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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빛나는 아침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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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5,061회 작성일 20-06-1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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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으로 다시 돌아온 강병철은 압축기직장과 전해직장을 돌아보았다. 비료공장에서는 여기가 첫 공정이면서 심장부라고 할수 있는것이다. 압축기직장에서는 파괴된 전동기들을 해체해놓고 코일부분을 수리하고있었다. 전해직장에서는 절연물들을 뜯어놓고 실험을 하고있었다. 두 직장 다 공정표에 예견한대로 작업이 추진되고있었다. 그러나 비료가 나오게 되자면 아직 할 일이 많았다.

강병철은 휴계실에 두었던 가방을 집어들고 공장합숙을 향해 떠났다. 그는 처량하기도 하고 또 그 어떤 대담한 활력을 느끼기도 하는 2중적감정을 품은채 우선 합숙으로 찾아갔다. 거의 비다싶이 된 합숙은 아무데나 마음에 드는 방을 고르라는 형편이였다.

썰렁한 합숙장판방에 배낭을 내려놓고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대두박을 깨뜨려서 밥이라고 지은것에 무우국과 된장 한접시뿐이였다. 식욕으로 보면 그것을 통채로 삼켜도 시원치 않을 형편인데 콩썩은 냄새때문에 도저히 목구멍을 넘길수 없었다. 2층 3호실 바닥에 맥없이 누웠는데 마루가 가볍게 울리더니 알릴듯말듯하게 문기척소리가 났다. 강병철은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이 방에 평양손님이》

대답이 나가기전에 먼저 그 녀인의 목소리와 함께 용모가 매우 아름답다는데 신경이 쏠리였다.

《네, 네, 제가.》

《식사를 전혀 안하셨더군요. 이걸.》

《이게 뭡니까?》

쟁반에 접시가 하나, 공기가 하나 놓였다. 녀인은 몹시 수집음을 타면서 대답도 남기지 않고 총총히 사라지는데 접시에 맞엎었던 보깨를 여니 거기에는 하얀 송편이 5개, 공기에는 김치 그리고 수저가 놓여있었다. 얼떠름해진 강병철은 어쩔바를 몰라 서성거리다가 책상우에 올려놓고 우선 김치국부터 마시였다. 잠시동안에 그릇을 다 비운 그는 담배를 붙여물었다. 흰연기가 솜송이처럼 덩어리가 져서 방안에 떠도는데 그것을 타고 그의 복잡한 심정이 여러갈래로 줄이 뻗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에 대한 합숙녀인의 인정이다. 목이 메게 고마왔다. 여태 만주로 일본으로 서울로 안가본데가 없고 돈냥간 써가면서 별의별 미식을 다 맛본 그였지만 이렇게 맛나고 달게 음식을 먹어보기가 처음이다. 8. 15후 여직까지 있어보지 못한 평양손님에 대한 그 어떤 기대일수도 있고 너무 초라하고 가련해보이는 한 사나이에 대한 동정일수도 있다. 어쨌든 그에게 있어서 가장 약한 고리인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한동안이나 떨게 되는 인정의 금선을 사정없이 다쳐놓은것이다. 그는 갈아입을 옷도 없어서 줄무늬가 간 춘추 제낀옷에 와이샤쯔, 발에는 목다리가 긴 헐럭한 왜놈군화, 머리는 막 빗어넘기였는데 압축기직장 휴계실에서 얻어쓴 기름묻은 캡을 올려놓은 몸차림으로 거리로 나갔다. 그는 서호쪽으로 한참 내려가다가 제련소사택마을로 들어갔다. 전번에 와서 반나절이나 걸려 겨우 찾았던 길이여서 이번에는 직발 오천식이네 집에 찾아갈수 있었다.

오천식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오천식 어머니에게 위로의 말을 남기고 선자리에서 돌아섰다. 이제는 여기 와 일하기때문에 자주 들릴수 있다고 하니 녀인은 대단히 기뻐하였다.

합숙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한길에 나서서 얼마간 걸어가는데 지나가던 사람 하나가 문득 앞을 막아서며 《강병철선생이 옳지요?》하고 덥석 어깨를 그러안는것이였다.

《누구요 당신은?》

흠칫 놀라며 그는 목에 감긴 팔을 뿌려던지였다.

《신창탄광 박창술입니다.》

젊은이의 말소리가 어떻게나 컸던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돌아보기까지 한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요. 탄을 캐서 건국을 한다던 사람이 여기에 나타나다니.》

《그러기말입니다.》

박창술은 너무 기뻐서 어쩔줄을 몰라한다. 주머니에서 쌈지와 종이를 꺼내면서 아무데나 앉아서 이야기를 좀 하자고 한다. 려인숙이나 사무실에 갈 경황도 없다고 하였다.

길가 언덕의 돌등에 나란히 앉아 뻥뻥초에 불을 달았다.

사위는 고요한데 사택마을쪽에서는 이따금씩 박수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누가 또 격동적인 연설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강선생! 나를 좀 살려주시오.》

성미가 급한 박창술은 강병철의 팔을 잡아흔들었다.

《내가 뭐 당신을 어쨌다고 그러오.》

덤볐다치는것이 재미있어 강병철은 우정 제빠듬해보인다.

《강선생이 내 목을 쥐고있지요. 사정을 들어보시우.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우리가 탄광에 돌아간지 열흘도 안돼서 쌀을 보내주시였습니다. 건국을 잘하라고말이지요. 그런데 석탄을 캐야 건국을 하지요. 막장에서 물을 다 퍼냈는데 착암기부속이 없고 정대가 없습니다. 내가 역전려관에서 만났을 때 말하지 않았나요. 우리한테 정대를 만들어달라고요.》

《어허 이 친구 이거 생사람 잡겠다. 정대를 만들어낼수 있는가 해서 만들수 있다고 했지 언제 만들어주겠다고 했나?》

《그건 옳습니다. 그쯤했으면 그거나 저거나 같구 같지요. 강선생, 여기 제련소에서도 그런 깡쇠를 만들수 있다면서요?》

박창술은 숨돌릴새 없이 몰아댄다. 그럴수록 강병철은 차츰 더 완완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련달아 마라초 2대를 태웠다. 그러면서 그는 속구구를 해보고있었다.

여기 제련소에서는 동과 금 제련이 기본이였는데 그 기술상태는 이제부터 알아보아야 한다. 로만 성해있다면 그런 정도의 합금은 별로 어려울것이 없다. 정작 생활에 부닥치고보니 김일성장군님께서 자기와 같이 보잘것없는 기술자와 마주앉으시여 강철에 대해서 론의하신 그 사연과 의의가 절박하게 안겨왔다.

《여보, 탄광친구!》하고 강병철은 잠시도 자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박창술의 어깨를 붙잡고 말을 걸었다. 《이렇게 하기요. 내가 이제 제련소를 돌아보고 의논하는것이 어떻소. 여기서는 중공강은 못만들어. 림시대용으로 정머리를 만들어볼수는 있지.》

《그러니 결국 대답은 외상이 아닙니까? 그렇게는 못합니다. 죽으나사나 나는 정대를 가지고가야 합니다. 내가 강선생을 찾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압니까. 처음에 난 성진에 갔댔습니다. 그다음에 청진에 갔었구요. 그래도 찾을 길이 없어 평양에 갔습니다. 김일성장군님께 건국을 하겠노라고 맹세를 올렸는데 석탄을 캐지 못하면 우린 죽은 몸이나 같습니다. 석탄을 못캐면야 탄광은 해서 뭘하며 탄부가 무슨 소용있습니까. 강선생, 우릴 도와주시오.》

《알겠소. 그러나 여보! 당신도 아다싶이 강철이라는것이 그리 간단치 않소. 더구나 공구강은 간단치 않소. 다문 한t의 강철이라도 온 공장이 움직여야 뽑아낼수 있단말이요.》

《아하…》 박창술은 진지하게 듣고있다가 갑자기 맥빠진 소리를 지른다. 그러고나서 옹근 이틀동안 공장장 리연수를 따라다니면서 사정해보던 이야기를 하였다. 서대문감옥에서 나온지 오라지 않다는 리연수는 박창술의 청원을 첫마디에 일축해버리였다. 당신네가 석탄을 캐지 못하는 리유나 여기서 합금로를 돌리지 못하는 까닭은 같고같다고 하였다. 그래 박창술은 평양서 기술자가 왔다는데 그래도 안되는가 하니 그것은 더 우환거리라고 했다.

박창술은 이야기에 아지를 달지 않고 꼿꼿이 강병철을 설복하는데로 나갔다.

강병철은 박창술을 려인숙으로 돌려보내고 제련소쪽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제련소정문에 들어선 그는 곧추 용해직장으로 나갔다. 맨처음에 합금로가 있고 그다음에는 연, 동을 뽑는 로가 있었다. 어데나 모두 숨을 죽이고있다. 열풍이 불고 매캐한 류황내가 풍기던 곳에 맑고 싸늘한 공기가 흐르고있다.

강병철은 이미 눈에 거친적이 있었던 대상을 새로운 의미를 담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박창술의 요구를 들어주는데는 별로 힘들것이 없었다. 로를 복구해서 돌리면 된다. 구리를 용해하던 로가 그중 많이 파괴되였다. 그것을 복구하면 구리도 뽑고 겸해서 탄광이나 광산에서도 쓸수 있고 기계절삭에도 쓸수 있는 특수합금제련도 할수 있을것이다. 한동안 쓸수 있는 정광도 있었다.

그는 로를 깐깐히 돌아보았다. 배전실은 새까맣다. 성냥불을 켜대서야 계기판이 보이였다. 다음은 로본체에 올라가 전극이며 쇠물이 새까맣게 얼어붙은 로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다음은 기중기에도 올라가보았다. 화구앞에 얼마간 서있다가 다시 한바퀴 돌았다. 어느것이나 다 기술상태가 명백한것이여서 다시 따져볼 필요가 없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수 없었다.

강병철은 어둠이 내려덮인 로앞에서 쇠장대를 깔고 앉았다.

담배를 붙여물었다. 푸른 연기가 어둠이 깔린 로앞으로 서서히 흘러가고있다. 지난날의 일들이 영화화면처럼 언뜻언뜻 나타났다. 려순공대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철공소를 경영하는 한편 생약도매상을 겸한 아버지는 돈을 버는데 있어서는 맹수와 같이 포악하고 극성스러웠고 그것을 쓰는데 있어서는 고양이처럼 요령이 있고 이악하였다. 그런 아버지가 부산발 봉천행 특급렬차 《히까리》에 앉히면서 《네 재간껏 날아보아라.》해서 떠난 길이 8. 15까지 수난이 겹쌓인 일제에게 복무한 그 길이였다. 예로부터 중국과 함께 동방을 노리였던 침략자들이 모두 보잘것없는 하나의 항구에 그토록 큰 관심을 가지고 다투고있던 바로 그 려순거리에 발을 들여놓은것이다. 동쪽에 황금산, 서쪽에 로호미반도(늙은 범의 꼬리반도)라는것에 의해 아늑하고 온화한 물굽이가 생긴 여기에 대륙에 뻗친 일본의 촉수 관동청, 관동군사령부, 요새 사령부들이 자리잡고있었다. 그 이전에는 제정로씨야가 여기를 조차해서 동방진출의 발판으로 썼었다.

바로 려순공대는 이 촉수에 앞잡이가 되고 또한 뒤수습자가 될 임무를 지닌것이였다.

지금 보면 조선사람인 강병철이 이속에서 그 무엇인가 조선적인것, 정의로운것, 그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악한것은 아닌것 례컨대 인간을 살륙하거나 재산을 강탈하는것이 아닌 그 무엇을 바라서 이 려순공대 교실에 앉아 수업을 했다는것은 마치 불속에서 물을 구하자고 한것과 같은 극히 어리석은짓이 아닐수 없었다.

다음은 야하다제철때의 일이 떠올랐다. 일본제국이 자기들의 강대성을 강철생산량으로 재고있을 때 야하다제철은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있었으며 따라서 군부의 물음에 모든것이 가능하다는 대답을 줄수 있었던것이다. 이곳 강철이 진흙이나 화강암으로 높이 쌓아올린 중국의 성벽들을 격파하였고 수많은 동남아와 태평양지역의 항구와 겨울을 모르는 열대와 아열대거리들을 정복하게 했다. 강철수레의 동음을 타고 또 강철이 작렬하는 빛을 따라서 나가는 일본군국주의의 마수가 아시아의 거의 전부를 거머쥐였던것이다. 이 진격을 멈춰세울수 없을것 같았다. 하지만 력사는 힘겹기는 하지만 자기 궤도를 그대로 굴러서 오늘에 이르렀다.

강병철은 제낀옷의 목깃을 세우며 몸을 후두두 떨었다.

발길이 돌려지는 곳마다 선량한 사람들의 피가 스민 그 땅으로 야하다강철이 자국을 찍으며 나갔다. 그 자국가운데 어느 하나는 그것이 극히 적은것이고 보잘것없는것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강병철의 몫이 있었을것임에 틀림없었다.

이 몸서리치는 복무도 당시의 매일매일은 극히 평범하게 아무런 고려도 주저도 없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였었다. 아침밥을 먹고 공장에 나가서는 상급이 시키는 일에 순종하였으며 그때그때의 실험지수나 합성프로를 계산하면서 하루가 가고 또 다음날이 왔던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3천만이 목소리를 합쳐 저주하고 규탄하는 일제 36년간의 억압과 착취 거기에, 그 저주의 대상속에 강병철이 서있게 된것이다.

온몸이 죄의식에 압착되면서 등골에서 식은땀이 쭉 흘렀다. 입술이 바삭바삭 마르고 머리가 뗑하였다.

어쨌든 어제는 려순에서 시작되였고 오늘은 이 흥남에서 시작되는것이다. 어제는 일본인들이 메워준 짐을 지고 그들이 떠미는 길로 지향도 목적도 없이 미친놈처림 달려나갔다면 오늘은 나라는 인간의 지향이 있고 내가 선택한 길에 내 발을 들여놓는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강병철은 로앞을 거닐기 시작했다.

본정2층집에서 만나뵈웠던 장군님, 의지와 힘과 예지와 순결함을 동시에 나타내고있던 그이의 웃음, 그런가 하면 똑바로 쳐다볼수 없을만큼 열정에 불타고있는 눈, 그 시선은 나를 순식간에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더듬어내려가면서 모든것을 꿰뚫어보는듯 하였다. 하여 마치 불빛이 모든것을 드러내듯이 그이앞에서 그 무엇을 숨길수도 없었고 또한 그럴 필요도 없었다.

《함께 일해봅시다.》하고 그이께서는 권고하시였으며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라고 우리를 찍어서 불러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여기를 등지고간 양춘만의 아들을 구원해주시였다. 바로 지금 내가 서있는 이 마당은 그러한 우리 장군님께서 바라시는 곳이다. 이제 어떤 시련과 난관이 이 인생의 쪽배를 어느만치 들볶아놓을지 알수 없는것이지만 어쨌든 이 숨진 금속로에 불을 지펴 지난날의 어리석음과 헛된것 그리고 죄악적인 모든것을 불태워버리고말것이다. 그속에서 박창술의 요구도 해결될것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쇠란간을 타고 땅에 내려섰다. 그때 어둠속에서 《거 누구요?》하는 고함소리가 나면서 불을 비쳐대였다.

《나요? 난 새로 온 기삽니다.》

《기사라구요? 평양서 왔지요…》

《예!》

그들은 서로 통성을 하고나서 간데라불을 돋구어 벽에 걸고 휴계실 걸상에 마주앉았다. 할일도 없고 잠도 오지 않아 여기서 늘 밤을 보내군 한다는 최한덕은 올해 갓 50이라고 한다. 여기 제련소가 생겨서부터 슬라크도 퍼내고 배합물도 져나르는 로동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로가 멎은 다음부터는 생기가 없어지고 살아갈 재미도 없다고 하였다. 집에는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아들이 있다고 하는데 산중에 들어가 부대기를 일궈먹으면서라도 이 제련소 사지판만은 면하자고 한다는것이다. 그러나 최한덕은 행여나 이제 좋은 세상이 올수도 있는거구 또 어느새 그렇게 되였는지 정작 떠나자고 하니 쇠물로가 그리워 훌쩍 뜰수 없어 이날저날 미루고있다고 하였다. 키가 작고 눈섭이 검고 오돌차게 생긴 로인은 성미가 매우 완강해보이였다.

《내 아까 저녁켠에 합숙에 들렸다가 우리 딸년한테 칭찬을 해줬쉐다.》

하고 설명하는 로인의 말을 들으면 떡 한접시의 사연을 잘 알수 있었다. 최한덕이 직장으로 나오던 길에 딸이 취사원으로 있는 비료공장합숙에 들렸다. 그의 말에 의하면 합숙이란 사실상 이 공장성원의 기식터이면서 동시에 새 소식을 잘 알수 있는 조화통이기도 하다는것이다. 아무때고 평양에서 무슨 소식이 있어야 공장이 다시 숨을 쉬게 될것이라고 그는 굳게 믿고있었다. 여러가지로 론의하던 김일성장군님 개선소식도 저번날 평양에서 파견원이라는 사람이 와서 회관에 모아놓고 강연을 하였는데 그때 누구보다 맨먼저 그 소식을 알게 된것도 합숙에 매일 한번씩 들리군 하던 최한덕이였다. 새 사람이 나타나면 우정 구실을 만들어가지고 찾아가 알아보는것이다.

오늘도 역시 그런 생활습성에 의해 들렸는데 딸애가 대두박을 넘기지 못하는 평양손님이야기를 하였다. 딸애가 속을 태우다가 장마당에 나가 송편 한접시를 사다 대접했다고 하기에 《거 너 참 잘했다. 평양서 오는 손님인즉은 모두 나라를 세우자고 수고하는분들인데 끼를 넘기면 되겠느냐. 그 나라인즉은 우리 나라거든. 너 애비같이 로동하는 사람들 나라라고 하더라.》고 했다는것이다. 그런후에 최한덕은 묻지 않는 딸이야기를 꺼내였다. 올해 20살난 딸애는 여기 서호에서 20리 들어간 골안 지주집에 부엌데기로 있었다고 한다. 아들이라는것은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가서 쇠물이 쏟아지는바람에 발가락을 다 잃고 몽둥발이 돼서 집에 누워있다고 하였다. 불우한 운명이 등나무넝쿨처럼 칭칭 감겨돌아간 최한덕이였다.

《그러니 이제 이걸 살려서 구리나 연을 뽑게 되겠수다?》

푹 꺼져들어간 눈이 강병철에게 큰 기대를 날려보내고있다.

《그렇게 하자고 합니다.》

《됐구만, 됐어.》

입에 물었던 고불통을 뽑더니 성글어진 이새를 드러내놓으며 최한덕은 흐드러지게 웃었다.

최한덕은 강병철을 앞세우고 대포 한잔을 낼수 있다고 하면서 합숙 식당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제 4 장
 

1

 

김책의 방에 오기섭이 찾아들어왔다. 와이샤쯔바람인 오기섭은 쪽걸상에 앉으면서 수첩에 무엇을 적고있는 김책을 향하여 말을 걸었다.

《김책동무! 한가지 물어봅시다.》

김책은 수첩을 밀어놓고 고개를 들었는데 대번에 그의 얼굴은 팽팽해졌다. 서로 알게 된지는 오래지 않지만 매번 오다가다 길가에서 마주쳤거나 어떤 모임뒤끝에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군 했었는데 이번에는 부러 찾아온것이다.

《김책동무, 다름이 아니라 공업전문학교 교원으로 종로에 있는 제국대학교수 안동권을 쓰려고 한다는데 그것이 사실이요?》

《사실이요, 한데…》

《사실이라?》 오기섭은 처량한 낯빛을 지으면서 잠간 창밖을 내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난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런단말이요.》

김책은 자리를 떠서 오기섭이앞에 놓인 탁자를 향해 마주앉았다.

《그건 어째서 그런가요?》 이미 속심은 뻔드름한것인데 묻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그럼 들어보우.》하고 오기섭은 번쩍번쩍 빛을 뿌리는 마드로스파이프를 염낭에서 꺼내 불을 달고나서 말을 이었다.

《난 프로레타리아식으로 솔직하고 투철한것을 좋아하오. 그래서 속심을 말하기 위해 빙빙 에둘지 않겠소. 김책동무를 함흥에서 처음 만났을 때 성진출신이라고 하길래 나는 대단히 친근하게 생각했었소. 그런데 후에 보니까 동무는 그 누군가를 분명히 념두에 두고 좌경을 따라가지 말라, 지방주의로 나가는것은 좋지 않다 등등 귀맛이 덜한 말을 함부로 퍼뜨리고있었단말이요. 이쯤해두면 동무도 짐작이 갈것이라고 생각하오.》

일단 말을 중단하고 록록치 않게 쳐다보고있는 상대편을 위압이라도 하려는듯이 오기섭은 상체를 뒤로 젖히고 담배를 뻐금뻐금 빨고있다.

김책은 빛나는 시선으로 부자연스럽게 꾸미고있는 오기섭의 몸가짐을 지켜보고있다.

《그런데, 그런데말이요.》 오기섭은 손을 앞으로 내흔들며 계속하였다. 《좌경을 범하지 않기 위해 우경으로 달아난다면 그건 정말 한심한 일이 아니겠소. 난 지금 동무가 평양에 올라와서 처리해놓은 몇건의 인사문제를 념두에 두고 하는 말이요. 생각해보우. 우리 당이 채택한 정치로선에는 엄연히 일제잔재를 숙청하는것이 급선무라고 지적돼있는데 거기에 배치된다는것을 모르겠는가요?》

《어서 더 계속하시오.》

잠간 동안이 생기자 김책이 재촉하였다.

《계속 설명할거나 있소? 그거면 다요.》

《그것이면 다라?》 김책은 한껏 비틀린 오기섭의 심리를 읽으면서도 참을성있게 상대편을 존중하려고 한다. 《그것뿐이요? 나한테 말하자는것이…》

《그렇소. 그런데 철도의 한명구는 왜 그대로 국장자리에 두고있소? 벌써 내가 여러번 제기했다고 보는데.》

《오기섭동무, 그러면 나도 하나 묻기요. 한명구를 평양철도 국장자리에서 뗀다고 합시다. 그대신 누구를 앉히겠소. 안을 내놓으시오. 또 안동권도 그만둡시다. 그러면 그대신 누가 교단에 서겠소. 그 대답을 당신이 해야 하지 않소.》

이마귀가 벗어져올라간 김책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하지만 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기섭은 제빠듬히 뒤로 젖힌 자세로 여유있게 대답을 하고있다.

《내 견해는 이렇소. 누구를 어디에 세우고 어디에 앉힌다 등을 론하기전에 우리가 일제의 앞잡이들에 대한 관점과 태도를 어떻게 가져야 하는가 하는것부터 결정해야 하겠단말입니다. 우리는 정치체제에서나 경제관리에서나 문화도덕령역에서 철저히 일제잔재를 숙청해야 하잖소. 그런데 김책동무가 처리하는것을 보면 이런 원칙적문제를 알고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단말이요.

내 이야기를 좀 듣소. 공산당선언에는 이런 구절이 있소. 계급투쟁이 결전에 가까와가는 시기에는 지배계급내부, 전체 구사회내부에서의 해체과정이 극히 격렬하고 날카로운 성격을 띠는 까닭에 지배계급의 소부분이 지배계급으로부터 떨어져나와 혁명적계급에게 가담하게 된다.

혹시 당신이 이런 구절을 본 기억이 있어서 일제에게 복무한 안동권이나 한명구를 우리의 신성한 혁명진지에 끌어들이려고 하는것 같은데 그것은 큰 오산이요. 마르크스나 엥겔스의 견해는 종주국내의 문제를 념두에 둔것이기때문에 우리와 사정이 다르단말이요. 그리고 또 김책동무도 혁명은 인정이나 선심을 가지고는 하지 못한다는것쯤은 알고있겠는데…》

오기섭은 눈을 게슴츠레하니 뜨고 거의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김책을 쳐다보고있다.

약간 동안을 두었다가 김책이 입을 열었다.

《리론은 그만하고 내가 제기한것에 대답을 하오. 한명구나 안동권이 대신 누구를 앉히자는 안이 있어야 할거 아니요.》

《리론은 그만하자! 결국 리론이 필요없단말이지. 혁명적리론이 없이는 혁명적실천이 있을수 없다는 레닌의 명제를 모르지 않겠는데.》 말투는 온화하였지만 한껏 가시가 돋힌 야유조였다. 김책은 그것을 예민하게 감촉하였다.

《오기섭동무! 동무는 이야기가 시작되기만 하면 인차 선행고전가들의 견해가 어떻소, 또는 공산당선언이 어떻소, 레닌이 어떻소 하는데 기왕 말이 났으니 어디 론의를 좀 해봅시다. 도대체 공산당선언의 어느 구절에 우리를 따라오는 인테리를 배척하라는것이 있소. 말해보시오. 누가 그랬소? 맑스요? 엥겔스요? <자본론>에 있소? <고타강령비판>에 있소? 빠리꼼뮨을 총화한 <프랑스국내전쟁>에 있소? 그것도 아니면 그래 레닌이 그랬소? <프로레타리아전쟁강령>이요? <좌익소아병>이요? 난 어데서도 그런것을 읽은 기억이 없소.》

여기까지 단숨에 쭉 내려엮은 김책은 숨이 차서 어깨를 들먹이였다.

뜻하지 않게 집중포화에 얻어맞은 오기섭은 눈이 퀭해졌다. 지금까지 그가 알고있었던 김책은 정열과 의지는 있었지만 지식이나 리론은 형편없이 빈곤해서 기껏해야 로씨야의 차빠예브형 군사지휘관으로나 보았었는데 지금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김책은 하던 말을 계속하였다.

《리론이라는것이 도대체 뭐겠소. 난 리론이란 경험을 일반화한것으로 보고있소. 우리에게는 어떤 경험이나 리론이 필요한가? 우리는 조선혁명을 하고있기때문에 조선혁명의 경험과 리론이 우선 필요한것이 아니겠소. 우리 혁명의 탁월한 령도자이신 김일성동지께서는 혁명을 시작하시면서부터 조선혁명에서 인테리들이 노는 역할에 대해서 투철한 방침을 제시하시였고 해방된 오늘에도 그것을 거듭 강조하고계시오. 당신이 말하는 한명구나 안동권이 우리를 따라오겠다는데 무엇때문에 그들을 우리가 배척해야 하는가말이요. 출신이 부유하기때문이요? 아니면 그들이 지식을 가지고있기때문이요? 어디 말해보우.》

오기섭은 소태를 씹은 낯을 해가지고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인차 그는 웃는 낯을 지으며 담배를 또 붙여문다. 리론을 가지고 론쟁하자는것은 무섭지 않은데 상대편에 겉보기와 전혀 다른점이 있기때문에 이제 어떤 방패를 내들게 되겠는지 또 어떤 검으로 내리치게 되겠는지 몰라 망설이고있는중이였다.

김책은 어성을 높이였다.

《당신 주장대로 하면 일제잔재가 없어질것만은 사실이요. 하지만 동시에 혁명도 없어진단말이요. 구경에는 혁명을 포기하자는 주장이요.》

《혁명을 포기한다? 여보! 동무는 지금 누구를 상대하고있는지 모르지 않겠지. 중앙조직위원회 제2비서가 동무에게 지금 사업상 충고를 하고있단말이요.》 순간에 론리로부터 직권으로 바꾸어버린 그는 야릇한 감정에 잠겨 잠간 사이를 두었다가 계속하였다. 《방금전에도 말했지만 이건 어제오늘 처음 느낀것이 아니라 동무가 함흥에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감촉했던거요. 그래 동지호상간에 이런 말도 못한다면야 여기에 무슨 조직이 있고 동지적의리가 있소.》

오기섭은 얼굴이 뻘겋게 되여 점점 더 도고해진다.

그럴수록 김책은 더 완강해진다.

《동지호상간이라니까 듣기는 좋소. 그렇지만 함남의 그 틀이 앞으로 당사업발전에 큰 지장을 줄것 같아 미리 말해두오.》

격분한 김책은 방안을 왔다갔다하다가 다시 오기섭이 앞에 멈춰서서 두손을 내밀었다.

《어서 내놓소. 철도를 운영할 사람, 교단에 설 사람을. 당신이 훌륭하다고 보는 사람을 다 내놓으란말이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침묵하고있던 오기섭이 떨리는 목소리를 내였다.

《너무 과격하니까 말이나 해보겠소. 내 의견이 그렇다는것인데 접수안되면 좋구.》

《당신이 지금 당장에 내놓을 사람이 없지 않소. 그러니 있는 사람을 쓰자는것인데 뭐가 못마땅해서 그러오. 더 할말이 있소? 난 공업전문학교에 나가봐야겠소.》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군님께서 오기섭을 부른다고 좌현이가 알리였다.

오기섭은 요행 잘되였다는 식으로 가볍게 자리를 떠서 문밖으로 사라졌다.

벌써 밤 10시가 오래지 않았다. 담화는 무려 3시간이상이나 계속 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창문을 등지고 앉으시고 그 오른쪽옆에 오기섭이 앉아 침묵을 지키고있었다. 그이께서는 먼저 얼마전에 열리였던 정치공작원들의 모임에서 론의된 인재문제와 관련한 실태를 설명하시고 그에 따라 지식인들과의 사업을 구체적으로 짜고들데 대해서 말씀하시였다.

《오기섭동무는 현재 우리 나라에 있는 과학자, 기술자, 전문가들에 대한 조사사업을 맡아주어야 하겠습니다. 건국사업에 지식을 가지고 이바지할수 있는 대상이면 누구나 다 장악하시오.》

《일제에게 복무한 경력여하에 관계없이 말입니까?》

오기섭은 약간 난처한 기색을 보이며 은근한 말투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이의 대답은 단호하였다. 《우리는 이미 각 도당과 지방에 파견된 정치공작원들에게 일제때 일하던 기술자, 전문가들도 모두 포섭할데 대한 과업을 주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낡은 인테리들을 다 쟁취할뿐아니라 새 인재들도 키우려고 합니다. 인재문제는 결국 우리의 손으로 새롭게 키워내는데 의해서만 종국적으로 해결될것입니다. 그 첫 사업으로서 얼마전에 김책동무가 담당한 공업전문학교 개교준비가 현재 순조롭게 진척되고있습니다. 계속해서 우리는 대학도 곧 내와야 합니다.》

그이의 말씀이 끝나자 오기섭은 대뜸 의아한 눈길로 그이를 쳐다보며 《대학을, 북조선에 내온단 말씀입니까?》하고 놀란 소리를 하였다.

《그렇습니다. 빠를수록 좋은데 지금 형편에서는 한 1년정도 걸리지 않을가 생각합니다.》

오기섭은 다시 놀라운 표정을 보이며 《1년입니까?》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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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왜 너무 늦다는것입니까?》 미소를 띠시며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그와 반대입니다.》 오기섭은 너그럽게 웃으시는 그이를 쳐다보며 뒤를 이었다. 《이미 알고계시겠지만 고등교육이란 보통교육을 적어도 10년이상 앞세우고 그다음에 시작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뒤를 채 맺지 않고 흐리마리해버리자 그이께서 즉시에 대답하시였다.

《그렇게 할수 없습니다. 우리는 현재까지만해도 너무나 멀리 뒤떨어졌습니다. 그런 조건에서 보통교육도 하고 고등교육도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장시간 론의한뒤에 얻게 된 결론이 인재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지체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대로 시기상조가 아닙니다. 해봅시다. 될수 있을것입니다.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것이 문제겠는데 그것은 우리가 찾아야 하고 만들기도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도 기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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