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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길 제2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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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581회 작성일 20-03-20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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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직은 희망이 있다!)

승용차가 어은령마루에 올라섰을 때 정준택은 끝없이 펼쳐진 수림의 바다를 굽어보며 속으로 웨쳤다. 김일성동지께서 함흥지구에 도착하시기전에 미리 그곳에 가닿아야 좋겠지만 그것은 이미 틀어진 일이고 이제는 그이께서 흥남비료공장을 현지지도하시기전에 도착하는것만이 유일하게 남은 희망이였다. 만덕과 산곡광산을 돌아본 실태가 그이께서 흥남비료공장의 복구방향을 제시해주시는데 반드시 필요한 자료로 안받침되여야 했다.

그런데 덕지강가교를 넘을 때부터 과열된 승용차기관에서 타는듯 한 열기가 내뿜고 좋지 못한 소리가 투닥투닥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조금만 더 가자, 조금만…)

정준택이 그처럼 안타까이 소원했으나 승용차는 끝내 금야읍에 들어서자 덜컥 멎어버렸다. 운전사는 기관뚜껑을 열어보더니 몇시간 잘 고쳐야 하겠다고 말했다.

《내 차를 타고갑시다.》

뒤따르던 차에서 내린 김일이 정준택에게 권하였다. 정준택은 더 생각할 사이도 없이 차에 올랐다.

승용차가 정평읍에 들어섰을 때 정준택은 대뜸 거리의 분위기가 례사롭지 않다는것을 느꼈다. 아니나다를가 사연을 알아보려고 차에서 내린 운전사가 반가운 소식을 안고 돌아왔다.

《방금 승용차 여러대가 줄을 지어 광포쪽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수령님께서 광포쪽에 가신것이 틀림없습니다.》

운전사는 자신있는 어조로 말하였다. 김일과 정준택은 무작정 승용차를 광포쪽으로 몰라고 일렀다.

승용차가 광포에 도착했을 때 엷은 안개발이 입김처럼 가볍게 떠도는 호수가는 너무도 고요하였다.

(왜 이처럼 조용할가. 사람들은 다 어데로 갔을가?)

정준택은 상상밖의 고요한 정적에 어리둥절했다. 그때 나루터쪽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리로 눈길을 돌리던 정준택은 소스라치듯 놀랐다. 김일성동지께서 불과 몇명의 수원들과 함께 나루터에 서계시였던것이다.

(아, 수령님.)

마치도 여러해 떨어져있다가 그이를 처음 뵈온듯 한없는 감격과 격정이 정준택의 온몸을 휘감았다.

그는 천방지축 나루터로 달려내려갔다. 그러나 다음순간 무엇엔가 가슴이 칵 떠박질린듯 그는 그 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내 무슨 낯으로 그이를 뵈옵는단 말인가?)

때늦게 찾아온 자책감이 그의 가슴을 아프게 비틀었다. 그는 간신히 몇걸음 옮기였다.

《그게 정동무 아니요?》

우렁우렁 울리는 부드러운 목소리.

《갑시다. 수령님께서 찾으시오.》

감격에 북받쳐 그 자리에 굳어져버린 정준택을 김일이 이끌었다.

《수령님!》

두사람은 성큼성큼 마주오시는 김일성동지께로 정신없이 달려갔다.

《잘들 왔소.》

《늦어서 죄송합니다.》

정준택의 목소리는 심한 자책으로 떨리였다.

《무슨 그런 소릴, 만덕과 산곡이 뭐 지척인줄 아오? 그만 하면 빨리 온 셈이지.》

《아닙니다. 저는 만덕에 가보지도 못하였습니다. 저를 대신하여 김일동지가 만덕까지 다 돌아보고 왔습니다.》

《수고들 했소.》 그이께서는 두사람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며 거듭 치하하시였다.

《먼 길에 피곤하겠는데 오늘은 만시름 놓고 호수구경이나 함께 합시다. 모두 얼굴이 축갔소.》

두사람은 마음놓고 허리도 펼수 없는 페갱속을 오르내렸고 한밤을 꼬박 밝히면서 질주해온 그 피곤이 한순간에 씻은듯 사라지고 온몸이 날듯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만덕과 산곡이야기는 차차 들읍시다.》 그이께서는 두사람이 옆에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이제부터 배놀이를 합시다. 경치가 얼마나 좋소?》

두사람은 자꾸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자, 나루배를 대시오. 어디 호수구경을 해봅시다.》

그이께서 말씀하시자 어느사이 나루배에 오른 주인홍이 배를 나루터에 바투 대였다.

일행이 모두 배에 오르자 주인홍이 삿대를 물속깊이 박고 배를 기슭에서 밀어냈다. 호수의 맑고 신선한 공기가 한밤을 꼬바기 지샌 김일과 정준택의 머리를 건뜻하게 정화시켜주었다. 아침해살이 잔물결이 일렁이는 호수물에 반사되여 줄곧 미소를 짓고있는 그들의 얼굴에서 춤을 추었다.

나루배는 물속에서 너울거리는 수초들을 밀어내며 잔잔한 호수우를 미끄러져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배전에 앉으시여 호수의 풍경에서 잠시도 눈길을 떼지 않으시였다.

《호수의 면적이 얼마입니까?》

그이께서 이곳 군당위원장에게 물으시였다.

《1,200정보입니다.》

《대단합니다.》

그이께서는 한손을 배전너머에 드리우고 여러가지 수초들이 흐느적이고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염쳐다니는 물속을 들여다보시였다. 배머리에 찰싹찰싹 부딪쳤다가 옆으로 미끄러지는 물결이 그이의 손을 간지럽혔다.

《이게 선인알이 아닙니까?》

그이께서 물속에서 수초를 한웅큼 쥐여내더니 물으시였다.

《그렇습니다. 오리가 잘 먹습니다.》

군당위원장이 대답을 올렸다.

주인홍은 수령님께서 배를 타고 잠시라도 휴식하시기를 바라는듯 전혀 서두르는 기색이 없이 노를 저었다. 그래서인지 나루배는 거의나 기울떡거리지도 않고 천천히 잔물결이 일렁거리는 수면우를 미끄러져갔다.

그이께서도 자연이 베풀어주는 정취와 혜택을 오래간만에 마음껏 즐기시는듯 주인홍을 전혀 재촉하지 않으시고 물속의 수초들을 하나하나 집어내여 유심히 보고 냄새까지 맡아보시는가 하면 호수기슭을 주의깊이 둘러보기도 하시였다.

《이게 마름이 아닙니까?》

배가 호수의 중심에 이르렀을 때 그이께서는 물우에 떠돌던 잔자름한 열매들을 건져쥐고 다시 물으시였다.

《마름이 옳습니다.》

《이 풀은 만경대 순화강에도 더러 자라는데 이 열매속에 있는 밤알 같은 살은 사람도 먹습니다. 오리는 말할것도 없이 잘 먹는데 이 풀이 광포에 적은것이 이상합니다.》

정준택은 그이께서 광포의 수초에 대하여, 특히 오리가 잘 먹는 풀에 대하여 자주 화제에 올리신다는것을 알아차렸다.

조국해방전쟁이 한창 가렬하던 주체40(1951)년 6월 어느 날이였다. 그이의 부름을 받고 룡흥리골안의 갱도집무실에 갔을 때 그이께서는 일시적후퇴시기 우리 나라 가금업의 종자가 거의 멸종되였다고 하시며 시급히 외국에서 오리종자를 들여와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때 들여온 오리종자가 혹 이 광포에도 있지 않을가.)

이렇게 기억을 더듬는 정준택은 비로소 김일성동지께서 현지지도의 바쁘신 길에 광포호수를 찾으신것이 우연치 않다는것을 알았다. 그는 배놀이로만 생각하고 잠시나마 만사를 잊어버린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그이께서 하시는 한마디한마디의 말씀에 깊은 주의를 돌리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나루배는 호수를 가로질러 대안의 나루터에 와닿았다.

《오리사부터 가봅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인사를 올리는 오리목장 지배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며 나지막한 산등성이를 등지고 앉은 단층건물을 향해 앞장서 걸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오리사는 몇채이며 오리는 몇마리 기르는가 하는 문제로부터 오리고기생산원가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소극적입니다. 이자 오면서도 보았지만 광포호수는 훌륭한 자연사료기지입니다. 저절로 자라는 수초만 해도 얼마나 풍부합니까. 만약 인공적으로 수초를 심기까지 한다면 오리를 아무리 많이 길러도 청사료는 얼마든지 보장할수 있습니다. 동물질먹이는 동해안에 명태대가리가 많으니 그와 같은것을 가루내여주어도 됩니다. 자연먹이가 많아 오리기르기도 좋고 주민지대와 떨어져있으니 수의방역에도 좋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좋은것뿐이고 나쁜것이 하나나 있습니까?》

그이께서는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아보이며 환히 웃으시였다. 지배인은 자책에 휩싸여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이제부터 일을 잘해봅시다. 당에서는 이 광포에 큰 오리목장을 건설할 결심이니 대담하게 전개해보시오.》

그이께서는 목장지배인의 어깨를 두드려주시였다. 호수우에 점점이 흩어졌던 엷은 안개는 투명한 대기속에 녹아버린듯 더는 보이지 않고 드넓게 펼쳐진 수면이 한눈에 굽어보였다. 물빛은 타는듯 한 노을빛으로부터 은빛으로, 다음은 회색빛으로 다양하게 변하군 하였다. 이따금 바다쪽에서 한줄기 훈훈한 바람이 불어와 수면에 잔주름을 지어놓으면 호수우에 다채롭게 새겨졌던 어룽어룽한 무늬가 부서지면서 수천만개의 다양한 색갈의 보석알갱이처럼 반짝이였다.

아침해는 벌써 동녘하늘에 높이 떠오르고 떠날 시간도 다 되였으나 어쩐지 그이께서는 걸음을 옮기지 못하시였다.

《지배인동무, 제기할것이라든가 부탁할것이 있으면 서슴없이 말하오.》

그이께서는 해볕에 얼굴이 가무잡잡하게 탄 지배인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없습니다.》

지배인이 두손을 앞으로 모아쥐며 저으기 황송한 어조로 대답올렸다.

《없다.…》

그이께서는 지배인의 말을 받아 외우며 몇걸음 옮기시였다. 그이께서는 지배인으로부터 많은 제기를 받으신것보다 받지 못한것을 오히려 섭섭해하시는것 같았다.

《오늘 여기를 떠나면 더는 쉬이 오지 못하겠는데…》

《수령님.》 마침내 지배인이 울먹울먹하며 말씀을 올렸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들이 일을 잘하겠습니다. 앞으로 고기생산을 많이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지난날에는 부자들이나 고기를 먹었기때문에 고기생산이 많지 않아도 되였소. 그러나 지금은 전체 인민이 고기를 먹어야 하오. 그러니 고기생산을 많이 해야 한단 말입니다.… 나는 함흥지구에 내려와있으면서 잠이 오지 않아 어느하루도 제대로 자지 못하였습니다. 인민들에게 흰쌀밥을 먹이자니 비료공장은 다 파괴되였고 물고기라도 많이 먹이자니 배가 없소. 그래서 생각다 못해 여기로 왔소.

지배인동무, 함흥시민들과 흥남의 로동계급에게 하루빨리 고기를 공급해주어야 하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거듭 당부하고 나루터로 돌아와 다시 나루배에 오르시였다.

기슭을 떠난 나루배는 올 때보다 한결 높아진 물결을 헤가르지 않으면 안되였다. 제법 마루를 이룬 파도가 배머리에 철썩철썩 부딪치며 물방울을 날리였다. 배는 자주 위태롭게 기우뚱거렸다.

누구도 말이 없었다.

김일은 마치도 높아진 파도가 자기의 복잡한 심정을 그대로 담아싣고 출렁이는것만 같았다. 그는 함흥에 내려와있은 며칠사이 비료문제가 풀리지 않아 속도 썩이고 격노도 하였으나 함흥시민들에게 고기를 공급할데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다. 축산이야말로 농사와 함께 그가 직접 책임지고있는 분야였다.

자연이 펼쳐준 하나의 호수를 보시고도 어떻게 하면 인민들에게 더 많은 고기를 먹일가 끊임없이 마음쓰시는 수령님의 인민에 대한 사랑에 김일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정준택도 역시 나라살림살이를 책임진 일군으로서 류안비료의 원료인 류화철문제나 오리사육문제는 다 자기 책임과 관련되여있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며칠동안 현지에 내려와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그 모든것을 남김없이 그이께 보고드리고싶은 간절한 열망에 휩싸여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이의 앞에서 이 모든 사실들을 하나도 빼놓을세라 남김없이 털어놓았다.

《류화철전망이 좋단말이지.》

김일성동지께서 혼자 말씀처럼 외우시였다.

《만덕은 말할것 없고 산곡도 좋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산곡의 류화철매장량은 2∼3년을 채우지 못한다고 말들 하는데 10여년은 문제 없습니다.》

김일은 자신을 가지고 대답을 올렸다.

《그렇단말이지.》

그이께서는 더이상 묻지 않으시였다.

나루배는 멎고 그이께서는 대안에 오르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옆구리에 두손을 얹으시고 눈이 시도록 광활하게 펼쳐진 호수를 다시 굽어보시였다. 거대한 자루의 아구리처럼 점차 좁아진 호수의 한쪽 끄트머리는 멀리 바다쪽으로 가물가물 사라지고있었다.

《호수가 아니라 바다요. 얼마나 광활하오? 참으로 욕심이 나는 재부요. 우리가 이곳에 대규모 오리목장들을 창설하기로 결심한것은 백번 정당하오.》 그이께서는 장엄하게 설레는 호수를 굽어보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무엇인가 좀 신세를 진다면 훈제한 통닭이나 통졸임한 오리고기를 들여오는것이 아니라 생산성이 높은 닭이나 오리의 종자를 들여오는것입니다. 그래서 도처에 닭이나 오리를 퍼뜨려 그것이 구름처럼 온 나라에 뒤덮이게 하여야 합니다. 인민의 무궁무진한 힘을 조직발동하면 못해낼 일이 없습니다.》

정준택의 눈앞에는 광포호수를 뒤덮은 거대한 오리떼가 금시 보이는것만 같았다.

《정동무, 우린 이제 흥남비료공장으로 가야 할것 같소.》

김일성동지께서 정준택을 돌아보며 문득 말씀하시였다.

《흥남비료공장으로말입니까?》

정준택은 그이께서 하신 말씀이 얼른 리해가 되지 않아 다시 묻지 않을수 없었다. 그이께서 흥남비료공장을 현지지도하시며 공장의 복구방향을 가르쳐주시였다는 말을 이미 들은바있는 그는 그이께서 불과 이틀전에 가보신 공장에 다시 발걸음을 하실수 없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그이의 현지지도 일정이 얼마나 긴장한가 하는것은 정준택자신도 잘 알고있었다.

《그렇소. 흥남비료공장에…》

그이께서 다시 말씀하시였다.

《그러니 저때문에 두번 걸음을…》

정준택은 자신의 보고를 그처럼 중히 여기고 바쁘신 현지지도 일정까지 바꾸시는 그이의 웅심깊은 도량에 머리가 수그러졌다.

《내 그러지 않아도 만덕과 산곡광산의 소식을 들어보고 흥남동무들을 다시 만날 생각을 했더랬소. 그곳 동무들에게 외국의 원조만 기대하면서 공장을 다른 위치에 건설할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단단히 말해주어야 하겠소. 내 공장을 돌아보니 파괴는 많이 되였지만 류안계통을 복구할수 있는 밑천은 있더란 말이요. 우리 인민들의 식생활이 말이 아닌데 쏘련이 질안계통을 건설해줄것만 바라지 말고 우리의 손으로 류안계통부터 빨리 복구하도록 해야 하겠소. 류화철전망도 밝은데…》

정준택의 눈앞에 질안에만 기대를 걸면서 류안을 홀시하는 최일만의 음침한 얼굴과 사나운 눈찌가 불현듯 떠올랐다. 제힘을 믿지 못하고 원조만 기대하면서 큰 나라를 쳐다보는 그의 본심이 비로소 선명하게 리해되는것 같았다.

잠시후 승용차들은 흥남비료공장을 향하여 광포호수가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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