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번영의 길 제3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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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웃방 책상우에 놓인 전화기가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전화종소리가 어찌나 높았던지 잠들었던 막내딸 숙영이가 와뜰 놀라며 손을 허우적거렸다.
김정원은 가슴이 후두두 떨리였다. 벌써 세번째로 울려오는 전화다. 간밤에도 저렇게 잠자는 아이들의 단잠을 깨우며 전화종소리는 요란하게 울리였다. 원래 웃방에 놓인 그 전화는 쓰는 사람도 없었고 별반 걸려오지도 않았었다. 남편인 정준택이 출장을 가있으면 더구나 그러하였다. 그런데 남편이 두달째 흥남에 내려가있는데 전화는 이상하게도 하루밤사이에 세번째로 걸려오는것이다.
《따르릉!》
전화는 또다시 다급히 울리였다. 뜻밖의 불행이 세차게 문을 두드리는듯 김정원은 불안이 한가득 실린 눈으로 웃방을 올려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상동지 도착했습니까?》
매번 꼭같이 반복되는 전화기의 신경질적인 목소리는 아무런 좋은것도 약속해주지 않았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김정원은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다잡으며 대답하였다. 저쪽에서는 더는 가타부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김정원은 한동안 두손으로 송수화기를 붙안고있다가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무엇때문일가? 혹시 애아버지가 그 어떤 잘못을 저지른것이나 아닐가?)
어린것이 깨여날세라 가슴을 다독여주는 김정원의 머리속에서는 이런 불안이 순시도 떨어질줄 몰랐다.
김정원이 걱정하며 앉아있는데 밥타는 냄새가 풍겨왔다. 그는 허겁지겁 부엌으로 내려가 밥가마를 들어내고 국가마를 올려놓았다. 탄불이 좋아서인지 구수한 토장국은 인차 끓기 시작하였다.
그는 가마뚜껑을 열고 간을 맞추기 시작하였다. 음식타발을 전혀 모르는 남편이였지만 음식이 짠것만은 질색하였다. 그래서 그는 음식의 간을 맞추는데 여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김정원은 이즈음 남편의 일이 잘되지 않는것 같아 남몰래 불안에 잠겨있었다. 그것은 남편이 국가계획위원회위원장을 하다가 화학건재공업상으로 옮겨앉은 다음부터 그의 머리속에 스며들기 시작한것이다. 사택마을의 몇몇 아낙네들은 남편이 일을 제끼지 못하여 국가계획위원회에서 밀려나지 않으면 안되였다고 수군거리였다.
《여보, 당신 무슨 일인가 잘못하지 않았어요?》
언젠가 김정원은 남편에게 조용히 이렇게 물었다.
《갑자기 그건 무슨 소리요?》
정준택은 의아쩍게 안해를 건너다보며 반문했다.
《뛰뛰한 소리도 돌아가고 당신대우도 떨어지고…》
《대우가 무슨 상관이요? 수령님께서 신임해주시면 다지. 다시는 그런 소리를 입밖에 내지 마오.》
그때 정준택은 엄하게 질책하였다. 그래서 김정원은 더는 그런말은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이즈음 그의 머리속에는 다시 그런 의심이 갈마들기 시작하였다.
새해에 들어서면서 평양시건설을 비롯하여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 복구건설이 힘차게 벌어지고있는데 세멘트, 벽돌을 제대로 대주지 못하여 문제가 서고있다는 소문이 돌고있었다. 며칠전에 해주에서 친척 한사람이 왔다갔는데 해주세멘트공장에서 큰 사고가 일어나 세멘트생산이 멎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말을 들은 김정원은 그것이 다 남편의 책임 같아서 가슴이 떨리였다.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기로서도 알수 없는 불안이 자꾸만 자라올랐다.
그는 다시 국가마의 간을 맞추고 불통의 공기구멍을 막았다. 아침식사가 거의다 되였을 때에야 귀에 익은 인기척이 들려왔다.
김정원이 부엌문을 열고 내다보니 남편이 마당으로 들어서고있었다. 그는 얼른 마중을 나가며 남편의 얼굴표정부터 살폈다. 지친 표정이긴 하나 크게 걱정할것까지는 있어보이지 않았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세번씩이나 전화가 왔었는데…》
《빨리 오느라고 했는데 늦었소.》
정준택은 이렇게 대꾸하고 방에 들어서더니 언제나와 같이 잠든 숙영이를 내려다보았다.
《아빠.》
숙영은 아버지가 자기를 내려다보고있는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통통한 두팔을 뻗쳐 아버지의 목을 그러안았다.
《오, 우리 숙영이.》
정준택이 잠내 풍기는 딸애를 꼭 껴안았다.
이때 웃방에서 또다시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정준택은 웃방으로 올라가 전화를 받았다.
《정준택입니다. 예, 방금 도착했습니다.…》
김정원은 그러지 말자고 했으나 전화대화에 자꾸만 주의가 가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5.1절전으로 조업을 앞당기기는 어렵습니다.》
정준택이 낮으나 확고한 어조로 못 박듯 대답하였다. 저쪽에서 무엇인가 계속 요구하는듯 정준택은 한동한 수화가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를 듣기만 하였다. 이윽고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안됩니다. 5.1절에는 안됩니다. 5.1절이 지난 뒤에도 두달은 걸릴것 같습니다.》
정준택은 계속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고있었다. 김정원은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흥남비료공장조업날자를 계속 앞당기라고 요구한다는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수 있었다.
정준택은 말없이 상대방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의 얼굴이 점차 푸릿하게 질리기 시작하였다.
김정원의 가슴은 다시금 활랑거렸다.
《책임을 느낍니다. 물론 각오하지.…》
정준택의 시꺼먼 눈섭이 몇번 꿈틀하였다. 그는 입을 꽉 다물고 상대방의 말을 듣기만 하였다.
《인차 가겠습니다.》
정준택은 마침내 이렇게 한마디 하고는 송수화기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런 다음에도 그는 잠시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었다. 김정원은 남편한테 무엇인가 대단히 좋지 못한 일이, 커다란 불행이 서서히 다가오고있다는것을 안해의 예민한 감각으로 느끼고 웃방으로 올라가 남편곁에 숨을 죽이고 섰다. 전쟁 3년기간 그 준엄한 불비속에서 늘 남편곁에 붙어있으면서 그의 사업을 도와주고 자기의 온몸으로 그를 지키고 보호해왔듯이 지금도 닥쳐오는 불행으로부터 남편을 지키기라도 하려는듯 그의 곁에서 움직일줄 모르고 서있는것이였다.
《누구예요?》
이윽고 김정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온 사람을 물었다.
《한윤호국장동무요.》
《한윤호국장이?》
김정원은 금시 억이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한윤호라면 바로 한집 건너 이웃에서 사는 사람이다. 할 말이 있으면 찾아와서 할것이지 열걸음도 되나마나한 이웃집에서 밤중에 두세번씩 전화질을 하며 그것도 부족하여 이 아침에는 천리길을 달려온 사람을 세워놓고 그렇게 불같이 다그어댄단 말인가. 몇달전까지만 하여도 남편의 아래에 있던 사람한테서 남편이 수모를 받는것 같아 분하기도 하고 그 굴욕적인 처지가 가슴에 맺혀와 눈물이 나기도 하였다.
정준택은 조반을 드는둥마는둥 하고 인차 가방을 끼고 집을 나섰다. 김정원은 남편이 국가계획위원회로 간다는것을 알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침의 전화는 론의의 시작일뿐 본격적인 론의와 마찰은 이제부터라는것을 그도 모르지 않았다.
《어머니.》
문득 찾는 소리가 들리기에 김정원은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이웃집처녀 옥산이가 반가운 표정을 짓고 서있었다. 한윤호와는 거래가 없었으나 그 처녀와는 각근히 지내는 사이였다.
《숙영이가 감기를 앓는다지요? 여기 페니실린과 마이싱이 있어요.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항생제를 맞히세요.》
《이젠 다 나았다우.》
《그래도 쓸 일이 있겠는데… 받으세요.》
《이렇게 고마울데라구야.》
김정원은 얼른 밖으로 나가 약을 받았다.
《그럼 전…》
옥산은 어깨에 걸맨 윤기가 반들거리는 자그마한 손가방을 한손으로 누르고 서있다가 돌아서려 하였다.
《아니, 아지미.》
김정원은 급기야 옥산을 불러세웠다. 옥산의 싱싱한 얼굴과 발랄한 모습은 보기만 하여도 언제나 즐거웠다. 그래서인지 김정원은 옥산이를 좋아하였고 그와 같이 있으면 시름이 가셔지는것만 같았다.
옥산은 영채도는 까만 눈을 크게 뜨고 김정원을 빤히 쳐다보고있었다.
《저, 지난밤에 그 집 오빠가 우리 집에 전화를 건것 같은데…》
김정원은 이런 물음을 해서는 안된다는것을 의식하면서도 묻지 않을수 없었다. 그만큼 그의 근심과 걱정이 컸던것이다.
《예, 저의 오빠가 아저씨를 찾아 몇번 전화를 했어요.》
이렇게 숨김없이 말하던 처녀의 밝은 얼굴이 대번에 흐려지는것이였다. 어딘가 먼 하늘을 쳐다보는 그의 커다란 눈에 심각한 빛이 언뜻 비꼈다.
김정원은 그 전화문제와 관련하여 한윤호와 옥산이사이에 마찰이 있었다는것을 대번에 눈치챘다.
《그 집 오빠와 우리 애아버지사이에 언쟁이 있은것 같은데 일없을가? 난 어쩐지 걱정스럽기만 하오.》
김정원은 마침내 자기의 근심을 털어놓고야 말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이웃집 이 처녀만은 자기의 애타는 심정을 리해해줄것만 같았다.
《어머니, 우리 오빠가 문제가 아니랍니다. 오빠가 문제가 아니예요.》
옥산은 반복했다.
《그럼?》
《최부위원장이 문제를 세운답니다. 흥남비료공장조업을 앞당기지 못한다고 말이예요.》
김정원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최일만은 남편을 극도로 미워하는 사람이였다. 지난해 쏘련방문에서 돌아온 남편이 어느 한 강연회에서 외국의 원조에 지나친 환상을 가지지 말라고 강조하였다고 하여 《반쏘분자》란 딱지를 붙이고 갖은 모해를 다하였다. 그런 사람과 다시 맞서게 되였으니 일이 무사치 못할건 뻔하였다.
《친일분자》, 《반쏘분자》의 감투를 씌웠던 그 사람이 이제 또 무슨 감투인들 씌우지 못하랴.
김정원은 오싹 몸을 떨었다. 꼭 무서운 재난이 들이닥칠것만 같았다. 그 재난으로부터 어린 숙영이나마 감싸주려는것처럼 김정원은 자기도 모르게 어린것을 품에 꽉 그러안았다.
얼마후 정준택이 돌아왔다. 정준택은 말없이 안해의 품에 안긴 어린것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숙영아, 아빠가 오셨다!》
김정원이 오히려 제편에서 울먹울먹하며 딸애를 찾았다.
《아이를 업고 차에 타오. 흥남으로 내려가던 길에 들릴데가 있소.》
정준택이 서둘렀다.
정준택과 모녀가 탄 승용차가 감북동 네거리에 이르렀을 때였다.
《내 한가지 미안한 부탁을 할것이 있소. 래일중으로 이사를 해야 하겠소. 성에서 도와줄거요.》
정준택이 안해에게 말하였다.
《그렇게 빨리?》
《아직 추위가 떨어지지 않았지만 할수 없소. 국가계획위원회에 사택이 긴장하다는건 당신도 잘 알지 않소. 마침 우리 성에 집 한채가 났으니 미루지 말고 이사를 해야 하겠소. 그래서 지금 그리로 가는거요. 가보면 알겠지만 지금집보다 좀 못해도 섭섭해마오.》
김정원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편의 대우가 낮아진 지금 좋은 집은 애초에 바라지도 않은 그였다.
승용차가 감북산쪽으로 꺾어 얼마간 갔을 때 한사람이 길목을 지키고 서있었다.
《차를 세우오. 우리성 경리과 지도원이요.》
정준택과 김정원은 차에서 내렸다.
《상동지, 결심을 바꾸십시오. 상동지가 들만 한 집이 못됩니다.》
젊은 경리과 지도원은 정준택을 보자 저으기 안타까운 어조로 말하였다.
《또 그 소리요? 그러지 말고 새집으로 안내하오.》
정준택과 지도원은 집문제를 놓고 이미 론의가 있은것 같았다. 김정원은 속이 좋지 않았지만 젊은 지도원앞에서 그런 내색은 애써 감추고 남편의 뒤에 말없이 서있었다.
《어서! 시간이 없소.》
정준택이 재촉했으나 지도원은 웬일인지 상보다 그뒤에 서있는 김정원에게 오히려 딱한 눈길을 던지며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정준택이 참지 못하고 성을 내서야 지도원은 어쩔수 없었던지 정준택부부를 납작한 스레트집앞으로 안내하였다.
《보십시오. 이 집입니다. 단칸인데다 여름철엔 비가 새고 부엌에서는 물이 납니다.》
《비 새는거야 스레트를 바로 잡아놓으면 되고 물이 나는건 바깥으로 도랑을 치면 되지. 토굴집보다는 훨씬 좋소. 남향으로 앉은게 마음에 드오. 사람이란 해빛을 받고 땅김을 쏘이며 살아야 무탈하오. 그렇지 않소?》
집을 한바퀴 돌아본 정준택이 헌헌한 목소리로 안해에게 말했다. 그러나 김정원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남편이 새집의 우점을 루루이 강조했지만 김정원에게는 그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집이사와 관련하여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했지만 이런 한심한 집이 차례질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는 참았다. 남편이 결심하고 남편이 좋아하면 김정원에게는 딴 의견이 있을수 없었다.
《상동지, 조금만 참으십시오. 상동지의 네칸짜리 집이 거의다 돼갑니다.》
경리과 지도원이 또다시 간청해나섰다.
《뭐요? 네칸짜리라니 무슨 소리요?》
《이 말은 하지 말자고 했는데 청사 가까이에 상동지집을 짓고있습니다. 네칸짜리입니다. 그러니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제가 국가계획위윈회 경리부서에다 그렇게 부탁하겠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경리과 지도원은 이번에도 상보다 김정원에게 오히려 량해를 구하듯이 사정했다.
김정원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준택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한자리에 굳어진듯 묵묵히 서있었다. 그는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지도원동무, 동문 수령님께서 며칠전에 화학공업상인 이 사람에게 5.1절까지 1만 3,000t의 세멘트를 수도건설에 보내줄데 대한 지시를 주시였다는것을 알고있겠지? 그 사실은 신문에까지 났소. 그런데 그 지시도 집행하기전에 상이란 사람이 그 세멘트로 제집부터 지으면 어떻게 되겠소? 안되오. 그 집이 완공되면 수도건설자들이 들게 해야겠소.》
정준택은 지도원이 더 말을 붙이지 못할만큼 엄하게 말하고나서 승용차 있는데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여보!》
불현듯 김정원이 남편을 따라서며 소리쳤다.
정준택은 돌아보지 않을수 없었다.
《너무 섭섭해마오. 아직 토굴에서 나오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는걸 알아야 하오.》
《아니, 아니예요.》
김정원이 다급히 머리를 저었다. 그의 두눈에 느닷없이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럼 뭐요? 더 생각할것 없이 래일 이사를 하오. 경리과 지도원동무랑 도와줄거요.》
정준택은 뒤에 서있는 지도원을 돌아보았다. 지도원은 그들부부사이에 범상치 않은 이야기가 오고가리라는것을 예감한듯 멀찌감치 서있었다.
《그럼 난 흥남으로 내려가겠소.》
정준택이 돌아서는데 불시에 《아빠, 가지 마!》 하는 어린것의 목소리가 정준택을 그 자리에 못 박아세웠다.
정준택은 다시 돌아와서 안해의 등에 업힌 어린것을 내려다보았다.
《숙영아, 아버지가 사탕을 사가지고온다. 숙영인 사탕을 좋아하지?》
《응.》
《그럼 됐다. 넌 엄마와 같이 집으로 가거라.》
정준택은 돌아서다 말고 안해를 보며 말하였다.
《매번 당신한테 무거운 부담을 주어서 미안하오.》
《아니, 아니예요.》
김정원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
《내 어찌 당신 심정을 모르겠소. 당신은 책도 많이 읽었고 노래도 잘 불렀지. 나와 함께 산보도 하고 구경하는걸 즐겨했지.… 친척들과 동무들을 찾아다니는것을 하나의 경사로 생각했고…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그런 기쁨을 주지 못했소. 오히려 가정과 사회의 무거운 부담이 항상 당신의 어깨를 짓누르군 했지. 이건 아마도 나라의 중책을 떠맡은 사람의 안해가 감수하여야 할 숙명인가 보오.》
《아니, 아니예요.》
김정원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남편을 쳐다보는 김정원의 눈물어린 눈에 감출수 없는 불안의 그림자가 얼른거리였다.
《여보, 그 무슨 부담에 대해선 생각지도 마세요. 집걱정도 하지 마세요. 방금 본 집보다 더 험한 집도 과분해요.》
김정원은 남편이 입은 외투앞자락에 꺼슬꺼슬하게 돋아난 실밥을 본능적인 동작으로 한오리한오리 뜯어내며 소곤거리였다.
《고맙소.》
정준택은 안해의 두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자 갑자기 마음이 여리여지면서 가슴이 찌르르해옴을 느꼈다.
《여보, 당신은 언제 한번 나한테 사업상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요. 나도 그걸 바란적이 없었어요.》
《그건 좋은 가풍이요.》
《그렇지만 한마디만 이야기해주세요. 아까 최부위원장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요? 예? 어서 말해주세요. 다른건 다 참고 이겨낼수 있지만 그것만은… 여보.》
《크게 걱정할건 없소.》
《난 알아야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내 심장이 견디지 못해요. 여보!》
정준택은 안해의 눈물어린 강렬한 호소에 어찌할바를 모르고 말없이 서있다가 승용차앞으로 걸어갔다. 이윽고 안해가 뒤따라오자 그는 그의 어깨우에 한손을 얹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건설장들에 세멘트, 벽돌을 잘 대주지 못해서 비판을 받았소. 그리고 흥남비료공장 조업날자를 앞당기는 문제때문에 언쟁을 했지. 별것은 아니니 마음을 놓소.》
《여보, 제발 최부위원장과 엇서지 말아요. 그 사람은 무서운 사람이예요. 제발 빌어요. 처음으로 당신한테 비는거예요.》
《당신 무슨 소릴 그렇게 하오?》
정준택의 노기어린 목소리가 쩡 울리였다.
《난 불안해요. 불안해요.》
안해는 다시 흐느끼며 발작적으로 울부짖었다.
《글쎄 걱정말라니까.》
《여보, 여보, 제발 빌어요. 다시는 그 사람과… 그 사람과…》
안해는 남편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애원했다. 정준택의 얼굴에 심각한 고뇌의 빛이 점점 짙게 어리였다. 벗어진 높은 이마에 주름이 잡히고 굵은 눈섭이 꿈틀거렸다. 그는 두손으로 안해의 연약한 좁은 어깨를 꽉 잡고 한마디한마디에 천만금의 값이나 치르는것처럼 힘을 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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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원칙을 양보하지 않겠소. 신념을 버리지 않겠단 말요. 그것은 내가 수령님의 전사이기때문이요. 당신은 이것을 알아야 하오.》
정준택은 마지막으로 숙영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떠나갔다. 더는 돌아서지도 않았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여보!》
김정원은 애타게 부르짖으며 멀어져가는 남편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