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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선의 아침 제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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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4,584회 작성일 20-01-2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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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jpg

제  3  장

 

전호가의 흉장에 돋아난 풀들은 고지가 포격에 불타고 화염에 그슬려도 억센 생명력을 지니고 제법 소담하게 살아올라 검푸른 신록의 계절을 맞이하였다.

오늘도 태선희녀성비행편대는 전선상공에서 유유히 갈라져 고지뒤에 바투 붙어 선회하며 우편물들을 떨구었다.

박원진은 조순근과 함께 낑낑거리며 우편물을 날라왔다.

교통호의 전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동무들, 이걸 보오.》

신문을 뒤적거리던 종군작곡가 박한주가 별안간 와뜰 놀라며 큰소리로 웨쳐대는 바람에 전호가의 전사들이 편지를 읽다가 눈길을 들었다.

박한주는 전선신문을 움켜쥐고 흥분되여 평소의 그답지 않게 마구 내흔들었다.

《여보, 석강하동무!

동무작품이 신문에 실렸소. 〈결전의 길로〉가! 신문에! 크게!…》

빈 탄약상자우에 앉아 신기철분대장과 수군거리던 석강하가 어정쩡해서 몸을 일으켰다.

《한주동무, 이건 뭐 사람을 놀리는거요? 조용하우, 군단장동지가 내려와 작전토의를 한다는걸 잊었소? 롱담할게 따로 있지.》

《옳소, 롱담할게 따로 있지. 동무 눈엔 이 대문짝같은 악보가 보이지 않소?!》

박한주는 벙글거리며 신문을 내흔들어댄다.

《어디, 어디 보자요!》

윤애사가 달려가 신문을 빼앗아들었다.

그리고는 눈이 둥그래져 석강하앞에 그것을 펼쳐들었다.

석강하는 갱핏한 얼굴이 굳어져 신문을 뚫어지게 내려다보았다.

한순간이 지나자 그는 머리를 들고 어리둥절해진 눈길을 사방에 던졌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요? 이거 전선신문사동무들이 뭘 착각해서 잘못 편집한게 아니요?…》

《종군작가동무, 착각도 아니고 잘못 편집된것도 아니요. 동무들은 크나큰 영광을 받아안았소!》

전사들이 떠드는 소리에 엄페부에서 나온 류경수군단장이 종군작가들을 둘러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

류경수는 종군작가들앞으로 씨엉씨엉 걸어왓다.

《방금 전선사령부 김익군사위원의 전화를 받았소. 석강하동무, 얼마전에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결전의 길로〉를 두차례씩이나 시간을 내시여 직접 들어주시였소.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전사들이 좋아하는 이 노래가 혁명적랑만과 불굴의 군인정신이 굽이치는 명곡이라고 하시면서 널리 보급할데 대하여 가르치심을 주시였다오.

작가동무, 축하하오. 우리 장군님께서 이 노래를 들으시고 친히 제목과 가사의 일부대목까지 고쳐주시였단 말이요! 장군님께서는 종군작가들이 전선에서 전투적으로 창작하는데 대하여 높이 평가해주셨소.…》

《우리 장군님께서?!… 우리 장군님께서!…》

신문을 펼쳐든 석강하의 손이 후들후들 떨리였다.

그는 끝내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전호바닥에 두무릎을 꺾은채 신문에 얼굴을 묻었다.

박한주가 다가가 전호바닥의 시뻘건 흙을 움켜쥐고 흐느끼는 석강하의 몸을 일으켜세웠다.

박원진에게는 내성적이고 어지간히 매몰스러워 범접하기 어렵던 체소한 석강하가 이 순간 거인처럼 보였다.

《결전의 길로》는 박원진의 성격과 정세에도 맞는 노래였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 전사들의 심정을 정말 다 알아주시였구나!)

류경수가 돌아서다가 신기철을 알아보았다.

《분대장동무, 내 동무네 분대 조동무문제를 전번에 최고사령관동지께 보고드렸소.》

《아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겁니까? 우리 조순근동무네 부모들의 행처문제 말입니까?…》

신기철은 놀라서 한걸음 다가섰다.

류경수는 생각깊은 눈길로 그를 마주보다가 빙그레 웃었다.

《어쩔수 없었소. 분대장, 우리 장군님의 어깨를 더 무겁게 해드렸소. 신기철동무, 전사문제, 동지문제라면 우리 장군님께서는 꼭 아셔야 하겠다고, 자신께서 풀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시였소. 이건 작전문제보다 비할바없이 큰 문제라고 하시였소.…》

신기철은 그 자리에 굳어져버리였다. 그저 말을 못하고 눈물이 글썽하여 전사들을 둘러본다.

화선의 하늘가에 포연에 거밋거밋해진 저녁노을이 소리없이 비껴들고있었다.

신기철과 분대전사들 그리고 종군작가들은 멀리 북두칠성이 있는 곳, 그리운 장군님께서 계시는 평양하늘가를 우러러 눈물짓고있었다.

 

×

 

《정말 개판이요. 내 머리털이 돋아 국제회의와 담판, 전쟁판을 다 돌아다녔는데 이런 회담은 겪다보다 처음이요. 글쎄 한해를 끄는 정전담판이니… 여보, 저 중국의 전국시대도 그렇고 원탁기사들을 이끈 아더왕때도 그렇고 칼을 빼들면 원쑤요, 마주 앉아 술을 마시면 친구가 아니였소.》

주계평이 투덜거리자 웨닝톤이 발끈했다.

《주선생, 그건 무슨 비뚤어진 소리요? 그래 사회주의와 제국주의가 마주앉아 술을 마실수 있소?》

《아니 그럼 쏘도전쟁땐 어떻게 쓰딸린과 루즈벨트가 손을 잡았소? 중국의 국공합작은 또 뭐요? 방금 우리가 중국대표부 숙소에 갔을 때 기침을 콜록콜록하던 천식환자가 누군줄 아오? 국공담판시 중공대표단 비서장을 한 사람이란 말이요.》

주계평이 사자머리를 흔들며 기세있게 반격하자 웨닝톤은 그만 어리둥절해지고말았다.

중국대표부에서 아무런 소식도 없어 기분이 잡쳐 스적스적 앞장서 걷던 월프레드 버체트는 눈이 번쩍 틔여 뒤를 돌아보았다.

《여보, 주선생. 그럼 그 약골이 리극농이란 말이요?》

《내눈은 속일수 없소. 바로 그 사람이요. 지난해 회창에서 양득지부사령원한테서 들었지만 보기는 오늘이 처음이요. 두더지처럼 뒤골방에 앉아있으니 알 재간이 있소? 1928년부터 주은래밑에서 사업한 사람이요. 주은래, 엽검영의 조수로 장학량장군의 대표와 담판하고 서안사변을 평화적으로 해결해서 모택동의 눈에 든 사람이요. 아마 지금 직무가 중국공산당 정보부장일거요.》

버체트는 뜻밖의 사실에 놀라 그만 그 자리에 굳어지고말았다.

《그런 거물이 여기에서 남일대장의 한쪽 보좌관 노릇을 하고있었구만.》

《장개석의 댄너(영국인 보좌관ㅡ주)같은 인물이군요.》

웨닝톤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 보좌관밑에도 숱한 참모진이 또 있소. 구상이 빠르고 문학적재능이 있는 중국외교부 국제보도국장 교관화,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경제학박사 포산, 신화사의 정명 그리고 주은래가 미래의 외교부장으로 키우는 황화… 어떻소. 이만하면 남일장군의 한쪽 날개밑을 받들고있는 참모진이 리해되오?》

《허, 그럼 다른쪽 날개밑도 파헤쳐주지 않겠소?》

《여보, 발언원고와 책략은 다 인민군측에서 작성하는거요. 김일성장군의 비상한 두뇌진말이요.

그 두뇌진으로 말하면 김일성장군의 천재적혜안에 따라 수를 꾸밀것이고…》

주계평이 딴전을 부렸다. 인민군대표부 숙소쪽에서 시성문이 한팔을 저으며 나타나는 바람에 세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대표각하, 어떻게 되였습니까?》

체통이 큰 버체트가 성급히 그의 앞을 막아섰다.

시성문은 저으기 난처한듯 두손을 맞잡았다.

《월프레드선생, 이거 안됐습니다. 남일대장은 며칠전 본회의후 급히 평양에 올라갔는데 언제 올지 알수 없습니다.》

《그래요?…》

버체트는 실망하여 어깨가 축 늘어졌다.

시성문은 동정하는 눈길로 그를 마주보았다.

《사실 우리도 시급히 결론받을 일이 있어 수석대표동지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런데 버체트선생은 왜 남일대장을?…》

버체트의 눈가에 분격해하는 빛이 확 살아났다.

《나는 남일각하를 만나면 정식으로 항의하자는겁니다. 내 언제부터 김일성수상각하의 접견을 받게 해달라고 제기하고있는데 어디 확답이 있습니까? 우리 모국과 외교관계가 없으니 딱히 어디에 부탁할데도 없습니다. 전번 본회담때 남일대장과 해리슨의 대결을 보면서 나의 희망은 더 굳어졌습니다. 수상각하를 꼭 만나고싶습니다.》

《월프레드선생, 진정하십시오. 지금이야 전시가 아닙니까. 김일성동지의 접견을 받는다는건… 어려울것입니다.》

시성문의 말에 버체트는 두팔을 펼쳐보였다.

《대표각하야 알텐데… 나는 늘 정의의 편에서 문필활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 점은 내가 여러번 만날수 있었던 쓰딸린이나 모택동각하도 공정하게 평가하고있습니다. 드골이나 루즈벨트, 쳐칠수상을 만나는것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불패의 군대라고 여겼던 미군의 강대성신화를 깨뜨려버리고있는 전설적인 빨찌산령장의 존안이라도 뵙고싶어 그럽니다. 그리고… 이 전쟁의 전망을 두고 꼭 질문을 드릴게 있습니다. 대단히, 대단히 심중한…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나에게는 영국녀왕의 명의로 된 소개신까지 있습니다.》

버체트의 진정에 시성문은 작은 눈을 껌벅이였다.

《남일대장에게 건의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나도 선생을 힘껏 돕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시성문은 웨닝톤과 주계평쪽으로 돌아섰다.

《기자선생들, 오늘 저녁 지원군대표부는 당신들을 위해서 만찬을 준비했습니다.》

《기꺼이 응합니다.》

주계평이 일행을 대표하여 열렬하게 호응했다.

웨닝톤이 흐트러진 금발머리를 뒤로 제끼면서 부지런히 인민군숙소로 걸어가는 시성문의 체소한 뒤모습을 넌지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분은 아주 친절한 사람이요. 하지만 그가 남일대장을 납득시키기는 어려울거요.》

《옳아, 저 사람들은 둘러리격이니까…》

주계평이 머리를 끄덕이였다.

버체트는 그들을 얼핏 돌아보고나서 제나름의 생각에 잠기였다.

문득 며칠전에 있은 정전담판 본회의때 여겨본 남일대장의 류다른 얼굴표정이 떠올랐다.

수석대표는 근엄하고 무게있고 옆에서 폭탄이 떨어져도 눈섭하나 까딱하지 않을 침착성이 유표한 다소 뚝한 기색이였다.

하지만 이날 회담장인 천막안에 들어서서 상대측성원들을 바라보는 남일의 눈에서는 불이 이글거리는듯 한 무서운 기운이 뻗치고있었다. 회담탁우의 발언원고우에 올려놓은 두주먹은 으스러지게 틀어쥐여있었다. 반대로 갓 수석대표로 임명되여 몇번 얼굴을 내민적이 있는 해리슨의 여위고 창백한 얼굴에는 일종의 아닌보살과 함께 공포비슷한것이 떠돌고있었다.

천막밖을 둘러싼 기자들마저 회담장안의 무거운 공기에 위압되여 평소의 활기를 잃은채 조심스레 움직이고있었다.

해리슨이 눈길을 내리깔고 실무적인 목소리로 전번 회의에서 한 일련의 제안들과 거의 글자 하나 빼치지 않은것같은 발언문을 죽 내리읽고 문건철을 덮은 다음에도 남일은 그저 묵묵히 상대방을 쏘아볼뿐이였다.

촬영기의 렌즈를 조절하며 긴장해서 귀를 기울이던 버체트는 그만 손길이 굳어져가지고 옆구리를 밀치며 기여드는 주계평의 어깨를 팔꿈치로 눌렀다.

《왜 그러오? 선생, 남일대장이 왜 말이 없소?》

《조용하오.…》

《또 눈싸움을 시작하자는건 아니요?》

키가 작은 주계평이 발뒤꿈치를 들며 소란을 피울 자세로 밭은 목을 기웃거리는 순간 버체트는 어쩌면 침통하게 울리는 남일대장의 푹 가라앉은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오늘 당신들의 회담제안에 대해서는 말하고싶은 생각이 없다. 전혀 새로운것이 없는 구태의연한것이기때문도 아니다. 다만 전쟁당사자들로서 세계의 량심앞에 평화회담의지를 선언하고 마주앉은 정당한 대표로서 묻고싶다.

무엇때문에 당신들은 이 회담탁에 나왔는가?

무엇때문에 무장행동의 종식이요, 포로문제의 해결이요 하며 말끝마다 자유와 인권을 떠들면서 회담장밖에서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르고있는가. 왜 평화로운 우리의 도시와 마을들을 야수적으로 폭격하고 무고한 우리측 포로들을 무참히 살륙하고있는가?…》

남일대장은 분명 발언원고를 들여다보지 않고있었다.

그의 억세게 틀어쥔 두주먹은 그냥 펼치지 않은 문건철우에 바위처럼 놓여있었다.

《귀측은 지금 전혀 근거없는 허위를 제기하고있다. 련합국군은 전쟁을 하고있다.》

해리슨중장이 편안치 않은 코맹맹이소리로 중얼거리자 남일대장은 통역이 말을 끝낼새도 없이 한주먹으로 회담탁을 탕하고 내리쳤다.

이전에는 전혀 볼수 없었던 수석대표의 분별을 잃은 격노한 모습에 버체트는 속이 덜컹하는것 같았다.

《그래 당신들은 수백대의 비행기를 동원하여 우리의 평화적인 시설물들인 발전소와 공장, 병원과 학교들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하고도 〈성조기〉신문에 〈군사집결처를 분쇄했다〉고 허위보도를 날리지 않았단 말인가. 당신들은 이른바 〈초토화작전〉의 미명하에 지난 5월 13일과 14일 이틀동안에만도 평안남도 순안군 견룡저수지(석암저수지)에 수십대의 전투폭격기로 제방과 수문을 폭격하지 않았는가? 그 결과 저수지의 물에 70여개 부락과 800여호의 농가가 파괴, 류실되였고 400여명의 농민들이 사망하거나 행불되고 약 5,000명의 농민이 리재민으로 되였다.

그래 우리측 포로인원들이 당신측의 학살에 참을수 없어 집단적으로 살해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정당한 요구를 들이대고있는것이 사실이 아니란 말인가.

그래 당신측 포로수용소장이 제네바공약을 위반한 범죄행위를 인정하고 다시는 감행하지 않겠다고 우리측 포로성원들에게 담보하였다는것이 사실이 아니란 말인가?…》

《귀측의 발언은 명백한 기만이다.》

해리슨중장의 눈길은 사선으로 떨어져있었지만 목소리의 음조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래 당신들은 국제적십자단체들과 미영신문들, 지어 〈유엔군사령부〉공보에까지 밝힌 공약을 뒤집고 며칠전에는 포로수용소에 땅크와 장갑차를 들이밀어 우리측 포로 270여명을 살륙하는 만행을 저지르지 않았단 말인가?…》

《나는 휴회할것을 제의한다.》

해리슨은 얼굴을 얼핏 들었으나 불이 펄펄 이는 남일대장의 눈길과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떨구어버렸다.

버체트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지난날 같으면 상대측에 대한 례의에는 관계없이 도전적으로 문건가방을 끼고 급히 일어서군 하던 해리슨중장이 오늘은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감히 퇴장하지는 못하는것이다.

《당신측은 회담장밖에서, 뒤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범죄행위에 대하여 전세계 인류앞에서 명백히 밝혀야 한다.》

남일대장의 목소리는 조금 가라앉았으나 여전히 서슬푸르다.

《…》

《오늘은 비공식회의가 아닌만큼 기자들이 이 회담을 지켜보고있다. 명백히 밝힐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나는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문제들을 토의하고싶지 않다. 이 천막밖에서 벌어진 련관되여있지 않은 사실들에 대하여서는 말할수 없다.》

《아니ㅡ우리측 포로인원들의 생사와 안전에 관계되는 모든 문제들은 이 회의와 직접적으로 련관되여있다. 우리는 지금 천막안에서 회의를 하고있는것이지 천막밖에서 하고있는것이 아니다.》

《…》

천막을 둘러싼 기자들이 손수건을 꺼내 창백한 이마의 땀을 훔치며 쩔쩔매는 해리슨을 조소어린 눈들로 바라보고있었다.

(확실히 남일대장은 정당한 문제를 들이대고있으며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정의롭고 인간답고 진실하게 울린다. 어떤 면에서 이건 인간과 야수와의 전쟁이라고도 볼수 있겠다. 그런데 무슨 힘이, 무슨 곡절이 이들을 어쩔수없이 이런 회담탁에 마주 앉혔는가?!…

남일 수석대표의 당당한 태도는 어디에 기초하고있는가?…

그렇다면 이 전쟁의 앞날은 어떻게 될것인가?…)

이날 버체트는 여러번 기회를 엿보았으나 남일대장의 엄엄한 기세에 눌러 감히 접근할수 없었다. 특히 곁에 딱 붙어있는 신춘산장령이 막아서는 바람에 포기하고말았다.

저녁까지는 시간이 있었다. 세사람은 한귀퉁이가 남은 옛 고려시대의 발어참성곁을 지나 그래도 아직 수목이 무성한 래봉장쪽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다.

송악산기슭의 숲에 묻힌 고색창연한 래봉장을 오래간만에 다시 보는 버체트의 눈가에 감회가 어렸다.

버체트의 눈앞에는 또다시 력사적인 정전담판본회의가 시작된 1951년 7월 10일전의 의미깊은 나날들이 어제런듯 떠올랐다.

1951년 7월 6일 조중측 련락군관조가 미군측 련락장교조와 처음으로 접촉하여 회담문제를 토의하였다.

삼엄한 전선분리선 가까이 광문호에서 본회담을 위한 대표단예비접촉문제가 상정되였다.

다음날 예비접촉대표단 명단을 교환하기로 하였다.

조중측에서는 인민군 군단참모장 김상대좌, 박운표중좌, 지원군측에서 등화(지원군 부사령원), 해방(지원군 참모장)으로 대표단 명단을 만들었다. 통역으로는 조선녀성 안효상이 선발되였다. 명단교환을 앞두고 문득 신춘산이 증명서문제를 제기하는 바람에 대표들은 그만 아연해지고말았다.

적대국들사이의 예비회담이였으므로 증명서문제는 자못 심중하였다. 그것을 모두가 잊고있었던것이다. 밤중으로 공작조는 김일성수상의 수표를 받은 증명문건들을 만들기로 결정하였다.

미군측에서는 미공군대좌 안데르 키니, 미륙군대좌 젬스 뮬레, 남조선군 중령 리수영, 조선말통역원 언더우드, 중국말통역원 카이쓰 오가의 명단을 제기해왔다.

미군측은 회담장소로 원산앞바다의 단마르크병원선을 제의하였으나 북조선군측의 주동적인 발기로 개성의 래봉장으로 락착되였다. 미군대표단의 안전을 위해 전선으로부터 개성시내를 꿰지르는 안전《복도》가 형성되였으며 인민군측은 남산중학교부근의 민가에, 지원군측은 송악산기슭의 별장에 자리를 잡았다.

미군측은 전선남쪽 자기 구역인 문산의 한 과수원에 천막을 치고 류숙했는데 회담중에는 휴식장소로 래봉장 서북쪽 400메터 되는 곳의 흰집인 교회당이 제공되였다.

여러차례에 걸쳐 진행된 예비회담들은 긴장과 반목, 의견과 고집, 타협과 미묘한 호상간의 양보속에 겨우 합의에로 접근해갔다. 가관은 미군측이 리승만의 곡진한 제의로 마지못해 양념감으로 끼워넣은 리수영중령의 처지였다.

7월 8일 미군측은 예비회담을 마친 후 잠간 위생실로 간 리수영을 떨궈버린채 황급히 안전《복도》를 따라 전선너머로 철수해버리고말았다. 그래서 리수영이 오도가도 못하게 되였다.

모욕과 공포로 사색이 된 가련한 리수영중령을 인민군측 공작조가 회의장에서 휴식시키고 밥까지 먹인 후 무선전화기로 미군측에 련락하였다.

1951년 7월 10일 조선인민군 남일 중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조중측 대표단과 미륙군소장 죠이 테너를 수석대표로 하는 《유엔》군측간에 고려의 옛 도시 개성의 래봉장에서 력사적인 정전담판 제1차본회의가 개최되였다.…

그때로부터 한해가 흘러갔다.

월프레드 버체트는 한숨을 내쉬였다. 이제는 회담장소도 래봉장으로부터 전선중간지대인 판문점으로 옮겨갔다.

문득 인간적으로 호감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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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문득 인간적으로 호감이 가는 조중측 대표들중의 한사람 시성문을 생각하자 부러움이 밀물처럼 가슴을 흠뻑 적신다.

그는 김일성각하를 여러차례 만난 행운아이다.

가장 엄혹한 시절에 김일성각하를 만나뵈옵고 저 북부조선의 대유동까지 동행하여 력사적인 회담에 참가한 인물이다.

…1950년 10월 중순 조선주재 중국대사관에서는 베이징으로부터 긴급전보문을 받았다.

예지양대사가 부재중이였으므로 시성문림시대리대사가 전보문을 들고 급히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가 있는 덕천군 옥천에 도착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시성문의 손을 뜨겁게 잡으시였다.

《엄혹한 시기에 중국대사관동지들이 우리 나라를 떠나지 않고 함께 시련을 헤쳐가니 힘이 생깁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믿음어린 눈길로 시성문을 바라보시며 환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지금 인민군주력집단은 전 전선에서 기본적으로 적의 공격을 제압하고 완강히 방어하고있습니다.

이런 때 중국동지들이 지원군을 파견하게 된다는것은 우리에게 큰 고무로 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김명수부관이 날라온 더운물을 시성문에게 권하시였다.

《김일성동지, 중조 두 나라는 순치의 관계에 있고 력사적으로 혁명을 함께 해오고있습니다.

모택동동지께서는 늘 우리들에게 중국의 오성홍기에는 조선동지들의 피도 깃들어있다고 말하군 합니다.

중국인민이 조선인민의 혁명전쟁을 지원하는것은 제나라를 지키는것이며 응당한 국제주의적의무로 됩니다.》

이날 저녁 시성문은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덕천을 떠나 구릉지대를 달렸다. 평안북도 동창군 대유동에 도착한것이 새벽 3시였다.

새벽에 팽덕회가 신의주로부터 간고한 로정을 달려 대유동에 도착하였다.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 겸 정치위원으로 임명된 팽덕회는 조선으로 나오기 전 모택동의 부름을 받았었다.

모택동은 후렁후렁한 색이 바랜 종잡을수 없는 형태의 옷을 입고 담배를 피우고있다가 팽덕회가 중화원에 들어서자 얼굴의 주름살을 폈다.

《이보우 덕회동무, 언제 떠나겠소?》

팽덕회는 모택동이 내미는 담배를 받아들었다.

《부대를 편성하는데 따라 즉시 출발하겠습니다.》

《덕회동무, 조선에 나가면 김일성동지의 의도를 잘 받들어야 하겠소. 공화국을 세운지 얼마 안되는 청소한 나라가 미제의 다국적군과 맞서 싸운다는게 쉬운 일이요? 난 지난 여름부터 김일성동지의 그 천재적군사지략과 전격적인 공격속도에 감탄을 금치 못했소. 시련속에서 더 강해지는것이 우리의 혁명가들이 아니요. 그만한 영웅호걸이 그래 이 세계에 몇이나 있소.》

팽덕회는 모택동의 흥분이 가슴에 마쳐와 경건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석동지, 당신의 뜻대로 제 김일성장군을 잘 받들겠습니다.》

모택동은 무엇이 안심치 않은지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오락가락했다. 그가 내뿜는 담배연기로 방안이 희뿌예졌다.

《주석동지, 어디 안심치 않은데가 있습니까?》

보다못해 팽덕회가 재지 않고 물었다.

모택동은 한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아니야!… 참, 덕회동무, 내 한가지 개인적으로 부탁할게 있소. 좀 들어주시겠소?》

《말씀하십시오, 주석동지!》

《내 좀 생각해보았는데… 우리 안영이를 조선전선에 데리고가주.》

《아니, 모안영동무를 말입니까?》

팽덕회는 놀라서 자리를 일었다.

《본인의 제의도 강경하오. 여보 덕회동무, 내가 숱한 중국의 귀한 아들딸들을 생사를 겨루는 전장으로 내보내면서 제 아들을 끼고있으면 되겠소? 주은래동무까지 반대인데 아무래도 덕회동무가 도와주시오.》

《?!…》

팽덕회는 불쑥 코허리가 시큰하여 아무 대답도 못했다.

모택동이라는 혁명가의 진실하고 뜨거운 참인간미가 새삼스럽게 가슴을 친것이다.…

대유동에 도착하여 세수까지 하고났을 때 날이 푸름푸름 밝아왔다.

팽덕회는 시성문을 이끌고 밖에 나섰다.

새벽공기를 마시며 대유동주변의 산발을 주의깊게 살피던 팽덕회가 문득 시성문을 돌아보았다.

《이보우 시동무, 혹시 가위를 가진게 없소?》

《예?… 제게는 손톱깎개밖에 없습니다.》

팽덕회는 히쭉 웃었다.

《좋소, 그거라도 내놓소. 이거 내 옷주제가 말이 아니요. 김장군께서 보시면 중국거랭이가 왔는가 착각하실수 있소. 허허허…》

《?!…》

시성문은 아침해빛에 드러난 팽덕회의 군복차림을 아픈 눈길로 살펴보았다.

누런 라사천 군복은 색이 바래고 팔소매에 기운 자리까지 보였다. 그 기운 한 가녁이 떨어져 바람에 너풀거렸다.

《시동무, 뭘 그러오. 야전군사령원의 주제가 그렇지 어찌겠소. 례의를 지켜야 할게 아니요. 이걸 잘라버려주시오.》

시성문은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팽덕회의 군복에서 너풀거리는 헝겊을 손톱깎개로 잘라냈다. 중국혁명가들은 전장에서 전장으로 옮겨온것이다.

시성문은 넥타이를 맨 자기의 외교관정장이 못내 역스럽게 느껴졌다. 기실 김일성동지께서 입으신 회색닫긴옷도 전쟁초기부터 보아온 비에 젖고 포연에 끄슬린 색바랜 야전복이였다.

10월 21일 아침 팽덕회와 시성문은 승용차를 타고 김일성동지께서 계시는 대동리의 농가로 찾아갔다.

마당가에 나와계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일행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시고 팽덕회와 함께 농가로 들어가시였다. 조선의 풍습대로 신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 노전바닥에 격식없이 자리를 잡았다.

팽덕회가 모택동주석과 주은래총리의 동지적인 인사와 문안을 전해드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선형세를 구체적으로 알려주고나서 말씀하시였다.

《팽덕회사령원동무, 중국혁명이 갓 승리한 어려운 조건에서 지원군이 우리 전쟁에 참전한것은 혁명가들의 도덕의리로 보나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원칙으로 보나 력사적인 사변이며 아시아와 나아가서 세계평화를 위한 대단히 훌륭한 장거입니다.

우리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한전호에서 어깨겯고 미제국주의자들에게 섬멸적타격을 안깁시다.

나는 중국혁명가들을 믿으며 우리 군대와 영웅적인 중국인민지원군이 합세하여 반드시 미제침략자들을 서산락일의 운명에 처하게 하리라는것을 확신합니다. 미제는 군사적으로 볼 때 종심이 약하고 린접이 없이 공격하면서 수많은 허점을 로출시키고있습니다. 강한 공격정신만 있으면 혁명의 출로는 반드시 열립니다. 이건 빨찌산때부터 굳어진 나의 신념입니다.》

《김일성동지, 제 그 말씀에 힘이 생깁니다. 감사합니다!》

팽덕회의 눈이 번쩍 빛났다. 그는 김일성동지의 억센 손을 와락 잡고 흔들었다.…

월프레드 버체트는 사색에서 깨여나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이는 중국에 대하여 특이한 우애를 지니신 위인이시다.

1940년대말 중국공산당의 《남공북수, 선남후북》작전방침과 《상하강남, 사보림강》때도 그이께서는 북부조선을 동북과 관내를 련결하는 교통로로 할데 대한 방안을 제시하시여 중국혁명을 크게 도와주시였다.…

령토가 광대하고 인구가 많아 나라가 위대한것이 아니라 위인이 위대하여 나라도 민족도 빛난다는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버체트는 또다시 자기를 사로잡는 일종의 조급증을 느끼며 긴숨을 몰아쉬였다. 공회전을 거듭하고있는 이 력사에 류례없는 교전쌍방간의 《마라손》회담은 언제 결말을 볼것인가. 릿지웨이가 시작한 정전담판을 클라크는 어떻게 마무리 지을것인가. 막강한 군사력과 오랜 전승의 행적을 지닌 세계적무력과 청소한 군대와의 격전… 시시각각 강화되는 미국의 무장장비…

버체트는 지는 해가 걸려있는 송악산을 올려다보았다. 500년을 자랑하는 중세국가의 옛 도읍지를 내려다보며 기암괴석들이 삐죽삐죽 솟은 아찔한 산악이 불타는 창공을 치받들고있다.

개성은 세계에 내놓고 자랑할만 한 력사유적들로 가득찬 유구한 도시이다.

이 도시에 고려의 왕궁 만월대터를 비롯하여 아시아에서도 손꼽히는 큰 왕릉인 공민왕릉, 세계적인 불교도들이 령험한 성지로 떠받드는 령통사절터, 박연폭포, 관음사의 석가모니화상, 이름난 서예가 한석봉의 글씨를 새긴 비석, 선죽교와 성균관, 7릉, 왕건릉 등 1천여점의 력사유적들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전선지구의 위수구역들이다. 단 한걸음도 내짚을수 없다. 아쉬움을 금할수 없다.

웨닝톤이 곁으로 다가왔다.

《버체트씨, 어떻습니까? 산이 웅장하지요?》

버체트는 얼굴을 돌리고 또 한숨을 내쉬였다.

《웨닝톤선생이 조선의 백두산이나 금강산, 묘향산을 보지 못한게 유감이요. 이 산은 조선의 큰 명산들에 대면 아무것도 아니요.》

주계평이 슬슬 아래배를 쓸어만지며 너스레를 떨었다.

《제씨들, 이젠 〈볼쉐비크〉들의 만찬회장으로 갑시다. 중국의 유명한 훈제오리가 우리를 기다리고있소.》

주계평이 신이 나서 앞장서며 발어참성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웨닝톤은 오만상을 찡그렸다. 그는 근 한해째 함께 다니면서도 주계평의 먹는 타령에만은 신물이 나는 모양이다.

《이보우 주선생, 당신은 아시아의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지만 음식분야에 들어서서는… 역시 중국인이요. 당신은 런던의 유명한 고급식당들에 가봐야 진짜 료리가 무언지 알수 있소.》

《여보 공작나리, 호박이 줄친다고 수박이 되는줄 아오? 당신이야말로 수천년 력사를 가진 중국료리에는 문외한이요. 정말 불쌍한 일이요.》

주계평은 성이 나서 사자머리를 흔들었다.

웨닝톤은 금발머리를 뒤로 제끼고 앙천대소했다.

웨닝톤이 말하는 런던의 고급식당들은 버체트도 여러번 들린 곳이다. 하지만 그렇게 환성을 지를만 한 흥취는 없었다.

아시아기자와 유럽기자의 료리전통싸움은 그칠줄 몰랐다.

버체트는 이 싱갱이질에 아무 흥심도 당기지 않았다. 무턱대고 그들의 뒤를 따르면서도 마음은 어쩐지 조급해만 졌다.

(정전담판의 전망과 조선전쟁의 군사적대결의 승패여부와 정치정세를 옳바르게 세상에 전하려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김일성수상을 만나뵈워야 한다. 이 전쟁은 조선인민의 운명만이 아니라 아시아, 아니 이 행성의 앞날과도 이어져있다. 현재로서는 모든것이 명백치 않고 래일을 예견키 어렵다. 분명 이 전쟁은 막강한 군사력과 무한대한 정신력의 대결이다.

하다면 전쟁승리의 확신성있는 길은 어느쪽에 있는가?…

어떻게 해서나 김일성수상을 만나뵈워야 이 인류가 직면한 절실한 문제의 해답을 찾을수 있지 않겠는가?

정의의 필봉을 든 시대의 대변자라면 이 숙명의 웨침을 피할수 없다!…)

버체트는 한결 용기가 샘솟는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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