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번영의 길 제2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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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돌파구
1
살을 에이는듯 한 맵짠 바람이 휘몰아치고있었다. 1954년 새해를 맞으며 추위가 한풀 꺾이는가 했더니 오히려 땅에 얼어붙은 눈을 파헤치며 더 기승을 부리였다. 한밤중이면 두텁게 얼어붙은 대동강얼음판이 추위에 쩡쩡 얼어터지는 소리가 대기를 자못 스산하게 휘저어놓군 하였다. 밤마다 들려오는 그 소리는 복구건설의 간고한 행군길에 나선 강선사람들에게 이해에도 그들앞에 얼마나 많은 시련과 난관이 가로놓일것인가 하는것을 예고해주는듯 싶었다.
련일 강풍이 휘몰아치던 어느날 개털모자를 눈덕까지 깊숙이 눌러쓰고 묵직한 배낭을 짊어진 림형관은 강선에서 50리 잘되는 수산리에 갔다가 제강소마을로 돌아오고있었다. 그는 갈길을 가늠해보느라고 이따금 얼굴을 쳐들군 하였다. 그럴 때면 선득거리는 차거운 눈가루가 얼굴에 덮이고 슴슴한 눈내가 찬 공기와 함께 페장으로 흘러들었다.
(저녁전에는 달마산지경에 가닿아야 할텐데...)
그는 조바심치는 마음을 앞세우며 걸음을 재우쳤다. 그러나 터벌터벌 옮겨놓는 걸음은 어쩐지 온전해보이지 않는다. 철색얼굴에 무척 단단한 몸이였지만 평생 쪼그리고 앉아서 용접을 해서인지 아래다리만은 든든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걷는것을 언제나 힘들어하였다. 지금 그가 힘들게 지고가는 배낭에는 수산리에서 그야말로 한쪼각한쪼각 뜯어내다 싶이하여 다져넣은 카리장석이 들어있었다. 그것은 용접봉의 피복제로 쓸것이였다. 전기로 2기가 복구되여 쇠물을 생산하고있는 지금 강선사람들은 말할것도 없고 전국의 눈길이 전기로 다음공정인 이곳 분괴압연직장복구공사에 쏠리고있었다.
분괴압연직장을 복구하기 위한 투쟁은 크게 두곳에서 벌어지고있었다. 그 하나는 가열로신설전투장이고 다른 하나는 축세기복구전투장이였다. 두 전투장이 다 만만치 않았다.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3단복식가열로를 새로 일떠세우는것도 그렇고 230기압이 걸려야 할 부러진 축세기를 이어붙이는것도 지금까지 해본적은 고사하고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최신기술과 용감성, 대담성을 요구하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기로복구당시 대형변압기와 금이 간 경동치차를 보강하여 쓸 때보다 훨씬 더 어려운 난공사라고 말할수 있었다.
여기에서 첫 걸음부터 걸린것이 용접이였다. 열풍이 휘몰아치는 가열로내부를 통과하는 관들과 고압이 걸리는 축세기 축을 용접하는데도 고도의 용접기술과 특수용접봉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 두가지가 다 부족하거나 없었다.
《림아바이, 무슨 수가 없겠습니까?》
리웅천은 림형관을 만나기만 하면 늘 이런 식으로 묻군 하였다.
《왜, 수를 찾으면 술되박이나 내겠나?》
림형관은 울적해있는 리웅천의 심사를 풀어주기라도 할것처럼 절반 롱조로 응대했다.
《되박이 아니라 말들이로 대접하리다. 허허...》
리웅천의 유쾌한 웃음소리에 림형관이도 따라웃긴 하였지만 사실 그의 마음도 편안치는 못하였다. 광복직후 일제놈들이 마사놓은 전기로와 분괴압연기를 복구할 때 림형관은 고급용접공으로서 한몫 단단히 했다. 전쟁때 지하갱도에서 군수품을 생산할 때도 림형관은 누구도 대신할수 없는 몫을 맡아 해제꼈다.
조용한 성미인데다가 몸도 체소하여 평시에는 그의 존재가 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설비제작이나 보수에서 갑자기 어려운 문제가 제기되면 언제나 선참으로 림형관을 찾군 했다. 분괴압연기복구에서 난관에 부딪치자 이번에도 사람들은 고급기능공인 림형관을 쳐다보았다.
림형관은 괴로왔다. 더구나 그는 김일성동지께서 전후 처음으로 강선제강소를 현지지도하실 때 그이께 분괴압연직장의 축세기복구는 자기가 용접으로 어떻게 하나 해결하겠다고 맹세드린것을 한번도 잊은적이 없었다. 그는 함경남도를 현지지도하시던 수령님께서 전후복구건설은 자체의 힘으로 하여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시였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더는 특수용접봉을 기다리면서 축세기복구를 미룰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리웅천에게 자기의 결심을 말하고 축세기복구에 필요한 특수용접봉제작에 달라붙었다. 특수용접봉의 질을 규정하는것은 용접봉심선의 재질과 함께 피복제를 무엇을 가지고 어떤 비률로 어떻게 혼합하여 쓰는가 하는데 크게 달려있었다. 지금까지 80여차례의 시험을 거듭하였으나 특수용접봉의 질은 더 올라가지 못하고있었다.
(무엇때문일가? 피복제에 문제가 있는가? 아니면 혼합비률? 점착제?)
지금도 이런 생각을 줄곧 굴리며 림형관은 눈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그는 등에 진 카리장석에 큰 기대를 걸었다. 지금까지 써보지 못한 피복제였다.
(이번에는 어떻게 하나 성공해야겠는데...)
림형관은 말할수없이 초조하였다.
가열로가 그 형체를 드러내고 압연설비조립도 크게 진척된 이즈음에 와서 걸음마다 걸리고있는것은 특수용접봉이였다.
약수리를 지나면서부터 다시 세찬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 숨이 막히고 눈도 제대로 뜰수 없었다. 이런 때는 바람을 조금이라도 피해볼가 하여 모재비걸음을 치기까지 하였다. 그러느라고 달마산기슭에 있는 집에는 저녁때가 퍼그나 지나서야 도착했다.
《아버지 오셨어요?》
아버지의 인기척을 감촉하고 금희가 부엌문을 활짝 열었다.
림형관은 퇴마루에 두발을 탁탁 굴러 솜신에 달라붙은 눈을 털어버리고 부엌에 들어섰다. 금희가 아버지의 배낭을 받아서 내려놓고는 털모자와 어깨의 눈을 말끔히 털어주었다. 그때까지도 림형관은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아래방으로 올라가 맥이 빠진 약한 두다리를 쭉 뻗치고 앉았다.
《어떠냐?》
비로소 림형관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웃방에서 독감으로 끙끙 앓고있는 신철의 병세를 념두에 두고 묻는 말이였다.
《열은 내렸는데 식사는 아직 못해요.》
금희는 가마목에 보자기를 씌워두었던 음식그릇을 밥상에 차려놓으며 말하였다.
《너랑 먹었느냐?》
《예.》
림형관은 더이상 묻지 않고 음식그릇뚜껑을 열었다. 김치우거지를 잘게 썰어넣은 멀건 수수강태죽이였다. 반찬은 김치와 무우오가리가 전부였다.
림형관은 군소리없이 음식을 달게 들고 담배 한대를 붙여물었다.
그사이 금희는 부엌에서 아버지가 힘들게 지고온 카리장석을 얼마간 덜어내여 무연탄불에 말리웠다. 그런 다음 쇠절구로 보드랍게 빻았다. 어머니 설씨가 다시 그것을 채로 쳤다. 80여차의 실패를 하면서 시험을 거듭하는 과정에 이 가정에는 특수용접봉을 제작하는 정연한 분공체계가 서게 되였다.
지금도 림형관은 왕복 100여리길을 걸어온뒤라 몹시 피곤하였지만 모녀가 채로 치면서 빻아놓은 피복제를 일정한 비률로 갈라서 다른 피복제와 점착제를 혼합하였다. 이 공정이야말로 누구에게도 맡길수 없는 고급용접공인 그만이 할수 있는 일이였다. 말하자면 특수용접봉 비방이 여기에 있는것이였다.
림형관이 카리장석의 배합비률을 두고 여러가지로 생각을 거듭하고있는데 딸이 자루에서 하얀 떡가루 같은것을 퍼담고있었다.
《밀가루로구나. 어디서 났느냐?》
자루를 들여다본 림형관이 금시 큰 보물이나 발견한 사람처럼 기뻐하며 물었다.
금희는 대답대신 얼굴을 발기우리하게 붉히며 가느다란 두눈에 웃음을 담고 생긋거렸다.
《얘야, 그걸 인다구, 자루채로 말이다.》
《왜요?》
《요긴하게 쓸데가 있다.》
《…》
딸은 눈둥이 도두룩한 가는 눈에 의혹을 담고 아버지의 전에 없이 벙실거리는 얼굴을 말끄러미 바라보았다.
《점착제로 쓰련다. 용접봉점착제로 말이다.》
림형관이 실토했다.
《아이참.》
딸은 금시 새침해서 돌아앉았다. 치렁치렁한 쌍태머리가 어깨너머로 휙 넘어왔다.
《내 요즘 좀 생각해보는데 점착제로는 밀가루가 좋을것 같다. 다른 점착제가 없는 형편에서 말이다.》
《안돼요, 아버지.》
《얘야.》
《아버지.》
딸의 고집은 뜻밖에도 완강하였다.
《얘야, 먹는것두 중요하지만 현재 우리한테 특수용접봉이 더 중요하다. 너도 이것을 잘 알지 않느냐.》
림형관은 딸을 설복했다. 금희는 아버지를 등지고 앉은채 아무말도 없었다. 여태껏 아버지가 하는 일이라면 성수가 나서 팔을 걷고 도와주던 딸에게서 이것은 처음 보는 일이였다. 림형관은 은근히 노여움이 치밀어올랐다. 수수강태죽으로 끼니를 에우는 때 한 두되박의 밀가루가 귀중한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특수용접봉실험에서 계속 실패하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심정도 알아야 할것이다.
림형관은 화김에 밀가루자루를 나꾸채려고 손을 쳐들었다가 허공중에서 굳어지고말았다. 딸의 두눈에 눈물이 가랑가랑 맺히는것을 보았던것이다.
《웬일이냐?》
림형관이 눈살을 찌프리고 물었다.
《신철기사가 국수를 좋아한다기에...》
금희는 겨우 이 몇마디를 비치고는 고개를 푹 수그리였다.
금희는 입맛을 잃은 신철이 국수를 좋아한다는것을 알고 멀리 평양의 아는 집에까지 가서 이 밀가루를 가져왔다. 그는 하얗고 졸깃졸깃한 밀가루국수가 신철의 입맛을 돌릴것이라고 굳게 믿고있었다.
사연을 알게 된 림형관은 더 요구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였다.
《금희동무!》
웃방에서 신철의 목소리가 엄하게 울리였다.
《밀가루를 아버님께 드리오. 어서!》
두 젊은이의 소행에 림형관은 속이 뭉클해서 한동안 말없이 서있기만 하였다.…
이튿날 아침 림형관은 새로운 피복제를 씌운 용접봉을 들고 복구현장으로 나왔다. 지붕도 없고 성한 벽체도 얼마 남지 않아 가마니로 대충 둘러막은 분괴압연직장 전투장은 눈보라속에서도 들끓고있었다. 수리공들은 곱아든 손가락을 입김으로 녹이며 주감속기를 비롯한 압연기설비들을 조립하고있었다. 그런가 하면 머리우에서는 연공들이 휘여든 트라스들을 해체하고 아래에서는 청년돌격대원들이 축세기뽐프실이 들어앉을 지하굴착공사를 벌리고있었다. 그야말로 립체전이였다. 휘말려들어오는 눈가루도 전투원들의 달아오른 열기에 다 녹아버린듯 현장에는 쌓인 눈도 별반 보이지 않았다.
《벌써 왔습니까?》
림형관이 전투현장에 들어서자 전투지휘를 하고있던 리웅천이 어느사이 그를 알아보고 달려왔다.
《새 용접봉이 다 됐기에 들고나왔지.》
리웅천은 그 새 용접봉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이미 알고있었다. 그는 림형관이한테서 큰 보물이나 넘겨받듯이 5대의 새 용접봉을 두손으로 받아서 한동안 찬찬히 눈박아보았다.
《해야지요?》
리웅천은 긴장된 어조로 림형관에게 물었다. 그만큼 새 용접봉에 대한 기대가 컸던것이다.
《해야지.》
리웅천은 말없이 용접기를 현장에 끌어오고 용접선을 늘이였다.
꽁꽁 얼어든 맨 땅에 10개의 시편이 가지런히 놓였다.
림형관은 아무리 센 용접불꽃이 떨어져도 신발이 타지 않고 불티가 신발속으로 스며들지 않도록 자작 만든 무릎아래까지 오는 방수포신발을 신고 시편앞으로 다가갔다.
(잘돼야 하겠는데.)
그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며 시편앞에 쪼그리고앉았다. 먼저 2개의 시편을 앞으로 당겨놓고 그짬에 용접봉을 댔다. 눈부신 섬광이 튀여올랐다. 용접기가 붕붕 소리를 련발하며 흠칫흠칫 떨었다. 용접면을 내리쓴 림형관은 침착하면서도 익숙된 솜씨로 2개의 시편짬에 용접물을 올리였다. 용접봉끝에서 연방 눈을 찌를듯 한 파란 섬광이 번뜩이고 황백색 쇠물이 절절 끓으며 두 시편을 억척같이 맞붙였다.
《멋있소!》
리웅천은 감탄했다. 림형관의 용접솜씨는 그대로 예술이였다. 림형관은 잠간사이에 2개의 시편을 마주 붙여놓았다. 그러자 그의 용접작업을 조력하고있던 쾌활하고 민첩한 고수머리 신입공 승남이가 다섯발자국도 채 안되는 거리를 닁큼 뛰여가 시편에 곱돌로 《86》이라는 수자를 써넣었다. 그 수자는 림형관이와 그의 가족들이 86번째로 만들어낸 용접봉으로 용접한 시편이라는것, 따라서 이것은 86번째 시험으로도 된다는것을 말해주고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큰 기대가 어린 눈으로 승남이가 시편에 수자를 써넣고있는것을 내려다보고있었다.
림형관은 다시 집에서 가지고나온 2번째 용접봉으로 다른 2개의 시편을 용접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3번째 용접봉을 용접손잡이에 갈아끼울 때 지배인 차승룡이 왔다.
《수고하오. 몇번째요?》
그가 리웅천에게 물었다.
《88번째입니다.》
리웅천은 승남이 시편우에 쓰고있는 수자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차승룡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용접불빛을 등지더니 쿨럭쿨럭 기침을 기었다. 그는 원래 약골인데다가 복구전투가 힘에 부치고 날씨까지 몹시 차져서 건강이 전보다 퍽 나빠진것 같았다.
림형관이 5번째 용접봉을 가지고 마지막시편을 다 용접했을 때에는 숱한 사람들이 그를 빙 둘러싸고있었다. 그만큼 그의 용접봉시험에 사람들은 큰 관심을 가지고있었던것이다.
《자, 얼마나 든든한가 보자.》
리웅천이 이렇게 말하고는 메를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아직은 용접의 질을 검사하는 현대적인 강도시험기나 당김시험기 같은것이 없었다. 길다란 자루를 박아넣은 큼직한 메가 그 모든 시험기를 대신했다.
《자 쳐라!》
리웅천이 시편을 무쇠덩이우에 올려놓고 승남이더러 메로 내리치라고 지시했다.
《딱!》
육중한 메가 시편우에 떨어졌다. 용접부위는 끄떡 없다.
《힘껏!》
《딱!》
《약해. 더 힘껏!》
리웅천이 소리치자 승남이가 다시 메를 휘들렀다.
《딱!》
그래도 시편은 끄떡 없었다.
《괜찮은데.》
《성공이야.》
사람들속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승남이, 한번 더.》
《그러다 부러지면 어쩝니까!》
승남이가 겁에 질린 소리로 말하자 둘러섰던 사람들이 하하하 웃었다. 강도시험이란 말그대로 시험이기때문에 사정을 봐서는 안되였다. 그래야 강도의 세기를 정확히 측정할수 있는것이다.
《안되겠어, 승남이.》
리웅천이 혀를 차고는 승남이한테서 메를 받아쥐였다. 하지만 그의 메질도 맵짜보이지는 않았다. 하긴 부모들치고 사랑하는 자식에게 아픈 매를 안기기가 어찌 말처럼 쉬울수 있으랴. 시편이 쉽게 부려져나가면 그것은 시험의 실패를 의미하였다. 이미 85번째의 시험이 그렇게 끝났다. 그러니 사랑하는 자식에게 매를 안기기 힘들듯 축세기를 자체로 복구할수 있는가 없는가, 나아가서 온 나라에 하루빨리 강재를 대줄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모든 기대와 념원이 무겁게 실린 86번째 시편에 무자비한 철추를 내리기는 누구나 어려워하였던것이다.
《안되겠소. 더 큰 메가 없소?》
지금까지 사람들속에 어깨를 낮추고 소리없이 서있던 림형관당자가 앞에 나섰다. 한사람이 첫번째 메보다 훨씬 더 큰 메를 질질 끌고왔다.
《너무 크지 않소?》
누구인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질렀다.
《옳소. 너무 크오. 너무 커.》
여러사람이 호응해나섰다.
《클수록 좋지.》
림형관이 휘파람소리 같은 소리로 웅성거리는 군중을 제지시키더니 메자루를 나꾸채였다. 그는 기름때가 올라 매끈매끈한 메자루를 주의깊이 살펴보았다. 그것은 물푸레나무였다. 물푸레나무를 박아넣은 자루는 짧은 때에는 손이 울려서 좋지 않지만 자루가 길 때에는 손이 울리지도 않고 활등처럼 휘여도 부러지는 일이 없어 좋았다.
림형관은 메자루가 마음에 드는듯 두발을 벋디디고 자루를 두손에 감아쥐였다. 천정이 없는 직장밖에서는 여전히 눈보라가 아우성을 쳤다. 바람소리가 윙윙거리고 어디선가 무거운 철판이 왱강댕강하고 날아떨어졌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데 주의를 돌리지 않고있었다. 그들은 모두 육중한 메에 꽂힌 길다란 자루를 두손에 감아쥐고 우뚝 서있는 체소하기는 하나 무척 단단해보이는 림형관을 지켜보았다. 그의 자세와 표정에서는 그 어떤 엄숙하면서도 비장한것이 풍기고있었다.
드디여 림형관이 메를 쳐들었다. 모든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쥐고 숨을 죽이였다. 메질에도 요령이 있다. 정확한 타격, 힘의 집중, 이것을 해결하자면 메에 손등을 얻어맞아 적어도 열번은 손등이 부었다 내려야 한다고 오랜 로동자들이 말하는것도 우연치 않다. 목표물에 메가 번개같이 떨어지는 그 순간에 자루가 아니라 메대가리에 힘을 순간적으로 집중시킬줄 아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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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메대가리에 힘을 순간적으로 집중시킬줄 아는 능력과 정확한 명중, 이것은 한두날의 메질이나 힘이 장사라고 하여 저절로 해결되는것은 아니다.
림형관이 메자루를 쥐고선 자세부터 벌써 앞의 두사람과는 판이했다. 그는 먹이를 덮치려는 호랑이처럼 허리를 낮추 구부리고 목표물인 자기가 용접한 시편쪼각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생사를 판가리하는것 같은 비장한 섬광이 우묵하게 들어간 눈확속에서 뿜어나왔다.
다음순간 그는 끙 하고 메를 어깨너머로 쳐들었다. 메자루가 금시 부려져나갈듯 휘친하였다. 그와 거의 동시에 시편에 무서운 일격이 가해졌다. 사람들은 공포와 두려움, 경탄에 휩싸여 눈을 딱 감았다.
《쨍강!》
용접부위가 부려져나가는 소리가 폭탄처럼 사람들의 고막을 쳤다.
《또 가져와!》
림형관의 허리가 다시 활등같이 굽어들었다.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아아.》하고 신음소리를 질렀다.
림형관의 입에서 전보다 더 매서운 끙 소리가 터지더니 역시 전보다 더 무서운 일격이 시편에 떨어졌다. 시편에서 불꽃이 튀였다.
《쨍강!》
또다시 시편 용접부위가 처참하게 부러져나갔다.
《또 가져와!》
림형관이 소리쳤다.
《쨍강!》
사람들은 다섯번째 메질소리는 듣지 못하였다. 시편의 용접부위가 부러져나가는 소리는 더구나 듣지 못하였다. 다만 용접공으로 잔뼈가 굵어온 체소한 그 사람, 온 가족까지 동원하여 시험에 시험을 거듭하느라 두볼이 훌쭉하게 패이고 찬 바람에 입술이 트고 얼굴색조차 가무잡잡하게 빛을 잃은 그 불사신 같은 사람의 두눈에서 피방울 같은 진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는것을 보았을뿐이였다.
86번째로부터 91번째에 이르는 시험은 이렇게 실패하였다. 후에 진행한 용접부위에 대한 현미경검사가 그것을 확증해주었다.
이날 조립을 끝낸 일부 설비와 계통에 대한 예비적인 수압시험을 해보았는데 거기서도 참혹한 실패를 하였다. 련결부위의 비킹들이 견디지 못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