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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50년 여름 제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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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6,788회 작성일 20-02-1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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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jpg

 13 장

 

전조등 오른쪽에 《경무대긴급차》라는 명판을 세운 차가 요란스러운 경적을 울리며 대전-수원도로를 따라 북상하였다. 차에는 두정의 기관총이 좌우로 뻗쳐 허공을 향해 이따금 설화탄을 발사하였다. 그 탄도의 시뻘건 불줄기와 자동차의 경적은 정신없이 내리쓸어오는 피난군중과 패잔병의 무리들을 놀래우며 길을 내게 하였다. 그렇게 터놓은 길을 따라 흰 철모의 《엠피》들이 탄 모터찌클이 검은빛 대형승용차를 옹위하며 달리고있었다.

차의 뒤좌석에는 리승만과 무쵸가 나란히 앉아있었다. 리승만은 고요히 눈을 감고있었다. 부석부석 부어오른 눈두덩의 푸릿한 자욱이 절망과 광기의 량극에서 헤매이던 심뇌의 흔적인양 남아있었다. 렬차도주의 비극은 과거로 되였다. 어제 대전에서 만난 《국무위원》들과 《국회의원》들의 미친듯 한 공박과 비난에 어쩔줄을 몰라하며 헤덤비던 그가 아니였다.

《신성모를 갈아치우라. 채병덕의 목을 따라.》

《한강교폭파 진범이 누구냐?》 《이 전패의 책임은 대통령에게도 있지 않느냐.》

울고불고하는 비두발괄에 《국부》의 체면도 잃고 《체신머리없이 무슨 로망들이야. 강을 건느다가 말을 바꿔 탈수 있느냐.》 하고 소리치기도 하고 《국사가 어려울수록 당국자의 실수나 흠집을 가려 인심을 어지럽히는것은 부역자와 같은 행위다.》고 위협도 하고 《낸들 어쩌나. 제갈량이 대통령이고 장비가 총사령관이 되였다해 풀릴 일이냐. 도와준다던 미국이 손발뜨게 움직이니 이 참사가 아니냐.》 하고 말한것이 지금으로는 낯뜨거운 일이다. 어제는 진종일 대전교외의 유성국제전화중계소에 가붙어 워싱톤의 국무부와 장면대사에게, 도꾜의 맥아더사령부와 《한국대표부》에 미군의 급속참전을 간청하였다.

그것이 은을 내였는가. 오늘아침 더글라스 맥아더가 전황시찰을 위해 《한국래방》을 통고해온것이다. 그 무선문통고를 받기전까지 리승만의 기분은 극도로 흐려있었다. 너무나 엉성하게 차린 아침식사때문에 더욱 그랬다. 육식을 금하고 채식만을 한다는 그의 식성에 맞춰 도지사가 보냈다는 오이와 나박김치외에 마른 빵과 콩통졸임이 서글프게 놓인 식탁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리승만은 불같이 터져나오는 불만을 꾹 집어삼키고 나프낀을 들고서있는 료리사에게 찌글써 웃으며 물었다.

《어전식품이 무어드라?》

료리사는 빳빳이 굳어졌다. 언젠가도 한번 이런 질문을 받은 후 비서실장에게 진땀이 나게 닥달을 받은 기억이 있는 료리사는 가게문들이 다 닫겨 아무것도 구할수 없는 도시의 형편을 말하고 량해를 구하고싶었으나 그전대로 외워바칠수밖에 없었다.

《수라상으로 말씀드리면 찬품은 열구자탕, 어만두, 편육, 구절판, 생복찜, 화양적, 전복초, 전유화, 겨자차, 진지상도 말씀드리리까?》

리승만은 눈을 감은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료리사는 이마에 땀이 흥건히 솟아 다시 주어섬겼다.

《진지외에 완자탕, 김구이, 굴미, 볶음고추장, 북어무침, 오이숙장과 삼색나물 그리고 찬품단자외에 마지막차림으로 오미자화채, 빙사과, 대작과, 강정, 조란, 화전.》

《그만하게. 잊지는 않았군. 자넨 뭐드라?》

《네, 소인은 대통령각하의 료리사올시다.》

《그건 큰 벼슬이야. 벼슬살이는 쉬운게 아니야. 가보게.》

리승만은 그쯤 조겨대고 이마살을 찡그린채 상에 마주앉다가 맥아더의 래방에 대한 희보를 접한것이다. 비서실장의 그 보고를 끝까지 다 듣고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수그리며 《오, 주여!》 하고 감격에 흐느끼며 충심으로부터 신에 대한 감사의 념에 젖어있었다. 그리고 밥을 숭늉에 말아서 제꺽 먹어버리고 《도끼를!》 하고 호령했다. 제꺽 눈치를 알아차린 비서실장이 집뒤 후원에 책상널들을 뜯어다 쌓아놓고 날선 공병도끼 하나를 가지고 대기하였다.

리승만은 조끼차림으로 나와 전쟁이 일어나 이 5일간 싹 잊다 싶이했던 도끼질에 달라붙었다. 백성들에게 《근로애호》의 《평민적기질》을 선양하는 이 도끼질은 실상 리승만의 건강장수법의 하나로 고정된 일과였다. 비서실장이 널쪽을 도끼모태에 정하게 놓으면 리승만은 도끼를 들어 내리쳤다. 얄팍한 널이 쭉 짜개질 때마다 비서실장은 《로대통령》의 《젊음과 힘》에 감탄을 금치 못하여 눈을 휘둥그레 치떴고 그럴 때면 리승만은 다음번에 조겨낼 널판을 기합선수의 눈길로 노려보았다.

그 도끼질로 심신이 한결 거뿐해진 리승만은 여느때면 항상 그 경박하고 건방진 태도에 기분이 상하군 하던 무쵸를 반갑게 만났을뿐아니라 무쵸의 차를 타고 맥아더를 영접하러 가는 길에 나섰다.

카리스마적(뛰여난) 외교술을 가졌다고 하는 그로서 일국의 《대통령》이 타국대사의 차에 올라타고 가는것이 세상의 비웃음을 살 일이라는것을 모르는바 아니였으나 하느님의 《가호》가 내리는 이 시각 그 자질구레한데 류념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으며 보다는 어데서 총탄이 날아오고 공산군이 쓸어나올지 모르는 이 엄중한 환경에서 될수록 미국의 품속 가까이 있기를 바라는 그의 생리로부터 무쵸의 차에 올라앉게 했던것이다.

다른때면 늘 조롱기어린 미소와 질문으로 상전과 괴뢰의 계선을 암시하던 무쵸도 지금만은 매우 정중하여 말이 없었고 거의 침울하기까지 했다. 무쵸는 평소에처럼 밝은 연미색 양복에 까만 나비넥타이의 정결한 차림이였으나 사교계의 녀인들을 매혹시키던 파랑눈은 침침히 흐려지고 홍안은 납빛을 띠였다. 도주행각의 고달픈 려정속에 지칠대로 지친 그였다. 유럽과 미국의 외교적쌀롱을 전전하면서 닦이울대로 닦이우고 《페미니스트》(녀권주의자)라는 호와 당시 류행하던 노래 《베사메 무쵸》의 덕으로 인기있던 《초로의 독신신사》의 우아성은 지금의 시점에서는 찾을수 없었다.

무쵸로서는 《한국에 대한 통수권》을 맥아더에게 이양하는 길인것이다.

《맥아더원수께서 전패의 책임에 대해서 물으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무쵸의 물음에 리승만은 눈을 감고 한숨을 지었다.

《나야 군사에 무식하니 무슨 말을 하겠소. 타기할건 신성모 그 젊은이지.》

《물론 대통령각하로서야 <국방부장관>을 추궁할수밖에 없지요. 군사작전까지 각하가 류념하여 가부를 할수 없는 형편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는 책임은 미스터 신이 아니라 그 <뚱보채>에게 있다는것입니다. 작전집행에서의 결함인것이지요.》

《글쎄 지략을 론하는데서 흠점을 가지고는 그리할지 몰라도 채병덕은 충실한 견마입니다.》

리승만은 채병덕을 두둔했다. 이 순간 리승만은 자기에게 그토록 충실한 채병덕을 떼여내치면 자기지반이 그만큼 약해질것이라는것을 포착하였고 동시에 빨갱이들이며 려운형이며 김구따위를 없애는데 오른팔이 되여준 채병덕의 충성에 대하여 임금으로서 덕을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했기때문이다. 그러나 리승만은 무쵸의 한마디 말에 자기의 주장을 더 전개할수 없었다. 이미 웃음을 거둔 무쵸는 랭정하면서도 례의를 잃지 않는 태도를 지키며 모멸차게 반박했다.

《맥아더사령부와 펜타곤에서 채의 해임을 요구했습니다. 채는 작전집행에서 무능하고 태만했을뿐만아니라 한강교폭파를 너무 조급히 단행함으로써 장병들의 사기를 꺾고 수많은 미국의 벗들을 북조선군의 수하에 맡겨두는 과오를 저질렀습니다.》

서리찬 그 선고에 리승만은 한참이나 있다가 어험어험 기침을 하고 타협조로 물었다.

《글쎄 군사에야 내 견식이 밭다나니 모르겠는데… 그 한강교폭파시간에 대해 채총장은 군사고문단과도 토론이 있었다고 대답했습니다.》

《대통령각하, 그렇다면 우리 군사고문단의 잘못으로 보신다는것입니까?》

《무슨 말을… 무쵸씨는 오늘 신경이 예민하오.》

리승만은 얼굴이 벌개서 얼버무리고 동안을 두었다가 계속하였다.

《그 후임이란 누구요?》

《정일권준장입니다.》

《만주군출신이지.》

리승만은 부하장졸들에 대해 무식하지 않다는것을 보일양으로 한마디하고 나직이 한숨을 지었다. 그리고 무쵸의 낯빛을 살피다가 중을 뜨듯 물었다.

《그런데 난 국회와 국무위원들이 제기하는 신국방과 채총장 갱질에 대해서 반대를 했는데-》

《신국방은 그대로 두는것이 좋을것이라는것이 저희들의 의견입니다. 물론 채총장문제는 맥아더원수의 결론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맥아더원수는 정일권준장이 미국을 떠나오고있음을 알고있습니다.》

딱 짜르는듯 하는 말에 리승만은 서글픈 눈길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보리밭으로 커다란 대포가 굴러가고있었다. 철갑모를 쓴 열댓명의 사병들이 포를 미는 뒤에서 미군하사관이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바라보고있었다. 고대석판화에 피라미드돌을 굴려가는 노예들을 감독하는 노예주의 형상이였다. 그들이 수원비행장에 도착하였을 때는 신성모국방장관 백성욱내무장관을 비롯하여 채병덕, 장도영, 정보국장 등 《국군》의 장성들이 수다히 나와있었고 껑충한 키에 턱이 뾰족한 죤 처치준장이 라이트대좌를 비롯한 미군사고문단원들과 무슨 이야기를 지껄이고있었다. 비행장격납고며 연유창고자리에서 연기가 피여올랐다. 오늘 있은 인민군비행대의 폭탄세례를 받은 흔적이였다. 리승만이 무쵸의 소개로 죤 처지준장과 악수를 나눌 때 갑자기 폭음이 울리며 하늘에 비행기가 나타났다. 검은 기수에 《바탄》이라고 쓴 C-54형기가 추격기의 호위속에 공중선회를 한번하고 천천히 착륙하였다

비행장대기실앞에 바자치듯 서있던 《정부》고관들은 찔러대는 해살에 눈을 찡그리며 구름을 배경으로 독수리처럼 내리꼰지는 비행기를 마치 구세주의 강림을 지켜보듯이 바라보았다.

리승만은 검은빛 《바탄》이 땅에 닿아 달려오다가 채 멎기도전에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걸음으로 37년간의 교분으로 얽힌 그의 하느님을 맞으려 잦은걸음을 쳤다. 재빨리 한사람이 부축했기에 망정이지 로구의 휘친거리는 다리는 그 바쁜 마음을 받치지 못하고 넘어졌을것이다. 비행기 프로펠라의 회전에서 일어나는 돌풍에 양복자락이 휘감겨오르는데까지 이른 리승만은 비행기승강구문이 열리기도전에 모자를 벗어들었다.

다라쁘가 내리고 문이 열리자 약간 비뚤게 쓴 모자에 검은색 안경을 걸치고 검정가죽잠바를 걸친 륙척장신의 맥아더가 나타났다.

전쟁과 군대를 위해 신의 계시를 받고 태여났다고 생각하는 70객의 이 5성원수는 왼손에 연기가 몰몰 나는 파이프를 들고 굵은 주름이 에워싼 기름한 얼굴에 웃음을 그린채 5∼6초동안 서있다가 뒤따라 나오는 스트라이트 메이어공군사령관에게 고개를 돌렸다.

《북조선비행대의 항공습격이 몇시에 있었다고 했소?》

《아침 10시니 우리가 부산을 내려다보던 30분전입니다.》

《그들의 폭격술을 어떻게 생각하오?》

맥아더의 물음에 극동공군사령관은 얼떠름한 표정을 지었다가 허물어진 격납고들과 연유땅크자리에서 불길이 이는것에 눈길을 주고는 얼른 대답했다.

《명폭격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왜 활주로를 때리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이 비행장도 자기네것으로 치부한것이요.》

《그렇게 될수 없지요. 빠트리치는 각하의 명령을 받고 5공군에 북조선폭격명령을 내렸을것입니다. 그들의 몇대 안되는 프로펠라 비행기는 우리의 분사식대편대들이 날아가면 뜨지조차 못할것입니다.》

스트라이트 메이어는 방금전 비행기에서 맥아더의 지시로 북조선을 폭격할데 대하여 자기가 작성하여 떨군 무선명령문을 상기하며 유쾌한 웃음을 지었다.

맥아더는 아무런 응대없이 천천히 다라쁘를 내렸다.

그리고 자기앞에 나타난 리승만을 가볍게 포옹하였다. 리승만은 울음맺힌 소리로 뭐라 중얼거렸으나 맥아더는 색안경너머로 신성모의 뒤켠에 선 음울한 얼굴의 채병덕이를 살피느라 듣지 못했다. 맥아더는 채병덕의 눈가에서 고뇌어린 절망과 불만을 포착했던것이다.

그러나 리승만의 땀 밴 자그마한 손이 자기의 손을 끄당겨잡고 놓지 않는것을 느끼며 불시에 보호자로서의 자기를 자각하였다. 다섯달만에 다시 보는 《대통령》의 눈시울밑에 눈물방울이 맺혀 굴러내리는것을 보자 맥아더는 손에 힘을 주고 그 잘 울리는 바스의 음성으로 친절히 말했다.

《나는 약속대로 왔습니다.》

맥아더는 파이프가 든 왼팔로 리승만의 잔등을 다시한번 더 그러안음으로써 인종관념을 초월한 대맥아더의 너그러움과 인간미까지 보여주었다. 그러나 지금 맥아더의 심중은 겉보기의 평온, 태연자약과는 판이한 불안감과 분노속에 앙앙불락하였다. 무엇보다도 자기의 명예-50년간의 파란많은 군인생활로 쌓아올린 업적과 광휘가 한꺼번에 무너질수 있다는 위구가 그를 괴롭혔다. 이미 그는 트루맨과 펜타곤, 월가의 반맥아더파들이 자기에 대한 험담을 개시하였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것은 덜레스와 콜링즈 륙군참모총장, 죤슨국방장관과의 전화에서 암시되였다.

미국의 대포와 함선으로 무장하고 미국식훈련을 받았으며 맥아더의 《천재》가 꾸며내고 검토한 작전계획으로 시작된 북조선진공이 그 서막으로부터 참담한 실패에 부딪치자 그 모든 책임이 마치 맥아더에게 있는듯이 쉬쉬하며 떠든다는것이다. 무엇보다 분할 일은 트루맨의 태도였다. 서울이 함락된 사실을 보고받고 《맥아더는 뭘하고있는가.》 하고 질욕을 했다는것이다. 브랫들리와의 펜타곤회견에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맥아더는 자기를 진정키 어려웠다. 그는 《장군, 나의 결박을 풀어달라고 그 존경하여마지 않는 트루맨씨에게 전하시오.》 하고 으르렁거렸다.

트루맨과 맥아더사이에서 그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기 위해 애쓰는 약삭바른 외교신사인 브랫들리는 례의 《미친총독》의 발작이 개시되는것을 알자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미 백악관주인과 펜타곤이 맥아더에게 륙해공군총사령관에 《유엔군총사령관》의 요란스러운 권력까지 주며 모든 미군무력을 《한국전쟁》에 마음대로 리용할수 있게 하였다는것, 군수창고들의 무기와 탄약이 배에 실려 태평양항행을 개시했으며 《한국》파견부대들이 비밀리에 함선에 오르고있으며 전국적으로 징집령이 내렸다는것, 다만 아직 국내의 반전파와 세계여론때문에 공개적인 선포를 미루었지 오늘래일안으로 떳떳이 공포하고 버젓이 움직일것이라는것을 기름지게 설명한 후 맥아더에게는 매우 자극적인 말을 덧달았다.

《그런데 여기서는 맥아더원수께서 이모저모 굼뜨다고 합니다. 여기서야 국회요, 언론이요의 말씨름과 눈치보기에 그렇지만 군의 실권자인 맥아더원수로서 필요한 행동을 할수 있지 않는가 하는것입니다.》

《장군, 선포뒤끝에 움직이는 신중성을 보이라고 한것은 누구요?》

맥아더는 큰소리를 쳤다. 6월 24일 브랫들리는 만약 경우에도 세계의 여론이 있으니만치 《한국》정부의 요청과 미국정부의 성명과 대통령의 명령이 발포된 후에 본격적인 개입에 들어가라고 하면서 그것은 자기의 말이 아니고 대통령의 의견이노라고 신중성에 대해 두세번 다짐했던것이다. 이를 상기시키는 맥아더의 말에 브랫들리는 묘한 웃음을 지었을뿐 응대를 하지 않았다. 그에 더욱 화가 난 맥아더는 마치 상대에게 결투를 청할 때의 거만하면서도 차거운 태도로 내뱉듯 말하였다.

《대통령에게 말하시오. 나는 이 즉시 한국전선에 가보겠소.》

브랫들리는 잠시 눈을 내리깔고있다가 마치 준비된 《메쎄지》를 읽듯이 말했다.

《로장군의 한국전선방문은 정부와 시민에게 커다란 감동과 현정세하에서의 미국이 지닌 의무와 사명감을 깨닫게 하는 위대한 행위로 평가될것입니다. 나는 이제 대통령이 참가하는 회의에서 이 사실을 보고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리승만을 만난 순간 그는 즉흥적인 감정의 계선을 넘어 아시아에 대해서 지닌 자기의 《책임》을 상기했다. 맥아더가 리승만을 알게된것은 루즈벨트대통령의 전속부관시절이였다. 그때 이미 《아시아광》으로 알려진 맥아더는 당시 미국의 국무성이나 고위급 사교실에 굽신거리며 나타나는 모든 동양인들에게 미래적견지에서 류다른 관심과 친절을 보였다. 황색인종인 《동양 원숭이》들에 대한 그의 친절과 호의를 나무라는 친구들에게 맥아더는 역시 롱조로 변명하였다.

《알렉싼드르의 동방원정의 승리는 인종의 차이를 줄이려 한 그의 세계주의의 승리였어. 나는 필요하다면 알렉싼드르가 했듯이 아시아녀자에게 장가를 들지도 몰라.》

아직은 아시아-태평양주의가 미국의 대외시책으로 널리 표방되지 않을 때라 맥아더의 이 말을 대부분 무심히 들었다. 그러나 이때 벌써 맥아더는 미국의 미래는 아시아태평양지배에 있으며 맥아더자기가 그 대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굳게 마음먹고있었다. 병영의 화약창고에서 태여났으며 서부개척의 피바다우에서 총검에 익숙되고 인디안《사냥》과 멕시코인살륙에 홍안의 시절부터 특기의 담대성과 용맹을 시위한 맥아더는 일찍부터 인류력사는 전쟁의 력사이며 인간은 자연계의 법칙에 따라 서로 싸워 이기는데 그 존재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력사속에서 그는 대선배들을 찾았다. 동서련결의 명장으로, 영웅으로 받들리우는 알렉싼드르, 씨저, 나폴레옹의 원정사를 읽으며 부러움과 질투에 책을 집어던지기도 하고 주먹을 흔들기도 하였다. 필리핀 군정장관이였던 아버지의 뒤를 따라 신비의 땅, 아름다운 동방을 편력하면서부터 그는 도도한 야심에 피를 끓였고 《태평양의 씨저》를 몽상하였다.

아버지는 필리핀이라는 자그마한 섬들의 통치자로 끝났으나 자기는 아시아대륙의 패권자가 될것이였다. 이런 측면에서 그는 《태평양전쟁》을 신이 그에게 준 선물로 받아안았다.

비록 수치에 찬 바탄의 도주와 같은 비극적행각이 있었으나 이 전쟁의 덕으로 그는 일본점령군사령관이 되였으며 미극동군사령관으로 태평양우에 우뚝히 군림하였다. 그러나 그의 일생일대의 숙원인 아시아대륙은 발가락만 쥐였을뿐 그 거대한 몸체는 아랑곳않고 자기의 정조를 지켜 고스란히 있었다.

더구나 하느님이 정해준 인간의 신분적차이를 다 일소하고 거지와 귀족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음식을 먹을것을 요구하는 공산주의라는 제도가 아시아대륙에 붉은기를 덮는것에 맥아더는 더욱 분격했다. 타고난 명문의 피가 끓어넘치는 맥아더는 이것을 자신에 대한 개인적모욕으로도 생각하였다. 그는 전쟁으로 이 공산주의라는 《마귀》를 쳐물리치고 아시아의 풍요한 자원, 아름다운 땅을 미국의 령으로 된 나라와 맥아더의 이름이 붙는 도시들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태평양을 미국의 호수로, 아시아를 미국의 속주로 만들기 위해 전쟁을 하자는자들에 대해서는 당파와 정견에 관계없이 손을 잡았다. 비록 트루맨이 민주당출신이고 가문으로나 인끔으로 보잘것없는 인물이였지만 《열전》의 구상을 펼치자부터 그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를 보여주었다. 리승만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도 역시 이런 리해관계에서부터 출발하였다.

맥아더는 리승만의 손에서 풀려난 손을 무쵸에게 한번 준 후 그다음부터는 매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여주는것으로 《력전의 영웅》을 《뵈옵는 영광》을 베풀어주고 자기를 위해 대기시킨 대형 고급승용차 캐디락에 올라앉았다. 무쵸가 사교적인 미소를 띠우고 말했다.

《원수각하, 어데 가시겠습니까? 전진지휘소가 있는 농사시험장은 초라한 동양식관사입니다. 대전시에 별장이 준비됐습니다.》

맥아더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휴양하러 온 사람이 아니요.》

그는 죤 처치준장에게 고개를 돌리고 조용히 말했다.

《한강으로 갑시다.》

그 말에 무쵸는 물론 죤 처치도 라이트도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그곳은 위험합니다. 공산군과의 대치선입니다.》

무쵸가 놀라움의 빛을 숨기지 않고 말하자 맥아더는 빙그레 웃었다.

《맥아더는 위험을 좋아하오. 난 전선을 보러 온 사령관이지 당신들을 보러 온 손님이 아니요.》

이미 맥아더는 여기로 떠나오기전 알몬드의 참모부와 월로우비의 정보부로부터 한강은 철교와 인도교가 다 날아갔고 배도 없으며 방어적인 무장으로만 준비된 인민군에게는 수륙량용땅크라든가 대부대도하를 보장할수 있는 기술기재가 없으므로 아직 서울에 그대로 머물러있음을 알고있었다. 그리고 불의의 전쟁에 예비가 없이 반격하여나온 인민군으로서 즉시적인 도하전투에는 진입하지 못하리라는 타산이 충분히 서있었다. 하여 물불을 모르던 젊은 시절과 달리 목숨을 꽤나 아끼게 된 나이지만 용약 1선에 나가려는 결심을 채택한것이였다. 그는 이 행동이 여기의 부하들에게는 물론 도꾜나 워싱톤에도 거대한 메아리를 불러일으키리라는 효과까지 내다보았다. 그는 땅크와 장갑차로 호위대를 조직하여 떠나자는 죤 처치의 의견도 거부했다. 리승만이며 무쵸따위는 그대로 떨궈두고 순 무관들만 따르게 하고 차의 출발을 명령했다. 그리고 누구에게라없이 말했다.

《나의 목숨은 신이 결정하는것이요.》

서울-수원간 도로로 나서자 길은 자동차, 장갑차, 대포와 사람들의 물결로 차넘쳤다. 사민과 군대들이 엇섞여 떠들썩 고아대며 내달려오는 아비규환의 물결속에 들어선 차는 신음소리와 악다구니와 욕지거리의 소음을 뚫고 간신히 전진했다. 맥아더는 도저히 사람의 형용이라고 할수 없는 피와 진창과 땀으로 매닥질이 되고 붕대와 쌍지팽이따위로 치장을 하고 공포와 적의로 눈을 번뜩거리며 달려오는 군인인지 사민인지 늙은이인지 젊은이인지 모를 군상들을 흥미진진하게 살폈다.

20분이면 내달을 거리를 거의 한시간이나 걸려 뚫고온 맥아더는 한강과 서울이 빤히 보이는 둔덕으로 향했다. 둔덕밑에는 그래도 전호를 파고 괴뢰군사병들이 두더지처럼 박혀있었다. 여기저기서 박격포를 쏘아대고있었다.

매캐한 화약내가 코를 찔렀다. 그러자 전장에 나설 때면 생리적현상으로 일어나는 독한 위스키를 마셨을 때와 같은 희열과 공포가 엇갈린 피의 세찬 흐름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흥분으로 들띄웠다. 언덕의 풀밭에 미끄러지지 않으려 고개를 수그린채 천천히 걸음을 내짚던 맥아더는 문득 발밑에 파아란 크로바잎사귀가 밟히는것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로씨야까자크 저격병이 나폴레옹의 머리를 겨누어 발사하는 순간 나폴레옹이 발밑에 있는 네잎의 크로바를 뜯으려 머리를 수그림으로써 생명을 건졌다는 고사가 떠오르며 회심의 미소가 피여올랐다. 그는 부하들의 눈만 아니라면 분명 그 크로바를 뜯었겠으나 다만 보는것으로 그치고 이 크로바가 이번 려정에 자기 신변의 안전을 담보하는 표식처럼 느껴져 마음 가볍게 언덕에 올랐다.

수원들은 그의 급작스런 빠른 걸음에 간신히 뒤쫓아올랐다.

비릿한 물냄새를 떠실은 강바람이 확 안겨드는것을 느끼며 맥아더는 고개를 쳐들었다. 서울시가가 한눈에 안겨들었다. 그러나 오래 볼 흥미를 잃었다. 응당 사가나 기자들이 《맥원수의 눈앞에는 염열의 지옥과 같은 페허의 도시가 펼쳐졌다. 있는것은 몇개의 벽체일뿐 재가루와 죽어가는 시민의 비명이 고도의 멸망을 장식했다.》라고 쓸 도시여야 했으나 지금 맥아더의 눈앞에 있는 도시는 전쟁과는 너무 인연이 먼 평화와 안정이 굽이치는 도시였다.

맥아더는 오만상을 찌프렸다. 아무리 걸레짝같은 《한국》군대기로서니 5개사단의 대병이 둔을 치고 싸웠다는 도시가 고층집 하나 부서진것없이 생생할수 있는가.

맥아더는 독기 어린 눈으로 라이트를 노려보았다. 검정색 안경의 가림으로 그 독기를 보지 못한 라이트는 어마어마한 맥아더의 시선을 받자 자기의 군사적재능을 자랑할 기회가 왔다고 잘못 판단하고 재빨리 말했다.

《각하, 분산퇴각한 <국군>은 방금 지난 시흥과 수원지구에서 재집결하여 이 강안에 강력한 방어선을 꾸리려고 합니다. 새로 조직된 <시흥전투사령부>의 기본임무가 한강을 도하하는 인민군의 공격을 이 계선에서 저지시키고-》

《대좌, <한국군>은 없소.》

맥아더는 차겁게 내붙이고 여전히 라이트에게 시선을 준채 말하였다.

《그런데 당신은 보고에 치렬한 방어전끝에 중과부적으로 서울을 내놓았다고 했는데 저기 어디에 치렬한 싸움의 흔적이 있소? 대포 한방 터지지 않은 도시를 그대로 내놓는 머저리군대가 어데 있느냐말이요.》

그때야 맥아더의 분노를 알아차린 라이트는 바지혼솔에 두손을 붙이고 재빨리 대답했다.

《각하, 우리 륙군의 전술강좌에서 배운 시가전과는 판이한 종잡을수 없는 싸움이였습니다. 격식을 규정할수 없는 땅크와 보병의 각이한 시각, 각이한 규모와 형식의 불의적기습에-》

《대좌, 당신은 관동군전사편찬위원회에서 묶는 <김일성의 유격전술>이라는 자료를 못보았소?》

《못봤습니다. 각하.》

《당신이 격식이 없다고 말하는 그것은 일종의 현대화된 게릴라전이요. 적을 이기려면 적을 알아야 한다. 이 말은 명언으로만 아니라 실천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진리요.》

맥아더는 꾸지람하듯 뇌이고나서 다시 서울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의 가슴에는 싸늘한 의혹이 치밀어올랐다.

(그래 맥아더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는가? 당신은 그네들의 전술을 알고있는가. 관동군전사편찬위원회도 김일성장군의 전술을 묶으려다가 결국 실패하지 않았는가. 알다가도 모를 요지경의 전술이라고…)

맥아더는 파이프를 입에 물고 빨았다. 역한 니꼬찐내가 쓸어들어왔다. 담배가 다 탄지 오래다는것을 잊었다. 관동군의 모모한 장성들속에 《백두산호랑이》로 불리우던 김일성장군에 대한 상기는 맥아더로 하여금 압박감과 불안을 느끼게 했다.

《각하, 공산군 대부대가 철다리로 접근합니다.》

죤 처치가 곁에 와 조용히 말했다.

맥아더는 그대로 묵묵히 서서 손을 뒤로 내밀었다. 누군가 내여미는 쌍안경으로 그 철다리쪽을 살폈다. 맥아더는 처음에 무수한 총검의 숲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렌즈조절기를 돌려 살피던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어깨에 멘것이 총이 아니라 삽과 곡괭이 나무토막따위며 군대가 아니라 사민이 태반임을 알아보았다.

《저들은 다리를 복구하려는것이요. 장한 기개요.》

맥아더는 쌍안경을 부관에게 넘겨주며 여유작작히 웃었다. 그의 웃음에 따라 발라맞추듯 웃는 수원들을 돌아보며 그는 롱말을 하였다.

《이 공병(맥아더의 첫 복무는 공병으로 시작되였다) 맥아더의 판단으로 볼 때 저들은 다리를 복구할수 없소.》

그리고는 껄껄 웃다가 나직이 물었다.

《철교폭파를 잘했소. 누가 지휘했소?》

《제가 했습니다. 각하.》

반기듯 떨리며 울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맥아더는 수원비행장에서부터 측은한 모습으로 따르던 채병덕을 알아보았다. 맥아더는 2월달에 도꾜에서 그를 만났을 때 병기장교로서 출발한 그의 경력을 듣고 《당신은 훌륭한 군인의 영광을 얻을것이요.》라고 말했음을 잊지 않고있었으나 이미 전패의 책임을 이 뚱보에게 넘겨야 한다는것이 말없는 약속속에 눌려진 조건에서 아량과 친절을 보일수 없었다. 그리하여 오직 그다운 결단성으로 홱 돌아서 언덕뒤에 서서 이제라도 무슨 공산군기습대가 달려들지 않을가 하여 주변을 살피는 스트라이트 메이어장군을 불렀다. 그리고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공군은 공산군의 한강도하준비를 일체 불허할 책임을 지시오.》

《알겠습니다.》

맥아더는 다음 죤 처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직접 지도상의 영등포-려주방어선에만 매력을 느끼지 말고 이곳 방어에 직접 참여해야겠소.

전패한 군대일수록 널어놓을것이 아니라 한곳에 모아두어야 하오. 여기에 오늘안으로 얼마간의 병력을 집중시킬수 있소?》

그 물음에 죤 처치는 어리둥절해있었다. 그러자 이제껏 자기는 이 모든 정황과 타개책을 잘 알지만 자기보다 더 현명한 사람들앞이라 물러서있다는 식으로 한쪽뒤에 서있던 관자노리가 희슥희슥한 《한국군》 2성장군이(그는 방금전 시흥전투사령관으로 임명된 장개석군에서 중장으로 있던 김홍일이였다) 한 미군장교의 눈짓신호를 받고 한걸음 나서며 《각하!》 하고 조선말로 웨쳤다.

그리고 기척을 한다는것이 뒤로 잔뜩 몸을 제낀채 한동안 갑자르다가 서툰 영어로 말을 이었다.

《세개 사단을 이 지역방위에 집결시키겠습니다. 현재 대렬재편성을 끝낸 부대들이 차례로 방어진지를 차지하고있습니다.》

맥아더는 이 늙은 장성의 금새를 알려는듯 잠시 살피고나서 반지를 낀 누런 손가락으로 영등포앞을 막아선 고지쪽을 가리켰다.

《저곳 이름이 작전지명으로 무엇이요?》

그의 물음을 한 미군련락장교가 통역하자 김홍일은 채 배우지 못한 영어로 내뱉는 고통에서 벗어난 해탈감을 가지고 제꺽 대답했다.

《작전지명으로는 없습니다. 각하, 그저 로량진이라고 부릅니다. 저앞에 고지를 수도고지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맥아더는 이마살을 찡그리였다,

《저곳을 중시하시오. 영등포라는 저 소도시의 방위뿐아니라 저 산들은 이 일대의 감제적고지요.》

《각하, 저희도 그렇게 생각하고있습니다.》

김홍일이가 기뻐 대답했다.

맥아더는 한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혼자소리하듯 말했다.

《다리없는 한강은 신이 우리에게 준 구원의 축복이요.》

그 길로 돌아선 맥아더는 리승만을 만나 미군의 즉시 상륙을 약속하고 일체 정무를 군에 복종시키라는 지시를 떨구었다.

한편 리승만으로부터는 《한국군작전권》을 겸손히 이양받은 후 비행기에 오르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채병덕이 앞을 막아나섰다.

호위원들이 권총집에 손을 가져갔을 정도로 채병덕의 얼굴은 험상궂게 이지러졌다. 그러나 채병덕은 절망과 모욕감에 불탔을 뿐 감히 5성원수를 해할 뜻은 없는것 같았다. 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황급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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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각하, 전 모든 명령과 계획된 작전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패전한 장군입니다. 전 각하의 손에 죽고싶습니다.》

맥아더는 이 뚱보가 우둔스런 생김에 비해볼 때 매우 꾀스럽고 대담한자임을 느꼈다. 불손하면서도 한편 지극한 충성과 아첨이 담긴 그 행동은 맥아더의 관록을 빌어 현재의 처지를 유지하려는 연극이며 그것이 실패하는 경우에는 무지스런 반항으로 변화될수도 있는 전재임을 알았다. 맥아더는 불쾌했으나 부드러운 어조로 달래듯 말하였다.

《장군, 동양속담에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말이 있소. 락심하지 마오. 한번 장군이 된 사람은 병사로 되였다가도 인차 장군이 되오.》

더없이 애매한 대답으로 채병덕을 떨떨하게 만들고 비행기다라쁘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그러나 그는 등뒤에서 채병덕의 눈이 원한과 불신에 차 번뜩인다는것을 모를만치 둔감하지는 않았다.

짙은 구름을 헤쳐가는 비행기안에서 맥아더는 워싱톤에 보내는 《메세지》를 구술하였다.

《<한국군>은 혼란상태에 빠져있다. 현재 내가 파견한 장교들이 남쪽으로 퇴각하는 병사들을 집결시키고있다…

그러나 <한국군>은 반격할만 한 힘을 찾지 못하고있다. 적의 전진이 더 이상 계속된다면 <한국>의 존립이 위태로와진다. 현재의 전선을 유지하며 장래 실지를 회복하는 방법은 미지상전투부대를 한국의 전투지역에 투입하는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이까지 부르고난 맥아더는 타자를 끝마친 부관 시드니 워프가 뭔가 더 기다리는 태세로 있는것을 보자 가슴 한구석에서 은근히 머리를 쳐들고 그를 압박하는 생각을 입에 올렸다.

《최악의 경우에는 우리들의 행동이 완전한 실패로 끝날지 모른다.》

이 시각 워싱톤의 블레아하우스에서는 트루맨대통령이 집권이래 처음 국회의 사전 동의없이 단호하고도 엄격한 태도로 일부 지상군을 포함한 해군, 공군을 총동원하여 조선전선에 파견할 결심을 피력하였다. 그러나 맥아더의 불안어린 웨침을 접한 트루맨은 이로부터 24시간후 일부 지상군이라는 말을 수정하여 미지상군전체를 전면 개입시킨다고 바꿔 정식 명령으로 선포하였다.

 

6월 29일 오후 한강도하보장을 위해 이동되여오던 중도하창이 적의 비행대폭격에 불타버리고말았다. 이날 저녁 새로 회복된 평양-서울간 직통전화를 통해 실태를 료해하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최용건에게 처음으로 되는 엄한 비판을 주시였다.

《시간을 잃었습니다. 어떻게 그럴수 있습니까. 중도하창 하나에 매달려 기다리고 휴식한다는것이… 빈집들을 헐어서라도 재목은 보장할것이고 적들이 버리고간 공병기자재들도 있을것 아닙니까. 그것을 리용하면 림시적인 가교라도 놓을수 있지 않습니까.》

마디마디 안타까움에 차 심각히 울리는 그 말씀을 들으며 최용건은 자기의 실책을 깨달았다. 한강을 돌아보고올 때 적들이 버리고간 레루무지와 공병기재들을 상기하며 후회막급한 심정에 사로잡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지친 전사들을 휴식시키기 위한》데도 있었다는 그의 대답에 실망을 금치 못하셨다.

《최용건동무, 그 인심과 배려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까. 그것이 가혹한 전투와 전사들의 피로 보상된다는것을 어떻게 잊을수가 있습니까.》

최용건은 자기가 일생두고 씻을수 없는 과오를 범하였다는것을 가슴저리게 느꼈다. 다리복구에 력량을 집중하고 개별적소구분대들을 전투에 진입시켰을 때는 이미 대안에 적의 강력한 방어진이 꾸려졌을 때였다. 서울에 진입한 그 시각부터 땅크의 도하문제때문에 아글타글하던 류경수는 장군님께서 심려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 즉시 한개 기계화보병중대틀 강행도하시켜 로량진을 공격하였다. 이미 그때는 로량진일대가 맥아더의 으르렁거림속에 두개의 괴뢰군사단으로 전선을 이룬 때였다. 로량진은 일진일퇴의 치렬한 공방전속에 날이 밝고 날이 저무는 치렬한 격전장으로 변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모래가 폭풍에 휘말려 향방없이 떠다니고 그 모래알의 수자와 다를바없는 무수한 탄알과 파편의 비가 쏟아졌으며 검붉은 화염이 바위를 핥고 나무를 불태웠다.

54사 18련대의 송기덕중대가 인천나루쪽에서 올라온 발동선을 얻어타고 한강을 건너 이 로량진의 수도고지에 올랐을 때는 백병전이 마지막고비에 이르고있었다. 다리가 끊어져나간 전사가 량손에 수류탄을 틀어잡고 폭풍에 넘어진 나무통을 기여넘으려다가는 미츠러지고 미츠러졌다가는 또 기여올랐다. 전사의 차돌같은 이발이 박힌 입술에서는 피가 흘렀고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기덕이 그의 손에서 수류탄을 앗아들고 지원부대가 왔다는것을 말하자 그 전사는 의식을 잃었다.

《18련대 맛을 봐라!》

송기덕이네는 이렇게 웨치며 육박전마당에 뛰여들었다. 첫 전투에서 그들은 수십명을 쓰러눕혔다. 그러나 적들은 검질기게도 연신 반돌격해 올라왔다. 한강대안의 뚝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서서 그들의 전투를 지켜보았다. 기덕이네는 그 어느때보다 완강한 기백과 정열로 기세충천하여 싸웠다. 여덟번째의 반돌격을 물리쳤을 때는 중대력량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런데다가 적의 항공대까지 날아들어 줄폭탄을 퍼붓는바람에 쪽배들로 날라오던 탄약보급마저 끊어졌다. 뚝우에서 수기를 젓고 손을 흔들던 시민들도 비행대의 사격에 사라져버리고말았다.

적들의 한무리가 또 쫓겨내려가자 박격포사격이 개시되였다. 기덕은 청석짬새로 판 배좁은 전호에 틀고앉아 적의 시체로 딩구는 산비탈을 바라보았다. 그만큼 뒈졌으면 그만둘만 한데 이건 터진 개미집에서 게바라나오듯 계속 올려미니 악이 받쳤다. 그는 담배를 찾아 옷주머니를 뒤졌다. 파편이 스쳤는지 옷주머니가 가로찢어져나갔다. 그는 급히 주머니안쪽을 더듬었다. 다행히도 편지는 남아있었다. 희생된 최만덕중대장의 가족에게 쓰다만 편지였다. 어저께 휴식할 때 복심이에게까지 편지를 쓰려고 마음먹었으나 어느 하나 끝내지 못했다. 편지를 쓰는데서는 자기가 영 무재간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최만덕의 《유언》대로 복심이에게도 쓰느라고 했으나 도대체 뭐이라고 한단말인가, 큼직한 위훈이라도 있으면 자랑삼아 쓰겠는데 그건 없다. 그렇다해서 어떤 사람들처럼 《사랑하는 당신》이요 뭐요 하고는 더구나 쓸수 없다.

《저게 누구야?》

《어제 온 신대원 아니야?》

전사들의 웨침에 그는 고개를 돌렸다.

나무란 씨알머리없이 사라지고 모래불처럼 폭폭 잠겨드는 땅으로 기다란 보병총의 총신을 해빛에 번쩍거리며 한 전사가 기여오고있었다. 그 전사의 주변에서는 박격포탄이 번쩍번쩍 섬광을 일으키며 터졌다. 포탄이 터질 때마다 전사는 머리를 땅에 박았다.

《저저! …전호근이가?》

기덕은 깜짝 놀랐다. 어저께 기덕이네는 세명의 신대원을 받았다. 놀라웁게도 그속에는 6월 25일 아침 황주에서 우연히 만났던 전호근이가 있었다. 그는 기덕을 알아보자 너무 반가와 두손을 감싸쥐고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런데 그는 오자바람으로 온 중대에 화제거리로 되였다. 무슨 전라도엔가 있다는게 누이에게 가져다주겠다고 집에서 약산단 한감을 꿍져가지고 온것이 들장났던것이다. 거기다가 고집 역시 이만저만 아니였다. 기덕이와의 안면을 생각했음인지 이번 로량진전투에는 신대원이라는것으로 제외되게 됐으나 로동계급이라는것을 가지고 코를 세우며 끝내 따라섰다.

열성에 비해서 전투에서는 쑥이였다. 그래서 좀전에 부상당한 부중대장을 업혀 고지아래에 있는 굴간에 보냈댔는데 또 나타난것이다. 기덕은 전호근의 주변에 포탄이 집중되는것을 보고 그냥 두면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벌떡 일어나 그쪽으로 달려갔다. 호근은 사방에서 섬광이 일며 포탄이 터지자 머리를 감싸쥐고 아예 모래판에 꾹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바지저고리라구야.》

기덕은 그의 등덜미를 끄당겨 일쿼세워잡고 냅다 뛰였다. 허우대 큰 호근은 씩씩거리며 간신히 따라왔다.

《어찌된 일이요?》

전호바닥에 털썩 물앉은 기덕은 당금이라도 심장이 튀여나들듯 활랑거리는중에도 화를 참지 못해 물었다.

호근은 어질게 생긴 눈을 꺼먹거리다가 량해를 구하는 어조로 말했다.

《부중대장동무가 여기에 사람이 없다고 자꾸 돌아가라고 해서… 그리구 배가 왔습니다. 인민들이 많이 내렸습니다. 함지랑, 궤짝이랑 이고요. 산으로 오르는걸 보구.》

《탄약이 온단말이지?》

《네, 벼랑이 가파로와서 힘들게 오릅디다. 부중대장동지가 말하기를 중대원들이 이걸 알면 기뻐할것이라고 해서 먼저 왔습니다. 탄약이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수고했소. 그걸 제꺽 말할것이지.》

기덕은 그의 넙적한 잔등을 탁 때렸다. 호근은 비지땀이 흐르는 얼굴을 커다란 손으로 훔치고나서 우측의 중기관총으로 다가갔다. 직일기관총수로 있던 부분대장이 《이 친구.》 하며 손을 내밀자 호근은 《혼났어요.》 하며 그의 곁에 가 엎드렸다.

그제야 기덕은 자기가 그를 중기부분대장의 부사수로 임명했음을 상기했다.

호근이가 말하던 《탄약》은 얼마 안있어 나타났다. 공급소대군인이 몇이 섞였고 태반이 사민들이였다. 그중에는 녀성들도 있었다. 기세가 오른 전사들이 내달려가 그들이 이고 진 짐들을 받아왔다.

탄약은 물론 과일이며 떡이며 하는 음식도 있었다. 몇명의 처녀들은 아예 눌러앉아 싸울 잡도리로 전호에 뛰여들었다.

기덕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악수를 나누며 되돌아가라고 소리쳤으나 남자들은 물론 녀자들까지도 돌아갈념을 하지 않았다. 한 청년은 어데서 얻었는지 카빙총까지 메고 나타났다. 전기회사 전공이였다고 하는 그 청년은 돌아가라고 하는 말에 버럭 성까지 내였다.

《장교동지, 그래 공화국은 동지의것만인줄 압니까. 나도 48년도 공화국창립때 선거에 참가한 사람입니다.》

열정과 패기에 충만된 청년의 이름은 곽근철이였다. (그래, 그렇지.) 기덕은 속이 그들먹해지였다. 아군비행대가 나타나 적기를 추격하고 적진지쪽에 폭탄을 들붓기 시작하였다. 그것을 본 사민들은 너무 기뻐 두팔을 쳐들고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그래, 이게 우리 인민이야. 우리 편이란말이다. 참, 이젠 싸움판이 아니라 명절판이 되였구나.)

기덕은 웃음이 스물스물 새여나왔다. 그러나 흥띤 기분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두개 중대가량의 적들이 고지기슭을 꽉 메우며 달려들었다. 대부분의 사민들은 끝내 돌아가지 않고 전호에 뛰여들었다. 탄약을 나르고 부상병들을 날랐다. 전기회사 전공이라고 하는 청년은 서툴게나마 제법 총을 쏘았다. 기덕이를 더욱 놀라게 한것은 탄약상자를 이고왔던 몇명의 녀성들이 부상당한 군인들의 총을 잡고 전투에 참가한것이였다. 기덕이 너무 희한해 그들한테 다가가보니 서대문형무소 감방안에서 만났던 녀성들이였다. 기덕은 반갑고 가슴뭉클한 충격에 《야, 동무들이였구만.》 하고 소리쳤다. 상대가 녀성들이 아니라면 막 그러안아주고싶었다. 기덕은 전투를 지휘하던중에 3소대 좌익에서 불을 뿜던 중기가 침묵을 지키는 바람에 그리로 달려갔다.

《어떻게 된거요?》

《방열통에 물이 떨어졌습니다. 물뜨러 전호근이 갔는데 소식이 없습니다.》

중기부분대장은 이지러진 얼굴로 보병총을 쏘며 소리쳤다. 적들은 4∼50m까지 접근했다. 기덕은 수류탄을 준비하라고 소리치고 샘터쪽으로 달렸다. 몇걸음 못가서 그는 아까처럼 벌름벌름 기여오는 전호근을 보았다.

《여, 왜 꾸물거려. 빨리 오라.》

전호근은 그의 웨침에 일어설듯 하다가 그대로 엉금엉금 기였다.

《이런!》

기덕은 성이 독같이 나 달려갔다. 전호근은 미안쩍은 기색으로 그를 보았다. 그런데 물뜨러갔다던 그는 빈몸이였다.

《물은 어데 있소?》

《포탄에 물통이 터졌습니다. 물은 내 몸에…》

기덕은 전호근의 옷이 온통 물에 함씬 젖어있는것을 보았다. 기덕이 그의 옷을 잡아벗기며 보니 허리부위에 끌로 파놓은듯 뻘건 상처자국이 나있었다. 기덕은 속으로 뜨거운것이 울컥 치밀었으나 내색하지 않고 엄하게 말했다.

《까딱말고 누워있소.》

되돌아선 기덕은 한 처녀가 얼굴을 가린채 그들을 등져 앉아있는것을 보았으나 그대로 달렸다. 옷에서 짜낸 물은 얼마 못가 떨어지고 다시 방열통이 끓기 시작했다. 그때 수집으면서도 여물찬 목소리가 울렸다.

《옜네요.》

기덕은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렸다. 아까의 그 처녀가 명주치마에 법랑소랭이를 감싸들고 서있었다. 기덕은 눈이 둥싯해졌다. 이 처녀 역시 서대문형무소감방에서 본 처녀였다. 죽은 녀인을 부둥켜안고 슬피 울던 처녀… 처녀는 그의 시선에 무안을 탔는지 약간 새침한 기색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중기부분대장이 취한듯 한 눈으로 그 처녀를 보며 물이 차랑차랑 넘치는 법랑소랭이를 받아들었다.

《동무, 나 좀 있다 보기요.》

기덕은 그 처녀에게 이 한마디를 하고 돌아섰다.

(분명 그 처녀야. 운학이 사진에 있던… 아 이 무슨 인연이람.)

적들은 기덕이네가 총창돌격을 해서야 물러갔다. 기덕이 고지중턱에까지 내려갔다가 오니 처녀도 호근이도 보이지 않았다. 중상자후송조직을 하게 하고 두루 찾는데 전호뒤의 폭탄구뎅이에 몇명의 녀성들이 호근을 둘러싸고있었다. 기덕은 호근이가 후송되기를 고집스럽게 거부하고있음을 알았다.

《여, 군말말고 내려가우.》

기덕이 성난 어조로 말하며 다가가니 《림운학의 애인》이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절을 하였다.

《저… 동무! 날 모르겠소?》

처녀의 얼굴이 꽈리처럼 붉어졌다.

《압니다. 감방에서… 고마웠어요! 진정…》

모기소리처럼 가느다란 소리로 간신히 말하고는 머리를 수그렸다.

(허, 남도처녀들은 봉건이 많다더니 내우가 심하구나. 그러나 이 얼마나 다행인가.)

기덕은 림운학이를 생각하자 벌써부터 웃음이 슴새나왔다.

《내 동무를 얼마나 찾았는지 아시오?》

그의 말에 처녀는 물론 전호근이까지 흡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기덕은 그에는 아랑곳않고 호기있게 물었다.

《동무, 림운학이라고 모르오?-》

《네?!-》

처녀의 낯이 순간에 해쓱해지였다.

《맞구만.》

《그를… 어떻게… 알아요?》

처녀의 말소리는 떨렸다.

(이런 일이라구야.)

기덕은 범잡은 포수의 기분이였다.

《난 그 동무의 친구입니다. 같이 군관학교에 다녔지요. 그 동무는 늘 동무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다녔습니다. 틈시간마다 동무에 대해 생각했고…》

기덕의 마지막 말은 물론 과장된 말이였으나 처녀는 그런것은 전혀 가늠하지 못하고 낯빛이 희게도 푸르게도 변했다.

《그 동문 지금 어데 있나요?》

애련하면서도 어딘가 수심이 비낀 눈길이 기덕의 얼굴에서 초조히 헤염쳤다.

기덕은 운학의 행처를 똑바로 알수 없는것이 아쉬웠으나 그런대로 들뜬 기분속에 말했다.

《그 동문 서울에 나왔습니다. 지금 병원에… 아니, 그도 여기 어디 나와있을겁니다. 그저께도 나를 만나 동무걱정을 했습니다.》

기덕은 흥분한 나머지 거짓말까지 척척 해댔다. 처녀는 고개를 떨구고 손가락만 매만졌다.

기덕은 그가 너무 속을 태우는것 같아 위로삼아 말했다.

《이제 만나게 되겠지요. 그 동문 참모부군관이기때문에 화선엔 별로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놓고 상봉의 기회를 기다리십시오.》

처녀는 여전히 탄피가 널린 전호바닥을 내려다보기만 하였다.

밀려드는 황혼탓인지 그의 얼굴은 재빛으로 보였고 기뻐하는 빛은 꼬물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데… 아니 운학이 그 친구가 배반당한것 아니야… 하긴 그럴수 있지. 분단이 되여 몇년이야.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을것이고… 그런 경우 복심이라면 어쩔가.)

 

발목까지 푹푹 빠져드는 모래불로 련화는 비칠거리며 걸어갔다. 어둠이 그 발자취를 살금살금 덮어버린다.

《련화동무, 옆구리가 더 도져요?》

묻는 말에도 련화는 대답이 없다. 따뜻한 눈물이 샘솟듯 솟아 볼을 적신다.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끝없는 공허와 괴로움이 강녘에 내려덮이는 어스름처럼 그의 마음을 짓누른다.

《저- 련화…씨.》

어눌진 남자의 목소리에 련화는 걸음을 멈추었다. 카빙총을 거꾸로 멘 옆집 두부장사의 아들인 전기회사 전공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련화는 며칠전에 그한테서 당한 《모욕》을 생각하고 그대로 가려고 하다가 남자의 기색이 하도 진지한지라 눈을 내리깐채 기다렸다.

《날 용서해주.》

련화의 앞에 이른 그는 벌씬 웃어보였다. 련화가 입술을 깨문채 까딱안하고있자 그가 덤벼치며 말했다.

《난 사실 련화씨를 아니, 이제부텀 동무라 합시다. 그래 동무를 부르죠아라고만 봤습니나. 근데 오늘보니 동문 공화국편이구만, 우리 로동자들만 그런줄 알았는데. 이자 인민군대군관동지한테 물어보니 동무같은 사람도 다 김일성장군님을 받드는 인민이 될수 있다는거요.

정말 미안하오. 난 이제부텀 인민군대를 따라 그냥 싸우러 가오. 그래서 동무한테 빌자고 따라왔소. 집에 가면 우리 어머니한테 잘 말씀드려주.》

그리고는 악수를 하려 손을 내밀려다가 련화가 응하려는 기색이 아님을 알고 또 한번 싱긋 웃더니 휙 돌아서 달려갔다.

《몸 무사하세요.》

련화는 가느다란 소리로 말했다. 왜서인지 눈물이 나려 했다.

서대문감옥에서 나온 날 련화는 늦게야 집으로 돌아왔다. 자기를 대신해 죽은 그 녀인을 감장하고 어설픈 제사를 치르고나니 지금처럼 어슬녘이였다. 그런데 집은 비여있었다. 이웃집 두부장사녀인한테서 아버지가 리윤병의 차를 타고 언니와 함께 떠났다는것과 《해방직후에 다니던 젊은이》가 장교가 되여 찾아왔댔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꺼번에 받아안게 된 상실의 비애와 희망어린 기쁨앞에 련화는 제 정신이 아니였다. 빈집 널마루에 앉아 한바탕 울고나서 다시 그 두부장사녀인네 집으로 갔다.

거기서 이 청년을 만났다. 경성전기회사 전공으로 있다는 정도로 아는 그는 련화를 담장문안으로도 들여놓으려 하지 않았다.

《우리 집엔 뭣하러 오시오?》

그 투박스런 말투에 아연하여 련화가 쫓기듯 담장을 에돌아오는데 그 말투보다 몇배 더 무서운 말이 귀전에 따라왔다.

《얘, 그런 인사불성이 어데 있느냐. 고아나 다름없는 처녀를 막 밀어 쫓을 법이 어데 있느냐.》

그것은 두부장사녀인의 청원이였다. 모질게 도사린 대답이 그말을 눌렀다.

《어맨 참 막혔소. 리승만의 1등장관네와 사돈인 집 녀자를 집안에 들여놓는단말이요.》

《원, 무슨 소릴, 그 앤 가막소에서 나왔다두라.》

《가막소에 들어갔다 나옴 다 인민의 편인가. 도적년도 있고 화냥년도 있소.》

《어이구, 네 입이 개천한가지로구나. 성어른네 딸을 그런 장년들과 맞대놓다니, 네가 천벌을 받을기다.》

《흥, 어쨌든 반동이란말이우다. 지금은 반동과 인민편으로 금을 짝짝 거야 한단말이요. 저런 멋장이 부르죠안 다 반동이요.》

련화는 그때 앞이 캄캄해지였다. 담장에 기대여 한참이나 있어서야 기운을 되찾았다. 그는 아버지의 《도주》를 확인하기 위하여 련탄통과 허접쓰레기들로 위장을 한 지하실을 찾아 그안으로 들어갔다. 초불 하나를 들고 캄캄한 지하실안을 더듬어 살피는 그의 눈에는 쉬임없이 눈물이 굴러내렸다. 아버지의 《재산》은 그대로 있었다. 덕대우에 흰 종이장이 주렴처럼 드리워있는것을 보고 혹시 자기에게 편지를 써남긴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희망과 기대는 종이장을 보기 바쁘게 와르르 허물어졌다. 아버지는 단순히 《도주》만 한것이 아니라 이 세상 전체를 비관하고 부정한것이였다. 종이는 하나의 유서라고도 할수 있었다. 련화는 덕대우에 숨겨두었던 자기의 가방을 찾아쥐고 비칠걸음으로 지하실을 나왔다.

안방에 들어온 그는 아버지가 읽으려 내려놓은듯 한 책무지에 그대로 엎드려 잠인지 실신인지 모를 혼미속에 새날이 밝을 때까지 꼼짝하지 않았다. 먼지낀 창문으로 얼비추 들어오는 빛에 얼른거리는, 집안의 퇴색한 도배벽과 검은 빛으로 쩌들은 장서들을 보며 자기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가 하고 생각을 달렸다.

그런데 구복이 원쑤라고 배가 고팠다. 밥부터 지어먹어야겠다고 일어서나가 《아》 하고 소리지르며 물앉았다. 그 륙실할 헌병장교의 구두발에 채인 옆구리가 빠개져나가는듯 아팠다. 그는 아버지가 관절에 좋다고 하여 구해둔 《멘솔담》을 옆구리에 바르고 참지로 붙인후 아무것이나 닥치는대로 책 몇권을 뽑아내리였다. 베개를 베고 누운 그는 분명 아버지가 잡숫듯싶은 귀떨어진 바가지에 담긴 누룽지쪼박을 입에 물었다가 그만 치받치는 눈물때문에 먹기를 단념하고 책을 펼쳐들었다. 그러나 책의 글줄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림만 뒤적이다가 녀자처럼 머리를 길게 기른 두 사나이가 눈을 부릅뜨고 마주 노려보는 사진에 시선이 멎자 한숨을 내쉬며 책을 떨궈버렸다. 책이 엎질러지며 한때 온 프랑스국민을 열광시켰던 당똥과 로베르스피에르가 때묻은 장판바닥에 얼굴을 박았다.

《그래, 옳아!》

련화는 시름겹게 중얼거렸다.

당똥과 로베르스피에르가 웨친 《혁명의 무자비》에 대한 글구가 상기되였던것이며 왕당파라면 자기의 친구조차 서슴없이 살해한 《혁명파》들의 단호성에 대한 일화들이 떠올랐고 동시에 그것은 두부장사집 아들이 한 말에 대한 정당성의 반증처럼 느껴져 《그래 옳아》한것이였다. 계급적모순의 불상용에 대해서는 엄엄한 수염쟁이 맑스는 물론 인자한 아저씨같은 레닌까지 긍정하였다던것도 상기하였다. 그리고 학생들속에서 쉬쉬 떠돌던 남로당안에서의 무서운 《계급투쟁》에 대한 이야기까지 덧끼여들며 자기는 계급진지로 볼 때 《반동》이며 이 새 세계의 시점에서 이단자라는 답에 도달하였다. 이렇게 된 모든것은 아버지가 그 흉물스러운 리윤병이네와 함께 간데서 생겨난 비극이라는데까지 생각이 뻗자 련화는 아버지를 원망하게 된 불효스러운 자식의 팔자를 두고 또 한번 애타는 아픔을 느꼈다. 집으로 올 때 길가에서 본 괴뢰군포로행렬속에 끼여 따라가던 안재홍이며 이전 《국회의원》들의 초라한 형색이 떠오르며 아버지도 그냥 있었으면 끌려갈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괴롭게 뇌리를 쳤다. 아버지는 청렴하고 깨끗했지만 《반동과 인민의 편…》으로만 나눈다면 과연 용납되겠는가. 그렇다면 내가 설 자리, 내가 가야 할곳은 어디인가. 그리고 운학씨앞에서 나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짜디짠 눈물이 입가로 흘러내렸다. 그는 보기만 하면 늘 《행복의 꿈》을 키워주던 운학의 수첩을 찾아 가방을 뒤졌다. 채 못나누어진 《평화통일호소문》묶음을 보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운학의 수첩을 찾아쥔 그는 가슴에 꼭 대인채 한동안 있다가 펴들었다. 운학의 청으로 언젠가 써넣은 자기의 시가 펼쳐졌다.

 

흰눈

예쁘고

티없는 순결

외간 발굽에 밟히고

외간 먼지 날아오면

공기되여 사라지리

바람되여 사라지리

 

《바람되여 사라지리.》 마지막구절을 나직이 뇌여본 련화는 입술을 옥물었다. 정말 자기가 한점의 바람처럼 사라져버리던가 시골에 있는 이모네 집에 찾아가 수치스러운 아버지와 언니를 모르는 세계에 숨어버리고싶었다. 이런 때 정록주가 찾아왔다. 련화는 얼마나 반가운지 몰랐다. 인민군원호대를 뭇는다는 말에 별반 주저없이 따라나섰다. 인민군원호대로 가는 길은 운학에게 가까이 가는 길일것이였다. 련화에게서 운학은 선과 정의, 량심과 아름다움의 구감이였다. 그리고 그 길은 백정식이네의 세계를 반대하는 길이기때문이기도 하였다. 감방에서 쓰러진 녀동무를 생각해서라도 그길을 가는것이 옳다고 굳게 믿었다.

이렇게 나온 련화는 지원자들속에 곽근철이라고 하는 두부장사집 아들까지 있는것을 보고 봐란듯이 탄약과 식사를 날랐다. 정록주가 그의 옆구리타박상을 걱정해 고지에 가는것만은 삼가하라고 했으나 그냥 따라나섰다. 그통에 송기덕이라는 중대장을 만나 림운학에 대하여 알게 되였다. 그는 운학이가 여전히 뜨거운 애정을 품고 자기를 찾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찔한 흥분과 환희를 체험했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하나의 어두운 그림자처럼 찾아들어 그 환희에 찬서리를 끼얹었다. 그는 티없이 깨끗한 림운학이앞에서 아버지로 하여 오점있는 녀성으로 되였다고 생각했다. 상대를 너무 높이, 귀중히 생각할 때 녀인들은 조그마한 일을 가지고도 자기를 비하하며 괴로와한다. 그것은 아름다운 감정이라고도 할수 있으나 그때문에 서로가 말할수 없는 불행에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는것을 련화는 생각하지 못했다.

(운학씨는 현재처지의 나를 만나면 어떻게 생각할가. 아버지에 대해서 잊어줄가. 이자 그 전공처럼.)

련화는 깊은 생각에 잠겨 걸었다. 운학이를 생각할수록 울고싶어졌다. 그리고 운학이를 몹시 만나고싶으면서도 왜서인지 만나는것이 두렵기도 하였다.

(그이야말로 얼마나 어질고 훌륭하고… 그리고 용감했던가…)

엠피의 손이 송충이처럼 징그럽게 자기의 쎄라복소매를 쥐였을 때 모두발로 그놈을 차넘겨뜨리고 자기의 손목을 잡은채 달리던 그의 모습이 밟혀오며 아픈 눈물을 더욱 진하게 만들었다.

《강에 다 왔어요.》

솨- 강바람이 비릿한 내를 풍기며 밀려든다. 출렁출렁, 근심도 슬픔도 모르는 강물이 발밑에서 굽이친다. 이따금 파도에 별빛이 어려 부서진다. 빨간 전지불이 강심에서 떠 반짝거린다.

《어디요?》

《수도고지에서 왔어요. 중상자들이예요.》

《어느 군의소요?》

《서울군의소예요. 호호호.》

정록주의 쾌활한 목소리가 크게 울린다.

(아, 남들은 다 기뻐서 웃는데.)

쪽배가 와닿았다. 열명밖에 태울수 없는 배여서 중상자들만 싣고 전호근이를 부축한 련화까지 배에 올랐을 때 찦차 한대가 경적을 요란히 울리며 달려왔다. 배사공이(로인이였다) 긴 장대를 뭍에 대고 밀려고 하는데 차에서 다급한 소리가 터져나오며 한사람이 뛰여내렸다.

《떠나지 마시오.》

긴 그림자를 끌며 달려온 그 사람은 전지불로 배를 비춰보고는 《부상병만 남기고 내리시오.》하고 명령조로 말했다. 너무나 급작스런 일이여서 벙벙해있자 그는 간청하듯 말했다.

《어서요.》

련화와 함께 탄 전방군의소의 간호원이 먼저 일어섰다. 련화도 엉겁결에 일어서는데 《그대로 있소. 같이 타지.》 하며 다부진 몸매의 사람이 재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배안을 살피고는 《조금만 죄이면 되겠군.》 하며 별로 서두는 기색이 없으면서도 재빠른 동작으로 배에 올랐다. 배가 기우뚱하자 그는 실한 몸매에 어불리지 않게 잽싸게 앉으며 련화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는 자기가 의지한 상대가 처녀임을 알았는지 인차 손을 떼고 유심히 바라보았다.

《의사요?》

《아닙니다.》

련화는 어딘가 사람을 위압하는 틀진 목소리와 여느 군관들것과는 다른 누렇게 번쩍이는 어깨의 견장에 대번 주눅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더는 련화를 보지 않고 부상병들을 물끄러미 보다가 한사람이 자기때문에 불편스레 다리를 꼬부리고있는것을 보자 그 다리를 스스럼없이 들어서는 자기의 무르팍에 올려놓았다.

먼저 달려왔던 군관이 배에 오르고 사공아바이가 장대로 밀자 배가 움씰하며 기슭을 떠났다. 차에서 내린 또 한사람이 물가에 서있다가 《장령동지, 안녕히 갔다오십시오.》 하고 소리치는것이 보였다. 련화는 그 음성에 흠칫 하였다. 온몸이 그대로 눈과 귀가 되여 물가에 서있는 사람을 지켰으나 밤빛에 훤칠한 체격만이 안겨올뿐 얼굴을 알아볼수도 그 음성을 다시 들어볼수도 없었다.

(아니, 착각이다. 내가 너무 운학씨 생각을 해서이겠지.)

하지만 어둠속에서 점점 작아지며 녹아버리는 그 모습에서 눈길을 뗄수 없었다. 가슴이 화들화들 떨리였다.

《어디서 싸웠나?》

장령이라고 불리운 사람이 침묵을 깨뜨렸다. 누웠던 부상병들과 후송간호원이 수도고지에서 싸웠다는것을 말하자 그는 《음》할뿐 더는 말을 하지 않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칙- 성냥을 켜대자 굵직한 눈섭이 인상적으로 안겨왔다. 담배를 들이빨 때마다 빨깃한 불빛에 볼과 인중의 거뭇한 수염과 그리고 세모질사한 날카로운 눈이 드러났다.

《저기서 뭘하시오?》

그는 담배불로 아래를 가리키며 사공더러 물었다.

강우로 건너간 철교밑에서 전지불이 오락가락 흐르고있었다. 사공아바이는 그쪽을 얼핏 돌아보고 기다렸던듯 대답했다.

《철다리입네다. 장관어른… 수선공사를 합지요. 철도 댕기는 내 아들서껀 나가서 하는데 장관어른처럼 왕별을 단분이 나와서 지휘를 한답니다. 저 길만 열리면 리승만의… 그 개백정을 싹 쓸어버린답네다.》

장령은 싱긋이 웃었으나 인차 생각깊은 표정으로 돌아갔다. 담배불을 강에 던지고 두손을 맞잡은채 어둠속을 묵묵히 내다보았다.

(이분은 누굴가?… 이분한테 아까 그 군관이 누군가고 물어볼가… 만약 그라면…)

련화는 치마로 감싼 무릎을 꼭 감아쥐며 몸을 떨었다. 숨이 가빠올랐다. 오매에도 잊을수 없는 환한 모습이 어둠을 헤집고 다가오는듯싶었다. 그는 눈을 꼭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야, 안돼, 지금은 안된다. 이 새 세계, 이 선의 세계에 뭔가 기여하기전에는…)

꽝… 요란한 폭음이 울렸다. 련화는 깜짝 놀라 《에그머니.》 소리질렀다. 《이게 뭐야!》 중상자들까지 몸을 뒤채며 놀라 웨쳤다.

장령만이 변함없었다. 철교쪽을 흘깃 돌아본 그는 심상한 일이런듯 지나가는 소리처럼 말했다.

《폭약을 터치는군.》

배가 기슭에 닿자 우쩍 일어난 그는 간호병을 향해 부드럽게 물었다.

《어델 가?》

《세브란스대학 부속병원에 갑니다. 거기에 우리 군의소가 있습니다.》

간호병의 대답이 채 끝나기전에 장령은 소리없이 배에서 뛰여내렸다. 완장을 두른 군관(도하장직일관)이 그에게 다가와 경례를 붙이며 뭐라 말할 때에 미리 준비되여있은듯이 찦차가 옆에 와섰다. 장령은 찦차문이 열리고 웬 사람이 경례를 붙이는것도 아랑곳 않고 도하장직일관에게 물었다.

《위생차들이 왜 없소?》

《방금 한차 싣고갔습니다.》

《저 차는 뭐요?》

장령은 부교가설을 위해 쌓은 목재더미 반대켠에서 꽁무니를 강쪽으로 돌려대고 무슨 퉁구리들을 싣는 화물차를 가리켰다. 몹시 불안스러운 높아진 어성에 도하장직일관은 빳빳이 굳어졌다.

《보위성직속 차입니다. 놈들이 버리고 간 통신기자재와 로획품들을 싣습니다.》

《그건 중지하고 저 부상병들을 먼저 수송하게 하시오.》

《네?-》

군관이 어리둥절해 되묻자 장령은 팩한 소리로 웨쳤다.

《귀가 먹었소? 내 최현이야. 책임은 내가 질테니 부상병들을 세브란스까지 실어다준 다음 저 골동품을 나르오. 알겠어?》

《네, 알았습니다.》

군관은 참대처럼 꼿꼿해서 경례를 붙이고는 장령이 가리킨 련화네쪽으로 성큼성큼 달려오며 물었다.

《어디요? 몇사람이요?》

련화는 얼핏 들은 최현이라는 이름을 되뇌이며 대단히 큰사람이구나 생각하였다. 장령이 탄 차는 강기슭을 따라 철교쪽으로 내리달리였다. 련화는 그 차에 탄 최현장령이 방금 강을 건너오기전까지 운학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왔다는것을, 더구나 자기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였다는것을 전혀 모른채 옆구리의 아픔이 살아오르는것때문에 이마살을 찌프렸다.

 

6월 28일 밤부터 6월 29일 새벽까지 남한강을 도하한 최현의 52사는 오늘 저녁 금량장리계선에 이름으로써 뒤떨어진 사단으로부터 앞선 사단으로 되였다. 그러나 최현의 거멓게 질린 얼굴은 풀어지지 않았고 일정한 휴식을 요구하는 참모장의 제기에는 화를 내였다.

《수원에나 가서 보기요.》

최현은 바지혼솔에 붙은 도꼬마리들을 하나하나 잡아뜯어 유심히 살피다가는 던지고 어떤 때는 손톱으로 누르기도 하다가 통분하여 중얼거렸다.

《우리때문에 얼마나 손해를 본줄 알아… 》

최현은 자기 사단이 원래의 계획대로 수원에 갔더라면 지금처럼 주타격방향부대들이 한강계선에서 지체되는 일은 없을것이라는 자책에서 헤여나올수 없었던것이다.

그때 뜻밖에도 최춘국이가 최현을 찾아왔다. 최춘국은 62사 사단장으로 임명되여 서울을 거쳐 홍천쪽의 자기 사단으로 가던중에 최현사단의 행군대렬과 부딪쳐 지휘부를 찾아왔던것이다.

서로 바쁜 그들은 차를 반대로 세워붙이고 두손을 맞잡은채 그간의 소식을 성급히 나누었다. 전쟁개시 첫날 김일성동지의 명령을 받고 원산과 남포에 나가 해안방어대책을 세우고 돌아온 최춘국은 임무수행을 보고한 그 시각부터 전선에 내보내줄것을 제기하여 승낙을 받기까지의 사연을 깊은 감회를 품고 말했다.

《…처음엔 딱 짜르시더군요. 정 우기니 다리때문에 안된다고 하시는것이 아닙니까. 뭐 최현동지까지 제 다리가 신통치 않다고 했다면서요.》

《아 아니, 난 오히려 그 반대의 말씀을 올렸어.》

최현이 당황해 사실을 밝히자 최춘국은 깨고소한 웃음을 지었다.

《물론 그랬겠지요. 제가 장군님의 심중을 모르겠습니까. 그래서 난 <장군님, 정 그러시다면 제가 여기서 춤을 춰 보이겠습니다.>고 했댔습니다. 그러니까 장군님께서 <춰보오.>하시는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췄지요.》

《볼만했겠는걸.》

최춘국은 어색한 웃음을 짓고 데면데면해 말을 인차 잇지 못했다. 옆으로 진창을 튕기며 굴러가는 중포를 바라보다가 《그래서》 하고 최현이 또 물어서야 최춘국은 어딘가 면난한 표정으로 나직이 말했다.

《다 추고 돌아보니 장군님께서는 창문가에 다가가 바깥을 내다보시는것이였습니다. 그때까지 눈치를 못채고 <갈수 있지요?> 하고 어린애주정을 했습니다. 그래도 장군님께서는 움직이지 않으시였습니다. 한참 있다가 돌아서신 그이께서는 <잘 추는군. 춤추는 기백은 변하지 않았소.>라고 조용히 말씀하시는데 그 음성이 젖어있지 않겠습니까. 속이 별랬습니다. 내가 그대로 서있자 <가야지… 가야지!> 하고 반대되는 생각을 물리치듯 곱씹어뇌이시다가 <건강이 담보되고 무사할것이 담보된다면 열백번이라도 가야지> 하시는것이였습니다.》

최현은 가슴이 찡해서 고개를 돌렸다. 야포를 끌고가는 노란암말의 옆에서 털이 보르르한 망아지가 젖꼭지를 찾아 배밑에 기여들다가는 깡충 뛰쳐나오고 그랬다가 또다시 아장아장 기여들어갔다.

6월 23일 저녁 자기를 떠나보내면서 그토록 가슴아파하시던 장군님의 모습이 우렷이 밝혀오며 그리움이 애릿한 향수로 가슴을 적시였다. 최춘국이 먼저 《그 망아지 좋군.》 하고 화제를 돌린후 최현의 얼굴을 근심스럽게 더듬어보고는 《얼굴이 무척 탔습니다.》 하고 말했다.

《속이 타 그렇소.》

그 말에 최춘국의 눈빛이 한결 심각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장군님께서 최현동물 두고 걱정하더군요.》

《무슨?》

최현은 눈이 다 둥싯해졌다.

최춘국은 최현을 똑바로 마주보며 한마디라도 빼놓지 않기 위해 이마살을 찌프려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장군님께서는 앞으로 최현동무의 사단엔 더욱 큰 적들이 막아나설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제도 어려웠지만 래일은 더욱 어려울것이라고… 이번 반공격작전에서 가장 어려운 모퉁이를 맡았다고 하셨습니다.》

《그건 나를 위안하기 위한 말씀이시오.》

최현은 가슴이 억해졌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최현동무의 성미에 참기 어려울 정황들이 생길수 있는데 그럴수록 최대로 인내성을 발휘하고 특히 최현동무가 개인적으로 모험하는 행동을 절대로 삼가하라고, 이것은 명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최현은 최춘국의 손을 꼭 잡고 간절한 눈길로 바라보며 약간 쉰 소리로 말했다.

《우리처럼 되지 말게. 난 수원을 기일내에 타고앉지 못한것이 일생 가슴에 못박힐거네.》

최춘국은 동정하듯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막았다.

《그러지 마십시오. 아닌게 아니라 내가 장군님께 그런 뜻을 비췄더니 제정된 시간표에 의한 렬차다님처럼 순조로우면 무슨 전쟁이냐고 웃으시며 <하긴 최현동무로선 그럴수 있지.>라고 하시더군요. 이젠 더 생각지 맙시다.》

최춘국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싱그레 웃고는 《무슨 조언을 줄것 없습니까?》 하고 말했다.

《없어, 아니 한가지… 지휘관들한테 항공습격시 대비책을 잘 일깨워주게. 나 역시 그런데 경험이 없다보니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야단쳤지. 참, 장군님께서 왜 62사를 동무에게 맡겼을가?》

최현의 눈은 가느스름히 찌프러져 마치 춘국의 준비정도를 알아보려는것만 같았다. 최춘국은 씩 웃으며 《최현동무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고 되물었다.

《글쎄 내가 장군님의 그 깊으신 생각에까지 가닿겠소.…

그저 짧은 짐작으로 말하면 그전 사단장은 정규전은 밝은데 유격전에는 쑥이였어. 그러니 유격전의 대가인 춘국일 찍은거지. 62사 방향엔 산이 많아. 춘국이야 산에서 귀신이 아닌가.》

《날 띄운것 내놓고는 다 맞습니다. 최현동지앞에서야 구태여 감추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제가 38년에 독립려단을 이끌고 대부대기동을 한것을 례들면서 거의 독자적인 행동으로 병행추격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린접에 구애되지 말고 산을 타고 나갈수 있는껏 나가는것입니다.》

《배후에 남은 적은 어떻게? 역포위하려 달려들지 않을가?》

《장군님께서는 적은 우리와 같은 군대가 아니라고 하시며 그물속에 든 고기처럼 되여 붕괴될것이라고 하시였습니다. 더구나 미군이 개입한 조건에서 빨리 나가는것만이 장땅이라는것입니다.》

《그러니 동문 냅다 달릴판이군. 부럽소.》

최현은 보조타격부대로서 주타격의 움직임에 맞추게 되는 《시집살이》에 대하여 말할가하다가 자기의 못난 생각이 낯뜨겁게 돌이켜지여 화제를 돌렸다.

《그래 전방지휘소에서는 다 잘 있습데.》

《네, 강건참모장을 만났습니다. 상동진 51사에 나갔더군요. 서울에서 지체된 시간을 봉창하자고 윽윽하는판이지요. 강건동진 얼굴이 술치같이 됐어요. 미24사선견대가 부산에 왔다는것으로 신경이 칼끝처럼 돼있더군요.》

《선견대라니. 벌써 그놈들이 들어섰단말인가?》

《네, 어제 나타났다는것 같습니다.》

《나타났다?!》

최현은 입술을 아프게 깨물었다.

행군대렬의 마지막인 사단군의소의 로획품 《엠불런스》(적십자표를 그린 위생차)가 옆으로 지나갈 때야 그들은 너무 오랜 시간을 지체했음을 깨달았다.

《이젠 가겠습니다.》

최춘국은 순박한 어린애의 미소같이 깨끗한 웃음을 머금고 최현을 보았다. 최현은 낯색이 별로 희여보이는 춘국이를 물끄러미 보다가 왜서인지 불길스런 예감에 심장이 쿡-하고 찔리우는 아픔을 느꼈다. 그래 량손의 두손가락을 구부려 원을 짓고 눈에 대였다.

《잘 있소? 울지 않습데?》

안경쟁이인 최춘국의 부인을 말할 때 흉내내는 이 동작에 춘국은 허허 웃고는 《참》 하면서 뒤에 앉은 련락병에게 뭐라 수군덕거리더니 광목천에 싼것을 내밀었다.

《뭐요?》

최현이 꿀먹은 벙어리처럼 웃는 최춘국이를 수상쩍게 보자 춘국은 벙글벙글 웃었다.

《우리 부인님의 솜씨입니다. 내가 나간다니 얼싸 좋다 하며 밤새워 빚고 구운것입니다.》

《이걸 내가 먹어서야 되겠나?》

최춘국의 말과는 반대의 정경이였음을 짐작하며 최현이 말하자 최춘국은 여전히 롱말을 하였다.

《그래야 우리 처도 전선원호를 한것으로 되지요. 자 헤여집시다.》

《안을가?》

《안아야지요.》

최춘국은 최현의 어깨에 향긋한 김치내 비슷한것을 풍기며 얼굴을 대였다가 떼였다. 최현은 그의 어깨를 꽉 쥐였다가 밀쳤다.

《잘 가오.》

최현은 이것이 최춘국이와의 영원한 리별임을 몰랐다. 최춘국은 이때로부터 열흘후 안동뒤산에서 그 유명한 《나에게 30분의 생명을 연장시켜달라》는 말을 남기고 심장의 고동을 멈췄던것이다.…

최현은 최춘국이 탄 차가 먼지를 뽀얗게 감아올리며 사라져가는것을 지켜보다가 참모장을 찾았다. 그는 53사와 905땅크사단의 도착을 기다림이 없이 사단단독으로라도 수원공격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하였다. 전방지휘소의 명령에는 사단이 우익린접 주타격방향부대들이 수원계선에 도착할 때까지 익측 포위준비를 갖추고 대기하게 되여있었으나 미군의 부산도착은 최현이로 하여금 그런 기다림을 허용할수 없게 만들었다.

《그 전투는 우리가 수원을 먹는가 못먹는가에 있는것보다 53사나 54사앞의 적을 떼여내여 그들의 진로를 열게 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보오. 그건 주타격의 보조로써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 아니겠소.》

《그런 의미에서는 우리 사단 진출로선인 안성쪽으로 나가는것이 더 합당하다고 봅니다.》

참모장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본 최현은 사단의 이런 구상에 대하여 전방지휘소에 제기하고 최종동의를 받으려 했다. 행군중의 무선차를 멈춰세우고 전방지휘소를 찾을 때 먼저 보위상이 최현을 찾았다. 즉시 서울의 전방지휘소로 도착하라는 지시였다.

이렇게 되여 사단을 떠난 최현은 시산리쪽에서 53사 9련대와 만났다. 그는 패잔병들이 도처에서 갈개고 전선경계도 명확치 않은 길로 호위도 없이 달려온데 아연해하는 김만익련대장에게 자기의 조급한 심정과 울화를 얼마간 터놓았다. 호위를 붙이겠다는것을 거절하고 그 지대지형에 밝다는 군관 한명을 알선받았다. 그 안내로 나온 군관은 림운학이였다. 최현은 며칠전의 환하던 얼굴이 화상을 입어 거칠어지고 눈만 황황히 타는 림운학이로부터 아버지도 애인도 못만났음을 알았다. 적들이 수감된 애국자들을 학살하고있다는 통보를 받은바있는 최현은 밝은 전망을 도저히 내다볼수 없는 운학의 부친과 애인의 처지를 두고 근심스러웠으며 그들의 상봉이 이루어지지 못한것도 자기 부대의 진격속도가 더딘탓처럼 느껴졌다. 그가 만약 이런 심리적중압속에만 있지 않았더라도 좀전 강녘에서 자기를 바래주던 림운학이 인사말을 할 때 한 녀성 간호원의 행동이 이상스러웠음을 알아봤을것이였으나 그때의 그는 사단의 전투계획속에 묻혀 일체를 잊고있었다.

최현은 철다리가 불빛에 드러나는 순간 거기 어디에 류경수가 있을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목에 호각을 건 각광을 단 군인이 길을 막아나서며 손에 쥔 빨간 수기를 휘저었다.

《발동을 죽이시오.》

《무슨 일이요?》

《이 주변에서 일체 소음을 내지 못하게 됐습니다.》

《방금전까지는 남포까지 놓더니 소음은 무슨 소음이야?》

최현이의 다부진 몸매와 위압적인 말투에 《각광》은 몸을 꼿꼿이 하며 공손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십분전에 우리 려단장동지가 그런 명령을 내렸습니다. 특수임무를 수행할 땅크병들을 방금전에 취침시켰기때문입니다. 그들을 승인없이 깨우게 되면 처벌까지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

최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류경수를 찾아달라고 말했다. 《각광》이 어둠속으로 사라진후 좀 있어 노젓는 소리가 들리고 전지불을 깜박거리며 철다리밑 어둠속에서 쪽배 하나가 나타났다. 배가 스르륵하며 모래판에 닿자 아래우 맞달린 땅크병 복을 입은 훤칠한 몸매의 장령이 뛰여내렸다.

《어데 있습니까?》

《여길세.》

최현이 반가움에 차 소리치며 달려가자 류경수는 어푸러질듯이 마주 달려와 최현이를 와락 그러안아 한바퀴 빙-휘둘렀다.

《근데 여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전방지휘소에라도 소환된것 아닙니까?》

모래불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류경수가 물었다.

《나야 그럴 재목이 되나.》

최현은 기쁜 기색으로 류경수를 보며 말했다.

《서울해방에서 자네 공이 크다는걸 들었네. 기쁘이.》

《원 기쁜지 뭔지 앉은뱅이노릇에 속이 탑니다.》

《다행일세.》

류경수는 별빛에 드러난 최현의 얼굴을 유심히 보다가 시풀뚝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니 예 온건 왜 땅크가 아직 넘어못가는가 질책하러 온거겠수다?》

《점쟁이 이상이군. 아닌게 아니라 그때문에 별러서 온걸세.》

《나도 끙끙 앓습니다. 그래 별 륙갑을 다 해봤지요. 떼목, 여울도하, 자맥질도 수태 하고…》

최현은 소리치며 흐르는 검푸른 강물을 내려다보며 이 철덩이같은 류경수도 며칠째 꽤 속을 앓았겠구나 생각했다.

《동무가 바쁜 소릴 하는건 처음이군.》

《속이 끓어 그럽니다. 그래서 강건동무한테는 한바탕 해댔습니다. 빨찌산때를 다 잊었는가고. 땅크없이 못나가는가 하고…》

《이제 그 말해 뭣하나?》

《난 지금 장군님을 생각하면 영 괴롭습니다.》

류경수는 더 말을 못했다.

《그래 아직 방법이 안섰나?》

《해보자는겁니다. 저 철교로 넘어가자는것입니다.》

《저 철다리도 끊어지지 않았나?》

《놈들이 폭파를 했지요. 한데 경간구조물이 40˚각도로 저쪽 대안에 내려앉았습니다. 그걸 방금 남포질을 해서 60˚경사로 만들어놨습니다. 그 경사를 타고 저쪽으로 내려가자는것입니다.》

《그런데는 땅크를 다 물에 처박는다고 우는 소릴 하며 반대하는 학자님들이 있다는데 문제가 있지요.》

《그래 승인을 못받았다는건가?》

《그걸 받자면 리론으로 증명해야겠는데 내가 무슨 학자입니까? 해놓고 볼판이지요. 실패하면 군사재판이겠지요. 까짓거 목이 날아나도 해볼판입니다. 못넘기고야 내가 무슨 장군님의 유격댑니까?》

《다리를 한번 보자구.》

전지를 켜든 최현은 류경수의 만류를 뿌리치고 철다리에 올라섰다. 번뜩거리는 레루와 침목사이로 드러나는 물결은 불빛에 고기비늘처럼 번뜩거렸다. 끊어져내린 다리끝 경간에 이르자 최현은 높은 지붕에서 사다리를 내린듯 아찔하게 내려간 레루를 한참이나 내려다보다가 돌아섰다. 타고온 찌차에 이르러서 걸음을 멈춘 그는 무거운 얼굴빛으로 류경수를 바라보았다.

《자신있나?》

《어쩌겠습니까.》

《군사재판장에 나서면 나도 피고석에 앉겠어. 최춘국동무도 잘 싸우고있더군.》

최현은 최춘국이에 대한 소식을 짤막히 이야기한 후 우중충한 밤어둠이 내려앉은 대안의 산언덕을 바라보다가 지나가는 소리처럼 한마디 했다.

《로량진의 적들도 꽤나 지독스레 덤비지?》

《네. 우리 기계화련대동무들도 거기서 혈투를 벌렸습니다.》

최현이 룡산을 거쳐 중앙청에 도착하였을 때는 열한시 조금 못미처서였다. 그는 직접 최용건보위상실로 찾아들어갔다. 부관장의 안내를 받아 문에 들어서자 최용건은 안경을 끼고 확대경으로 지도를 내려다보고있고 다른 손에는 전화기를 들고 무슨 보고를 받고있었다.

《그런 우는 소린 그만두오. 905땅크도 래일은 넘어가오. 그러니 래일엔 동무네도 영등포에 가있어야 되오. 다요!》

최용건은 성난 음성으로 소리치고는 전화기를 소리나게 놓았다. 그리고는 무겁게 몸을 일으켜 최현한테 다가왔다.

《불러서 안됐소. 저녁은 자셨소?》

《네. 근데 건강이 좋잖아보입니다.》

최용건의 눈청엔 피가 져있었다. 최용건은 알릴듯말듯 머리를 저었다.

《뭐 내 몸은 일없소.》

그는 작전대앞에 이르자 최현을 곧추 향해 보며 말을 이었다.

《좀전에 사단장들 회의가 있었소. 동문 거리상관계로 제외시키게 되였으나 부르게 되였소. 미군이 부산에 들어섰소. 이때문이요. 단단히 준비를 해야겠소. 수송기재가 발달한놈들은 어느사이에 다닥칠지 모르오. 우린 그놈들이 십중팔구 여기 주타격방향 부대들이 나가는 전선서부로 나타날것이라고 봤소. 이런데로부터 부대들의 전투임무와 계획에서 일부 변화가 있을수 있소. 변화래야 동무네 사단같은 경우 지역분담이 더 커지게 된다는 그것이요.》

《저희도 예견하고있었습니다.》

《어떤? 앉아서 말하오.》

최용건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최현은 참모장과 토론했던 사단단독으로라도 수원이나 안성쪽을 쳐나갈수 없겠는가에 대한 구상을 이야기하였다.

최용건은 최현의 얼굴에서 한초도 시선을 떼지 않고 묵묵히 듣기만 하다가 움씰하고 상체를 바로잡았다.

《최현동무!》

좀해 웃음이 없던 최용건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지였다.

《사실 동무를 꼭 만나자고 한것은 그때문이였소. 안성은 동무네 진출계획지대에 포함되여있었으나 53사의 기본담당지역이였소. 그런데 현재 53사가 지체된데서 부득불 동무네가 안성쪽도 맡아야겠소. 물론 53사는 자기들의 힘으로 안성도 해방하겠다고 하는데 그건 좀 두고봐야겠소. 그리고 동무넨 53사와의 협동동작에 더욱 관심을 돌려야겠소. 미군이 53사방향에 나타나는 경우 더욱 그렇소. 동무네 사단쪽으로 나타나도 그렇고… 그나저나 다른 사단들도 그렇지만 동무네 사단의 전투전개지역이 더 넓어진셈이요. 나는 동무네가 먼저 이걸 예상하고 계획을 가졌다니 마음이 놓이오.》

최용건은 잠시 말을 끊고 지도를 내려다보다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고개를 든 그는 엄한 눈길로 최현을 보며 힘주어 말했다.

《우린 잃어버린 시간을 만신의 힘을 다해 회복해야겠소.》

한강도하의 지체는 작전전반에 적잖은 장애를 가져왔다.

53사, 54사는 대안에 발붙인 그 시각부터 무려 세개 사단의 반공격에 부딪쳐 치렬한 격전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였다. 강안에 나가 로량진과 여의도의 공방전을 직접 목격하면서 최용건은 시간을 잃었다고 안타까이 뇌이시던 장군님의 말씀을 다시금 상기하지 않을수 없었다. 적들은 정신을 차리고 대렬을 정비하며 달려드는것이다. 쪽배에 실려오는 사상자들을 보면서 그는 자기들의 작전적착오가 빚어놓은 희생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이 후회와 아픔에 포로되지 않기 위하여 무진 애를 쓰지 않으면 안되였다. 하여 그는 더욱 엄하면서도 단호한 태도로 지휘관들에게 요구하고 따지고 추궁하였다. 강건이 그 빈틈없는 타산과 계획으로 수립한 전투조직에 대해서도 몇번씩 더 따져보군 하였다.

자신에 대한 요구성이 비상히 높은 사람들이 항용 그러하듯 최용건은 자기자신의 실책과 과오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였고 일단 그에 대한 반성에 빠지자 그 번민의 숲속에서 인차 헤여나오지 못했다.

자기의 경험과 능력이 매우 제한되여있으며 정세판단과 분석에서 예리하지 못하다는것으로 번져나간 가책과 후회는 제기되는 정황앞에서 신속하고도 명확한 결심을 가지게 하는것을 방해하였다. 어제 최춘국사단의 병행추격전에 대한 장군님의 명령을 연구하던 강건이 최현사단을 대담하게 안성쪽으로 진출시키자는 제기에도 선뜻 대답을 주지 못했다. 경험이 많고 로숙한 장군들이 때로 실패를 당하는 경우 자기 전체를 의심하며 동요고민하는 그런 상태에 빠져있다는것까지도 생각하며 자기를 다잡자고 애썼으나 평소의 강한 의지도 여기에는 별로 도움이 없었다. 하여 최현을 불렀던것이다. 최현은 그에게 또하나 용기와 신심으로 안겨들었다. 다음날 새벽 온 전방지휘소가 지켜보는가운데 류경수의 땅크들이 끊어진 철교로 넘어가는 《모험》을 단행했다. 끊어져 땅에 드리운 60˚경사의 철교로 《날아내리는 교예》였다. 류경수는 쪽배우에 올라 그 어마어마한 도하를 지휘했다.

《배가 움직이지 않게끔 재간을 피우오.》

노를 젓는 병사들에게 이런 지시를 내린 류경수는 동상처럼 우뚝 서 날아내리는 땅크들에 수기신호로 명령을 내리군 했다. 첫 땅크가 날아내릴 때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이 눈을 감았고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도 냈다. 그러나 류경수는 빙글써 미소를 띠우고(모든 전사들이 그렇게 보았다.) 태연자약히 있었다. 마지막 땅크가 내릴 때까지 그는 그 자세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마지막땅크까지 무사히 넘어갔을 때 류경수는 노젓는 병사들을 그러안고 껄껄 웃었는데 전사들은 장령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흐르는것을 보고 한결같이 울먹거렸다.

류경수장령의 땅크들은 도하즉시 보병부대들과 함께 일격에 영등포를 휩쓸어나갔다. 그 기세로 7월 4일에는 수원해방전투까지 결속지었다. 금량장리를 해방한 52사는 안성쪽으로 접근하였다. 수원해방전투때문에 주타격방향부대들에 나간 강건이 돌아온 시각 주문진해상에서 미군순양함 《볼티모》를 격침시킨 구체적인 상보가 보고되였다.

강건은 추진식프로펠라비행기로 《하늘의 요새》라고 하는 《B-29》와 분사식전투기 《F-86》을 쏴떨군 항공대의 전과까지 종합하여 《미군의 기술적우세》가 이 땅에서 추풍락엽의 신세가 되였다고 기뻐하였다.

최용건은 드문 일로 청사의 부서들을 찾아다니며 전방지휘소성원들과 담화도 하고 순양함 《볼티모》에 대한 상식적인 자료도 들려주었다. 점심도 여유있게 차려놓은 식당에서 하였다.

바로 그때 정찰부장으로부터 24사선견대가 100여대의 차에 분승하여 대전을 떠났다는 통보를 받았다. 어데를 목표로 하는지 모른다는 말에 최용건은 저으기 불안하였다. 그는 즉시 각 부대장들에게 미군을 만나면 신중히 행동하여 린접과 병종호상간의 협동동작으로 실수가 없이 싸울수 있게끔 준비를 빈틈없이 갖추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류경수를 무선전화로 직접 호출하여 미군선견대와의 조우를 예견하여 단독행동을 하지 말고 차지한 계선에 멈춰설것을 요구하였다.

《상대가 괴뢰군과 다르다는것을 알아야 되오. 보병과 보조를 맞추고 정찰을 강화하며 서뿔리 내닫지 마오.》

최용건의 이 명령은 그날 오후 변경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오전정황보고를 받으시다가 그 사실에 류의하고 《맞다드는 즉시 적을 갈길수 있게 만단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계속 공격속도를 높이》라고 시정시켜주시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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