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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길 제2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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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2,341회 작성일 20-03-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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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김일은 페갱속을 걷고있었다. 싸리로 엮은 안전모를 쓰고 두손에 딱따구리망치와 간데라를 갈라 든 그는 허리를 구부정하고 힘들게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이틀째 페갱속을 돌아다닌데도 원인이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갱도천정이 낮아서 허리도 제대로 펼수 없고 얼굴도 쳐들수 없는것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갱도천정은 원래 그렇게 낮게 뚫었는지 아니면 오랜 세월을 흘러오는 과정에 지압을 받아 낮아졌는지 똑똑치 않았다. 아마도 그 두 원인이 다 작용한것 같았다. 그러나 앞에서 길안내를 하고있는, 산곡광산에서 《재령산산신령》이란 신비한 별명이 붙은 성보아바이는 조금도 힘들어하는것 같지 않았다. 김일은 그가 자기보다 키가 작아 갱도에서 걷는것을 힘들어하지 않는가 하여 앞서 걷는 그를 부러워하는 눈으로 자주 훔쳐보았으나 그의 키는 자기보다 결코 작다고 볼수 없었다. 그역시 자기처럼 머리를 수굿하고 걷고있었다.

산곡광산은 평남도와 함남도 지경에 높이 솟은 해발 1,200m도 나마 되는 재령산밑에 있었다. 전세기말에 아버지의 통재산이 다 얹힌 지게짐우에 앉아 재령산막바지에 흘러든 성보아바이는 어려서는 아버지를 도와 부대기를 뚜지였다. 부대기군이 다 그러하듯 그들도 재령산의 골과 버덩을 밟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의 잔뼈가 어지간히 굵어졌을 때 산곡에 광산이 들어앉았다. 그러자 그는 광산에서 처음에는 정대를 나르는 인부로 나중에는 착암수로 일하다가 나라의 광복을 맞았다.

이런 경력을 가진 성보아바이는 재령산일대의 땅우는 말할것도 없고 땅밑에 대해서도 모르는것이 없었다. 《재령산산신령》이란 별명도 그래서 붙은것 같았다.

김일은 광산에 도착하자 여러 사람들을 만나 광산에서 류화철을 몇해 캐낼수 있는가를 알아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2∼3년으로 보았고 어떤 사람들은 4∼5년으로 보았다. 그러던중 광산 후방부문에서 일한다고 하는 반백이 다 된 한사람이 김일을 찾아와 조용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였다. 김일은 그와 함께 점심식사하러 가면서 무슨 이야기인가고 물었다.

《<산신령>아바이를 만났습니까?》

반백의 일군은 느닷없이 물었다.

《<산신령>아바이라니?》

《그런 아바이가 있습니다. 꼭 만나보십시오. 광산전망문제와 관련하여 귀중한 조언을 줄것입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간다온다는 인사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김일은 신비한 별명을 가진 그 사람을 만나기로 하고 인편을 띄웠으나 집에 없다고 하였다. 하루밤을 더 묵기로 하고 다음날은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다행히 성보아바이는 집에 있었다.

그리하여 지금 김일은 그의 안내를 받으며 페갱속을 돌아보는것이였다. 김일은 이마에서 비지땀이 흘러내리고 입에서 더운 김이 뿜어나와 자주 걸음을 멈추고는 손수건을 꺼내였다. 그러다가도 잠간 방심하면 지끈하고 갱도천정에 머리를 짓쪼군 하였다.

《허리를 낮추시우다.》

그때마다 성보아바이가 뒤를 돌아보며 주의를 주었다.

《예, 예.》

김일은 총망중에 이렇게 대답하고는 저만치 앞서간 아바이를 뒤따르군 하였다.

항일무장투쟁시기 연길현과 장백현일대에서 지하공작을 할 때 위험하기 그지없는 광산막장에서 얼마간 일해본 경험이 있는 김일이였지만 지금같이 위험천만한 페갱을 돌아본 일은 없없다.

김일은 성보아바이 뒤를 따라 오소리굴 같은 페갱속으로 점점 깊이 들어갔다. 굴은 갈래가 몹시도 복잡하였다. 꼭같은 형태의 굴들이 얼마나 무질서하게 뚫어졌는지 자기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지 전혀 알수 없었다. 그러나 성보아바이는 정적이 깃든 암흑세계에서 단한번의 실수도 없이 자신있게 김일을 안내했다.

김일은 성보아바이를 바라보며 《산신령》이란 별명을 가질만도 하다고 생각하였다.

어지간히 지친 김일은 이제는 아바이에게 이것저것 묻기도 힘이 들어 말없이 그의 뒤를 지척지척 따르기만 했다.

이따금 물소리가 들려오고 지독한 습기냄새와 찬바람이 등골을 선뜩하게 하였다. 김일은 질척질척한 바닥을 가스등불로 비치며 조심스럽게 발자국을 옮기였다. 성보아바이가 걸음을 멈추었다. 아바이가 든 가스등불빛에 굴간을 막은 판자벽이 보였다. 판자벽에는 시퍼런 이끼가 두텁게 덮여있었다. 퍽 오래전에 뚫은 굴이였다.

아바이가 딱따구리망치로 판자를 툭 건드리자 삭을대로 삭은 판자벽은 순간에 풀썩하고 무너져내려앉았다. 불쾌한 곰팽이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의하시우.》

성보아바이가 통행을 금지시킨 구역으로 들어서며 다시한번 주의를 주었다.

판자벽이 있던 자리를 넘어서자 굴천정은 점점 낮아지고 가슴은 참을수 없이 답답해졌다.

여기서는 공기의 흐름도 멎고 물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더구나 기분 나쁜것은 고삭은 동발나무들이 땅속깊이 파고들고 천정에서 흙과 모래가 부슬부슬 흘러내리는것이였다. 이것은 지압이 세게 오고있다는 징후였다.

어쩐지 무시무시했다. 그들이 엉금엉금 기다싶이 붕락구간을 간신히 통과했을 때였다. 갑자기 《찍.》 하는 새된 소리를 내며 무엇인가 검은것이 머리우를 휙 스치였다. 화닥닥 놀란 김일은 아래도리가 매시시해져서 걸음을 옮길수 없었다.

《쥐새끼들이우다.》

성보아바이가 가스등불로 이끼 오른 동발나무들을 비쳐보며 말했다. 김일은 어쩐지 쥐들마저 공포에 싸여 어디론가 급기야 도망치는것 같았다.

지압이 오거나 지진과 같은 엄청난 지각운동이 있을 때 동물들이 그렇게 부산히 움직인다는것을 김일은 이미 알고있었다.

《암만 해도 내가 보여주고싶은 곳까지는 가낼수 없을것 같수다. 지압이 이만저만이 아니지요.》

성보아바이도 불안스러운 모양이였다.

《가봅시다. 예까지 왔다가 도로 나가겠습니까?》

《허허허. 담이 보통이 아닙니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며 한치한치 전진했다. 그렇게 얼마간 지나갔을 때 그들앞에 두번째 붕락구간이 나타났다.

《이젠 더 가지 못할것 같수다.》

성보아바이가 가스등불로 붕락구간을 비쳐보이며 말하였다.

두사람은 그자리에 주저앉고말았다. 어디선가 석수 떨어지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그러니 돌아서야만 하는가?)

락심하여 앉아있는 김일의 귀전에 잊을수 없는 내각갱도앞의 나지막한 단층집무실에서 그이께서 하시던 말씀, 고생이란 고생을 다 겪은 우리 인민이 또다시 간고한 길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니 말할수 없이 괴롭다고 하시던 그 말씀이 뜨겁게 울려왔다.

김일은 더는 앉아만 있을수 없었다. 천천히 일어서니 석수 떨어지는 소리가 갑자기 높아진것 같았다.

순간 독틈에도 용수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쳤다.

김일은 붕락구간으로 다가가 한아름이나 되는 돌을 낑낑 갑자르며 굴려내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하자는겁니까?》

성보아바이가 물었다.

《길을 내야지요. 독틈에도 용수가 있다지 않습니까....

《허허...

아바이는 허거픈 웃음을 터뜨렸다.

《웃지만 말고 가스등불이나 비쳐주시오.》

《왜 이러시우. 중앙의 큰 간부가 잘못되게 한 책임을 이 늙은이에게 지우자는겁니까?》

《위협하지 마십시오. 아직은 그런 절망적인 상태는 아닙니다.》

김일은 끝내 아름드리 큰 돌을 굴려내고 두손으로 버럭을 쳐냈다. 그러자 그들앞에 과연 시커먼 굴이 뻥 뚫리였다.

《안되우다. 위험합니다.》

《괜찮습니다. 나도 한때 굴일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믿으십시오.》

김일은 가스등을 입에 물고 시커먼 굴을 기여나갔다. 어쩌는수 없이 성보아바이도 뒤따르지 않을수 없었다. 가까스로 붕락구간을 기여나가니 굴이 좀 넓어졌다.

바스락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온몸을 사방에서 꽉 조이는듯 한 무시무시한 정적, 공기도 있는지 없는지 숨이 꺽꺽 막히고 가스등불조차 태고의 어둠속에 녹아버리는듯 얼마 앞을 비치지 못했다.

《얼마나 더 가야 합니까?》

굴천정이 낮아 큰 키를 구부정하고 선 김일이 물었다.

《좀 더 가야지요.》

어쩐지 성보아바이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려나왔다.

이제부터는 김일이 앞장서 걸었다. 그러나 그는 얼마 못가서 무엇에 걸채여 비칠거렸다.

《아아.》

앞선 김일보다 뒤따르던 성보아바이가 오히려 비명소리를 질렀다.

김일이 발끝을 비쳐보자 녹이 두텁게 앉은 곡괭이가 나졌다. 그 옆에는 무슨 뼈 같은것도 보였다.

김일의 등골로 소름이 쭉 흘러내리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애써 다잡으며 계속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젠 거지반 온것 같수다.》

성보아바이가 겨우 들리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김일이 걸음을 멈추자 아바이가 허리를 낮추 구부리고 김일의 앞에 나서더니 가스등불을 굴벽에 바투 비치였다. 그 찰나 시누런 황구렝이가 꿈틀하며 바위벽에서 튀여나왔다.

《앗.》

김일은 기겁하듯 놀랐다. 하지만 그는 인차 자기가 잘못 보았다는것을 알았다.

김일은 땀에 젖은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은 다음 무릎걸음으로 성보아바이가 비치는 굴벽을 향해 벌렁벌렁 기여갔다.

《히야. <노다지>로구만!》

김일은 아이들처럼 환성을 질렀다. 시누런 《황구렝이》는 다름아닌 류화철광맥이였던것이다.

《뭐 2∼3년이라구? 덜된 녀석들!》 성보아바이가 새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떠시우? 욕심이 나지요? 이것들이 다 고품위 류화철맥이우다. 어제 본 그 맥과 다 통해있지요. 페갱을 뒤져도 10년은 문제 없수다. 흥, 2∼3년이라구...

《이런 맥이 로출된것이 아직 더 있습니까?》

《아직 더 있지요. 일본놈들이란 연, 아연에만 눈독을 들여가자구 마구 캐가다보니 류화철맥은 어디서나 버림받았지요.》

《그럼 한두곳 더 찾아봅시다.》

김일이 말하자 성보아바이는 여간 놀라지 않았다.

《힘들지 않습니까?》

성보아바이가 떠보듯 상대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힘들지요. 그런데 <노다지>를 보니 새힘이 솟구칩니다....

《그래요, 허허허…》

그들은 잠시 다리쉼을 하고는 다시 류화철광맥을 찾아 걷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좁디좁은 어느 한 굴길에 들어섰을 때였다. 멀리에서 반디불 같은 불빛이 깜박거리였다. 두사람은 자기들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다. 태고의 정적이 깃든 암흑속에서 신비롭게 깜박거리는 불빛은 두사람을 부지중 긴장시켰다.

《무슨 불빛입니까?》

김일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글쎄요.》

그들은 숨을 죽이고 불빛을 향해 걸음을 다그쳤다. 그때 저쪽에서도 이쪽 불빛을 알아본듯 갑자기 성보아바이를 찾는 목소리가 막장에 서린 태고의 정적을 깨뜨렸다.

잠시후 김일과 성보아바이는 마주온 사람들이 이곳 광산지배인과 정준택이란것을 알게 되였다.

막장에서 만나 인사들을 나눈 그들은 더없이 반가와하였다.

네사람은 페갱속을 뒤져 류화철광맥을 두곳에서나 더 찾았다.

《2∼3년이라구, 덜된 녀석들...

성보아바이가 격분에 넘쳐 울분을 토하였다.

《그러니 10년은 캐먹을수 있다 그말입니까?》

정준택이 확인하듯 물었다.

《그렇구 말구요. 탐사만 잘하면 그이상 얼마든지 캐낼수 있습니다.》

지배인이 신심에 넘쳐 대답하였다.

그들 네사람이 갱밖으로 나왔을 때는 중낮이 다되였다. 속새풀이 길길이 자란 덤불속에 시커먼 굴입구가 겨우 엿보이는 언덕우에 앉은 그들은 말없이 담배만 태웠다.

김일은 짙은 담배연기속으로 옆에 앉은 아바이를 유심히 관찰하군 하였다. 환갑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는 아바이라는데 머리칼은 하얗게 세였고 이마에는 굵은 주름살이 얼기설기 갔다. 다만 은실같은 수북한 장미속에 감춰진 두눈만이 영채를 띠고 지혜롭게 반짝이였다.

《모두들 담들이 정말 보통이 아니우다.》

담배를 뻐금뻐금 빨던 성보아바이가 느닷없이 굴속에서 이미 한말을 다시 반복했다.

《담?》 김일은 생각깊은 어조로 그 말을 받았다. 《그건 담이라기보다 사명감이지요. 류화철은 류안비료의 원료이구 류안비료가 있어야 농민들이 농사를 짓습니다. 그때문에 우리 수령님께서 몹시 걱정하시는데 나라의 중책을 걸머진 우리가 어찌 류화철맥을 앞에 두고 돌아설수 있겠습니까.》

《하긴 그렇수다. 그러니 내 이제와서 뭘 숨기겠습니까. 사실 난 김일동지한테 죄를 졌습니다.》

성보아바이가 자못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죄를 졌다구요? 원, 무슨 그런 당치 않은 소릴...

《죄를 졌지요, 죄를. 어제 한낮 때 채광에 다니는 동철이란 녀석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우에서 한 간부가 내려왔는데 광산전망문제때문에 나를 찾는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여태껏 도에서도 내려왔구 중앙의 성에서도 간부들이 내려와 전망문제를 토론하고 갔는데 또 무슨 토론이냐? 자꾸 말해야 같은 소리지. 안 가겠다, 없다구 그래라, 내가 그 녀석한테 소리쳤지요. 그랬더니 동철이녀석이 한다는 말이 <아바이, 그 간부는 보통 간부가 아니라 큰 간부예요.>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큰 간부건 작은 간부건 난 싫다고 다시 소리쳤지요.

그런데 그날 저녁 광산에 다니는 막내딸이 집에 들어오더니 나한테 한다는 말이 왜 우에서 찾는데 가지 않았느냐, 그분은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사업하는 김일이라는분인데 아버지를 만나기전에는 돌아갈수 없다고 하면서 하루밤 합숙방에서 더 묵기로 했다지 않겠습니까. <아뿔싸! 내가 로망을 했구나.> 나는 이렇게 찾아가지 않은걸 후회를 했지요. 아무래도 내가 그분을 찾아가야 할가부다 하고 생각하고있는데 부위원장동지가 나를 찾아오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내 그<노다지>를 보여주기로 작정했지요. 광산전망문제를 가지구 이러쿵저러쿵 할게 있소? 얼마전에는 쏘련 어디선가 탐사대일을 본다는 코큰 아주바이가 몇몇 기술자들을 만나보고 맥이 끊어진 굴간에도 들어가보고 돌아갔다지 않겠소. 모두들 와서보고는 광산전망이 없다고 떠들었지요. 맥도 제대로 짚어보지 못하면서, 사실 페갱한 굴간 막바지까지 샅샅이 훑으면서 광산전망문제를 깊이 생각해본 사람이 얼마 되는줄 아시우? 한심하거든, 한심해. 시누런 그<노다지>를 보고서야 누가 이 광산을 페광시키자고 하겠습니까.》

성보아바이는 독초를 말았다.

정준택은 악마디진 아바이의 손이 유별나게 큰데 놀랐다. 그 손에 비하면 자기의 손은 너무도 작고 여리였다. 그런데도 아바이는 정준택의 손가락의 두배도 나마되는 그 굵은 손가락으로 담배를 얼마나 재빠르고도 맵시있게 마는지 몰랐다. 그때 저공으로 날아오던 까투리 한마리가 사람이 앉은 불과 몇m밖에 돌덩이처럼 떨어지더니 무성한 풀덤불속에 대가리를 틀어박는것이였다. 정준택이 고개를 쳐드니 억센 두날개를 쫙 편 독수리 한마리가 높은 하늘에서 먹이를 노리며 빙빙 돌고있었다.

《내 자기 비판을 했으니 이젠 위원장어른을 비판해야겠수다.》

아바이의 수북한 장미속에서 보석같이 반짝이는 두눈이 능청스레 웃고있었다.

《어서 비판을 하십시오.》

정준택이 성근한 태도로 대꾸했다.

《저 산을 보시오.》

아바이가 파괴된 선광장 한옆에 피라미드처럼 우뚝 솟아오른 산봉우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저 산이 무슨 산인지 아시우?》

《버럭산이지요.》

《버럭산? 흥!》

아바이는 코웃음을 쳤다. 정준택은 롱인가 하여 아바이를 돌아보았다. 아바이의 주름살덮인 얼굴에는 이미 웃음기가 말끔히 사라지고 엄숙하면서도 심각한 표정이 자리잡고있었다.

《모두들 방금 페갱에서 류화철맥을 보고<노다지>라고 했지요? <노다지>그 말이 내 마음에 들었수다. 그런데 바로 저 산이 통채로 <노다지>산이라면 모두들 놀랄거웨다. 그렇지만 그건 사실이지요. 저 버럭산은 버럭 아닌 류화철산이지요. 내 위원장한테 한가지 물읍시다. 그래 연, 아연만 귀하고 류화철은 귀하지 않는가요?》

《다같이 귀하지요.》

《그러데 왜 연, 아연에는 그처럼 후한 값을 치루구 류화철은 쓴외 보듯 하시우. 연, 아연은 저 고개만 넘기면 다지요. 제련소가 저 고개밑에 있으니까요. 하지만 류화철은 다릅니다. 여기서 70리 경둔역까지 자동차로 실어가야지요. 그 다음에는 고원을 거쳐 빙빙 돌며 흥남으로 내보내야 합니다. 값이 눅은데다 교통까지 이렇게 불편하니 누가 류화철을 생산하자고 하겠소? 예? 죄를 짓습넨다, 죄를. 저 삼각산을 무심히 보지 마시오. 저 삼각산이 노해서 뢰성벽력을 일으킬 날이 올겁니다. 암, 오구말구...

정준택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는 산곡광산에서 생산하고있는 류화철광석에 대한 가격제정과 평가사업을 비롯한 많은 문제들에서 엄중한 실책을 범하였고 지금도 범하고있다는것을 깨달았다. 지도단위의 책임일군은 응당 작전과 지휘를 잘 해야 하고 집행단위의 일군은 이신작칙을 잘해야 한다. 정준택은 나라의 살림살이를 책임진 일군으로서 응당 작전과 지휘를 잘했어야 했으나 성보아바이의 말을 듣고보니 작전과 지휘 어느하나도 잘하지 못하였다는것을 통감했다. 그는 김일성동지께서 어찌하여 계획일군들이 군중속에 깊이 들어가야 한다고 그처럼 자주, 그처럼 간곡히 교시하군 하시였는가를 이제야 비로소 그 진수를 깨닫게 되는것 같았다.

김일과 정준택은 광산에 여러날 묵으면서 이곳일군들과 함께 광산복구와 운영에서 나서는 문제로부터 전망문제에 이르기까지 허심탄회하게 협의를 하고 대책을 세웠다. 마지막날 정준택은 웃주머니에 늘 간수하고다니는 계산자를 꺼내들고 직접 계산을 하고 광산지질도면을 펴놓고 진지하게 분석하면서 광산전망문제를 허무적으로 대하는것은 잘못되였다고 못 박았다.

《저희들의 잘못이 많습니다. 광산전망문제를 놓고 무책임한 발언을 한 자신들을 생각하면 얼굴을 들고다닐 체면이 없습니다. 흥남비료공장의 류화철은 만덕광산이 큰 몫을 맡고있지만 그러나 우리도 한몫 단단히 하겠다는것을 다짐합니다.》

광산지배인이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지배인동무의 그 말을 들으니 나도 기쁩니다. 지배인동무, 생각해보시오. 나라를 복구하는데서 먹는 문제가 중요한데 먹는 문제는 곧 비료문제라고 말할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쏘련의 원조로 건설되는 질안에만 환상을 가지고 류안을 줴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장 우리의 눈앞에 있는것은 그래도 류안계통인데 류화철이 고갈되여간다고 이 밑천을 땅속에 파묻어버려서는 안됩니다.

내가 여기로 오기전에 만덕광산에도 들려보았는데 그곳의 류화철전망도 아주 좋습니다. 선광장복구전투도 힘차게 벌어지고있었습니다. 머지 않아 만덕에서도 류화철이 꽝꽝 나올것입니다.》

김일은 마디마디에 힘을 주며 절절하게 말하였다.

《비료문제를 푸는데서 선차적으로 중요한것이 류안을 해결하는것입니다. 류안은 류화철없이 생각할수 없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먹는 문제를 푸는데서 당면하여 걸리고있는 문제들을 료해하고 대책을 세우시기 위해 흥남비료공장을 찾아보겠다고 하시였습니다. 그러니 하루빨리 이곳 광산의 류화철매장량을 정확히 조사하여 확정하여야 하겠습니다.》

김일이 이렇게 말을 마치고 자리에 앉자 지배인이 비로소 짐작이 간다는듯 특별렬차가 고원역을 지난것이 우연하지 않다고 혼자소리처럼 말하였다.

《가만, 지배인동무, 방금 뭐라고 말했습니까?》

정준택이 다급히 물었다.

《뭘 말입니까?》

정준택이 갑자기 너무나 심각한 표정을 하였기때문에 지배인은 어리벙벙해서 되물었다.

《특별렬차에 대한 이야기...

《특별렬차가 고원역을 통과했다고 합니다.》

《뭐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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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정준택이 자리에서 솟구쳐 일어섰다.

《특별렬차가 고원역을 지났단 말입니까? 언제?》

《사흘전입니다.》

《확실합니까?》

《확실합니다. 우리 운수직장장이 고원역에 볼 일이 있어 갔다가 직접 자기 눈으로 보았다고 합니다.》

《지배인동무, 왜 그 말을 이제야, 이제야 합니까....》

정준택은 두손으로 머리를 싸쥐였다.

《왜 그럽니까. 위원장동지.》

《난 수령님께서 흥남비료공장을 현지지도하시기전에 만덕과 이곳 산곡광산실태를 보고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지배인동무, 난 아직 만덕에도 가보지 못하였습니다.》

《위원장동무, 너무 실망하지 마시오.》 김일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하였다. 《만덕에야 내가 가보지 않았습니까. 우리 함께 수령님을 찾아뵙고 보고드립시다. 지배인동무, 우리 운전사동무들을 찾아주시오.》

《아니, 이 밤중에 떠나렵니까?》

모두들 놀라서 물었다.

《예.》

《길이 험합니다. 채 복구하지 못한 다리들도 있고… 넘어야 할 어은령은 더구나 험합니다.》

《찾아온 길을 되돌아가지 못하겠습니까?》

김일과 정준택을 태운 승용차들이 깊은 밤에 산곡광산을 떠났다.

두사람을 처음으로 만나본 광산지배인은 승용차의 전조등불빛이 산곡의 험한 산발을 누비며 어둠속으로 가물가물 사라질 때까지 오래도록 움직일줄 모르고 한자리에 서있었다. 산촌의 찬바람이 옷깃을 날리던 마가을의 그 밤은 그의 한생에서 잊을수 없는 밤들중의 하나로 기억에 깊이 새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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