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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50년 여름 제2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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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6,715회 작성일 20-02-19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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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장

 

포위! 이것은 전멸을 의미하는 말이다. 7월 19일 밤 대전시가는 완전포위속에 들었다. 54사 16련대는 대전서남쪽 6지점에, 905땅크사단과 협동작전을 벌린 54사 5련대는 대전서북쪽 10지점에, 53사 9련대는 대전 동북쪽계선인 읍내리에 이르러 시가방어의 량익에 철통같은 담벽을 쳤고 북쪽에서는 53사주력이 남쪽에서는 54사 18련대가 대전의 앞뒤 숨통을 막아놓았다.

이렇게 형성된 강철같은 고리환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좁혀져들어갔다.

워커의 미8군사령부가 이것을 깨닫게 된것은 영동-대전도로를 따라 전진하던 미1기병사단 선견땅크대가 어데서 솟아났는지 모를 《유령》같은 공산군들의 매복에 걸려 송두리채 괴멸되였다는 보고를 받은 다음이였다.

띤사단장과 마찬가지로 채병덕의 《인민군배후진출설》을 겁쟁이의 신경과민으로 평가했던 워커는 이 리해할수 없는 사태에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래여 도꾜의 맥아더를 통신실에 불러내지 않을수 없었다.

맥아더는 워커의 절망적인 넉두리에 피반령계선진출사단인 인민군52사의 대전접근을 불허하라고, 인민군52사가 대전후면포위를 완성하지 못하는 한 대전은 고수될것이라고 욕설절반 위안절반의 으르렁거림으로 대답한 후 20일아침 강력한 비행대타격으로 1기사의 진출로를 봉쇄한 《인민군게릴라》를 소멸하고 1기사의 대전지원을 완료하며 그때까지는 1기사를 영동에 머무르게 하여 피반령 방어선의 제2제대를 형성하라는것과 만약경우에 대비하여 미25사를 인민군 52사와 62사의 공격지구에 전개시키라는 명령을 주었다.

조치원에 나온 김책의 전선사령부는 밤 12시경에 적후정찰로부터 1기사가 영동에서 기동을 멈추었고 미25사의 일부가 최현의 52사와 최춘국의 62사쪽으로 전개한다는 통보를 반고 즉시 최고사령부에 무선으로 보고하였다.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께서는 적의 이 새로운 작전적움직임에 대하여 야간공격을 단행하여 적을 혼란에 빠뜨리며 대전공격을 새벽으로 앞당길데 대하여 명령하시였다.

《최현동무네가 위험합니다.》

무전문 마지막에 적힌 문장은 이러했다.

7월 20일 새벽 5시 수만명의 미군과 괴뢰군들로 올챙이 끓듯하는 대전시가 60지역에 대한 인민군련합부대들의 총공격이 개시되였다.

수백문의 대포들이 시가의 외곽방어진지로부터 중심지대까지 가차없이 타격한뒤 땅크를 앞세운 보병련합부대들이 시가공격을 개시하였다,

54사 16련대는 옥뫼와 대흥동쪽으로, 54사 5련대는 룡두동쪽으로, 53사는 선화동, 삼성동, 소제동쪽으로,

도시에는 살아있는 일반주민이란 없었다. 7월 13일부 괴뢰내무장관 조병옥의 지시로 모든 주민들이 강제적으로 《피난철수》당했고 적의 화력진지와 방어진지주변의 인민들은 민가의 소각과 함께 전부 살해되였다. 전투시작과 더불어 선참 대전형무소로 진입한 905땅크사단 땅크병들은 모든 수감자들이 하루전에 전부 학살되였음을 알았다.

《미제침략자들은 대전감옥의 애국자들을 전부 학살하였다. 대전감옥은 피바다.

형제들의 복수를 위하여 전우들! 한놈도 용서치 말라!》

류경수장령이 날린 무선전파가 모든 구분대의 지휘관, 선동원들의 입을 통하여 시가에 돌입하는 전사들의 심장에 불을 질렀다.

이때부터 인민군전투원들에게 있어서 시가안의 모든 생물체는 살인자로 범죄자로 되여있었다.

대전은 인간의 분노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주는 격전장으로 되였다.

시꺼먼 포연에 휘감겨 검은 장막을 뒤집어쓴듯한 도시의 상공으로는 끊임없이 불기둥이 솟구쳐올랐고 포탄파렬로 부서진 대포며 자동차, 철갑모, 찢겨진 시체들이 재개비처럼 날아올랐다.

아침 일곱시경 인민군련합부대들이 시가중심에 들어서자 띤사령부는 도시방화를 명령하였다. 삼복더위의 땡볕에 버쩍 마른 초가집들과 기와집들이 화약더미처럼 불타오르자 도시는 염열의 지옥을 련상시켰다.

대아메리카제국군의 강대성에 대한 환상과 황색인종에 대한 우월감, 화력과 장비의 우월성에 대한 과신으로 뼈속까지 물든 미군장병들은 광적인 모험성과 무분별한 용기로 발악하여나섰다. 동시에 《빨갱이》들에 대한 짙은 원한에 미쳐버린 《정예》의 륙본직속 괴뢰군 혼합부대들과 《사관학교》학생들도 피거품을 물고 발악해나섰다. 놈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죄로 하여 용서받을 희망마저 잃고 죽기로써 덤벼든것이였다.

전투에서 절망적인 광기의 발악은 참혹한 죽음으로 값을 치르는것이다. 성난 사자같이 돌입한 인민군전투원들은 수류탄과 총창, 총탁으로 골목과 집들에서 저항하는 적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눕혔다.

련대장들까지 자동총을 들고 집과 집, 로대와 로대들사이를 건너뛰며 사격전을 벌리였고 때에 따라 창격전까지 하였다. 류경수 장령은 땅크에 올라 무선송신기로 땅크들의 행동을 일일이 지휘하면서 가장 요긴하고 어려운 모퉁이마다 내달아 적의 화점과 포, 땅크들을 무자비하게 부셔버렸다. 적의 포탄과 화염병에 그의 땅크장갑은 우그러들고 불에 그슬렸으나 종횡무진으로 시가를 달렸다.

띤사단장 역시 《전투원》이 되였다. 인민군대의 질풍공격에 모든 련대들의 방어선이 무너지고 통신련락마저 끊어지자 도시방화를 명령한 그는 호위원들과 바주카포병을 데리고 사령부로부터 기여나왔다. 자기 방에 자랑거리로 놓아두었던 3. 5인치 바주카포까지 부관에게 들려가지고 나온 그는 몇대의 인민군땅크를 멈춰세우던가 요격하여 장병들의 사기를 돋굴 결심이였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바주카포가 대전백화점앞에서 인민군땅크 한대를 명중시켰다. 파괴된 땅크에서는 불길에 휩싸인 땅크병 하나가 기여나왔다. 그 땅크병은 옷에 달린 불을 끄려고 포장도로우에서 몸을 비틀며 딩굴었다.

《보라, 당신네 무서워하는 땅크엔 불사신이 아니라 저렇게 죽어가는 사람이 탔다.》

띤은 인민군땅크병의 최후를 랭랭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 땅크병의 손이 언뜻하였다. 띤이 서있는 아래층창문이 쟁가당-하고 깨여지는 소리와 함께 수류탄의 폭음이 울리고 비명이 터져나왔다. 띤을 호위하고있던 병사들이 경악하며 총을 쳐들 때 골목길로부터 수십명의 인민군전투원들이 쓸어나왔다. 맨 앞장에서 자동총을 휘두르며 달려나오던 군관은 띤의 부하들이 《보루》로 사용하는 몇개의 건물을 가리키며 뭐라 소리치다가 죽어가는 땅크병을 발견하고는 쏜살같이 달려오는것이였다.

철수를 요구하는 수원들의 아우성에 귀머거리가 된듯 묵묵히 있던 띤은 그 군관이 땅크병앞에 채 이르지 못하고 쓰러지는것과 거의 동시에 어데선가 적십자가방을 둘러멘 묘령의 녀성군인이 나타나 총탄이 비발치는속을 내달려오는것을 보았다.

《나이팅게일!》

띤은 썩은 콩씹은상이 되여 돌따섰다. 뒤마당에 대기하고있던 땅크에 오른 그는 무선마이크앞에서 1기갑사단장 알버트게이를 목쉰 소리로 찾는 부관을 밀어젖히고 무선송수화기를 가진 모든 지휘관들을 찾아 퇴각을 명령하였다.

그런데 이때까지도 띤은 자기가 몇시간후에 산속으로 도망쳐들어가 한달동안 과수밭과 콩밭을 돌아다니며 짐승처럼 날열매를 따먹다가 인민군전사에게 체포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다.

 

림운학은 오늘 몇번이나 죽음과 맞다들었다. 그때마다 죽음은 매번 그를 피했으나 이번만은 그렇지 않은것 같았다. 대대 상급 부관으로 정식 임명된 그는 2중대에 포함되여 처음부터 전투에 참가하였다.

땅크를 타고 대전형무소까지 이르는 어간에 총탄은 여러번 그의 귀전을 스치고 어깨의 한쪽 견장까지 떼여버렸다. 파편에 전투가방마저 찢어졌다. 건물이 무너지며 불타는 각목이 그의 잔등을 스쳐 떨어지기도 했다. 형무소지하실에 숨어 발악하는 적들을 총창과 수류탄으로 요정내며 돌격할 때 구석에 숨었던 놈의 총창이 그의 목을 견줘 날아들었다. 자기가 그것을 어떻게 피했던지 아리숭한 일이였다. 형무소의 감방은 텅 비였고 어떤 방들은 피투성이시체가 한가득 넘쳐있기도 했다. 형무소의 수감자들이 전부 학살당했다는것을 알게 된 그는 이상하게도 눈물 한꼬치 안나왔다. 아버지를 만나보리라던 희망이 꺼져버리자 그는 슬픔이라고 할수도 없고 분노라고도 할수 없는 이상스런 감정속에 포로되여 《죽여라!》, 《죽여라!》하는 소리만 연신 내뱉으며 맞다드는 적들을 쏘고 찌르고 죽어넘어진자에게도 다시금 총탁세례를 안기였다. 그는 다른 많은 전사들과 마찬가지로 이 대전에 틀고있는 모든 미국놈들을 다 쓸어눕히는것과 특히 범죄의 진범인인 띤을 잡는것이 소원이였다. 그러나 띤이 도사리고있었다는 도청안은 텅 비여있었다. 그 주변 어딘가에 그놈들이 배겨있을것이라는 판단밑에 운학이네는 땅크에서 뛰여내려 골목골목 뒤져가며 혼전속에 이르렀다. 대전백화점쪽으로 내닫던 그는 자기들이 타고오던 땅크가 바주카포에 불타고 거기서 기여나온 땅크병이 수류탄을 던지고 쓰러지는것을 보자 눈앞이 홱 돌았다. 땅크병을 구원하고 적을 요정내리라는 결심으로 내닫던 그는 발밑에 무수히 튕겨나는 도탄되는 탄환의 번쩍임을 보았으나 그쯤한것은 아랑곳 않았다.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으나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때 불시에 머리가 불로 지지는듯 아파나며 땅이 거꾸로 일어서 돌아갔다. 그는 포장도로우에 태질을 당한듯 넘어졌다. 눈망막으로 무수한 불꽃이 흘러갔다. 몇걸음앞에 쓰러져있는 땅크병이 천리밖에 있는것처럼 보였으나 그 모습도 안개속에 잠겨드는것 같았다.

(이렇게 죽는가?)

짧은 찰나의 순간에 무수한 생각들이 뜀박질해갔다. 다시 보지 못할 아버지며 어머니… 그리고 련화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가는 사라졌다. 언젠가 최현장령한테서 들은 장군님께서 자기 동생의 죽음을 슬퍼하며 이름까지 목책에 적어넣으셨다는 사실이 떠오르며 눈귀에 눈물이 슴배올랐다. 둥근 회색모자에 역시 회색양복을  입으셨던 보안간부훈련소마당에서 뵈온 장군님의 영상이 우렷이 그려지며 마지막최후를 마칠 때 전사들이 웨치던 《만세!》를 웨치고싶었다. 그러나 생각뿐 입이 열려지지 않았다.

날카로운 비명이 고막을 치며 그의 의식을 잠깨웠다. 단발머리가 산산이 흩어진채 달려오는 녀성군인이 보였다. 52사에 가서 보았던 녀성간호원이였다.

《련화?!…》

그는 입속으로 되였다. 화끈 단 손이 그의 목과 머리를 그러안았다. 녀자의 갸름한 얼굴에서 초불처럼 타는 두눈이 커다랗게 안겨왔다. 소독약냄새와 함께 화약내와는 다른 향긋한 체취가 안겨왔다.

《련화 아니요?… 동문 어데서 나타났소? 52사에서 본것이 동무가 옳지!… 그동안 어떻게 지냈소?… 그리고 나의 아버지는…?》

수많은 물음이 머리속에 맴돌이쳤으나 운학은 아무 말도 못했다.

《운학동무!》

처절한 웨침을 마지막으로 들으며 운학은 의식을 잃었다.

 

송기덕중대는 대전에서 쫓겨 밀려나오는 적들과 마지막결전을 벌리고있었다. 도로와 논판은 불타는 자동차와 땅크로 한벌 메였으나 죽기내기로 도망쳐나오는 적의 땅크와 자동차 행렬은 끝없이 나타났다.

선두땅크들은 앞을 막은 자동차 몇대를 논판에 구겨박으며 나오다가 불타는 땅크에 부딪치자 멈춰섰다. 뒤따르던 자동차들이 서고 벌떼같이 날아내린 적들이 좌우 논판에 산개하였다.

선두땅크의 포탑문이 열리며 브로닝기관총 총신이 쑥 내달리고 두놈의 얼굴이 솟구쳤다. 기덕은 잽싸게 자동총으로 갈겨댔다.

한놈이 꺼꾸러지자 다른놈은 재빨리 숨어들어갔다. 반땅크수류탄을 다 써먹은것이 한스러웠다. 그때 전호근이가 땅크를 향해 바람처럼 내달았다. 첫 전투때 중기를 마사먹고 보병총으로 싸우던 그였다. 호근은 허우대 큰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로 땅크에 뛰여올랐다. 그는 포탑우에 내민채 있는 브로닝기관총을 잡자 와락 나꾸챘다. 총탁을 잡아쥔 두손이 딸려오르다가 호근의 발길에 채여 떨어졌다. 호근은 류크문을 무릎으로 닫았다. 적의 시체가 끼여 벌려진 문짬으로 총탄이 날아나왔으나 호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글이글 타는 눈으로 중대쪽으로 덤벼드는 적들의 산병선을 노려보다가 기관총을 휘둘러댔다.

적들은 썩은 바자 넘어지듯하였다.

《장하다! 호근이!》

적땅크가 기미를 알아차린듯 후진하기 시작하였다. 저희 보병들로 하여금 호근이를 없애치우려는 수작같았다. 조금만 더 가면 호근은 적의 무리속에 들어가는 판이였다.

기덕은 자기가 가지고있던 마지막수류탄을 빼들고 달려갔다.

역한 배기가스에 숨막히는듯한 속에 그는 날쌔게 땅크에 뛰여올랐다. 류크문에 찍힌 적의 시체에서 뿜어나오는 피로 하여 장갑판은 미끄러웠다.

《호근이, 주의하라!》

기덕은 시체가 끼운 짬새로 수류탄을 집어넣으며 호근의 허리를 꽉 그러안았다. 꽝-하는 폭음과 함께 류크문이 훌쩍 들리는듯하였으나 떨어지지는 않았다. 땅크는 멈춰섰다.

《멋있다!》

호근이 소리치며 쏘아댔다.

박격포탄이 적의 자동차중대와 논판의 적들속에 날아가 터졌다. 그러자 논판의 적들이 황급히 꽁무니를 사리기 시작하였다.

기덕은 경사지의 요소요소에 박혀있는 적들을 잡기 위하여 중대를 돌격에로 진입시켰다.

개미떼처럼 우글거리던 적들이 차우에서 논판에서 도로에서 거의 다 시체로 남고 얼마 안남은 놈들이 박격포탄의 추격속에 되돌아서 시가로 도망칠 때 기덕은 호근이를 찾았다. 조금전만해도 땅크포탑우에서 범같은 기상으로 총을 쏘아대던 호근이가 보이지 않았다. 기덕은 불길한 예감속에 땅크에로 달려왔다. 호근은 땅크의 류크문우에 앉아있었다. 머리는 기관총총탁에 드리워 있었다.

《호근이!》

기덕이 소리치며 뛰여올라갔으나 호근은 옴짝하지 않았다. 오른손가락은 여전히 방아쇠를 당기고있었다. 탄통에 탄알은 하나도 남지 않았고 격발기실이 열려있었다. 호근은 무려 여섯군데나 관통상을 입고 이미 숨져있었다. 방아쇠를 쥔 손가락을 풀어내리려 했으나 어찌나 힘을 줬던지 그 손가락은 꺾쇠처럼 굽혀있었다.

《야!… 누이도 만나지 못하고 이렇게 되면 어쩐단말이니… 엉!…》

기덕은 호근이를 부둥켜안고 그만 소리를 내여 울음을 터뜨렸다. 전사들은 준엄한 표정으로 전장을 굽어보았다.

너무나도 엄청난 광경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져있었다.

수백대의 자동차가 불타고있는 들판은 적의 시체로 꽉 깔렸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검은 연기가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황금과 기만에 속아온 먼나라 땅 젊은이들의 처참한 주검들을 드러냈다. 쫓겨가는 자동차중대와 보병종대의 시꺼먼 무리가 대전쪽으로 가는 길끝에서 아물거렸다. 53사와 54사의 후리그물속에 들어 포로의 운명을 지니게 될 두개 련대의 패잔무력이였다.

연기가 설펴지자 정오의 찬란한 태양이 어지러운 모든 군상을 불태워버릴듯이 뜨거운 빛을 쏟았다.

그 시각 대전이 한눈에 굽어보이는 보문산 기슭에서 이 가렬처절한 전투의 증견자마냥 한겻이나 서있던 로인이 지팽이를 번쩍 쳐들고 주문이나 외우듯 뇌이였다.

《장하다!》

그리고 오열하듯 소리없이 흐느꼈나. 그는 성송암이였다.

7월 20일 낮 12시 20분 무선전선지를 움켜쥔 민족보위상 최용건이 거의 뛰다싶이한 걸음으로 김일성동지의 집무실에 들어섰다.

《김책동무로부터의 보고입니다. 대전이 해방되였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최용건과 악수를 나누고 무선전선지를 잠시 내려다보시다가 전화대에 다가가시였다. 전화기를 드신 그이께서는 통신국장을 찾으시였다.

《최현동무와 아직 련결이 되지 않았습니까?》

《찾고있는중입니다.》

《53사교환에 과업을 주시오.》

전화기를 놓으신 그이께서는 집무탁의 지도에 눈길을 멈추신채 부동의 자세로 계셨다.

 

《련대들은 전반적으로 각개 포위되였습니다.》

최현사단장의 엄페호에 뛰여든 참모장은 헐떡거리는 숨결을 진정하지 못하며 지도를 펼쳤다. 여기저기 급하게 연필을 휘두르는 통에 구멍이 나고 찢겨진 지도에서 전선은 들쑹날쑹한 톱날형으로 되여있었다. 사단장을 호위하고있던 전사들이 놀라 치뜬 눈으로 그들을 보고있었다. 최현은 참모장의 어깨를 잡아 거치른 숨소리가 볼에 미치는데까지 끌어당기고 귀에 입을 댄채 속삭였다.

《이제 두번다시 그런 소릴 했다간 총살할테요.》

참모장이 얼떨떨해 그의 손에서 어깨를 빼며 물러서 안경을 바로잡을 때 최현은 크게 소리쳤다.

《포위란 없소. 포위는 우리가 했단 말이요. 우리가!… 이제 해만 지면 그 결과가 보일것이요.》

《사단장동지, 그렇지만 17련대 후면에 들어온 적들은…》

《그건 다 물만 찌면 저절로 죽을 올챙이떼요.… 여기선 한개 분대도 뗄수 없소. 동문 그러지 말고 련대들과 련락을 취할 방도나 생각하오. 저기 괴뢰군련대장 엄페호에서 지금 무전기수리가 끝나가고있을것이요.》

《사단장동지, 상하지 않았습니까?》

참모장의 말에 최현은 뭉청 갈라져나간 오른쪽옆구리의 옷자락을 내려다보고 싱긋 웃었다.

《상하긴, 상했다간 내가 장군님한테 무슨 졸경을 치르자고… 어서 가보오. 이제 적들이 밀려들면 당신까지 총질을 하기 시작하겠는데… 안경쟁이까지 싸울건 못돼.》

최현은 전호턱에서 너슬너슬 타고있는 고목등걸에 대고 담배불을 붙여물고 적의 시체가 너저분히 깔린 보리밭을 내다보았다.

깡그리 불타고 뒤집혀진 거뭇한 등성이의 여기저기에서는 적의 시체들이 타고있었다. 30분전에 날아온 적의 대폭격기편대가 소이탄과 줄폭탄으로 주변의 땅을 다 뒤집고 태울만 한것은 남김없이 태워버렸다.

최현은 전호앞 열댓메터앞에 다 타버린 강냉이단처럼 시꺼멓게 되여 연기를 뿜고있는 적의 시체를 물끄러미 보며 이마살을 찡그렸다.

(여하튼 일은 신통치 않다. 사단장까지 전투한줄 알면 얼마나 말들이 많겠는가. 저 불쌍한것한테 하마트면 찔리울번 하지 않았는가. 역포위라?… 그래 역포위에 들수도 있다.)

최현사단은 엊저녁 황혼이 내리는것을 시작으로 첨입전투를 진행하였다. 매개 련대가 일선형공격기도를 보이고는 적의 부대간 린접점마다 집중포사격을 해대고 종심공격을 단행했다. 최현은 6련대의 두개 대대로 괴뢰 1사 13련대와 수도사단의 린접점을 뚫고 1계단방어진을 허물어버렸다. 그 기세로 근 6를 전진하였다.

이로 하여 사단의 전선은 톱날형을 이루었다.

최현으로서는 이미 이것을 예견하였고 지휘관들에게 이번 전투가 매개 련대, 대대가 단독적인 결심으로 싸우는 유격전형식으로 되리라는것을 말했다. 그러나 적의 진중에 너무 깊숙이 박혀 후방과는 물론 린접과 차단되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당황했다.

적들은 종심에 들어온 대대들에 쉴새없는 공격을 들이댐과 동시에 우회와 역습으로 후방의 공간지대까지 뚫고들어와 역포위망을 좁히고있는것이였다. 최현은 이제라도 첨입전투대대들을 되돌려 세워 후방으로 침투한 적들을 들이치고 전선을 련결시키면 위기에서 피할수 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전까지 진출하려는 작전방침에 어긋나는 퇴각이라고 생각했다. 명령앞에서 전진만을 아는 최현에게서 그것은 죽음보다 무서운 일이였다.

(이제 해만 지면…)

최현은 폭연속에 잠기여 빨간 감알처럼 보이는 해를 보며 이를 으드득 갈았다. 그때면 남은 포탄을 저앞에 다 쏟아붓고 나갈것이다. 그는 이앞에는 요새화된 진지가 없으므로 일단 적의 첫 참호를 벗어나면 대전뒤까지 나갈수 있다고 믿고있었다. 때때로 옷주머니에 넣은 장군님의 친서를 감촉할 때면 자기의 행동을 두고 머리를 기웃거렸으나 다른 결심을 내릴수 없었다.

《사단장동지, 17련대와 무전련락이 취해졌습니다.》

참모장이 다시 나타났다. 최현은 벌떡 일어섰다.

《어떻다오?》

《적의 돌격이 뜸해졌답니다.》

《놈들이 우리 기도를 알아차린것이 아닐가. 야간공격이 두려워 무슨 꿍꿍이를 꾸밀수도 있지. 여기서도 벌써 30분동안 끄떡않거든. 6련대장에게 전투정찰을 하라고 하시오.》

그때 참모장련락병이 달려왔다.

《사단장동지, 정찰과장동지가 굉장한 전화를 도청하고있습니다. 빨리 오시라고 합니다.》

련락병은 얼굴이 환해서 말했다. 중상자 몇명이 누워있는 엄페호안에서는 정찰과장이 레시바를 꽂고 눈이 퉁방울처럼 되여 듣고있었다.

《뭐요?》

《사단장동지, 적의 공개무선입니다. 대전이 함락되였고 미24사가 포위소멸되였다는것입니다. 진지이동에 대하여 떠벌이는데 영어와 뒤섞여서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허튼 소리요?》

《아니, 사실입니다. 대전은 포위됐다. 미24사는 살지 못했다. 이런 소리들로 꽉 찼습니다. 좀 들어보십시오.》

최현은 레시바를 내여미는 정찰과장의 손을 쳐버렸다.

《속임수요.》

그는 비칠하며 콩크리트벽을 짚었다. 그리고 한참이나 고개를 떨군채 움직이지 않았다.

(정말일수 있잖을가.… 아니 그럴수 없다. 아직은… 이것은 음흉한 모략이다. 우리의 신경과 사고를 흐리게 하고 함정에 빠뜨리자는 수작이다.)

《기만이요.》

최현은 고통스럽게 뇌이고 돌아섰다.

《사단장동지, 여러군데서 떠드는 소리입니다. 들어보십시오.》

《난 꼬부랑말은 몰라.》

그때 전화종소리가 길게 울렸다. 최현은 부관의 손이 뻗치기전에 그 송수화기를 잡아들었다. 4련대장이였다. 최현은 듣다 말고 소리쳤다.

《다시 말하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가 뭐요. 정확히 자세히 말하오.》

《련대군의소앞까지 들어왔던 적들도 다 전투없이 도주하였습니다. 우리 주위를 역포위하던 적들도 다 사라졌다는것입니다.》

《사라졌는가 숨었는가 확인했소?》

《도망쳤습니다.》

최현은 입술을 질근질근 깨물었다. 사납게 찌프린 눈으로 책상우에 펼쳐진 지도를 쏴보다가 결심한듯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17련대와 여기 6련대방향에 엄호조를 붙인 통신병들을 파견하여 전화선을 가설하시오. 그들의 선을 동무네 교환대를 거치지 않고 직접 이 선에 련결시키시오. 그리고 <집>(전선사령부)과의 전화선이 끊어진 상태유무를 확인하고 대책을 세우시오. 다음… 군사부사단장동무에게 말하여 사단예비대인 직속대대들을 17련대에 파견하게 하시오. 그리고 동무는 경비소대와 사단 후방부성원들로 사단후위를 맡고 일체 포와 전투중대들을 나에게 보내오. 시간은 30분안으로요. 이상이요.》

《사단장동지!》

참모장의 황급한 웨침을 들으며 최현은 전화기를 놓았다. 이마에 돋힌 땀을 닦으며 최현은 참모장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요?》

《예비대까지 다 끌어내오면 우리뒤는 완전한 공백지대입니다.》

《총공격을 하자는것이요.》

《총공격?! 그건 모험입니다.》

《그럴수도 있소.》

최현의 생각은 복잡하였다. 안개낀 골짜기에 떨어져 방향을 가늠할수 없을 때와도 같은 심정이기도 하였다.

《사단장동지, 어떤 모험도 하지 말라는 명령이 계시지 않았습니까?》

최현은 흠칫하며 참모장을 바라보았다. 먼지낀 안경알밑에서 초조한 눈길이 안타까이 자기를 지켜보고있었다.

(그렇다. 장군님께서는 나나 사단장병들의 무모한 희생을 념려하시였다.

그러나 시간이란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 장군님께서는 대전을 지켜보고계실것이다. 그런데 대전은 우리가 나가야만 한다.

우리가! 오직 빨리 나가는 길밖에 없다. 적은 바로 우리의 전진을 뜨게 하기 위해 책략을 꾸미고있다. 책략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설사 책략이 아니더라도 빨리 나가는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최현은 참모장을 향해 침착한 태도로 말했다.

《30분내로 공격전반을 료해하고 시작해야겠소.》

《해가 있는데도 말입니까?》

《그렇소. 적은 야간공격에 대비해있소. 지금의 이 고요나 전파놀음이 다 우리의 야간습격을 막기 위한 방어전구축이라던가 배비변경을 위한 모략일수 있소. 이 경우엔 예상치 않은 행동으로 적을 놀래우고 우리의 수에 걸려들게 하는 길밖에 없소.》

매 련대들에 련락병들을 파견한 다음 최현은 빈 포탄상자우에 걸터앉은채 써레기담배를 말기 시작하였다. 흥분이 심할 때면 권연보다 담배를 말아피우는데 습관된 그였다. 그런데 담배가 잘 말아지지 않았다. 손끝이 가늘게 떨리는것이 알렸다.

(내가 지금… 당황한것이 아닌가. 뭔가 섞갈리고있는것 같다. 대낮에 공격산병선을 로출시키는것은 무모한것이 아닌가. 그러나…)

최현의 손에서는 담배가루가 푸실푸실 날아내렸다.

(우린 장군님께서 그어주신 화살표대로 못나가고있다. 희생이 있더라도… 그대로 하는수밖에 없다.)

찌르릉, 전화종소리가 다급히 길게 울렸다. 최현은 끝내 담배를 말지 못한채 그 송수화기를 집어들었다.

《뭐라구!》

최현은 벌떠덕 일어서며 고함쳤다. 그는 왼손을 저어 조용하라는 신호를 보이고는 숨을 끊고 수화기에 귀를 바싹 붙였다. 흥분한 목소리가 쨍쨍히 울려나왔다.

《53사교환입니다. 최고사령부에서 52사사단장동지를 찾습니다.》

공개통화였다. 이게 과연 사실이란 말인가. 최현은 장미를 곤두세우고 몸을 떨었다,

《내가 최현이야. 빨리 대라.》

지도를 보던 참모장이며 구석벽에 기대여있던 중상자들의 놀란 눈길이 그에게 쏠릴 때 최현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지고 좁혀진 눈시울이 떨었다. 그는 열병환자처럼 가쁘게 숨을 쉬였다. 굵고 선명한 목소리가 수화구의 진동판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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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최현동무가 옳소?》

《접니다, 최현입니다.》

《그래 지금 거기가 어디요?》

《장군님, 아직 저흰 돌파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겠습니다.》

《거기가 어데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재차 물으시였다. 최현은 엄페호안을 돌아보고는 뜨덤뜨덤 대답올렸다.

《사단장지휘감시소입니다.》

《거짓말을 하지 마시오. 지금 거긴 최전방이지요?》

《…》

《동문 내 편지를 못받았습니까?》

《받았습니다.》

《받았다?… 그래 이제 돌격하자는것입니까?》

《네, 오늘밤안으로 꼭 나가겠습니다.》

《지금 거기 적정은 어떻소?》

《겉으로는 조용합니다. 놈들은 무슨 흉계를 꾸미고있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결정적인 공격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최현동무, 놈들의 행동은 무슨 흉계가 아니라 퇴각하는것입니다.》

《네-?!》

《대전의 적이 포위섬멸되였습니다.》

《장군님, 그것이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대전은 우리 수중에 들어왔습니다. 나는 이 사실을 알리자고 동무에게 전화를 건것입니다.》

《장군님!》

최현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매연에 절은 거밋한 볼로 두줄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최현동무, 왜 그러오? 무슨 일이 있소?》

《장군님, 기뻐서…

죄송합니다. 우린 대전을 포위하지 못하고… 장군님께 걱정만 끼쳐드리고… 면목이 없습니다.》

《최현동무.》

김일성동지께서는 너그러운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대전포위작전에는 동무들의 숨은 공로도 깃들어있소. 만약 동무들이 괴뢰1군단을 붙잡아놓지 않았더라면 대전포위전은 어려웠을것이요. 동무들의 완강하고 희생적인 공격으로 하여 적의 시선이 거기에 쏠렸기때문에 우리의 포위작전은 훌륭하게 수행될수 있었소. 나는 이에 대하여 동무들에게 감사를 드리오.

그리고 하나 알려줄것이 있소. 철호동무가 군조국보위후원회사업에 대단한 솜씨를 보이고있소. 룡옥이랑 아이들이 다 잘 있다오.》

《장군님!》

최현은 전화가 끝나 한동안 포탄상자우에 무너지듯 주저앉아 얼굴을 싸쥔채 꼼짝않고있었다.

이상스럽게도 전쟁이 일어나 오늘까지 거의 잊다싶이했던 처며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잠에 취한 룡옥이를 껴안고 일어섰을 때 더없이 측은하고 아프신 눈가로 보시던 장군님의 모습이 그리움속에 살아오르며 가슴을 쥐고 흔들었다.

참모장이 물통을 쥐고 다가갔을 때 최현은 뿌리치듯 밀쳐버리고 일어섰다.

《장군님께서 우리에게 감사를 주셨소.》

최현은 술취한 사람처럼 휘친거리며 전호에 나가 흉장우에 널려진 모래가마니우에 주저앉았다. 웬일인가 하여 올려다보는 전사들의 탄염에 거칠어지고 초연에 꺼매진 얼굴들을 묵묵히 보다가 불현듯 《허허.》 하고 웃었다. 눈물자리로 얼룩진 그의 얼굴은 우습강스럽게 이지러지였다.

《다들 일루 오라구.》

최현은 안주머니에서 노란 절연지에 싼것을 꺼내였다. 약간씩 떠는 손길로 그 절연지를 벗기자 금박글씨가 박힌 붉은 담배곽이 나왔다. 최현은 그 담배곽을 터쳐 담배를 꺼내였다. 제일 첫대를 뒤에 따라와선 참모장에게 내밀었다.

《전 안피웁니다.》

《피우오.》

최현의 눈섭이 꿈틀거렸다. 그다음 전사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마지막 한대가 남자 최현은 아수한 눈길로 담배곽과 전사들을 보다가 경기관총수를 발견하고 그에게 내밀었다.

《받으라구.》

《사단장동진…》

《글쎄 피우라구.》

전사들은 엄한 사단장의 명령이라 무슨 중대한 의식을 치르는 사람들처럼 담배불을 돌려가며 붙이고 연기를 빨았다. 최현은 두눈이 가느스름해져 담배를 빠는 전사들의 모습을 보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맛이 어떻소?》

《좋습니다.》

누군가 한마디 하자 저마끔 떠들었다. 구수하다거니 향기롭다거니 합창처럼 터져나오는 소리에 최현은 입이 벙글써해졌다.

《그래, 정히들 피우오. 그건 장군님께서 주신것이요.》

전사들은 담배를 피우다 말고 다들 굳어져 사단장을 바라보았다. 최현은 여전히 웃음을 띠운채 말하였다.

《전쟁이 승리한 날 피우자던 담배요.》

행복스런 미소가 그의 얼굴을 무척 천진스럽게 만들었다.

 

김책은 대전시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련포군장의 지휘감시소에서 전화를 하고있었다. 밖에서는 오래간만의 상봉을 즐기는 련합부대장들의 호걸찬 웃음과 명랑한 말소리들이 겨끔내기로 울렸다.

그러나 김책의 얼굴빛은 자못 엄숙했고 굳어져있었다. 그에게서 대전해방은 단순한 기쁨 하나로 안겨지는것이 아니였다. 지금 그는 최고사령관동지께 전투전과를 보고하면서 그것을 더욱 강하게 느꼈다. 거창한 감격과 환희와 함께 그 어떤 애수 비슷한 감정이 밀물처럼 격돌았다. 김일성동지께서 살상포로된 적의 수자와 파괴 및 로획한 무기 기자재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후 《우리 전사들이 어떻게 싸웠는가 하는 자료종합은 못했습니까?》라고 물으실 때는 더욱 그러하였다.

김책은 흥분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평소의 그답지 않게 약간 들뜬 어조로 대답하였다.

《장군님, 그렇지 않아도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지금 부대장동무들은 경쟁적으로 영웅후보자들을 추천하면서 제가 마치 전투위훈편집기자나 되는것처럼 가지가지 무훈담을 얘길 해오고있습니다.》

《그건 좋은것입니다. 하긴 우리 모든 전사들이 다 영웅인 셈이 아닙니까. 나에게 올려보낼 보고서에 그 모든 사실들을 다 기록하여주시오.

오늘의 전투승리는 바로 그 영웅전사들의 불타는 애국주의와 불요불굴의 투지가 있었기에 마련된것입니다.

나는 어제밤 54사 18련대 동무들을 생각했습니다. 수십㎏의 장구를 지고 100여리 험한 길을 헤쳐간 그들의 피와 땀이 어린 행군을 생각하며 우리 인민의 무진장한 정신력을 생각했습니다.》

《장군님, 그들은 다 영웅들입니다. 제가 좀전에 18련대의 전투보고를 받다가 그 중대장을 찾아냈습니다.》

《누구라구요7 크게 말하시오.》

《네, 평천리와 서울에서 만난 리복심이라는 녀성동무 있지 않습니까. 그의 남편인 송기덕동무를 찾아냈습니다. 54사 18련대 모범전투원명단에 그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참 잘됐습니다. 하긴 그 동문 원래부터 잘 싸우게끔 된 동무입니다. 3년전에 내가 그를 만나본적이 있습니다. 정말 피눈물나는 과거를 가지고있는 동무입니다. 그래 그 동무를 불렀습니까?》

《제가 오늘저녁 그 련대에 내려가서 훈장수여식에 참가하려고 합니다. 거기서 훈장도 주고 처를 소박한데 대해 혼쌀도 내고 서울에 올려보내려고 합니다.》

《허허 혼쌀을 낸다?!… 모름지기 그 동문 처에 대해서 알면 맨발로도 달려갈것입니다. 김책동무. 이런 싸움에서는 사람들이 다 아름다와지게 되는 법입니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그 동무를 이 즉시로 서울에 보냈으면 합니다. 복심동무를 생각하면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김책은 깊은 감동속에 대답올렸다.

《지금 동무가 가지고있는 훈장이 얼마나 됩니까?》

김일성동지께서 물으시였다.

《제기한데 비하면 절반수자도 안될것 같습니다.》

《그건 얼마든지 보낼테니 모든 모범전투원들에게 빠짐없이 수여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나는 그 전권을 동무에게 위임합니다.

김책동무, 오늘은 참 기쁜날입니다. 방금 최현동무하고도 전화를 걸었습니다. 다 잘되고있습니다. 오늘은 <만세!>를 부를만 합니다. 7월 20일, 이날은 우리 인민이 어제날의 조선인민이 아니라는것을 세계에 떨쳐보인 날로 될것입니다.》

《장군님, 정말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였습니다.》

《조선사람의 본때! 옳습니다. 조선사람의 본때이지요. 우리는 세계에서 미국놈의 거만한 코대를 꺾어놓은 첫 인민으로 되였습니다.》

통쾌한 웃음소리가 호탕하게 들리였다.

《첫 인민!》

전화를 끝마치고난 김책은 그 어떤 소중한 금언인듯 이 말을 뇌였다.

김책은 손수건을 꺼내 눈굽을 닦았다. 바람결에 떠실려온 푸릿한 연기속에 섞인 재개비가 눈에 날아들었다.

도시상공에는 검붉은 구름이 쭈욱 깔려있었다. 초연과 먼지에 두터워진 구름장을 금빛해살이 꿰뚫고나가며 붉은색갈로 물들인것이다.

시가를 바라보는 김책의 뇌리에는 전쟁 첫날부터 오늘까지의 모든 일들이 화면처럼 떠올라 흘러갔다. 그 숨막히던 첫날 새벽이 방불히 재현되며 감회깊은 명상과 사색을 불러일으켰다. 6월 25일 새벽이야말로 혁명과 나라의 운명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이른 위기일발의 순간이였다. 모든 민족과 국가의 흥망성쇠는 대체로 오래인 수십, 수백년의 시공간속에 직선 또는 파곡선이 자기 궤도로 움직인다. 그러나 그 흥하고 망하는것이 매듭지어지고 결정지어지는것은 순간이다.

저 멀리 로씨야 10월혁명은 레닌이 《어제도 아니고 래일도 아닌 오늘》에 폭동을 일으킴으로써 승리하였다. 바로 우리는 6월 25일 새벽 즉시적인 반공격이 결심됨으로써 승리를 이룩하였다.

대전작전은 그 대표적례증이기도 하다. 단 하루라도 늦게 움직였다면 우리는 제1기병사단과 25, 24보병사단의 강력한 역포위전앞에서 패배를 당했을수 있다.

김책은 금강도하작전으로부터 대전작전전야에 이르기까지 자기가 체험한 정신-심리적혼돈과 망설임의 과정을 더듬자 소름이 끼쳐들었다.

김일성동지의 명철한 판단이 없었다면 과연 어쩔번 했는가.

자기 역시 최용건이보다 더한 실책을 빚어낼수 있었다는 느낌이 김책의 가슴에 차디찬 얼음꼬챙이처럼 밀려들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어떠한 최특급비밀자료들이라 하여도 김책이나 최용건에게 다 알려주시였다. 오히려 전선실태에 대해서는 늘 전방에 있는 김책과 최용건이가 더 많이 알았다. 허나 분석과 판단의 신속성과 정확성에 있어서 김책과 최용건은 많은 경우 굼떴고 착오를 범하기도 한것이다.

(이것은 어쩔수 없는 숙명같구나.)

김책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이야말로 진실로 인민적지혜, 인민적의지의 집대성이시기때문이다. 그이께서는 이 땅에 내려진 축복이며 행복이다.)

김책은 순간과 력사에 대하여 위인과 민족의 운명에 대한 시적인 상념속에 깊이 잠겨들었다.

 

…운학은 두번째로 마취상태에서 깨여났다. 머리뼈의 부상에서 오는 동통으로 모르핀을 맞았던것이다. 부서진 창문을 가리운 백포가 바람에 흐느적거리며 소독약냄새가 지독스러운 방안에 매캐하고 아릿한 초연냄새를 싣고 들어왔다.

침대옆 쪽걸상에는 한쪽귀가 탄 둥글납작한 녀성군모가 놓여있었다. 련화는 보이지 않았다. 운학은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하나의 꿈처럼 생각되여 허둥이는 눈길로 방안을 더듬었다. 침상에 누워 점적을 받고있던 군인이 《깨여났군요. 그 동문 밖에 나갔습니다.》 하는 소리에 꿈이 아님을 확인하였다.

그러자 다시금 혼몽한 세계속에 잠겨 행복이랄지 슬픔이라 할지 모를 기분상태에 빠져들어갔다. 운학은 전투직전에 대대장으로부터 련대전방군의소 간호원들이 대대에 배속되였다는 소리를 들었으나 그속에 련화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 병원에 와서 의식을 회복하고서야 탄우속에 자기를 구원한 녀성간호원이 련화임을 알았다. 그런데 련화는 몹시 변하였다. 군복을 입은데다가 얼굴이 타서 그런것도 있겠지만 어딘가 범접할수 없는 쌀쌀함과 수심이 어려있었다. 말말끝에 때로 울먹거리기도 하고 (운학의 아버지가 49년도에 옥사했다는 사실을 말할 때 특히 그러했다.) 죄송스러운 빛으로 멍하니 굳어있군 하였다.

운학은 리윤병이를 따라간 아버지 성송암이때문에 생겨난 고민이라고 리해해보려 했으나 여하튼 서운하고 야속하기까지 했다.

운학에게는 성송암이 끝내 바른길을 밟지 못한것이 안타깝고 불만스러운 일이였으나 어찌보면 하나의 장애가 없어진것 같은감도 없지 않았다. 다만 아직까지 련화가 아버지의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것으로 그 뜻을 입에 올릴수 없었다. 그는 그저 《이번엔 놔주지 않겠소.》라는 한마디로 그 모든 감정을 표시했다. 그 말에 련화는 고개를 떨구었을뿐 대답을 못했다. 그래도 운학의 손만은 꼭 잡아쥔채 놓을줄 몰랐다. 밖에서 떠들썩 울리는 말소리에 운학은 빙빙 감쳐돌아가는 그 생각에서 벗어났다.

말소리는 점점 더 가까와왔다.

《…글쎄 그 로재(로인이라는 함북방언)가 나무몽치를 휘두른다는데는 우리 창격전 명수들도 감탄할지경이였단 말입니다. 그 독함지같은 미국놈이 대가릴 싸쥐고 디굴디굴 굴며 닭똥같은 눈물을 쏟는 꼴이야 어디 보겠습디까.》

청높은 그 목소리가 운학에게는 귀익은것이였다.

《우리 아버님은 젊었을적에 택견(태권도)도 하시고 수박회(고구려시기 무술)동작도 몸에 익히셨대요. 우리 나라 고대의 무술이라고…》

수집게 받는 녀자의 목소리는 분명히 련화였다.

《이 방이예요.》

기척이 없이 문이 열렸다. 운학은 머리를 들려다가 눈앞이 핑-돌아가며 어지러워 눈만 크게 떴다. 눈굽이 발깃이 젖어 웃는지 우는지 모를 녀인은 련화고 강파롭게 생긴 얼굴에 잔뜩 치뜬 두눈이 벙글벙글 웃는 사람은 전달 30일날 만났다 헤여진 송기덕이였다.

(내가 이거 꿈을 꾸는건 아니야.)

《여, 운학이, 이거 염라국 귀신 다 된거 아니야.》

《기덕이가?…》

《그래 날세, 나지. <송기떡>이야.》

기덕은 일어나려 움찔거리는 운학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목멘소리를 내고는 껄껄 웃었다.

《여, 내 사실 동무한테 단단히 인사를 받자고 했는데.》

기덕은 이까지 말하고 문앞에 서있는 련화를 곁눈질하며 다시 그 청높은 함북토배기의 말투로 고아댔다.

《지금은 병상에 오른 팔부이니 후날로 미루겠당이.

이봐, 내 동무의 가시아버지를 살려 모셔왔단 말이야.》

《가시아버지라니?-》

운학이 의아스럽게 되물으며 련화를 보았다. 련화의 얼굴은 온통 눈물투성이였다.

《그래요! 아버지가 왔어요. 아버진 우릴 축복하겠다고 해요. 그리고… 아버진 미국놈까지 죽였대요. 그렇지요, 중대장동지?》

운학은 한송이 이슬맺힌 들장미같이 핀 련화의 얼굴을 놀라움속에 보았다.

《그래, 운학이, 임자 가시아버진가 하는 어른이 어쨌는가.》

기덕은 흥이 나서 련화에게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전투가 끝나기 바쁘게 주변수색에 착수한 송기덕이네는 한 수림속에서 두루마기차림의 로인과 미군병사와의 격투를 목격하였다. 물론 송기덕이가 련화에게 말한것처럼 로인이 승리자가 된것은 아니였다.

미국놈은 탄알이 떨어져서 그랬는지 아니면 인민군대가 가까이 있다는것을 타산한때문인지 총은 쏘지 못하고 사생결단으로 지팽이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련화의 아버지라는 로인에게 이리 주춤 저리 주춤 밀리다가 총탁으로 로인의 가슴팍을 질렀다. 그통에 허궁 쓰러진 로인을 그놈이 재차 총탁으로 까려는 순간 기덕이네가 그놈을 쏴갈겼다. 가보니 로인은 목숨이 간신히 붙어 다 죽은 사람처럼 기척이 없었다. 중대위생지도원이 응급처치를 하고나자 로인은 정신을 차렸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련화는 기덕의 말이 끝날 때까지 내처 운학을 보았다. 사랑의 정이 타는 환희어린 미소가 방끗거렸다.

《아버지를… 만났음 좋겠어.》

운학이 말하자 련화는 새처럼 가볍게 걸어와 운학의 손을 꼭 잡았다. 그는 옆에 기덕이며 부상병들이 있다는것도 다 잊은듯 말했다.

《고마워요. 아버질 용서하죠… 난 이젠… 떳떳해요.》

《동문 참…》

운학은 언젠가 자기를 흰눈이라 하며 시를 읊던 련화를 생각하고 코등이 저려올랐다. 련화의 이상스런 태도의 원인이 밝혀지자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것이 속에서 돌개물처럼 소용돌이친다.

《기덕이 왜 서있나. 앉으라구.》

운학은 자기 행복에 겨워 친구를 잠시나마 잊은것이 면구하여 말했다. 기덕은 씽긋 웃었다.

《난 인차 떠나야 돼.》

《그런데 어떻게 왔나? 내 있는것은 어떻게 알고?》

《동무가 있는것은 밖에서 이 <부인>을 만나 알고.》

기덕은 련화의 얼굴이 꽈리처럼 붉어지는것을 흡족하게 음미한후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난 새 부대 편성으로 소환되였어. 서울로 가는길이야. 차편에 우리 대대 부상병들과 동무네 그 가시아버지될분을 싣고와 피뜩 들린다는게 이렇게 되였어. 저 성련화동무와는 구면이야. 앞으로 전쟁이 끝나 잔치를 하게 되면 동무가 찾지 않아도 저 동문 날 찾을거야.》

기덕은 서운해하는 운학이를 물끄러미 보다가 얼굴이 약간 붉어지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번 길에 난 처를 만나게 돼.》

《처라니? 동문 처가 없다지 않았나?》

운학이 놀란 소리를 하자 기덕은 어색히 웃었다.

《그렇게… 철없을 때가 있네. 동무넨 그러지 않으리라 믿어. 운학이, 날 누가 부르신줄 알아. 장군님께서 찾으셨어. 우리 처를 장군님께서 아셔, 서울병원에 지금 그가 있어. 내가 꼭 가야 한대.

난 정말 기쁘다. 그만 만나면 이젠 원이 없다.》

기덕은 손굽으로 눈등을 뿍 문지르고 다시금 어색하면서도 행복스러운 웃음을 짓고 손을 내밀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집무실안을 천천히 거닐으셨다.

무언가 놓친것이 없는가, 미흡한 고리가 없는가 하루사업을 총화지으며 휴식삼아 움직이는 걸음이시였다.

그이께서는 방금전 국가계획위원장을 부르시여 적의 공습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문제를 30분나마 토론하셨다. 김책과 전화를 끝낸 후 떠오르신 생각중의 하나가 미24사의 참패로 적들이 《광증》을 일으키리라는것이였다. 백악관과 미국 전체가 아우성칠것이고 한편 허장성세로 《보복》을 떠들것이였다. 그 《보복》이 가장 확실하게 미칠곳은 이 땅과 무고한 인민일것이였다. 평천리의 폭격보다 몇배, 몇십배 우심한 폭격으로 촌토와 마을을 불태울것이였다.

주요공장, 기업소들과 도시주민들의 소개사업, 방공호굴설로부터 대공화력체계망까지 구체적으로 지시를 떨구셨다.

(이제 못한것이 무엇인가.)

다망하신 그이의 일과속에는 대전전과의 기쁨을 누리실 시간조차 별로 없는것이다.

창가림을 꿰비쳐들어온 오후해의 잔광이 벽과 서류함의 여기저기에 타원형의 금빛한점을 새겼다. 걸음을 옮기실 때마다 그 반점들이 움직이는것만 같았다. 그이께서는 문득 서류함우에 세워 둔 한폭의 유화에 시선을 멈추었다. 오영혜가 서울에 간날부터 스케치하여 엊저녁에 완성한 그림이였다. 서울시가중심으로 행진하는 인민군땅크대와 보병대렬을 환영하여 꽃다발을 안기고 수기를 휘젓는 시민들의 모습이 부각되여있었다. 보병대렬의 선두에 밝은 얼굴로 손을 젓는 중성 한알의 군관이 구도중심에 서있었다. 오영혜는 모름지기 자기 애인이라고 한 박로수를 저 그림에 형상하였는지도 몰랐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나직이 한숨을 지으시였다.

대전작전지휘로 잠시 잊혀지였던 박로수의 희생이 상기되면서 이 비보를 오영혜에게 전해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딱한 사정이 뚫고나가기 어려운 장벽처럼 다가서 시름을 북돋구었다.

서울에 나가셨을 때 오영혜를 불러 박로수에 대해 묻고 편지를 쓰게 한 일이 지금에 와서 이처럼 후회어린 아픔으로 새겨질줄은 모르셨다. 그때 그이께서는 오중흡이나 오중성이 그자리에 있었다면 분명히 했을상싶은 질문을 오영혜에게 하시였다.

그 동무가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알게 되였는가. 나이는 몇살이고 성격은 어떤가? 오영혜는 처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 수집음을 타며 대답을 못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진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마음이 정 안드는것을 억지로 하라는것은 아니다. 마음에 없다면 그만두는것이지. 그러나 지금은 안된다. 목숨을 내대고 싸우는 사람에게 그런 거절은 참혹한 상처로 된다.

난 동무네 사랑이 성취되기를 바란다.》

오영혜는 대번에 눈물이 그렁해졌다.

《장군님! 전 그 동무외엔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전 오직 그만을 사랑해요. 허나… 온 나라가 생사의 판가리싸움을 하는데… 어떻게… 사랑을… 말… 하겠습니까. 전 그가… 마음이… 약해질가봐 겁납니다.》

《영혜야, 사랑은 사람을 약자로가 아니라 강자로 만든다.》

그이께서는 더없는 기쁨을 안고 먼 옛날 김혁과 차광수의 련애담에 대해서까지 들려주셨고 오영혜가 박로수를 알게 된 눈물겨운 사연을 들으셨다.

유격근거지해산이후 오태희로인네 일가는 유격대가족이라는것으로 이만저만 박해를 당하지 않았다.

어느해 봄날 더덕을 캐러 산에 갔던 오영혜가 초기를 만나 쓰러진것을 다행히 이웃동네 지주집 머슴소년인 박로수가 구원해왔다. 박로수는 기미년 《토벌》때에 부모를 잃은 혈혈단신의 고아였다. 그는 오영혜를 제 친누이동생처럼 대하며 허물없이 찾아다녔다. 지주집의 눈을 피해 연자방아간에 흩어진 수수쌀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땔나무도 해왔다. 해방전에는 유격대를 찾아간다고 떠났다가 먼 북방탄광에서 징용살이도 했다.

해방이 되여 오영혜와 박로수가 조국땅에서 만났을 때는 서로가 내우하게 된 청년남녀로 되여 결국 사랑하는 사이로 되였다.

그런데 이제는 두번다시 오영혜와 박로수는 서로 만나게 되지 못할것이다.

(이를 어떻게 하면 좋단말인가.)

김일성동지께서는 시름겨운 생각에서 헤여나지 못한채 책상에 다가가 대전전과가 적힌 종이를 내려다보시였다.

그러나 수자는 안겨오지 않고 오영혜의 사진에서 본 박로수의 믿음스런 얼굴만이 떠오른다.

오영혜는 얼굴이 발깃해 펜을 달리였지. 한손으로는 편지를 가리우고. 그러나 다 쓴 다음에는 소학생이 선생님에게 수험지를 바치듯이 그 편지를 나에게 주었지.

《련애편지야 남이 봐선 안되지. 저 봉투에 넣고 풀로 잘 붙여라.》

그때 오영혜의 생글생글 웃던 눈이 함초롬히 젖어있었다.

《장군님! 정말 오늘로 가닿습니까?》

《그럼, 가구말구.》

여기까지 기억을 더듬어가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빼람옆에 붙은 신호단추를 누르시였다.

1분도 안되여 문이 방싯이 열리며 오영혜가 들어섰다.

《장군님, 기술서기 오영혜 명령대로 왔습니다.》

흰 군복저고리에 푸른 치마, 견장에 달린 두개의 작은 별, 옷의 구리단추는 창문으로 밀려든 석양빛에 금빛으로 반짝인다.

《이걸 필사해야겠다.》

그이께서는 대전전과보고가 적힌 용지를 들어 오영혜에게 내미셨다.

《세통을 필사해서 하나는 중앙통신에 그리고 하나는 나에게, 다음것은 청사게시판에 붙여라.》

《장군님, 지시대로 집행하겠습니다.》

오영혜는 군인식으로 간단히 대답했다.

여느때같으면 뭔가 감탄과 환희에 찬 반응을 보였을 영혜였다. 군복차림에 군인식 대답이여서 그런가. 어딘가 이상스러운 느낌이 드셨다. 그이의 집무실이 최고사령부로 되다보니 얼마전부터 기술서기들과 교환수 거의다가 군복을 입고 내무규정준칙대로 행동하게 되였다. 그러나 아무리 사복에서 군복으로 바꿔졌다 해도 늘 아리잠직하면서도 방실거리는 웃음으로 소녀같아보이던 오영혜의 태도가 오늘은 별로 이상스레 보이였다.

《무슨 일이 생겼느냐?》

《장군님, 아무 일도 없습니다.》

오영혜는 웃어보였다.

그런데 어덴가 낯이 핼쑥해보이며 눈에 겁기가 어려있는것 같았다.

《그 수자들에서 잘 모를것이 없니? 전화를 받으며 급히 쓴것이여서 모를데가 있을게다.》

《장군님께서 쓰신 글씨는 제가 눈감고도 알아맞힙니다.》

응석기까지 느껴지는 대답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찬찬히 오영혜를 살펴보시다가 박로수에 대해서는 지금 알려줘서는 안되겠다고 고쳐생각하셨다.

차마 오영혜의 얼굴에 그늘이 지게 하실 용기가 없으셨다.

《그럼 가보거라. 그리구 그 수자 하나하나를 다 외워둬라. 그 하나하나의 수자에는… 그 전투성과에는 우리 전사들의 피가 스며있다.》

어떻게 오늘의 승리가 이루어졌는가. 어떻게 전사들이 야밤 백리길을 걸었고 탄우속을 내달으며 최현이며 박로수가 어떻게 사선을 넘나들었으며 그길에서 박로수가 영웅적인 삶을 바쳤는가를 꼭 이야기하고싶기도 했으나 말씀하실수 없었다. 오영혜한테는 그 비보를 전할수 없는것이다. 뒤로 미루어야 한다. 그것이 어느날 어느 시각으로 될지 그이께서는 결정하실수 없었다. 아마 그것은 더 큰, 더 기쁜 최후승리의 날일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화제를 돌리시였다.

《난 너의 저 그림에 찬성이다. 그래서 네 그림을 인민군화보에 내려고 한다.》

《제 그림을요?》

《그렇다. 모두가 다 보게.》

김일성동지께서는 여기서 숨이 막히시였다. 긴장하게 파고드는 오영혜의 시선에선 분명 그이상의 다른 말씀을 기다리는 빛이 담겨져있는것 같으셨다.

《박로수동무도 볼것이다. 꼭 보지. 보고 크게 힘을 얻을것이다. 힘을. 그 동문 참 훌륭한 싸움군이라고 하더라.》

《장군님!》

오영혜의 말소리가 푹 떨어져내리며 가야금의 선을 건드리듯 파문을 지으며 울렸다. 다소곳이 숙인 얼굴에 피기가 핼끔하게 사라졌다.

《너 웬일이냐? 어데 아프냐?》

《장군님, 일…없습니다.》

《…?…》

《전… 일없습니다.》

오영혜는 재차 뇌이고는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눈시울이 불그레하게 변해갔다.

《너 우는것이 아니냐?》

《장군님, 전… 일없습니다. 울지… 않습니다.》

오영혜는 대답하다 말고 흐느낌을 터뜨렸다. 두손으로 입을 싸쥐였으나 흐느낌을 막아내지 못했다.

(알고있었구나.)

그이께서 지탱하고있던 가슴속 버팀기둥들이 와그르르 무너져내리였다.

《영혜야.》

그이께서는 조용히 부르시였다. 가슴이 억해져 말씀이 잘 나가지 않으시였다. 터져오르는 비감을 누르신 그이께서는 울음을 참노라 막은 오영혜의 손을 끄당겨내려 꼭 잡으셨다.

《울음이 나면 여기서 실컷 울어라. 이제 울고… 더는 울지 말어라. 박로수동무는 영웅으로 살다가 영웅으로 갔다.》

그이께서는 창가에 다가가 우뚝 서시였다. 밖에서는 대전승리를 알리는 방송원의 씩씩한 목소리가 힘차게 울려퍼지고있었다.

《아까운… 아까운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희생된다!》

오영혜의 흐느낌이 점차 낮아지다가 끊겼으나 그이께서는 여전히 창가에 서계셨다.

《비상한 인민! 불굴한 인민!》

그이께서는 조용히 입속으로 뇌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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