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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길 제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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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2,291회 작성일 20-02-26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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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축포가 오른다!》 

누구인가 강선의 밤길을 달리며 소리쳤다. 이집 저집에서 문들이 벌컥벌컥 열리며 숱한 사람들이 뛰여나와 그의 뒤를 따라 달리였다. 강선땅 초입에 높이 솟은 달마산에는 용해공, 압연공, 연공을 비롯한 강선사람들이 하얗게 뒤덮였다. 

오랜 옛적에는 달마산을 달맞이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8월 대보름날 소나무가 울창하고 벽계수가 기슭을 적시는 풍치수려한 달마산에 올라 쟁반같은 달이 불끈 솟아오르는것을 보는것은 그야말로 장관이였다. 어느 해인가 하늘의 선녀들이 인간세상을 굽어살피며 천지간에 제일 아름다운 고장이 어데일가 찾아보다가 마침내 달마산일경을 내려다보고는 이보다 더 좋은곳이 어디 있겠는가고 감탄하며 저마다 앞을 다투어 무지개를 타고 이곳에 내렸다고 한다.

강선이란 지명도 이로부터 유래되였다는것이다.

그러나 지난 전쟁 3년간 강선사람들은 그처럼 흥취를 돋구던 달마산에서의 달맞이도 거의나 해보지 못하였다. 그러던 그들이 지금 달마산에 올라 수도의 하늘에 팡긋팡긋 피여오르는 축포의 꽃보라를 바라보며 저마다 환성을 올리는것이였다.

《금희야!》 

《옥금아!》 

《아버지, 여기가 잘 보여요!》 

수도의 하늘이 잘 보이는곳으로 오라고 서로 부르며 찾는 목소리

《히야!》 

《정말 멋있구나!》 

여기저기서 터져오르는 환희의 목소리

그 사람들속에는 강선제강소 기사장 리웅천이도 있었다. 날파람 있어보이는 후리후리한 몸매, 높은 이마를 반나마 가리운 새까만 고수머리, 바투 다가붙은 굵직한 눈섭, 열기가 있는 부리부리한 눈, 꾹 다문 두툼한 입술 어딘가 만만찮게 보이는 얼굴에 격동의 빛이 어리였다. 

《수령님!》 

이윽고 그의 두툼한 입술사이로 그리움에 사무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전화의 그날 수도의 잊을수 없는 내각의 갱도사무실에서 그이를 뵙던 그 감격이 다시금 가슴을 후덥게 해주었다

그날 한 군관의 안내를 받으며 천정이 궁륭식으로 된 갱도집무실에 들어섰을 때 수령님께서는 그를 알아보시고 무척 기뻐하시였다.

《우리가 처음 만난것이 언제더라?》 

수령님께서 리웅천에게 물으시였다

《수령님께서 광복직후 강선제강소로 오시였을 때였습니다.》 

《그렇지, 생각나오. 그때 리웅천동무는 압연기사로 일했지.》 

《예.》 

이어 그이께서는 방에서 먼저 와있은 장령, 군관들옆에 앉으라고 손짓하시였다. 어디선가 멀리에서 대공화력이 불을 뿜어올리는 소리가 갱도집무실에 들려왔다. 

쿠궁 쿵! 포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잦아지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리웅천의 뒤로 들어온 사민 몇사람을 더 만나주고 빈자리를 손짓하신 다음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오늘 동무들을 이렇게 부른것은 새로운 중요한 임무를 맡기기 위해서입니다.》 

리웅천은 숨을 죽이였다. 그이께서 마주앉으신 책상우에 펼쳐진 작전지도인듯 한 붉고 푸른 줄이 건너간 지도가 그의 눈에 류달리 의미심장하게 비쳐들었다.  

《동무들도 잘 알고있겠지만 지금 전선형편은 우리에게 매우 유리하게 전변되고있습니다. 적들은 정전담판의 막뒤에서 저들의 참패를 만회해보려고 갖은 책동을 다하고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습니다. 동무들도 최근 전선동부에서 적들에게 섬멸적타격을 안겨준 작전들이 련속 벌어졌다는것을 잘 알고있을것입니다. 

적들에게 이제는 다른 출로가 없습니다. 가까운 앞날에 적들이 무릎을 꿇고 정전협정에 수표하리라는것을 확신성있게 말할수 있습니다.》 그이께서는 정전담판을 둘러싸고 복잡하게 뒤엉킨 최근 정세를 명쾌하게 분석하시였다. 《우리가 진행하고있는 이 전쟁은 어치피 우리의 승리로 종결됩니다. 그것도 매우 빠른 시일안에 그렇게 될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린 얼마전에 나라의 복구건설에서 중추적역할을 수행할 중요 공장, 기업소들에 새로 지배인, 기사장을 파견하기로 하였습니다. 동무들이 오늘 여기에 오게 된것도 바로 그때문입니다.》

모두들 놀랐다. 리웅천은 자기가 전쟁승리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할수 있는 새로운 전투임무를 받게 되리라고 짐작한것이 어방없이 빗나갔다는것을 깨닫자 놀람과 함께 저으기 당황해나기까지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새로 임명된 지배인, 기사장들을 발표하시였다. 리웅천의 앞에 앉은 한 공군장령은 흥남비료공장 지배인으로, 다른 장령은 남포제련소 지배인으로 임명되였다. 리웅천의 차례가 되였다.

그이께서는 리웅천을 바라보며 애정이 담뿍 흐르는 어조로 말씀하였다

《우린 이번에 병기생산부문 수훈자명단을 검토하다가 리웅천동무의 이름을 보게 되였습니다. 동무를 제강소에서 직접 본것만치나 기뻤소. 우린 동무가 강선제강소 실정에 밝은것을 고려하여 제강소 기사장으로 임명하기로 하였습니다.》 

순간 감격에 북받친 리웅천은 눈굽이 확 뜨거워져 고개를 떨구고말았다. 그이께 무슨 말씀인가 올리고싶었으나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의 가슴속에서 심장만이 세차게 쿵쿵 흉벽을 울릴뿐이였다. 

이윽고 자신을 다잡은 리웅천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수령님, 수령님의 신임에 꼭》 떨리는 그 목소리는 정숙이 깃든 방안에 파문을 일으키며 사람들의 가슴속에 젖어들었다. 

그이께서는 미더운 눈길로 한동안 리웅천을 바라보시다가 다음 사람에게로 천천히 눈길을 돌리시였다

이윽고 발표를 끝내신 그이께서는 자리에 앉으시여 대견한 눈길로 새로 임명된 일군들을 한사람한사람 여겨보시였다.  

《페허가 된 나라를 복구건설하는데서 동무들이 받아안은 책임이 매우 무겁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포화가 멎는 즉시 전쟁의 상처를 가셔내기 위한 복구건설에 돌입하여야 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때까지도 책상우에 펼쳐진채로 놓여있던 지도를 조금 들어보이시였다

《이 지도에 붉은 줄을 그어놓은것은 송전선이고 푸른 줄로 표시한것은 철도선입니다. 푸른 줄에 겹쳐 붉은 줄로 덧그어은것은 앞으로 철도전기화를 하자는 구간이고 

동무들도 알겠지만 전후복구건설을 다그치자면 파괴된 철도와 송전선부터 복구하여야 합니다. 그와 함께 황해제철소와 강선제강소, 흥남비료공장, 남포제련소를 비롯한 중공업부문의 중요 공장, 기업소들을 먼저 복구하는데 달라붙어야 합니다.》 

리웅천은 책상우의 지도가 전쟁의 최후승리를 앞당길 작전지도가 아니라 전후복구건설에 대한 구상이 펼쳐진 도면의 하나라는것을 알아차렸다

전등불이 밝게 비치는 갱도집무실에 숙연한 정적이 깃들었다. 고도를 높이 잡은듯 한 적기의 폭음이 전혀 딴 세상에서 들려오듯 지하의 갱도로 스며들어와 집무실의 정숙한 공기를 가늘게 휘저어놓았다. 폭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높아지고 대공화력이 불을 뿜어올리는 소리가 이제는 퍼그나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갱도에 지진파가 물결쳐오자 전등이 흔들거렸다

《우리는 최단기간내에 페허가 된 이 강토를 일신시켜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우리는 기계제작공업을 핵으로 하는 강력한 중공업을 창설하고 경공업과 농업도 발전시켜야 합니다. 이제 멀지 않아 우리의 거리로는 우리가 생산한 자동차가 달릴것이고 뜨락또르의 보습날이 수천년 가난에 쩌들어온 이 땅을 갈아엎을것입니다.》 

이때 머리우 어디선가 강력한 폭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갱도집무실이 지진을 일으킨듯 부르르 진동하였다. 순간 천정의 전등이 흔들거리다가 전기불이 꺼져버렸다. 그러나 그것은 일순간의 일이고 인차 일곱대의 초불이 방안을 환히 밝혔다. 방안의 사람들은 그때에야 그이의 책상우에 은백색도금을 한 초대와 고사포형의 탁상라이타가 놓여있었다는것을 알았다.

둔중한 폭음이 다시 갱도집무실을 뒤흔들었다. 조금전보다 훨씬 진폭이 큰 진동이였다. 땅속 깊은 곳에서도 지진이 일었다. 방안의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다음번의 폭음을 기다리며 신경을 긴장시켰다. 그러나 그러한 폭음은 더는 들려오지 않고 대공화력이 불을 뿜어올리는 소리만이 숨막힐듯한 정적을 깨뜨렸다.

《우리는 미제국주의자들이 공화국북반부에서 흔적조차 없애버리겠다고 장담한 그 78개 도시를 포함하여 우리 나라의 도시와 농촌들을 가장 현대적으로 새롭게 일떠세울것입니다. 평양시만 보더라도 한쪽으로는 보통강을 끼고있고 중심부에는 모란봉을 가운데두고 남산, 룡남산봉우리들이 련결되여 마치도 날아가던 기기떼가 내려앉은것 같은 아주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그러나 왜정때의 평양시는 비문화적이고 기형적이였습니다. 문화시설도 적었고 공원이나 광장도 변변한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평양을 단순히 원상대로 복구할것이 아니라 새롭게 현대적인 아름다운 도시로 일떠세워야 합니다. 모란봉에서 대동강을 따라 평행으로 대통로를 새로 뽑고 중앙광장을 앉힌 다음 로동자아빠트와 려관 그리고 대동교 가까이에는 세계적인 대극장과 역사 그리고 학교와 병원, 유원지들을 배치하자고 합니다. 

우리는 력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나라의 공업화를 완성하고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으며 기와집에서 살려는 우리 인민의 세기적인 숙원을 실현하려고 합니다.》 

그이의 열정적인 목소리가 다시 방안을 꽉 채웠다

이때 전등불이 불그레해졌다가 인차 밝아졌다. 리웅천은 갱도안 어디선가 퉁퉁거리는 자체발전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의 이 원대한 리상을 실현하자면 이 땅에서 포화가 멎는 즉시 복구에 달라붙어 3년안에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 전쟁전수준을 돌파하여야 합니다. 다시말하지만 3년입니다, 3년! 복구기의 방대한 과제를 3년동안에 끝내야 합니다. 그것도 단순히 전쟁전의것을 원상회복하는 그런 복구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번 전쟁의 엄혹한 시련을 통하여 자동차부속품 하나 만들수 없는 한심한 형편을 얼마나 안타깝게 생각했습니까. 이것이 바로 일제가 우리에게 물려준 기형적인 식민지공업의 유산입니다.

우리는 결코 이러한것을 단순히 원상복구하는것으로 만족할수 없습니다.》

리웅천은 여전히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그이의 말씀을 듣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나라가 말그대로 재더미로 되였고 머리우에서는 지금도 적들의 폭격이 계속되고있는데도 이처럼 락관에 넘쳐 말씀하시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한장의 벽돌, 한그람의 세멘트, 한토막의 철선도 바르기 그지 없는 나라의 형편에 대하여서도 전혀 념두에 두지 않으시는것 같았다. 

그이께서는 리웅천의 이 속생각을 금시 들여다보신듯 확신에 넘친 어조로 말씀을 덧붙이시였다

《물론 이 모든것은 아직은 리상입니다. 미래입니다. 그러나 이 리상과 미래는 령토가 있고 인민이 있고 당과 주권이 있는 이상 기어이 현실로 전환될것입니다.》 

그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그러자 그이를 마주 향해 앉았던 사람들도 격동된 심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이께서는 잠시 말씀을 멈추고 새로운 전투임무를 받은 사람들의 흥분된 얼굴을 다시금 찬찬히 둘러보시였다. 그들이 다지는 결의들을 그 얼굴에서 읽으시려는것 같았다. 

《동무들, 나라의 복구문제와 관련하여 제기하고싶거나 더 할 말이 없겠습니까?》 

그이께서 환히 웃으며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물으시였다

《없습니다.》 

공군장령이 모두를 대표하여  힘있게 대답을 올리였다

《동무들은 빨리 자기 공장, 기업소들에 내려가 대담하면서도 통이 큰 복구계획을 세우고 포화가 멎는 즉시 복구에 달라붙어야 하겠습니다. 

복구전투장에서 우리 다시 만납시다.》 

김일성동지께서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그러자 감격과 격동에 휩싸인 일행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이의 곁을 떠날 시각이 되였던것이였다.

리웅천이 일행과 함께 가루개언덕아래 세거리로 나섰을 때는 이미 공습경보 해제고동이 울린 뒤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이제 전쟁이 끝나면 세계적인 대극장이 일떠설것이라고 하신 바로 그 대동교근방에서는 하늘땅을 붉게 태우며 세찬 불길이 황황 치솟고있었다. 적들의 야간폭격비행대가 소이탄을 뿌려던진것이였다. 불길은 페허의 바다우에 스산하게 서있는 찌그러진 굴뚝들이며 허리부러진 전주들과 가로수들, 무너지다 남은 벽체들을 불그레하게 비치고있었다.

잊을수 없는 그날의 사연을 더듬는 리웅천의 눈앞으로 물기가 번들거리는 동발들이 그대로 드러난 갱도, 엷은 합판으로 어슬터슬한 바위벽을 대충 둘러막은 그 비좁고 검소한 방에서 이 땅의 아름다운 미래에 대하여 감명깊게 펼쳐보이시던 그분의 락관에 넘친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그이의 기대는 비할바없이 큰데 전사들의 더운 피로 전쟁의 최후승리가 마련되고있던 그때 자기자신은 후방에서 별로 한 일도 없이 시간을 보낸것 같아 죄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는 누구도 모르게 달마산을 내려 제강소정문쪽으로 걸음을 다그쳤다. 제강소정문 가까이에 그의 숙소이자 기사장사무실로 된 반토굴이 있었다. 천정이 낮고 비좁은 반토굴장판방에 유표하게 눈에 띄는것은 방복판에 덩실하게 놓인 커다란 책상이였다. 

리웅천은 그 책상에 마주앉아 주먹으로 턱을 고이고 한동안 책상우에 펼쳐놓은 제강소복구도면을 들여다보았다

대담하고 통이 큰 복구계획을 세우고 포화가 멎는 즉시 복구에 달라붙어야 한다고 간곡하게 당부하신 그이의 말씀이 다시금 귀전에 울려왔다. 

《아니다, 이대로는 복구할수 없다.》 

혼자소리로 중얼거린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장판방을 성급하게 왔다갔다 하였다. 그러다 책상가녁에 두손을 벌려짚고 제강소복구도면을 처음 보기나 하는것처럼 또다시 뚫어지게 들여다보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리웅천이 기사장으로 임명되여오기전에 제강소지배인이 주관하여 작성한 복구도면이였다.

조강직장부터 복구할것으로 타산한 복구순차, 전기로와 분괴압연기의 생산능력을 전쟁전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것으로 본 복구규모

그 모든것이 리웅천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확실히 차승룡지배인이 주관하여 작성한 복구안은 원상회복에 만족하는 소극적인것이였다. 하다면 먼 앞날까지 내다보는 적극적인 복구안은 어떻게 되여야 하는가? 

리웅천의 눈앞에는 본래의 형체조차 찾아보기 힘든 제강소의 참혹한 파괴상이 떠올랐다. 시퍼런 물이끼가 구지레하게 깔린 폭탄구뎅이들이 쑥대가 무성하게 자라는 제강소구내와 주변에 한벌 뒤덮여있었다. 

리웅천은 이마전에 내리덮인 고수머리를 움켜잡고 육체적고통이라도 당하는듯이 신음소리를 내였다. 그러지 않아도 성미가 급하고 괄괄한 그는 속에 불이 당긴 사람처럼 참지 못하고 다시금 성급하게 방안을 오락가락하였다. 그러다가는 또다시 책상우에 두손을 벌려짚고 제강소복구도면을 이윽토록 들여다보군 하였다.

 

《누구야?》 

리웅천은 누구인가 살그머니 반토굴집으로 들어와 뒤로 눈을 감싸는 바람에 화닥 놀라 소리쳤다

《나 달마산호랑이다.》 

억지로 짜내는듯 한 《남자》의 궁글은 목소리

《뭐 호랑이?》 

리웅천은 자기 눈을 감싼 두손을 움켜잡았다. 보드랍고 말랑말랑한 두손, 남자의 손은 아니였다. 그렇다면 이런 엉뚱한 장난질을 할만큼 자기와 허물없이 지내는 녀성이 강선일판에 있기나 한가? 

리웅천은 눈을 감싼 두손을 풀어헤치려고 하였으나 장난군은 그럴수록 점점 드세게 힘을 주었다

《야, 야, 눈알이 빠진다! 이것 놓지 못하겠니?》

《달마산호랑이, 명절날 놀줄도 모르는 사람 잡아가려고 왔다.》 

능청스러운 장난군은 두손에 힘을 주느라 쌕쌕 단숨을 뽑기까지 하였다

《허허…》 

리웅천은 웃을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아버지》 

다섯살잡이 아들애 일남이 부르는 소리에 비로소 막혔던 눈앞이 확 열리였다

《너 금희로구나!》 

《호호호!》 

처녀의 자지러진 웃음소리, 리웅천이 혼찌검을 내주려고 팔을 쳐들자 금희는 날씬한 몸을 비틀며 어느사이 바람같이 빠져달아나고 대신 일남이가 아버지의 눈치를 할끔할끔 살피며 그의 발치에 서있었다. 

《아저씨, 우리 집에서 모두들 기다려요, 일남이 엄마랑》 

금희가 생글거리며 재촉했다. 그제야 리웅천은 안해 분임이 모두들 전승명절을 즐기는 이 저녁에도 남편을 찾아올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 전쟁전에 이웃에서 함께 산 금희네 집에 와있으면서 금희와 일남이를 보냈다는것을 알아차렸다. 안해와 아들애는 지금도 전쟁시기에 소개해가있던 달마산골짜기 막바지에서 살고있었다. 리웅천은 강선에 온 첫날부터 제강소와 퍼그나 떨어진 집에 거의나 들어가지 못하고 현장 가까운 반토굴사무실에서 자취를 하고있었다. 

《아버지.》 

일남이가 주눅이 든듯한 낮은 목소리로 다시 재촉했다

일남이는 어쩐지 아버지를 두려워하였다. 하긴 아들애와 여러 해 떨어져있었고 지금도 현장에서 줄곧 숙식을 하다보니 언제 한번 그애를 품에 따뜻이 안아볼 틈도 없었다. 

피기없는 창백한 얼굴, 파란 정맥이 드러나보이는 이마와 가는 목 전쟁피해는 이애에게도 미치고있었다. 그래서인지 리웅천은 언제나 아들애의 요구라면 꼼짝 못하고 응하군 하였다. 이것을 잘 알고있는 안해가 이번에도 금희한테 잊지 않고 아들애를 달려보낸것이다

《엄마가 보내서 왔느냐?》 

새삼스레 아들애에게 묻는 리웅천의 눈앞에 다소곳이 머리숙인 안해의 아련한 자태가 떠올랐다

늙은 부모들의 강요에 못이겨 때이르게 억지결혼을 한 리웅천은 결혼식을 한 다음날에 일거리를 찾아 고향인 충청남도 천안의 산골마을을 떠났다. 고향집에서 철도역까지는 60리가 잘되였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한것을 더없이 부끄럽고 창피하게 생각한 리웅천은 안해가 역까지 따라오며 바래워주는것을 질색하였다. 그는 주먹을 내흔들며 어린 안해가 자기를 따라서지 못하도록 윽박질렀다. 그래도 안해는 따라왔다. 그는 고개마루에서 저만치 머리를 떨구고 서있는 안해에게 발을 탕탕 구르며 어서 돌아가라고 소리소리 질렀다. 그리고 더이상 따라오지 못하도록 역으로 줄달음을 쳤다. 

기차에 오른 그는 미심결에 역전을 내다보았다. 역전에는 푸른 가지를 실실이 드리운 버드나무 한그루가 서있었는데 그 버드나무뒤에 검정치마에 반회장저고리를 입은 한 녀아가 작은 몸을 가리우고 서서 금시 떠나려고 목갈린 기적소리를 울리는 렬차를 바라보고있었다. 리웅천은 그가 바로 자기의 어린 안해라는것을 대뜸 알아보았다. 

안해는 울고있었다. 리웅천은 갑자기 코허리가 시큰해지면서 알수 없는 사랑과 련민의 정이 북받쳐올라 눈물을 떨구었다. 

일본에서 갖은 고역을 다 치르며 고학으로 간신히 대학까지 마친 그는 광복직전에 강선제강소에서 압연기사로 일하게 되였다

일본의 패망과 함께 강선제강소에 와있던 일본놈들은 살 구멍을 찾아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그때 목이 밭고 가슴이 딱 바라진 유도선수라고 으시대는 한 일본인기술자가 있었다. 그놈은 분괴압연기의 중요도면을 가지고 도망치면서 조선사람은 백번 죽었다 살아나도 분괴압연기만은 돌리지 못할것이라고 뇌까렸다. 남달리 의협심이 강한 리웅천은 이 사실을 뒤늦게야 알고 도망치는 그놈을 뒤쫓아 대동강부두에까지 나가 멱살을 움켜잡았다.

《이놈아! 조선람이 뭐 어째고 어째? 조선사람의 재간이 어떤가 어디 맛을 봐라!》

리웅천은 이렇게 소리치며 유도깨나 한다는 그놈을 허궁 들어 감탕판에 멨다 꽂고 중요설비도면을 빼앗아냈다

이 일이 있은후 리웅천은 고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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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자기까지 안해와 일가친척들이 있는 남으로 나가면 일본놈기술자가 떠벌인것처럼 나라의 외아들 분괴압연기를 돌려낼 사람이 진짜 없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가 순시도 그의 머리속에서 떠날줄 몰랐던것이다. 분괴압연기와 함께 북에 남느냐, 안해와 일가친척들이 있는 남으로 나가느냐 하는 운명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있을 때 강선제강소를 현지지도하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리웅천을 찾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리웅천이 일본인기술자한테서 도면을 빼앗아낸 이야기를 듣고 크게 웃으시였다.

《나와 같이 손잡고 나라의 야금공업을 일떠세웁시다.》

그날에 하신 그이의 이 뜨거운 말씀은 리웅천의 운명을 결정해주었다.

수령님께서는 그후 한 일군을 남에 보내여 그의 안해까지 데려다주시였다.

연분이란 참으로 이상한것이였다. 강요에 못이겨 조혼한 그들이였지만 후날 강선에서 다시 만났을 때에는 퍽 숙성해지고 부부사이의 금술이 또한 남들이 시샘할 정도로 좋았다. 그것은 신기하게도 가버린 청춘이 다시 꽃펴난듯 한 신혼시절이였다.

리웅천은 뒤늦게나마 안해를 깊이 알수록 그에게 정이 들고 사랑이 가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남편앞에서도 걸핏하면 얼굴을 붉히고 눈을 내리까는 순진하면서도 아련한 자태, 웃을 때마다 두볼에 귀인상스러운 볼우물을 짓군 하는 안해가 보기드문 미인이라는것을 처음 발견하는것만 같았다. 그들사이에는 어느덧 토실토실한 사내애까지 태여났다. 그애가 바로 일남이였다.

그시절 리웅천은 강선제강소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곳 토배기인 이름난 용접공 림형관이네와 처마를 잇대고 살았다. 몸은 체소하지만 쇠망치처럼 단단하게 생긴 림형관은 리웅천이보다 나이가 거의 스무살이나 우였다. 그래서인지 림형관이네는 북에 혈붙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젊은 리웅천의 부부를 친혈육처럼 각근히 돌봐주었다. 금희는 림형관의 막내딸이였다.…

《아저씨, 빨리 가자요.》

금희가 가는 눈을 생긋거리며 고집스럽게 다졸랐다. 그러자 일남이가 용기를 내여 아바지의 팔을 잡아끌었다.

《허허, 그럼 가야지.…》

리웅천은 일남의 손을 잡고 사무실을 나섰다.

제강소정문에서 지척에 바라보이는 달마산아래에는 오래전부터 꾀꼴동네와 쪽우물동네라고 불리우는 두 동네가 있었다. 꾀꼴동네는 꾀꼬리가 많아서 그렇게 불렀고 쪽우물동네는 쪽박으로 푸는 샘치우물이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

그 쪽우물옆에 림형관이네 단층기와집이 있었다. 전쟁 3년간 적들의 폭격을 당하지 않고 성한채로 남아있는 강선바닥의 몇채밖에 안되는 집가운데 하나였다.

리웅천은 림형관이네 집으로 올라오던 길에 쪽우물가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림형관이네 집에서 쏟아져나오는 불빛이 주위를 대낮처럼 환하게 밝히고있었다. 창문을 두텁게 쳐놓았던 차광막들이 마침내 모두 벗겨진것이다. 리웅천의 가슴은 짜릿하게 설레였다.

《아니 쪽박까지 띄워놓고…》

리웅천이 샘치우물을 들여다보고 감탄했다.

《쪽박이 없이야 무슨 쪽우물이겠나. 날씨가 찌물쿠는데 물맛이나 보게.》

리웅천을 마중나온 림형관이 빙그레 웃으며 권했다.

리웅천은 네모 방정한 돌들을 동그랗게 차곡차곡 올리쌓은 우물에 허리를 구부리였다. 하얀 조약돌을 깔아놓은 바닥에서 모래를 뿜어올리며 샘치물이 기세좋게 콸콸 치솟고있었다. 벌써 신선한 샘치우물이 땀에 뜬 얼굴을 식혀주고 가슴을 후련히 열어주었다.

《어, 시원하다. 세월은 갔지만 물맛은 여전하구만.》

리웅천은 연송 감탄하며 쪽박으로 샘치물을 마시였다.

림형관이네 집 웃방에는 림형관이와 동년배인 오랜 용해공, 연공, 전공들이 한구들 모여있었다. 그들은 모두 리웅천이도 잘 아는 사람들이였다. 다만 눈덩이같이 흰 색갈의 바탕에 불그레한 줄무늬가 간 이국풍의 와이샤쯔를 입은 한 젊은이만은 처음 보는 얼굴이였다.

《신철이, 인사를 하라구. 우리 기사장동지야.》

림형관이 리웅천에게 낯선 젊은이를 소개하였다.

리웅천은 신철이라는 두자 이름을 제강소기술자들의 명단에서 이미 본바있었다. 그래서 몇번 그를 만나보려고 했으나 출장중이 아니면 공교로운 일들이 생기여서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하고있었다.

리웅천은 신철을 유심히 뜯어보았다. 둥글넙적한 얼굴과 나이에 비해 우람찬 체구는 이국풍의 줄무늬와이샤쯔만 아니였다면 무척 순박하고 온화해보였을것이다.

리웅천은 호기심을 품고 신철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그런데 신철은 그때마다 대답대신 소리도 내지 않고 씩 웃기만 하였는데 웃음이 하도 순진하고 소박해서 리웅천이도 덩달아 웃지 않을수 없었다. 대답은 림형관이 대신했다.

신철의 고향은 성진제강소 가까이에 자리잡고있는 바다가마을이며 전쟁초기에 대학졸업반에서 공부하다가 전선으로 나갔다는것, 대학생들을 전선에서 소환하여 외국류학을 보낼 때 신철이도 쏘련류학을 갔다가 이번에 돌아왔다는것, 신철은 지금 자기네 웃방에 거처하고있는데 방금 출장지에서 돌아왔다는것, 림형관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대략 이러하였다.

《신철이, 그걸 기사장한테 보여드리라구.》

림형관이 신철에게 권고했으나 신철은 얼굴을 붉히며 어색한 웃음을 지을뿐이였다. 이때 아래방에서 금희가 어느사이 웃방으로 올라와 이불장우에 얹어놓았던 트렁크 하나를 들어서 신철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는 아래방에 있으면서도 웃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있은것이 분명하였다.

신철이 다시한번 싱긋 웃고는 트렁크뚜껑을 열었다. 모두들 일시에 호기심을 품고 트렁크를 들여다보았다.

《도면들이 아니요?》

리웅천의 입에서 놀란 목소리가 튀여나왔다. 신철이 머리를 반쯤 들고 역시 한번 씩 웃어보이는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림형관이도 말없이 벙글써 웃고 금희도 실날같은 가느다란 눈을 더구나 가늘게 뜨고 줄곧 생글거리는것으로 보아 그들사이에는 이미전에 벌써 트렁크도면들을 자기네 기사장한테 보이기로 의논이 있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리웅천은 뜻밖에 손발이 맞는 훌륭한 조수를 얻은것 같아 기쁘기 그지 없었다.

《야, 이 젊은이 정말 보통내기가 아니구만.》

리웅천은 감탄했다. 그는 트렁크의 도면들을 걸탐스럽게 들여다보았다. 모두가 구하기 힘든 귀한 도면들이였다.

《가만, 이건 제강부문에서 쓰는 도면이 아니요?》

《옳습니다.》

《신식도면 같구만.》

《예.》

신철은 순박하게 생긴 얼굴모양그대로 말도 아주 솔직하게 하였다. 자기가 가지고온 도면의 금새를 높이려고드는 엉큼한 심보는 전혀 찾아볼수 없었다.

《야, 이 사람, 그 트렁크에 옷가지 같은 재산들만 꽉 들어찬줄 알았더니 온통 책과 도면들뿐이구만.》

리웅천은 청년의 어깨를 허물없이 툭 치며 거듭 감탄했다.

《그게 바로 큰 재산이지.》

 림형관도 신철을 무척 대견해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부엌에서는 사택마을의 여러 아낙네들의 소곤거리는 말소리와 웃음소리, 칼장단소리가 그칠줄 몰랐고 금희는 봄바람처럼 가볍게 부엌에서 아래방으로 오르내리며 음식을 날랐다.

리웅천은 자기 안해도 그 부엌에 있다는것을 느꼈다. 아니나다를가 빠끔히 열린 사이문짬으로 자기를 건너다보는 반가움에 넘친 한쌍의 까만 눈동자를 보았다. 남몰래 반기는 안해의 그 눈동자를 보자 리웅천은 가슴이 후더워졌다.

《이만하면 전쟁승리를 경축하는 연회상이라고 당당히 말할수 있지.》

얼굴이 불깃해진 림형관이 자못 호기어린 말을 터치자 모두들 연회상 못지 않다고 맞장구를 쳤다.

리웅천은 원래 술이란 말만 들어도 얼굴만 찡그리는 사람이지만 이날 저녁에만은 권하는대로 술잔을 받아 마시였다. 그것을 보고 누구보다 좋아한것은 림형관이였다.

그러나 대여섯순배 술잔이 돌자 리웅천은 더는 마시지 못하겠다고 상에서 물러나 앉아서는 신철의 도면트렁크를 끌어당겼다.

《제강소복구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말라구. 제강소는 재더미가 되였지만 우리들이 이렇게 살아있고 중요설비들도 남아있지 않나. 필요한 도면들도 있고…》

림형관이 리웅천을 위안하였다.

이날 밤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설 때 림형관이 리웅천의 팔을 붙잡았다.

《오늘 저녁엔 집으로 가보라구. 일남이 에미도 와있지 않나…》

《시간이 없습니다. 사무실에서 할 일도 있고…》

리웅천이 이렇게 말하자 금희가 팔에 매달리였다.

《아저씨, 언니더러 일남이를 데리고 이밤에 달마산골짜기로 혼자 들어가라는거예요? 달마산호랑이가 폭격에 다 달아난줄 아세요?》

《허허…》

리웅천은 허거프게 웃고말았다. 토방을 내려서던 그는 자기앞에 안해가 고개를 떨구고 다소곳이 서있는것을 보았다. 말없는 그 아련한 자태는 몇백마디의 말보다도 더 강렬하게 남편더러 이밤만은 혼자 가버리지 말아달라고 애원하고있었다.

《아버지.》

일남이가 아버지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놓지 않았다.

《일남아, 이러면 못써. 오늘밤엔 여기서 엄마랑 금희누나랑 함께 자거라. 그러지?》 리웅천은 아들애를 달래고는 안해를 돌아보았다.

《그렇게 하오. 난 시간이 없소. 오늘밤에 새 복구도면을 완성해야 하오. 전쟁도 끝났는데 복구에 달라붙어야 하지 않소.》

리웅천은 결연히 림형관의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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