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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길 제1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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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8,787회 작성일 20-03-15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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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간 회담에 뒤이은 조쏘 두나라 계획일군들사이의 실무회담은 정부간 회담보다도 오히려 더 어렵게 진행되였다. 마지막날의 실무회담은 거의나 결렬상태에 이르렀다. 사실 그날의 회담은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그날 쏘련측 국가계획위원회 책임일군인 이와노브는 회담을 시작하면서 갑자기 자기측 단장인 싸부로브가 건강상 리유로 회담에 참가할수 없게 되였다고 우리측에 통고하였다.

싸부로브를 동업자로서 이전부터 잘 알고있는 정준택은 그의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것을 이미 알고있었다. 회담과정에 싸부로브는 혈압때문에 고생한다고 정준택에게 자주 하소연하군 하였다.

《사람마다 한번은 이승을 하직하는 법이고 이승을 하직하면 천당 아니면 지옥으로 가지요.》

싸부로브는 전날 회담휴식시간에 차를 마시다가 능청스레 눈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판을 펼치였다.

《언젠가 죄많은 인생이 지옥으로 가는 뻐스에 한사람이 올라탔습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것이 인생이지만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은 모두 죄를 조금이라도 덜어보려고 속죄부라는것을 손에 들고가지요.

지옥을 다스린다는 염라대왕이 염라국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을 한사람 한사람 염라청에 불러들이며 속죄부에 적힌 죄목들을 따지다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놀라면서 물었답니다.》

<너 이놈 속죄부가 두꺼운걸 보니 죄를 많이 졌구나?>

염라대왕이 소리쳤답니다.

<예, 그러하오이다.>

그사람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하였지요.

<그런데 네놈이 안고있는 그 보따리는 무엇이냐?>

그사람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속죄부 말고도 커다란 보따리 하나를 더 들고있었던것입니다.

<이승에서 일을 하다하다 다 못해서 저승에까지 들고온 일감이오이다.>

<일감? 너 이놈, 거짓말 한마디라도 하면 기름가마에 들어가니 그리 알지어다.>

<대왕님, 제가 어디라고 거짓말을 하겠나이까. 이건 처리하다 다 못한 계획문건이오이다.>

<계획문건? 오, 알만 한지고. 네가 분명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이렸다?>

<예이, 그러하오이다.>

<네 고생자리에 앉아서 귀먹은 욕도 많이 먹었겠구나. 가엾도다.>

염라대왕이 한탄을 하고는 눈알을 부라리며 호송대장을 닦아세우더랍니다.

<왜 이런 불쌍한 사람을 잡아왔는가? 이 사람을 당장 염라국에서 내보내라>》

싸부로브의 말에 곁에 앉았던 계획일군들이 모두 소리내여 웃었다.

《그래 그 사람은 지옥이 아니라 천당으로 갔습니까?》

정준택도 웃으며 싸부로브에게 물었다.

《그런가 봅니다. 몸이 불편한데 나도 늦기전에 빨리 천당으로 가야 할것 같습니다.》

정준택은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그의 하소연이 십분 리해되여 속으로 고소를 금치 못하였다.

정준택은 싸부로브가 건강이 좋지 못하기는 하지만 상대측 단장으로서 회담에 나오지 않는것은 우리에 대한 모종의 압력일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정준택은 긴장했다.

이날 이와노브는 실무회담을 시작하면서 합의를 보아야 할 문제부터 조급하게 렬거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첫날 회담에서부터 쌍방사이에 심각한 마찰을 일으키는 가장 첨예한 문제들이였다.

《조선측에서는 우리 나라의 원조분으로 공작기계공장을 새로 하나 납입하여줄것을 요구하였는데 이 문제는 이미 정부간회담에서 싸부로브동지가 견해를 표명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번 실무회담에서 이 문제가 다시 상정되였으므로 그사이 우리도 해당 실무일군들과 협의하였습니다.》

이와노브는 이렇게 말하면서 조선에서는 비교적 규모가 큰 공작기계공장 하나를 건설하고있는데 그것이면 공작기계의 수요를 능히 충족시킬수 있지 않는가고 은근히 시비조로 물었다.

정준택은 공작기계공장을 주기 싫으면 싫다고 할것이지 남의 세간살이까지 거들면서 자기의 주장을 정당화하려는것이 몹시 불쾌하였다.

《계획사업을 전문으로 보는 당신들에게도 명백한바와 같이 기계공업은 중공업의 핵입니다.

그런데 기계공업의 발전은 기계를 생산하는 공작기계공장을 떠나서 생각할수 없습니다. 우리가 공작기계공장을 하나를 더 차려놓으려 하는데는 이러한 양보할수 없는 원칙적인 문제가 있다는것을 당신들은 알아야 합니다.》

정준택이 저으기 날카로운 어조로 말하였다. 그의 머리속에는 정부간회담에서 싸부로브가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것은 단순한 기술적문제라고 했을 때 김일성동지께서 그것이 어찌하여 단순한 기술적문제인가고 반문하시던 일이 순시도 떠날줄 몰랐던것이다.

이와노브는 정준택이 단호하게 나오자 팔을 쩍 벌리며 응원을 바라듯이 옆에 앉은 우리 나라에 주재하고있는 쏘련통상부문일군인 찌모힌을 돌아보았다. 아시아출신인듯 체소한 몸집에 눈도 머리칼도 새까만 그 사람을 정준택은 이미 알고있었다.

《희천공작기계공장이 완공되면 거기서 나오는 공작기계만으로도 국내수요를 보장할수 있지 않습니까? 더우기 조선은 기계공업토대가 거의나 없는것만큼 이제 공작기계공장을 하나 새로 들여다놓는다 해도 운영하기가 곤난할것 같습니다. 심중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찌모힌은 머리를 한옆으로 기우뚱하고 마치도 변성기를 거치지 못한 소녀의 목소리와도 같은 챙챙한 목소리로 력설하였다.

정준택은 전번 정부간회담때 흐루쑈브가 우리 당 경제건설의 기본로선을 반대하여나서자 싸부로브가 기다렸다는듯이 우리가 공작기계공장을 차려놓으려고 하는 문제를 시비해나서던것을 다시 상기하였다. 그때 싸부로브가 한 말이나 방금 이와노브가 한 말 그리고 찌모힌이 한 말들이 신통히도 꼭 같았다.

이와노브가 정준택으로부터 반박을 당하자 구원이나 청하듯이 찌모힌을 돌아본것도 결코 무심히 보아넘길수 없는것이였다. 쏘련의 당과 정부의 고위인물들중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 나라와 관련되는 문제를 론의할 때 이 동양계 일군의 견해와 그가 제공하는 자료에 적지 않게 의거한다는것이 이제와서는 거의나 명백해졌다. 하긴 쑤즈달레브대사는 얼마전에 임명되였으니 아직 그한테 의거하기는 이를것이였다.

《방금 희천공작기계공장에서 생산하게 될 공작기계만으로도 국내수요를 보장할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이 어디에 기초하여나온 계산인지 리해할수 없습니다. 페허속에서 인민경제를 일떠세워야 할 지금처럼 많은 설비가 요구된적은 일찌기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설비가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지지야 않겠지요? 숱한 설비를 제작하자면 공작기계가 있어야 합니다.》

정준택이 크지 않은 한개 공장을 복구하자고 해도 얼마나 많은 설비가 필요한가를 몇가지 수자를 들어 설명하였다.

《인민경제를 복구하는데 필요한 중요설비는 우리가 원조분에서 주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지난 이틀동안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충분히 토의를 하고 합의를 보았다고 생각되는데...

이와노브가 다시 론의에 끼여들었다.

《당신들이 주기로 한 그 설비가 실지 우리 나라에 요구되는 설비의 전부라고 생각합니까?》

《물론 그럴수는 없다고 봅니다.》

《아직 정확한 수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것은 실지 수요량의 몇십 몇백분의 일도 안될것입니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형제나라들의 원조가 있지 않습니까.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조선에서 필요한 기계설비는 기계공업이 발전한 형제나라들에서 수입하여 쓸수 있다고 보는데요....

찌모힌이 싹싹한 말로 이렇게 대꾸하자 이와노브가 활기를 띠며 맞장구를 쳤다.

《우리는 조선동지들이 요구만 한다면 자동차, 뜨락또르로부터 천, 신발, 식량에 이르기까지 얼마든지 줄수 있을것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우리한테 주기만 하고 무언가 달라고 요구는 하지 않겠습니까? 형제간에도 돈계산이야 똑똑히 해야지요.》

정준택의 말에 모두 소리내여 웃었다.

《그러나 지금은 원조문제를 가지고 론의하지요.》

찌모힌이 싸늘한 어조로 대꾸하였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는 그 원조를 대단히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아무리 많은 원조를 주어도 거기에는 반드시 한도가 있는 법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단적인 실례로 우리가 고기배를 한 50척 요구한데 대해서 당신들은 겨우 4척밖에 팔아줄수 없다고 하고 탑식기중기 역시 수십수백대 필요한데 4대밖에 팔아줄수 없다고 하고있습니다.》

이와노브와 찌모힌은 아무 말도 못했다.

《우리는 자동차, 뜨락또르를 요구하는것이 아니라 자동차와 뜨락또르를 생산하는 공장을, 식량을 요구하는것이 아니라 식량생산에 이바지 할 비료공장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천이나 신발을 요구하는것이 아니라 천이나 신발을 생산하는 기계를 요구합니다. 기계를...

당신들은 우리의 이 요구를 반드시 리해해주어야 합니다.》

정준택은 못을 박듯이 마디마디에 또박또박 힘을 주며 말했다.

《하하... 주는 우리보다 받아갈 당신들의 요구가 더 높으니 딱하지 않습니까?》

이와노브가 웃음을 섞어가며 말하였다.

정준택도 웃지 않을수 없었다.

《그렇다면 량해하십시오. 우리 나라에는 마음 한번 잘 먹으면 북두칠성이 굽어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정준택이 말하자 또다시 웃음소리가 터졌다.

팽팽해지던 회담은 다시 완화되면서 한결 활기를 띠였다.

《공작기계공장납입문제는 그 부문 실무가들에게 넘겨 더 토론하게 합시다. 어떻습니까?》

이와노브가 제의하였다. 정준택이 동의하자 이와노브는 다음 안건토의에로 넘어갔다. 그는 우리 대표단에 쏘련측이 10억루블의 원조분으로 다음해에 넘겨줄 설비와 자재, 물품 명세를 제시했다. 명세에는 복구건설에 시급히 필요한 설비, 자재보다 천, 신발, 식량, 맥주와 같은 당면한 소비에 필요한 물품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우리측에서는 누구도 선뜻 입을 떼려고 하지 않았다. 활기를 띠던 회담분위기가 다시 서서히 얼어붙기 시작하였다.

《물론 우리는 조선측에서 우리한테 제기한 1954년도안으로 시급히 보장하여줄 설비명세를 보았습니다. 우리는 조선측의 요구를 소화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설비를 보장하는데는 일정한 시일이 요구됩니다. 솔직히 말해서 당신들에게는 지금 천이나 신발, 식량 같은것이 너무도 부족하지 않습니까.…》

이와노브가 자기측이 제기한 명세가 우리한테 접수가 되지 않는다는것을 알아차리고 다급히 변명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우리 인민은 잘 먹고 잘 입지는 못하고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강선제강소 기사장동무도 앉아있지만 우리 강선사람들은 하루빨리 전기로와 분괴압연기를 복구하여 쇠물을 뽑고 압연강재를 생산하기 위해 모든 곤난을 박차고 일떠섰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강선제강소 전기로와 압연기복구에 절실히 필요한 설비인 대형변압기와 전동치차, 축세기와 같은 설비는 래년도에 제공할 명세에 예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실례는 얼마든지 들수 있습니다.》

정준택은 굵직한 검은테의 안경알속으로 찌모힌의 얼굴을 곧추 바라보며 말하였다.

《설비를 생산하자면 일정한 기일이 요구되지요.》

이와노브가 어쩔수 없다는듯이 같은 말만 곱씹었다.

《그렇다고 대형변압기와 전기로 경동치차 몇개를 생산하는데 여러해씩 걸릴거야 없지 않습니까?》

정준택은 응수하였다. 정준택이와 한사람 건너 앉아있는 리웅천은 말할수 없이 착잡한 심정에 휩싸여있었다. 그는 자기가 전기로복구에서 난관에 직면하자 수입설비에 은근히 기대를 건것이 잘못되였다는것을 점차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의 눈앞에서는 변압기운반통로에 있는 강냉이대들을 뽑아던지며 전기로를 빨리 복구해달라고 하던 농민들과 경동치차에 금이 간것을 보고 눈물짓던 금희며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하던 용해공들의 얼굴이 줄곧 사라질줄 몰랐다.

《거듭 말하지만 일부 특정한 설비는 래년도에 납입할수 없습니다.》

이와노브가 이렇게 찍어말하고는 웃몸을 뒤로 제끼며 지그시 정준택을 내려다보았다.

리웅천은 불시에 얼굴이 확 달아오르고 입술이 떨려옴을 느꼈다. 그는 목구멍까지 치받쳐오르는 분노를 토설하고싶어 참을수 없었다. 그래서 정준택을 돌아보니 그는 이와노브의 고압적인 자세에도 불구하고 용케도 자제하고있었다.

나라의 복구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수 있다면 자기 한 개인의 자존심이 훼손당하는것쯤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것이 분명하였다. 그것이 리웅천의 분노를 간신히 눅잦혀주었다.

실무회담은 중단될듯 말듯 하면서도 계속되였다. 회담탁우에 놓인 정교한 세공무늬를 돋군 유리재털이에 수북이 쌓이는 담배꽁초는 회담이 얼마나 힘들게 진행되고있는가를 보여주고있었다.

《위원장동지, 회담을 걷어치웁시다!》

더는 참을수 없었던 리웅천이 정준택에게 쪽지를 넘기였다. 쪽지의 글발이 날카로운 쇠꼬치처럼 정준택의 가슴을 찔렀다. 그러자 정준택도 회담결렬을 선포하고 와닥닥 자리를 차고 일어서고싶은 심정이 불길처럼 솟구쳤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그의 어깨를 꽉 내리누르고있었다. 그것은 페허가 된 황철과 강선이였고 무너지다 남은 벽체와 기총탄자국이 숭숭한 굴뚝들만 서있는 사리원의 처참한 파괴상이였고 풀죽을 먹는 사리원교외의 고아네 정상이였다.

《우리는 당장 쇠물을 뽑아야 합니다. 당장! 그런데 당신들은 전기로복구에 필요한 변압기와 치차조차 납입할수 없다고 하니 이것을 어떻게 리해해야 하겠습니까? 문제는 원조에 림하는 관점문제입니다. 립장문제입니다.》

정준택의 목소리는 마치도 판결문을 읽듯이 준절하게 울리였다.

젖버듬히 앉았던 이와노브가 눈을 크게 뜨며 두팔을 쩍 벌렸다. 우리측이 암만 요구해도 자기의 권한에는 한계점이 있다는것, 그러니 어쩌지 못하는 자기의 딱한 립장을 널리 리해해달라는 뜻이였다.

정준택은 근엄한 눈빛으로 상대측 회담성원들의 얼굴을 훑었다.

《우리의 실무회담이 원점으로 되돌아가는것 같지만 나는 당신들에게 다시 10억루블의 원조에 대한 우리의 원칙적립장을 밝히려고 합니다.

우리는 원조를 당면한 소비에 결코 망탕 쓰지 않을것입니다. 우리는 파시스트들을 반대하는 조국전쟁에서 혹심하게 파괴된 경제를 복구개건하면서 마련한 쏘련인민들의 귀중한 원조자금을 우리 나라의 경제적기초를 굳건히 다지는데 리용할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신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우리 당 경제건설의 기본로선이 요구하는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치도 물러설수 없습니다.》

실무회담은 이것으로 끝났다. 결국 이날의 회담에서도 합의된것은 하나도 없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초대소의 응접실을 천천히 거니시였다.

(과연 회담을 계속하여야 하는가?)

그이의 머리속에서는 줄곧 이 생각이 사라질줄 몰랐다.

그이께서는 정준택으로부터 쏘련측 계획일군들과의 실무회담에서 기계제작공업창설문제와 명년도 중요 설비, 자재 납입문제에서 어느 하나도 합의를 보지 못하였다는것을 보고받으시였다.

모든것이 예상하시였던 그대로였다. 그이께서는 흐루쑈부가 우리 당 경제건설의 기본로선을 시비하여나섰을 때 벌써 그것을 내다보시였다.

그이께서는 뒤짐을 지고 천천히 창가로 걸어가시였다가는 다시 돌아서 탁상등이 환히 켜진 책상쪽으로 걸어오군 하시였다. 그리고는 책상곁에 잠간 멈춰서시였다가는 창문쪽으로 자국을 옮기시였다. 그이의 발걸음은 전에없이 무거웠다.

기계제작공업을 핵심으로 하는 강력한 중공업을 복구개건하자면 막대한 자금이 들어야 했다. 우리 인민이 전쟁으로 입은 피해액은 천문학적수자에 달하였다. 이것은 전쟁전 한해동안의 우리나라 예산수입의 수십배에 달하는 액수였다. 그런데 온 나라가 문자그대로 재더미가 된 지금 나라의 예산수입이 전쟁전보다 오히려 떨어지리라는것은 너무도 뻔한 리치였다. 그러니 제한된 그 예산수입을 깡그리 동원해서 전쟁피해만 가시자고 해도 그 액수는 너무도 엄청나게 모자랐다.

더구나 기계제작공업은 복구가 아니라 창설이였다. 령수준 이하에서의 창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그러니 여기에 드는 자금이 얼마나 엄청나겠는가.

그이께서는 우리 계획일군들이 쏘련의 원조에 큰 기대를 거는것을 충분히 리해하시였다. 그런데 쏘련측에서는 당면한 소비에 필요한 물자만 가져가라고 하니 이런 원조가 나라의 튼튼한 경제토대를 다지는데 과연 얼마만큼이나 리롭겠는가?

그이께서는 두터운 주단우에 발걸음을 무겁게 옮겨놓으며 끊임없이 사색을 이으시였다.

《수령님, 날이 밝습니다.》

부관장이 조용히 응접실에 들어와 말씀올리였다.

《어쩐지 잠이 오지 않소.》

그이께서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부관장은 그이의 얼굴에 무거운 시름과 침중한 빛이 어린것을 보고 무엇이라 할말을 찾지 못하였다.

《그런데 옆구리에 낀건 뭐요?》

《방금 온 오늘호 쏘련신문들입니다.》

《그렇소? 두고가오.》

《날이 밝는데 잠시라도 눈을 붙이셔야 하겠습니다.》

부관장이 안타까이 말씀올렸다.

《신문이나 훑어보고 자겠소.》

그이께서 말씀하시자 부관장은 더 어쩔수 없는듯 들어올 때처럼 조용히 나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책상곁에 선채로 《쁘라우다》신문부터 펼치시였다. 우리 대표단과 관련한 기사들에 선차적인 주목을 돌리시였다.

신문을 한장한장 넘기시던 그이께서 갑자기 어느 한 사진에서 눈길을 멈추시였다. 퍽 눈에 익어보이는 사진이였다. 벌써부터 그이의 심장이 닥쳐올 그 어떤 커다란 경사를 예감한듯 서서히 높이 뛰기 시작하였다.

그이께서 허리를 굽히고 사진을 주의깊이 보시다가 다시 탁상등가까이 갖다대고 설명문을 읽으시였다.

《오, 강선!》

놀란 웨침소리가 튀여나왔다. 그렇다, 잘못 보실수 없었다. 그것은 강선제강소 전기로였다. 전기로에서 첫 쇠물이 쏟아지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였다. 방금까지 그이를 괴롭히던 번뇌와 울적한 심사는 순간에 날아나고 억제할수 없는 기쁨과 감격이 전신을 휘감았다.

단숨에 기사를 읽은 그이께서는 전화가 놓인 곳으로 다가가시였다. 그러나 도중에 고쳐 생각하고 복도에 나서서 부관장을 찾으시였다.

《부관장동무, 우리 동무들을 내 방에 다 불러야 하겠소.》

《지금 말입니까?》

부관장은 놀랐다.

《그렇소.》

부관장은 영문을 알지 못하였으나 상당히 급한 문제가 제기되였다고 생각하고는 더 알려고도 하지 않고 복도에 나섰다. 그런데 그때 다시 그이께서 그를 불러 멈춰세우시였다.

《식당에 내려가서 축배잔도 가져와야겠소. 그리고 또…》

《혹시 술 아닙니까?》

부관장은 자신없이 말꼬리를 흐리였다. 그런데 그이께서는 《옳소, 바로 그거요.》라고 하며 소리높이 웃으시는것이였다.

부관장은 그이께서 그처럼 기뻐하시는것을 처음 보는것 같았다.

김일성동지의 부르심을 받은 대표단수원들은 가슴 설레임과 함께 놀람과 당황감에 휩싸여 어떻게 그이께서 계시는 초대소로 달려왔는지 몰랐다. 조쏘 정부간회담이 결렬직전에 이르렀다는것을 잘 알고있는 그들은 밤사이에 대단히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그들은 모두 발자국소리를 삼가하며 조심스럽게 응접실에 들어섰다.

수원들이 다 모이자 그이께서 응접실 쏘파에서 일어서며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갑자기 모이라고 해서 안되였습니다. 사실은 혼자 받아안기에는 너무도 큰 기쁨이여서 함께 나누자고 모두 오라고 하였습니다.》

수원들속으로 놀람과 의문이 가득찬 파문이 물결쳐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환히 웃으며 응접실 복판으로 나가시였다.

《동무들!》 그이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넓은 응접실을 꽉 채웠다. 《나는 이 자리에서 동무들에게 한가지 기쁜 소식을 알려주자고 합니다.》

그이께서는 기대와 놀람으로 가득찬 수원들을 바라보며 잠시 말씀을 멈추시였다. 수원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다음말씀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조국에서 첫 쇠물이 나왔습니다. 강선제강소로동계급이 전후 처음으로 쇠물을 뽑았습니다. 순전히 자체의 힘으로, 그것도 종전 전기로의 2배나 되는 전기로에서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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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그것도 종전 전기로의 2배나 되는 전기로에서 강철을 생산하였습니다.》

그이께서는 한손을 높이 쳐들며 힘찬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순간 폭풍같은 감격이 장내를 휘감았다. 박수가 터져올랐다.

《이 놀라운 소식은 오늘호<쁘라우다>신문에 사진과 함께 보도되였습니다.》

그이께서는 《쁘라우다》 신문을 높이 쳐들어보이시였다. 수원들은 그때에야 그이께서 한손에 《쁘라우다》 신문을 들고계시였다는것을 알았다.

《이 소식은 평양에 주재하고있는 <쁘라우다>특파기자 울라지미르 꼴랴꼬브가 전한것입니다. 그는 가렬한 전쟁시기에 우리 나라에 나와서 우리와 생사고락을 함께 나눈 귀중한 혁명전우입니다. 이 신문을 보면 그가 강선로동계급의 영웅적투쟁에 커다란 지지와 련대성을 보내주고있다는거을 인차 느낄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민의 전후복구건설을 진심으로 도와주는 쏘련인민들의 심정입니다.》

누구보다 놀란것은 정준택과 리웅천이였다. 자존심이 훼손당하는것도 입술을 깨물며 참으면서 전기로복구에 필요한 설비들을 어떻게 하나 짧은 기일에 해결해보려고 실무회담을 거듭하는 동안 조국의 로동계급은 어느사이에 그러한 설비들을 받지 않고서도 첫 쇠물을 성공적으로 뽑아낸것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전후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쇠물을 뽑은 강선의 로동계급에게 뜨거운 감사를 보냅니다.》

격정에 북받친 수원들은 일제히 지리에서 일어섰다.

《동무들! 나는 강선로동계급의 성과를 축하하여 축배를 들것을 제의합니다.》 그이께서 응접탁에 놓인 축배잔을 들고 리웅천에게로 다가오시였다. 《강선로동계급의 성과를 축하합니다.》

《수령님, 고맙습니다. 수령님께서 우리 로동계급에게 주신 감사를 즉시 전달하겠습니다.》

리웅천의 목소리는 감격에 젖어 떨리였다.

모든 수원들이 그에게 다가와 축배잔을 찧었다.

리웅천은 강선로동계급을 대표하여 축하를 받게 되는것이 더없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송구하기 그지 없었다.

(고맙소, 동무들!)

거듭 마음속으로 외우는 리웅천의 눈앞에서는 전기로복구에서 생명이라고도 볼수 있는 대형경동치차의 이발이 부러지고 변압기용량이 모자라 속을 태우던 용해공들의 얼굴이 사라질줄 몰랐다.

리웅천자신이 그 해결방도를 찾지 못한채 외국방문의 길에 올라 늘 마음이 무거웠는데 그들이 그 어려운 과제를 끝내 자체의 힘으로 해낸것이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믿어야 할것은 오직 우리의 로동계급밖에 없습니다.》

격동으로 휩싸인 응접실에 김일성동지의 목소리가 엄숙하게 울리였다.

《공작기계공장 설치문제는 더 론의하지 맙시다. 우리가 희천에 공작기계공장기지를 처음 꾸릴 때 그 누구의 승인을 받고 했습니까? 그리고 당장 무엇무엇을 내라 이렇게 자꾸 요구하지도 맙시다. 우리는 우리 로동계급의 힘과 지혜를 믿고 그 힘과 지혜를 조직발동하여 모든것을 풀어나가야 합니다.

남일동무, 원조에 대한 우리의 원칙적립장을 몰로또브에게 명백히 밝혀야 하겠습니다. 당면한 소비에만 원조를 돌린다면 그런 원조는 우리의 복구건설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단단히 말해주어야 하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근엄한 안색으로 강조하시고 한동안 아무 말씀없이 응접실을 거니시였다. 그이께서 옮겨놓으시는 발자국소리만이 갑자기 시간의 흐름조차 멎어버린듯 한 응접실의 정적을 조용히 흔들어놓고있을뿐이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천정에 닿는듯 한 높직한 궁형식창문에서 걸음을 멈추고 무겁게 드리운 창가림을 좌우로 벌려놓으시였다. 그리고는 이윽토록 움직이지 않고 창밖을 내다보시였다. 이국의 밤 하늘을 찌를듯이 높이 솟은 고색의 뾰족탑들이며 둥근 지붕들이 한눈에 안겨왔다.

《동무들도 기차를 타고오면서 느꼈겠지만 우리 이웃인 중국이나 쏘련은 다같이 큰 나라들입니다. 인구수에 있어서, 령토의 크기에서 세계최대를 자랑하는 나라들입니다.》 그이의 낮으나 저력있는 목소리가 다시 울리였다.

《우리 나라 동쪽으로는 한때 우리 나라를 강점하였고 아시아의 맹주로 <대동아공영권>을 꿈꾸던 일본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있습니다. 남쪽으로는 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세계제국주의 두목인 미제와 맞서있습니다. 지정학적으로 고찰하여볼 때 이것이 우리에게 유리한것인가 불리한것인가?

수난에 찬 우리 민족의 력사를 돌이켜보면 우리 나라의 지리적위치가 적지 않은 경우 화근으로 되였다는것을 보여주고있습니다. 사대와 매국으로 얼룩진 비운의 민족사가 그것을 증명해주고있습니다. 오랜 세기를 두고 우리 나라는 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눌리여살다가 마침내 사면팔방으로 둘러선 대국들의 그 포위속에서 빛을 잃고 흔적없이 사라질번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이께서는 문득 말씀을 멈추고 창가에서 천천히 돌아서시였다. 그이의 안광에서 강철의 빛발같은것이 번쩍이였다.

《그러나 이제는 이 치욕의 민족사에 영영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사면팔방으로 둘러선 대국들속에서 우리 조선은 빛을 잃고 사라질것이 아니라 혜성처럼 높이높이 솟구쳐올라야 합니다!》

그이의 말씀은 수원들의 가슴속에 세찬 메아리를 일으켰다.

《혜성처럼 솟구쳐올라야 합니다!》

다시 외워보는 정준택은 너무나도 큰 충격과 감격으로 불시에 심장이 멎는듯 싶었다.

《아래에서 우를 쳐다보면 작은것도 커보이지만 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큰것도 작아보이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아래에서 우를 쳐다보며 살것이 아니라 시종 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살아야 합니다. 대국들속에서 대국들에 눌리워있을것이 아니라 그들과 나란히 서있다는 당당한 자세로 그들을 따라앞설 각오를 가다듬고 혁명과 건설을 해야 합니다.

우리 인민의 힘을 믿고 우리 인민의 힘에 의거하여 페허가 된 조국땅에 기어이 만년대계의 터전을 다져놓으려는 우리 당의 방침을 관철하는데서도 바로 이런 투철한 립장, 비상한 각오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대국들속에서 혜성처럼 솟구쳐오를수 있는 그런 강유력한 나라를 동방일각에 거연히 일떠세울수 있습니다. 이 위업을 우리대에 해내야 합니다. 이것이 피의 교훈으로 얼룩진 민족수난의 력사가 우리에게 요구하고있는 지상의 요청이고 명령입니다.》

정준택은 자기도 모르게 수령님앞으로 몇발자국 걸어나갔다. 가슴속에서 금시 튀여나올듯 세차게 방망이질을 하는 심장을 눅잦히려는듯 그는 두손으로 가슴을 꽉 눌렀다. 오래동안 사색과 번민에 모대겨온 사람에게서만 볼수 있는 류달리 깊어보이는 눈확속에서 불시에 수정 같은것이 번쩍이며 볼로 흘러내렸다.

그것은 제한된 자금을 안고 고민하면서 외국의 원조에 한가닥 기대를 걸었던 자책과 후회의 눈물이였다. 정준택은 그것으로 하여 공허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넘치는 충만감이 그의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수령님, 수령님의 위대한 사상을 제 이제야 비로소 심장으로 깨달았습니다.... 저는 수령님의 사상을 끝까지 옹호하고 관철하겠습니다.》

정준택의 목소리는 격정으로 하여 자주 끊어지였다.

《수령님, 강선의 로동계급을 대표하여 수령님의 말씀을 항상 잊지 않고 관철하겠다는것을 맹세합니다.》

리웅천도 그이를 향해 맹세를 다지였다.

그 결의들은 모든 수행원들의 일치한 심정을 대변한것이였다.

이튿날 조쏘 두나라 정부간회담에서 몰로또브는 쏘련정부를 대표하여 자기 나라가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문제들을 모두 받아들이기로 하였으며 조선인민의 전후 인민경제복구건설을 위한 사업에 적극적인 원조를 제공하기로 결정하였다는것을 우리측에 통보하였다.

이날 조쏘 두나라 정부간 회담과 관련한 공동콤뮤니케가 발표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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