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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길 제4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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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451회 작성일 20-04-11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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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무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깃들었다. 만수대언덕으로 높이 떠오른 아침해가 금빛해살을 티한점 없는 창가에 아낌없이 뿌려주고있었다. 8월의 따가운 해빛은 창턱을 지지고 쏘파를 후끈하게 덥히며 수령님께서 마주앉으신 책상우로 다가들고있었다.

하지만 김일성동지께서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시였다. 마치도 무거운 정적이 깃든 집무실에서는 시간의 흐름조차 정지된듯 싶었다. 그이께서는 책상우에 가져다놓으신 편지와 손수건에 싼것만을 묵묵히 바라보시였다.

《사람은 오지 않고 이렇게 편지와 비료만 오다니…》

그이께서는 벌써 몇번이나 이 말씀을 반복하여 외우시였다. 김일은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그 모든 책임이 자기에게 있는것처럼 가슴이 마구 저려들었다.

그이께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는 편지와 손수건에 싼 류안비료는 흥남비료공장의 복구현장에서 순직한 백홍건이 그이께 올린것이였다. 그이께서는 아직도 백홍건의 따스한 온기가 그대로 스며있는것 같은 손수건을 한겹한겹 정히 펼치시였다. 그러자 백설같은 류안비료알갱이가 그이의 눈을 아프게 찔렀다. 그이께서는 순간도 무심히 볼수 없는 티없이 정갈해보이는 그 희디흰것을 한손에 움켜쥐시였다. 산뜻하면서도 부드럽고 매끈매끈한 그 촉감.

(과연 이 비료를 얻기 위해 그처럼 비싼 대가를 치뤄야 했단 말인가?)

그이께서는 억이 막히시였다. 높이 쳐든 손가락짬으로 비료알갱이들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인차 흥남비료공장의 아찔하게 높이 자리잡은 옥상콘베아에서 쏟아지는 류안비료의 거세찬 폭포로 바뀌여졌다.

《정말 아까운 동무를 잃었습니다.》 김일이 비감에 잠겨 입을 열었다. 《백홍건동무가 없었더라면 류안비료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최신기술도 그처럼 짧은 기간에 원만히 도입할수 없었을것입니다.》

《아직 우리 나라에서는 그만한 화학전문가를 찾아볼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운 직무를 줄 때에도 그에게 화학부문을 비롯한 중공업부문의 계획사업을 보도록 했는데…》

《사실 그 동무의 역할이 컸습니다. 전처리탑에서는 물론 류안비료생산의 모든 공정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문제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김일은 담담한 목소리로 그이께 백홍건이 어떻게 순직하였는가 하는것을 말씀드렸다.

《백홍건동무의 뛰여난 재능과 투지에 대해서는 흥남의 로동계급뿐아니라 그곳에 와있는 다른 나라 기술자들도 모두 탄복하였습니다.》

일군들, 특히 높은 직책에 있는 간부들에 대한 평가에서는 누구보다 린색한 김일이였지만 백홍건에 대해서만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것은 고인에 대해서는 흔히 좋은것만 상기하고 말하게 되는 단순한 의리감때문만이 아니였다. 그는 진심으로 백홍건의 인간됨됨에 감복하고있었던것이다.

《그러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원래 그 동무는 그런 일군이였습니다. 나는 벌써 적들의 폭격속에서 아무것도 없는 강남땅에 큰 벽돌공장을 일떠세우는것을 보고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동무는 자기의 건강에 대해서만은 언제나 무관심했거든. 너무도 무관심했지.》

그이의 목소리는 낮으면서도 더없이 안타깝게 울리였다.

열손가락이 하나같지 않듯이 자식이 열이라도 생김생김이나 성격, 취미도 하나 같을수 없다. 그이의 슬하에 있는 전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가지고있는 서로 다른 우단점으로 하여 그이께서는 기쁘실 때도 있고 속썩이실 때도 있었다.

그이께서는 백홍건이로 하여 늘 속을 태우신것은 도무지 자기의 몸이란 돌보려 하지 않고 일 하나밖에 모르는 그것이였다. 올해 상반년인민경제계획수행정형을 총화하는 회의가 있은 직후 백홍건이 흥남비료공장복구를 다그치기 위해 자진하여 현장으로 내려갔을 때도 그이께서는 그의 건강을 두고 몹시 걱정하시였다. 그간 치료와 휴식을 배합하여 고질적으로 남아있던 중독성간염과 신경쇠약은 완치되였었다. 의료진도 그것을 확언하였다.

《그렇다고 안심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 동무는 일밖에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 동무의 건강을 책임지고 잘 돌봐주어야 합니다.》

그이께서 의료일군들에게 간곡히 당부하신 말씀이였다.

그이께서 백홍건의 신상에 심상치 않은 병조가 나타나지 않았는가 의심하기 시작하신것은 그의 안해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부터였다.

리옥순은 그때 그이께 남편이 며칠전에 피뜩 집에 들렸다가 다시 흥남으로 내려갔는데 몹시 수척했다고 전화로 말씀드리면서 자주 가슴을 그러쥐군 하는것이 이상하더라고 혼자서 은근히 근심하던것까지 죄다 실토하였다. 원래 락천적이고 쾌활한데다가 건강하고 뼈대가 굵어서 어지간해서는 그가 앓고있다는것을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직 안해만이 그것을 알아차리군 하였다.

그때도 안해만이 남편의 신상이 정상이 아니라는것을 눈치채고 그이께 암시하여드렸던것이다.

《심장이 나쁘지 않습니까?》

그이께서 리옥순이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다가 물으시였다.

《지금까지는 그런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마음을 놓지 못하시고 해당 부문 일군들에게 백홍건동무를 빨리 소환하여 종합검진을 받도록 하라고 이르시였다. 그런데 며칠후 그들로부터 보고가 제기된것은 백홍건이 하루이틀만 있으면 류안비료생산계통복구가 끝나겠는데 며칠만 참아달라고 애원하다싶이 사정하기때문에 할수 없이 며칠 더 기다리기로 했다는것이였다.

(아, 이럴줄 알았더라면 내가 직접 전화를 해서 그를 소환하는건데…)

그이께서는 그때 백홍건을 당장 소환하지 못한것이 못내 후회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의 앞에 놓인 몇줄밖에 안되는 그 편지를 다시 보시였다. 보고 또 보아 이제는 환히 외울수도 있었지만 그이께서는 사랑하는 전사가 남긴 마지막글줄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수령님, 저는 청맹과니였습니다. 옳고그름을 그렇게도 분간을 못하는 제가 어찌… 아, 수령님,수령님께 복구건설을 다 맡기고 저는 먼저 갑… 갑니…다.》

마지막글줄은 획이 바르지도 못하고 말마디들이 토막토막 끊어지고있었다. 최후의 모든 정신력과 의지력을 다 모아쓴 글이라는것이 알렸다.

《홍건이, 동문 어디 가고 이… 이 편지만 왔는가.…》

그이께서는 너무도 억이 막혀 흐려드는 시선을 멀리 창밖으로 보내고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시였다.

《수령님, 어찌겠습니까? 심장병으로 그렇게 되였다고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과로때문이였습니다. 너무 무리하게 일하였기때문이였습니다. 심지어 탕크속에 들어가 방독면까지 쓰고 일하였다고 합니다.》

김일이 안타까이 말씀드렸다.

《전쟁시기라면 그래도 참을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전쟁시기도 아닌 평화시기에… 정말 분합니다. 행복한 삶을 한창 꾸려가는 평화시기에 그를 잃다니, 정말 가슴아픕니다.…》

그이께서는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시였다.

이때 서기실에는 내각상무성원들이 다 모여있었다. 오전 9시부터 그이의 방에서 내각상무회의가 열리게 되였던것이다.

서기는 벌써 두번씩이나 그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언제나 침착하고 사려깊은 서기는 그이께 회의시작시간이 다 되였다는것을 알려드리고싶었으나 매번 한마디 말씀도 드리지 못하고 문곁에 한동안 서있다가는 돌아나오군 하였다.

그이께서는 여느때 같으면 서기에게 무슨 일인가고 물으시였겠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데 주의를 돌리지 못하시였다.

내각상무성원들도 모두 비통한 표정을 하고 서로 말을 주고받는 일도 없이 묵묵히 벽가에 놓인 의자들에 앉아있었다. 백홍건이 흥남에서 순직하였다는 소식은 이미 그들에게도 전해졌던것이다.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갔다. 벽시계를 흘낏 쳐다본 서기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그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회의시작시간이 한시간이나 지나갔습니다.》

마침내 용단을 내린 서기가 그이께 말씀올리였다. 그이께서는 서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리해가 되지 않는것처럼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하시였다.

순간 서기는 그이의 안광을 띠여보고 망설이다가 쥐여짜듯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수령님.》 서기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려나왔다. 《회의시작시간이 한시간이상이나 지났습니다.》

이번에도 그이께서는 아무런 응대도 하지 않고 서기를 처음 보는것처럼 한동안 그를 쳐다보다가 다시 책상우의 편지에 눈길을 떨구시는것이였다.

《령구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윽고 그이께서 김일에게 물으시였다.

《지금쯤은 흥남에서 평양으로 올라왔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백홍건동무의 령구를 평양시당회의실에 안치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다시 서기를 쳐다보시였다. 《가족들에게 이 비통한 소식을 알려주었습니까?》

《아직은…》

그이께서는 아무 말씀없이 생각에 잠기시였다.

백홍건의 안해 리옥순을 생각하신것이였다.

약골인 15살의 어린 남편을 맞아 이날 이때까지 갖은 고생을 다 해온 안해였다. 남편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것은 그의 타고난 천품과도 같은것이였다. 아무리 힘이 들고 고되여도 남편이 건강하고 남편의 일이 잘만 되면 다라고 생각해온 녀성이였다. 그에게는 그밖에 다른것이란 있을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기 희생의 모든 보람으로 되고있던 바로 그 남편, 그의 생활의 전체를 이루고있던 그 남편을 잃은것이였다.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에 앞서 보낸것이였다.

《수령님, 어쩌겠습니까. 일이 이렇게 된것을…》

김일이 다시 그이를 위로하여드리였다. 그래도 그이께서는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시였다.

《오늘 오전에 하기로 한 내각상무회의는 오후로 미룹시다.》 이윽고 그이께서 나직이 말씀하시였다.《내각상무성원들은 모두 백홍건동무의 령구를 찾아가 조의를 표시하고 가족들도 위로해주어야 하겠습니다.》

그이께서 말씀이 있은 후에도 서기는 인차 물러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이께서 의아해하는 눈길을 보내시자 서기는 다시 말씀을 올리였다.

《오후에는 8.15 10돐을 맞으며 축하방문을 오게 될 우리 나라 주재 각국 외교대표들을 접견하게 되여있습니다. 》

《다 뒤로 미루어야 하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8.15 10돐행사준비때문에 아무리 바빠도 자신께서 직접 백홍건동무네 가정을 찾아가 유가족들을 만나보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서기와 김일이까지 물러가자 사랑하는 전사를 잃은 상실의 아픔은 갑절이나 아프게 그이의 심신을 휘감았다. 호젓한 빈방에 그이께서 무겁게 옮겨놓으시는 발자국만이 가득 찼다. 비감에 잠겨 한발자국 두발자국 옮겨놓으시다가는 집무탁앞에서 걸음을 멈추군 하시였다.

《저는 청맹과니였습니다. 옳고그름을 그렇게도 분간 못하는 제가 어찌…》

마지막 유서의 글발이 그이의 심금을 다시 울리였다. 그것은 한순간의 실책을 한생의 심각한 교훈으로, 자책으로 하소하는 전사의 간절한 심장의 토로였다.

《수령님, 제가 보고를 잘못 제기한것 같습니다. 흥남비료공장전처리탑설치문제를 시비한것은 옳지 않았습니다.》

문득 올해 상반년인민경제계획수행정형을 총화하던 그 회의에서 심각한 자책에 휩싸여 자신을 비판하던 백홍건의 그 목소리가 그이의 뇌리를 쳤다.

강선제강소에서 압연강제생산계획을 미달하고 흥남비료공장 복구공사가 지연되는것을 문제시하면서 리웅천이와 정준택에게 비판의 화살을 집중하던 최일만의 조폭한 언행이 다시금 상기되시였다.

어찌하여 나라의 복구건설에 자기들의 모든 지혜와 정력을 다 쏟아부으며 귀중한 생명까지 서슴없이 바치는 백홍건 그리고 리웅천이나 정준택이와 같은 사람들이 마음고생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무엇때문에 그들을 괴롭히고 그들의 사기를 저락시키며 나아가서는 그들을 정치적으로 매장시키지 못하여 그처럼 안달아하는가?

김일성동지께서는 최일만과 리웅천, 정준택사이에 심각한 의견충돌이 있었던 그날 강선제강소에 직접 나가시여 그곳 로동계급과 담화도 하고 현장실정도 구체적으로 료해하면서 모든것을 해명해보자고 약속하신것을 회상하시였다.

그이께서 옮겨놓으시는 발자국소리는 빈방에서 오래도록 멎을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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