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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빛나는 아침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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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509회 작성일 20-06-05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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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jpg

6

 

날이 어두워져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박원식이 안내하는대로 평양역 대합실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대합실어구에 이르시니 숱한 사람들이 대합실안에서와 그 앞마당에서 춤판을 벌리고있었다. 한 열댓명은 가운데서 빙빙 돌면서 팔다리를 놀리고 그 두리에 하얗게 둘러앉아 손벽장단을 치고있다.

《깽매 깽매 깽매 쿵더쿵 덩덩》 꽹과리소리도 울린다. 한쪽옆에서는 석유상자를 두드려 북소리를 대신하고있다.

《노들강변 봄버들》이 한창이다.

《좋다!》

《좋지!》

주고받는 흥도 멋들어지다.

남녀로소가 어울려 돌아간다. 그가운데서도 젊은축들이 볼만하다. 버드나무가지를 들기도 하고 수건을 흔들기도 한다. 남정들이 곱살한 중년녀인 하나를 한쪽으로 슬슬 몰고가더니 어깨를 으시대며 추파를 던진다. 그통에 모두 좋다고 와야 환성을 지른다.

《해방이 좋다!》

《얼씨구 좋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군중들틈에 끼워 한참이나 흥겨운 춤판을 구경하시다가 박원식의 안내로 기관구쪽으로 질러가는 구내에 들어서시였다. 기관구에 먼저 들리시였다가 다음에 역으로 돌아나올 예정이시였다. 구내에는 여러 갈래로 뻗은 인입선들에 객차와 화물차방통이 무질서하게 널리고 어데서 무엇을 태우는지 연기가 뽀얗고 골탄내가 코를 찔렀다. 철길을 몇개 가로 건너가니 거기서는 화차 한대를 밀어내기 위해 사람들이 새까맣게 달라붙어있었다. 그가운데 세네사람은 불꽃이 탁탁 튕기는 기름방망이를 들고 《하나, 둘, 셋-》하고 구령을 치고있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있는지 보고갑시다.》

김일성동지께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복작거리는데로 다가가시였다. 그이께서는 기름불을 밝혀든 사나이에게 작업내용을 물으시였다.

《기관차 한대를 요행 수리했는데 그놈이 나오자니까 여기 철길이 막혀 굴러갈수가 있어야지요.》 하고 첫마디를 떼더니 역전에 나가 손님들을 한 50명 데려다가 공사를 벌렸다고 하였다. 지금 일하는 사람 가운데 철도로동자는 6명이 있고 자기는 기관차에 석탄과 물을 대는 탄수부라고 하였다.

설명을 들으시는 사이에도 목고를 먹이는 작업이 세번이나 거듭되였다. 화차를 떠밀어 10cm나 20cm 정도 차륜이 드티게 되면 그것이 되밀리지 않게 목데기를 고이고 다시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것이였다. 어느사이에 김책이도 박원식이도 어깨를 들이밀고 지레대를 들어올리였다. 《영차! 영차!》 어둠에 덮인 기관구앞 인입선에서 사람들이 힘을 합치는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하나, 둘, 셋!》하고 선소리를 치시면서 목데기를 들고계시다가 재빨리 차바퀴밑에 밀어넣군 하시였다. 밤이 들어 벌써 쌀쌀한 기운이 땅우에 감돌았지만 사람들의 얼굴에는 땀이 솟고 김이 서리였다. 이윽해서 화차방통은 한 10m구간 받침괴목을 댄 맨 땅을 지쳐나가다가 덜컥하고 궤도에 올라섰다.

《성공!》

《됐다. 올라섰다!》

사람들은 팔을 들어 흔들며 좋아하였다. 뒤이어 기름방망이의 신호에 따라서 화차를 다른 선으로 빼내고 기관차 한대가 《칙폭 칙폭》 힘차게 증기를 내불며 인입선을 빠져 역구내로 멀어져갔다.

《손님들! 이거 수고했습니다. 미안해요.》

기름방망이를 들었던 탄수부가 모자를 벗어들며 인사를 하였다. 그러자 기운차게 나가는 기관차를 보고있던 기차손님들이 제가끔 한마디씩 하였다.

《수고랄기 있소. 이거다 우리 일인데.》

《사흘이나 나흘을 기다렸다가도 우리 기차가 가니 좋기만 하웨다.》

《이를말이요. 아낙네들이 차표를 사기 위해 <황국신민의 선서>를 외우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소.》

《경찰이 보따리를 뒤지구 따귀를 치던건 어쩌구요.》

《철도에도 해방 만세지요. 하하하…》

김일성동지께서는 선로옆에 비켜서신채로 군중들이 설레이고 떠드는 광경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시였다. 종이로 석탄먼지와 기름이 발린 손을 닦으시면서 그이께서는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짙은 어둠만이 내리덮인 철도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시였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민의 기세이다.)

하고 그이께서는 자못 흐뭇한 기분에 잠겨 생각하시였다. (현실은 엄혹하다. 하지만 그것은 이겨낼만한것이다.) 이렇게 자신에게 타이르시였다.

그때 김책이 그이앞으로 다가서며 보선구 휴계실에 한명구기사가 있다는것을 알려드리였다.

《만납시다.》

발밑에서 자갈밟히는 소리가 소란스럽게 나는것을 들으시면서 그이께서는 거기서 얼마 멀지 않는곳에 있는 보선구쪽으로 건너가시였다.

《김책동무! 이자 그 탈선된 화차를 올려놓았을 때 기분이 어떠했습니까?》하고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저는 아까 덜커덕하고 방통이 철장에 올라설 때 가슴이 활짝 열리는것 같았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가다가 내려놓은것처럼 마음이 거뿐합니다.》

김책의 음성은 기쁨에 젖어있었다.

《나도 같은 생각입니다. 분명히 하나의 흐름이 시작되였습니다. 일을 도와준 기차손님들이 주고받는 말은 또 얼마나 좋습니까.》

이것은 하나의 흐름이라고 할수 있었다. 맑고 깨끗한 우리 인민들의 슬기와 열정이 하나의 물줄기가 되여 혼탁된 겉물을 떠밀고 흐르기 시작했다고 볼수 있었다. 기관차가 나갈 길을 틔워주기 위해 숱한 사람들이 어깨를 들이밀고 힘을 쓰고있고 사흘에 한대의 렬차가 떠나도 그것은 일제의 억압과 착취가 없는 우리의것이 되여 좋다고 하고있다. 혼란과 무질서, 이것은 겉에 뜬 탁류이고 그밑에서는 아직 눈에 잘 띄지 않을만치 희미한것이기는 하지만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고있다. 이런 흐름을 모아 제곬에 들여세우기만 하면 그것은 곧 대하를 이룰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지금 그 심오한 의미를 마음속깊이 새기고계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 휴계실에 들어서시였을 때 장방형으로 생긴 기다란 방안에는 청년들이 수십명 앉아있었다. 정면벽에는 백로지 여러장을 이어서 도표를 그려붙였다. 촉광이 낮은 뿌연 전등밑이여서 방안의 모든것이 잘 보이지 않았다.

《지금 한명구동무가 철길에 대한 강의를 하고있습니다.》

한걸음 앞섰던 박원식이 되돌아나오면서 김책에게 알리였다.

《그러면 좀 기다립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문밖으로 나오시며 《강의를 계속하라고 하시오.》하고 박원식의 등을 떠미시였다.

박원식이 되들어가자 중단되였던 강의가 계속되였다. 키가 크고 어깨가 쩍 벌어진 한명구는 손가락으로 그림을 짚어가며 설명을 하였다. 앞벽을 꽉 채울만치 크게 그린 직관물에는 기차의 차륜과 철길의 곡선이 그려져있는데 거기에는 단면도도 있고 평면도도 있었다.

《어떻게 되여 축에 고정된 량쪽바퀴가 곡선에서 생겨나는 각이한 길이, 여기 그림에 있는것처럼》 그는 손으로 반달형포물선을 찍으면서 설명하였다. 《한쪽은 짧고 한쪽은 긴데 바퀴가 선로에서 탈선되지 않는가, 그것은 차륜마찰부와 궤도의 생김새에 의해 해결되는데…》

《매우 흥미있소. 박원식동무는 저 원리를 알고있었소?》

그이께서는 한명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면서 물으시였다.

《모릅니다. 설명을 듣고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럴거요.》

잠시후 강의를 끝낸 한명구가 밖으로 나왔다. 김책은 김일성동지를 정치위원동지라고 소개하였다.

《동무는 좋은 일을 많이 하고있습니다.》

그이께서는 기름때가 묻은 작업복차림인 한명구를 진심으로 치하하시였다.

《그런데 한명구동무! 기관차나 화차를 수리하는것은 왜 보이지 않습니까. 지금 평양역에는 수백명의 손님들이 기차를 기다리며 묵고있습니다. 또 지방에서 쌀과 남새와 석탄이 들어오지 못해 평양시민들이 곤난을 받고있습니다.》

간곡한 말씀을 하시는데 갑자기 뭐라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한명구는 맞잡은 손을 연신 주물기만 하면서 묵묵히 서있었다.

《일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우선 먼저 기관차를 수리해야 합니다. 기관차를.》

이때 박원식이 한걸음 나서며 《이옆에 조용한 방이 있습니다.》하고 말씀올리였다.

《아니요.》하고나서 그이께서는 한명구의 어깨를 두드리시였다. 《동무의 방에 가봅시다. 평양철도국장방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되여 그이를 모신 일행은 평양역사와 맞붙은 국장 사무실로 가게 되였다. 역구내와 마당에는 아까처럼 그렇게 사람이 끓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직 발들여놓을 자리가 없었다. 그이께서는 한명구가 안내하는대로 홈을 지나서 철도국사무실로 걸어가시였다.

《그래 기관차수리와 화차수리는 왜 못하고있습니까?》

아까부터 한명구가 석연한 대답을 내놓기 거북해한다는것을 감촉하신 그이께서는 재차 물으시였다.

《기관차나 차량수리말입니까?》하고 한명구는 자신없이 되물었다. 이때 시선에는 괴로운 빛이 언뜩 지나갔다. 《정확한 대답을 올리자면 이루 헬수 없을 정도로 많은 품명과 애로를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본은 철제품이 없는것입니다. 산형강, 환강, 제동주철 등을 얻어올데가 없어 아무 일도 해낼수 없습니다. 다른 애로조건들은 모두 이 철제품이 마련된 다음에 론의할것들입니다.》

《결국은 강철! 강철이 없단말이지요.》하고 그이께서는 딱히 누구에게 묻는것도 아닌 나지막한 혼자말을 몇번이나 거듭하시였다.

그이를 모신 일행은 다시 걸음을 떼여 한쪽 밀문이 떨어져나간 철도국 사무실 현관에 들어섰다. 2층층계를 오르면서 김일성동지께서 다시 물으시였다.

《강철은 어데서 가져와야 합니까?》 조선에서 강철이라고 한다면 겸이포, 삼릉 제철과 청진, 성진, 강선 등일것이 명백하시였지만 그래도 어떤 다른 대답이 있을가 해서 물으시는것이였다.

《제일 가까운데가 여기 강선제강소입니다. 그러나 거기도 다른데와 마찬가지로 8. 15해방과 함께 로가 굳어지고말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한명구는 그이를 2층으로 통하는 층계쪽으로 안내해드리였다.

《여기서부터 보면서 갑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수송과》라는 명찰이 붙은 방문앞에 멈춰서시였다. 방안은 휑뎅그렁하니 비여있었다. 넓다란 방안에 10여개의 량수 또는 편수 책상이 놓이고 한쪽벽에는 주런이 전화가 걸려있었다. 책상은 삐뚤삐뚤 놓이고 걸상은 아무데나 널려있었다. 무질서한 방안정경은 평양철도국 수송과 관할에 드는 수많은 역들의 현실태가 그대로 펼쳐진듯 하였다.

《여기는 무슨 일을 보는 부서입니까?》 그이께서는 《운전과》라는 명찰이 붙은 다음방을 쳐다보면서 문가 한쪽에 비켜서있는 한명구에게 물으시였다.

《기관차와 객화차를 담당하고있습니다.》

방안에는 3명의 청년이 한쪽구석에 쌀가마니를 쌓고있다가 일제히 돌아서서 차렷자세를 취하였다.

《왜 사무실에 이런걸 들여놓소?》

한명구는 청년들에게 합숙에 가져가든지 아니면 창고에 넣든지 하지 않고 왜 이런데 끌어들이는가고 추궁하였다.

《한명구동무, 너무 시비를 하지 맙시다. 그래도 여기는 기관사들을 위한 식량을 가지고있습니다. 그것만 해도 다행한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한테 기관사가 몇명이나 있습니까?》

《기관사자격을 가진 사람은 평양에 한사람 있습니다.》

《단 한사람뿐이란 말입니까?》

그이께서는 단위를 헛갈리지 않았는가 해서 다시 물으시였다.

《그렇습니다. 원래 해방전에 북조선지역에 기관사자격을 받은 조선사람이 10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중 2명이 평양에 있었고 한사람은 고원, 다른 하나는 함흥에 있었습니다. 그외는 전부 조수들뿐입니다. 전쟁을 하면서부터 왜놈들은 기관조사까지도 일본놈을 위주로 쓰다가 정 바빠맞으니까 차츰 조선사람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평양기관구에서 운행하고있다는 6대의 기관차는 누가 운전하고있습니까?》

《조수들을 쓰고있습니다. 그러니까 탈선사고, 전복사고들이 빈번합니다.》

《여기 이 운전과의 과장은 지금 어데 있습니까?》

《없습니다.》

《임명할 사람이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래서 청진에 있던 저의 친구를 끌어다가 같이 일하자고 했는데 말썽이 많아 며칠전에 걷어치우고 가버렸습니다.》

《가버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뒤이어 공무과, 건설과, 서무과 등 사무실을 하나하나 다 돌아보시였다. 사정은 모두 앞서 본 운전과나 수송과와 어슷비슷하였다.

일행은 장군님을 모시고 국장실에 들어섰다. 그래도 국장실은 다른데 같지 않았다. 책상도 바로 놓이고 반들반들 윤이 나게 닦은 탁상전화기 2대가 제자리에 있었으며 한쪽구석에는 원탁에 물병도 놓여있었다. 그러나 역시 속속들이 침투하였던 시대적 풍조를 말끔히 가셔낼수가 없었던지 등화관제를 했던 시꺼먼 전등갓이 그대로 천정에 달려있고 문짝이 떨어진 철궤가 한쪽구석에 보기 흉하게 자리잡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방안차림이나 분위기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으시고 달도 없는 창밖을 내다보고계시였다.

《10명도 못된다!》하고 그이께서는 같은 말을 거듭 반복하시였다. 그러시다가 한명구가 서있는쪽을 향해 돌아서시였다. 《그래 한명구동무, 어떻게 하면 이 철도를 최단시일안으로 정상적으로 운행해낼수 있겠습니까?》

한참동안이나 대답이 없다가 한명구는 두손을 앞으로 돌려잡고 허리를 약간 굽히면서 말하였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는 국장사업을 못하겠습니다. 저번날 김책동지한테도 말했지만 저는 능력도 없고 수완도 없습니다.》

이렇게 전제한 다음 그는 그것을 빈틈없이 론증하였다.

현재 국산하 기관차 20대중 6대만이 성해있으며 그나마 기관사가 모자라고 통신선은 죄다 끊어졌다. 철길상태도 말이 아니여서 임의의 시각에 전복탈선사고가 일어날수 있는 위험이 조성되고있다. 객화차들이 파괴되여 짐이나 사람을 실어나를 형편이 못되며 기관차용 알탄이 없어 장작에다가 송탄유를 끼얹어 김을 올리는 형편이다. 철도종업원가운데서 60%가 각종 리유로 직무에서 리탈되였으며 현 인원도 식량을 구하러 자꾸 떠나가기에 점점 줄어들고있다.

《김책동지를 찾아가려고 했었는데 마침 잘됐습니다. 정치위원동지께서 잘 처리해주십시오. 장시간 설명했습니다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공업적 견지에서 요구는 각종 자재입니다. 경영상견지에서는 종업원에게 줄 식량입니다.》

《한가지 물읍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한동안 침울한 빛을 띠고계시다가 홀연 기분을 달리하시면서 국장쪽으로 한걸음 다가서시였다.

《어느 학교를 나왔습니까?》

《아끼다공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습니다.》

《학비는 누가 댔습니까?》

《일찌기 부모를 여의고 농사짓는 삼촌네 집에서 보통학교를 나오고 일본에 가서 신문배달을 하며 고학을 했습니다.》

김책이 보고한 그대로였다.

《국장동무!》 하고 그이께서는 한명구의 손목을 굳게 잡으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우리는 지금 정신을 똑똑히 차려야 합니다. 우리앞에 가로놓인 난관은 동무가 장시간 설명한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난관이 몇가지나 되며 얼마나 큰가 하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난관을 헤치고나갈 각오가 되여있는가 하는데 있는것입니다. 내 생각에는 능히 헤쳐나갈수 있다고 봅니다. 나는 이것을 굳게 믿고있습니다. 길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동무는 무엇때문에 일본사람들의 문전을 찾아다니며 신문을 팔았습니까. 어디 말해보시오. 기술을 배워서 왜놈들을 잘살게 하기 위해서였습니까? 아니면 그들에게 굴종하기 위해서입니까? 그래 우리의 이 곤난이 왜놈들에게 억압을 당하고 차별대우를 받던 그것보다 더 고통스럽다고야 할수 없지 않습니까. 또 이 곤난을 도피해서 가면 어데로 가겠습니까. 동무는 지식인이니까 여기에 책임적인 답변을 해야 합니다.》

대답이 없었다. 방안에는 무거운 공기가 떠돌았고 마치 들판의 어느 풀숲에서처럼 야무진 귀뚜라미소리만이 소란스럽게 들리였다. 한명구는 고개를 떨군채 움직이지 않았다.

《국장동무! 생각해보시오. 철도가 움직이지 않아 지금 만가을인데도 쌀값이 뛰여오르고있습니다. 그거나마 사기 힘듭니다. 이대로 버려두면 오래지 않아 온 평양시민이 굶게 됩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우린 국장동무에게 줄것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재도 식량도 우리 손엔 없습니다. 오직 우리는 국장동무의 가슴속에 차넘치는 애국심 그것밖에 바랄것이 없습니다. 조선사람이라는 단 하나의 리유때문에 왜놈들한테 차별대우를 받으며 입술을 짓씹어야 했던 전기기사인 당신을 쳐다보는외 방법이 없습니다. 한명구동무, 사정은 이렇습니다. 우리 서로 손을 잡고 함께 고생합시다.》

그이의 말씀은 한명구의 페부를 뚫고 갈피갈피 스며들었다. 묵묵히 서있는 한명구의 눈시울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는 자기 감정을 그대로 나타낼수 없었다. 믿고 요구하는데 비해 또 그만 못지 않게 난관이 쳐다보이고 그것이 이제 거침없이 불러오게 될 후과에 대한 책임이 두려웠던것이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이 자리에서 <걱정마십시오, 내가 다 해결하겠습니다.>한다든지 또 <잘되겠지요, 해봅시다.>하고 적당히 대답한다면 그것은 나자신을 속이는것으로 될것입니다.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나의 량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이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한명구를 측은하게 바라보시였다. 사실 그의 말대로 속에 없는 대답을 하거나 일시 모면을 위해 적당히 얼버무려 넘긴다면 그것은 하나의 큰 배신으로 될것이며 돌이킬수 없는 후과를 낳게 될것이다. 그이의 시선이 한명구의 어깨로부터 출입문쪽에 비켜선 박원식에게로 옮겨가더니 이윽해서 방안을 울릴만치 크게 말씀하시였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형편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도울수가 없습니다. 동무가 요구하는것의 백분의 하나도 주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최대의 성의와 책임감의 표시로서 저기에 서있는 저 박원식동무를 동무한테 맡기고 가겠습니다. 함께 고생하며 함께 풀어보시오. 박동무는 산에서 10년가까이 우리와 함께 싸운 좋은 동무입니다.》

한명구는 고개를 번쩍 들더니 앞에 서계신 김일성동지와 저쪽 문켠에 서있는 키가 늘씬한 박원식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인사를 나누고 서로 헤여졌다.

밤이 퍽 깊었다.

박원식을 떨궈둔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책이와 함께 역전광장으로 나오시였다. 소슬바람이 불어 옷섶을 흔들면서 홧홧 달아난 볼을 식히였다. 한참동안 말없이 걸으시였다.

(또 하루가 다 지나갔다.)하고 그이께서는 내심으로 생각하시면서 오늘에 있었던 인상적인 일들을 돌이켜보시였다. 신문배달을 하며 공부했다는 기술자, 그는 솔직하면서도 완강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간혹 실수가 있을수 있고 혹시 빗나갈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제길에 들어서기만 하면 무섭게 돌진할 그런 사람이다. 《국장사업을 못하겠다.》는 그의 심정을 충분히 리해하실수 있었다. 그앞에 너무나 아름찬 과제가 놓여있기때문인것이다.

《김책동무!》 하고 부르시며 김일성동지께서는 걸음을 멈추시였다.

김책이 이쪽을 쳐다보았다.

《지금 우리가 우선 무슨 문제를 해결해야 될것 같습니까?》

《하루속히 당조직을 내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옳습니다. 전적으로 옳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음성을 높이여 긍정하시였다. 그리고나서 계속하시였다. 《난 거기에다 또 한가지를 더 첨부하자는것입니다. 인재에 대한 전략을 세웁시다. 우리가 이미 산에서 예견했던것처럼 당은 정권을 세우고 인민무력을 창설하고 경제를 부흥시키는 그 모든 밑바탕에 인재문제를 내세우도록 합시다. 평양철도국은 텅 비여있습니다. 기관차에도 그것을 운전할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사무실은 다 비여있고 기관사가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기관사!》

그이께서는 주먹을 흔드시며 흥분해서 말씀하시였다. 김책은 가슴속에서 뜨거운것이 끓어오르는것을 어쩌지 못하였다. 그이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이라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경건하게 고개를 숙여보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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