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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길 제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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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6,023회 작성일 20-02-27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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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승의 축포가 수도의 밤하늘에 높이 오를 때 국가계획위원회에서 중공업부문의 계획사업을 맡아보고있는 국장 한윤호는 경상골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고있었다. 버쩍 마른 큰 키에 성긴 머리칼을 반듯하게 빗어넘기고 단정하게 넥타이를 맨 그는 스저스적 걸음을 옮겼다. 늘 무겁던 그의 발걸음은 전에없이 가벼워지고 가슴은 한껏 부풀어올랐다. 대동강과 릉라도를 가까이 끼고 살면서도 언제한번 대동강기슭을 산책해본적이 없는 그였지만 이밤에는 청류벽아래에서 잠간 걸음을 멈추었다가 다시 대동강을 따라 걷기로 하였다. 

하늘높이 축포는 계속 오르고있었다. 잔물결이 출렁거리는 대동강을 바라보니 하늘의 뭇별들과 가지각색 축포의 꽃보라가 그대로 강물에 내려앉은듯 그야말로 아름다움의 절경을 펼치고있었다. 예술적인 정서보다도 과학적인 론리를 중시하는 한윤호였지만 이밤의 아름다운 경치에는 그도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어느덧 대동문가까이에 이른 그는 폭탄파편에 가지가 뭉텅 잘려나간 버드나무아래 잠시 멈춰서서 땀을 들이였다. 맴맴 씨륵씨륵 실실…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소란하게 들려오고 씁쓰무레하고 달짝지근한 풀냄새와 비릿한 물냄새가 페장에 흘러들었다. 

버드나무에 기대서서 담배 한대를 꼬나문 한윤호는 달빛 부서지는 대동강의 유유한 물결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미소가 어린듯 한 그의 세모진 눈에는 중공업성 부상 최일만의 부얼부얼한 얼굴이 자주 떠오르고 귀전에서는 쏘련으로부터 10억루블의 막대한 원조를 받게 되였다고 호기를 부리던 그 목소리가 사라질줄 몰랐다.

수령님을 모시고 강남요업공장으로 나갔던 정준택으로부터 중공업부문의 전후복구안이 소극적으로 작성되여 부결되였다는 뜻밖의 소식을 감북산갱도에서 전해들었을 때만 하여도 한윤호의 눈앞이 캄캄해지는것 같았다. 그때 한윤호는 양복주머니에서 크레용과 같은 《까즈베크》담배곽을 꺼내서 줄담배만 피웠다. 뚜껑에 검푸른 빛갈로는 깝까즈의 까즈베크산이 그려져있고 물주리가 유별나게 길다란 그 담배는 쏘련에서 나온 사람들이 즐겨 피우는것이였다. 짙은 담배연기가 눈앞으로 그물그물 피여올랐다.

(첫째도 둘째도 자금이다. 자금만 담보되면 무슨 계획인들 세우지 못하겠는가?) 

한윤호는 갱도의 눅눅한 자기 방에 혼자 앉아서 속을 태우고있을 때 느닷없이 최일만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시간이 있으면 저녁에 퇴근할 때 자기 사무실에 들렸다 가라는것이였다. 

국가계획위원회가 들어있는 감북산갱도와 중공업성이 자리잡고있는 주암산은 가까운 거리를 두고 서로 마주보고있었다

최일만은 한윤호와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에 부모들의 손에 이끌리여 조국을 떠나 멀고먼 쏘련의 중앙아시아에 정착한 사람이였다. 그는 그곳에서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한 야금기업소에서 오래동안 기술자로 일하였다. 그는 사회주의공장기업소의 관리운영과 특수강생산분야에 일정한 조예를 가지고있었다. 쏘련군대의 통역으로 조국에 나왔던 그가 인차 성진제강소 지배인으로 등용되였고 중공업성이 새로 나오자 부상으로 소환된것은 그의 이런 경력때문이였다. 

한윤호는 최일만이 성진제강소 지배인을 할 때부터 안면을 익히게 되였다. 그들은 어린 시절 조국을 떠나 중앙아시아에 정착하여 성장한 경력상 공통성때문이였던지 인차 친숙한 사이가 되였다. 중앙아시아에 가족들을 두고나온 한윤호는 명절같은 때면 최일만의 전화를 받고 그의 집으로 놀러가서는 밤늦도록 앉아있군 하였다. 

최일만은 한윤호와 직책상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럼없이 친숙하게 대해주군 하였는데 한윤호는 그것을 매우 좋게 생각해오는터였다

최일만은 주암산기슭에 림시로 지은 가설건물의 한 방을 사무실로 리용하고있었다. 

《오, 우리 학사선생!》 

한윤호가 최일만의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키가 작고 똥똥한 최일만은 진한 색갈의 무늬가 가로세로 쭉쭉 난 와이샤쯔를 걸치고 한윤호를 언제나와 같이 떠들썩하게 맞이하였다. 그는 손님을 금시 포옹이나 할것처럼 두손을 머리우에 높이 쳐들고는 짧은 장화발로 주홍빛주단을 꾹꾹 밟으며 씩씩하게 앞으로 걸어나왔다. 눈꼬리가 조금 우로 치째진 그의 봉의눈에는 손님을 반기는 미소가 줄곧 차넘치였다. 그는 쏘련에 있을 때 계획경제에서의 균형문제를 전문연구하여 경제학사가 된 한윤호를 언제나 존중하였다. 

《어제 당보를 봤소?》 

한윤호가 벽가의 쏘파에 기대앉기 바쁘게 최일만이 느닷없이 물었다

《무슨 당보 말입니까?》 

한윤호가 얼떠름해서 반문했다

《<로동신문>말이요.》 

《예, 봤습니다.》 

《뭘 느낀것이 없소?》 

《…》 

한윤호는 짐작이 가지 않는다는듯 실눈을 지으며 대방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고스쁠란(국가계획위원회)은 정세에 민감해야지.》 

최일만은 눈꼬리가 감때사납게 조금 치째진 봉의눈을 치뜨고 짧고 통통한 손가락으로 한윤호를 위협해보이는 시늉을 하면서 거센 함경도말씨로 말했다. 한윤호는 최일이 공식석상에서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곳에서는 위풍이 당당한 자세로 말도 표준어로 류창하게 번지려고 각별히 주의하지만 마음이 통하는 사람끼리는 로어와 함경도사투리까지도 곧잘 섞어가며 말하기 좋아한다는것을 이미 알고있었다.

한윤호는 최일만이 자기한테도 그런 식으로 허물없이 말하는것이 싫지 않았다

한윤호는 한결 안정된 기분으로 폭신한 쏘파에 한절반 몸을 잠그고는 처음 들어와보는 최일만의 방을 두릿두릿 살펴보았다. 말이 가설건물이지 방안의 비품들은 모두 새것이나 다름없는 값진것들이였다. 벽에 잇대여놓은 서가와 최일만이 마주앉은 널직한 책상 그리고 길다란 앞상에는 각종 도서들과 잡지들, 신문들이 무둑히 쌓여있었다. 신문과 책들가운데는 로어로 된것이 적지 않았다. 구석쪽 원탁우에 놓인 선풍기가 반원을 그리며 주인의 철색이 도는 누르끼레한 얼굴에 시원한 바람을 휘휘 끼얹었다. 

《어제 당보 1면에는 쏘련 내각수상의 축전이 실렸소. 축전은 우리 인민이 조국해방전쟁에서 거둔 성과를 축하하고 우리 나라의 전후복구건설을 돕기 위하여 원조를 줄 용의가 있다는것을 표시했지.》 

최일만은 흥이 나서 말했으나 한윤호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저으기 랭랭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최일만은 그것이 뜻밖이라는듯 한윤호를 마뜩지 않은 눈길로 넘겨다보았다. 아무리 랭철한 학자풍의 인간이기로서니 이렇게까지 감정이 무딜수 있겠는가고 은근히 화를 내는것 같았다. 그래서 한윤호는 자세를 고쳐앉으며 자기의 생각을 조금 내비치였다. 《외교적인 말보다도 실제적인 조치가 중요하지요. 원조를 제공한다면 언제 얼마만한 액수인가 하는 문제도 그렇고》 

《이사람 고스쁠란에 몇해 앉아있더니 장사군이 다 됐단 말이야. 돈주머니부터 저울질하면서》 최일만은 다시 한윤호를 위협하듯 손가락을 창끝처럼 펴들고 자리에서 불쑥 몸을 일으켜세웠다. 그리고는 주단을 슬슬 밟으며 창가에 다가가더니 엷은 창가림을 활 밀어제치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한윤호는 어쩐지 최일만의 높이 추어올린 만만찮게 빳빳이 일어선 머리칼과 굵은 주름이 죽죽 건너간 짧은 목, 널직한 어깨에서 눈길을 뗄수가 없었다. 그 모든것은 중공업성산하 일부 대상기관 일군들이 쉬쉬하며 뒤에서 내돌리는 최일만의 드센 손탁과 고집, 완강성을 그대로 말해주는듯 싶었다. 

《참 야단이요. 전후복구건설문제를 토의할 중요한 회의를 해야 하겠는데 회의실 하나 변변한것이 없단 말이요. 수령님께서 당중앙위원회 회의실을 복구해서 쓸데 대한 말씀이 계셔서 복구에 착수했는데 현재로서는 벽돌 한장, 세멘트 한그람, 강재 한꼬투리 나올데가 없소. 온 나라가 페허가 되다보니 할수 없단 말요.》 

최일만은 한윤호를 등대고 선채 한탄을 하였다

 《인류사에는 전쟁들이 많았지만 우리 조선전쟁처럼 그렇게 참혹한 전쟁은 없었지요. 여기 평양에만 해도 폭탄이 40여만개나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온 나라가 재더미로 됐지요.》 

《그러고보면 쏘련의 원조가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소. 그렇지 않소?》 최일만은 갑자기 한윤호를 향해 돌아서더니 따질듯 물었다. 관골이 불거진 그의 얼굴에는 방금 한탄하던 사람 같지 않은 득의양양한 표정이 깃들었다. 

《왜 말이 없소? 또 원조액수요?》 

최일만이 봉의눈을 찌프리더니 널직한 어깨를 휘저으며 한윤호앞으로 다가와 우뚝 멈춰섰다. 그리고는 통통한 손가락 하나를 의미심장하게 곧추세우고 휘파람소리 같은 목소리로 소근거렸다. 

10억루블이요, 10억루블!》 

10억루블?》 

한윤호의 세모진 가는 눈이 금시 화등잔처럼 번쩍 띄여졌다

《아직은 비밀이지만 믿을수 있는 정보요.》 최일만은 장담했다.  

《두고보오. 우리도 이제 잘 살게 된단 말이요.》 

최일만은 활기에 차서 책상가까이에 있는 차탁으로 가더니 걸죽한 커피잔을 쳐들었다.

《마시겠소?》 

한윤호는 사양했다

최일만은 한윤호를 격식없이 소탈하게 대하였지만 한윤호는 자기보다 먼저 조국에 나온 선배이고 일찌기 중요 직책에서 사업해온 상대방을 그런식으로 대할수는 없었다

최일만은 더 권하지 않고 진하게 푼 커피를 졸금졸금 마시였다

《우리 조선사람들이라고 커피, 우유, 뻐터, 꼴바싸(순대), 스메따나(우유크림)를 먹으면 입술이 부르튼다든가. 두고보오. 세끼 고기국에 번쩍거리는 구두를 신고다니게 되지 않나.》 

한윤호는 최일만이 말하는것 같은 과장섞인 말들을 제일 질색하였으나 복구건설의 자금문제때문에 너무도 속을 썩인 뒤끝이여서인지 지금은 그런 말이 조금도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최일만은 계속 고양이가 기름종지를 핥듯 유리고뿌 밑굽이 드러날 때까지 커피를 홀짝거리며 다 마시였다. 그리고는 가로 퍼진 어깨를 좌우로 기울거리며 자기 자리에 돌아와서는 안락의자등받이에 웃몸을 젖버듬히 제끼고 앉았다. 

《모를 일이야.》 최일만은 혼자소리처럼 웅얼거렸다. 《큰집아주바이들이 왜 회의날자를 질질 끄는지. 얼마전에 따스통신은 쏘련 최고쏘베트 제5차회의를 7월 28일에 모스크바에서 소집한다고 보도하고는 며칠 안가서 다시 8월 3일로 연기한다고 발표했거든.》 

한윤호는 그가 무엇때문에 남의 회의에 그처럼 신경을 돋구는지 얼른 짐작이 가지 않아 부얼부얼하고 네모진 상대의 얼굴을 묵묵히 쳐다보기만 하였다

최일만은 정세판단이 민감하지 못한 동료의 암둔성을 질책하듯 한윤호를 흘겨보고는 그쪽으로 몸을 기울이였다

《내 중요한 비밀을 한가지 알려주지. 큰집아주바이들이 이번 최고쏘베트회의에서 우리 나라에 제공하게 될 원조자금을 정식 공포한다는거요. 알만하오?》

《아, 그렇습니까?》 

《그래서말이요. 쏘련의 원조가 우리 나라의 중공업건설에서 귀중한 밑천으로 된다는 무게있는 글을 한편 써서 당보에 내야 하겠소.》 최일만이 비로소 한윤호를 찾게된 까닭을 밝히고는 틀잡힌 어조로 덧붙이는것이였다. 《이건 모두 사상사업부문을 맡아보는 당중앙위원회 요직에 있는 박동지가 직접 포치한거요. 내가 누구를 념두해두고 이 말을 하는지 아마 짐작이 갈거요. 그래서 내가 인재를 물색해보았는데 동무만한 적임자가 없더란 말이요.》 

《아니, 그런 글이야 부상동지가 직접...》 

《나말이요? 허허, 생산때문에 밤낮 뛰여다니는 사람이 그럴 시간이 있소? 글재간도 없고, 그런 일이야 학사선생에게 제격이지》 

최일만의 결심은 확고했다. 그는 한윤호의 대답은 더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거침없이 당중앙위원회 요직에 있는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면서 그 집 딸 스웨따가 잘 있는가, 자기 딸 생일이 멀지 않았는데 그때 놀러오라고 친숙한 어조로 초청까지 하는데 한윤호는 놀라다못해 아연해졌다.

한윤호는 당의 요직에 있는 그 사람을 본 일은 없지만 출판물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그는 10억루블의 원조에 대한 정보도 바로 그 사람한테서 흘러나왔으리라는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그런 사이였구나!) 

한윤호는 최일만의 배경이 막강하다는것을 알아차렸다

최일만의 방에서 나온 한윤호는 뜻밖의 헐치 않은 과제를 받아안았으나 어깨는 조금도 무겁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지금도 사뭇 가벼운 발걸음으로 대동강기슭을 산책하는것이였다. 축포는 이미 멎고 축포의 꽃보라도 더는 볼수 없었다. 하지만 잔물결이 출렁거리는 대동강을 바라보는 한윤호의 눈에는 아직도 축포의 꽃보라가 강물에 내려앉은듯 싶었다.

그는 이따금 발걸음을 멈추고 무슨 사연인가 속삭이듯 주절거리며 흐르는 대동강물결을 이윽히 바라보군 하였다. 미소가 어린듯 한 그의 가느스름히 뜬 눈에는 방금 만나보고온 최일만의 얼굴이 자주 어른거리군 하였다. 그러면 그의 가슴은 야릇한 흥분을 안고 설레는것이였다.

《오빠!》 

한윤호는 문득 옆에서 찾는 소리에 와뜰 놀랐다

경쾌하고 날씬한 몸매에 길다란 끈이 달린 까만 손가방을 어깨에 걸멘 녀동생 옥산이 방긋방긋 웃으며 활달한 걸음으로 한윤호한테 다가오고있었다

《어찌된 일이예요? 해가 서쪽에서 뜬건 아니예요? 오빠가 대동강산보를 다 하고》 

옥산이 쾌활한 목소리로 말을 붙이였으나 한윤호는 엷은 입술에 알릴듯말듯 미소만 그려붙일뿐 동생의 말에 별다른 응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옥산은 스스럼없이 오빠의 팔을 끼고는 이끌다싶이 하면서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강가에 나온 사람들이 이국풍의 두사람을 호기심어린 눈길로 쳐다보군 하였다. 두 사람사이가 어떤 관계인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는듯 한 표정들이였다. 사실 한윤호와 옥산은 생김생김이나 성격이 한피줄을 이은 남매라고는 도저히 볼수 없으리만큼 판이했다. 

영채가 도는 커다란 눈, 긴 살눈섭, 오똑한 코, 웃을 때나 말할 때면 가지런히 드러나는 백옥 같은 이발 입이 좀 큰 약점은 있었지만 옥산은 확실히 보면 다시 돌아보게 되는 미모의 처녀였다. 

그러나 세모진 작은 눈에 얄팍한 입술, 뾰족하고 날카로운 턱을 가진 한윤호는 도무지 사람들의 호감을 살만 한데가 없었다. 

성격도 판이하였다

옥산이 쾌활하고 싱싱한 랑만적인 처녀라면 그의 오빠는 칼칼하고 말수가 적으며 내성적인 무미건조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들의 부모가 두만강의 거치른 물결을 넘어 연해주의 한까호수가에 정착한것은 지난 20년대 초였다. 몇해후 부모들은 어린 남매를 이끌고 다시 누런 모래바람이 날리는 중앙아시아에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그들남매는 다같이 대학을 나왔다. 한윤호는 쏘련에서 경제학 학사학위까지 받고 조국해방전쟁전에 조국에 나왔고 옥산은 그후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전쟁이 한창인 때에 조국으로 나왔다. 남매는 모색에서나 성격에서 비슷하것이 전혀 없었으나 밭은 혈육이 없는 조국에서 그들은 각별히 다정하게 지내였다.

지금 옥산은 풍만한 앞가슴을 내밀고 자꾸만 뒤로 처지는 오빠를 이끌다싶이 하면서 활기에 넘쳐 걷고있었다

《오빠, 대동가의 풍치가 얼마나 아름다와요? 청류벽, 릉라도, 을밀대 다 평양이 명승이고 조선의 자랑인데 난 전쟁통에 변변히 돌아보지도 못했어요.》 

옥산은 달빛어린 큰눈을 반짝이며 정에 겨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한윤호는 여전히 듣기만 하고 아무런 응대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팔을 낀 동생이 이끄는대로 몸을 말없이 내맡기였다. 

《오빠.》 

옥산이 오빠를 다정한 목소리로 불렀다

《응.》 

한윤호는 마지 못해 한마디 응답했다

《오빠, 이젠 전쟁도 끝났는데 형님이랑 아이들이랑 여기에 데려내오자요.》 

옥산이 중앙아시아에 두고온 오빠네 가족들을 두고 하는 말이였다

《…》 

《오빠.》 

매사에 열정적인 옥산이 오빠를 연송 다졸랐다

《바쁘지 않다.》 

한윤호가 마뜩지 않게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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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오빤 아이들을 데리고 수고하는 형님생각도 해야지요. 오빤 정말 목석이야. 감정도 정서도 없는 목ㅡ석!》

《목석? 목석은 내가 아니라 너다.》

《예?》

옥산이 오빠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불시에 허리를 꺾으며 자지러지게 깔깔 웃어댔다.

한윤호는 동생을 엄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형님을 귀국시킬 걱정일랑 말고 네문제나 처리해라. 박순일 서기관이 불원간 조국에 나온다는 말을 들었느냐?》

한윤호가 의연 신중한 표정을 지은채 동생을 바라보았지만 옥산은 웃기만 하였다. 박순일이란 옥산이와 혼사말이 오고가는 모스크바에 있는 우리 나라 대사관의 서기관이였다.

《이번에 그 사람이 조국에 나오면 꼭 만나봐야 한다. 전쟁때에는 전쟁이라고 해서 시집갈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느냐. 그러니 그사람을 꼭 만나라. 알았느냐?》

한윤호는 다짐을 받지 못해 몹시 안달아하였다. 사물현상에 대체로 무관심하고 자기 나름의 세계에서 살고있는 한윤호였지만 하나밖에 없는 동생의 결혼문제 특히 배우자선택에 들어서서는 매우 까다롭고 요구성이 높았다. 우월감과 자존심이 강한 그는 동생을 따르는 남성들을 별반 인정하지 않았다. 동생의 배우자는 반드시 자기의 결론하에 선택되여야 하고 그래야 실수가 없다고 인정하는 그였다. 그렇다고 혼사문제를 무한정 끌수도 없었다. 혼기란 다 때가 있는 법이고 때를 놓치면 다시는 회복할수 없는것이다.

《내생각에는 서기관이 괜찮을것 같은데 이번엔 결판을 봐야겠다.》

한윤호가 오금을 박았다.

《아유, 보지도 못한 사람을 가지고 뭘 그러세요.》

옥산은 의연히 웃기만 하였다. 오빠의 말을 도무지 신중하게 받아들이는것 같지 않았다. 한윤호는 그것이 더구나 부아가 났다.

《그러기때문에 그 사람이 조국에 나오면 선을 보라는거다.》

《선?》

《그렇다!》

《호호…》

옥산이 또 허리를 꺾으며 자지러지게 웃어댔다. 속에 숨기는것이란 털끝만치도 없는 활짝 트인 솔직하면서도 꾸밈없는 명랑한 웃음이였다.

한윤호도 제풀에 비죽이 웃지 않을수 없었다.

《오빠, 그런 이야기는 그만하고 여기 부벽루와 대동강의 아름다운 경치나 감상하자요. 예로부터 <부벽완월>이라고 부벽루와 대동강의 달밤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와서 평양8경의 하나로 일러왔답니다.

저기 보이는 불타버린 절간자리에는 <영명사>란 유명한 절이 있었는데 해질무렵의 그 일대의 풍경이 또한 아름다와서 <영명심승>이라고 역시 평양8경의 하나로 일러왔지요…》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한 옥산은 열정적으로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한윤호는 덤덤한 표정으로 듣기만 하다가 영문모를 코소리만 킁킁 울리였다.

《오빠한테 한가지 재미나는 이야기를 들려줄가요? … 오빤 저 릉라도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르지요?》

옥산의 커다란 눈이 즐겁게 웃고있었다.

《…》

한윤호는 대답대신 허리를 구부정하고 걷기만 하였다.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느라면 성천이라는 곳이 나지는데 저 릉라도는 본래 그곳에 있던 섬이였대요. 어느 해인가 장마가 몹시 졌는데 그때 하루밤사이에 저 릉라도가 성천에서 여기로 떠내려왔다지요.》

《허튼소리.》

수자와 사실만을 절대시하는 한윤호는 동생의 감상적인 말을 애초에 귀담아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옥산은 혼자서 줄창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성천에서는 릉라도가 없어져서 소동이 일어났지요. 그래 찾아보니 여기 평양의 한복판에 내려와있지 않겠어요. 욕심쟁이 성천부사는 평양사람들더러 제땅이 여기 와있으니 땅값을 내라고 을러댔다고 합니다.

평양사람들은 어이가 없어서 그럴것없이 릉라도를 도로 끌어가라고 말했지요. 성천부사가 아무리 욕심쟁이라로 릉라도를 끌어갈수 있겠어요? 그때부터 저 릉라도가 영영 평양의 땅이 되고말았답니다.》

두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대동강우에 둥실 뜬 릉라도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너는 어느사이 그런 이야기까지 들었느냐?》

한윤호가 놀랍다는듯 동생의 얼굴을 빤히 지켜보며 물었다.

《나는 조국에 대한것이라면 무엇이나 다 보고 다 알고싶어요. 오빠, 우리 나라 철도가 언제 복구되여 려객들을 취급할것 같아요?》

한윤호는 똑똑한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래도 옥산의 즐거운 기분은 조금도 흐려지지 않았다. 옥산은 철도가 복구되여 려객렬차가 다니기 시작하면 선참으로 복구건설에 일떠선 조국의 방방곡곡을 돌아보겠다고 말하였다.

《불타는 조국땅을 처음 밟을 때만 해도 종군기자가 되리라 결심했었는데 그동안 류학생강습소에서 교원으로 세월을 보냈어요. 이제 비로소 소원이 성취되여 당보의 녀류기자가 되였으니 마음껏 나래를 펴야겠어요.》

동생의 리상은 대단하였다. 동생은 개방적인 성미그대로 오빠앞에서 그 리상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았다.

《가까운 강선제강소, 황해제철소도 가보고 동해천리도 밟아보겠어요. 아버지, 어머니들이 늘 외우던 고향의 바다가 쌍바위포구도 찾아보고…

 

   아, 못 잊을 쌍바위포구!

   너를 그리고 그리던 이 딸이

   스무해만에 너의 품에 안겼노라…

 

어때요?》

한편의 시나 읊듯이 열정에 넘쳐 웨치던 옥산은 오빠를 돌아보고 그만 실망해버리고 말았다.

동생의 리상과 포부에는 아랑곳없이 오빠는 자기 생각에만 골몰하고있었던것이다. 한윤호의 머리속에서는 쏘련의 원조가 와닿을 날은 과연 언제일가, 그날이 빨리 왔으면… 이런 생각들이 한순간도 떨어질줄 몰랐다. 닭알낟가리를 올려도 가리고 내려도 가리는식으로 막대한 원조가 실현될 그날을 눈앞에 그려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는 그는 옥산의 말을 귀등으로 흘리며 거의나 동생이 이끄는대로 기계적으로 걸음을 옮겨놓을뿐이였다.

《오빠!》

약이 오른 옥산이 우뚝 멈춰서며 오빠에게 눈을 흘기였다.

《엉?》

《오빤 정말 목석이야!》

그는 조금전에 한 말을 앙깊음하듯 톡 내쏘았다.

《목석? 허허…》

한윤호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리자 옥산은 그것이 더 재미있다는듯 박장대소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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