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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푸른산악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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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5,071회 작성일 20-05-18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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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jpg

30 

 

모두의 눈앞에는 용암이 식어버린듯싶은 《사화산》들이 펼쳐져있었다. 그 앙상한 등판에 화석처럼 남아있는 나무그루터기들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여오르고 나팜탄과 소이탄의 발화물질과 뒤섞인 메마른 류황색가스가 그물거리며 채 죽지 않은 잔디풀마저 사정없이 녹여버린다.

1237. 3고지 정점에 오르신 그이께서는 반쯤 허물어진 전호에 들어서시여 푸른 연하속의 먼 산발로부터 우리측 고지들을 여겨보시다가 김재명이 들고있던 쌍안경을 받아드시였다.

최현이 놀래여 소리쳤다.

《장군님, 여긴 저격수들의 사격거리입니다.》

그이께서는 검누른 연기속의 해를 얼핏 보시였다. 쌍안경의 렌즈가 해빛에 반사되면 적의 포대경관측병과 저격수들이 알아볼것이고 그때면 몰박아 퍼붓는 사격이 있을것이다.

《음, 명심하겠소.》

그이께서는 조용히 웃으시며 쌍안경을 눈가에 가져가시였다.

공기를 째는 새된 휘파람소리같은것이 울리더니 전방 칼릉선쪽에서 벙끗하는 섬광이 일었다. 뒤이어 965고지부터 983. 1고지에 이르기까지의 전반고지들에서 요란한 폭음과 함께 화염과 비말이 솟구쳐올랐다.

그이께서는 포탄의 파렬지점으로부터 푸른 연하속에서 검게만 보이던 적의 산고지들이 손잡힐듯이 가까이 다가서는것을 보셨다.

그물처럼 처진 철조망들에 매여달린 빈 깡통들과 비맞은 위장포들을 전호에 널어놓은것까지 쨋쨋이 보였다.

하나의 잔디벽을 놓고 렌즈조절개를 돌려보시였다. 그 잔디벽에 위장그물이 씌워있고 자그마한 굴아구리같은데서 반디불같은것이 반짝이는것과 동시에 파란 연기가 폴싹 피여오르는것을 보시였다.

고지꼭대기로부터 30∼40m아래의 깎아지른듯 한 경사면에 자리잡은 잔디벽은 분명 땅크든가 75㎜ 직사포가 숨겨져있는것이다. 그러한 《불빛의 위장벽》은 연줄 나타났다.

우리측 고지들을 때리고있는 포탄이 거의나 그 잔디벽에서 날아오는것임을 알게 되셨다.

《저것이 직승기로 올려놓았다는 포들이요?》

그이의 음성은 거칠게 울렸다.

《저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머뭇머뭇하는 눈길들이 오가는 속에서 최현만은 알아차렸다.

《녜, 그놈의걸 없애보려고 해봤지만 곡사포와 박격포로는 안돼서… 지금 연구중입니다.》

《직사포로 갈기면 되지 않겠소.》

《직사포로?! 그러니 저 고지꼭대기들에 직사포를 올려놓고-》

《그렇소. 45㎜는 물론 76㎜까지 올려놓고 답새겨보자는거요.》

최현은 가슴이 후두두해졌다. 아직까지 고지꼭대기에 직사포를 올려놓고 싸웠다는것은 포병력사에도 교본에서도 들어보지도 못한 일이였으나 이 순간 그의 뇌리에는 통쾌한 반포전의 화폭이 펼쳐지며 숨까지 가빠올랐다.

《장군님, 해보겠습니다. 요전번 한 포병군관도 그 비슷한 소리를 했댔는데… 제가 그만… 멋있을것 같습니다.》

《합시다. 저놈의걸 까기 전에는 고지전사들이 머리조차 들지 못할것입니다.》

그이께서는 험한 단애의 경사면을 보시다가 입술을 깨무시였다.

《직사포들을 저 고지꼭대기들에까지 올려놓는다는것이 간단치 않을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고지와 나아가서는 전사들의 생사운명과 관련되는 문제요. 전사들에게 나의 이 말을 전하고… 올려보시오.》

《장군님, 우리 전사들은… 장군님의 가르치심이란걸 알면 어깨에 지고라도 오를것입니다.》

《고맙소.》

그이께서는 전호가의 둔덕으로 성큼 오르시였다.

《장군님, 위험합니다.》

최현의 부르짖음도 그이의 움직임을 막지 못했다.

쌍안경을 드신 그이께서는 1211고지앞의 깊숙한 골짜기와 그 뒤의 개활지에 초점을 맞추시였다.

1211고지부터 그 맞은편 적 고지까지의 사이는 방금 채벌을 끝낸 림지처럼 번번했다. 사이사이에 기복진 야산들과 둔덕만 없으면 휑한 공지처럼 보일것이다.

(한번에 3∼4천쯤은 능히 들이밀수 있다. 포병대와 항공대로 우리를 제압하고 전진포사격을 하며 달려든다면…)

릿지웨이와 밴플리트의 시점에서 생각해보셨다.

1211고지를 장악하면 좌우의 고지들은 내리사격의 화력속에 결박될것이고 비아리-곧은골, 가전리-이포리도로로의 땅크대의 진출에도 더이상 장애가 없어질것이다.

(그렇다. 그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곳을 단념할순 없다.)

그이께서는 지도를 찾으시며 미리 봐두신 펑퍼짐한 바위앞에 다가가셨다.

최현에게서 푸른색과 붉은색이 맞달린 색연필을 받아드신 그이께서는 김재명이 펼쳐놓은 네모박이 접이탁우의 지도와 적진을 한번 휘 살피시고서는 각종 부호표식과 등고선이 물결쳐간 지도우에 적의 공격방향을 의미하는 세개의 푸른 화살표를 진하게 쳐나가시였다. 세번째 선을 그어가실 때 색연필심이 뚝 부러져나갔다.

《그래 이처럼 될테지.》

그이께서는 부러진 연필심을 보시며 뜻밖의 웃음을 터치시고는 돌려잡으신 연필로 아군방어계선을 표시하는 치차형부호들을 2중3중으로 덧그으시였다.

좌우익측으로 뻗은 푸른 화살표앞에도 그러한 부호색인을 하신 그이께서는 가운데로 뻗은 화살표를 중심으로 커다란 원을 치시였다.

《여기, 여기서 결판이 날것이요.》

올가미처럼 쳐진 원은 1211고지 앞 골짜기를 둘러싸고있었다.

최현은 허리를 펴시는 그이의 상혈된 모습을 보면서 《여기》라고 하는 곳이 기본 격전장을 의미한다는것까지는 알았으나 후날 적들속에서 《함정골》로 불리우리라는데 대해서는 알수 없었다.

《알만 합니까?》

《네.》

《그렇습니다. 적은 앞으로도 바로 동무네 전선을, 바로 여기를 주타격대상으로 덤벼들것입니다.》

《장군님, 그러면 이번에도 우리쪽을 겨눈다는것입니까?》

《왜? 아직도 석연치 않은것이 있습니까? 놈들로서는 다른 길을 택할수 없습니다. 저만큼 산을 짓뭉개버리며 길을 닦았는데 이제 또 어디 다른 곳을 저렇게 만들자면 힘이 부치지요. 이렇게 볼 때 놈들로서도 괜찮은 결심이라고 봐야 할것입니다.》

그이께서는 옷자락을 바람에 날리시며 한동안 적진쪽을 응시하다가 말씀하시였다.

《지금 릿지웨이나 밴플리트는 물론 트루맨까지 모두가 여기에 명줄을 걸고 마지막도박을 벌리려 할것입니다. 도박에 미친 자들은 밑창이 다 드러날 때까지 엉뎅이를 떼지 못하는 버릇이 있지 않습니까.》

그이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허나 최현은 한번 비주룩이 웃었을뿐 흐려진 얼굴빛을 감추지 못하였다.

《장군님, 죄송합니다.》

《그건 무슨 소립니까?》

최현은 울상이 된 얼굴로 그이를 마주보았다.

《제가 지금 무슨 인사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라서… 하는 소립니다.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니 이젠 앞이 환히 열립니다만… 이 험지에 오시게 한것은 저의 죄책인것이구… 십수년넘게 장군님한테서 배웠으면서두 여긴가 저긴가 매삼쳤으니…  볼낯이 없습니다.》

《허허, 최현동무, 그런 면에서는 나도 매한가지입니다. 여긴가 저긴가… 이래서 전쟁이 어렵다는것이지요. 여하튼 최현동무가 앞이 환히 열린다니 기쁩니다.》

그이께서는 그만 내려가자고 하시며 또 한번《사화산》을 돌아보시였다.

《저 아래에선 진지작업을 합니까?》

《네, 새로 받은 152㎜곡사포진지를 굴설하고있습니다.》

《한번 만나보고싶구만.》

그이께서는 서산머리에 내려앉는 해를 보시며 아쉬운 기색으로 발길을 돌리시다가 파편자리가 희끗희끗한 바위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수많은 개미들이 커다란 벌레를 끌고 바위밑으로 기여가는것을 보시던 그이께서는 최현을 돌아보시였다.

《황영학의 굴간 너럭바위가 저 비슷한 암석입니까?》

《네, 무슨 규장석이라고 하던지, 그에 대해선 로병관동무가 박삽니다.》

《참, 그동문 지금 갱도건설장에 가있다지요?》

《네, 아예 거기 틀구앉아있습니다.》

《건 혹시 동무의 강권행사때문이 아니요? 전방에까지 늘 끌고나간다며?…》

《원, 무슨 말씀을. 하기사 제 잘못이 없지 않지요. 하지만 장군님을 만나뵈온 뒤부터는 제탓이라고 할수 없습니다.》

《허허, 그럼 내탓이라는거요?》

《그렇지요. 그 동문 군단갱도건설은 제가 맡는다는겁니다. 더구나 영학이네가 새로 맡아 뚫는 굴은 직접 제손으로 한다고 윽윽하는데 알고보니 사람이 괜찮습니다. 더구나 공부를 많이 해서인지 기술적문제에서는 제같은것은 물론 공병전문가들 못지 않게 밝습니다.》

《허허, 정말 반가운 소식입니다. 영학동무네걸 자기가 맡는다?… 좋은 일입니다. 사람은 어려운 때 알아보고 진짜배기 우정도 그런 때 검열된다는데 싸움판에서의 동지간의 사랑과 우정이 얼마나 큰 힘을 냅니까. 최현동문 그들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그런 사랑과 우정이 짙어지게 기름을 치시오.》

《장군님, 그러심… 영숙이를 이리로 데려오신것도 그때문입니까?》

《글쎄, 서로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만나면… 기쁜 일이 아니겠소.》

그이께서는 걸음을 옮기시려다 말고 바위옆 우묵진 곳에 담배꽁초와 노랗게 말라든 강냉이대들이 널려있는것에 시선을 주셨다.

《여기가 수송대원들의 중간휴식처이겠습니다?!》

《네, 그런것 같습니다. 폭탄파편이 미치지 않을수 있는 곳이니까.》

최현이 무슨 일일가 해서 눈을 두릿거리는데 그이께서는 껍질 벗긴 한쪽끝에 이자욱이 난 강냉이대를 집어드시였다.

아차, 최현은 서둘러 말씀드렸다.

《그건 전사들이 목추김용으로 들고다니는것입니다.》

《그럴테지요. 배고플 때도 씹고…》

그이께서는 아프신 눈길로 씹다만 강냉이대들을 여겨보시다가 고개를 돌리시였다.

《동무가 총정치국 부국장과 싸운건 이때문이 아닙니까?》

최현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장군님, 그… 그런것이 아니라… 제가 잘못했습니다.》

최현은 죄송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한채 《작은 김일》과의 다툼질을 대강 추려 말씀드렸다. 화선휴양소의 초과지급까지 문제시되였다는것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그만하라고 하셨다.

《그때 왜 나의 지시라는것을 말하지 못했소?》

최현은 가슴이 써늘해들었다.

《그 사람두… 후엔… 알았을겁니다.》

《그랬다면 나한테까지 올리쏘았겠소?》

《장군님, 그건 다 제 불찰입니다. 잘 말해줘야 하는걸… 요즘 머리가 좀 고장이 나서… 이젠 그런 일이 다시 없을것입니다. … 그런데-》

《그런데란 뭡니까?》

《제 잘못은 잘못이지만 쌀만은 꼭 풀어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전부요?》

《네, 배를 곯고서야 싸움을…》

《그만하시오.》

그이께서는 비분에 찬 눈길로 어딘가 먼 산발쪽을 보시다가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쌀문제에 대해선 더이상 신경을 쓰지 마시오. 그 동무들도 제 잘못을 알고있습니다. 이제 떡쌀도 보내주고 콩도 보내주려고 합니다.》

《아니 떡쌀까지두요?》

《최현동무, 전사들을 아끼고 위하는건… 이 나라 모든 부모들의 한결같은 심정이요. 난… 그들에게 뭘 더해줄수 없는것이 괴롭소.》

최현은 눈굽이 젖어들어 고개를 떨구었다.

지혜산기슭에 이르셨을 때 그이께서는 불당골어귀에 있는 몇채의 농가를 가리키며 사람들이 사는가고 물으시였다. 최현은 김만산로인과 그의 며느리가 이곳 어느 농가에 왔었다는것을 상기하며 그들과 철규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현인석이라는 전사의 생남소식까지 죄다 말씀드렸다.

그이께서는 철규의 《결혼식》에 무척 흥미를 보이시였다.

《그러니 만산로인이 <며느리>를 데리고온것은 아이를 받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그것이겠습니다.》

《네, 더구나 그가 든 집에서 하루밤새 아이를 만들었다는걸 알고 억지다짐의 <결혼식>을 시켰다는것 같습니다. 다들 미국놈들과 대를 이어 싸울 자식들을 만든다는것이지요.》

《허허, 정말 희한한 이야기입니다. 대를 이어 싸운다?!

최현동무, 미국놈들이 이런 사실을 안다면 어떨것 같습니까?》

그이께서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농가들을 굽어보시다가 만산로인이 들렸던 집에 가보자고 하시였다.

《참, 법동소리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동무네 군단에 장천일이라는 운전사가 있을텐데… 모릅니까?》

최현은 꿈쩍 놀랬다.

《아니 그를 어떻게 아십니까.

그 동문 제가 입대시켰댔습니다.》

《동무가? 그에 대해 좀 들어봅시다.》

최현은 당황해졌다. 군단안전부에서 제기된 《미해명건》을 다시 알아보지 못한것이 후회되였다. 그이께서 어떻게 되여 장천일에 대해 아실가 하는 의문속에서 그를 알게 된 경위로부터 《미해명건》까지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고개를 기웃하시였다.

《그러니 아직 그 동무의 <미해명건>이 어찌되였는지 모른다 그말입니까?》

《네, 싸움에 다몰리다나니 잊었댔습니다. 이제 알아보고 틈이 생기면 그와 공병 몇동무를 그 유물은닉장소에 보내겠습니다.》

《내가 허가이동무한테도 부탁을 했더랬는데 한번 알아보시오. 한데 그가 적을 한차 싣고 온데 대해 표창을 주었습니까?》

《그땐 미처… 그런데까진…》

《잘못되였습니다.》

그이께서는 손에 들고있던 싸리대로 발치의 풀을 후려치셨다.

최현의 송구스러워 하는 기색을 보시고 재차 말씀하시였다.

《물론 안전부동무들의 <미해명건>이 있는 이상 입당이다, 복당이다 마구 결정할수는 없지만 공로는 공로대로 평가해야 할것이 아닙니까.》

《알겠습니다. 좀 늦긴 했지만 그때의 공로를 놓고 수훈문제를 제기하겠습니다.》

《그래 주오. 난 그 동무의 편지를 보았는데… 믿고싶었습니다.》

《장군님, 제가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필요하다면 복당보증인이 되겠습니다.》

《동무가 보증할 정도라면 나도 보증인이 되겠습니다.》

최현의 부관이 달려왔다.

《최고사령관동지, 찾았습니다. 저기 지붕에 고추꿰미를 널어놓은 집입니다.》

《주인들은 있소?》

《집의 아버님은 전선원호대로 아침에 나갔는데 아직 오지 않았고 어머님은 감자캐러 나갔답니다. 몸풀이 한 녀자가… 아이한테 젖을 먹이고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아쉬운 기색으로 최현을 돌아보시였다.

《젖먹이시간에 방해를 놀순 없고… 어느 집이든 한번 들려봅시다.》

산기슭을 내려 처음으로 부닥치게 된 집에 들어서시였다.

울타리는 물론 집문까지 활 열어젖힌 마당에서 헤쳐진 조단을 모으고있던 채수염을 한 로인이 무슨 일인가 하고 보다가 《어이쿠》하며 일어섰다.

《아니, 장군님이, 장군님이 분명하시지요?!》

로인은 꺼꾸러지듯 달려오다가 풀썩 꿇어앉으며 절을 하였다.

《아니 로인님이 이러시면 어쩝니까.》

그이께서는 황급히 로인을 일으켜세우셨다.

최현은 그이께서 로인과 나누시는 말씀을 들으며 자기는 언제 한번 이런 집에 찾아들지 못했다는것을 새삼스럽게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아침식사를 치르었던 대피처의 반토굴에 이르니 지난밤까지 고열속에 있다던 황역학이 와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너무나 뜻밖이신듯 걸음까지 멈추시였다.

최현은 가슴이 조밋해졌다. 황영학의 동작이 눈에 거슬렸던것이다. 담당간호원과 영숙의 손길을 뿌리치며 일어설 때만 해도 꼿꼿하던 황영학이 그이앞에 이르렀을 때는 흔들린 몰골이였던것이다.

거수경례를 붙인 손은 화들화들 떨고… 눈은 뿌옇고… 창백한 얼굴엔 땀줄기가 섰다.

《최고사령관동지! 52사 련대장 황영학은…》

《됐소, 됐소!》

최현은 고개를 돌려 외면하였다.

《장군님!》하는 황소영각같은 웨침과 함께 영학은 그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고 그이께서는 영학의 어깨며 잔등을 황급히 어루쓸며 《에이, 약골이 됐군.》하시는데 그 음성도 젖어있었다.

《장군님 죄송합니다.》

《그래, 내앞에서는 앓는것도 죄지.》

《장군님, 전 그래서가 아니라-》

《됐소, 이렇게 만났으면 기쁜 소리만 있어야지.》

그이께서는 저릿한 눈길로 영학을 보시다가 고개를 돌리시였다.

눈이 올롱해 쳐다보는 간호원의 시선과 부딪쳤다.

《담당간호원이요?》

《옛, 사단군의소 간호원 정미순.》

처녀의 목소리가 얼마나 맑고 챙챙하게 울리였던지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피였다. 눈물범벅의 황영학이 서둘러 말씀드렸다.

《장군님, 이 동문 저의 박격포소대장 김철규동무의 애인입니다.》

《그럼 만산로인의 며느리된다는-》

《네, 시아버님되는분이 김만산이라고 했습니다.》

《철규동무의 애인이라? 잔치를 여기서 했다지.》

그이의 웃음어린 눈길에 미순은 《아이-》하며 입을 싸쥐다말고 차렷자세를 취했다.

《장군님, 저와 철규오빠는 전쟁이 끝난 다음 진짜 결혼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럼 시아버님 되시는분이 했다는 말은 꽝폰가?》

《저… 철규오빠는… 련습이라고 했습니다.》

《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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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련습?! 허, 결혼식에도 련습이라는것이 있나?》

《아이, 아닙니다. 그저 어머님과 아버님이랑… 그러라고 해서-》

《뭘, 철규동무와 가까이 있고싶어 여기 떨어졌는데두-》

《장군님, 그… 그래서가 아닙니다. 전… 미국놈을 한시바삐 쳐물리치기 위해서.》

《그래, 그렇지, 그렇구말구.》

그이께서는 간호원의 잔등을 가볍게 다독여주시며 만족한 기색으로 최현을 보시였다.

《군단장동무, 이러구보니 여긴… 가까운 사람들이 다 모이는 곳이구만.》

《그렇습니다. 부대들에서 보면 아버지와 아들이 한전호에서 싸우기도 하고… 요즈음은 법동로인처럼 먼곳에서 지원물자를 가지고 아들과 동생을 만나려 부지기수로 옵니다.》

《그래, 그렇소. 하긴 전선원호대만이 아니라 온 나라가 여기에 마음을 쓰고있는셈이지.》

그이께서는 감개무량한 기색으로 전방하늘가를 바라보시였다.

저녁해의 락조가 검황색구름들을 이글이글 타는 불덩이처럼 만들었다. 그 사이로 이날의 주간폭격을 마치고 돌아가는 적기들의 동체가 점점이 번뜩거렸다.

멀리서 저녁식사시간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울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만 떠나시겠다고 하시며 정미순과도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고 하시였다. 미순은 어이없게도 진짜 결혼식때에 장군님을 모시겠다고 했다. 차에 오르신 김일성동지께서는 황영학의 모습이 멀리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냥 돌아보시였다.

《저 영학동무의 상처는 언제면 아물것 같소?》

《군의들은 보름정도면 완쾌될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니, 내 묻는건 그 동무의 마음속상처라고 할가, 그때문이요.》

최현은 부러 헌헌한 태도를 지었다.

《그 대우산때의 상처는 오늘로서 깨끗이 아물었을겁니다. 더구나 영숙이까지 가까이 있으니 한결 위안이 될겁니다.》

조용히 잦아내리던 어스름이 금강다리가까이 이르렀을 때는 캄캄한 장막을 펼쳤다. 굽어진 골짜기의 대피처쪽에 이르렀을 때 옛날 물장사군들처럼 멜대 량쪽에 물통을 진 녀성군인 너덧이 걸음을 멈춘채 차들을 지켜보고있었다.

《저 동무들이 그 이름짜한 녀성고사총소대원들이 아니요?》

《그렇습니다.》

《차를 세우오.》

넉대의 군용승용차가 거의 동시에 멎어서는것을 본 《물지게군》들은 공정수와 호위군관이 달려가 뭔가 말하자 우르르 밀려와 일렬횡대로 섰다. 최현이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그들앞에 다가가자 한 녀성군인이 《차렷》구령을 치고는 규정영접보고를 하는데 그이께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권위원동지!》라고 하는것이였다.

최현이 슴새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채 공정수에게 눈총을 놓자 정수는 응당 그렇게 알려줘야 한다는 식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에 전혀 내색하지 않고 싸움은 어떻게 하고 앓는 사람은 없는가 하고 자상히 물으시였다.

최현은 그전에 만났던 《독가시》라는 처녀가 없는가 하여 살폈으나 보이지 않았다.

김일성동지를 끝내 알아보지 못한 처녀들은 그이께서 그만 헤여지자고 하실 때도 《당중앙위원회 전권위원동지!》라고 하며 자기들의 위용을 돋보이려는듯 씩씩한 자세로 거수경례를 붙였다.

《다들 이만저만이 아니구만.》

차에 오르신 그이께서는 못내 만족하신 기색이였다.

《장군님이시란걸 알리면 더 좋았을것인데.》

최현은 그 말을 하다말고 창밖에 언듯 비껴드는 그림자에 시선을 몰박았다. 키높은 나무들을 등진 길녘에 두사람이 서있는가싶었는데 한명은 어데론가 숨어버리고 잔등에 아이를 업은 녀인만이 반쯤 고개를 수그리고 서있었다. 무슨 일인지 녀인의 잔등에 업힌 아이가 바스러지는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야!-》 하는 소리가 애처로왔다.

《차를 세우시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최현은 후발차에서 뛰여내린 호위군관들이 숲속으로 사라졌던 《유령》과 함께 나오는것을 보고 차에서 내렸다. 그 《유령》은 단발머리의 녀성군인이였는데 기광스럽게 울어대던 아이는 그 단발머리를 보기 바쁘게 《엄마야!-》하고 소리쳤다. 최현이 단발머리앞에 이르자 《엄마야!-》하는 소리가 더 커졌다.

《에그, 엄마는 무슨 엄마. 아지미지.》

아이를 업은 녀인의 동작이 이상스러웠다.

단발머리는 무슨 큰 죄나 저지른듯 고개도 못 들고있었다.

《방금 들려본 고사총중대의 분대장이랍니다.》

자기 부관이 하는 말에 최현은 언짢게 눈을 찌프렸다.

《동문?》

이 말을 떼다가 깜짝 놀랐다. 하마트면 《독가시》라는 소리가 터져나올번 하였다.

《날 모르겠니?》

《압니다. 고사총분대장 마정옥!》

규정보고를 하는 그는 이전날의 밝던 모습과는 판다른 모습이였다.

《여긴 왜 있소?》

《저, 이모가 면회를 와서.》

《한데 숨긴 왜 숨나, 어서 가보라구.》

《네.》

마정옥의 목소리는 겨우 들릴정도였다. 아이의 울음이 뚝 그쳤다. 《엄마야!》를 웨치던 아이는 건빵인지 과자인지를 꼭 쥐고 그것을 가져다준 김재명의 뒤모습을 마록마록 보고있었다.

차에 오른 최현은 마정옥에 대해 아는껏 말씀드렸다. 장천일이 마정옥과 어색스럽게 마주섰던 일이 떠올랐으나 그에 대해서는 스쳐버리고말았다.

그의 이야기를 흥미있게 들으시던 그이께서 불쑥 물으시였다.

《그런데 그 쳐녀의 이모가 진짜 애기엄마인지 알아봤소? 그애는 줄곧 그 녀성군인한테 엄마소리를 하던것 같던데.》

《네, 갓난애니까 엄마를 오낄수 있겠지요. 원래 그 처녀가 무척 곱다나니 아이들은 자연 따를수밖에 없을것입니다.》

《아니, 내 보기엔 그렇지 않소. 아이엄마들이 처녀로 가장하고 입대하는 일도 있잖소.》

최현은 신교리에서 김일성동지와 헤여졌다. 최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차에서 내리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정겹게 여겨보시다가 《한번 안아보기요.》라고 하시며 그의 어깨를 그러안으시였다.

최현은 눈물이 콱 솟구쳤다.

《장군님, 두번 다시 이런 험지에 나오지 말아주십시오.》

《내 걱정은 마오. 앓지 말고… 전화도 자주 걸어주고… 부탁하오.》

《장군님, 1211고지는 념려말아주십시오.》

군단지휘부까지 오는 로정에서 최현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였다. 황영숙이 마정옥이를 알고있다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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