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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길 제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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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853회 작성일 20-03-16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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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기가 태여난 조국에서 얼마간이라도 떨어져있다가 다시 그리운 땅을 밟을 때면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것이 새롭게 느껴진다.

지금 국가계획위원회 청사로 밋밋하게 뻗어올라간 언덕길에 서있는 정준택의 심정이 바로 그러하였다. 그러나 그가 눈앞에 펼쳐진 전경을 전혀 새롭게 보게 되는것은 쏘련을 방문하였다가 거의 한달만에 그리운 조국땅을 밟게 된다는 그런 감상적인 느낌에서만 오는것이 아니였다.

그의 눈앞에서는 실지로 놀라운 현실이 펼쳐졌던것이다. 한달전까지만 하여도 국가계획위원회 청사로 올라가는 언덕에는 여기저기 폭탄구뎅이들이 널려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메꿔져 그 흔적조차 찾아볼수 없었다. 게다가 파헤쳐졌던 어수선한 길들은 모두 말끔히 정리되고 어느사이 포장까지 되여있었다.

청사를 바라보니 부서진 창틀과 합판을 댄 창문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파란 뼁끼칠을 한 창틀에 유리를 넣은 창문들이 가을해빛을 받아 번쩍거리였다. 하루가 다르게 변모되는 조국의 모습이 그 창문마다에 어려있는듯 싶었다.

정준택은 그 창문들을 다시한번 바라보고나서 청사현관에 들어섰다.

《수고했습니다.》

《성과를 축하합니다.》

이방 저방에서 사람들이 달려나와 그를 둘러싸고 인사들을 하였다. 그들은 명절을 맞는 사람들처럼 모두 흥분하고있었고 저으기 들뜬 기분들이였다. 그것 역시 정준택을 놀라게 하였다. 청사가 새롭게 복구되였으니 사람들도 노상 그렇게 기뻐하는가?

정준택은 반겨맞는 사람들과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며 층계를 올라갔다. 이전에 찌국거리던 나무계단도 콩크리트계단으로 바뀌여졌다.

《이번에 발표된 콤뮤니케를 보니 힘이 나고 신심이 생깁니다.》

곁에서 걷고있던 한윤호가 정준택에게 말하였다. 이번에 진행된 조쏘 두나라 정부간회담과 관련하여 발표된 공동콤뮤니케를 념두에 두고 하는 말이였다.

정준택은 그를 안경너머로 흘낏 쳐다보았다. 강마른 얼굴에 늘 쌀쌀한 기운을 풍기고있던 한윤호조차 들뜬 기분에 휩싸여있는것이 놀랍기만 하였다.

《그동안 수고가 많았습니다. 청사랑 꾸리느라고...

《뭐 수고랄게 있습니까. 위원장동지방은 3층입니다.》

정준택이 2층으로 발길을 돌리자 한윤호가 알려주었다.

《그렇지요. 허허허...

정준택도 느닷없이 즐거워지는 기분을 느끼며 3층 층계를 올랐다.

그는 새로 꾸린 자기 방에 오래도록 말없이 앉아있었다. 외국방문의 길에 오를 때만 하여도 그는 청사가 이렇게 빨리 복구될줄은 몰랐다. 정준택은 수령님께서 계획일군들은 자기 사업만 하자고 해도 바쁜데 청사복구는 자신께서 맡아서 해줄테니 걱정말라고 하시던 말씀을 가슴뜨겁게 되새기며 복구건설을 다그쳐야 할 절박성을 다시금 심각히 느끼였다.

그는 려장을 풀기 바쁘게 한윤호에게 3개년복구안과 1954년도 계획초안을 가져다달라고 부탁하였다.

이번에 쏘련측과 진행된 회담들은 정준택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쏘련측 계획일군들과의 실무회담을 준비하면서 상대측과 그토록 엄청난 의견상이가 발생하리라고는 전혀 예상 못했었다. 문제는 쏘련당지도부가 교체된데 있었다. 쏘련당지도부의 최고지위에 오른 흐루쑈브는 내놓고 우리 당 경제건설의 기본로선을 시비하였다.

이런 조건에서 쏘련의 설비를 받을것을 예견하고 복구와 신설을 계획한 대상들을 다시 검토해보지 않을수 없었다.

문기척소리와 함께 한윤호가 두툼한 문건철을 들고 들어왔다.

《명년도 중공업부문계획초안과 3개년복구안입니다. 위원장동지가 여러번 본것입니다.》

한윤호가 정준택의 책상우에 계획문건철을 내려놓으며 넌지시 암시했다.

《알고있습니다.》

정준택은 계획문건철을 앞으로 당겨놓고 한장한장 넘기였다. 그러던 그는 이상한 감촉을 느끼고 머리를 들었다. 한윤호는 아직도 긴 허리를 조금 구부릴사 하고 자기앞에 서있었다.

《계획문건은 둬두고 가보십시오.》

정준택이 말하였다. 그런데도 한윤호는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계획에 또 무슨 잘못된것이라도 있습니까?》

한윤호가 떠보는 투로 물었다. 그 계획으로 말하면 그가 정준택이한테서 여러 차례 퇴자를 맞으면서 수정완성한것이였다. 그런데 지금 정준택이 시커먼 굵은 눈섭을 찌프리고 계획초안을 꼼꼼히 훑고있는것을 보면 그 계획에서 또다시 그 어떤 흠집을 잡아내려는것이 분명하였다.

《필요해서 다시 검토해보자고 합니다.》

정준택은 다시 계획문건에 얼굴을 수그리였다. 그런데도 한윤호는 좀처럼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또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정준택이 얼굴을 들고 다시 물었다.

《아니, 그런건 아닙니다. 사실은 한가지 알려드릴것이 있어서… 먼길에 피곤은 하겠지만 오늘 저녁 우리 종업원들앞에서 강연을 하기로 된것 같습니다. 이미 조직사업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정준택이 의아한 눈길로 대방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강연을 하라는것도 이상하지만 당일군도 아닌 행정일군이 그런 소식을 전해주는것이 더구나 이상하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한윤호는 곧잘 그런류의 사업에 끼여들군 하였다. 문건기안을 잘하고 필력이 있으며 로어에 정통하여 쏘련소식에 밝다는것이 아마도 그로 하여금 본의아니게 그런 류의 사업에 자주 발을 잠그게 하는것 같았다.

《오늘 저녁에는 련습삼아 우리 종업원들앞에서 강연을 하고 다음부터는 다른 중앙기관들을 순회하면서 하는것 같습니다.》

《순회하면서까지?》

《예.》

《무슨 내용으로?》

《여기에 제강이 있습니다.》

정준택은 그제야 자기의 책상우에 또 하나의 《문건철》이 놓여있는것을 보았다. 그것은 친절하게도 한윤호자신이 혹심한 근시안인 정준택이 보기 편리하도록 큼직큼직한 글씨로 쓴 제강이였다. 아마도 그래서 그자신이 직접 정준택에게 강연을 해야 한다고 알려주는것 같았다.

정준택은 호기심을 품고 계획문건철이 놓였던 그 자리에 제강을 펼쳐놓고 첫장을 번지였다. 우리 나라 정부대표단의 쏘련방문과 관련한 제강이라는것이 인차 알리였다. 매사에 깐깐한 그는 한윤호더러 맞은편 의자에 앉으라고 손짓하고는 제강의 글줄에 눈길을 박았다. 그러던 정준택은 갑자기 제강에 무슨 의견이라도 있는듯이 양복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였다. 제강의 글줄을 고치려고 만년필을 댔으나 잉크가 내리지 않았다. 잉크가 없는가 하여 만년필에 잉크를 넣으려고 하였으나 만년필고무가 잉크를 빨지 못하였다.

《고무가 삭지 않았습니까?》

옆에서 지켜보던 한윤호가 물었다.

《그런가 봅니다.》

정준택은 할수 없이 잉크를 찍어쓰지 않으면 안되였다.

한윤호는 정준택을 알게 된 그때부터 그 만년필을 보았다. 그것은 투박하고 퇴색하여 볼품이 없는 구식만년필이였다.

《아니, 쏘련에 갔다가 만년필 하나 교체하지 못했습니까?》

한윤호가 푸념조로 물었다.

《아직 쓸만한데 왜 바꾸겠습니까. 삭은 고무만 바꿔끼우면 됩니다.》

한윤호는 어이없어 더 말하지 않았다.

정준택은 다시 제강을 한장한장 넘기며 주의깊이 보았다.

제강에는 이번에 쏘련을 방문한 우리 나라 정부대표단이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두었는가 하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여있었다. 그러나 깊이 따져보면 그것은 쏘련의 원조분으로 우리 나라의 어떤 공장, 기업소들을 복구하게 되였으며 우리한테 얼마나 많은 설비와 자재, 기술도서들을 넘겨주게 되였는가를 장황하게 소개한데 불과하였다. 제강은 마치도 쏘련의 원조가 우리 나라 인민경제를 복구하는데서 당장 천지개벽과도 같은 기적을 가져오기나 할것처럼 작성되여있었다.

정준택은 귀국한지 몇시간밖에 안되는 사이인데도 이와 같은 환상적인 론조를 평양역전광장에서 열린 우리 정부대표단을 환영하는 성대한 군중대회에서도 회담소식을 시민들에게 시급히 알리는《로동신문》호외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느낄수 있었다. 그러자 이 청사에 떠도는 명절같은 기분도 그러한 환상적인 론조로부터 풍기고있다는것을 이제 와서는 조금도 의심할 나위가 없었다.

정준택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고 서류함이 있는데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서류함우에서 쏘련에서부터 가지고온 묵직한 트렁크를 들어서 책상우에 내려놓았다. 트렁크에서는 한윤호에게 오래동안 익숙되여온 이국의 향취가 가볍게 풍기고있었다. 한윤호는 가슴을 들먹이였다.

한윤호는 자못 흥미를 가지고 정준택이 트렁크에서 무엇을 꺼내려나 주시하였다. 혹시 선물 같은것을 가지고오지 않았는가 하고도 생각하였다. 그런데 트렁크뚜껑을 열고 한참이나 부시럭거린 끝에 끄집어낸것은 차곡차곡 접은 한장의 신문이였다.

정준택은 접은 신문을 한윤호앞에 놓더니 쫙 펼치였다.

《이 글을 누가 썼소?》

정준택이 불만어린 어조로 물었다.

《어느 글 말입니까?》

정준택은 대답대신《로동신문》에 실린 한 기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것은 정준택의 이름으로 된 쏘련의 원조는 우리 나라 대규모공업의 기초를 이룬다는 내용의 론설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미 모스크바에 체류하고계실 때 그 글을 보고 정준택에게 정동무가 이런 글을 쓴것이 사실인가고 물으시였다.

《제가 쓴 글은 아닙니다. 그러나 신문사에서 그런 글을 의뢰하여왔기때문에 글의 내용을 대강 짐작은 할수 있습니다.》

《그러리라고 믿었습니다. 이 글을 보니 확실히 우리 일부 일군들속에 쏘련의 원조에 대한 환상이 있다는것이 알립니다. 물론 쏘련의 원조가 일정한 도움으로 되는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우리 인민경제를 복구하는것도 장차 나라의 공업화를 실현하는것도 다 해결해줄것처럼 보는것은 잘못입니다.

주인은 어디까지나 우립니다. 우리가 자신의 문제를 책임지고 자체의 힘으로 해결한다는 립장에 서야 자기앞에 나서는 모든 난관을 이겨내고 승리를 달성할수 있습니다. 또 그래야 쏘련의 원조도 효과적으로 리용할수 있고...

그런데 지금 다른 누구도 아닌 한윤호가 당보의 그 론설과 론조가 꼭같은 강연제강을 들고와서 정준택더러 오늘 저녁중으로 강연을 하게 되였다고 서두르는것이였다.

정준택의 숱많은 시커먼 눈섭이 또다시 몇번 꿈틀거리였다.

《누가 내 이름으로 이런 글을 썼소?》

정준택은 따져물었다.

한윤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누가 썼는가 하는것은 정준택자신이 너무도 잘 안다고 판단했기때문이였다. 그런 류의 글은 한윤호가 맡아놓고 쓴다는것을 국가계획위원회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한윤호의 메마른 얼굴이 푸릿해지고 세모진 작은 눈이 꼿꼿해졌다.

《그 글에 무슨 의견이라도 있습니까?》

마침내 한윤호가 더는 참을수 없다는듯이 송곳끝 같은 가시눈으로 정준택을 쏘아보며 만만찮게 물었다.

《있소. 국장동무가 이 제강을 쓰느라고 수고했다는것은 알만하오. 그러나 어떻게 남의 원조가 우리 나라 대규모공업의 기초로 된단 말이요? 물론 그러한 기초를 다지는데 일정한 도움으로야 되겠지. 그러나 원조가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는것은 아니지 않소. 주인은 어디까지나 우리이고 우리의 힘과 지혜가 모든것을 결정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강연제강에도 의ㅡ 의견이 있다 그 말씀입니까?》

한윤호는 흥분때문에 말까지 더듬었다.

《그렇소. 이건 원칙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 제강을 당중앙위원회에서 이 부문을 맡아보는 부위원장동지가 포치하고 비준했다는것을 고려해주기 바랍니다.》

한윤호는 정준택을 내려다보며 겨우 들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러나 세모진 가는 눈에서 뿜어나오는 독기어린 눈빛과 피기없는 엷은 입가에 떠오른 랭소는 그에게 더 엇서나가다가는 재미없는 후과가 차례지리라는것을 경고해주고있었다.

《사상사업부문을 담당한 박부위원장말입니까?》

정준택이 에돌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직접 까밝혔다.

《예, 박부위원장동지가 직접 가필까지 한 제강입니다. <로동신문>에 나간 론설도 그렇게 씌여진것이고...

정준택은 그 말을 듣고 그닥 놀라지는 않았다. 대체로 짐작하고있던 그대로였다.

《강연은 하겠소. 그러나 회담에 참가도 하지 않은 사람이 쓴 제강이 아니라 회담에 직접 참가한 사람이 보고 듣고 느낀것을 가지고 제말로 강연을 하겠소. 강연을 제말로 실감있게 하라는거야 당의 요구가 아니요.》

정준택은 단호히 언명했다.

자기 방으로 돌아온 한윤호는 담배를 련속 석대나 피워물었다. 목이 칼칼하였다. 근래에 건강이 좋지 못하여 섭생을 극력 주의하는 그에게서 이런 무질서한 흡연은 처음이였다.

그는 속이 부글부글 괴여올랐다. 박부위원장의 지시라고 하여 어쩔수 없이 달라붙어 완성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론설이고 제강이긴 하였지만 어쨌든 거기에는 정준택을 대신하여 며칠밤을 지새였던 한윤호의 수고가 깃들어있는것만은 사실이였다. 그런데 정준택은 특별렬차를 타고 외국려행에 떠났다가 돌아와서는 겨우 수고했다는 빈 말한마디하고는 당치 않게 까박부터 붙이는것이였다.

한윤호는 그런줄도 모르고 그에게서 무슨 선물이나 있겠는가 하고 한순간이나마 기대를 가졌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통절히 느꼈다. 하긴 고무가 삭아 떨어진 낡은 만년필을 여러 해를 두고 쓰면서도 새 만년필 하나 살줄 모르는 고박하기 이를데 없는 그에게서 무슨 선물을 바랄수 있겠는가.

한윤호는 생트집을 잡는 정준택에게 단호히 맞설대신 자기의 직분과는 관계도 없는 강연에 출연해줄것을 애걸하다싶이 하면서 빈충맞게 멍청하니 그앞에 서있은것을 생각하면 분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마침내 피우던 담배를 재털이에 던지고 송수화기를 집어들었다.

그는 최일만을 찾았다.

《한가지 말씀드릴것이 있습니다.》

한윤호는 송수화기를 입가까이에 가져다대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무시기오?》

최일만의 거센 함경도억양이 한윤호의 귀청을 때렸다.

《정준택위원장이 당보에 자기 이름으로 나간 론설에 상당한 의견을 가지고있습니다.》

《무슨 론설말이요?》

최일만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였다.

《쏘련의 원조를 찬양한 글이 있지 않습니까 박부위원장이 포치하고 비준한 글말입니다.》

《무슨 의견이요?》

최일만의 떡떡거리는 거치른 목소리가 수화구의 진동판을 울리였다.

《남의 원조에 지나친 환상을 가지지 말라는겁니다.》

《남의 원조?》

《예.》

《쏘련이 어째서 남인가?》

《글쎄말입니다.》

《박부위원장한테 알렸소?》

《알리지 못했습니다.》

《반쏘분자들의 언동에 경각성을 높여야지.》

최일만은 이렇게 내뱉고 송수화기를 홱 집어던진듯 수화구에서는 징하는 전류흐르는 소리만 들리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담배연기를 푸실푸실 날리는 한윤호의 엷은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떠올랐다.

《반쏘분자》의 감투를 쓰면 그 운명이 어떻게 되리라는것이 뻔하였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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