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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번영의 길 제4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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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260회 작성일 20-04-09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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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행렬차가 들어서자 함흥역구내는 렬차에서 내린 사람들로 잠간사이에 장사진을 이루었다.

홈스빵으로 지은 캡을 눈덕까지 눌러쓰고 작업복차림에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백홍건은 붐비는 사람들속에 끼여 역홈을 빠져나왔다. 함흥도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시기 페허가 되였는데 1년 남짓한 사이에 다층주택들이 적지 않게 일떠서고있었다.

백홍건은 흥남비료공장쪽으로 가는 뻐스나 다른 차편이 있지 않을가 하여 두루 살피는데 누구인가 그를 찾았다.

《아니 지배인동무가 아닙니까?》

백홍건이 흥남비료공장 지배인이 갑자기 나타난데 몹시 놀랐다.

《옷차림을 그렇게 하니 어디 찾겠습니까? 하마트면 놓칠번 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내가 급행차로 온다는것은 어떻게 알고…》

《가보면 다 알게 됩니다. 정준택상동지도 기다리고있습니다. 자, 빨리 차에 오르십시오.》

승용차는 흥남비료공장 정문을 지나 정준택이 림시 일을 보고있는 현장사무실로 직행하였다. 정준택은 사무실앞에까지 나와서 기다리고있었다.

《왜들 이럽니까? 내가 무슨 큰 존재라고 이렇게까지…》

백홍건은 송구하여 몸돌바를 몰라하였다. 사실 그는 자기 당조직에만 보고하고는 아무도 모르게 흥남비료공장에 내려와 류안계통복구사업에 적은 힘이나마 기여하려고 하였다. 그것으로 지난 상반년 인민경제수행정형을 총화하는 회의에서 정준택과 리웅천을 집중비판하는데 동조하고 지어 최일만의 하수인노릇까지 한 과오를 씻으려고 하였다.

그는 이번 걸음이 이전에 화학건재공업상으로 흥남비료공장복구사업을 지도하기 위해 내려오던 걸음과는 전혀 다르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로동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씻기로 결심한 그는 육체로동에 필요한 작업복이며 로동화며 장갑 같은것만 배낭에 가득 넣어가지고 함흥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자기를 귀빈처럼 맞아주니 백홍건으로서는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자자, 서있지 말고 들어갑시다. 들어가서 이야기합시다.》

정준택은 백홍건을 앞세우고 무너져내린 벽체에 의지하여 대충 스레트지붕만 씌운 사무실로 들어갔다. 현장사무실이 대개 그러하듯 정준택이 일을 본다는 사무실도 책상 하나와 나무의자 몇개만 놓여있을뿐이였다.

《부위원장동무, 수령님께서 부위원장동무가 흥남으로 내려갔다는것을 아시고 몹시 걱정하시였습니다.》

세사람이 책상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자 정준택이 입을 열었다.

《수령님께서 말입니까?》

백홍건이 놀라운 눈길로 정준택을 지켜보았다.

《그렇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백홍건동무가 건강을 회복하고 새 직무에 착수하기 바쁘게 흥남으로 내려가 복구전투에 한몸을 바치겠다고 말했다는데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걱정하시였습니다. 사실은 백동무를 더 쉬우자고 하였는데 그 동무가 너무도 제기해서 할수 없이 새 직무를 주었다고 하시며 건강을 회복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완전치는 않다, 그러니 그 동무의 사업과 생활을 곁에서 잘 돌봐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백동무는 일밖에 모른다고 하시면서 자기 건강에 대해서는 너무도 무관심하다고, 그러니 그를 대신해서 우리가 돌봐주어야지 누가 돌봐주겠는가고 간곡히 당부하시였습니다.》

《수령님!…》

백홍건의 어글어글한 커다란 눈에 눈물이 고였다.

세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앉아있었다. 북받치는 감격과 흥분을 무슨 말로 표현하였으면 좋을지 몰랐다.

《자, 합숙으로 갑시다. 숙소부터 정해야지요. 배낭은 인주시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선 지배인이 백홍건을 재촉했다.

《숙소는 걱정안해도 됩니다. 여기 실정은 내가 잘 아니 그 문제는 본인한테 맡겨주시오.》

백홍건이 진심으로 사양했다.

《그러지 말고 나하고 갑시다. 식당까지 있는 합숙방 하나를 따로 냈으니 그리 불편하지는 않을것입니다.》

《식당까지 있는 방을?》

《예, 귀빈실로 따로 꾸린겁니다. 조용하고 목욕도 할수 있어 좋습니다.》

《허허허.》

백홍건은 방안이 들썩하게 웃었다. 지배인은 그 웃음이 기뻐서 웃는 웃음인지 아니면 그 반대의미로 웃는 웃음인지 가늠이 가지 않아서 백홍건의 얼굴만 뻔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광복직후부터 백홍건을 잘 알고있는 정준택은 지배인의 말이 백홍건에게 불쾌감만 자아내고있다는것을 인차 알아차렸다.

《부위원장동무는 오늘부터 나와 함께 침식을 합시다, 좋지요? 한때 내가 의학공부에도 뜻은 둔 일이 있었다는것을 참고해주시오. 그러니 백동무의 간호부역할도 하겠는지 알겠습니까?》

정준택이 웃으며 권하였다.

《나에게는 간호부도 식당도 필요없습니다. 난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니 혼자있게 해주시오.… 그리구 한가지 비밀을 터놓자고 하는데》 백홍건이 능청스레 목소리를 낮추었다. 《나한테도 남몰래 출입하는 단골이 있다는걸 고려해주시오. 달콤한 단골… 하하하.》

백홍건이 또다시 온몸을 흔들며 청높이 웃었다. 정준택도 지배인도 백홍건의 익살에 덩달아 웃지 않을수 없었다.

백홍건은 숙소를 정하기에 앞서 현장부터 돌아보겠다고 하였다. 정준택과 지배인이 따라나서려 하자 그는 이번에도 손을 내저었다.

《여기 실정은 내가 잘 안다고 하지 않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화학공업에 들어서서야 상이나 지배인보다 내가 더 낫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백홍건이 우정 뽐내는 어조로 말하자 정준택과 지배인은 웃을수밖에 없었다.

백홍건은 그날부터 정준택이나 지배인앞에 더는 나타나지 않았다. 침식을 어디서 하며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사실 백홍건은 일정한 장소에서 침식을 하지 않았다. 그는 로동자들과 함께 밤늦게까지 일하다가는 현장 콩크리트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눕기도 하고 현장휴계실의 나무의자우에서 자기도 하였다. 그는 전처리탑설치와 관련한 새 기술과 발기를 료해하기 위한 사업부터 착수하였다. 정준택이 지금까지 완성하지 못하고있는 그 일을 마무리 지어주는것은 자기의 응당한 본분이고 또 자기의 과오를 씻는 길이라고도 생각하였던것이다.

백홍건은 전처리탑건설이 완공단계에 이르자 속도와 질을 높이는데 모든 지혜와 정력을 바치였다. 그는 매 공정들을 두번 세번 검토하였고 그런 후에야 다음공정을 완성하는데로 넘어갔다. 이런 면에서 오랜 화학기술자로서의 백홍건의 경험과 기술, 높은 책임성과 성실성을 따를만 한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현장로동자들과 기술자들의 사랑과 존경도 받았다.

어느날 정준택은 현장을 돌다가 야외에서 로동자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백홍건을 보았다. 그는 로동자들과 사소한 간격도 두지 않고 천성그대로의 롱담과 익살로 사람들을 웃기며 즐겁게 식사를 하고있었다. 더구나 정준택으로서 놀라지 않을수 없는것은 야외식탁 복판에 싱싱한 부루, 쑥갓이 무둑이 쌓여있고 어느사이 풋강냉이까지 나타난것이였다.

백홍건은 로동자들과 함께 된장을 찍어내면서 연방 볼이 미여지게 부루쌈을 입안에 밀어넣느라 정준택이 묻는 말에 답변조차 제대로 못하였다.

《허허, 풋강냉이가 벌써 나왔는가?》

정준택은 입맛을 다시였다.

《상동지, 앉으십시오.》

《앉으십시오.》

로동자들이 저마다 자리를 내주며 정준택이더러 같이 식사를 하자고 권고하였다.

《이건 보옥아주머니가 터밭에서 가꾼건데 오늘 한턱 내는거지. 오늘이 뭐 결혼 2돐 기념일이라나. 결혼식기념일에 한턱 내야 떡돌 같은 아들애를 본다누만…》

《거짓말, 거짓말이예요.》

보옥아주머니로 불리운 빨간 머리수건을 쓴 젊은 녀성이 발딱 일어서더니 두손으로 백홍건의 잔등을 북치듯 하였다. 그바람에 식탁둘레에서는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다.

정준택은 좌석의 분위기를 흐려놓고싶지 않아 인차 자리를 떴다. 백홍건이 그의 뒤를 따라나왔다. 그 얼굴에서는 아직도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고있었다.

《식사를 마저 하지 왜 일어섰습니까?》

정준택이 미안해하는 어조로 말하였다.

《식사는 다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할 말이 있어 찾아온것 같은데…》

《얼굴이 축갔습니다. 그동안 관심을 돌리지 못했는데 건강을 돌보아야 하겠습니다.》

《아니, 방금 보고도 그럽니까. 모두들 색다른 음식만 생기면 이 백아바이한테 들고온답니다. 허허허.》

《백아바이라, 하긴 여기 사람들은 나이가 많아서만 아바이로 부르는건 아니지. 백동무, 수령님께서 백동무 건강때문에 늘 마음쓰시는것을 생각해서라도 건강에 주의하시오! 부탁입니다.》

정준택은 절절하게 말하였다.

《명심하겠습니다.》

《불원간 김일동지가 공장조업식에 내려온다는데 또 무슨 일이 생길가봐 걱정스럽습니다.》

정준택이 자기의 오랜 동료앞에서 불안한 심정을 터놓았다.

《너무 걱정마시오. 내가 힘자라는껏 시운전단계랑 책임적으로 보겠습니다.》

《그렇게 해주면 고맙긴 하겠는데, 사실 한다 하는 쏘련기술자들도 백동무에 대해서는 다 감탄합니다. 즈비그녜브, 그 젊은 쏘련기술자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복구사업을 성심성의 도와주고있는데 얼마전에도 내앞에서 <따와리시 백>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펴보이더군요. 백동무가 기술에서나 품성에서나 다 1등이란 소리겠지요.》

《우리 동무들이 하도 일을 잘하니까 그렇게 말하겠지요.》

《다시 말하지만 건강에 주의하십시오.》

정준택은 거듭 당부하고 백홍건과 헤여졌다.

백홍건은 자기의 책임이 얼마나 무거워졌는가를 그 어느때보다 심각히 느꼈다.

이전에 화학건재공업상을 할 때에는 사업범위도 넓었고 책임져야 할것도 많았지만 류안비료생산문제 하나를 맡아가지고 현장에 내려온 지금에 와서는 자기의 책임을 그 누구에게도 떠넘길수 없다는것을 백홍건은 절감하였다.

류안계통조업식날자가 8월 11일로 결정되고 부문별, 공정별 시운전이 시작되자 백홍건은 련일 철야전투를 벌리였다. 그는 현장기술자들과 함께 시운전과정을 감시검토하고 해당한 분석실험들을 진행하였다. 그 과정에 류안비료의 질과 생산성을 떨구는 요소들은 수소와 질소의 혼합가스속에 섞인 0.5%의 산소밖에도 또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물론 그것은 0.5%의 그 수자보다 훨씬 미미한것이였다. 하지만 백홍건은 그 미미한 수자도 일단 발견된이상 그대로 둘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마지막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한 탐구의 나날이 흘렀다. 로동안전원들이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 탕크와 합성탑속으로 누구도 모르게 방독면을 쓰고 들어가기도 여러 차례였다. 그런 때면 이상하게도 이따금 심장이 쿡쿡 쑤시는듯 한 불쾌한 감을 느끼군 하였다. 그러나 그는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전에도 신경통이 도져 그런 느낌을 종종 받군 하였는데 그러다가도 언제 그런 아픔이 있었던가싶게 씻은듯이 가셔지군 하였다. 이번에도 그렇겠거니만 생각하고 백홍건은 아무런 불안도 없이 오직 일 하나에만 열중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정준택이 갑자기 백홍건을 사무실로 불렀다. 그것은 전례없는 일이였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반드시 현장에 내려와서 백홍건을 만나군 하던 정준택이였다.

《거기 앉으십시오.》

백홍건을 대하는 정준택의 태도도 전에 없이 딱딱한듯 싶었다.

《허허, 왜 이럽니까. 갑자기 처음 보는 사람처럼…》

백홍건이 싱글싱글 웃으며 어색한 분위기를 녹여보려고 자기 말에 롱담까지 섞었으나 그것은 허사였다.

정준택은 조금도 곁을 주지 않고 책상우에 펴놓은 16절지에 무슨 글인가 쓰고있었다.

백홍건은 일이 심상치 않게 번져간다는것을 느끼고 저으기 긴장해졌다.

정준택은 머리를 들고 백홍건을 낯선 사람을 보듯이 유심히 뜯어보았다.

《탕크속에 들어갔다지요?》

정준택이 불쑥 물었다.

《무슨 탕크말입니까?》

《유해가스가 있는 탕크속에 말입니다.》

정준택은 벌써 모든 사실을 다 알고있는것이 분명하였다.

《원 무슨 그런 당치 않은 말씀을, 아무렴 화학기술자가 유해가스가 있는걸 알고 그속에 들어가겠습니까? 그것은 텅빈 탕크였습니다.》

《텅빈 탕크라, 그래서 방독면을 썼습니까? 우린 이 문제를 놓고 신중히 토론하였습니다. 부위원장동무가 계속 자기 몸을 혹사하는 이상 우린 보고만 있을수 없습니다. 수령님께 사실그대로를 보고드리겠으니 결론이 떨어질 때까지 현장에서 손을 떼야 하겠습니다.》

정준택은 단호한 어조로 말하였다. 백홍건은 정준택과 상종해오면서 어떤 경우에도 흥분하지 않고 차분한 어조로 말하군 하는 그가 이렇게 엄하게 나올줄은 몰랐다.

《이런 변이라구야. 상동지답지 않게 문제를 그렇게 극단으로 끌고가면 어쩐다?》

백홍건은 사태가 엄중해지는것을 막아보려고 능청스레 익살을 부리였다. 그러나 그것이 정준택에게 통할리 만무였다.

정준택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책상우에 있던 16절지를 백홍건의 눈앞에 내흔들었다.

《여기에 다 적었습니다. 당에서 보면 과연 누가 극단으로 끌고나가는가가 명백해질겁니다.》

정준택은 상대방이 더 흥정을 붙이지 못하도록 엄격한 목소리로 오금을 박았다. 하지만 백홍건은 물러설수 없었다. 류안비료생산계통조업을 며칠 앞두고 현장을 떠나다니? 백홍건은 벌떡 일어나 정준택의 두손을 덥석 그러잡았다.

《상동지, 좀 리해해주시오.》

《안됩니다.》

정준택은 잘라매듯 말하고 이야기가 끝났다는것을 암시하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정동무, 왜 이렇게 내 심정을 몰라주오. 우리가 서로 알고지낸것이 한두해요? 응?》

백홍건이 사업상 관계를 뛰여넘어 인간적으로 호소하자 정준택은 한순간 얼떠름해졌다. 일제때 공부를 한 우리 나라의 몇명 안되는 기술자들로서 두사람은 오래전부터 서로 너무도 잘 알고지내는 사이였지만 이런 식으로 말이 오고간적은 한번도 없었다.

《정동무, 난 수령님품속에서 두번다시 태여난 사람이요. 이거야 정동무도 잘 알지 않소. 일제때 페를 상해서 다 죽게 된 이몸을 수령님께서 건져주시였소. 그리고 나라의 중책을 맡겨주시였고, 이날 이때까지 믿음과 사랑만 받으면서 살아왔소. 그런데… 그런데…》

불시에 백홍건은 목이 꺽 메여 말을 잇지 못했다. 정준택 역시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머리를 떨군채 묵묵히 서있었다.

《그런데 나는 과오를 범했소. 수령님의 신임을 저버렸소. 난 이번에 흥남에 내려와 전처리탑에 대한 문제들을 료해하면서 내가 얼마나 엄중한 과오를 범하였는가를 뼈저리게 느꼈소.》

《뭘 그러오. 지나간 일을 가지고…》

정준택이 백홍건의 흥분을 가라앉히려는듯 나직이 말하였다.

《아니 아니, 그렇지 않소. 나때문에 지금도 류안비료계통조업이 늦어지고있지 않소. 이걸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소.…》

《자신을 너무 가혹하게 채찍질 하는구만. 백동무, 진정하오.》

《정동무가 나에게서 과오를 씻을수 있는 마지막기회조차 빼앗으려고 하는데 내 어찌 진정할수 있겠소. 응?》

《원 참 사람두…》

정준택이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리더니 도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날 좀 리해해주오. 내가 여기서 철수하면 나는 죽소.》

백홍건은 애원에 가까운 어조로 말하였다.

《할수 없군.… 그러나 조업식이 끝나면 백동문 무조건 병원으로 가야겠소.》

정준택은 양보하는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간을 제한한 그 조건부가 백홍건의 일욕심을 몇갑절 부채질할줄은 몰랐다.

백홍건은 조업날자 며칠을 앞두고 그야말로 긴장한 최후돌격전을 벌리였다.

백홍건에게 또다시 평양에 급히 올라와서 종합검진을 받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이때도 백홍건은 며칠만 참아달라고, 조업식만 끝나면 그 길로 평양으로 올라가겠다고 사정하였다. 처음에는 그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으나 백홍건이 너무도 간절히 조르는바람에 우에서도 어쩌는수가 없었다.

공사기일이 촉박해지면서 백홍건의 마음도 더욱 초조해져갔다. 그날도 그는 방독면을 쓰고 탕크속으로 들어갔다. 마지막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한 결정적인 수치를 장악하게 된 그날 백홍건은 너무도 오랜 시간 탕크속에서 지체하였다. 밖에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사람들은 두주먹에 피멍이 들도록 안타깝게 탕크를 두드리였다.

《백동지! 백동지!》

그래도 대답은 없었다. 대답을 할수가 없었다. 방독면을 벗고 대답할 여유가 없었던것이다.

시간이 퍼그나 흘러서야 탕크속에서 기여나온 백홍건에게서 방독면을 벗겼을 때 이미 그의 얼굴에서는 피기라고는 찾아볼수 조차 없었다.

《여기에… 여기에 수치가 있소.》

백홍건은 가까스로 이 말 한마디를 남기고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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