밀한 협동동작과 보조밑에 싸우는 정규전이라는데서 더욱 그랬다.

52사는 보조타격방향부대라고 하지만 그 임무와 역할에서는 커다란 사명을 띠고있었다. 52사는 거의 단독으로 전선중부를 담당하면서 주타격전선의 좌익린접을 보장하게 되여있었고 동시에 적으로 하여금 아군의 주타격방향을 서부가 아니라 중부로 오인하게끔 하는 사명도 수행해야 했다. 그에 신빙성을 주기 위해 오늘아침 주타격방향부대들인 53사와 54사는 련천, 철원 지대에서 출발하여 전선중부를 위협하며 나갔다. 38선을 넘어선 이후부터 53사와 54사는 자기의 계획대로 서쪽으로 진로를 돌렸고 52사는 62사와 더불어 중부로 나가게 되였다.

최용건이 전방지휘소에 도착한 바로 그 시각에 52사는 벌써 춘천앞 소양강에 이르렀다. 최용건은 그 즉시 김일성동지께 전화를 걸었다. 지금의 공격속도로 볼 때 52사는 주타격부대들이 서울로 접근하는 시간이면 서울뒤나 수원근방에서 포위환을 형성할수 있을것이라고 말씀드렸다.

《수원까지라?… 대단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때 몹시 기뻐하시였다.

《그러나 너무 덤비진 마시오. 특히 첫 작전에서 쉽게 이겼다고 지휘관들이 너무 자만하게 하진 마시오.》

전화가 끝난후 최용건은 52사의 위청사단장을 무전기앞에 호출하여 오늘내로 춘천을 점령한후 계속 속도를 높여 수원을 타고앉으라고 하였다. 여느때없이 밝고 명쾌한 보위상의 지시에 위청 역시 자신만만한 기세였다.

《보위상동지, 오늘내로 춘천을 점령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수원은 떼논 당상입니다.》

《자신있소?》

《자신있습니다. 우린 네시간동안에 40 전진했습니다. 제가 꾸르쓰깐가도 전투시에…》

《좋소. 동무의 말을 믿겠소.》

그때 최용건은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를 놓고나자 뭔가 불안스럽게 느껴졌다. 그것은 위청이 국제려단에 속해 싸운 쏘독전쟁때 일을 자랑하려고 하는것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어조에서 풍기는 들뜬 기분때문인지 그때는 잘 몰랐으나 그 전화가 있은 때로부터 다섯시간이 지난 지금에는 알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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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성공에 취하여 현훈증에 걸렸다. 경적필패라는 말을 잊었다. 이건 사단장의 전투지휘나 단순한 전술적착오만이 아니다.)

최용건은 성공에 자만하지 말라고 하신 김일성동지의 경고를 깊이 새기지 않은 자신을 나무람하였다.

《그래, 〈돌파교범〉대로 다 했는데 안됐으니 이젠 어떻게 하겠소?》

최용건은 평소의 자신을 회복하며 끊었던 말을 다시 이었다. 위청은 보위상의 목소리가 불시에 낮아지자 놀란듯 눈길을 치떴다.

최용건은 여전히 눈을 내리깔고있었다. 미간에 찍혀진 굵은 주름살만이 지금 그의 가슴속에 회오리치는 폭풍우를 암시하고있었다. 위청은 입술을 혀로 핥고 역시 낮고 갈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전화로도 말씀드렸지만 땅크가 없이는 안되겠습니다. 대안의 봉의산에 구축된 화점은 포사격으로도 해결할수 없습니다.

땅크대를 앞세우고 보병돌격을 해보겠습니다. 적의 화력이 집중된 교두보 쟁탈시에는 땅크를 앞장세우는것이 기본이라고 〈돌파교범〉에도-》

《또 〈돌파교범〉이요?》

최용건은 기가 막혀 먼 옛날의 제자를 환멸에 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위청은 최용건의 황포군관학교 교관시절에 학생이였다. 별로 뛰여난데가 없었으나 나라찾을 마음으로 군사를 공부하는 위청이를 최용건은 마음속으로 대견해하였다. 그런데 위청은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에서 항일전쟁에 참가했다가 무슨 반연으로인지 쏘련에 갔다. 방랑심과 모험심에 충만된 위청은 쏘련에서 에스빠냐전선으로 다시 2차대전이 일어나자 쏘련군에 입대하여 싸우다가 조선이 해방되자 귀국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을 정규무력으로 개편하게 되면서 위청은 물망에 오른 인물로 되였다. 유격전쟁에만 익숙된 조선인민혁명군 출신 지휘관들이 절대과반수인 조건에서 현대적인 정규전쟁참가자인 위청이는 매우 희귀한 존재였다. 하여 최용건은 직접 김일성동지께 위청을 사단장재목으로 추천하였었다. 그때 김일성동지께서는 쾌히 동의하면서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시였다.

《쏘독전쟁의 경험은 매우 귀중합니다. 그만치 그 전쟁의 불길속에서 교훈을 쌓은 동무들의 가치가 큽니다. 하지만 그 동무가 흘레브만 먹어 조선 토장맛도 잊고 저가락 쓰는 법도 잊어버렸다면 야단입니다.

그 동무에겐 쏘독전쟁 경험도 귀중하지만 조선땅을 연구하고 우리 식 사고와 우리 식 싸움법을 체득하는것이 더 중요하다는걸 알게 해야 합니다.》

최용건은 전쟁발발과 동시에 전반적부대들의 지휘관들을 상기하며 매 사람들의 금새를 저울질할 때 위청에 대해 그중 많은 생각을 하였다. 함께 싸워보지 못한것으로 파악이 없는데서 오는 불안도 없지 않았으나 기대가 더 컸다. 광대한 전선을 장악한 참모부의 군관으로 있으면서 현대전을 익힌 사람이니만치 이 싸움에서 꼭 두각을 드러내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토록 믿고 기대한 위청은 첫날의 가장 중요한 싸움에서 실로 최용건이로서는 아연실색할 실책을 범했다.

춘천을 점령할데 대한 명령을 접수한 위청은 깊은 연구도, 전술도 없이 첫 반공격전투에서 승리하여 사기왕성해지고 적에 대한 보복의 념에 타는 전사들의 불같은 기세에 편승하여 단숨에 돌격점령할것을 결심하였다. 그런데 춘천앞에는 소양강이 흐르고있었다. 그 강폭에는 하나의 다리밖에 없었다. 다리를 넘어서면 절벽을 이룬 봉의산이 솟아있었다. 공격하다가 되쫓긴 괴뢰 6사의 거의 모든 력량이 이 봉의산에 집결되였다. 하여 봉의산은 거대한 화구가 되여 다리를 노리고있었다. 춘천과 15여㎞ 떨어진 고개에서 쌍안경으로 그 봉의산을 보며 위청은 적들의 화력이 거기에 집중되였을것이라는것을 알았다. 아닐세라 앞에서 나가던 첨병소대가 다리목에 들어서기바쁘게 적의 중기와 경기들이 무섭게 사격을 해왔다. 뒤따르던 보병대대들은 다리목에 채 이르지 못한채 산개하여 넓은 논판에 엎드렸다.

《저따위에 멈춰서!》

위청은 이를 부드득 갈고 자기는 찦차를 타고 도로를 따라 그 다리목에 접근하였다. 그러나 다리목 100m 근방에서 운전수가 흉부관통으로 희생되는바람에 차는 논판에 구겨박혔다. 위청은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되여 권총을 빼들었다.

그리고 대대장을 찾았다. 지난 기간 꾸르쓰간대로에서, 우크라이나벌판에서 병사들을 돌격전에로 부르던 인상깊은 지휘관들의 모습을 되그려보며 단호히 명령하였다.

《육탄으로라도 저 봉의산을 점령해야 되오.》

그리고 그는 대대장을 보지 않고 권총을 쳐들고 소리쳤다.

《병사들, 지금 이 시각 남녘겨레들은 리승만의 학정밑에 죽어가고있다. 저 고지만 빼앗으면 서울이다. 동무들! 돌격 앞으로!》

번쩍이는 장령견장과 붉은줄이 간 바지 그리고 그의 힘찬 고동구호는 그렇지 않아도 엎디여있는것에 답답증이 난 병사들에게 선풍같은 작용을 일으켰다. 대대장, 중대장들이 구령을 채 받기도전에 대대전체가 일떠났다. 《만세》의 우렁찬 함성이 일며 마치 태풍마냥 다리로 접근하였다. 허나 보이지 않는 수천수만발의 탄알의 소나기는 단 몇분동안에 대대를 땅에 쓸어눕혔다. 다리목에서 먼저 쓰러진 대대장은 마지막숨을 거두며 소리쳤다.

《동무들, 내 눈이 감기기전에 저 고지에 공화국기발을 꽂아주-》

그러나 다리를 건너간 력량은 대대에서 한개 중대밖에 못되였다. 뒤따르던 두번째 대대도 역시 같은 비극적정황속에 돌진하였다. 자기의 전우들의 피흘리며 쓰러지는것을 본 그들의 발길을 막을 힘은 없었다. 위청은 일곱명의 전사들이 거의 동시에 쓰러지는것을 보며 눈앞이 캄캄해지는것을 느끼였다.

《돌격을 중지하라!》

그의 웨침을 받아 달려가던 련락병도 쓰러졌다. 악이 난 전사들은 줄곧 다리로 내달리려 했다. 죽을것을 알면서도 죽음에로 내닫는 그들을 제지시키느라 근 30분이 걸렸다…

위청은 타격을 입은 대대를 철수시키고 또다시 한개 대대를 준비시켰다. 그리고 한개 련대는 강을 따라 전개시키고 부단한 사격으로 적의 시선을 끌게 한후 한개 중대씩 다리로 진입시켰다.

그러나 이 역시 성공할수 없었다…

최용건은 이제 더 위청을 나무랠 기력을 잃었다. 왜서인지 슬퍼졌다. 그는 처음으로 두뇌가 없이 움직이는 《교조주의자》의 산 모습을 발견한듯싶었다.

최용건은 한숨을 내쉬고 조용히 입을 떼였다.

《동문 언젠가 황포군관학교 시험장에서 와테를로격전에 대해 우수한 대답을 한적이 있었소. 나폴레옹이 자기의 마지막 정예무력인 철갑기병을 내보낸것은 절망상태에 빠진 자살적행위였다고 옳게 분석했댔소.

그런데 오늘의 동무의 지휘는 그때의 그보다도 못했소. 나폴레옹에게는 타산이 있었으나 동무에게는 아무런 타산도 없었소. 동문 우리 전사들의 참된 애국심과 혁명정신을 람용하여 그들을 죽음에로 내몰았을따름이요.

위청이, 패전지장은 어떻게 된다는것을 알고있소?》

《알고있습니다.》

위청의 입술은 가늘게 떨렸다. 그는 최용건의 눈길을 보지 않은채 모든것을 체념한 청낮은 소리로 계속했다.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야습으로 해보겠습니다.》

《위청동무, 동문 언젠가 방식상학때 김일성장군님께서 항일무장투쟁시기를 회고하시면서 하시던 전술에 대한 가르치심을 받은 기억이 나오?》

위청은 머리를 더 떨구었을뿐 대답이 없었다. 최용건은 깊은 상념속에 옴한 사람같은 자세로 나직하나 또렷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런 문구들은 생각나겠지. 동성서격… 우회포초와 기동, 역습과 기만…》

이까지 말하던 최용건은 불시에 입을 다물어버렸다.

어떻게 위청이가 김일성동지께서 15성상 싸우시며 창조해낸 그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전술과 전법들을 한번 강의로 다 깨친단말인가. 또 설사 그 전법을 알았다 해도 구체적이며 각이한 환경에서 어찌 김일성동지만이 할수 있는 그 높이에서 응용하고 구현할수 있단말인가.

매 인간에게는 제나름의 제한된 사고와 능력의 기준이 있다. 그렇다면 김일성동지의 전법을 그 누구보다 깊이 연구파악했다고 할수 있는 자기가 위청이같은 지휘관들에게는 미리 구체적이며 신통한 방안을 제기하고 묘술을 가르쳐줘야 할것이 아니였는가.

《보위상동지,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더없이 초라한, 이제라도 제 이마빡에 권총을 들이댈듯싶은 위청의 얼굴을 보다가 낯을 찡그리였다. 그리고 위청의 눈길을 외면한채 무겁게 말을 떼였다.

《동문 돌격선의 앞장에서 내닫다가 쓰러지자는게 아니요? 하지만 소양강에서 사단이 저지되고 수백명이 쓰러진 책임을 어떻게 할테요?》

《기회를 주십시오.》

최용건은 위청의 눈을, 바르르 떠는 눈시울밑에서 애원하는듯 아니면 강렬하게 호소하는듯한 눈을 보다가 일어섰다.

《지금 여기서 말하며 시간을 끄는것도 죄악이요. 방법을 생각하오. 우회, 기만… 응… 방법을!… 시간이 없소. 시간이… 만약 실패하면… 아니, 가시오. 마지막 기회요. 그리고 〈돌파교범〉은 잊으시오.》

문이 벌컥 열렸다가 닫기며 그가 사라졌으나 뿌잇한 그 모습은 여전히 눈앞에 서있는듯싶었다. 달음박질하듯하는 발자국소리가 울렸다.

(아니 저 사람을 보내서는 안된다! 난 저 사람이 무엇하려 꼭 가려고 하는가를 알지 않는가. 치욕을 씻으려 결국 죽음에로 가는것이 아닌가!)

문득 뇌리를 치는 생각이였다.

(저 사람은 자기만아니라 사단을 자멸에로 이끌수 있다!)

이어지는 결론앞에 최용건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부관을 찾았다.

그러나 부관이 들어서기전에 찦차의 발동소리가 울리고 요란한 동음은 쫓기듯 멀어져갔다. 멈춰세우기는 글렀다.

최용건은 방에 들어선 부관에게 랭수를 한바가지 가져다달라고 하였다. 부관이 집뒤의 샘터에 가서 찬물을 가져왔을 때 최용건은 그 물을 먹을 생각도 않고 한손으로 이마를 짚은채 지도를 내려다보고있었다. 그의 생각은 복잡하였다.

매 사단들의 진격로를 살피는 그의 눈앞에는 위청의 흐려진 얼굴이 계속 얼른거렸다.

(어떻게 할것인가? 이제라도 사단에 전화를 걸어 전투행동중지명령을 내려야 하잖을가. 그렇게 되면-)

최용건은 좌익의 린접을 잃은채 쑥 내달아나간 53사의 공격화살표를 보고 저도 모르게 《음.》하고 신음소리를 내였다. 52사가 춘천을 점령하지 못하여 53사의 린접을 보장 못하면 53사가 익측타격을 받아 역포위될수 있다는 느낌이 가슴을 섬찌하게 했다.

(53사의 진공속도를 늦추고 좌익방비를 강화하게끔 해야 하지 않을가. 그렇게 되면-)

암담했다. 의정부-서울의 주타격의 강도와 속도가 늦춰질수 있는것이다. 문제는 52사가 춘천지대를 빨리 장악하는 길밖에 없다. 과연 위청이가 이제 해낼수 있을것인가. 만약 해내지 못한다면 작전은?… 그리고 위청의 문제는? 최용건은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속에 피가 몰려 번열이 나는것 같았다.

《물!》

그가 일어나며 소리치자 부관은 기다렸던듯 찰랑찰랑 넘치게 떠온 물바가지를 내밀었다. 이 집주인들이 샘터에 늘 띄워뒀을 한쪽 귀퉁이를 실로 꿰맨 바가지를 물끄러미 보던 최용건은 머리를 제끼고 기갈든 사람처럼 그 물 전부를 마셔버렸다. 그리고는 책상우에 놓인 전화기를 살피다가 결심한듯 맨 오른쪽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들었다.

최용건은 한시간전에 전화련계를 취했을 때나 다름없이 반가움에 차 울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김일성입니다.》

최용건이 자기를 밝히자 김일성동지께서는 듣기만해도 가슴이 활 열리는 시원시원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그래 어떻습니까? 공격기세들이 대단한데-》

《그렇습니다. 장군님!》

최용건은 불시에 의탁할 기둥을 찾은듯 탕개가 풀리며 떨리는 소리로 대답올렸다.

《다른 정황은 없습니까?》

《52사가 걸렸습니다.》

무거운 시름을 밀듯 대답올리고 숨을 길게 들이쉬며 잠시 기다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순간 최용건은 자기가 매우 량심이 없고 둔감한 사람처럼 생각되며 자신에 대한 혐오비슷한 감정속에 휘말려들었다. 그러나 어쩔수 없었다. 그는 소양강전투가 잘 안된데 대하여, 위청사단장의 분별잃은 지휘에 대하여 무거운 어조로 보고드렸다.

이따금 《그렇습니까.》, 《네.》 하고 응답하며 전화보고를 들으시던 그이께서는 한개 대대의 손실을 입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 놀란듯 반문하시였다.

《한개 대대란 전투력량으로말입니까 아니면 사상자를 념두에 둔것입니까?》

최용건은 선뜻 대답올릴수 없었다. 모든데서 너그럽고 관대하신 김일성동지이시지만 무모하게 전사들을 희생시킨 지휘관에 대해서는 용서하지 않으신다는것을 잘 아는 그였다. 하지만 그이앞에서 거짓말을 할수 없었다. 사상자수자를 보고드리자 김일성동지께서는 한동안 침묵하셨다가 말씀하셨다.

《그래 그 사단장은 지금 뭘하고있습니까?》

노염이 풍기는 음성이였다. 커다란 분노를 터치기전 자신을 다 잡으려 애쓰시는 그이의 강한 의지의 풍김이다. 최용건은 마치 모든 잘못이 자기로 하여 빚어진것 같은 기분속에 말씀드렸다.

《다시한번 공격전투를 하러 내보냈습니다. 과오가 엄중하니만치 용서받을 기회를 주기 위해 본인의 요구로 보냈습니다.》

《성공할 방안이 있습니까?》

《…》

《믿습니까?》

쩌렁쩌렁 울리는 그 음성은 그 크기와 급한 호흡으로 대답을 촉구하고있었다. 최용건은 말을 못하고 입술만 아프게 깨물었다.

《이제 그가 또 실패하면 어떻게 됩니까?》

《장군님!》

최용건의 목소리는 갈리며 울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하신듯 계속하였다.

《그렇게 되면 누구도 그를 살릴수 없지 않습니까. 동무도… 그 사람은 비겁하거나 용렬해서 실책을 범한것이 아닙니다. 그나 우리 전사들이 용감하지 못해서 그렇게 된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동무의 말을 들어보면 그는 용감했습니다. 전사들과 다를바없이 용감했고 전사들의 심정을 안고 내달린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휘관은 전사들과 심정을 같이할뿐만아니라 그 심정을 승리에로 이끄는 머리를 가져야 지휘관입니다.》

《장군님, 제가 사람을 잘못 천거했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단장 하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잠시 말씀을 끊으셨다가 부드러우나 단호한 어조로 계속하시였다.

《지금 상태에서 그는 사단을 지휘할수 없습니다. 수천명의 전사들의 생명을 책임질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전사로 강직시키겠습니다.》

《전사로?!… 》

《네.》

《직무해임만 하시오. 희생된 전사들을 생각하면… 그가 산에서 싸운 사람이였다 해도 나는 그를 그냥 두지 않았을것이요.》

최용건은 온몸이 굳어졌다. 김일성동지께서 다시 말씀을 떼시였다.

《이제 즉시 위청동무의 사업권한을 정지시키고 같은식의 무모한 공격전투는 중지시키시오.》

《알겠습니다. 장군님! 그런데 그의 후임으로는 누구를 임명하시겠습니까?》

《동무의 복안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렇다면… 최현동무를 보내겠습니다.》

《최현?!》

《다른 의견이 있습니까?》

《그의 성미에 보조방향을 달가와하겠습니까. 더구나 지금 사태에서는 주저앉은 사단이고…》

최용건은 말끝을 얼버무렸다. 최현이 그 불같은 성격에 뒤떨어진 사단을 보면 마구다지로 내몰다가 재구를 칠수도 있다는 로파심이 그를 망설이게 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심중을 환히 꿰뚫어보신듯 부드러우시면서도 신중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여기엔 성미문제같은것이 하등 관계가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반공격작전에 대한 견해와 립장, 리해와 인식이 어떻게 섰는가 하는것이고 동시에 전투경험과 전술, 지략 문제입니다. 그의 성미가 정 문제라면 내가 담보하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가볍게 웃으시였다. 최용건은 낯이 달아올랐다. 김일성동지의 말씀속에서 그는 현재의 작전흐름에 대한 인식에서 자기에게 석연치 못한 구석이 있음을 생각했기때문이였다.

《장군님, 지금 그가 어데 있습니까?》

《래일아침이면 거기에 도착하게 될것입니다.》

《알겠습니다.》

《동무가 우려한대로 이제 그가 가면 굉장히 열을 낼것입니다. 이제부터 52사는 참으로 간고한 싸움을 치르게 될것입니다.》

《더 어려우리라고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장군님, 저도 그 걱정입니다,》

최용건은 머리속의 짐 하나를 훌 들어 팽개쳐버리는 심정으로 솔직히 말씀드렸다.

《적은 52사를 결정적으로 저지시키려 하고있습니다. 그래서 전 52사의 진격속도를 보장하며 주타격사단들과의 균형을 보장하기 위하여 53사의 한개 련대를 서부로부터 52사의 중부쪽으로 진출시켰으면 합니다. 현재 53사는 52사의 지연으로 좌익측면을 로출시킨채 앞서나가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적이 53사의 옆구리를 쳐온다면 돌이킬수 없는 실패가 생길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53사의 공격을 늦춘다는것입니까.》

《네, 52사가 자기의 계획계선에 이를 때까지 53사는 공격전선을 유지하면서 력량을 보강하는-》

《안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단마디로 일축하시였다.

《오직 빠른 공격, 련속타격입니다. 그길만이 52사의 앞길도 열어주는 길입니다. 단 1㎞라도 더 빨리 전진할수록 좋습니다. 만약 53사가 꾸물거린다면 보위상동무의 생각처럼 적이 역공격을 하여 53사의 좌익을 우회타격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나간다면 적은 그럴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산병선을 생각합시다. 빠른 병사를 기준으로 나가지 뒤늦은 병사를 기다리는법은 없습니다. 우리의 이런 련속타격은 채병덕이나 리승만은 물론 맥아더조차 상상 못한것으로 적은 혼란에 빠져있습니다. 지금 서울의 미군사고문단이나 리승만은 저들의 운명문제로 반정신이 나갔을것입니다. 고기는 얼쳤을 때 잡기 쉬운 법이 아닙니까.》

 

집무실 시계는 밤 12시를 가리키고있었다. 시계추소리만이 간간이 울리는 방안은 무척 고요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서기가 들여오는 또 한묶음의 문건을 집무탁 한켠에 쌓아놓으시고 필통옆에 놓인 차고뿌를 들어 한모금 마시였다. 보리를 태워 만든 차는 그 낟알기운때문인지 점심과 저녁을 번지신 그이께 시장기를 느끼게 하며 머리를 핑- 돌게 하였다. 그이께서는 차고뿌의 마지막 밑굽까지 비우시며 약간 감추린 눈길로 책상우에 놓인 일감들을 보시였다. 쓰시다 만 원고, (그이께서는 래일 전국인민들에게 방송연설을 하실 의향이였다.) 펼쳐놓은채 있는 작전국 보고서와 전시경제개편안, 부상병구호대책안(김책과 홍명희가 각기 만들어 들여온것이였다.)을 둘러보시던 그이께서는 작전국 보고서를 끄당겨 펼치시였다.

스물세시 현재 인민군부대들의 진출정형을 집계한 자료였다. 그이께서는 책상빼람에서 압침에 끼운 지도표식형기발 몇개를 꺼내드시고 벽에 걸린 지도에 마주가시였다. 새로 해방된 지역들에 그 기발을 하나하나 꽂고 잠시 서계셨다.

주문진으로부터 옹진까지 동으로부터 서로 련결된 반공격전선은 38선을 썩 넘어섰다. 강릉쪽을 향해 산발을 넘은 부대들과 림진강쪽으로 내닫는 부대들이 방불히 보이는듯싶으셨다. 간단없이 울리는 시계추소리가 그곳에서 울리는 폭음과 총성으로 들리셨다. 모든것이 계획대로, 결심대로 되여가고있었다. 그러나 만족하실수 없었다. 제일 뒤떨어진 52사의 기발표식, 춘천이 그이의 시선을 무겁게 하였다.

(자그마한 소도시가 최용건까지 흔들어놓았다.)

그이께서는 최용건의 립장에서 사색을 정돈해보셨다. 불의적인 공격에 즉시적인 반공격이라는 결심앞에서 그는 마음의 준비를 채 못했을수 있다. 승산의 담보를, 과학적해답을 못쥐였기때문이다. 전쟁은 산수적계산에 의한 답으로 승패를 결정하는것이 아니지. 문제는 시간이 증명할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야속하게도 무심한것이 아닌가. 시침은 열둘에 가까와오고있었다. 벌써 하루가 다 간것이다. 번개처럼 흘러간 하루였다. 그리고 번개같이 사색이 굽이치고 결심이 내려진 하루였다. 커다란 사변,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이 극과 극에서 서로 부딪치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환희를, 어떤 사람들에게는 비극을 안겨주며 지나갔다.

김책, 홍명희… 최용건, 강건… 최현, 류경수… 그리고 현지지도의 길에서 만난 수많은 군관, 병사들… 오늘 만났거나 기억속에 스쳐간 사람들의 얼굴이 한순간에 다시 밟혀지나갔다. 한결같이 믿음을 주는 모습들이였다. 그만치 그들의 운명에 대한, 그들의 래일에 대한 념려가 무겁게 자리를 잡았다. 위청의 일도 떠오르신다.

교조란 얼마나 무서운것인가. 그는 오늘 얼마나 크나큰 상심을 체험할것인가. 하나의 오유를 깨닫는데 그는 너무나 혹독한 대가를 치르었다. 그자신을 위해서는 오늘의 교훈이 유익할지 모른다. 허나 그 교훈에는 우리 전사들의 피가 슴배여있는것이다. 그는 분명 자기의 정당성, 자기의 넋이 있었을것이다. 허지만 그는 조선땅에서 조선식싸움을 한다는 주체의 넋은 찾지 못했다. 바로 비극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사람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수 있다는데 있다. 전투경험이나 군사지략은 일조일석에 생겼다 없어지는 물건같은것은 아니다. 사람은 아는것만큼 경험한것만큼 제나름의 견해를 가진다.

오늘 새벽 집무실에 나타났을 때 검붉게 질려있던 최용건의 얼굴이 점점 더 확대되여 떠올랐다. 좀더 묻고 이야기를 하였을걸 그때로는 도저히 실현할수 없었던 생각이 치솟아오르셨다.

(그래 시간이 없었다. 그는 지금 매우 어려울것이다. 매우-)

그이께서는 전화기를 드셨다. 강건을 찾으신 그이께서는 즉시 방으로 오라고 하셨다.

그리고나니 마음이 저으기 풀리셨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의자에 와 앉으시였다. 작전국보고서를 집어 한쪽 가녁에 옮기시던 그이께서는 책상 유리장밑에 놓인 한장의 사진에 시선을 멈추셨다. 1940년봄 최현과 안길 셋이서 찍은 사진이였다. 소부대공작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최현은 그때 사진을 찍는다는것으로 어린애처럼 기뻐하며 얼굴이 온통 웃음으로 버그러졌었는데 사진에는 검은 수염의 무뚝뚝한 사람으로 되여있었다.

(지금쯤 최현은 운전수를 찾고 부관을 찾으며 벼락불을 놓겠구나.)

방금전 전화로 만났을 때 떨리며 울리던 최현의 젖어든 음성이 가슴 애릿하게 사무쳐왔다.

《장군님, 제가 구실을 제대로 못한것 같습니다. 적들이 감히 우리를 업수이보고 덤벼들게 했습니다. 오늘새벽에 제대로 물리쳐내지 못했습니다.》

최현은 마치 평화를 지켜내지 못한것이 전적으로 자기 잘못인것처럼 괴로와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것이 못내 가슴아프셨다.

그리고 왜 전쟁이 일어난 원인이 여러가지 다른 요인에 의한것이라는것을 모르겠는가. 옹진사건때 적을 반격해나가겠다는것을 비판하며 《평화를 지키는것이 동무의 사명》이라고 하신 자신의 말씀을 관철하지 못했다는데서 오는 고지식하고 티없이 순진한 심정에 붙박혀 그럴것이다. 그로 하여 최현은 오늘새벽 화선에까지 나가 보통전사들처럼 결사전을 벌렸다. 만약 그때 어느 흉탄에 잘못되였더라면 자신의 가슴에 영원히 아물지 않을 상처가 남을것이다.

《최현동무, 동문 자기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동무가 앞으로도 오늘처럼 전투소대에까지 나가 백병전에 뛰여든다면 진짜 처벌을 주겠습니다. 후방으로 아예 소환해치우겠다는것입니다.》

《장군님, 제야 어린 사람도 아닌데 너무 걱정마십시오.》

눙치려드는 그 대답에 김일성동지께서는 부러 엄하게 말씀하시였다.

《롱말이 아닙니다. 최현동무, 동무가 진정으로 나를 생각한다면 무모한 희생에 대한 보고가 없어야 한다는것입니다. 첫째로 동무가 그리고 모든 대원들이.》

《알겠습니다.》

《최현동무, 내가 동무를 찾은것은 새로운 임무를 맡기려는데 있습니다. 전방지휘소의 최용건동무에게 가서 임무를 접수하시오.》

《알았습니다.》

《무슨 직무인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어려운곳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최현이 애어린 전사처럼 《알았습니다.》를 연방하는바람에 되물으시였다.

《장군님, 제야 무슨… 장군님 필요되시는데 가면 되지 않습니까.》

그 가식없는 대답에 김일성동지께서는 한참이나 말씀을 못하시였다. 언제나없이 그랬던것이다.

《동무한테 부탁할것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 식의 싸움법을 잊지 말라는것입니다. 현대적인 정규전이라해서 틀에 박힌 교범으로만 싸우려는 사람들이 있는것 같은데 그러면 안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전 그 하이칼라외국경험들을 신통하게 보지 않습니다.》

《아니, 전혀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다만 나는 그 외국경험이라는 틀에 매달려 리론의 노예가 되는 현상을 념두에 뒀을따름입니다.

그리고 난 동무도 지난 기간 골받이질을 좋아한 때가 있었다는것으로 걱정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아, 거야 젊은 혈기로 옛날에-》

최현이 다급히 변명조로 말하는바람에 김일성동지께서는 웃으시였다.

《물론 옛날일이요. 하지만 그런 기분이 생길 때가 많을수 있으니만치 꼭 경계하여야 합니다. 그래 어떻습니까. 자신있습니까?》

《자신있습니다. 장군님!》

최현은 말허리를 끊고 가쁘게 숨을 톺다가 어줍은 어조로 계속했다.

《저는 어려운곳에 나가게 된다니 기쁩니다.》

김일성동지께 있어서 최현은 하나의 작전적예비대 맞잡이였다. 주위의 일부 일군들이 예비대조성에 대하여 근심스럽게 말할 때 김일성동지께서는 바로 최현이와 같은 지휘관들을 념두에 두었기에 근심하지 않으셨다.

지난 기간 오중흡이가 적을 놀리며 교묘하면서도 야무지게 싸웠다면 최현은 맞받아치기의 명수로 어떤 역경에서도 주도권을 잡고 적을 무자비하게 족쳐댄 호랑이같은 싸움군이였다.

그이께서는 주타격부대를 선정하고 지휘관을 점찍을 때도 최현이를 생각하셨다. 그러나 그 부대들에는 지휘관이 있었다. 또 설사 없다고 해도 최현이를 그곳에 보내지는 않을것이였다.

주타격부대의 작전행동을 구체적인 세부까지 설계하고 조직하시는 그이께서는 매우 어려울것 같은 그 부대들의 진군로가 남들이 생각보다는 쉽게 열릴것을 예견했으며 또 그렇게 할것을 확신성있게 결심하고있었다. 그곳은 념려되지 않았다. 문제는 이 모든 전략작전적기도를 관철하게끔 하는데서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중요한 고리가 있는법이였다. 52사의 위치가 바로 그러했다. 그런데 위청의 과실로 하여 이제부터 52사의 전투행동은 최대의 악조건속에서 진행될것이였다.

가장 어렵고 그러면서도 빛이 나지 않는 위치다.

(지금쯤 최현이는 차에 올랐을것이다.

토산쪽길은 진흙탕이지… 비가 더 오지 말아야겠는데…)

이런 생각을 그어가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책상빼람옆에 붙은 호출단추를 누르시였다. 강부관이 들어섰다.

《52사지역지도를 가져오시오.》

김일성동지께서는 최현이를 위해 뭔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줘야겠다고 생각하시였다. 강부관이 나간지 얼마 안되여 강건참모장이 집무실에 나타났다. 그때 김일성동지께서는 해군사령관에게 전화지시를 하고계셨다. 주문진해상에 어뢰정대를 파견하여 예견되는 미극동함대의 해상봉쇄작전에 대응할 준비를 갖추라는 내용이였다.

《미군함대가 벌써 나타났습니까?》

《아직은 예견일따름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강건이를 한참동안 응시하다가 부드럽게 말씀하시였다.

《식사를 했소?》

《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초들초들 마른 입술을 보시며 거짓말임을 아시였으나 구태여 따지지 않으셨다.

그이께서는 시계를 다시 쳐다보고 말씀하시였다.

《이제 집에 가서 한시간동안 쉬고 나오시오.》

《…》

강건은 몹시 놀라는 얼굴이 되여 김일성동지를 의아쩍게 쳐다보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망설였다.

(이제 말할가. 알고나면 이 성미에 자려고 안할테지. 그러나…)

그이께서는 생각을 고쳐하셨다.

《전방지휘소에 나가야겠소. 철원에말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강건의 얼굴에 의혹의 그림자가 스치는것을 놓치지 않으며 부드럽게 말씀을 이으셨다.

《총참모장사업을 하면서 최용건동무의 사업을 보좌하는것이요. 최용건동무가 지금 부담이 큰것 같소. 새벽에 너무 급히 떠나다보니 준비도 부족했고 새로운 난국이 조성되고있소. 그런데다가 동무도 느꼈지만 그곳 지대가 산악이다보니 전파장애로 통신련락이 잘 안되오. 때로 독자적인 결심을 내릴 때가 있을수 있는데 동무가 곁에 있는것이 그에게도 좋고 작전진행에도 좋을것이요.

지금 춘천때문에 최용건동무가 머리를 앓고있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위청이를 해임하고 최현이를 그 후임으로 임명하신것까지 말씀하시고나서 강건이를 유심히 바라보며 물으시였다.

《그래 어떻소? 다른 의견이 없겠소?》

《없습니다. 다만 여기 일이 걱정됩니다.》

《여기 일은 걱정마오. 나도 있고 김책동무도 있지 않소.… 문제는 서울해방을 다그치는것이요.》

《장군님, 알겠습니다.》

강건의 영채어린 눈에 비상한 결심의 빛이 스쳐갔다.

《장군님, 그럼 이 길로 즉시 떠나겠습니다.》

《아니, 집에 갔다오시오. 인계나 출발준비에 대해선 신경을 쓰지 마오. 내가 다 할테니… 집에 대해서나 뭐 부탁할것은 없소?》

《없습니다.》

부관실에서 오영혜가 강부관과 무슨 책을 보고있다가 강건을 앞세우고 나오시는 김일성동지를 보자 서둘러 경례를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강부관이 얼핏 뚜껑을 접어 치우는 책이 《조선인민군내무규정》임을 알아보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에 대해서 모르는척하시였다. 오영혜가 아직도 퇴근하지 않고있는것이 놀라와 물으시였다.

《왜 아직 퇴근 안하고있소?》

오영혜는 대답을 선뜻 못하고 고개를 숙이였다. 전등빛탓인지 낯이 핼쑥하게 질려보였다. 늘 김일성동지를 뵈이면 어린애처럼 두눈에 웃음이 방글거리고 얼굴이 발그레 타던 오영혜로 볼 때 여느때 없던 태도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김일성동지께서 근심어린 기색으로 재차 물으시였다. 오영혜는 두눈에 비장하면서도 슬픈 빛을 띠우고 김일성동지를 우러렀다.

《장군님.》

오영혜는 입술을 떨었다.

《장군님께 하직인사를 올리러 왔습니다.》

《하직이라니?》

김일성동지께서는 한문투의 말투에 웃음을 지으시였다.

《장군님,전 오늘 민청모임에서 전선에 탄원했습니다. 그래서 래일아침 떠나기로 했습니다.》

《군대로 간단말이지?》

약간 긴장되셨던 김일성동지의 안색이 확 풀어지시고 웃음이 넘치듯 차올랐다.

《오영혜가 군대로 간다?!》

《네, 장군님, 전 탄원했습니다.》

오영혜는 말끝을 잇지 못했다.

《그래 꼭 군대에 가야만 하겠소?》

《네, 우리 민청원들은 다 궐기했습니다. 리승만도당을 물리치기 위해 청년들이 앞장서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 나가서 무얼 하려고 하오?》

《간호원이든 뭐든 하겠습니다. 그러나 시켜준다면 녀성정찰병이 되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대견하신 웃음을 머금으시였다.

《녀성정찰병이라?!… 될수 있지. 지리에도 밝고 그림에도 능하고 기억력도 좋고 똑똑하고… 그렇지만 생각해보라구. 영혠 내 곁에서 떨어지고싶지 않겠지?》

오영혜는 김일성동지를 얼핏 쳐다뵙고는 황황히 머리를 수그리며 알릴듯말듯 고개를 끄덕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마음이 아릿해나지시였다. 오중성이며 오중흡의 령전에서 그들의 후대를 맡겠다고 약속하신 그이시였다.

그러나 필요하면 이 오영혜도 전방에 내보내야 한다.

이 하루를 한세기 맞잡이로 보내며 애써 극복하신 비통함이 이시각에도 하나의 넘기 어려운 언덕처럼 막아나섰다.

전쟁이란 모든 다정한 사람들과의 리별이다. 그 리별은 일시적일수도 있고 영원할수도 있다. 영혜는 전쟁이 무엇인가를 아직다 모른다. 그러나 이렇다 해서, 인정이 끄당긴다 해서 막을수는 없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심중한 표정으로 오영혜를 보셨다.

《다시 생각해보라구. 동무가 어디에 더 필요하겠는가. 영혜는 여기서 지금 내 사업을 돕고있어. 그러잖아도 다들 전선으로 떠나가는데. 이제 강건동무도 떠나가고…》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소곳이 고개를 수그리는 오영혜의 모습을 묵묵히 보시다가 조용히 물으시였다.

《그림을 다 완성했나?》

《못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다음 완성하겠습니다.》

《그럼 새 과제를 주겠소. 전쟁포스터를 하나 그려보라구.》

《저…》

오영혜가 망설이는 눈길로 김일성동지를 우러러보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웃으시였다.

《군대말이요?… 그건 영혜 결심대로 해야지. 그러나 동무가 여기 있으면 나에겐 큰힘이 되오.》

오영혜는 고개를 떨구고 울먹울먹하며 말했다.

《장군님… 잘못했습니다.》

《허허, 됐소. 이젠 가보오.》

김일성동지께서는 강건과 함께 나가는 오영혜의 뒤모습을 눈여겨보시다가 천천히 돌아서시였다.

집무실로 들어가신 그이께서는 전화로 군의국을 찾으시여 강건의 약을 부탁하신후 강부관이 가져다놓은 52사담당지역지도를 집무탁우에 펼치시였다. 그이께서는 두손으로 집무탁을 짚으신채 한참이나 지도를 내려다보시다가 자리에 앉아 펜을 드시였다. 지도의 웃머리에 《최현동무!》라고 박아쓰시고 뾰족하게 깎은 붉은색연필을 바꿔쥐시였다. 춘천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화살표를 주욱 그으시였다. 화살표는 서울에 닿았다가 보은까지 뻗어나갔다. 도중도중에 몇개의 전술부호를 그린후 지도여백에 글을 쓰셨다.

색연필을 놓으신 김일성동지께서 천천히 일어나 창문가로 다가가셨다. 창가림을 열어제끼고 밖을 바라보시였다. 등화관제를 한 도시는 캄캄한 심연에 잠긴것 같았다. 허나 하늘은 비씻긴뒤라 푸르청청 밝았다. 그이께서는 최현이며 강건이며를 다시 만날 시각을 그려보시였다. 가까울것 같으면서도 멀게만 생각되는 래일이였다.

(모든것은 오직 승리를 앞당기는데 달려있다!)

그이께서는 주먹을 불끈 그러쥐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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