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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선의 아침 제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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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2건 조회 2,004회 작성일 20-01-17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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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장

 

모란봉지하극장입구에 승용차가 도착한것은 봄날의 회색어둠이 자오록히 짙은 때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차에서 내리시자 당과 국가, 군대 지도간부들과 함께 쏘련대사 라즈바예브와 예지양중국대사 그리고 몇몇 외교사절들이 다가와 인사를 드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일군들뒤에 서있는 박정덕장령과 눈길이 마주치자 그의 인사에 손을 드시였다.

《아, 74군단장동무도 왔구만. 그래 요즘도 가끔 풍금소리를 듣겠지?》

《…》

박정덕은 금시 얼굴이 붉어졌다.

김명수의 뒤를 따라 이번 공연행사를 맡은 김일과 함께 허정숙문화선전상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장군님, 협주단동무들이 대기하고있습니다.》

《좋소. 어서 봐야지. 들어가기요.》

김일성동지께서 관람석에 들어서시자 장내는 한동안 박수와 환호성으로 차넘쳤다.

공연은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로부터 시작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무대쪽을 살피시다가 오른켠에 앉은 김일을 돌아보시였다.

《김일동무, 이건 뭐요? 왜 직판 들어가지 안소?》

《최고사령관동지, 저 협주단동무들의 소원을 어쩔수 없었습니다. 저 동무들은 전선중부에 공연을 나갔다가 어제 저녁에 급히 돌아와서도 쉬지 않고 밤새껏 련습하였습니다.》

김일이 조용히 말씀올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타자 친 노래가사를 진중한 눈길로 들여다보시다가 얼핏 시선을 왼편의 홍명희에게로 돌리시였다.

《홍명희선생! 요즘 어떤 사람들은 옛날의 판소리를 즐겨 듣는다는데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뜻밖의 물으심에 홍명희는 어지간히 놀라는 기색이였다.

《판소리라는거야 연구가들로서는 어쩐지 모르겠지만 이젠 낡은것이라고 봅니다. 옛날의 우리것이였다고해서 덮어놓고 좋다고 생각하면 오판입니다. 더구나 전쟁을 치르는 환경에 판소리가 가당합니까? 전 요즘 나온 〈전호속의 나의 노래〉같은것이 걸맞는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가볍게 웃으시였다.

《역시 선생이 보는 안목이 다릅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시대를 선도하는 음악만이 인민들에게서 사랑받고 또 힘을 주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민족적인 형식은 살리면서도 혁명적인 우리 시대의 랑만과 감정을 담은 노래가 기본이라고 봅니다.》

이윽고 장중한 관현악이 《섬멸의 길로》의 전주곡을 울리기 시작하였다.

전번 2월초에 한번 들었지만 전혀 새로운 느낌이 드시였다.

첫 시작부터가 저력있고 비장하면서도 의지적인 선률이여서 흉벽을 쾅쾅 두드린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불쑥 몸을 앞으로 솟구시였다.

현악기들의 회오리치는 풍만한 대위선률을 타고 금관악기들과 타악기들이 결전장에서 전우들의 시체를 타고 넘으며 적진을 향해 한치한치 톺아나가는 인민군전사들의 발걸음인양 박력있는 리듬을 확대하면서 감정을 승화시키자 문득 합창이 터져오른다.

 

만세 만세 만세 높이 부르며

원쑤의 화점을 짓부시며 앞으로

나가자 동무여 섬멸의 길로

김일성동지께서는 두눈을 감으시였다.

 

가렬한 전투의 저기 저 언덕

피흘린 동지를 잊지 말아라

 

얼마나 진실하고 생동한가!…

그이께서는 무게있고 선명하면서도 의지적이고 통속적인 곡조에 실린 의미깊은 시어들을 심중에 새기며 사색에 잠기시였다.

… 가렬처절한 결전장의 화폭들이 눈앞을 스치였다.

돌격선의 대오, 폭음과 포연, 총창과 총창의 맞부딪침, 불뿜는 화점을 노려보는 인민군전사의 예리한 눈동자, 공화국기를 날리며, 만세의 함성을 지르며 내닫는 대오, 적탄에 맞아 쓰러지는 기수… 하지만 기수는 그냥 이어져 공화국기는 파편에 찢기고 화염에 그을리면서도 주춤을 모르고 더 세차게 퍼덕이며 고지우로 오른다.…

 

피로써 승리해가는 이 길이

그리운 고향에 뻗치고있다…

 

그래, 기수는 사라지지 않을것이다.

달빛 흐르는 전호가, 포연에 쪄든 강철집게같은 손이 번지는 복수기록장, 거기에 씌여진 힘있는 글씨들, 그것이 금시 눈앞에 보이는듯하다.

원쑤의 불구멍 몸으로 막은 영웅전사의 이름과 위훈, 그것이 잉크로 쓴 글이였던가, 피로 새긴 글발이였던가.…

울부짖는 중기관총, 화선입당선서를 하는 나어린 병사, 다시 만세의 함성이 터지고 강철사단들이 전우들의 원한을 무한궤도로 씻으며 전진한다.…

민족과 공화국의 운명을 건 전쟁에 어찌 희생이 없고 눈물이 없겠는가. 그것은 비탄의 눈물도 아니요, 좌절의 몸부림도 아니다.…

그 죽음과 상실의 아픈 언덕을 넘어 증오와 복수의 총창들이 번뜩이고 승리의 아침해가 전사들을 맞는것이다.

문득 김일성동지의 눈앞에는 눈보라우는 밀림의 바다너머 천교령에서부터 시패린자까지의 험준한 산발이 떠오르시였다.

그때 고열로 하늘땅이 흔들리는속에 자신께서는 무슨 의지로 심장의 격동을 느끼시며 피의 시어들을 새겨나갔던가.

일제의 포위망은 점점 좁혀지고 밀림의 눈보라소리가 대지를 흔들 때 마음속에서는 혁명에 대한 열렬한 송가가 움터나 메아리쳤고 그 비장한 음향을 귀전으로 들으며 오직 앞으로, 앞으로 전진했다.

세월이 흘렀지만 《반일전가》를 창작하시던 시각의 그 열광, 그 희망, 그 감정은 때없이 가슴을 후덥히고 흥분시키는것이였다.

저 전선가요가 항일전쟁의 가장 엄혹한 시기의 혁명선률을 불러오는것은 무엇때문인가. 무엇이 두 시대를 굳게 련결시키고 그때의 비약된 감정에로 이 순간을 승화시키는것인가.

음악, 그건 힘차고 밝고 숭고한것이다. 그래서 전쟁이 일자 작가들과 작곡가들을 전선으로 파견하시였다. 싸우는 전사들에게 노래를 주시기 위해서였다. 우리의 혁명적인 종군창작가들은 전선에서 전사들과 운명을 같이 하며 그들을 전투적위훈에로 불러일으키는 훌륭한 노래들을 많이 창작하였다. 그것은 오늘만이 아니라 후세에, 력사에 남을것이다.

《조국보위의 노래》,《문명고개》,《자동차운전사의 노래》,《정찰병의 노래》,《내 고향의 정든 집》,《전호속의 나의 노래》…

두번에 걸친 군인배우들의 합창이 끝나는것과 함께 김일성동지께서는 명상에서 깨여나시였다.

마치 하나의 큰 전투를 치르고난 기분이시였다.

《이건 정말… 대단한 곡입니다!

이건 하나의 전쟁교향곡이고 전선서사시입니다.》

누군가 가볍게 웨치는 바람에 김일성동지께서는 몸을 돌리시였다.

라즈바예브가 물기에 젖은 눈을 번쩍이며 옆에 앉은 김일에게 힘껏 손을 내젓고있었다.

대사는 정색해서 김일성동지앞에 일어섰다.

김일성동지, 제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면 쏘도전쟁 첫시기에 알렉싼드로브의 〈정의의 싸움〉이 나왔을 때 큰 충격을 받았는데 오늘의 이 노래는 그때처럼 저를 격동시킵니다.

조선의 전쟁이 훌륭한 전선명곡을 낳았습니다.》

《전쟁과 음악이라…

아주 훌륭한 표현이요. 하긴 그렇습니다. 〈정의의 싸움〉이 쏘도전쟁에서 한몫 단단히 했지요. 쓰딸린동지가 언젠가 내게 말한적이 있습니다. 자기는 〈정의의 싸움〉과 예술영화 〈전쟁후 6시〉, 〈기다리는 안해〉덕을 단단히 보았다고 말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흥분한 라즈바예브를 한참 바라보시다가 뒤켠에 앉은 박정덕에게로 시선을 돌리시였다.

《박정덕동무는 노래를 들은 감상이 어떻소?》

김일성동지의 뜻밖의 물으심에 박정덕이 당황해하며 뒤줄에서 조심히 일어섰다.

《장군님, 노래를 들으며 저는… 전사들과 함께 돌격선에서 달리던 련대장시절을 생각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였다.

《동무네 통신군관 김인정이가 이 노래를 두고 뭐라고 했다더라?》

《그 동무는… 너무 비장하다고…》

박정덕이 머리를 짓수그리자 김일성동지께서는 안색을 좀 흐리시였다.

《비장하다?… 적들에게 혈육을 다 잃은 처녀니 그렇게 여길수 있지… 그 동무의 오빠는 정말 당에 충실한 진짜배기 혁명가였소. 정덕동무, 유자녀인 그 김인정이를 잘 돌봐주오. 혁명적인 영향도 주고… 생기를 잃지 말아야 해.》

《알았습니다, 장군님.》

김일성동지께서는 박정덕을 바라보시다가 옆에 앉은 김일에게로 눈길을 돌리시였다.

《김일동무는 어떻소?》

《좋은 노래입니다. 전선병사들에게 큰 힘을 줄것 같습니다.》

김일은 긴 말을 하지 않았으나 몹시 긴장된 눈빛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흔연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음… 우리 종군작가들이 정말 큰일을 해냈소. 지난해 만나보니 그들의 결심이 좋았소. 지금 전선 각 군단들에 나간 종군작가들이 좋은 글들을 써내고있거든. 그런데 말이요. 이 노래를 창작한 동무들이 전번에 비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노래가 너무 비장하고 어두워 전사들에게 염전사상을 줄수 있다는 론거였소.

요즘 이 종군작가들을 류경수동무네의 전선동부에 파견했는데 습격전투에도 함께 참가하고 전사들을 잘 고무하고있소. 어제도 류경수동무에게서 련락이 왔댔소. 류경수동무는 이 노래를 우리 전선병사들이 아주 좋아한다고, 이 노래를 부르면서 적진에 돌진한다고 흥분해서 말했소.

나는 오늘 노래를 다시 들으며 큰 힘을 얻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시련과 죽음을 헤치고 결전의 언덕으로 승리를 향해 나가는 우리 전사들의 심정이 진실하게 안겨오는 작품입니다.

일부 염전적이라는 의견이 더러 제기된다는데 무엇이 염전적이고 비장하단 말이요? 아니, 비장할수록 좋소. 그건 염전사상이 아니라 혁명적랑만이고 사실주의적힘이요.

제목은 바꾸는게 좋을것 같소. 〈섬멸의 길로〉는 좀 지엽적이고 실무적인 느낌이 듭니다.

〈결전의 길로〉라고 하면 어떻소?

김일동무가 많이 주관했는데 의견을 말해보시오.》

《의미가 깊습니다. 그렇게 되면 가사의 마감구도 뜻이 깊어져 더 완결감을 줍니다.》

《그럼 동무들이 한번 토론해보시오. 그리고 총정치국과 문화선전성에서는 전선종군작가들을 잘 돌봐주고 조건을 보장해주어 그들이 전승에 이바지할 혁명적인 작품들을 잘 써내게 해야 하오. 그런 면에서 류경수군단장이 괜찮소. 그들에게 혁명적영향을 잘 주거든. 전선시인들이 군단을 떠나려 안한다고 하면서 그냥 눌러두겠다는거요. 좋은 일이요. 그 창작가들이 배짱이 있고 전사들의 심정도 잘 알고 문학적지향도 강한 동무들 같소.》

김일성동지께서 지하극장을 나서실 때 남일과 정찰국장, 최영환부국장이 긴장한 얼굴로 급히 다가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승용차쪽으로 걸음을 옮기시려다 멈추시였다.

《최고사령관동지, 방금 정찰국에서 보고받았는데 미8군사령부가 인천항으로 미태평양 분함대의 상륙정들과 전투함선들을 기동시키고 경계태세에 넘어갔답니다.》

남일이 올리는 문건을 받아드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덤덤한 기색으로 한번 훑어보시였다.

《그러니 릿지웨이가 드디여 서조선만일대에서 또 한번 모험을 해보겠다는건가?…》

정찰국장곁에서 최영환장령이 주밋거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를 바라보시였다.

《최고사령관동지, 전번에 서울에 나가 〈설악산 2호〉를 찾아낸 리문철동무네 특수공작조가 그의 새 정보를 가져왔습니다.》

《음, 직승기나포때 공로를 세운 동무? 그 동무네가 정말 임무를 착실히 해내고있거든. 보고를 받아보니 기질이 있는 동무야.》

최영환의 눈가에 온화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설악산 2호〉는 우리와 련계를 가지려고 무등 애쓰다 위험한 고비에도 들군 했었다고 하는데 장군님께서 말씀해주신 그 은빗사연이 큰 도움이 되였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안광을 빛내이며 조용히 혼자말씀처럼 뇌이시였다.

《음, 〈설악산 2호〉… 〈2호〉!…》

최영환이 얼핏 정찰국장을 돌아보고나서 김일성동지를 우러렀다.

《장군님, 그런데 한가지 일치되는것이 있습니다. 그 동무가 이번에 리문철공작조를 통해 보내온 정보내용에도 릿지웨이의 서조선만작전계획이 반영되여있습니다. 릿지웨이가 금화지구의 미9군단사령부에 나타나 떠벌인 내용들이 보충적으로 분석되여있습니다.》

최영환의 설명에 김일성동지께서는 한동안 사색에 잠기시여 지하극장앞을 천천히 오가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문득 주위를 둘러보시다가 저만치 메마른 나무밑에 재빛말과 함께 서있는 박정덕을 알아보시고 손짓으로 부르시였다.

《박정덕군단장, 이리 좀 오시오.

어떻소? 우리가 준 임무가 어느정도 집행됐나?》

숨가쁘게 달려온 박정덕은 차렷자세를 취하였으나 가슴이 급하게 오르내렸다.

《최고사령관동지, 갱도들을 기본적으로 굴설하고 지금 예비진지들을 마련하고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미더운 눈길로 그를 한참 지켜보시며 무슨 말씀을 하시려다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좋아. 동무네 방어계획을 비준하기전에 인차 한번 내려가겠소. 서해안의 전략적방어지대가 중요해!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말라구.》

《최고사령관동지, 명심하겠습니다!》

박정덕이 침착하게 대답을 올리였다.

 

×

 

새벽 5시 30분에 건지리를 떠난 차들이 평원을 지나 서천경내에 접어들었을 때는 이미 안개가 걷히고 날이 훤해졌다.

언덕길이 시작되는 길목에는 74군단장 박정덕장령이 나와 기다리고있었다. 길옆의 소나무 우거진 숲속에 두필의 말과 말고삐를 쥐고 선 병사의 모습이 보였다.

승용차가 멈춰서자 박정덕이 달려와 김일성동지께 경례를 드렸다. 악수를 나누신 그이께서 《차에 타오.》라고 이르시자 박정덕은 숲속에 서있는 병사에게 손짓으로 신호를 하고는 곧 차에 올랐다.

《방어공사정형부터 봐야겠소. 우선 포를 은페시킨 갱도들을 돌아보자구.》

차는 군단관하부대들이 주둔하고있는 서천쪽으로 꺾어들었다.

직사포은페용갱도들은 훌륭히 굴설되여있었다. 항공타격이나 함포사격에도 얼마든지 견딜수 있게 깊숙하고도 안전하게 완성되였다. 위장도 잘되고 신속한 기동을 보장할수 있게 갱도주변에 길도 잘 닦아놓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무 말씀 없이 갱도들을 계속 돌아보시였다.

어느 한 갱도입구앞에 이르러 쌓여진 버럭무지를 보시고 멈춰서시였다.

《박정덕이, 이 갱도는 락제요! 버럭무지를 발견한 적비행대는 갱도입구에 나팜탄을 떨구어 봉쇄해버릴거요. 그러면 사람도 포도 다 끝장이지.

버럭무지도 위장을 해야 하오. 그리고 갱도는 외통굴로 파지 말아야 하오. 시간이 나는대로 비상출구를 갖춘 예비갱도들을 더 보강하시오.》

박정덕은 긴장하여 그이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가끔 수첩장에 무엇인가를 적기도 한다.

《이젠 보병들의 갱도로 갑시다.》

김일성동지께서 박정덕과 급히 달려온 전문섭사단장의 안내로 보병대대의 갱도공사장에 도착했을 때 참나무레루우로 버럭을 가득 실은 밀차 한대가 삐걱거리며 굴러나오고있었다.

군복웃저고리를 벗어던지고 면내의바람으로 밀차를 밀던 전사는 밀차를 세우고 헐떡거리며 한숨 돌리다가 앞에 나타난 군단장을 발견하더니 반색을 하였다. 버럭먼지가 하얗게 앉은 애리애리한 두볼에 웃음이 가득 담기고 벌려진 얄팍한 입술밑으로 큼직한 덧이가 유표하게 드러났다.

《야, 군단장동지, 장기도전경기를 하러 오셨습니까?》

뚱딴지같은 인사로 군단장을 맞이하는 이 절도없는 병사를 향해 박정덕은 눈을 부릅떴다.

박정덕의 뒤에 서계시던 김일성동지께서 껄껄 웃으시였다.

우렁우렁한 음성에 깜짝 놀란 전사는 군복혁띠춤에 꽂았던 모자를 황급히 쓰며 군단장의 어깨너머로 고개를 빼들고 두리번거렸다.

문득 김일성동지의 모습을 발견한 전사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장군님!…》

전사는 환성을 지르며 앞으로 막 달려나오다가 전문섭사단장의 눈살에 질리워 그 자리에 멈춰섰다. 그제서야 군인다운 면모를 깡그리 잃은, 땀에 절고 버럭먼지가 가득한 자기의 험상한 주제를 의식하며 당황하여 몸둘바를 몰라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느새 전사앞에 다가서시였고 그의 자그마한 손을 따뜻이 그러쥐시였다.

《수고하누만.》

《최고사령관동지, 전사 리만호…》

애숭이는 그이의 손에서 자기의 어지러운 손을 뽑지도 못한채 중얼거렸다.

김일성동지께서 그의 마음을 눅잦혀주시려고 어깨를 다독이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 돌부리에 긁히워 험해진 전사의 손을 한참이나 내려다보시다가 허리를 굽히시며 그에게 물으시였다.

《힘들지?》

《힘들지 않습니다.》

《왜 힘들지 않겠나. 힘이 들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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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그러자 전사는 머리를 숙이고 혀아래소리로 속삭이였다.

《조금 힘듭니다.》

《조금 힘들다? 하하하.》

웃으시던 그이께서 전사에게 물으시였다.

《그래 동무는 이 전쟁에서 우리가 이길수 있다고 생각하나?》

리만호의 얼굴에 대뜸 환희가 떠올랐다. 전사는 정중한 자세로 김일성동지를 우러르면서 애된 목소리로 대답올렸다.

《이깁니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계시기에 우리는 꼭 이깁니다.

우리는 늘… 장군님만을 생각하고있습니다. 그러니까 장군님께서 어디에 계시든 우리와 함께 계시는것이라구 문화부중대장이랑 특무장아바이랑 늘 얘기합니다. 전선동부에서 대대장을 하는 리만희맏형도 그렇게 써보냅니다.》

어린 전사의 꾸밈없는 말은 김일성동지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그이께서는 전사의 손을 다정히 꼭 쥐여주시였다.

《고맙소, 전사동무.》

두군데의 갱도를 더 돌아보고나니 오후 1시가 되였다. 서천해안의 방어임무를 맡은 510사단관하 땅크련대의 지휘부에 들어서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전문섭사단장에게 무언가 부지런히 지시를 주는 박정덕의 모습을 창문밖으로 내다보시였다. 그는 점심식사를 군단지휘부에 준비시켰다가 이곳 련대지휘부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겠다고 하시자 바빠서 돌아가고있는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부관을 돌아보시였다.

《김명수, 가지고 온 점심을 여기다 다 내놓으시오.》

부관은 새벽에 떠날 때 장명선아바이가 꾸려준 주먹밥과 빵, 연어알통졸임들까지 꺼내 책상우에 펴놓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창문을 여시더니 지휘부건물 모퉁이에서 초조하게 서성거리는 박정덕을 향해 소리치시였다.

《박정덕이, 찾아온 손님 점심 굶길 작정이요?》

《장군님!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이제 사단장이 곧…》

당황한 박정덕이 손가락을 마주 잡아비틀었다.

《그래 돼지를 잡을래? 소 잡을래?》

《장군님…》

《그러지 말구 어서 들어오라구, 어서! 명령이요.》

명령이란 말에 박정덕이 난색이 되여 겅정겅정 다가왔다.

《여기 와앉소. 전문섭은 또 어딜 보냈나? 자, 들기요.》

《좀 기다려주십시오… 사단장이 인차 옵니다.》

《됐소. 여길 온다니 뭘 좀 꿍져보낸것 같은데 우선 이것부터 드오.》

그이께서 주먹밥 한덩이를 쥐여주시자 박정덕은 그것을 손에 쥔채 머밋거렸다.

김일성동지께선 웃음을 지으시면서 시까스르는듯 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박정덕의 성미가 대틀인줄 알았는데 오늘보니 통은 작아. 사람이 비위도 좀 있어야지.》

박정덕의 얼굴에선 땀이 철철 흘렀다.

식사가 끝난 다음 그이께서 《박정덕의 장기솜씨를 한번 보자.》고 하시며 장기판을 가져오라고 하시였다. 어지간히 손때가 묻은 장기판이였다.

긴장하게 수를 쓰며 공세를 취해보던끝에 수세에 몰린 박정덕이 드디여 장기쪽을 놓고 일어섰다.

《제가 졌습니다, 장군님.》

《수는 박정덕이한테 있어.》

김일성동지께서는 《금강》담배갑에서 한가치 꺼내 박정덕에게 내미시며 느닷없이 물으시였다.

《김일이한테 듣자니 동무네 군단엔 매 중대마다 장기판을 다 가지고있다면서?》

《예, 제가 군인들의 머리도 트이게 할겸 활기도 불어넣을겸 그렇게 하도록 했습니다.》

박정덕의 얼굴엔 면구스러워하는 빛이 떠올랐다.

《자기의 취미를 군단전체에 내리먹였군. 그래, 군단에 군단장의 장기적수들이 몇명이나 있는가?》

《땅크사단 직속중대의 특무장을 비롯해서 서너명 있습니다.》

《그들과 장기를 두어서 다 이기는가?》

《예… 대체로 이깁니다.》

《음… 군단장의 얼굴을 봐서 다들 져주는게 아닐가?》

김일성동지께서 눈을 쪼프리시고 미소를 지으시자 박정덕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닙니다. 그들은 저의 체면같은건 안중에도 없습니다. 이기겠다고 악을 빡빡 쓰며 달려듭니다. 여러번 돌아가면서 맞서다나니 이젠 내 수를 다 알고 저희들끼리 새로운 수들을 연구해가지고 달려들군 합니다. 사실은…장군님께서 아침에 만나셨던 보병대대의 그 전사가 적수들중 제일 악돌인데 요 며칠전에는 그 녀석한테 제가 한번 졌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장기 국수라고 뽐내는 땅크사단의 특무상사가 그 녀석에게 숱한 조언을 주었다고 합니다. 뭐, 백장기수를 대줬다던지…》

《오, 그 리만호전사말이지! 하하, 그 녀석 신통해. 앞으로 〈제2의 박정덕〉이 되겠군.

보라구, 군단장. 전사들을 숙보았단 큰코 다쳐.》

그이께서는 만시름을 놓고 웃으시였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군단장과 전사들이 장기를 둔다는게… 김명수, 우리가 신문기자를 하나 달고 오지 못한게 유감이요. 〈군단장과 전사의 장기경기〉라는 제목으로 전선신문에 글이 나가면 얼마나 멋있겠는가 말이요.》

《!》

《!》

오후시간이 흘러가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박정덕의 안내를 받으며 서천지역의 방어전연을 돌아보시면서 생각을 거듭하시였다.

(원형방어에 대한 차국천의 주장과 군단무력의 전진배치를 주장하는 박정덕의 견해는 최고사령부의 기도를 대하는 지휘관들의 전략적안목과 시각의 차이이다.

창조가 없인 싸움에서 이길수 없다. 박정덕의 견해를 무시하고 철저한 원형방어만을 주장하는 차국천의 고집은 협애하고도 근시안적인것일뿐만아니라 일종의 패배주의에 가까운 사상을 내포하고있다.

박정덕의 주장이 백번 정당한것이다.

과연 이 시각 바다건너 도꾜의 릿지웨이나 그의 참모진은 서조선만의 방어를 책임진 젊은 박정덕을 어떻게 볼것이며 어떤 작전계획을 세우고있을것인가.)

김일성동지께서 금방 완성해놓아 통나무벽체에서 송진내가 진하게 풍기는 땅크련대감시소에 들어서시였을 때는 오후 5시가 거의 되여갈 무렵이였다.

허리를 굽히시고 감시소의 포대경을 통하여 련대방어전연을 살펴보시던 그이께서 한참만에 돌아서시였다.

《박정덕이, 서천지역에 대한 방어공사가 그만하면 잘된것 같소. 우선 포들을 갱도에 집어넣었으니 항공타격에 파괴되는 일은 없을것이고 또 전투원들의 갱도도 거의 완성되였으니 마음을 놓을수 있게 되였소.

하지만… 심중히 생각해보시오. 현재 진행되고있는 서천지역에 대한 적의 〈위력정찰〉이 동무의 시야를 흐려놓고 다른곳을 타격하려는 책략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소?》

《장군님, 적의 서천상륙시도는 반드시 있을것입니다.》

《적의 립장에서 생각해보아야 하오. 그래 릿지웨이가 박정덕의 생각대로 움직일것 같소? 전쟁에서 지휘관의 판단과 결심은 철의 론거를 가지고있어야 하오.》

《…》

박정덕은 차츰 긴장해지며 그이를 우러렀다.

김일성동지의 말씀이 감시소안을 다시 울렸다.

《74군단장! 적의 서천기습상륙에 대한 론거를 증명해보시오.》

진폭이 큰 그이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에 감시소안의 통나무벽체가 흔들리는듯 하였다.

김일성동지의 엄하고 서늘한 시선을 받은 박정덕의 얼굴에서 자신만만한 호기가 죄다 사라지고 순간에 파릿해졌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숨을 다몰아쉬며 입술을 깨무는 박정덕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시였다.

무슨 문제든지 파고들면 들수록 미지수가 더 많아지는것이 군사문제이다. 수학에는 역산법이라는것이 있어 어떤 문제든지 검산해볼수 있지만 군사문제는 싸움을 해보지 않고는 그 답의 정확성여부에 대한 사실상의 《검산》을 해내는 재간이 없다. 이 《검산불가능한 문제》의 답을 전투라는 미래의 정황에서 무조건적인 승리로 담보해야 하는것이 작전지휘관의 임무이다.

그래서 낮과 밤을 이어가며 적지휘관들의 두뇌와 심리를 겨냥하여 사색의 피어린 결투를 벌린다. 전투에 참가하는 병사들에겐 잠잘 권리가 내무규정의 일과표에 지적되여있지만 전선지휘관에게는 《일과표》의 수면시간이 적용되지 않는다.

달리는 야전차안에서 군용외투를 뒤집어쓰고 눈을 잠간 붙이는 그 쪽잠속에서도 작전을 잊을 권리가 그들에겐 없다. 꿈속에서까지도 작전을 구상해야만 하는것이다.

피타는 모색과 심사숙고의 로정을 거쳐 도달한 판단과 결심이 정확했을 때는 승리의 주인공이 된다. 그러나 서뿌른 판단과 결심에서 오유를 범했을 때는 패전의 수치스러운 책임을 면치 못한다. 이것이 전선지휘관의 운명이다.

《김일성동지! 〈높은 권한에는 무거운 의무가 뒤따른다〉는 로마격언이 저의 마음을 언제나 괴롭히군 합니다.》

이것은 1940년대초에 처음 만났던 쏘련군 장령 쥬꼬브가 그이와의 대화중에 고백한 말이였다. 쥬꼬브는 쓰딸린과 쏘베트인민이 지워준 군사지휘관의 중책을 항상 심각하고 무겁게 느낀 진실한 군인이였다.

어째서인지 김일성동지의 시야에는 이 시각 박정덕의 얼굴과 쥬꼬브의 얼굴이 서로 교차되여 얼른거리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신채 박정덕을 바라보시였다. 이제는 그가 대답할 시간이 되였다고 생각되시였던것이다.

고개를 약간 떨군채 무언가 바재이던 박정덕은 머리를 번쩍 쳐들며 단호하게 말씀드렸다.

《적의 서천지역상륙은 바로 장군님의 예견입니다. 제가 서천방어를 주장하는 근본적인 리유는 장군님께서도 바로 그렇게 생각하시기때문입니다!》

《?!…》

돌발적이고 엉뚱한 그 대답은 김일성동지의 안광에서 한줄기의 빛나는 섬광을 일으켰다. 그이께서는 입가에 알릴듯말듯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 동무는 자기가 최고사령관의 생각을 정말로 안다고 생각하오?》

《그렇습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전 군단장의 자격이 없습니다.》

박정덕은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은 자세로 그이를 우러르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마침내 큰 소리로 웃으시였다.

《하하, 역시 박정덕이군. 요진통을 찌를줄 알거던.》

그이께서는 웃음을 거두지 않으신채 련속 물으시였다.

《동무는 어떻게 되여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할수 있는가. 설사 내 생각을 파악했다고 해도 전선지휘관은 자기의 독자적인 판단도 가져야 하는거요.》

완전한 자신심을 회복한 박정덕은 평소의 박달나무같은 강단을 담아 두눈을 번쩍이였다.

《장군님, 전 장군님께서 우리 군단에 주신 서해안방어임무가 방어요충지들을 명백히 지적하고있다고 생각합니다. 릿지웨이가 노리는 해상상륙지점은 서천이며 항공륙전대투하의 예견지역은 온천과 순천입니다.》

《릿지웨이가 항공륙전대를 리용하리란 예견은 또 어떤 론거를 갖고있소?》

《릿지웨이는 과거에 미륙군의 82보병사단을 미군의 첫 항공륙전사단으로 조직개편하는데 주요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제2차대전시기에는 서유럽전선에서 18항공륙전군단장을 했습니다. 조선전쟁이 시작되여 륙군참모장의 직무를 수행해온 그는 전쟁을 륙지와 바다, 공중에서 종합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견해를 주장하군 했습니다.》

적지휘관에 대한 박정덕의 연구도 그이를 만족하시게 했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내색을 하지 않으시고 계속하여 물으시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동무의 판단과 결심을 철회하지 않겠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장군님! 전 장군님께서 저의 작전을 지지해주실뿐아니라 보다 철저한 작전방향을 그어주시리라고 확신합니다.》

그야말로 기관단총사격같이 여무지고 거침없는 말마디들이였다. 무쇠함마로 들이쳐도 끄떡하지 않을 의지가 내뿜기는 젊은 군단장의 모습을 바라보시는 김일성동지의 시선은 더없이 따뜻했다. 흐뭇한 기쁨이 그이의 가슴을 가득히 채우고있었다.

이 지성적인 눈매에 키가 후리후리한 젊은이를 볼 때마다 영민하고 배심있는 자식을 가진 어버이의 애정비슷한 사랑스러운 감정을 어쩔수 없으시였다.

그이께서는 기쁘시였다. 최고사령관의 사색에 자기의 사고를 맞추어 나갈줄 아는 이런 지휘관들이 있다는것은 그 무엇과도 견줄수 없는 행복인것이다.

100여년간의 전쟁경험과 백수십여차의 《전승》을 자랑하는 《세계최강의 군대》라고 자처하는 미제국주의군대와 맞선 이 전쟁에서 청소한 우리 군대가 이기는 또 하나의 비결은 자기 정부와 자기 당, 자기 수령에게 충실한 전사, 인민대중과 함께 바로 이런 지휘관들, 이렇듯 지헤로운 조국의 아들들이 있기때문이다.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가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감시소의 시창을 통해 멀리 방어전연, 붉은 노을이 피고있는 고요한 해안을 다시금 이윽히 부감하시였다.

아득한 그쪽, 태양이 바다에 잠겨드는 불타는 수평선을 향해 새들이 날아가고있었다.

죽음의 불길이 하늘과 땅, 바다의 온 공간을 무참히 휩쓸고있는 엄혹한 전란속에서도 자연이 준 생명의 법칙대로 저들의 삶터를 끈질기게 지켜가는 바다새무리들, 석양이 깃드는 이른 저녁의 장엄한 정적…

그 바다새들의 활기찬 퍼덕임소리가 그이의 귀가에 들려오는듯 싶었다.

김일성동지께서 문득 박정덕에게 시선을 돌리시고 그의 한쪽어깨에 오른손을 가볍게 얹으시며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이의 손끝에 견장우에 놓인 장령별들의 도드라진 부분이 감촉되시였다.

이 두개의 장령별이 젊은 그의 어깨에 얹혀지던 그때부터 한해남짓한 시간이 흘러갔다. 박정덕을 서해안방어와 평양방위를 책임진 74군단장으로 임명하실 의향을 처음으로 내비치셨을 때 김웅이 《아니, 장군님. 이제 겨우 서른을 넘긴 철부지에게 군단을 맡기시다니요?》하고 놀라던 일도 눈에 삼삼하다.

하지만 혁명을 나이로 하는가. 그이께선 박정덕을 나이로 가늠하신게 아니였다. 그의 명석한 두뇌와 가슴속에 넘쳐나는 혁명가적 열정을 보시였다.

그동안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젊은이가 조국이 준 장령의 임무를 수행하여 편차없는 정보를 걸을 때는 고무를 주시였고 간혹 뒤질세라 엄하게 책벌을 주기도 하시였다.

그 모든 일들이 김일성동지의 뇌리에 스쳐지나가고 꼿꼿한 자세로 서있는 박정덕의 모습이 다시금 시야에 비껴들었을 때 그이께서는 만시름이 풀리는듯 긴숨을 내쉬시며 다시한번 박정덕의 어깨를 억세게 움켜쥐시였다.

《좋아. 적들이 서조선만을 노리고있는것이 명백해졌소. 이제 나와 함께 최고사령부로 가기요.》

이날 군사위원회에서 박정덕에 대한 책벌이 해제되였고 밤에는 김일성동지께서 최고사령부 집무실에서 박정덕중장과 오랜시간을 보내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서해안방어에 대한 그의 작전적구상과 결심을 최종적으로 료해하신데 기초하여 군단작전에 관한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그에게 직접 하달하시였다.

이날밤만은 74군단 작전기도에 대한 분석과 료해 그리고 결론과 비준의 전과정에 최고사령부 작전일군들중의 그 누구도 참가하지 않았다.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와 74군단장 박정덕중장사이에 모든 사업이 진행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만년필을 쥐시고 마지막으로 작전지도를 내려다보실 때 박정덕은 격동된 가슴을 누르며 타는듯 한 눈길로 그이를 우러르고있었다.

전사의 충직한 눈길을 온몸에 느끼시며 그이께서는 아무 말씀없이 작전지도의 비준란에 수표를 하시였다.

《김일성》

귀중한 존함이 정중히 새겨진 아래의 작성자란에는 《박정덕》이라는 세글자가 씌여져있었다.

 

×

 

전무성은 련락을 받고 석다산대대에서 오래간만에 형제산기슭의 군단지휘부로 올라왔다. 군단직속 기계화구분대인만큼 지휘부로 드나들 기회가 드문히 있었으나 부득이한 경우외에는 의식적으로 피했었다.

어찌보면 그것은 소심하고 지어 군관답지 못한 행동이라고도 스스로 생각되였지만 군단지휘부에 들어서면 피치 못하게 그 녀자와 마주칠것 같아 애써 자신을 눅잦히군 하였다.

그리도 몰인정한 통신군관 김인정과 마주서는것이 짧지 않은 전쟁의 나날 포연탄우속에서 단련될대로 된 그의 심장의 한구석을 그리도 아프게 하리라고는 전혀 예견치 못하였지만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였다.

그 녀자가 아무런 리유도, 설명도 없이 그를 랭혹하게 대하거나 피함으로써 이러저러한 사연깊은 지난날의 관계는 둘째치고 평화시기의 평범한 학우로서 만나고싶었던 소박한 기대마저 말끔히 허물어지고말았던것이다.

전혀 몰랐던 사이라면 그것이 아무런 정신적충격도 주지 않았을테지만… 그 녀자와 사업상관계로나마 마주서고 엇갈리고 때로는 무심하고 찬 눈빛을 받게 될것이 그에게는 하나의 고통이였다.

구태여 기신기신 머리를 숙이고 찾아가 사연을 캐묻기도 난처하였고 낯가죽 두텁게 덤덤히 대하기도 또한 싫었다.

박정덕군단장은 지난 늦은겨울 정찰부문으로 보내달라는 그의 갑작스런 제기를 받았을 때 아무말도 없었다. 질책도 의문도 없었다. 근 한해가까이 부관으로 사업하다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들이댄 그런 돌발적인 제기가 상관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겠는가를 생각하자 전무성은 낯이 붉어졌다.

보름후 그는 정찰부문이 아니라 석다산대대장으로 임명되였다.

박정덕장령은 그때 긴말을 하지 않았다.

《전투경험도 많고 또 영어에도 능한 무성동무를 정찰국에서 욕심내는줄은 벌써부터 알고있었소. 갈 땐 가더라도 우선은 서천을… 지켜야 하오.》

《?!…》

그런데 오늘 군단참모부에서 그를 찾은것이다.

부대직일관의 뒤를 따라 참모부로 갔다. 낯익은 참모가 참모장이 통신결속소에서 기다린다고 알려주었다. 부대직일관은 가버리고… 말없이 돌아서서 통신결속소로 걸어갔다.

출입문앞에서 굳어졌다. 방안에서 가벼운 인기척과 말소리가 들려왔던것이다. 가슴이 영문모르게 옥죄여들었으나 서슴없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규정대로 보고했다.

《음, 왔구만. 기다리고있었소. 35포련대장동무도 이제 도착할거요. 사실 동무는… 됐소. 끝난다음에 보기요. 동무들은 중요한 전투임무를 수행하게 되오. 군단장동지가 자리를 비운 때여서 군사위원동지가 직접 지시했소. 동문 즉시 대대로 돌아가 오늘 오전 12시까지 구분대를 금당ㅡ광량만계선의 지적된 구역으로 이동해야겠소. 알겠소?》

전무성은 한순간 영문모를 의혹이 머리를 들었으나 군인답게 차렷자세를 취했다.

《알았습니다, 참모장동지!》

《차가 준비되였으니 최갑동련대장과 함께 떠나시오. 좀 기다렸다가 나도 통신참모와 함께 인차 명령서를 가지고 뒤따라 내려가겠소.》

전무성은 방안을 둘러보다가 문득 교환대앞에 서있는 김인정을 알아보았다.

전무성은 눈살을 찌프렸다.

전무성의 눈길이 미치자 김인정의 해쓱한 얼굴에 물들던 홍조는 순간적으로 사라져버리고 례의 새침한 기운이 되살아났다.

전무성은 한찰나 영문모르게 가슴이 섬찍해져 눈길을 돌려버리고말았다. 교환분대장처녀가 눈을 샐쭉하며 전무성을 훔쳐본다.

전무성은 순간 자기가 이 장소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불청객이라는것을 불현듯 깨달았다.

그는 주밋거리다가 슬며시 돌아섰다.

《대대장동무, 어딜 가려오?》

《참모장동지, 나가서 기다리겠습니다.》

《음, 그렇게 하오. 최갑동동무가 오면 보내지. 이제 알게 되겠지만 동무네 임무가 중요해.》

전무성은 통신결속소를 나서며 문을 닫았다.

문짬으로 두 녀성군인의 목소리가 흘려나왔다.

《중위동진 왜… 그렇게 낯모를 사람처럼 대해요?》

《아이참, 성희동무, 무슨 상관이예요.》

《그래두, 어제 들으니 대대장동진 인차 조동된다던데…》

《됐어요. 성희동무, 우린 판판 남이예요.》

김인정의 목소리는 매몰스럽게 울렸다.

전무성은 모닥불을 뒤집어쓴것 같은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그는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은 아픔과 울분을 동시에 새겨안으며 허벙지벙 군용차쪽으로 걸어갔다.

(남이나 다름없단 말이지. 어쩔수 없는 판판 남이지… 모든것은… 그렇게도 삽시에 깨끗하게 끝나버리고 말았어. 하지만 그 녀자의 랭담성, 그 차거운 눈초리는 너무하다.

나 역시 아무런 미련도 가지지 않을것이며 어떤 경우도 빌붙지 않을것이다…)

전무성은 위장한 차앞으로 다가가 길옆의 잔디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순간 허전해오는 마음속으로 일종의 서글프고 애잡짤한 감정이 슬며시 솟구쳐오른다.

전무성은 풀대를 꺾어들고 의미없이 매만졌다.

(그 모든것은 단순한 우정에 불과했던가? 그래 이제 와서 보면 우정도 아니였어…

그렇다면 지나간 그 귀중한 생활, 그 리상, 그 웃음, 그 사연은 무엇이였단 말인가?…)

…차거운 해가 비치는 도시의 교외길, 아직은 봄도 겨울도 아니였다. 그 어중간.

전무성은 문맹퇴치사업으로 강선지구에 나갔다가 대학민청에 보고할 일이 생겨 급히 대학으로 가고있었다. 기실 그가 아침밥까지 건느고 급히 떠난데는 다른 개인적인 목적도 없지 않았다.

봄철을 맞으며 평양시안의 대학들은 축구대항경기준비로 열기를 띠고있었다.

그런데 종합대학팀의 공격수이자 주장인 전무성은 경기훈련이 아니라 지시에 따라 강선지구의 문맹퇴치사업에 묻혀있으니 이게 될일인가.

전해 가을에 진행된 최종결승경기에서는 사범대학팀과 아슬아슬하게 동점꼴을 내고말았다.

《집게다리》로 유명한 방어수인 삼수내기 생물학부 학생이 그만 설익은 꽃게를 먹고 병원에 입원한 덕을 톡톡히 보았던것이다.

전무성은 문맹퇴치사업에 자기를 찍어넣은 대학민청위원장에게도 불만이 컸다. 대학민청이 분담받은 강선지구의 문맹퇴치사업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하여 대학의 명예와 관련된 축구경기를 차요시한다는것이 말이 되는가.

겨울방학도 거진 끝나가는데 대학축구팀선수들은 여전히 뿔뿔이 흩어져 분내풍기는 녀대학생들과 무릎을 마주하고 구들을 뜨끈히 달군 농촌의 민주선전실들에 틀고 앉아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있다.

소식통에 의하면 사범대학팀은 벌써 보름째 문수비행장곁에 천막을 쳐놓고 맹훈련에 들어갔다고 한다.

쏜살같이 달리며 몸을 뒤로 허궁 날려 뒤발깎아치기로 문전을 위협하는 사범대학팀의 7번수, 교육학부의 때이른 나이에 머리가 벗어진 《번개》를 생각하면 속이 얼어들 지경이였다.

전무성이 초조해지는 마음으로 보통강입구 서재골앞길에 들어섰을 때였다.

《공격수동무!》

길가에서 탄력있으면서도 연약해보이는 몸매의 처녀가 방글방글 웃으며 그에게 손짓했다.

(허, 이건 웬 보살이야?…)

전무성은 어정쩡해서 그 녀자를 바라보다가 손으로 제가슴을 가리켰다.

《나를 찾습니까?》

《아이참, 그럼 누굴 찾겠나요. 저를 모르겠어요? 축구경기때마다 응원해줬는데… 지난 가을엔 꽃다발까지 안겨준 일을 벌써 잊었어요?…》

대학생인듯싶은 처녀는 억울하다는듯 새침해서 종알거렸다.

생각나지 않았다. 그들이 련승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처녀들이 축하의 미소를 보내주며 꽃목걸이를 걸어주었던가?!

흥심없이 처녀앞으로 다가갔다.

녀학생의 발치에는 방수포를 씌운 새개의 배낭이 놓여있었다.

《이건 뭡니까?》

《동물 기다리고있는 배낭이예요. 저와 함께 가야겠어요.》

《난 좀 바쁜데…》

《멀진 않아요. 축구팀때문이죠? 대학민청위원장동무에게서 들었어요. 아침에 강선을 떠났다구요.》

전무성은 의아해서 눈길을 들었다.

《그럼… 우리 대학 학생입니까?》

《호호… 아니, 전 음악학교 졸업반이예요. 축구애호가다나니 그럭저럭 알게 되지요.》

《녀성축구애호가라?!…》

전무성은 입이 딱 벌어져 새삼스럽게 녀학생을 넘겨다보았다.

목이 쑥 빠진 하얀 얼굴에 고운선이 흐르고 그것이 움직이며 눈이며 입가에 미소를 만들어내여 더욱 빛났다.

《이래봐도 전 학교 녀성정구선수랍니다. 말하자면 동업자란 말입니다.…》

《동업자라…》

전무성은 웃음집이 흔들렸지만 철학부 학생답게 속으로 분석하면서 우선 배낭하나를 닁큼 쳐들었다. 순간 허리가 시큰하게 그 무게가 팔에 뻗쳐왔다. 그러나 처녀앞에서 《공격수》가 약골로 보일가봐 안깐힘을 쓰며 등에 걸머지였다.

《호호호, 가볍진 않아요. 여기까진 겨우 지나가는 소달구지신세를 졌답니다.》

두 남녀는 배낭을 하나씩 지고 한개는 맞들고 행길에 나섰다.

《어디까지 가야 합니까?》

벌써 어깨죽지를 파고드는 배낭끈의 조임에 등골로 땀이 내배기 시작했다.

《걱정마세요. 평양시내니 멀다고 볼순 없어요. 우린 문수봉까지 가야 합니다.》

처녀가 딱 잘라 말했다.

전무성은 들고있던 배낭끈을 놓아버렸다.

《아니, 정신있소? 그럼 대동강건너까지?…》

처녀가 대들듯이 오똑 마주섰다.

《운동장을 메주밟듯 뛰여다니는 공격수동무에겐 대동강건너가 그리도 멀어보여요?》

울컥 밸이 치솟았다. 그는 등에 진 배낭마저 내려놓았다.

《안되겠소. 난 동무도 알다싶이 정말 바쁜 사람이요. 그리고 민청위원장에게 오전중으로 보고할 중대한 문제도 있소.》

《그 중대한 문제는 이미 강선땅에서 전화로 보고됐어요. 이렇게 하도록 승인까지 받았구요.》

길가던 행인들이 배낭을 진 처녀와 배낭 둘을 앞에 놓은 청년이 열을 내며 마주 서있는 모양을 흥미있는듯 흘끔흘끔 돌아보며 지나갔다.

《?…》

《!…》

마침내 전무성이 저도 모르게 먼저 눈길을 내리였다.

괴이하게도 그 순간 과외도서로 읽은 고서 소크라테스의 사나운 안해일화가 떠올랐다. 그 녀자는 성이 나면 대철학가에게 소랭이로 찬물을 끼얹었다고 한다.

전무성은 그《찬물》을 들쓴 기분이였다. 그의 눈에 처녀가 신은 먼지가 뽀얗게 오른 맵시있는 밤색가죽구두가 안겨들었다.

말없이 각기 다시 배낭을 지고 나머지 한개는 끈을 맞잡고 걸었다.

(이거 된코에 걸렸는걸! 도대체 이 녀학생은 어디서 굴러온 애물인가? 우리 민청위원장의 애인? 그런 여론은 못들었는데… 옳지, 음악학교 민청위원장인 그 안경쟁이가 있지… 어쨌든 이대로 빠져나가기는 케가 글렀는걸…)

전무성은 걸음을 멈추었다.

《왜 또 기권할 생각이 났어요?》

《웬걸, 일단 경기장에 나섰으면 금꼴을 넣어야지 기권이라니.》

《옳게 결심했어요.》

도고했던 녀학생의 목소리가 한결 풀어지였다.

《하지만 공격방법을 바꿔야겠소. 이러단 길우에서 해가 지겠소.》

《공격방법이요?》

전무성은 배낭을 벗어놓고 교외길의 한가운데에 버티고 섰다. 처녀는 의아한듯 배낭을 그냥 진채 그를 반신반의하는 눈길로 쳐다보았다.

키꼴이 쭉 빠진 미끈한 체육인형의 감때사나운 청년이 길을 막아서자 마침 먼길을 달려온듯싶은 화물차 한대가 아츠러운 소리를 내며 멈춰섰다.

《여, 죽자구 그래?…》

상고머리가 상체를 내밀고 어성을 높였다.

《우릴 도와주어야겠소.》

전무성은 허리에 손을 얹었다.

《안돼, 보란 말이요! 만짐이야!》

《우리 짐은 이게 다요. 시간때문에 그러오. 중대한 국가적임무요.》

상고머리운전사는 전무성의 뒤에 서있는 처녀를 얼핏 띄여보자 사납던 눈길을 조금 풀었다.

《여보, 난 빨리 휴암동까지 가야 해. 우리 소비조합지배인이 늦어지면 날 가만두지 않을게요.》

《마침이군. 우리는 그 도중에 내리겠소. 랭천동아근까지만 신세지기요.》

운전사의 눈길이 다시 말없이 서있는 새침한 미모의 처녀에게로 가 박혔다.

《빨리 타오!》

밑바닥까지 푹 누그러진 목소리였다.

두 남녀는 재빨리 배낭을 적재함에 실었다.

전무성이 먼저 올라 처녀의 팔을 붙잡았다.

호리호리해보이는 처녀가 어찌나 몸집이 무거운지 겨우 끌어올렸다. 화물차는 그 녀자가 채 오르기도 전에 부릉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문 정구선수라더니…》

《제몸도 못이긴다는거죠. 사실 전 선수선발에서 동작이 굼뜨다고 미끄러졌어요.》

《그럼?…》

《대신 영원한 응원책임자가 되고말았어요. 제겐 그게 알맞는가봐요.》

《헛참!…》

두사람은 겨울난 감자무지를 헤집고 편안히 자리를 잡았다.

《방금 무성동무가 한마디만은 잘했어요.》

《?!…》

《중대한 국가적임무라고 한것 말이예요.》

전무성은 쓰거운듯 입을 다셨다.

《경기에서도 바쁠 땐 반칙할수 있소.》

《아니, 그건 반칙이 아니였어요.》

녀자의 눈이 새물새물 웃었다.

《도대체 이 방수포안에 무슨 귀신딱지가 들어있소?》

전무성이 머리를 기웃거렸다.

《어린 나무모들이예요.》

《나무모?…》

《우리 졸업반학생들은 학교를 떠나기 전에 문수봉에 나무를 심기로 했어요. 김일성장군님께서 나무를 심으신 문수봉에 우리도 이 봄을 맞으며 기념식수를 하자는거지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새 일터로 떠나기 전에… 의의있지 않아요?》

《흠… 정말 중대한… 국가적일이 옳긴 옳군!》

전무성은 마음이 흥그러워져 새삼스럽게 처녀를 넘겨다보았다. 순간 그의 눈이 커졌다.

《아니, 동무의 구두 한짝이 어디 갔소?》

《호호호, 적재함에 오를 때 차값으로 바쳤군요.》

처녀는 얼굴이 활딱 붉어져 난처해하다가 다른 구두짝을 마저 벗어 길우에 훌 던져버렸다.

《아니, 이건 뭐요? 당장 차를 세우기요!》

전무성이 몸을 숫구자 처녀가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됐어요. 동무들이 지금 눈이 빠지게 기다릴거예요.》

《제길, 그렇다고 다른 한짝까지 버릴건 뭐요? 새신 같은데…》

전무성은 아쉬운 눈길을 멀어져가는 밤색구두에서 떼지 못했다.

《군관인 우리 오빠가 설을 맞으며 사준거예요. 무성동무, 하지만 외짝구두가 무슨 소용이 있어요. 구두야 원래 두짝이 함께 있어야지요. 호호호…》

전무성은 의미가 있는듯 한 처녀의 마지막말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저 놀라운 눈으로 그를 마주보다가 변명하듯 물었다.

《동문… 도대체 이름이 뭐요?…》

《공격수》다운 질문은 아니였다.

《그저 〈응원대장〉이라고 해주세요.》

이렇게 알게 된 그들이였다. 그들의 교제는 석달동안 계속되였다. 복잡하고 분망하고 랑만적인 우정이였다. 경기, 박수, 꽃다발, 기숙사, 산보… 전쟁이 터졌다.…

그가 바로 몰인정한 태도로 전무성을 외면하고 무시하고있는 김인정군관이였다. 이상하게도 군단에서 만났을 때 일이 벌어졌다… 한주일후부터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여버렸다. 하지만 평양에서 헤여질 때는 많은 말을 했었다.

전무성이 전선으로 탄원했을 때 출발의 역두에는 들꽃묶음을 한아름 안은 김인정이며 음악학교 민청위원장인 안경쟁이도 나와있었던것이다…

…차가 형제산을 벗어나 철현고개를 넘을 때 찌뿌둥해서 앉아있던 최갑동련대장이 불쑥 두덜거렸다.

《〈석다산〉, 어떻게 보나? 대낮에 중포들을 이동시킨다는게 간단치 않아. 적들은 눈뜬 소경인가.》

《…》

《이동거리는 가깝지만… 군단장동지를 만나지 못한게 마음이 놓이지 않소.》

《…》

전무성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얼레구름이 몇점 떠있을뿐 파아란 4월의 하늘이 눈부시게 빛나고있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적기 한대 얼씬거리지 않는다.

무엇인가 께름하였다.

전무성은 정신을 번쩍 차리고 주위를 예리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

 

미8군사령관 밴플리트대장에게서 온 전문은 릿지웨이를 더없이 흥분시켰다.

지난해말 《추기공세》의 쓰디쓴 실패후 거의 6개월간을 착잡한 고뇌속에 빛을 잃고있던 로병의 두눈이 야생적인 열광으로 빛났다.

기실 위트니중장이 가져온 전문을 보고 릿지웨이도 처음은 놀랐었다.

《미극동군 사령관 릿지웨이대장 친전.

H(서천)방어지대에 전개되였던 북조선군 직사포들은 〈리브〉선의 공작에 의하여 K(금당)계선으로 이동하였다. 현재 H방어선은 2개 대대의 보병력량만으로 수비되고있다. 상륙날자와 시간은 귀하가 지적한바대로이다…》

미간의 주름살을 쫙 편 릿지웨이는 자기의 가슴노리에 매달린 두개의 수류탄을 떨리는 손으로 매만졌다. 탄체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랭기가 달아오른 손바닥을 식혀주었다.

(!…)

언젠가 불시에 있게 될수도 있는 무서운 폭발을 예고하는 그 자그마한 금속덩어리의 침묵이 기이하게 여겨졌다.

그 침묵속에 감춰진 불시성, 잠재하는 엄청난 힘은 옛 보병지휘관이며 항공륙전대 장교였던 릿지웨이를 때맞지 않게 감동시키군 하였다.

기습상륙전의 개시를 앞에 둔 릿지웨이는 가슴노리의 수류탄을 가만히 매만지면서 생각했다.

나뽈레옹에 의하면 전쟁이란 바로 기습전의 련속이라고 한다. 하다면 그 기습적효과ㅡ폭발적인 힘을 리용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상대측지휘관의 전술적특징에 대한 관심과 그에 대한 연구는 작전의 계획과 작성에서 어느 한시도 떼여낼수 없는 필수적조건이다. 북조선의 장령들, 특히 서조선만의 방어를 맡은 박정덕중장은 릿지웨이를 항공륙전작전의 전문가로 파악하고있다. 그래서 릿지웨이는 자기의 전술적특기를 바로 상대방을 속여넘기는 미끼로 제공하리라 결심하였던것이다.

그 작전의 구상안은 다음과 같은것이였다.

그는 서천지역에서 지루하게 반복되는 위력정찰과 소규모적인 함선들의 빈번한 해상타격으로 하여 이미 북조선군의 경계의식은 소홀해졌다는 판단을 전제로 하였다.

먼저 금당계선에 대한 공습을 강화하고 관측기들을 출동시키며 그 지역에 대한 공중타격의 강도를 점차 높여 《거점장악기도》를 로출시킨다.

광량만과 잇닿은 금당계선에 일정한 규모의 항공륙전분견대를 투하하여 서조선만지역 북조선군의 기본화력을 유도한다.

이에 부응하여 북조선정부의 요직에 들어박힌 《리브》조직이 서천방어지대의 무력집단을 광량만 금당계선으로 급속히 이동시키도록 한다.

이때 서조선만으로 은밀히 이동한 기동분함대의 상륙선견대들이 조수를 리용하여 방어밀도가 약해진 서천해안에 대한 불의적인 기습상륙작전을 단행한다.

선견대의 교두보장악이후 점령한 지역의 강화와 함께 곧 상륙작전을 위해 새로 편성된 미해병대가 서천교두보에 상륙하여 비행대의 강력한 지원밑에 오석산을 넘어 평양에로의 공격성과를 급속히 확대한다.…

이러한 작전안을 고안하여 대구에 있는 미8군사령관 밴플리트에게 지시를 떨구었는데 오늘 그에 대한 답전이 왔던것이다.

릿지웨이는 눈을 쪼프렸다.

(이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시간이다! 시간! 상대가 수습할수 없도록!

이것은 북조선군에 전쟁사상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줄것이다.

나는 《메와 모루》라는 미증유의 작전으로도 타격하지 못했던 북조선의 심장부에 피할길 없는 검을 들이댈것이다.)

릿지웨이는 평소에 행동이 신중하고 침착한 참모형의 군인이였다.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에 《메와 모루》라는 요란스런 이름을 붙였다면 릿지웨이는 이번 작전에 어떤 명칭도 달지 않았다.

어찌보면 이것은 크지 않은 전투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자그마한 전투의 성공은 《메와 모루》를 릉가하는 위력한 결과를 낳을수 있다, 상대측의 심장에 치명적인 비수를 박을수 있는것이다.

작전에는 K와 H라는 두개의 문자만이 작전지역을 암시하는 대호로 표기되였는데 며칠간 그 신령스러운 문자들은 꿈속에서도 보였다.

그것은 불안과 희망이 엇섞인 마술적인 환각이였다.

불그스름하고 어딘가 음산한 색조를 띠고 나타나 문자 K가 KneVery(부정행위), Killing(살해, 도살), Keen(장송곡)등의 낱말들로 변하면서 심장을 옥죄이는가 하면 은백색의 형형한 빛을 두르고 나타난 문자 H의 커다란 모형이 곧 HOPe(희망), Honour(명예, 영광), 지어는 HOSanna!(호산나!ㅡ신에 대한 찬미ㅡ주)같은 휘황한 단어들로 변형되여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그는 문자들이 몰아오는 환상적인 몽상에 심신을 맡기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였다.

그의 의식은 천문학적액수의 돈이나 자기의 전재산을 내기에 건 도박군이 마지막 주패목을 뒤집기에 앞서 잠기게 되는 그런 짜릿하면서도 비장한 정신상태와 비슷하였다.

그는 평소 부하들에게 《카지노(도박)에 관심을 갖는자는 진정한 군인이 될수 없다.》고 늘 훈시해왔고 또 평생에 도박이란것을 경멸한 사람이였다. 그러나 그는 이 전쟁이 자기를 도박군으로 만들었으며 결국 군인의 명예때문에 이런 천재일우의 도박에 목줄을 걸고있다고 내심 생각하였다.

릿지웨이는 이날 누구도 들여놓지 않고 혼자서 방안을 계속 거닐며 이따금 무엇인가 알수 없는 말을 입속으로 중얼거리군 하였다.

간고하게 미극동군사령부로 취재하러 들어갔던 영국기자 웨닝톤이 이런 사실을 내탐하고 본사에 지급전보로 된 기사를 보냈다.

《…극동전선의 최고지휘권을 가지고있는 이 장령은 최면술에 걸린 사람처럼 어딘가를 멍청히 바라보는가 하면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방안을 왔다갔다하며 무엇인가 중얼거리고있었다. … 그것은 어딘가 이상하고도 음산한 무서운 광경이였다.》

미국방성관계자들은 극동군사령관의 직무를 수행하는 미륙군대장을 일종의 몽유병환자로 몰아붙인 기사에 대해서 격분을 표시하였다고 하지만 당자는 설사 이 불미스러운 기사를 읽었다 해도 반응이 없었을것이다. 그만큼 릿지웨이대장은 기습상륙작전에 온 심혼이 쏠려있었던것이다.

 

×

 

보위성일군과 함께 남새종자값 처리문제로 급히 신의주에 갔던 박정덕이 군단에 돌아왔을 때 지휘부는 례외로 흥성거리고있었다.

전에 없던 앙양된 분위기에서 의혹어린 시선을 보내는 상관에게 참모장이 그동안의 정황을 보고하였다. 그중에서 박정덕의 신경을 날카롭게 한것은 금당계선에 투하된 적항공륙전분견대의 소멸에 대한 전투보고였다.

…미 187항공륙전대 산하의 한개 특공대가 중낮이 지날무렵에 광량만ㅡ금당계선에 불시에 분산투하되였다. 착륙한 미군락하산병들은 처음엔 단독으로 행동하다가 점차 서렬을 짓고 황룡산성방향으로 접근하여 집결하였다. 대오를 편성한 적들은 다음 전투행동으로 넘어가려 하였다.

바로 그 순간 그들이 진출하려고 하는 오석산익측 산릉선을 차지하였던 아군포병련대와 고사총구분대까지 일제사격으로 넘어갔다. 미군륙전병들은 총질도 몇번 해보지 못하고 나가너부러졌다.

약 10분간 진행된 일제사격이 끝나고 보병대대가 수색을 하러 내려갔을 때 살아남은 적들은 불과 스무명남짓하였다. 광량만ㅡ금당계선에 투하되였던 적륙전대는 순식간에 괴멸되였다. 사실 이때 금당계선과 오석산기슭에 배치된 아군보병대대와 고사총구분대만으로도 투하된 적항공륙전분견대를 능히 소멸할수 있었다. 그런데다가 그날 오전에 증강배치된 석다산대대와 포병련대까지 합세하였으니 싸움은 땅짚고 헤염치기를 한셈이였다.

《그쪽에 무슨 포병련대가 있단 말이요?》

박정덕은 눈살을 찌프렸다.

《차국천군사위원의 긴급지시에 따라 오늘 아침 서천방어계선에 전개했던 제35포병련대와 석다산의 전무성대대가 긴급기동을 하였습니다.》

《?!…》

의혹의 빛에 흐려지던 박정덕의 눈은 차츰 예리해지다가 마침내 서슬찬 빛을 내뿜었다.

《금당계선엔 독립보병대대와 고사총구분대들이 방어하고있지 않소!》

《그렇습니다. 하지만 차국천군사위원은 광량만ㅡ금당계선에 대한 적들의 항공륙전작전을 막으라는 상급의 지시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자신이 직접 서천주둔 35포병련대와 석다산에 있던 전무성대대의 기동을 명령했습니다.》

《상급이란건 또 뭐요?》

《군사위원회 위원 리승엽동지로부터 직접 지시된…》

《…》

박정덕은 눈을 꽉 감고있었다. 그의 눈앞엔 서천의 방어계선, 흐릇한 조수가 철썩이며 기여오르는 한적한 바다가에서 아식보총을 메고 외로이 오가는 아군보병감시병의 모습과 함께 어둠속으로 전진해오는 적상륙정들의 괴물같은 형체들이 얼른거렸다.

(이건 대체 무슨 모험인가! 아니, 이것은 모험이 아니라 완전한 자살행위이다. 방어계선이 빈 틈에 적이 상륙을 시도했다면 어떻게 할셈이였는가?

리승엽과 차국천은 한개 대대의 보병만으로도 충분히 막을수 있는 륙전대소멸에 왜 그토록 엄청난 력량을 끌어갔는가? 적의 한개 락하산분견대를 소멸하는데 아군의 고사총구분대들과 두개 보병대대에 증강된 포병련대! 이것이야말로 모기를 보고 칼빼든격이 아닌가.

평양의 결사방위를 주장하는 리승엽의 내면에는 정말 무엇이 깔려있는가?)

작전가의 눈으로 볼 때 크지 않은 하나의 적항공륙전대소멸을 위해 방어무력을 이동시킨 행동은 서조선만의 방어체계를 해체시킨 파괴행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피가 서서히 끓어오르고 신경은 걷잡을수 없이 팽팽해졌다. 그러나 박정덕은 자기를 다잡고 랭철해졌다.

《그래 기동했던 부대들이 자기 방어계선으로 되돌아갔소?》

《…》

참모장은 대답이 없었다.

《돌아갔는가 말이요?》

《현재 그들은 금당계선에 그냥 전개되여있습니다.》

《그건 어째서?》

이번엔 정말 박정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리승엽동지가 적들이 평양을 공격하기 위한 전술적지탱점을 광량만ㅡ금당계선으로 잡고있기때문에 이동한 부대들이 재차 예견되는 항공륙전대와의 전투준비를 빈틈없이 해야 한다고 지시했답니다.

사실 지금 그 지역에 대한 적의 공습은 계속 진행되고있습니다. 차국천군사위원은 오늘래일중으로 적의 항공륙전대가 또 내릴것이라는 정보가 있다고 하면서 필요하다면 기본화력을 거기로 더 집중시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

주먹을 부르쥔 박정덕은 지도를 내려다보고있었다. 그의 시야로는 서조선만의 해안선과 평양으로 통하는 주요 도로들, 방어지역의 지형을 표시한 등고선들이며 각이한 부호들과 지명들이 흘러들었다.

(정말로 릿지웨이나 밴틀리트가 광량만ㅡ금당계선을 노리고있는가?! 전술적으로, 지형적으로 불리한 그 지역을?

적들은 왜 갱도에서 나온 아군포차들의 기동을 로상에서 미리 저지시키지 않았는가? 로출된 아군포들이 그 계선까지 무사히 간것이 우연의 도움이였는가?

항시적으로 공중을 장악하고있는 미공군의 감시와 정찰이 갱도에서 나와 대낮에 이동한 아군포병련대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단 말인가?

여기에 심상치 않은 문제점이 있다.

릿지웨이는 항공분견대의 공격을 우리의 방어력량을 분산유도하는데 미끼로 던진셈이다. 방어력량을 그곳으로 유도한 다음 상륙선견대를 들이밀어 서천지역에 전략적교두보를 형성하려는게 그의 기본목표가 아니겠는가. 다음 그는 그곳을 거점으로 오석산을 넘어 평양으로 곧장 진격해올것이다.)

이 순간 박정덕의 머리속엔 며칠전 최고사령부 정찰국에서 내려보낸 통보자료가 떠올랐다. 거기엔 전선에 전개한 적집단들의 무력상태, 배비변경자료와 함께 상륙작전을 목표로 한 미16군단이 새로 편성되여 이미 일본의 쟈바기지에서 상륙전훈련에 들어갔다는 통보도 있었다.

모든것이 명백해졌다. 박정덕은 불이 이는 눈으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서천이다! 이제 2시간후면 조수가 시작된다. 적의 상륙집단은 서조선만으로 기동하고있을것이다. 만조시간이면 상륙이 시작될것이다!

이미 이동한 부대들은 적의 폭격으로 하여 서천계선에로의 진출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시간도 없다. 시간이! 적들은 이걸 노렸다!…

예비대로 장악하고있는 자동포련대와 마전ㅡ평양도로상을 견제하는 고사총대대들, 평원, 숙천의 경계지대에 배비된 박격포중대들만이 단시간내에 기동하여 적을 제압할수 있는 화력수단들이다. 그들을 서천으로 시급히 이동시켜야 한다. 시간이 없다. 그러나…)

빠르게 진행되던 그의 사색은 여기서 약간 멈칫했다. 그의 눈앞엔 리승엽과 차국천의 얼굴이 얼른거렸던것이다.

(그들은 이제 또 내가 평양방어진을 약화시켰다고 말할것이다.)

한순간 고개를 숙였던 박정덕은 도전하듯 눈길을 쳐들어 맞은편 통나무벽체를 쏘아보았다. 그의 눈에서 불꽃이 튀여나왔다.

(나는 지금 평양을 방어하고있다. 군단의 주인은 이 박정덕이다. 나의 군단은 바로 이 서조선만과 평양의 방어를 책임지고있다!)

박정덕은 그 자리에서 자동포련대와 마전의 고사총대대, 숙천의 박격포구분대들을 서천방어지대로 긴급이동시킬것을 명령하였다. 그리고는 어깨우에 위장망을 걸치고 기관단총을 메였다.

박정덕은 군단참모장을 쏘아보았다.

《나의 위치는 11보병련대요.》

군단지휘부밖으로 나온 그는 푸릉거리며 발동을 거는 군용차에 뛰여올랐다.

《서천으로!》

군용차는 다급히 지휘부를 빠져나갔다.

 

×

 

저녁해가 기울무렵 서천해안의 간석지가 물에 완전히 잠겼다. 그 시각 해안선에서 멀지 않은 바다 한가운데 미태평양함대 극동기동분함대소속의 소형잠수함이 떠있었다. 공격지역에 먼저 도착한 잠수함은 뒤따르는 상륙정들에 정확한 상륙지점들을 지시해주고있었다.

얼마 안있어 수많은 상륙정들이 은밀히 안개속을 뚫고 해안을 향해 전진하였다. 거대한 전투함선들이 상륙정들의 후위를 따랐다.

불쑥 서천지구상공에서 미군 중폭격기대편대의 둔중한 발동기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아츠러운 소리를 내며 비행기들의 급강하가 시작되고 해안에서 폭음이 련이어 들려왔다.

미군의 공격준비타격은 이미 여러차의 위력정찰시에 확인된 인민군해안포진지들에 대한 기습으로부터 시작되였다.

《비ㅡ29》폭격기들은 아군해안방어지대들에 줄폭탄을 퍼부었다. 폭격은 인원들이 상륙을 개시하기 10분전까지 계속되였다. 그사이 미군화력지원함선들은 지정된 항로에 진입하여 닻을 내렸다.

미군폭격기들이 물러가자 서천지구를 마주한 바다우의 미군화력지원함선들이 해안을 향하여 포문을 열었다.

서조선만일대의 해안은 삽시에 폭음과 불길로 뒤덮였다. 함상포탄들이 감탕밭을 한벌 뒤집어버리고 가까운 야산들을 또다시 온통 벌둥지로 만들었다.

음산하고 처절한 해안의 정경이였다.

포격이 멎은 후 미군상륙정들은 죽음같은 침묵이 깃든 황량한 바다가에 미해병대원들을 내려놓았다. 그들은 물이 흐르는 물곬들을 에돌거나 혹은 그리 깊지 않은 웅뎅이의 물속을 헤가르며 안개속으로 곧추 전진하였다. 수륙량용차들도 유령처럼 꿈틀거리며 뭍으로 기여올랐다.

이 모든 정황에 대한 보고는 화력지휘함의 출력이 센 무선기를 통하여 미극동군사령부로 시시각각 날아갔다.

 

×

 

《전방해안은 고요하다. 상륙정들은 해안에 가닿았다. 현재 1, 2상륙파가 륙지에 전개하고있다. 북조선군의 저항은 좌절되였다. 그들의 방어선은 이미 〈무생명지대〉로 되였다…》

통신장교가 가져온 상륙작전지휘관의 전문을 읽은 릿지웨이는 온몸에 퍼져오는 짜릿한 환희를 느끼며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무생명지대〉!…》

이 말은 2차세계대전시기 프랑스에서 도이췰란드방어군을 격파할 때 미륙군작전가들중의 한사람인 브랫들리가 제기한 개념이였다.

브랫들리는 그때 미군의 공중우세와 전투장비의 량적우세를 리용하여 적방어전연의 제정된 지역을 《주단식폭격과 무차별포격》으로 《초토화》함으로써 그 지대를 이른바 《불과 무인(무생명)지대》로 만들어놓고 땅크와 보병의 협공으로 공격해들어가는 전투방식을 착안하였던것이다.

릿지웨이는 웨스트 포인트시절부터 그를 존경해왔다.

미군의 《5성원수》들중의 한사람인 넬슨 브랫들리는 《동방의 나뽈레옹》으로 자처하고 다니는 맥아더와는 달리 자기를 나타내지 않는 사색형의 침착한 군인이였는데 릿지웨이를 맥아더를 대신한 극동전선의 지휘관으로 추천한 사람도 바로 그였다.

조선전선에서의 거듭되는 실패를 놓고 국회청문회에서 맥아더와 트루맨의 싸움이 벌어졌을 때 작전실패의 원인을 규명하라는 요구를 받고 청문회에 출두한 브랫들리는 어느 편에도 기울지 않고 조선전쟁에 대한 작전가로서의 솔직한 견해를 기탄없이 제기함으로써 국회의 벌둥지같은 소란을 삽시에 잠재워놓았다.

《나는 미군의 작전을 총지휘하는 합동참모본부의 지휘관으로서 이 자리를 빌어 이 전쟁에 대한 나의 견해를 솔직히 말하려고 합니다.…

이 전쟁은 잘못 선택한 시간에 잘못 선택된 장소에서 잘못 고른 대상에 대하여 잘못 진행하고있는 전쟁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신앞에 이것을 고백하여야 합니다…》

그때 브랫들리의 발언은 누구의 비난도 받지 않았다. 그것은 진실이였기때문이다.

릿지웨이가 도꾜로 온 후 그에게 보낸 개인서신에서 브랫들리는 이렇게 썼다.

《나는 귀하가 미합중국앞에 운명적으로 선택된 이 고난의 전쟁에서, 비록 그것이 우리에게 영광을 약속하지 않은 수난의 싸움이라할지라도 미합중국군인의 본분과 신앞에 지닌 그리스도교도의 사명을 다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 어쨌든 이 전쟁에서 릿지웨이자신은 군인으로서 걸머진 의무와 사명을 다 해야 하는것이였다.

그는 국가정치에 관여하여 소란을 일으키고 퇴역한 맥아더나 자신이 직접 정치무대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려고 하는 아이젠하워같은 사람들과는 달리 자기가 평생 군인의 숙명만을 지니고있어야 할 사람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리고 릿지웨이는 자기가 지금 조직하는 이 자그마한 작전과 지난 시기 미군의 상륙작전들을 비교해볼수 있다면 이렇듯 불의적이고 기습적이며 또 이렇게 조밀하고 조화로운 화력지원과 맞물린 정교한 상륙전투는 없었다는 위안마저 가지고싶었다.

《노르망디상륙》이나 《인천상륙》이 전쟁사가들에게 많은 화제거리를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거기엔 얼마나 많은 미국인들의 피가 바쳐졌는가, 노르망디의 해안엔 근 12만 2,000을 헤아리는 련합군장병들의 시체가 널려지였다.

월미도와 인천은 또 어떠했고?!

이렇듯 미국인의 생명이 많이 요구된다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피의 대가가 너무 가혹한것이 아닌가.

비록 상륙작전의 규모는 작아도 혹시 하느님이 나에게 기회를 주어 성공의 《에이스》가 련이어 나오게 해주실런지 어찌 알랴.

그러나 이 릿지웨이라는 한 인간의 명예를 위해, 이름조차 명명되지 않은 이 작전을 위해 K계선에서 미끼로 던져졌다가 무주고혼이 된 미군항공륙전대원들은?…

이런 질문이 그의 가슴을 찔렀다. 그는 항상 평범한 장교시절의 추억이 깃들어있는 항공륙전대의 모든 장병들을 《옛 친구들》이라고 부르군 했던것이다.

《신의 제단에…》

실용주의자인 동시에 신에 대한 생각도 가끔 하군 하는 릿지웨이는 고개를 숙이고 이렇게 중얼거리고말았다.


×

 

갱도밖 전방감시소에서는 몇몇 참모성원들이 쌍안경을 눈에 대고 적의 함포탄이 작렬하는 서조선만일대해안을 긴장하게 감시하고있었지만 갱도안에서는 한창 열기가 오르고있었다. 돌격준비를 갖춘 보병들이 군단장과 리만호전사의 장기판을 둘러싸고 벅적거리고있었다.

리만호는 한쪽어깨에 비스듬히 세워놓은 아식보총의 차거운 총창에 빨갛게 달아오른 불을 대고 장기판을 뚫어지게 내려다보고있었다.

전사의 까만눈은 위험에 빠진 자기의 장기쪽들에 못박혀있었다. 수세에 몰린 그는 이마에 빠질빠질 내돋은 땀을 훔칠념도 못하고 장기쪽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비길 수를 노리고있었다. 옆에서 군인들이 아우성을 치면서 다급하게 훈수를 들고있다. 이따금 산야에 떨어진 적탄의 폭발진동이 갱도안에까지 미쳐오기도 했으나 청석암반속에 든든히 굴설된 이곳에서 거기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승자는 언제나 배포유한 법이다. 적들의 기도를 간파하고 급히 대책을 빈틈없이 세운 박정덕이 배짱가답게 때를 기다리면서 전사들과 장기를 두자고 하여 전투를 앞두고 이렇게 군단장과 전사간에 장기경기가 벌어졌던것이다. 그바람에 병사들은 오늘 싸움은 벌써 먹어논 떡이구나 하고 든든한 배심을 가지게 되였다.

아직 돌격개시순간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있었다.

박정덕은 수를 찾아내려고 눈을 연신 깜빡거리는 리만호를 바라보느라니 장군님께서 이 갱도입구에 찾아오셨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장군님께선 갱도가 완성되여 전사들의 안전에 대해서 마음을 놓게 되였다고 그리도 기뻐하시였다. 그리고 그이께서는 그날로 박정덕의 책벌을 해제시켜주시였다.

박정덕의 가슴속에선 뜨거운것이 흐르고있었다. 그것은 장기를 구경하는 전사들의 열기가 달아오를수록 그리고 그들의 심평좋은 롱담과 웃음소리가 높아질수록 점점 더 뜨거워지는것이였다.…

갑자기 전사들의 환성이 터지는 바람에 박정덕은 생각에서 깨여났다. 리만호는 이마전의 땀을 훔치며 덧이를 드러내고 싱글거리고있었다. 장기판을 내려다보니 형세가 역전되였다. 끝내 수를 찾아낸 리만호전사가 위기에서 벗어나 공세를 취했던것이다. 이젠 도리여 박정덕이 위험하게 되였다.

그러나 박정덕은 그 《위기》를 수습하지 못하고 손을 털며 일어났다. 반돌격에 나갈 시간이 되였다. 그는 리만호의 코를 꾹 눌러주었다.

《에끼, 내 너한테 오늘 또 양보한다.》

《양보라니요? 군단장동지, 이젠 더 빠질길이 없습니다.》

박정덕은 머리를 끄덕이며 그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럼 전투가 끝난 다음 다시 겨루자구.》

《좋습니다. 전 언제나 도전에 응할 준비가 되여있습니다.》

보병전사는 코등까지 푹 내리씌워진 철갑모를 제치고 턱끈을 다시 조이며 의기양양해서 군단장을 쳐다보았다.

수류탄을 허리에 차고 총창을 꽂은 보총과 만탄창된 기관단총을 든 보병들이 질서정연하게 갱도입구로 나가고있었다.



상륙한 적들을 소멸해버릴 덫은 완비되였다. 그것은 박정덕의 머리에서 나온 반돌격이나 방어전투가 아니라 철저한 소멸을 목표로 한 타격전이였다.

적들이 해안의 릉선을 차지하고 전투서렬을 한참 편성하고있을 때 별안간 어스름속에서 신호탄이 날아올랐다.

아군의 한개 련대의 자동포들과 다섯개 중대의 박격포들의 일제사격이 시작되였고 동시에 여기저기 야산릉선들에서 총구를 거의 수평으로 세운 고사기관총들이 울부짖었다.

이미 《무생명지대》로 판단하고 여유있게 대렬을 편성하던 적상륙선견대들은 난데없이 쏟아져내리는 지옥의 불비를 들쓰고 은페할곳 없는 개활지에서 무리로 쓰러졌다.

아군의 자동포들이 앞으로 전진하면서 방향을 잃고 우물거리는 적수륙량용차들을 파괴했다.

박격포탄들은 적서렬의 복판에서 무수히 작렬하였다.

안개가 낀 하늘을 베며 날아가는 고사기관총의 수십수백갈래의 예광탄불줄기들이 적병 서렬을 무자비하게 토막내였다.

일대는 삽시에 《죽음의 사각지대》로 화하였다.

아군보병들의 돌격이 시작되였다. 급히 달려온 전문섭사단장이 직접 돌격을 지휘했다. 아군포병들의 타격에 살아남은 적병들이 번뜩이며 밀려오는 총창의 파도를 피하여 물가로 다시 쫓겨들어갔다. 피할곳 없는 곳에 이른 적해상륙전대놈들은 돌아서서 저항을 시도하다가 폭풍같이 들이덮치는 총창의 세례에 파묻혀 감탕속에 처박히고말았다.

저들의 상륙정들의 진격을 엄호하느라 기슭에 거의 접근했던 미군화력지원함선들은 황황히 깊은 바다쪽으로 꽁무니를 뺐다.

그들은 채 소모하지 못했던 포탄들을 물이 찌기 시작한 간석지에 퍼부었는데 포탄이 날아와 떨어질 때마다 개펄에 처박힌 미국제 수륙량용땅크들이 오욕스러운 감탕을 들쓰군 했다.…

전투후의 이 정경이야말로 미군의 전술용어인 《무생명지대》를 완벽히 증명하고있었다. 폭격과 포격속에서 살아남은 바다새들이 길게 우짖으며 다시금 고요해진 저녁바다가를 지나 멀리 수평선쪽으로 날아갔다.

순식간에 진행된 전투가 끝나자 박정덕장령은 최고사령부에 전투결속정형을 보고한 후 말에 올라 광량만ㅡ금당방향으로 질풍같이 달렸다.

×

 

저녁어스름을 밟으며 내달린 밤색말은 벌써 거품을 물고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정을 보지 않고 힘껏 박차를 가했다.

박정덕장령은 광량만ㅡ금당계선의 해안방어구분대의 위수구역이 시작되는 마전고개를 넘어서자 급히 말머리를 돌려 황룡산성쪽으로 달렸다.

신덕샘물이 솟는 금당골 굽인돌이에서 얼핏 돌아보니 방금 폭탄구뎅이에 빠졌던 부관과 련락병이 탄 전투차가 숨가쁘게 뒤따라오고있다.

해안방어구분대 지휘부가까이에 들어서니 낮에 금당계선에 투하된 미군항공륙전분견대를 소멸한 병사들이 희열에 떠서 늦은 저녁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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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늦은 저녁식사준비에 한창 돌아치고있었다.

화염과 매캐한 내내가 서린 골짜기의 여기저기에서 폭소가 터져오르고 군용밥통을 달구는 불달린 삭정이 튀는 소리가 들려온다.

박정덕이 말을 달려 넓은 구릉지대 오른쪽릉선의 참호앞에서 내리자 제35포병련대장이 급히 뛰여왔다.

그는 약간 당황한 낯빛이였으나 깍듯이 거수경례를 붙였다.

《군단장동지, 명령받은대로 적항공륙전분견대들을 완전 제압하고 소멸하였습니다. 이번에 우리에게 배속된 석다산대대의 공로가 큽니다. 마전채석장으로 빠지려는 적들의 일부 력량을 포로까지 하였습니다.》

《…》

찌뿌둥해있던 박정덕은 속이 다시 끓어올랐으나 얼굴근육을 다소 풀며 말고삐를 잡고 기총소사를 맞아 아지가 부러진 사스레나무쪽으로 몇걸음 걸었다.

박정덕은 힘들게 돌아서서 자신을 자제했다.

《련대장동무가 오늘 적항공륙전대와의 전투를 지휘하느라… 수고했습니다. 그래 손실은 어느 정도요?》

박정덕은 아까 낮에 군단지휘부에서 결이 난김에 전화통에 대고 소리지른것이 얼핏 떠올라 어조가 부드러워졌다.

련대장은 그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듯 두손을 맞부비며 활기있게 보고했다.

《이곳 주둔 보병대대에서 경상자가 다섯명이고 전무성대대에서는 소대장 한 동무가 중상입니다. 우리 포병련대에서는 포차 한대가 불탔을뿐입니다.》

《음…》

《소대장동무를 병원으로 후송했습니다.》

《좋소. 저녁식사가 끝나면 전투원전원을 다 모이게 해주시오.》

《알았습니다.》

포병련대장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어둠속으로 정겅정겅 걸어갔다.

박정덕은 달빛에 군복매무시를 바로하며 차렷자세를 취하는 전무성대대장을 얼핏 띄여보았으나 그냥 외면한채 뒤늦게 부릉거리며 들어서는 자기의 부관과 련락병이 탄 전투차쪽으로 돌아섰다.

이때 참호쪽에서 두개의 군용밥통을 든 키가 쭉 빠진 심봉운이 싱글거리며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군단장동지. 참 아직 식사를 못하셨겠지요?》

심봉운은 군모가 어디 날아났는지 성근 앞머리가 골바람에 푸시하게 일어섰다.

박정덕은 푸접없이 느슨한 미소를 지었다.

《종군작가선생은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소?》

《군단장동지, 나야 최사직속이 아닙니까. 총정치국에서 지시가 있어 전무성동무네 대대를 취재나왔다가 싸움판에 말려들었습니다. 군단참모장동무와 통신결속소 김인정동무도 함께 왔는데 항공륙전대와 조우하여 맞불질하다가 적탄에 그만 군모까지 다 태워먹었습니다.》

심봉운은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손으로 슬쩍 슬어올렸다.

《시인한테 좋은 소재가 생겼겠군.》

박정덕은 그제야 속이 출출한것을 느끼며 참호곁의 잔디우에 퍼더앉았다. 긴장한 전투가 가져다 준 피로가 삽시에 몰려오는듯 싶다.

(그래! 전투는… 승리로 끝났다. 서천도 사수되였다… 그렇다면 이들은…)

심봉운은 큼직한 대문이를 드러내보이며 서글서글하게 웃었다.

《말도 마십시오, 군단장동지. 시가 다 뭡니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상부에서는 쩍하면 저를 불러댑니다. 얼마전에는 협주단소편대를 맡아가지고 최현동지네 군단까지 갔댔지요. 박세영, 황건, 김옥성이도 그렇고 석강하동무나 박한주동무들은 저 전선군단에 인내성있게 박혀 벌써 좋은 시들을 써내는데 나야 말갈데 소갈데 안가는데가 있나요. 하긴 그 덕에 통천에서 직승기나포작전의 증견자가 됐지요.

헛참, 리찬 문예총부위원장은 내가 전선종군작가조 대외책이라나요?》

《그 덕을 많이 보는셈이 아니요? 차를 타고다니니 유명한 〈자동차운전사의 노래〉도 태여나고…》

심봉운의 사설에 박정덕은 시무룩이 웃으며 한마디 했다.

그러나 생각은 딴데 가있었다.

(기실 제35포병련대나 전무성이네 대대는 명령대로 항공륙전분견대를 소멸했다. 명령대로… 내가 이들을 질책할수 있는가?… 하지만 순간을 지체했더라면, 내가 신의주에서 한시간만 꾸물거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번 했는가? 그걸 상상할수 있는가?… 그런대로 두 계선에서의 전투는 승리적으로 결속되였지만 왜 이리 마음이 무거운가…)

《허, 군단장동지가… 그러니 시를 좋아하시는군요.》

심봉운이 입을 쩝쩝 다시였다.

박정덕은 피씩 웃어버리고말았다. 다시 심봉운의 이야기에 끌려들어갔다.

《허, 난 뭐 목석인줄 아오?… 일전에 김람인동무의 서사시〈강철청년부대〉원고를 맨처음으로 본게 누군줄 압니까?

그 〈강철청년부대〉를 보며 가슴이 쩡해지고 심장이 뛰더란 말이요. 참 아까운 동지를 잃었습니다.》

박정덕의 생각은 또다시 다른 곬을 탔다.

(차국천군사위원… 도대체 리승엽이 뭐길래 이래라저래라 할수 있는가… 그의 지시로 움직였다? 이건 언어도단이라고… 장군님께도 보고드렸지만 지금은 제2전선때와도 또 다르다. 리승엽은 특수공작지대선에 의거하여 총참모부 일부 일군들의 동의를 얻었을것이다. 그래 그 정보가 서천을 노리는 적들의 미끼였다는것이 확실해진 지금 그들은 또 무엇이라고 구실을 댈것인가? 이걸 까밝혀야 한다.…)

《잊을수 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날 피묻은 원고가 든 배낭을 앞에 놓으시고 정말 가슴아파하셨습니다.

제 그때 백인준동무와 함께 총정치국에서 일을 보댔는데 그길로 전선에 달려나왔습니다.》

심봉운이 눈을 슴벅거리며 눈길을 내리깔았다.

《…》

심봉운은 김이 문문 나는 군용밥통을 열어제껴 박정덕앞에 밀어놓았다. 어둠속에서 김인정이 다가와 전투가방을 열고 겨울난 파며 유지에 싼 토장을 꺼내놓았다.

《인정동무도 함께 하기요.》

박정덕은 그제야 김인정을 알아보고 눈길을 들었다. 어쩐지 전번보다 얼굴이 한결 밝아보였다.

《전 통신결속소동무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많이 드십시오.》

참호쪽으로 총총히 걸어가는 김인정을 슬쩍 바라보며 심봉운이 큼직한 파를 입에 가져가더니 와삭와삭 소리를 냈다.

《저 인정동무와 전무성대대장동무말입니다.》

《?!…》

박정덕이 눈길을 돌렸다.

《교환분대장말을 듣고 개와 고양이사이인줄 알았더니 참, 생활이란 묘하더란 말입니다.

알고보니 둘이 전쟁전에는 죽자살자하던 사이가 아니였겠습니까?》

《그게 사실이요?…》

박정덕은 점점 피곤이 온몸에 실리는것을 느꼈다. 이대로 풀밭우에 누워 내처 자고싶었다. 주어진 정황과 사태가 주는 정신적중압감에서 훌 벗어나고싶었다.

박정덕은 손으로 눈을 부비였다.

심봉운이 셈평좋게 계속 중얼거린다.

《김인정동무가 웬일인지 작가인 저에게는 속을 터놓더군요. 저녀동무가 오빠와 어머니를 미제침략군놈들에게 잃은 다음부터 마음이 모질어진것은 사실입니다. 이건… 리해할수 있는 일입니다. 아마 준엄한 전쟁은 그로 하여금 전우들에 대해서, 생활에 대해서 다시한번 굴절하여 사색하게 만드는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눈가에 따뜻한 기운이 어리기 시작했습니다.》

심봉운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박정덕앞에 파를 밀어놓았다.

《굴절… 따뜻한 기운이라…》

박정덕은 묵묵히 군용밥통을 내려다보았다.

저녁식사가 끝나자 전투에 참가했던 전사들이 참호앞의 공지에 모였다. 전투의 열광이 지나간 뒤라 지휘관들과 전사들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여있었고 주위에서는 아직도 매캐한 화염냄새가 떠돌았다.

박정덕은 적항공륙전대를 소멸하는 전투에서의 성과를 지적해주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나와 함께 54사때부터 싸워온 동무들이 많은데 나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우리의 손실을 적게 내면서 적을 완전히 제압하는것 이것이 빨찌산식전법이고 승리의 비결이라고 말입니다.…

나는 오늘 전투에 참가한 전투원동무들에게 군단장의 권한으로 감사를 줍니다.》

《조국을 위하여 복무함!》

긍지로 눈을 빛내이는 전투원들이 씩씩하게 화답했다.

박정덕은 얼굴이 약간 굳어져가지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렬옆에서 허우대 큰 심봉운과 김인정이 정신없이 박수를 치는 모습도 눈에 안겨든다.

얼굴이 벌개진 전투원들이 기쁨에 들떠 환성을 지르는데 박정덕의 무거운 목소리가 골짜기를 쩌렁쩌렁 울렸다.

《제35포병련대장동무와 전무성대대장동무는 대오앞으로 나오시오.》

두 지휘관은 박정덕의 근엄한 눈빛에 질려 눈을 내리깔았다.

환희에 설레이던 대오가 삽시에 조용해지였다.

박정덕은 포병련대장을 쏘아보다가 전무성에게 물었다.

《전무성동무! 대대장으로서 동무의 첫째가는 임무가 뭐요?》

《?!》

《대답하시오.》

《명령에 따라… 대대를 지휘하는것입니다.》

전무성의 대답에 박정덕은 미간을 찌프렸다.

《틀렸소!…》

박정덕은 엄숙한 표정으로 대오앞에 한걸음 다가섰다.

그는 한순간 대오를 예리하게 쭉 훑어보았다.

군모가 벗겨져나간 심봉운이 얼떠름해서 입을 벌리고있었고 김인정은 박수를 치던 두손을 채 니리지 못한채 군복혁띠를 잡고있다.

《동무들은 서천방어임무를 줴버리고 일부 일군들이 지시한다고 하여 맹목적으로 움직여 예상치 않은 엄중한 후과를 초래할번했습니다. 방금 우리는 서천으로 기여든 적 해상분함대를 격파했소. 동무들이 전투의 희열에 떠서 식사준비를 할 때 적들은 방어화력이 약해진 서천으로 해상륙전대를 들이밀었단 말이요. 우리가 사전대책을 세우지 않았더라면 적은 오석산을 넘어 대동군도로를 따라 평양으로 기습해들어갈번 했단 말이요.…

그래 동무들, 평양을 방위한다는게 무엇입니까? 우리 인민의 경애하는 수령이신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를 보위하는게 아니겠소! 우리에게는 이보다 더 신성하고 영예로운 임무가 없습니다.》

《?!…》

전사들은 숨소리 하나없이 군단장의 열변을 듣고있었다. 숨가쁜 군용찦차의 발동소리가 들린다. 뒤늦게 서천을 거쳐 달려오는 차국천군사위원의 차였다.

박정덕은 긴 숨을 내쉬며 포병련대장과 전무성을 바라보았다.

두사람의 얼굴근육이 푸들푸들 떨렸다.

《나는 지휘관의 근본자세를 버리고 명령을 위반하여 혁명의 수뇌부방위에 큰 위험을 조성할번한 최갑동련대장과 전무성대대장에게 주의책벌을 줍니다.》

찦차에서 내린 차국천장령이 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굳어졌다.

그는 컴컴해진 얼굴로 박정덕을 바라보았다.

《군단장동무, 저 두 지휘관에겐 잘못이 없소.》

《…》

차국천은 박정덕의 예리한 눈길을 피하며 풀기없이 중얼거렸다.

《군단장동무, 부대들을 이동시킨건… 군사위원회의 위임을 받고 내려온 리승엽군사위원이요.

특수공작대의 통보에 따라 적항공륙전분견대의 진출을…

전투는 실지 진행되였소. 가렬한 …전투였소!》

《?…》

《제발 군단장동무, 대원들앞인데 진정해주오. 전투야 승리적으로 결속되지 않았소. 모두의… 체면을 봐서라도…》

박정덕의 눈에 근엄한 빛이 어리더니 굳게 다문 입새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기에 무슨 체면이 필요합니까. 그래 군사위원동무는 바로 그 일로 해서 서천계선에 어떤 위험이 생겼었는지 아직도 모르겠소? 최고사령부를 보위하는 길에서는 천번중 단 한번의 실수도, 자그마한 빈틈도 허용할수 없소. 이걸 잊는다면 인민군군인의 자격이 없소!…》

목소리는 나직하였지만 강산을 흔드는 포소리처럼 전사들의 귀가에, 가슴에 메아리쳤다.

박정덕은 홱 돌아서서 참호곁 불탄 사스레나무에 비끄러매놓은 밤빛말이 있는 곳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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