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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길 제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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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820회 작성일 20-03-06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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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백홍건은 누구보다 바삐 보내는 사람이였다.

《빨리! 빨리!》

승용차에 오르기만 하면 이렇게 다그어대는것이 복구건설과 함께 어느덧 버릇으로 굳어지고말았다.

나라는 재더미를 털며 일어서기 시작하였으나 아직은 건설자재라는것이 별반 공급되는것이 없었다. 지방들에 흔한 석비레, 토피, 석재, 목재가 건재의 대부분을 대신했다. 무너진 건물들에 남아있는 벽돌, 철근, 목재 같은것이 귀중한 건재로 쓰이는 형편이였다. 한그람의 세멘트, 한장의 벽돌, 한토막의 철선도 바르기 그지없는 빈터에서 복구건설의 첫 걸음을 뗀 조국이였다.

《빨리! 빨리!》

백홍건은 사업을 조직하고 포치한 다음에는 부단히 이런 말로 아래사람들을 독촉하며 일을 밀고나갔다.

그는 이 며칠사이에만도 서해안지구의 도소재지들을 다 돌았다. 강남요업공장을 건설한 귀중한 경험을 살려 도소재지들마다에 강력한 건재생산기지를 꾸려놓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백홍건은 사리원지구에 일떠서고있는 건재생산기지를 돌아보고 추진대책을 협의한 다음 밤이 깊어 평양으로 돌아오고있었다. 눈치빠른 제대군인출신의 젊은 운전사는 백홍건이 승용차에 오르기 바쁘게 가속답판을 밟아댔다. 전쟁때 적들의 폭격을 두번이나 받은 낡은 승용차는 차체를 들추며 방금 복구가 끝난 길을 달리고있었다.

《천천히 몰라구.》

문득 뒤자리에 앉은 백홍건이 웅글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운전사는 처음에 자기가 그 말을 잘못 듣지 않았는가 생각하였다. 차에 오르기만 하면 빨리 달려가자고 재촉하던 상이였던것이다. 그러나 운전사는 잘못 들은것이 아니였다. 백홍건은 다시 차를 천천히 몰라고 주의를 주었던것이다.

운전사는 늘 앞자리에 앉던 상이 오늘 따라 뒤자리에 절반 늘어지듯이 앉고 차도 천천히 몰라는것으로 보아 이 며칠동안 밤을 패며 일하더니 평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안에서 눈을 붙이려는것이라고 생각했다.

승용차는 고르로운 발동소리를 울리며 중화읍을 지나 평양을 가까이 하였다.

《불빛이요. 밤이 깊었는데도 수도는 잠들줄 모르는군.》

백홍건이 혼자소리처럼 말하는것을 듣고 운전사는 고개를 돌렸다. 상은 잠든것이 아니였다. 그래서 운전사가 다시 차의 속도를 높이자 백홍건은 거의나 사정하다싶이 차를 천천히 몰라고 이르는것이였다. 그리고나서 차의 한구석에 구겨박히다싶이 하고는 잠잠해졌다.

《몸이 불편합니까?》

운전사가 은근히 걱정하며 물었다.

《아, 아니요. 잠을 청해보았는데 잠이 와야지. 허허…》

백홍건은 평소의 락천적인 성미그대로 활기를 띠며 말하였다.

대동교를 넘어선 승용차는 불빛이 휘황한 국제려관건설장옆을 지나 창전동골목길에 들어섰다. 자정도 지난 때라 주위는 컴컴하고 괴괴하였다. 전조등불빛으로 골목길을 쓸며 천천히 미끄러져가던 승용차는 언덕아래 토담을 두른 기와집앞에서 멎었다.

《오늘 흥남으로 내려가겠으니 차정비를 잘해주오. 수고했소.》

백홍건은 운전사에게 부탁하고 가슴팍에도 미치지 못하는 널대문을 열었다. 그순간 짙은 어둠속에 잠겨있던 기와집 방문에 전등불이 환히 켜지였다.

《당신이 아니예요?》

잠내풍기는 녀인의 목소리.

《나요. 왜 아직 자지 않소?》

백홍건은 안해가 열어준 방문으로 성큼 들어섰다.

남편의 가방을 받아든 리옥순은 아무말없이 웃방으로 올라갔다. 백홍건은 아래방안에 우뚝 선채 잠든 두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그애들의 머리맡에 다가가서 허리를 낮추 구부리고 아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올해 8살, 11살 되는 두 아이는 전쟁 3년간 피난을 가있다가 돌아왔는데 백홍건은 그애들이 도착하는 날 얼굴도 보지 못하고 출장을 떠났던것이다.

아버지는 자못 신중한 표정을 짓고 그사이 아이들이 얼마나 컸는가를 하나하나 확인이라도 하듯 눈박아 보는것이였다.

마침내 백홍건은 한시름 놓고 자리에 앉았다. 웃방책상우에 남편의 가방을 놓고 아래방으로 내려온 리옥순은 방아래목에 밥상을 차려놓았다.

《저녁은 먹고왔소.》

《그럼 밤참으로 생각하고 드세요. 출장에서 돌아오면 두부장과 김치부터 찾군 하지 않았어요.》

리옥순이 남편의 표정을 살피며 말하였다. 남편은 언제나 식욕이 왕성하였다. 음식을 별로 가리는것이 없었지만 곱돌장사기에 보글보글 끓인 두부장과 시원한 김치를 특별히 좋아하였다.

《허허.》

백홍건은 어글어글한 두눈에 다정한 빛을 띠우며 웃었다.

《드세요.》

안해는 두부장그릇을 남편앞으로 밀어놓았다. 그 목소리와 표정에는 음식을 들지 않을수 없게 하는 간절한것이 있었다.

《먹어볼가. 장국냄새가 정말 구수하오.》

《김치는 시여지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시여지면 뭐라나. 여름철엔 신것도 맛이지.》

백홍건은 빙그레 웃었다. 남편의 칭찬을 받은 리옥순은 철부지소녀처럼 얼굴을 붉히였다. 그는 밥상머리에 다소곳이 앉아 음식을 드는 남편에게서 순간도 눈길을 떼지 않았다. 남편이 숟가락을 들고 무엇인가 찾으면 그는 그것을 제꺽 알아맞히고 남편앞에게 밀어놓는것이였다.

《두부장이 입맛을 돋구거든.》

백홍건은 이렇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나 리옥순이 보기에는 남편이 어쩐지 음식을 달게 드는것 같지 않았다. 리옥순은 밥그릇가까이에 발가우리한 새우젓종지를 당겨놓았다. 광복전 평북도 룡천지방에서 오래동안 생활해서인지 백홍건은 서해안지방의 젓갈품을 아주 좋아하였다.

《오, 새우젓. 어디서 생겼소?》

《누구한테 부탁했지요.》

《잘 삭은거구만.》

남편은 또 칭찬했으나 정작 새우젓은 들려고도 하지 않았다. 수저를 놀리는 남편의 손길이 차차 떠지기 시작하였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남편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있던 리옥순이 가늘게 떨리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일은 무슨 일, 아무것도 아니요.》

백홍건은 끝내 음식은 별반 들지도 않고 수저를 놓았다. 맑은 하늘에 구름이 끼듯 언제나 밝게 웃던 남편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언듯 스쳐지났다. 남편의 사소한 기분이나 동정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안해는 대뜸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요.》

백홍건은 꼭같은 대답을 하고나서 전과 같이 유쾌하게 웃으려고 했으나 오히려 얼굴인상은 찡그려지기만 하였다.

리옥순은 무엇인가 짐작이 가는듯 더는 아무말없이 고개를 떨구고 가는 한숨을 내불었다.

《피곤해서 음식맛이 떨어진것 같으니 웃방에 올라가 한잠 푹 자겠소.》

백홍건은 이렇게 안해를 안심시키고 웃방으로 올라갔다. 그는 침대에 두다리를 꼬부리고 모로 누웠다. 처음에는 이따금 간부위가 묵직해진듯 한 불쾌감이 들었는데 지금은 확실히 둔한 아픔이 느껴졌다.

《여보.》

안해의 특이한 륙감으로 남편의 병조를 알아차린 리옥순이 어느사이 웃방으로 올라왔다.

허리를 새우처럼 꼬부린 남편은 걱정말라는듯이 팔을 내저었으나 식은 땀이 흐르는 창백한 얼굴은 남편의 신상이 정상이 아니란것을 말해주고있었다.

리옥순은 전화기가 있는데로 급히 다가가 송수화기를 들었다.

《놓지 못하겠소.》

순간 남편의 엄한 목소리가 안해를 제지시켰다. 안해는 남편이 침대에 걸터앉는것을 보았다.

《수화기를 놓소. 무슨 큰일이나 난것처럼 이 밤중에 병원을 찾겠소?》

백홍건은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얼굴이 말이 아니예요.》

《내 얼굴이 어쨌다고?》

《병원에 알려야겠어요.》

리옥순은 자기 목소리 같지 않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안되오.》

백홍건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안해한테로 다가와 안해의 꽛꽛한 커다란 손을 꼭 쥐였다.

《나한테 신경통이 있다는거야 당신도 잘 알지 않소. 신경통이란 있다가도 저절로 없어지는것이니 조금도 걱정할것이 없소. 이밤이 지새면 난 성으로 나갔다가 흥남으로 내려가야 하오. 정전후 난 아직 한번도 흥남비료공장에 내려가보지 못했소. 화학공업을 책임진 상이란 사람이 아직도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비료생산기지에 얼굴 한번도 내밀지 못했으니 말이 됐소? 더구나 흥남은 큰 공업지구인데 아직 벽돌한장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고있소. 그래서 난 이번에 맞춤한 자리에다 큼직한 건재생산기지 하나를 꾸리자고 하오. 그런데 당신이 이밤에 갑자기 병원에다 전화질을 하면 당장 소동이 일어나고 그러면 만사가 다 틀어진단 말이요.》

《난… 난 걱정스러워요. 요즘 정말 당신은 신색이 좋지 않고…》

리옥순은 남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남편의 얼굴살결은 유난히 희고 맑았다. 그런데 그 맑은 살결에 알릴듯말듯 흙빛이 스미는것을 안해의 예민한 눈길은 놓치지 않고있었다. 그것은 틀림없는 병색이였다. 리옥순은 가슴이 저려들었다.

《공연한 걱정을 마오.》

백홍건은 안해를 안심시키기에 바빴다.

《당신은 때로는 철없는 내 누이동생 같고 때로는 갓 결혼했을 때의 젊은 안해 같고 때로는 나이든 어머니 같단 말이요. 복구건설이 끝나면 내 당신을 위해 노래한곡 짓겠소.》

안해는 한마디 대꾸도 없이 고개를 떨구고 앉아있었다. 무슨 일인가 하여 안해의 얼굴을 들여다본 백홍건은 내리깐 안해의 눈에 눈물이 핑그르르 도는것을 보았다. 백홍건은 평생 남편때문에 고생하는 안해를 위안하려고 한것이 오히려 그의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는것을 알았다.

《나에겐 노래도 필요없어요. 당신만… 당신만 있으면 다예요.》

《허허.》

백홍건은 소리내여 웃더니 벽에 걸린 바이올린을 벗겼다. 《남편이 귀중한건 사실이지만 당신은 이제 남편보다 몇배 더 귀중한것이 또 있다는것을 알게 될거요. 그러나 지금은 내 당신을 위해 노래한곡 타겠소.》

《됐어요. 아이들이 깨겠어요. 날이 밝겠는데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지요.》

리옥순은 남편에게서 바이올린을 빼앗아 도로 벽에 걸더니 침대에 이부자리를 폈다.

밤은 바닥 모르게 깊어갔다. 리옥순은 남편이 자리에 누운후에도 남편의 침대머리에 오래도록 앉아있었다. 그러나 백홍건은 인차 잠들지 못했다.

그들이 결혼한지도 어언 20여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이였다.

리옥순과 백홍건은 멀리 남해가의 자그마한 섬마을에서 자랐다.

리옥순이 18살 되는 나이에 가마를 타고 시집을 왔을 때 남편은 불과 15살밖에 안되는 소년이였다. 게다가 처녀애처럼 얼굴이 해사하게 생긴 소년은 가고오는 감기에 다 걸리며 늘 골골하는 약골이였다.

리옥순은 자기의 불우한 운명을 한탄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어쩔수 없는 연분이라 생각하고 어리고 연약한 남편을 해녀였던 어머니의 완강한 체질을 이어받은 그 억센 한품에 그러안고 거치른 세파를 헤쳐나갔다. 그는 어린 남편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열길 물속에라도 뛰여들어가 해삼을 캤고 100리길도 마다하지 않고 보약재들을 얻어들였다. 정성이 하도 지극해서였던지 어린 남편은 점점 기골이 장대한 남아로, 섬마을에서 보기드문 미남자로 억세게 성장하였다.

가세가 그리 넉넉하지 못하였던 시집에서 리옥순은 그야말로 손끝에 피가 맺히도록 극성스레 일하여 남편의 학비를 대였다. 그는 부두에서 어물을 받아서는 뭍에 내다 팔았다. 어물함지를 어찌나 이고다녔던지 정수리 머리칼이 다 빠졌다.

서울에서 고학을 하던 백홍건은 고향에서 부쳐오는 학비가 어떻게 마련되는지 알지 못하였다.

어느해인가 백홍건은 고향에 다녀가려고 낯익은 섬마을이 바라보이는 남해기슭 부산에 내려왔다. 부산에서 섬마을로 건너가자면 다시 자그마한 련락선을 타야 했다.

경부선 려객차에서 벌써 얼근히 취한 백홍건은 걸음이 잘되지 않아 인력거를 잡아타고 사각모를 삐딱하니 쓴채 부두로 나가고있었다. 건들건들 졸면서 인력거에 몸을 맡기고있던 그는 갑자기 귀에 익은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고등어 사려ㅡ》

《이면수 사려ㅡ》

어물함지를 머리에 인 젊은 아낙네가 물고기 한마리라도 더 팔려고 극성스레 목청을 돋구어 소리지르며 골목길을 돌고있었다.

인력거에서 내린 백홍건은 어물장사의 뒤를 다쫓아갔다. 그러던 그의 발걸음이 급기야 골목길에 얼어붙고말았다. 그는 잘못 들을수 없었다. 잘못 볼수도 없었다. 어물장사는 틀림없는 자기 안해였다. 그는 순간에 술이 말짱 깨였다.

《고등어 사려ㅡ》

《이면수 사려ㅡ》

물고기를 사달라고 애타게 호소하는 젊은 안해의 처량한 그 목소리가 사각모를 쓴 고학생의 여린 가슴을 사정없이 휘저어놓았다.

어물함지의 무게에 짓눌린듯 피대줄이 튀여오르고 어깨죽지사이를 사정없이 파고 든 안해의 가는 목이 젊은 고학생의 망막을 찔렀다.

시뻘건 벽돌담장을 두른 양옥집에서 나온듯 한 애젊은 한 일본녀자가 안해를 손가락질하며 부른것이 바로 이 순간이였다.

《아라, 나마구사이!(아유, 비린내!)》

일본녀자는 안해한테서 풍기는 비린내가 질색인듯 짙은 화장을 한 얼굴을 찌프리며 멀찌감치 서서 물고기값 몇푼을 안해한테 던져주는것이였다. 안해는 그돈을 두손으로 쥐여서 저고리고름에 꽁꽁 쌌다.

백홍건은 보지 말아야 할것을 본것처럼 머리를 비틀고 눈을 꽉 감았다. 예리한 쇠꼬치에 찔린듯 모진 아픔이 온몸에 줄달음 쳤다.

《고등어 사려ㅡ》

《이면수 사려ㅡ》

안해의 애절한 목소리가 골목길에 긴 여운을 남기며 멀어져갔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사랑도 의리도 모르는 짐승이다!》

백홍건의 입에서 신음소리 같은 목소리가 새여나왔다. 인력거군에게 삯전을 준 백홍건은 그길로 걸어서 역으로 되돌아갔다. 영문을 모르는 인력거군은 젊은 사람이 되게는 취했다고 혀를 찼다.

서울로 되돌아간 백홍건은 그처럼 좋아하던 담배도 술도 다 끊었다. 안해한테서 돈이 올라오면 꼭꼭 되돌려보냈다.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안해가 한번은 서울로 올라왔다. 안해는 돈 몇푼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무섭게 빈한한 생활을 하고있는 남편을 보았다. 싸늘한 랭기가 도는 하숙방에서 두 청춘은 서로 부둥켜안고 오래동안 울었다.

가까스로 학업을 마친 백홍건은 실험실기술자로 일하다가 페를 몹시 상하였다. 일을 조금만 고되게 하여도 기침을 하였다.

수령님께서 그의 건강을 회복시켜주시지 않았더라면 그는 필경 자신의 건강조차 보존하지 못하였을것이다.…

지금 남편의 침대머리에 앉아있는 리옥순은 남편의 병세가 심상치 않다는것을 느끼고 애끓는 심정을 금치 못하고있었다. 양시공장시절의 저주러운 그 병이 도지고있는것이 틀림없었다.

(아, 이 일을 어쩌나…)

리옥순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튿날 이른아침 백홍건은 간밤의 아픔은 다 잊은듯 싱글싱글 웃으며 안해더러 그런 걱정은 말고 아이들이나 잘 돌보라고 이르고는 자못 활달하고 씩씩한 걸음거리로 출근길에 나서는것이였다.

그가 널대문을 나서려고 할 때 갑자기 안해가 그를 뒤쫓아 달려나왔다.

《저녁에 집에 들어오지요?》

《시간이 바쁘면 그냥 흥남으로 내려갈가 하오. 기다리지 마오.》

《아니, 저녁에 꼭 들어오세요.》

안해의 목소리는 백홍건이 더 거절할수 없을만큼 절절하게 울리였다.

백홍건은 약속대로 흥남으로 내려가는 길에 잠간 집에 들렸다. 안해는 승용차에 무엇인가 커다란 물통 같은것을 실었다.

《그건 뭐요?》

백홍건은 의하해서 물었다.

《약수예요, 강서약수. 맹물은 마시지 말고 이제부터 꼭 이 약수를 드셔야 해요.》

《그러니 당신은 오늘 낮에 강서까지 갔다왔소?》

백홍건은 억이 막혀 더 말하지 못하고 안해의 성긴 머리칼을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아직 기차도 변변히 다니지 못하고있으니 안해는 강서약수터에까지 허위단심 달려가서 저 무거운 약수물통을 머리로 이여 날랐을것이다.

《이건 오미자가루예요.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하루 다섯숟가락씩은 꼭 잡수세요. 간에도 좋고 다 좋아요.》

리옥순은 오미자가루가 든 두툼한 봉투를 남편의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당신두 참…》

백홍건은 불시에 불뭉치 같은것이 목구멍을 꽉 메워 더이상 말하지 못하고 얼굴을 돌리고말았다.

남편의 모습이 사라진후에도 리옥순은 오래도록 대문가에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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