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전선의 아침 제1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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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전선중부 포천의 동북쪽 장암리에 자리잡고있는 미9군단사령부에 급히 들어선 정일권중장은 그만 얼굴을 찌프리고말았다. 루빈 젠킨스중장이 벌써 밴플리트대장과 함께 미7사의 전방지휘소로 떠났다는것이다.
《언제 떠났소?》
정일권은 군단장방에 앉아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고있는 콜대좌를 마뜩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아침에 출발했습니다.》
어정쩡해서 일어난 콜대좌는 배포유한 자세다.
정일권은 미간을 모았다.
《대좌, 당신은 군단장각하에게 우리 2군단의 급한 정황을 알려드렸소? 화력지원말이요. 당신이 전화를 받지 않았소.》
《중장님, 정확히 전달했습니다. 마침 그때 각하는 밴플리트대장과 조찬석상에 계셔서 나오는 즉시로 보고했습니다.》
콜대좌는 억울하다는듯 두팔을 벌려보인다.
정일권은 조찬소리에 성이 독같이 나서 대좌를 노려보다가 팩 돌아섰다.
(흥… 빌어먹을! 조찬이란 말이지… 영국공작인가? 이들이 진짜 전쟁형세를 변화시킨다는 큰 공세를 하긴 하는 잡도린가… 제기랄, 이건 강건너 불보기가 아닌가…)
기분이 잡쳐 방을 나서던 정일권은 손에 위스키병을 든 베키양과 부딪칠번 했다.
《아이, 중장님. 군단장으로 진급하시고도 수염을 뻑 쓸어요?》
《?!…》
《오늘 저녁 절 초대하세요. 녀자의 신선한 아름다움을 드리죠.》
밉다면 깨꼬한다고 정일권은 불쑥 그 녀자에 대해 혐오감을 느꼈다.
《아가씨, 난 지금 바쁘오. 실없는 소리할새가 없어!…》
《피ㅡ》
베키는 입을 삐쭉 내밀고 돌아서더니 큰 엉치를 흔들며 콜대좌가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정일권은 악에 받쳐 급히 미9군단지휘부를 빠져나와 유개를 벗긴 찦차에 올랐다.
그는 진성신중령을 시답지 않게 쏘아보았다.
《부관, 빨리 미7사 전방지휘소로 가자.》
《알았습니다, 중장님.》
아침부터 군단장의 뒤틀린 심사때문에 간이 콩알만 하여 안절부절 못하던 중령은 몸을 도사리고 운전사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정일권은 끝이 날카로운 별 3개가 박힌 철갑모를 눈두덩까지 푹 내려쓰고 《철의 삼각지대》쪽으로 난 행길을 바라보았다.
포탄을 만재한 군용화물차들이 꼬리를 물었다.
찦차는 그 틈새기에 끼여 겨우 움직이고있다.
첫순간의 울분과 열기가 식어버리자 어쩐지 꿈만 한 생각이 든다. 정일권은 입술을 감빨았다.
(제길, 그렇다면 될대로 되라.… 결국은 이 요란한 10월공세라는것도 그식이 장식이다.…
벌써 나흘이 지났지만 전반전선은 오히려 밀리우고있지 않는가. 그래도 나의 군단의 2사는 제인 러쎌 린접계선에서 돌바위릉선까지 진공했다. 만약 야포의 지원만 더 받았다면?…)
정일권은 다시 치솟는 격분을 누를길 없어 담배곽을 꺼내들었다. 그는 담배를 집으려다가 그냥 도로 군복주머니에 쓸어넣고말았다.
눈치빠르게 라이타를 쳐들었던 진성신중령의 손길도 굳어지고만다.
그 담배는 이틀전 정일권중장의 전투성과를 축하하여 리승만《대통령》이 준것이였다. 진도에서 새 공세소식을 얻어듣고 급히 날아온 리승만은 자못 감동되여 정일권의 가슴에 훈장까지 달아주며 등을 두드려댔다.
《내가 그래서 정장군을 아꼈고 중히 쓰려고 기다린거야.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클라크대장도 내게 전화를 걸어왔댔네. 정군이 미군의 수범이라는거야.
우리 국군이 이번에 본때를 보여주었어. 충무공의 뒤를 이어 화랑도정신을 떨쳤거든. 정전담판에 신경이 가있는 미군부의 허튼 열을 식혔단말이야.
이걸 피우라구. 워싱톤에서 아이젠하워씨가 특별히 보내온거야. 쳐칠씨도 이걸 애연한다더군.…》
물론 영어가 마구 뒤섞인 리승만의 말을 알아듣는건 정일권 혼자뿐이였다.
정일권은 허구픈 생각이 들었다. 2사의 1제대들이 중공군과 북조선군의 린접으로 쐐기쳐 들어가긴 했으나 그건 사실 전술적으로 볼 때 사면초가의 함정이 될수도 있는 곳이였다.
이것이 과연 전과로 될것인가?
미9군단의 작전지시를 받아야 하는 정일권으로서는 지금 호미난방격이 되였다.
《금화공세》를 시작한 10월 14일은 장엄하였다.
출발은 화려하였다.
미9군단의 16개의 포병대대와 비행대가 오성산 상감령일대에 포폭화력을 들씌우고 3.7㎢밖에 안되는 《제인 러쎌》지역에만도 수십만발의 류탄을 날렸다.
선제타격이 끝나자 금화 동북쪽 4km를 기본으로 상감령으로부터 평강 남쪽 상가산까지 20km전선에서 공격이 개시되였다.
그런데 젠킨스중장은 본래의 작전계획을 변경시켜 정일권군단의 왼쪽 익측에서 진격하는 웨인 스미스소장의 미군 7사전방에만 포사격을 집중시킬뿐 남조선군 2군단의 2사에 대해서는 맨주먹으로 해대라는 식이다. 몇달전까지 정일권이 애착을 가지고 직접 지휘한 사단이다. 17련대장 반석균대령과 37련대장 김재명대령은 팔에 붕대를 감은채 직접 정일권을 찾아와 불만을 토했다.
《군단장님, 이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우리 국군을 무엇으로 아는겁니까? 군단장님이 품들여 키운 우리 사단이 전멸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왜 지원사격이 중지되고 중땅크들은 미군 7사쪽으로만 다 몰켜갑니까?…》
반석균대령의 절규에 김재명도 눈을 번뜩였다.
《중장님, 우리 련대는 그와 반대의 피해를 보았습니다. 미군 7사와 린접한 련대는 간고한 혈전을 치르며 597.9고지에 붙었다가 미군포병대의 근접사격에 오히려 1제대가 얻어맞았습니다.
이거야 어디 억울해서 견디겠습니까. 우리가 애써 열어놓은 진격로를 따라 이제 저 스미스소장네가 597.9고지를 점령할것입니다.》
정일권이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수 있단 말인가?
그의 수중에는 단 한문의 예포도 없었던것이다.
그는 두 장교를 일으켜세우며 비분강개한 어조로 부르짖을수밖에 없었다.
《제군들, 진정하게. 이 전쟁에서 미군이야 손님격이 아닌가. 주객이 바뀔수는 없어. 자네들이야 내 심정을 너무나 잘 알지 않나?…》
《군단장님, 너무 분해서 그럽니다. 피끓는 저 끌끌한 우리 젊은 용사들이 속절없이 쓰러지니…》
반석균이 가슴을 치며 눈물을 뿌렸다.
정일권은 제딴으로 그들을 진정시키려 했다.
《친구들, 우리는 함께 이 전쟁의 피의 언덕들을 넘어왔지. 초전의 좌절과 당혹감도 같이 겪었고 저 압록강을 눈앞에 둔 영광스러운 진격도 했었지.
채병덕과 워커도 잃고…
군들에게 내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면 우리에게는 이 전선을 주동적으로 이끌만 한 군통수가 없어 요모양 요꼴인거야. 그런대로 악을 쓰며 국부를 따를수밖에…》
어쩌면 그것은 자기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김재명이 눈물을 흘리며 제 가슴을 탕탕 쳤다.
《중장님, 이 한국에 그렇게도 인걸이 없어요? 왜 저 양놈들에게 작전권을 넘겨줍니까? 우리 한국인은 허수아비로 압니까. 충무공의 후예들을… 복통이 터집니다.
북은 중공군이 들어왔대도 군최고사령부도 그렇고 정전담판 수석대표도 다 제 사람인데 최홍희군단장님 말을 들으니까 우리 대표란건 수석대표 해리슨에게 의견도 못내놓는답니다.》
쓰거운것이 가슴속에 치밀어오른다.
《오죽했으면 거기 말석에 앉았던 최덕신장성까지 침을 뱉고 돌아섰겠습니까?…》
《아, 어디에다 이 분통을 터쳐야 합니까?》
두 대령의 울부짖음앞에 정일권이 무슨 뾰족한 대답을 줄수 있단 말인가. 그역시 같은 중장이지만 젠킨스에게 소속되여 미군 사단장급대우도 못받고있는 주제에…
정일권은 이 전쟁에 림하는 미군장령들의 태도와 본심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다. 그들에게는 전쟁터도 하나의 주식시장이였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눈부신 립신양명의 길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는 급작스레 부유해질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언젠가 정일권이 미9군단 부사령관시절 젠킨스중장과 함께 포천시내를 지나다가 큰 느티나무밑에 둘러앉아 수업을 받는 어린 소녀들과 마주친 일이 있었다.
《중장, 저들이 왜 밖에서 공부하오?》
정일권은 안경낀 늙수그레한 로교원의 뒤 페허로 된 집터를 쓸쓸한 눈길로 일별하였다.
《폭격에 학교를 잃고 나앉았지요.》
《인민군의 폭격에?…》
《…》
정일권은 젠킨스앞에서 진실을 말할수가 없었다.
북조선군의 폭격기들은 군사대상물외에 폭탄을 떨구는 일이 없다. 그럴수밖에, 동족이 아닌가.
사실은 지난해 말 미군비행기들의 폭격에 학교가 없어졌다. 오폭이였는가? 아니면 전선가까이 있었기에 곁불로 얻어맞았는가?…
정일권이 침묵하자 루빈 젠킨스씨의 얼굴에 분격한 표정이 떠올랐다.
《이건 정말 통탄할 일이요. 저 어린 소녀들에게 폭탄을 퍼붓다니… 나의 딸 젠니가 생각나누만…》
젠킨스중장은 불시에 낯색을 흐리며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다음날부터 젠킨스는 짬만 있으면 포천주변의 울창한 수림을 누비며 여우사냥을 다녔다. 이 고장에는 붉은 밤빛이 나는 토종여우들이 많았다.
등이 붉누르스름하고 배와 목, 꼬리끝, 귀안쪽이 흰 이놈들은 꼬리가 길고 그 밑부분에는 역한 냄새를 내보내는 지독한 홍문샘이 있다.
젠킨스는 가끔 부사령관이였던 정일권과 베키양, 콜대좌까지 뒤에 달고 포천일대의 수림, 풀숲, 돌각담, 언덕진 곳들을 뒤져 여우를 잡았다.
털가죽이 매우 비싼 여우들을 많이 잡아 그것으로 돈을 마련하여 그 《인민군폭격》에 쫓겨난 소녀들에게 교사를 마련해준다는것이다.
그 말에 한때는 정일권이도 감동됐고 부친이 부산일대에서 실업계를 거머쥐고있는 부관 진성신을 젠킨스의 개인련락장교로 붙여주기도 했다. 미9군단사령부직속 장교들까지 떨쳐나서서 몇달어간에 근 700마리의 여우를 잡았다. 포천일대의 여우들은 된코에 걸려들었다. 후각이 발달된 이 여우들은 전선지대의 폭격과 탄우속에서도 단 한마리 그저 죽은 일이 없었건만…
그런데 진성신의 손을 거쳐 나간 여우털들이 교사가 되였는가?
젠킨스는 그저 말로써 정일권을 감동시켰을뿐이였다. 정일권은 밑천이 밭은 하층출신의 젠킨스를 저으기 동정하고있었던만큼 불만을 가질 생각도 없었다. 젠킨스같은 류의 장령이 그래 그런 조그마한 리익마저 없다면 이 살벌한 전선에 무엇때문에 온단 말인가. 밴플리트나 클라크는 어떤지 몰라도 미국인들에게는 정신적리념이라는것이 심히 부족한것만도 사실이다. 소녀들은 여전히 늙은 선생과 함께 단풍이 들기 시작한 느티나무아래서 수업을 계속하고있었다.…
포탄수송차들은 갈림길을 벗어나자 사라져버렸다.
정일권은 한숨을 내쉬였다.
(이번 10월공세의 성과도 막연한 희망뿐이다. 클라크대장이나 국부님께나 사활적일뿐. 저 젠킨스따위들이 몸을 사리며 겉으로만 악악하며 잔꾀를 부리는데… 이 정일권이는 꼼짝못하고 그들의 하수인, 북조선군 선동원들의 말대로 총알받이신세인가?…)
전방지휘소에서는 의외에도 밴플리트대장이 두팔을 벌려 껴안으며 정일권을 반겼다.
《정중장, 당신은 우리 전선의 몰트케요. 성공이야! 보라구, 당신네 2사가 저 릉선을 압박하여 전과를 내는 사이 스미스소장이 제인 러쎌 (597.9)고지를 함락했소.
<철의 삼각지대>에 큰 돌파구가 생겼단 말이요!》
《그게 사실입니까?》
정일권은 흥분하여 울적하던 기분이 싹 사라졌다.
《보시오. 중장, 난 당신에게 사의를 표하고싶소. 당신의 장병들은 정말 용감하오. 다른 한국군들과는 또 달라!》
정일권은 쌍안경으로 금화방어선의 오성산앞 삼각고지군을 바라보았다.
묘하게도 《철의 삼각지대》의 중심에 또 삼각고지군이라는게 있다. 력학적견지에서 볼 때 정삼각형이 가장 안전한데서 북조선군은 군사지형적으로 이 점을 리용했는지도 모른다.
597.9고지 정점에서 진지를 굴설하는 미군병사들과 까츄샤병들의 후줄근한 모습이 눈에 안겨들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중공군이 그렇게 쉽게 삼각고지군의 주요고지를 스미스소장에게 내주다니…)
《정중장, 난 클라크사령관에게 우리의 전과를 보고했소. 비록 며칠이라는 작전기일이 걸려 주요고지 하나를 쟁탈했지만 이번 10월공세에서 이건 의미가 깊어. <철의 삼각지대>에 돌파구를 열었단 말이요. 각하는 곧 전선을 돌아보겠다고 쾌재를 올렸소. 당신네 2군단에 대해서도 만족을 표시했소.》
《귀하,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정일권은 군화를 신은채로 가려운 발바닥을 긁는 느낌이였으나 례의를 지키지 않을수 없었다.
당직장교의 뒤를 따라 젠킨스중장이 전방지휘소밑의 엄페부로 들어가는것과 때를 같이하여 둔중한 포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미군의 포사격소리와는 전혀 다른 지심을 흔드는것 같은 장중한 포성이였다.
밴플리트는 흠칫 놀라 쌍안경을 쳐들었다.
《무슨 포소리요?》
정일권은 전방을 살펴보았다. 포성은 597.9고지의 북산린접쪽에서 들려온다. 불기둥과 흙먼지, 포연으로 하여 삼각고지군은 아예 재빛폭운속에 잠겨들고말았다. 정일권은 이를 악물었다. 그곳은 그가 그토록 불안하여 젠킨스에게 화력지원을 요청했던 그의 군단 2사 1제대가 오도가도 못하고있는 상감령앞 린접지대였던것이다. 행운의 신이 아니라 죽음의 검은 마녀가 들이덮쳤다.
《귀하, 이건 중공군의 포사격소리가 아닙니다.》
《그럼 이건 무슨 마른 벼락이요?》
밴플리트대장의 눈에 의아한 빛이 얼핏 지나갔다.
정일권의 눈가에도 불안이 어렸다.
《북조선군이 가지고있는 대구경포들입니다. 한개 사포군이 넘을것 같군요.》
쌍안경을 든 밴플리트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597.9고지에서는 아직 미군병사들이 방어진지를 채 굴설하지 못했소.》
《?!…》
정일권은 또다시 울분을 느꼈다. 한지나 다름없는 상감령앞의 들판에 전호도 없이 공격서렬로 엎디여있는 자기 병사들의 생사같은건 이 미군 로병의 안중에 전혀 없었던것이다.
젠킨스중장이 전신지를 들고 나타났다.
《대장각하, 대단히 유감스러운 불쾌한 소식입니다.》
《뭐요?》
밴플리트의 얼굴은 완전히 일그러져버렸다.
《미 16군단의 수백척 상륙정들이 저 통천앞바다에서 섬멸되였습니다. 북조선군 72군단의 사이껭장령에게… 지상공격과 배합한 상륙작전은 의미를 상실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일권이 아연해진 눈길을 돌렸다.
밴플리트는 덤덤히 말이 없다가 다시 쌍안경을 들었다.
《젠킨스, 그건 문제가 아니요. 지금은… 우리 8군의 보존이야. 당신은 저 죽음의 포소리가 들리지 않소?…》
미16군단역시 밴플리트의 안중에는 없었다. 제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하지 않는가?
갑자기 엄페부쪽에서 가벼운 소요가 일더니 사색이 된 미8군 부참모장이 급히 달려나왔다. 허우대가 큰 소장은 잔뜩 목을 움츠리고 젠킨스를 얼핏 스쳐보고나서 밴플리트대장에게로 곧추 다가갔다.
《대장각하, 전선동부의 인민군주력부대들도 도처에서 반공격을 개시했습니다. 통보에 의하면 북조선군이 전선동부에 무력을 집중하는것으로 보아 우리의 전략적지탱점들을 노리는게 분명하다고 합니다.》
《?!…》
밴플리트는 팔짱을 낀채 눈을 지그시 감았다.
젠킨스가 두사람을 치여보며 화이바모를 벗어제꼈다.
《각하, 전선익측을 강화하지 못하면 우리 지배적고지들을 다 잃게 됩니다. 이 포천지역이 중공군과 인민군의 짬새기에 끼우게 되고 대구경포들의 화력권안에 들게 됩니다.
<철의 삼각지대>돌파는 오히려 함정이 되고 전선에 반대로 적의 돌파구가 열릴수 있습니다. 그리고…》
《설명은 더 필요없소.… 익측의 방어선은 견고하지 않소?》
밴플리트가 침울한 어조로 물었다.
《그건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인민군 73, 71군단이 력량을 집중하면… 우린 이 <철의 삼각지대>에 모든 력량을 집중하지 않았습니까.》
《알겠소.… 젠킨스, 부득불 미군 2개 사단을 빨리 동쪽으로 돌려야 할것 같소.…》
정일권은 한숨을 내쉬였다. 해가 지기 시작했다. 폭연이 흐르는 회백색하늘로 검은 태양이 사라져가고있다.
정일권은 눈을 크게 떴다.
지는 해는 분명 검게 보였다.
그것은 을씨년스러웠다. 정일권은 몸서리를 치였다.
×
화광이 치솟으면서 전선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지원군포병과 함께 인민군의 위력한 련포군이 상감령앞의 597.9고지에 강력한 타격을 가한 뒤 지원군전투원들은 5호, 6호 진지들을 단숨에 탈환하고 이어 미제침략군의 2참호로 된 3호진지로 공격하였다. 련대장의 명령으로 대대통신분대에 련락병임무를 넘겨준 황계광은 제6중대에 속하여 이 전투들에 참가하였다.
지난 9월말 오성산앞 금곡리계선에 대한 습격전투때 6중대에 긴급련락을 갔던 황계광은 위급한 전투도중 익측으로 달려드는 적들에게 수류탄을 던져 중대의 전투승리에 기여하였다.
《역시 우리 사천성사람들은 용맹하단 말이야. 계광이 고향이 어디라고 했지?》
한때 진의사령원밑에서 련락병으로 싸운 텁석부리중대장은 전투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황계광의 어깨를 두드렸다.
《중강현 9구입니다.》
황계광이 씩씩하게 대답하자 중대장의 입이 쭉 째졌다.
《우리 옆고장이구만. 차가 잘되는 곳이야. 록차는 우리 사천성것이 제일이야. 건륭황제도 늘 사천성록차를 찾았고 주은래총리도 좋아했지. 진의장군은 전리품으로 우리 사천성록차만 생기면 차곡차곡 건사했다가 보내주군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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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중대장동지, 이제 승리하고 고향에 가면 우리 어머니가 손수 따서 말린 록차잎을 한광주리 가지고 찾아가겠습니다.》
황계광은 중대장의 기분이 떴을 때 전투구분대에 받아달라는 청을 하는것이 좋으리라고 판단하였다.
《중대장동지, 저를 중대의 전투원으로 받아주십시오.》
《언제 참전했더라?》
《1951년 3월 12일입니다.》
《그래? 어, 이젠 고참이구만. 좋아, 내 제기하지.》
황계광은 기쁨으로 하여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 우리 고장 록차가 날 도와주는데?…)
하지만 사실은 록차가 아니라 미제침략군 일곱명을 요정낸 그 수류탄덕분이였다.…
아군포부대의 선제타격에 참호들이 파헤쳐졌지만 적들은 중무기들에 의거하여 완강하게 저항하였다.
아군의 공격은 일시 좌절되였다. 중대장의 명령으로 황계광이 4호진지를 지나 상감령기슭의 련대부로 파견되였다. 한식경이 지나 황계광은 등에 커다란 배낭을 지고 되돌아왔다.
《어떻게 됐소?》
련락병태생의 텁석부리중대장이 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거리상 너무 빨리 돌아온것이 미타했던 모양이다.
황계광은 배낭을 벗으며 이마의 땀을 뻑 훔쳤다.
《련대장동지를 만났습니다. 마침 련대부에는 지원군사령부 양득지부사령원동지와 인민군전선사령부 김봉률포병사령관동지가 와있었습니다. 지금 몇시입니까?》
긴장해진 중대장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6시 30분이요.》
《중대장동지, 이제 30분후면 인민군포병동지들이 저 3호진지에 포사격을 들이댑니다. 련대장동지는 감시병만 내놓고 예비갱도를 차지하고 30분동안 음페했다가 단숨에 공격하여 이 597.9고지를 타고앉아야 한다고 명령했습니다. 다른 중대들에도 련락병이 파견되였습니다.》
6중대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김봉률포병사령관까지 왔단 말이지. 이젠 됐소.
우리 포병이 제일이야. 이제는 저놈의 고지가 다 먹어놓은 당상이야.》
《그리구…》
황계광이 배낭을 앞으로 내밀자 지원군병사들의 호기심어린 눈길들이 쏠렸다.
《그건 뭐요?》
황계광의 눈이 따뜻해졌다.
《중대장동지, 이건 김일성장군께서 우리 지원군전투원들에게 보내오신 막물오이와 가을병배라는겁니다. 어제 사단에 자동차로 실어왔는데 매 중대에 한 배낭씩 차례졌습니다.》
《뭐라구? 김일성장군께서?!…》
중대장이 뜻밖의 사실에 눈을 크게 뜨고 배낭을 내려다본다.
《양득지부사령원동지가 감격에 젖어 이야기했습니다.
김일성장군께서는 지원군병사들이 오성산을 지켜싸우는데 신선한 남새와 과일이 그리울거라고 하시면서 몸소 만경대고향집 할아버님네가 가꾸신 이걸…》
황계광은 목이 메여 더 말을 잇지 못했다.
6중대장은 화염에 끄슬린 군복앞섶을 바로잡고 대원들에게 막물오이와 병배를 골고루 나눠주었다.
《여보, 이게 말하자면 어주나 같애. 옛날말루 하면 태상황제께서 임자들에게 어사하시는게야.》
유식한 중대장의 말을 들으며 황계광도 생각에 잠겼다.
(김일성장군께서는 어쩌면 그렇게 우리 전사들의 마음을 다 아실가? 벌써 한주일째 적 폭격이 심해 대원들은 남새 한잎 입에 못대고 건빵과 맹물로 지내오고있었지. 오죽했으면 저 초등량전사가 이름모를 풀을 한줌 뜯어먹고 배탈이 다 났겠는가?!…)
중대장이 신선한 막물오이를 어루쓸며 감개무량해서 대원들을 둘러보았다.
《동무들, 해남도전투때 말이요. 난 인민해방군 제4야전군 40군에서 상륙전투에 참가했는데 우리 군에 김장군께서 보내주신 인민군포병부대가 배속되였댔소.
그들은 참대를 베여 돛배 12척을 만들어 비행기들을 격추하고 1개사단의 상륙을 엄호하였고 적의 방어시설들을 요정냈거든. 그 배들에는 말이요. 산포와 <38식> 야포 2문씩에다 고사기관총 2정을 설치했댔소. 한번은 해상에서 미군함선 4척과 맞다들었소. 적함들은 원시인들이 쓰는 돛배같은걸로 얕보면서 달려들었지. 조선포병들은 재빨리 전개하여 집중사격을 퍼부어 적함 1척을 수장해버렸소.
아마 이건 세계해전사에 없는 기적일거요. 해남도전투가 끝난 후 조선인민군 포병 조찬수에게 특등공신칭호를 수여했고 귀국할 땐 모주석이 친히 그들모두에게 친필이 새겨진 수첩을 기념으로 주고 지휘성원들에겐 권총을 선물로 보내주었소.
이게 바로 신출귀몰하는 빨찌산들, 김일성장군님의 군대란 말이요.》
황계광은 격정어린 눈길로 중대장을 올려다보았다.
(김일성장군님, 그분은 태양과 같으신분이야. 그때도 오늘도 우리는 김장군께서 키우신 인민군대의 위력한 포병의 지원을 받고있구나.…)
이윽고 인민군포병부대의 강력한 포병화력지원타격이 끝나자 지원군구분대들은 일제히 교통호들에서 달려나와 적의 3호진지를 일격에 점령하였다.
10월 19일밤, 597.9고지를 탈환하기 위한 4차공격이 개시되였다. 전투는 가렬하게 번져갔다. 구분대들의 진격로에 또다시 위험이 조성되였다. 적들이 든든한 삼각형모양의 화점군을 형성해놓고 공격하는 대오의 앞길을 차단한것이다.
작은 화점 셋에 둘러싸인 기본화점에서 세찬 불줄기가 쏟아져나왔다. 이제 전진을 멈춘다면 이미 차지한 4, 5, 6호 진지도 위험에 빠질수 있었다.
전투를 지휘하다 부상당한 6중대장을 대리하게 된 대대참모장이 릉선밑에 산개한 대원들을 둘러보았다.
《저 화점들을 수류탄으로 까부셔야겠소!》
참모장이 누구에게라없이 소리질렀다.
황계광은 보총을 틀어쥔채 뒤를 돌아보았다.
탐조등과 예광탄불빛에 근엄한 표정을 지은 참모장의 적동색얼굴이 확 드러났다.
황계광은 조심스럽게 참모장에게로 기여갔다.
《참모장동지, 저 화점을 제가 까겠습니다.》
참모장은 피발선 눈을 부릅떴다.
《아니, 련락병 황계광이 아닌가?… 응, 그래 자신있소?》
황계광은 빙그레 웃었다.
《저야 중국인민지원군 병사가 아닙니까? 엄호로 두동무만 붙여주십시오.》
초등량, 오산량대원들이 자진하여 따라나섰다.
세 지원군병사들은 수류탄을 안고 릉선을 에돌아 지칠줄 모르고 불을 토하는 화점들앞으로 은밀히 접근해갔다.
《초동무, 이렇게 하자구. 내가 먼저 앞선의 화점을 까부실테니 그 틈에 큰 화점쪽으로 접근하오. 그리고 오산량동무는 여기서 엄호하시오.》
《알겠소. 덤비지 말구 조심하우.》
초등량이 황계광의 손을 뜨겁게 잡았다. 황계광은 싱긋 웃어보이고 작은 화점쪽으로 포복전진해갔다.
황계광은 탄알이 비발치는 속을 뚫고 한치한치 수류탄 투척거리까지 접근했다.
(세상에 악귀같은 미제침략자들!… 련대정치위원동지는 그 맘고운 운전사 왕아바이가 미군첩자놈들에게 희생되였다고 했지… 아바인 전선사령부의 작전문건을 지켜냈다지… 아바이의 피의 복수를 받아낼테다!…)
화점이 눈앞에 안겨왔다. 황계광은 잽싸게 몸을 일으켜 적화점에 수류탄을 던졌다. 한찰나가 지나 적화점안에서 삼단같은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명중이다!》
뒤에서 오산량의 웨침소리가 들렸다. 천성이 가볍고 락천적인 친구다.
황계광은 뒤를 돌아보며 히죽이 웃었다.
작은 화점 두개를 까부셨을 때 수류탄이 떨어졌다.
큰 화점의 화력이 이제는 그들에게로 집중된다.
세 전우의 가슴은 빠질빠질 타들었다.
시간이 없었다. 이제 날이 밝으면 모든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이미 차지한 진지들도 방어하기 어렵게 된다. 문제는 저 가증스러운 화점들을 까부셔야 구분대의 진격로가 열릴것이 아닌가.
황계광의 눈에서 불이 펄펄 일었다.
《황동무, 내 중대에 내려가 수류탄을 가져오겠소.》
성급한 오산량이 갈린 목소리로 말했다.
피발선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황계광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젠 시간이 늦었소. 초동무는 놈들을 감시하오. 오동무, 날 따르오!》
황계광은 순간도 지체없이 오산량과 함께 인민군의 포탄세례를 받고 황천객이 된 미제침략군시체들을 뒤져 수류탄을 몇개 수집하였다.
세번째 화점을 깔 때 수류탄을 던지던 오산량이 장렬하게 희생되고 초등량은 중상을 입었다.
황계광도 어깨에 부상을 입었다. 앞이 빤해지자 기본화점의 적탄이 그에게로 집중되였던것이다.
황계광은 입술을 악물고 기본화점을 향하여 불사신처럼 기여갔다.
(전우들의 원한을 씻으러… 나가자…)
10월 20일 날이 힘들게 밝으려 하고있었다.
이제는 릉선우의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적중기화점의 형체가 점점 또렷이 눈에 안겨온다.
그 검푸른 하늘에서 사위여가는 마지막별 몇개가 희미한 빛을 뿌리고있다.
황계광은 탐조등불빛이 지나가는 순간을 노려 몸을 일으키며 수류탄을 던졌다. 폭음이 일어났다. 황계광은 다시 적탄이 팔을 뚫고지나갔다는것을 느끼며 릉선의 바닥에 넘어져 귀를 기울였다. 이제 돌격에로 진입하는 전우들의 만세소리가 들릴것이다. 한순간 고요가 깃든것 같다. 얼마나 긴 시간인가.
황계광이 (성공이구나!) 하며 몸을 일으키는 순간 전투원들의 함성대신 적화점에서 중기관총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황계광은 얼굴을 번쩍 들었다. 앞에서는 적화점이 불을 뿜고있었다. 뒤에는 돌격명령을 기다리는 전우들이 있었다. 사랑하는 중국대륙과 모주석과 어머니가 서계셨다.
한초한초… 시간이 흘러갔다.
황계광의 눈앞에는 어쩐 일인지 불쑥 고향에서 토지개혁을 할 때의 일이 떠올랐다.
해방군병사출신인 작은삼촌의 지휘밑에 마을 자위대원들이 중강현의 대지주인 호가의 집을 들이칠 때였다. 열댓놈의 호지주집 가병들이 높은 담장에 의지하여 기병총을 탕탕 쏘아대며 발악했다.
황계광의 눈에서는 불이 펄펄 일었다. 호가의 손에 희생된 마을사람들과 그놈의 소작살이로 한생을 고생하다 한많은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의 모습도 떠올랐다.
황계광은 작은삼촌이 어쩔새없이 몸을 일으켜 담장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수류탄 2개를 련속 담장너머로 날려보냈다. 폭음이 울리는것과 동시에 그는 몸을 날려 담장에 올라섰다. 총소리가 콩볶듯 하며 가슴과 옆구리에 센 타격이 가해졌다.
그는 정신을 잃은채 담장에서 떨어졌다. … 전투가 끝난 후 황계광은 작은삼촌의 무릎에서 눈을 떴다.
《삼촌… 우리가 이겼어요?》
《응, 저놈들을 다 결박해놨다. 토지문서도 찾아내고…》
황계광은 몸을 일으키려 했다. 옆구리가 결렸다.
《계광아, 넌 어머니에게 코잡고 절해야겠다. 어머니가 한푼두푼 모아 지어준 명주솜조끼덕에 살았어. 총알이 거기 걸려 옆구리를 할퀴웠을뿐이야…》
작은삼촌이 비죽이 웃었다. 황계광의 눈가에 미소가 피여올랐다.…
(어머니, 이 아들은 중국사람답게… 리수복영웅처럼… 모주석과 김장군을 위하여 나아갑니다.…)
황계광은 말없이 몸을 일으켜 달음쳐나가 불뿜는 적의 화구를 피끓는 가슴으로 막았다.
이윽고 공격의 함성이 597.9고지와 온 상감령에 세차게 메아리쳤다.
×
조순군은 소양강의 소란스러운 물소리에 문득 의식을 차렸다. 머리가 뗑하고 정신이 들지 않는게 여간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런속에도 오른손은 기관단총의 부혁을 으스러지게 틀어쥐고있다.
(내가 어떻게 된 일인가. 산건 명백하구… 지금이 어느때야?… 밤이야, 낮이야?…)
움쭉 몸을 일으키려다가 《아이구우.》하고 신음소리를 내지르며 오히려 땅에 코를 박은채 길게 뻗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오른쪽장딴지와 왼쪽허벅지가 둔한 식칼로 생살을 도려내듯 예리하게 아파났다.
그는 다시 신음소리를 내지르다가 피끗 정신이 들어 안깐힘을 쓰며 허리를 폈다. 허리춤에서 개인붕대를 꺼내 구멍이 펑 뚫리고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부상자리들을 힘들게 처맸다. 적기관총에 아래도리를 맞은것이다. 비로소 숨이 나가는것과 함께 어제밤 습격조로 떠나온 전후사연이 쪼각쪼각 머리속에서 이어진다.
(흠… 그렇지. 대대장동지와 함께 전무성정찰군관이 우리에게 임무를 주었어. 놈들의 《금화공세》를 짓부셔버리는데서 큰 의의가 있는, 류경수군단장동지까지 관심하는 습격전투랬어. 미제침략군이 저 오성산일대에 력량을 집중하지 못하게 여기저기서 족쳐대야 한다고… 그래 우린 소양강기슭을 따라 전진하면서 중땅크집결처를 확인했어. 조장동지가… 응, 땅크집결처를 습격하고 우린 적연유창으로 접근하다가 추적을 받았지… 부상당했지만 난 습격조를 엄호하다가… 총탄이 떨어진 후… 그래, 미군순찰병놈과 격투하던 중 함께 이 벼랑으로 떨어진것 같아…)
조순근은 머리를 비틀어 어둠속에 잠긴 강변을 살펴보았다. 저만치 너럭바위곁에 미군침략군병정이 코를 처박고 뻗어있다.
함께 굴러떨어졌어도 이 땅이 제 아들은 알아본것이다. 네놈은 죽고 나는 살았어. 강변을 올려다보았다. 천길벼랑은 아니였으나 아무리 억척장신이라고 해도 떨어지면 목대나 사등뼈가 으깨질 높이다. 조순근은 부지중 아픔을 참으며 어설픈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래! 땅아, 넌 이 농민출신의 조순근이를 배척하지 못해, 암 그렇구말구… 나야 우리 백성들의 하늘님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 친히 아시는 전사거든. 글쎄 우리의 장군님께서 아버지, 어머니를 찾아주시고 베잠뱅이들의 소박한 편지까지 전해주셨거든. 그 편지엔… 얌전때기 복순이의 소식도 들어있었어. 약혼만 했는데도 부모님들을 모시고있거든. 호박처럼 둥글둥글하지만 마음은 비단 한가지야…)
조순근은 자기가 까무라친새 몸에서 피가 많이 흘렀다는것을 깨달았다. 머리속에 허깨비가 들어앉은듯 어지럽고 이 생각, 저 생각이 겹쳐지고 때로는 헤뜨는것처럼 정신이 가물거리기도 하는것이였다.
(내가, 인민군군인이… 륙군하사가 이게 무슨 꼴이람. 어서 날이 밝기 전에 부대를 찾아가야지…)
조순근은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꿈쩍도 할수 없었다.
이미 하반신은 자기것이 아니였다.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꺼질듯 한숨을 내쉬고나서 소양강쪽으로 힘들게 기여갔다. 무수한 바늘이 온몸을 마구 찌르는것 같았으나 끝내 가닿았다.
소양강물에 얼굴을 박고 타는 목을 추기려다가 간신히 참고 물을 도로 뱉았다. 피를 많이 흘린 다음 물을 마시면 그건 끝장이다.
조순근은 신기철분대장에게서 그런 리치를 배웠다.
(배워둬서 나쁠건 없어. 저 박원진이는 영어를 배워두지 않았다고 후회했지. 좋은 친구였는데… 참, 대대에 와있는 전무성군관동진… 다음번엔 우편물을 찾으러 회양까지 나를 보내자고 대대장동지에게 말했었지. 아마 그 녀군관때문일수도 있어. 그런데 그날 후방물자타러 갔을 때 보니 정찰군관동진 그 녀성군관앞에서 너무 꼼짝못해.
《무성동무, 난 그런걸 좋아하지 않아요.》
《알겠소. 다음번엔 시정하지.》
《그리구 왜 목달개는 그 모양이예요. 동문… 전사들의 거울이 아닌가요.》
《그것도 고치겠소.》
정말 《물렁팥죽》 군관동지야, 허허허…
도대체 그 군관동진 뼈대가 있는분인지 모를 지경이였어. 아무리 가시내가 곱기로서니 사내의 체면이야 잃지 말아야지…)
조순근은 자기앞에서 만약 호박꽃같은 복순이가 치마바람을 일군다면 하고 상상해보았다.
그는 오만상을 찡그리고 저도 모르게 《어험!》하고 위엄있게 헛기침을 했다.
어딘가 벼랑밑 어둠에 묻힌 으슥한 수풀속에서 인기척같은것이 났다.
조순근은 정신이 번쩍 들어 기관단총을 움켜쥐였다.
《누구야. 손들엇! 움직이면 쏜다!》
조순근은 이 순간 자기가 빈 총을 들고있다는것을 잊었다.
어제밤의 격투도 탄환이 떨어져 시작된것이였다.
가시덤불쪽이 대뜸 잠잠해졌다.
짐승인가? 착각인가? 너무 피를 흘린것 같아.
《난 인민군이다. 대답하라.…》
그러자 수풀쪽이 다시 부스럭거리더니 어둠속에서 막대기같은걸 목에 건 두억시니가 향방없이 기여나온다.
《누구야?》
《성님, 순근성님 아니시유?…》
조순근은 깜짝 놀라 뒤로 몸을 세웠다.
《누, 누구야?…》
《옳군요. 내 김덕만이예유…》
《뭐? 덕만이?!…》
조순근은 희미한 강물빛에 벌금벌금 손더듬하며 기여오는 형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철갑모밑으로 얼굴에 붕대를 칭칭 돌려감고 온통 피칠갑을 하여 도깨비화상처럼 보이는 김덕만이 발치까지 더듬어오자 그제야 조순근은 그를 알아보고 이마살을 찌프렸다.
《덕만아, 네가 어떻게 된거니?》
김덕만이 쭈그리고 앉아 한숨을 푹 내쉰다.
《어제 성님들이 연유창을 때리는 전투때 상했어유.
…854.1고지를 떼운 다음 난 사실 처벌중대에 가서 별고생을 다 해유…》
《야, 덕만아, 그러게 전번에 내가 말했지. 그 총부리를 어디루 돌리는거야. 왜 그 죽일놈의 미군놈들을 따라다니는가 말이야!》
《성님…》
《이 청맹과니야. 너 이 전쟁이 무슨 전쟁인줄 알아? 조선사람과 미국놈과의 싸움이야. 네가 지금 어느편에 붙어다니니? 부끄럽지도 않는가 말이야.》
《성님…》
조순근은 몸을 일으키려다가 끙 신음소리를 내며 다시 주저앉았다.
《성님, 어디 다쳤어유?》
《그래 다쳤다. 미국놈들과 싸우다 다릴 상했다.》
조순근이 또 툭 쏘자 김덕만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쉰다.
《그래, 덕만아. 이젠 어쩔테야?》
《성님…》
《어서 대답해라!》
조순근의 불같은 호령질에 김덕만이 엉금엉금 기여와 그의 상한 다리를 잡았다.
《성님, 난… 그때부터 성님생각만 했어요.… 성님말대로 하려구요. 성님이야 이전에두 우리 마을 젊은것들을 휘동하지 않았수…》
조순근은 그의 손을 당겨잡았다.
《덕만아, 우리에겐 한길밖에 없어.
김일성장군님을 따라나서야 한다.》
《그러니 성님, 나같은것두 정말 인민군대가 될수 있나요?》
조순근은 김덕만의 북두갈구리같은 험한 손을 쓰다듬었다.
《덕만아, 우린 인민의 군대야. 미국놈들과 결판낼 생각이 있는 조선사람은 다 받아줘…》
조순근은 이 순간 리만희대대장이 정치상학시간에 한 강의들이 조리있게 떠오르지 않는것이 안타까와 말을 더듬거렸다.
《성님… 나두 사내대장부로서 인민군대성님을 따라나서겠어요.》
《응, 잘 결심했다! 이제야 덕만이가 제길을 찾았어.》
《그때… 샘터에서 성님을 만난 다음부터 결심했댔어요. 미국놈들을 그저… 우리 대대에두 나같이 생각하는 사병들이 수두룩해유.》
조순근은 김덕만의 얼굴에 칭칭 동인 붕대를 조심스레 만져보았다.
《이제 우리 야전병원에 가면 능한 군의동지들이 널 인차 고쳐줘.》
《정말이예유?》
《날이 밝는구나. 이젠 떠나야겠다. 이 소양강줄기를 따라 오르면 전선을 넘을수 있어…》
김덕만이 등을 돌려댔다.
《성님, 그럼 내게 업히시우. 난 눈을 상해 잘 보지 못하니 그저 길만 가르쳐주시우.》
날이 푸름푸름 밝아오고있었다. 그들은 소양강기슭을 따라 전선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류다른 일행이였다. 《적》군이 《아군》을 업고 동터오는 전선을 향해 가고있었다. 조순근은 김덕만의 등에 업혀 길잡이를 하고있었다.
멀리 전선의 하늘에 해가 솟기 시작했다.
×
길은 곧추 꿈결처럼 아득히 뻗어있다. 이대로 멀리멀리 가고싶었다.
이렇게 차를 몰고서가 아니라 발목이 시도록 저 가을빛 짙은 대지를 걷고 또 걷고싶었다.
그것이 저 푸른빛채운이 드리운 전선너머 어린 시절 몽당치마를 입고 떠나온 고향의 내가까지 이어졌으면… 아버지가 운명직전에 그리도 간절히 뇌이던 향산천기슭의 작은 초가집, 뜰엔 수수울바자를 두르고 울너머 해바라기가 갸웃이 얼굴을 내민 곳, 구기자덩굴이 칠칠이 드리운 박우물에 샘물이 퐁퐁 솟구치던 골… 이제는 모든것이 삭막하고 희미해져 금시라도 영원히 잊혀질것 같아 가슴조이는 이 추억… 새파란 풀이 눈속을 헤집고 돋아있던 밀영의 귀틀집.
장군님의 해빛같은 미소, 작은 손에 은빗을 쥐여주시던 아름답고 현숙하신 녀전사의 눈부신 모습, 말파리, 밀림의 바다를 몰아치던 눈보라… 그래 그걸 잊을수 있을가. 눈보라소리는 어느 한 순간도 그의 마음속을 떠나본적이 없다. 이역땅의 세방에 발을 들여놨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옮겨가던 낯선 도시들의 역두와 선창가에, 아버지가 경영하던 출판사와 책방들의 서가에, 녀학교시절 방학때마다 다녀왔던 하와이의 해안에 있는 삼촌네 2층집에, 삼촌내외가 경영하던 과수농장의 포도밭에, 하버드대학의 원형기둥과 예일대학원의 층계앞에, 신문사의 타자기소리 소란한 방들에, 편집장인 남편과 함께 찾군 하던 하원의원들의 별장과 무도장, 국회의사당 도서실과 청문회장들에 그 추억의 눈보라소리는 떠나지 않고있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냥 울리고있었다.
리지아는 애써 갈마드는 추억들을 털어버리려는듯 검갈색머리칼을 흔들었다. 차속도를 늦추고 차창을 내렸다.
(아버지가 제구실을 바로 다 못하는 이 딸의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섭섭해할가. 그래 난 아직 조국에 필요한 인간이 되려면 멀었어. 너무 소심하고 겁이 많아.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는다니까. 자라보고 놀란 년 솥뚜껑보고도 놀라는 격이 된셈이야… 하지만 아버지가 배워준 정보공작의 초보, 그 《조심성》덕분에 오늘까지 견디여오는건 사실이야. 사실 까게베선으로 접근한건 정말 위험한 길이였어. 그 선이 두번째만에 성공하긴 했지만…)
승용차가 문산을 빠져나와 수림을 낀 도로에 들어섰을 때 불쑥 배기가스를 내뿜으며 모터찌클 한대가 앞을 막아섰다. 철갑모를 쓴 키가 후리후리한 장교가 곤봉을 쳐들었다. 보매 헌병인 모양이다.
리지아는 차를 세웠다.
《증명서!》
차문을 열고 품에서 려권을 꺼내들었다. 그 순간 려권을 든 그 녀자의 손을 장교가 거쿨진 손으로 움켜잡았다.
《리지아선생, 제 리문철이올시다.》
리지아는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전번에 접선한 본부 파견원, 뻐젓이 북쪽말씨를 내놓고 쓰며 서울의 호텔을 찾아왔던 그 키다리 인민군정찰조장 리문철이다.
《옳군요. 어마나, 그런데 어떻게?…》
리지아가 주위를 두릿거리자 리문철은 려권을 도로 주며 히죽이 웃었다.
《등잔밑이 더 어둡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냥 이렇게 서서 접선하는게 제격입니다.》
《제가 여길 지난다는걸 어떻게 알았어요?》
《다 아는수가 있지요. 우린 벌써 사흘째 리선생을 뒤쫓고있었지요. 안전을 위해서…》
《호호, 그런걸 전 소식이 닿지 않아 안타까와 했군요. 새 정보도 있답니다. 클라크부인에게서 알았는데 대통령으로 될 아이젠하워가 오는 12월초에 남조선에 온답니다.》
《허, 그건 중대한 특급정보인데요?…》
《그렇습니까?》
모터찌클에 앉아있던 두 조원이 빙그레 미소를 보낸다.
리지아는 마음이 푹 놓여 방싯이 웃었다.
리문철은 열려진 승용차문짝을 잡고 철갑모를 벗어들었다.
이따금씩 군용차들과 승용차들이 한두대씩 지나갈뿐 도로는 조용하다.
《조국에서는 선생의 공작성과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번 놈들의 〈금화공세〉를 짓부시기 위한 준비를 하는데 선생이 보내준 정보자료도 한몫 했으니까요. 우리 국장동지는 리선생이 영국대사관의 까게베선으로 보내온 첫 정보를 중시합니다. 이건 우리 혁명의 수뇌부보위와 직결되여있으니까요. 물론 신형직승기와 관련된 정보와 극동군사령부의 8개 타격안정보도 중요했습니다.
우리 국장동지는 대단히 만족해하면서 선생이 앞으로도 소소한건 피하고 큼직큼직한 이를테면 전략적인 정보에만 관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선생의 신변을 걱정하십니다.》
리지아는 깜짝 놀라 두손을 가슴앞에 모아쥐였다.
《아니, 김일성장군님께서 저를?!…》
리문철은 눈을 꿈벅이였다.
《이제는 말씀드리지요. 그때도 장군님의 령을 받고 제가 선생을 찾았습니다. 우리는 처음 녀잔지, 남잔지도 몰랐지요.
장군님께서 〈설악산 1번〉동지의 딸이 분명할거라며 은빗이야기까지 해주셔서… 힘들게 찾았습니다.
지시가 있어서 남로당선도 피하고 까게베선을 역리용해서 겨우 꼬리를 밟았지요.…
설마하니 리승만의 처하고 가까울줄이야… 허허허.》
리지아는 가슴이 뭉클하고 눈굽이 뜨거워났다.
(우리 장군님께서… 그러니 밀영을 찾았던 그 어린 소녀를… 다 기억하고계셨구나. 아버지! 장군님께서 우릴 아시고 찾으셨대요.…)
리지아는 눈물을 닦을념도 안하고 리문철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선생, 이번에 장군님께서는 조국을 위해 공로를 세운 선생에게 국기훈장1급을 수여하도록 뜨거운 은정을 돌려주셨습니다.…》
《네?!…》
리지아는 그만 얼굴을 싸쥐고 울음을 터치고야 말았다.
리문철이 자못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리지아동지, 장군님께서는 동지의 훈장을 자신의 서류함에 보관하셨다가 전승의 날에 만나 수여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리지아는 눈물어린 시선으로 전선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장군님… 그리운 아버지장군님, 제 한목숨 다 바쳐서라도 이 믿음, 이 사랑에 기어이 보답하렵니다. 아버지처럼 장군님을 받드는 길에 한생을 바치렵니다.)
날이 어두워지고있었다. 리문철이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리지아동지는 지금 대구로 가시지요?》
《네, 대구에 갔다가 군용기로 도꾜에 가야 합니다. 클라크의 어머니가 도꾜호텔에서 절 기다립니다. 전 이선을 놓치지 말자고 해요.》
《옳게 판단했습니다. 리지아동지, 사업상 동지에게 새로운 비상련락선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장군님의 말씀이 계셔서 동지의 안전을 보호하는 방향에서 안전책들이 취해지고있습니다. 례를 들면 판문점출입명단에서 동지를 포함한 미국기자들을 강경히 배척한다든가. 우리 신문 론평에서 동지의 기사들을 때린다든가…》
리문철의 말에 리지아는 미소를 지었다.
사실 정전담판이 열릴 때부터 리지아는 북조선측이 강경히 항의하는 《환영할수 없는 기자들》 명단속에 들어있었다.
리문철은 안주머니에서 사진 한장을 꺼내들었다.
《이 사람의 얼굴을 기억해두십시오.》
리문철이 사진을 내밀었다.
리지아는 얼핏 들여다보다가 흠칫 놀랐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이자는 미국무성 딘러스크차관보의 서기로 있던…》
《알고계셨는가요?》
《네, 저의 남편도 아는… 미국의 신임을 받는 아주 악질이라고 했어요.》
리문철의 입이 가로 쭉 째졌다.
《됐습니다. 그럼… 바로 이 〈악질〉이 동지네 〈설악산〉조의 조장이고 비상련락원입니다.》
《네?!…》
리지아는 깜짝 놀랐으나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자기도 《악질》로 보였을게 아닌가, 모든것이… 리해되였다.
《이 림송동지는 지금 미8군 련락장교단에 있습니다.》
《예, 요즘도 가끔 마주치군 합니다. 그는 아주 거물급입니다. 도꾜의 미극동군사령부도 제집드나들듯 한답니다. 미군소좌여서 남조선군 대령들도 먼저 허리를 굽혀요. 어떻게 접선할가요?》
리문철이 또 히죽이 웃었다.
《림송동지에게도 이미 리지아동지를 알려주었으니 접선암호는 필요없습니다. 그저 만나면 될것 같습니다.》
《호… 정말 접선암호는 필요없군요.》
《리지아동지, 언제나 우리 동지들이 함께 있고 곁에 있다는것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국장동지의 부탁입니다.》
리문철이 함경도말투로 진중하게 말한다.
리지아는 황홀한 눈길로 정찰조원들을 바라보았다.
(정말 놀라운 사람들이다. 이 사람은 적구에 와서도 꺼리낌없이 북쪽말투를 쓰고… 이태전에 헌병사령관 원용덕이 사단장으로 있을 때 대낮에 이 사람에게 포로된적이 있었다더니… 정말 대단해! 용감하구! 오늘만해도 그래. 번개처럼 나타났거든, 인민군대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야. 이런 인간들이 이 전쟁을 치르고있어, 이기고있어! 난 이제 동지들과 함께 살게 됐구나.… 장군님, 이젠 마음이 든든합니다.)
날이 완전히 어둡고말았다.
리문철이 섭섭한듯 입을 다셨다.
《이거 떠날 시간이 되였군요.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정말 헤여지기 싫군요.》
《이번에 벌린 놈들의 공세도 막판에 이르렀습니다. 얻어맞고있으니까요. 승리한 다음 우리 평양 대동강가에 모여 야유회라도 합시다.》
《약속합시다.》
모터찌클로 씨엉씨엉 다가가던 리문철이 홱 돌아서서 다시 걸어왔다.
리문철은 야전복 품속에서 크지 않은 주머니를 꺼냈다.
《?!…》
《이게 성천 약밤이우다. 한번 맛보시오. 우리 정찰병들의 성의입니다.》
《아이, 정말 고맙습니다.》
리지아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리문철이 대문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다음번엔 아들애한테 줄 목각권총을 갖다드리지요.》
《조장동지!》
리지아는 말을 떼놓고는 눈물이 글썽해서 그를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리지아는 정찰병들이 탄 모터찌클이 파란 배기가스를 뒤에 남기고 수림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오래동안 그냥 차에 앉아있었다.
그는 오늘 이 순간부터 자기가 혁명가로 세상에 다시 태여났다는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는 방그레 웃고나서 남쪽을 향하여 쾌속으로 승용차를 몰아갔다. 차는 전선을 뒤에 두고 남으로, 남으로 달리고있었지만 마음은… 마음은 한순간도 쉼없이 북으로, 장군님의 품으로 날아가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