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푸른산악 14 & 15 > 통일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통일게시판

장편소설 푸른산악 14 & 15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8,562회 작성일 20-05-03 20:16

본문

01.jpg


14 

 

△ 도꾜 유엔군사령관 매트 비 릿지웨이 친전

《펀치볼》지대의 폭우는 8월 중순을 기해 멎을것으로 관측됨.

현지정찰과 지휘관들의 보고에 의하면 일체 기동로들이 물에 잠긴 조건에서 땅크의 진출이 불허되는바 공격날자를 하루 미룰것을 요망함.

미8군사령관 밴플리트대장

 

△ 미8군사령관 밴플리트대장 친전

귀관의 제의를 수락한다.

적 수뇌부의 혼돈을 야기시키기 위한 작전을 보다 심화시킬것.

그를 위해 첫째, 전선서부에 대한 공격을 8월 15일, 8월 16일 량일에 걸쳐 적극 심화시킬것인바 전선예비대들까지 전부 1선에 진출시킬것이다.

둘째, 북조선의 수도 평양을 비롯한 중요도시들과 남북간의 철도와 교량에 대한 공습을 상기한 8월 15일을 전후하여 대거 진행함으로써 정전담판에서의 우리측 요구에 불응하는 대가가 참혹한 징벌로 된다는것을 적수뇌부와 국민들이 깨닫도록 할것이다.

셋째, 내외의 여론을 고려하여 정전담판을 당분간 계속하되 우리의 요구를 강행타결시키는 방향에서 완강성과 의지력을 발휘하며 조중측이 계속 자기 주장을 고집하는 경우 정전담판에 대해 우리가 더이상 기대를 걸지 않는다는것과 결과는 전선서부에 대한 공략작전으로 막을 연다는것을 공포속에 느끼도록 할것이다.

유엔군사령관 매트 비 릿지웨이


 

15

 

남일은 문기척소리가 나기 바쁘게 《녜》하고 소리쳤다.

들어서는 사람은 강성찬이였다. 그의 손에 들린것이 외신자료들과 신문들임을 알아본 남일은 마뜩지 않는 눈길로 강성찬을 보았다.

《아직… 소식이 없습니까?》

강성찬이 조심스럽게 건네는 물음에 남일은 이마살만 찌프렸을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강성찬의 어깨가 축 처져내렸다.

《방금 받은 정찰보고에 의하면 철원 서남쪽 미9군단의 한개 사단이 전선서부로 기동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기동이 아니라 그놈들은 이미 전투에 진입했소. 그것도 전선서부에 대한 공격자료요?》

남일의 불만스러운 눈길이 강성찬의 손에 들린 외신자료와 신문에 멎자 강성찬은 부르튼 기색이였다.

《이건 총참모장동지와 관계된걸 따로 골라온건데 방금 기통수로부터 받아가지고 오는 길입니다.》

《뭣이… 그가 어떻게 왔다오?》

《떠나긴 아침에 떠났는데 폭격이 어찌나 심한지 가루개방공호에 갇혀있다가 이제사 겨우 왔답니다.》

《길들은?》

《엉망이랍니다. 그 동무야 모터찌클을 타고왔으니까-》

《오는 도중에… 차들을 보지 못했다오?》

《못봤답니다.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면 교외의 어느 대피처에 계실수 있지 않겠습니까.》

《으음.》

8. 15해방 6주년 기념보고회에 가신 김일성동지께서 대회장을 떠나셨다고 한때로부터 한시간이 지났건만 그이께서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으시는것이다.

지금 평양상공엔 80여대의 적기들이 날아치며 초토화폭격을 들이대고있다.

《바쁜 일이 없으면 게 좀 앉소. 그러지 않아도 동무를 찾을가 했소.》

남일은 지꿎게 감겨도는 불안을 지우지 못한채 강성찬에게 의자를 가리켜보였다.

《무슨 일때문입니까?》

엉거주춤이 의자에 앉던 강성찬은 남일의 앞상우에 펼쳐져있는 지도를 보자 눈이 떼꾼해졌다.

《이건 최현동지의 군단장결심지도가 아닙니까?》

《그렇소. 그걸 놓고 좀 토론해 보자는거요.》

《아니 총참모장동지한테는 지금 이것이 기본문제라고 생각됩니까?》

《그것까지 토론해보자는거요.》

남일은 지난 새벽에 개성을 떠나왔다.

원래는 8월 10일 밤으로 떠나려고 했다. 담판은 깨여졌고 《주사위는 던져 졌다》고 판단했기때문이였다.

그날 회담장에 나온 터너 죠이는 처음부터 건방진 자세를 보이며 의안순서를 다시 정하자고 했다.

이미 합의된 의안순서를 다시 뒤집으려는것 자체가 명백한 도전이고 우롱이였다. 남일은 치미는 분노를 억제할수 없었으나 왈가왈부의 론쟁을 피하기 위하여 쌍방의 기본의안으로 되여있던 군사분계선문제와 관련된 우리측 립장을 근기있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설명은 도중에서 무참히 짓눌렸다.

《그만, 듣기 싫다.》

터너 죠이의 악청에 이어 수원들속에서 미묘한 웃음이 오갔다.

남일은 그때까지도 외교적례절을 잃지 않았다.

《진짜 들을 생각이 없는가?》

《없다.》

《그런가.》

남일은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의 움켜쥔 주먹이 책상우에 올라감과 함께 터너 죠이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고 그때부터 두사람사이에는 말없는 눈싸움이 시작되였다.

장내에는 숨소리 하나 없었고 바깥창문가에 몰켜섰던 기자들도 얼어 붙은듯 굳어져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터너 죠이의 얼굴에 진땀이 내배기 시작하고… 드디여 손을 젓더니 부들부들 떨며 일어섰다.

이렇게 되자 바깥 기자들속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남일은 숙소에 돌아와서야 그 소란이 무엇때문에 일어났는가를 알게 되였다.

남일과 터너 죠이의 눈싸움을 《눈과 눈의 2시간 11분간의 격전》으로 묘사한 일본인 기자의 말이 시발로 되였다.

남일의 눈총이 최면술이였다거니 반대로 터너 죠이가 이겨내지 못한것은 습하고 무더운 날씨탓이라거니 하는 분석들속에서 하나같이 일치되는것은 《터너 죠이가 녹카우드》를 당했다는것과 수석급회담은 더이상 진척될수 없으리라는 예측들이였다. 예측은 저녁녘에 사실로 확인되였다.

《<유엔군>측은 수석급회담을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까지 미루기로 한다.》는 전화통지문이 날아왔던것이다. 남일로서는 이미전부터 예견한 일이였다. 하여 그는 즉시 김일성동지께 전화를 걸어 사태가 이렇게 번져진 이상 놈들의 책동을 폭로단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개성에서 떠났으면 한다는 속심을 말씀드렸다. 하지만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감정에 따를것이 아니라 대의를 생각해야 한다고 하시며 때릴것은 때리되 담판을 위한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고 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남일은 그냥 개성에 눌러앉게 되였고 다음날부터 개시된 전선서부에 대한 공격이 김일성동지께서 예측하신 《공세》의 서막이라는것을 알면서도 아래급성원들로 된 소위원회운영을 계속하게끔 타결시켰다. 차수로 스물한번째로 되는 회의는 바로 오늘인 8월 15일부터 개최하기로 되였다. 그런데 이 준비사업토론때문에 지난밤 늦어서야 자리에 들어 한두시간정도 눈을 붙였을가말가할 때 그는 뜻밖의 폭음에 깨여 나게 되였다. 남일은 얼마전에도 숙소부근에 대한 적의 공습이 있었던것을 상기하며 그 비슷한 도발행위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였다. 개성일대와 교외의 우리측 진지들에 적의 포사격이 진행되고있었던것이다. 정전담판이래 처음 있는 일이였다.

개성지구는 국제법상의 《중립지역》으로 되여 이 지구에 대한 로골적인 공격행위만은 삼가하고 있던 적들이였다. 그전번 숙소폭격도 또 드문히 있는 소적침습들도 리승만군의 개별적군인들의 소위로 둘러대면서 《준법례절》을 념불처럼 외우군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비슷한 변명이나 념불도 없었다. 남일도 구태여 들을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건지리로 들어서는 길에서 그에 대한 대답을 듣게 되였다.

도꾜방송으로 불어대는 《유엔군》대변인의 시사론평을 통해서였다. 그 시사론평에서는 정전담판에 림하는 공산군측의 무성의한 태도에 더 이상 아량과 인내성을 보일수 없으니만치 《유엔군》측은 이에 대처한 방안을 따르지 않을수 없다는것과 그로부터 빚어지는 후과와 책임은 전적으로 남일과 그 지도부가 지게 될것이라는 으름장절반의 내용이 언급되였다.

남일로서는 통탄할 일이였으나 통탄으로만 끝날 일이 아니였다. 세계여론에 환기될 잡음과 후과도 생각하게 되였고 정전담판 수석대표로서의 사명과 임무를 제대로 수행 못한듯 한 자책감도 없지 않았다.

그가 건지리에 도착했을 때 김일성동지께서는 8. 15해방기념보고회차로 평양으로 떠나시려 하던중이였고 전투복차림을 한 최용건은 전선서부군단으로 내려간다고 했다. 최용건이 전선서부로 가는것이야말로 그곳 사태의 엄중성에 대한 말없는 시사처럼 느껴졌다.

반갑게 그를 맞으시는 김일성동지의 안색에서도 여느 때 없는 긴장을 느끼게 되였다.

그이께서 적들이 사단급이상을 투입한 지점들이라고 하시며 작전지도의 푸른 화살표들을 가리켜 보이실 때 남일은 숨이 꺽 막혀들었다. 적의 공격은 한두개 지점에 대한 쐐기식돌파가 아니라 전선서부전체를 일격에 무너뜨리려는 전면강행공격이였다.

(그렇다면 적들의 주타격방향이 달라진것이 아닌가.)

남일이 그에 대해 묻자 김일성동지께서는 유심히 그를 보시다가 머리를 저으시였다.

《그에 대해서는 동무가 이제 알아보고 판단하오. 여기 있던 우리들은 포화상태에 빠져있다 하고 새로운 눈으로 한번 분석해보라는거요.》

이렇게 말씀하신 그이께서는 전선전반상태를 료해할것과 최현군단장의 결심지도를 검토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내가 돌아온 다음 구체적으로 토론해봅시다.》

남일은 그 토론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았으나 그때로부터 여섯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명백한 결론을 얻을수 없었다. 한가지 명백한것은 최현군단장의 결심지도에 대한 검토가 2군단작전계획에만 한정된것이 아니라는것과 그에 앞서 전쟁과 작전의 영원한 주제로 되고 있는 주타격방향문제가 다시 제기되였다는것뿐이였다.

그는 강성찬의 의문어린 눈길을 느끼며 진종일 안고 돌던 생각을 되짚어보며 말을 떼였다.

《최현동문 2군단 단독으로 적을 막을 의향을 제기했소. 그럼 가능한가. 이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자는거요.》

《심중한 문제군요.》

《그렇소. 한데 장군님께서는 최현동무의 제의를 수락하신것 같소. 6군단을 되돌려보내자는것도.》

《네?!-》

강성찬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6군단이야 현재까지 계속 최현동지네쪽으로 움직이고있잖습니까. 》

《그건 사실이요. 수락하신것도 사실같고… 그러니 이 지도검토란 6군단을 되돌려보내는가 마는가 하는데서 결정적인 작용을 놀게 되는것이요. 어떻소?》

《그거야 명백하지 않습니까. 지금처럼 적들이 서부에만 집중된다면 별문제겠지만 예정했던대로 최현동지네쪽을 찌른다면… 몹시 어려울것입니다.》

《내가 듣자는건 견뎌내겠는가 무너지겠는가 이것이요.》

이 며칠동안 남일은 산악전과 관련된 글을 거의나 다 읽었다.

보위성안의것은 물론 국립도서관의 서가에까지 사람들을 보내서 구해온 로문판, 일문판의 책들을 통해 산악전에 대한 제반 경험들과 리론들을 통털어 파보게 되였는데 이 과정을 통해 그는 산악방어에 대한 장군님의 독창적인 사상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였다.

일반 군사가들, 특히 현대 산악전리론의 대가라고 하는 죤 듀웨리는 산악공격의 유리성을 놓고 시계와 사계가 제한을 받는 산악에서는 적진에 대한 불의적이면서 은밀한 접근이 용이할뿐만아니라 골짜기나 릉선의 빈 공간을 에돌아 적을 재빨리 우회포위할수 있다는것, 이렇게 불의적인 공격을 받거나 우회포위당한 대방은 보급로가 막힌 조건에서 필연적으로 쇠진소멸될수 밖에 없다는것을 법칙적인것으로 론증하였는데 장군님께서는 매 고지와 릉선, 돌출부마다 원형식참호체계를 갖추고 그러한 참호체계를 종횡으로 여러겹 쌓는것으로 그 유리성을 깨뜨려버리는 전법을 세워주셨던것이다.

그런데 최현의 결심지도에는 장군님께서 가르치신 산악방어의 초보적요구조차 반영되지 못하고있었다. 가장 치명적이라고 보게 된것은 《매 고지와 릉선, 돌출부마다》진지를 꾸려야 하겠는데 현재의 지도에서 보면 주요릉선과 잠재적고지라고 인정되는 곳에만 방어진지들이 배치되여있는것이였다.

남일로서 더욱 모대김치게 된것은 이러한 《약점》이 최현이나 군단참모부일군들의 착오나 무지에서 온것이 아니라는데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인원과 화력기재의 절대적부족에서 오는 림시방편일것이였다.

이렇게 볼 때 6군단은 반드시 그리로 가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지만 지금의 전선정황이 보여주는것처럼 적들이 계속 서부를 맹타한다면 며칠안으로 그곳 전선서부가 무너질것이다.

이로하여 남일은 심산유곡에서 방황하는 나그네의 심정이 되였고 구경에는 강성찬에게까지 방조를 청하지 않으면 안된것이다.

그는 지도상에서 보는 전선과 육안으로 직접 보게 되는 전선이 다르며 리론적인것과 실천적인것 사이에도 일정한 차이가 있음을 잘 알고있었다.

《제 생각을 솔직히 말하랍니까? 괜한 얘긴지는 모르겠지만 전… 우리의 비밀이 적잖게 새나가고있는 사실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남일은 이마살을 찌프렸다. 전쟁초기부터 우리의 중요작전비밀이 새여나갔다는것은 거의 모두가 알고있는 사실이다.

《… 참 오늘 새벽 장군님께서 박정덕동무네 4군단 일부를 전선서부쪽으로 진출시키신걸 알겠지요?》

《알고있소.》

《그렇다면 명백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적들로서는 자기네 기도를 알아차린 우리가 전선동부에 힘을 넣는걸 알고 주타격방향을 전선서부로 바꾼거구 장군님께서도 그걸 내다보시고 4군단의 일부를 전선서부로 내보내게 하셨다 그말인가?》

《녜, 그렇긴 하지만… 아직까지 장군님께서 판단하신것이 달리된 일이 없어서… 사실 총참모장동지를 만나려고 온것도 이걸 알고싶었던때문입니다.》

《흠.》

남일은 자기도 이 비슷한 생각속에서 앉은방아를 찧었음을 쓰겁게 돌이켜보았다.

《근데 무전수로는 누가 따라갔는지 모르오?》

《영숙동무가 갔습니다.》

남일이 무엇때문에 그에 대해 묻는가를 알아차린 강성찬은 풀기없이 말을 이었다.

《그 동문들 어쩔수 없을것입니다. 적기들이 날치는 속에서 전파를 날렸다간 집중폭격속에 들테니까요.》

《그렇지.》

남일은 시계를 보며 호위처와 련결된 전화를 들었다. 바로 그때 그옆에 놓인 전화통에서 호출신호가 울렸다.

남일은 성급히 송수화기를 바꿔들었다. 건지리입구초소의 보초병에게서 온 전화였다. 기쁨을 금치 못한 목소리가 진동판을 울렸다.

《총참모장동지십니까. 장군님께서 타신 차가 통과했습니다. 교환대에서 인차 바꿔주지 않아서… 좀 지체했습니다.》

《차들은 다 일없고?…》

《네. 인계받은 수자와 같습니다. 》

《좋소. 이제 교대하면 동무네 소대장한테 말하오. 내가 동무에게 총참모장의 권한으로 감사를 주었다고, 정말 고맙소.

장군님께서 오시오!》

남일이 목걸개를 채우며 거울앞에 다가갈 때 승용차의 경적소리가 울렸다.

남일은 정신없이 문밖으로 달려나갔다.

김일성동지께서 총참모부로 직판 오시기는 극히 드문 일이였다.

그이께서는 총참모부 직일관의 영접보고를 받고계셨다. 건지리를 떠나실 때만 해도 구김살 하나 없이 산뜻하던 그이의 백색아마직양복에는 재가루가 뽀얗게 내려앉아있었다. 만날 때면 늘 보이군 하시던 환한 미소도 없었다.

《그동안 달라진 정황은 없었소?》

그이께서는 남일을 보기 바쁘게 이 질문부터 하셨다. 남일로서는 오늘 네번째로 받게 되는 질문이였다. 처음은 그이께서 내각에 들리셨을 때이고 두번째와 세번째는 대회장에서 걸어오신 전화를 통해서였다.

남일은 강성찬이 찾아들기 전에 만났던 최용건과의 전화대화를 상기하며 말씀드렸다.

《아직까진 한걸음의 퇴각도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무방으로 들어가기요.》

남일은 방에 들어 서기 바쁘게 선풍기를 틀어놓고 (그이의 잔등이 땀에 화락하니 젖어있었던것이다.) 벽면에 설치된 정황지도의 가림막을 열어제꼈다. 허나 그이께서는 정황지도같은것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남일을 곧추 보며 말씀하셨다.

《우선 〈아직까지는〉 뭐이고 또 〈그런데〉란 뭐인지 그것부터 말하오.》

《정황의 엄중성때문입니다. 좀전에… 정확히 말씀드리면 45분전입니다. 그때 최용건동지도 전화로 알려왔지만 전선서부에 대한 적의 공격력량이 종전보다 적어도 1. 5배가 넘는것으로 확인되였다고 합니다.》

《그 1. 5배라는 판단은 어떻게 나온거요?》

《우선 공격산병선의 너비와 길이, 매 평방당 포화력밀도를 따져본데서 얻어진것이고 다음으로 이번 전투를 전후하여 생포한 포로들의 진술을 통해 확인한것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종합된 정찰자료들도 이 사실을 반증하고있습니다.》

《1. 5배란것이 과히 틀린 소리같지는 않소. 한데 최현동무와 류경수네쪽은 어떻다고 하오. 여전히 조용한가.》

《녜, 현재까지는 산발적인 포사격과 부분적인 고지들에서 약간한 총격전이 있을뿐이랍니다.》

《그러니 답은 명백하다는거구만, 동무가 얻은 결론을 듣기요.》

그이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긴 눈길로 남일을 보시였다.

남일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지금처럼 자기 대답의 무게와 책임을 느낀적이 없었다. 이제까지는 장군님께서 어련히 다 알아 하실 일인데 무슨 걱정인가 하는 위안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 위안이 흔들린것이였다.

《저로서는… 지금의 모든 정황과 제반 정찰자료들을 놓고볼 때 적들의 주타격방향을 전선서부라고 생각하게 되였습니다. 하지만 이건 현 단계에서 본 분석에 불과한것이고 장군님께서 예견하셨던 선에서 보면… 기만작전일수 있다는 생각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없진 않다?! 그러니 최고사령관이 전선동부라고 해서 지금의 제반 사실을 다 무시해보겠다 그것이요?》

남일은 대답을 못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무거운 안색으로 그를 보시다가 말씀을 떼시였다.

《어저께는 동부였지만 오늘은 서부일수 있고 래일은 저 어디 후방쪽으로 공격해올수 있는것이 전쟁이요. 난 그 어떤 권위앞에서 흔들리는걸 좋아 안하오. 동문 동무로서 보고 느낀걸 솔직히 말하오. 이건 전쟁의 운명과 관련된것이 아니요? 동쪽이냐 서쪽이냐, 여기선 지금 나도 동무와 비슷하다고 볼수 있소. 기탄없이 말하오.》

남일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입을 열었다.

《제가 전선서부라고 생각하게 된것은 현재까지 벌어지는 그곳에서의 공격행동과 함께 오늘 종합된 제반 정찰자료들때문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8월 12일부터 오늘아침까

댓글목록

profile_image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8월 12일부터 오늘아침까지 약 200여량의 군용화물렬차가 서울과 파주를 거쳐 고양, 문산부근에 하역한것으로 되여있고 같은 기간에 매일 평균 30∼40대의 대형제므스(자동차)들이 파주, 양주, 고양, 문산지구로 왕복했다고 합니다. 그 차들에 실려왔다고 인정되는 두개 련대급병력은 이미 전투에 진입한 상태입니다. 이것은 최사정찰(최고사령부정찰)과 정찰국 정찰에서 보내온 자료인데 리승엽동무의 지하조직선에서는 현재 군단급포화력기재들과 려단급기계화무력이 전선서부로 기동해온것으로 통보해왔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더 첨부할것은 지원군사령부에서 보내온 통보입니다. 중국남해를 거쳐 공해상으로 북상하던 10여척의 군용화물선단이 우리 서해북단으로 항행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정찰국장동무가 다시 알아본데 의하면 지난 한주간동안 인천항에서는 미군<헌병>들과 괴뢰군 수색대의 봉쇄속에서 일체 사민들과 어선들의 왕래를 엄금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10여척의 선단에 실린것들도 죄다 전선서부로 온다는것이겠소?》

《그렇습니다.》

《비슷하오. 그럼 내 생각을 좀 말해봅시다.》

그이께서는 뜻밖일 정도의 밝은 안색으로 말씀을 떼시였다.

《우선 현 정황에 기초한 분석에 대해서는 나 역시 동감이라는거요. 이렇게 보면 저번에 있은 동부냐 서부냐 하는 토론때 전선서부라고 생각한 강성찬동무의 분석과 판단이 옳은것으로 되오. 그런데 그때도 적들의 력량이 전선서부로 계속 증강되는것으로 되여있고 오늘도 계속되는것으로 되는데 지금 현재까지 덤벼든다는것이 고작 1. 5배의 력량에 불과하오. 1. 5배! 근 보름넘게 준비한 <주타격>력량이란것이 극상해서 1. 5배밖에 안된다면 그건 무얼 의미하는가. 하나는 더이상 병력을 끌어들일 원천이 없다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선중동부의 적들은 그대로 붙박혀있다는것을 의미하오. 놈들로서 전선서부의 우리 방어선을 넘자면 적어도 현재의 2∼3배력량은 있어야 되오. 한데 그걸 얻자면 놈들로서는 전선중동부를 비워야 하는데 그것이 어떤 결과로 끝나리라는것은 릿지웨이나 밴플리트도 모를리 없소.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이놈들의 기도를 놓고 여러모로 따지며 결론을 서두르지 않은것은 법칙성이라고 할가, 필연성이라고 할가, 작전방식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왕청같은 모험을 경계한때문이였소. 전쟁력사를 보면 한다하는 사령관들도 어처구니없는 바보짓을 할 때가 많았소.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니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식으로… 가까운 실례로 맥아더를 보오. 우리한테 되몰려 서울까지 쫓겨가게 되자 그자는 어떻게 하려고 했소? 중국본토에까지 전선을 펼쳐 세계적인 싸움을 벌리려 했거든.》

김일성동지께서는 웃음을 머금으며 일어서시였다.

《오늘까지는 전선서부를 주타격으로 봅시다. 단지 오늘까지만입니다. 지금 현재 박정덕동무네는 어데까지 갔습니까?》

《여섯시 현재 사리원 미곡리까지 진출한것으로 알려왔습니다. 그런데…》

《그런데란건 또 뭐요?》

《6군단도 계속 현재대로 움직이게 하시겠습니까?》

《6군단?!》

《녜.》

《동문 무슨 다른 생각이 있소?》

《저… 6군단을 되돌려보내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허.》

김일성동지께서는 남일로부터 최현의 지도에 시선을 멈추시고는 빙그레 웃으시였다.

《동문 그래서 저기에 아무런 의견표식도 수표도 하지 않았구만. 하긴 나도 6군단을 되돌려보내는가 마는가를 두고 좀 속을 썩였소. 그러나 6군단은 계속 전선동부로 최현동무한테로 가야 하오. 뿐만아니라 전선서부로 진출한 4군단안의 부대들도 금천계선에서 되돌려세우려고 하오.

이 자리에서 명백히 말하지만 나는 어제도 오늘도 놈들의 주타격은 여전히 동부라고 생각하오. 설사 릿지웨이나 밴플리트가 그안을 바꾸려 해도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자는것이요.》

이 순간 남일은 자기 몸을 칭칭 동이고있는듯 한 바줄이 탁 터져나가는감을 느꼈다. 치솟는 흥분속에 한가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장군님, 그럼 4군단진출은 우리가 전선서부를 주타격방향으로 오인한것처럼… 적들에게 알리려는 기만전법이였습니까?》

《전법까지는 못되지만 그 비슷하다고 할수 있소. 잔꾀놀음에 익숙된자들이니 그에 해당한 처방이라고 할가.

이제 우리가 전선서부에서 놈들을 한바탕 되게 답새기면 뭔가 반응이 있을거요.》

《그러시면 6군단 기동중지에 대한 수락도 그 비슷한 수였습니까?》

《허허, 그렇게 되면 나는 수놀음만 하는 사람으로 되지 않을가?》

그이께서는 탁 트인 웃음을 터치며 손을 저으시였다.

《사실 그에 대한 수락이란 동무네의 오판이지. 알겠다고 한것을 수락으로 인정한다는것은 문법상으로도 맞지 않지 않소. 하지만 나는 최현동무나 다른 동무들이 그렇게 리해할걸로 바랐고 답전내용도 공개하다싶이 했소. 적들까지 알아도 무방하다고, 어쩌면 더 좋다는 생각도 했고… 이렇게 보면 동무네 생각대로 수놀음 비슷한데도 있소.

하지만 최현동무한테 동의로 알게 한것은 그 수놀음과는 거리가 먼것이요.》

그이께서는 잠시동안 창밖을 내다보시다가 계속하시였다.

《최현동무는 처음부터 군단자체의 힘으로 해내겠다고 했고 현사태를 알게되자 재차 그 제의를 해온것이요.

전선전반을, 바로 우리의 마음속 짐을 덜어주겠다는것이지. 그래서 난 그에 대한 인사표시라고 할가 군단장의 위신을 봐줬다고 할가 그런 답전을 보낸것이요.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의 성미로 봐 잠도 못 잘거요.》

남일의 눈에는 최현의 지도가 새롭게 보였다. 하나하나의 부호표식들과 대대며 련대들의 산병선을 그을 때의 최현을 생각하게 되였고 그러한 최현이 지금의 장군님심정을 안다면 어쩔가 하는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뭉클해졌다.

《장군님!》

그는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련락군관을 오늘안으로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번쩍하는 수라도 있소?》

《지금 상태로는 최현동무네가 첫 타격을 견뎌내지 못할것입니다. 때문에 6군단을 보강하는 전제밑에 새로운 방어진을 치도록.》

《아니, 최현동무는 그 방어진으로도 견뎌낼것이요. 설사 6군단이 가지 않는다 해도 충분히 견지할것이요.》

그이께서는 남일의 의문스런 눈길을 일별하자 밝은 기색으로 말씀하시였다.

《너무 걱정마오.

최현은 해낸다면 하는 사람이고 당분간은 그곳 산들이 〈요해처〉로 될것이요.

참, 내가 부총참모장한테 기동로상태에 대하여 알아보라고 했는데 그에 대해 모르겠소?》

《알고있습니다.》

남일은 다행이다싶었다. 전선서부에만 신경을 쓴통에 그런 문제 같은것엔 전혀 류념하지 않았었는데 부총참모장이 사업보고차로 알려주었던것이다.

남일은 전화기옆에 놓았던 수첩을 펼쳐들었다. 략자로 써넣은 몇개의 글구를 보게 되자 선뜻 입이 열려지지 않았다.

그는 원래 수첩을 보지 않고 보고할줄 아는 사람이였다. 그런데 지금 선뜻 대답을 올리지 못하는것은 략자로 인한 내용파악의 난해성에서가 아니라 전선동부 기동로들의 불비성때문이였다.

《왜 그러고있소?》

남일은 그이의 독촉이 계셔서야 입을 떼였다.

《장군님, 지금 전반도로들이 말이 아닙니다. 특히 전선동부에서의 군화수송이 무척 어려울것 같습니다.

아침 열한시현재 집계된 자료에 의하면 평양-원산사이의 마식령산줄기의 도로들과 원산-신고산-세포간 철길과 교량, 도로들의 대부분이 침수, 파괴되여 있습니다. 교량과 철길파괴는 거의가 함포사격과 간첩집단에 의한 폭파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남일은 수첩을 한장 번졌다.

마전다리, 여해다리, 로창다리, 구월다리… 크고작은 다리들과 도로들을 불러가던 남일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다가 실오리처럼 툭 끊어지고말았다.

《그것뿐이요?》

《문제는 장군님께서 그전에 말씀하셨던 작전개시시간까지 2군단에 가닿아야 할 탄약과 무기, 식량물자들이 계획분에 비해 볼 때 60%밖에 보장되지 못했다는것입니다.》

《그 60%는 어데서 올라온 보고입니까?》

《2군단에 직접 알아본것이라고 합니다.》

《음 》

김일성동지께서는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가 말씀하시였다.

《60%에 대해서는 더 신경을 쓰지 맙시다. 좀 늦긴 했지만 60%를 알았다는것은 그리고 여해교와 로창교 같은 자그마한 목조다리파괴까지 인차 알게 되였다는것은 제반상태를 능히 수습할수 있다는것을 말해주고있습니다. 또 60%라고 할 때 우리야 늘 그런 상태에서 싸우지 않았습니까. 비관할건 못됩니다.》

《장군님, 이번 비에 침수되였거나 파괴된 다리와 도로들은 2∼3일사이면 다 수리복구될것이라고 합니다.》

《그럴테지.》

그이께서는 열흘전에 하달한 매 지역 도로와 교량들을 그곳 주둔부대들과 인민들로 수리복구할데 대한 자신의 명령을 상기하셨다.

지금 파괴된 다리와 도로들엔 사람들도 인산인해를 이룰것이다.

그이께서는 어금이를 지그시 깨물고계시다가 남일을 보시였다.

《동문 이제 뭘하겠소?》

《기동로 복구정형을 다시 알아보고 2군단에 보낼 군화수송대책과 관련한 문제를 부서동무들과 토론하겠습니다.》

《그건 나한테 맡기오. 한가지 더 알려줄것은 강원도안의 지방당조직들에서 편성한 인민수송대사업을 포병사령부 병기국에서 함께 보도록 한것이요. 그 수송대는 주로 산길을 타고 우마와 등짐으로 가게 되오.》

《알겠습니다.》

남일의 활기찬 대답에 장군님께서는 미간을 찌프리시였다.

《그에 대해선 우리모두가 인민들앞에 머리를 숙여야 할것이요.》

그이께서는 강성찬에게 전선동부에 파견된 정찰들의 활동을 강화할데 대하여 말씀하시고 남일에게는 판문점에서의 소위원회운영사업을 항시적으로 알아볼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저 신문들은 오늘 온것이요?》

자리에서 일어서실듯 하던 그이께서 외문판 신문퉁구리에 시선을 멈추셨다. 강성찬이 그렇다고 하자 그이께서는 신문을 끄당겨 쥐시였다.

번역문들을 오려붙인 신문들을 한장한장 번져가시던 그이께서 문득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시였다.

《남일동무가 이렇게 무서운 사람이였는가?》

그이께서는 터너 죠이를 쏴보는 남일의 사진을 가리키며 고개를 돌리시였다. 남일은 면구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8월 10일에 있은 눈싸움때의 장면 같다고 말씀드렸다.

《이런 눈길앞에선 나도 속이 떨렸겠소.》

그이께서는 여전히 웃음을 머금으신채 사진밑단의 번역문을 읽어가셨다.

그이의 얼굴에 서렸던 미소가 서서히 사라져갔다.

남일은 저도 모를 불안감에 고개를 쑥 뽑아든채 《아시아인과 앵글로 색손인의 신경전》이라는 표제의 그 번역문을 재빨리 훑어보았다.

《…북조선의 남일중장은 산 인간이라기보다 증오만으로 다져진 인간화석으로서 아시아적야만성의 구감, 공산주의자의 전형적표본이라고 할수 있다. 북조선군 장령들속에서 지식분자라고 하는 남일중장이 이럴진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미국과 유럽인들에 대한 철저한 배타심에 젖어든 이 사람들에게서 공정한 타협과 평화안을 바란다는것은 화석을 향해 심장을 보여달라는것과 같다.

이 땅에서는 신사도가 무익하다. 그들과의 대화는 오직 화약과 철만이 해결할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신문을 내려놓으시였다.

남일은 불꽃이 번쩍이는 그이의 안광을 보며 마음이 송구스러워졌다.

《장군님, 제가 오늘 아침에도 말씀드리려고 했지만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요?》

《제가 수석대표로서의 사명과 임무를 제대로 리행하지 못했다는것입니다.

사실 놈들과의 외교전에서 보다 령활하고 림기응변했더라면 일정하게 시간적지체라도 가져 왔겠는데… 놈들로 하여금 구실과 언질을 주었습니다.》

《남일동무가 그동안 뭔가 좀 달라진것이 아니요?》

그이께서는 저으기 놀라시는 눈길로 남일을 보시다가 물으시였다.

《동문 쏘도전쟁에 림할 때 쓰딸린이 쏘련사람들과 군인들에게 증오의 과학을 배우라고 한 말을 들은적이 있소?》

《저… 들은적은 없지만 숄로호브인가 하는 작가가 쓴 소설에서 쓰딸린이 그런 말을 했다는것을 알고있습니다.》

《나는 오늘도 그 말을 생각하게 되였소.

쓰딸린이 무엇때문에 그것을 강조했겠는가.

〈나치스도 인간이겠지.〉 이것은 의식했건 못했건 많은 쏘련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였을것이요. 하지만 그들은 전쟁과정을 통해 나치스야말로 야만들이라는것을 깨닫게 되였고 자연 증오의 과학을 배우게 된셈이요. 전쟁사가들은 쏘련의 초기패전을 군사적측면에서 많이 찾지만 나는 바로 그 〈유럽식기사도〉, 상대도 인간이겠거니 하는 환상도 적지 않게 영향을 미쳤다고 보오.

히틀러는 아리아족을 제외한 전인류를 인간 아닌 멸족대상으로 보았소. 그런데 보시오. 지금 우리와 맞서있는 미국인들이 어떤가. 그에 비하면 나치스들은 발뒤꿈치에도 못 가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적잖은 사람들은 미국인들에 대해 상당한 환상을 가지고있소. 이른바 기사도정신을 이은, 이 신문에 난 글대로 <신사적인 군대>로 생각한다 그것이요. 올해초 국제녀맹조사단의 보고서에 대한 세계적인 반영과 여론을 종합해도 그렇소. 많은 나라사람들이 그 보고서에 대해서까지 반신반의하거든.

왜 그런가. 2차세계대전시기 미군의 〈기사도적행동〉때문이였소.

동무도 잘 알겠지만 그들은 일련의 큰 전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싸움에서 류혈을 피하는 소위 〈인도주의〉싸움을 하지 않았소? 포로들을 우대하는 놀음도 벌리고 때로는 다 잡은 도이췰란드군을 올가미에서 풀어주기도 하고… 여기에는 파쑈도이췰란드의 재생을 원하는 꿍꿍이도 작용했지만, 혈통의 류사치, 같은 백인, 상대가 유럽인이라는데서 나온 이른바 관용도 있었소.

그런데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하는가.

아메리카의 토착민들을 짐승처럼 우롱하고 속이며 짐승처럼 살륙하듯이…

바로 그렇게 한단 말이요.》

그이의 음성은 분노로 떨렸다. 남일은 그이께서 무엇때문에 이처럼 노하시는지 알수 없었다.

《외교란.》

그이께서는 계속하시였다.

《또 외교적성공이란 적어도 상대가 인간으로 환원되였을 때, 말하자면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것이요.

그러면 현 상태에서 볼 때 누가 인간이고 짐승인가. 내 동무들에게 한가지 보여줄것이 있소.》 그이께서는 이러시며 문가로 향하시였다.

 

《아지미, 뭘 쓰나?》

황영숙은 최고사령부 의무처에서 안아온 처녀애가 잠깬것을 알고 얼른 돌아앉았다.

《이젠 정신을 차렸니?》

《정신? 난 잘못한것 없어.》

황영숙은 이 처녀애의 부모들이 잘못을 꾸중할 때 《네가 정신이 있니.》 하는 식으로 말했다는것을 깨닫고 변명하듯 재빨리 말했다.

《아니, 내 말하는건 나랑 다 알아볼만 한가 해서 묻는거다.》

처녀애는 머리를 까딱거렸다.

《알지 않구. 난 그래서 아까 의사선생님들속에서 아지미를 찾았지 뭐, 날 안아준 아저씨는 어데 갔나?》

《응, 이 가까운데 계신다.》

황영숙은 가슴이 찌르르해 들었다. 끝없는 슬픔과 분노에 잠기셨던 김일성동지의 모습이 떠오르며 더욱 가슴이 저며들었다.

황영숙은 오늘 보고대회장으로 가시는 김일성동지의 차에 무전수로 겸직하여 따라갔다.

올해 들어와 처음으로 평양에 나가는 길이라 어지간히 기분이 들떴으나 공습을 겪는통에 가슴이 한줌만 해있었다.

보고대회가 끝났을 때에는 공습이 끝난 다음 떠나자고 졸랐다.

시내가 온통 화염과 연기속에 잠긴통에 적기들은 차의 행렬을 알아보지 못한것 같았으나 마구다지로 퍼붓는 폭탄과 기총탄은 차의 주변에까지 쏟아졌다. 집중폭격구간을 벗어났을 때 김일성동지께서 문득 차를 세우라고 하셨다.

대성산어름에서였다. 심한 폭격세례를 받아 올망졸망한 집들이 불길속에 휘말려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하며 길녘의 자그마한 기와집으로 걸음발을 다그치셨다. 그 옆의 집들도 불길속에 휩싸여있는데 유독 그 집만은 성한채 있었다.

그런데 문을 열자 스산한 광경이 펼쳐졌다.

흙먼지와 나무부스레기가 어지럽게 널린 방안에는 커다란 이불을 꿍쳐안은 녀인이 쓰러져있고 그에게 안기려는듯 두팔를 뻗친 열서너살난 소년이 엎어진채 있는데 그들사이에서 바로 이 처녀애가 쓰러진 녀인과 소년의 사이를 무릎걸음으로 오가며 《엄마야, 오빠야.》 하고 소리치고 있었다.

황영숙은 한눈에 모든것을 알아차릴수 있었다.

시내 변측에 있는 곳이여서 항공경보를 미처 알지 못한채 공습을 당했을것이였다. 하여 어머니는 이불로 아이들을 덮어주려 뛰여들었을것이고 (항간에서는 이불을 들쓰고있으면 기총탄의 피해를 면할수 있다고 했다.) 그 순간 14. 5㎜기관총탄이 지붕을 뚫고 날아들어 녀인과 소년을 쓰러뜨렸을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부관이 처녀애를 안고 나갈 때 구석진 곳에 놓인 대야쪽에 다가가셨다. 뿌잇한 양재물이 절반쯤 담긴 그 안에는 나무막대기가 있고 색이 바래가는 쉬나문장의 삐라장이 깔려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삐라장을 하나 꺼내드시였다.

《대한민국에 충실한 평양시민들에게 고함》이라고 쓴 제목밑에는 이런 내용이 씌여져있었다.

《금 국련과 대한민국은 이 불행한 전쟁에서 시달리는 평양시민들을 비롯한 북쪽 동포들의 안녕을 바래 대아량의 정전담판을 두달째 계속하고있으나 이 땅을 붉은 크레믈리의 노예국으로 만들려는 극소수오렬들에 의하여 의연 진전을 보지못하고있는바 그에 대한 응징과 타매로 불가피한 대거공습을 결행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하므로 대한민국에 충실하려는 평양시민들은 지옥의 불세례와 같은 국련군과 대한민국군의 공습을 피하여 안전책을 취하기 바란다.

공습날자는 8월 16일로 정했는바 이것은 8. 15광복일을 기념하게 하려는 국부의 다심한 념려로 선택된 날자이니 8월 16일 새벽까지 시가를 탈출할것을 권고한다.》

큰 도시를 폭격할 때마다 항용 쓰는 수법이다.

《갑시다. 저 아이의것이라 생각되는것은 다 가지고…》

후발차와 그 안의 성원들을 떨궈 뒤처리를 하게 하신 그이께서는 방안구석에 널린 몇개의 공책을 들고나오셨는데 영숙은 그속에서 구리쇠줄로 꿰매다만 푸릿푸릿한 색갈의 공책을 보게 되였다. 양재물에 우린 삐라장들로 만들다 만 공책이였다.

차에 오르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영숙의 품에 안겨서도 엄마야, 오빠야를 부르며 흐느끼는 처녀애를 보시자 《내가 좀 안아보자.》고 하며 그를 품에 꼭 껴안으시였다.

그러나 처녀애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차가 떠나자 발버둥질까지 쳤다.

부관이 엄마와 오빠는 병원에 갔다고, 이제 얼마후 다시 만난다고 했으나 쓸데 없었다.

《안되겠군.》

영숙에게 처녀애를 넘겨주신 그이께서는 창문밖으로 고개를 돌리신채 손수건으로 눈굽을 찍으시였다.

그 순간 황영숙은 북받치는 오열을 참지 못하고 《흑.》하고 흐느꼈다.

《우지 마오.》

그이의 갈리신 음성에 황영숙은 흠칫하며 처녀애를 더 힘껏 껴안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처녀애마저 울음을 뚝 그쳤다.

오는 도중 처녀애의 머리에도 약간한 타박상이 생긴것을 보게 되였다. 서까래쪼박이나 지붕의 다짐흙덩이가 떨어지며 머리를 친것 같았다. 최고사령부 의무처에서는 타박상은 별것이 아니라고 했다.

진정제주사를 맞은 뒤 처녀애는 인차 잠들었으나 좀 있어 다시 깨여났다. 둘러싼 의사들을 보자 또다시 엄마와 오빠를 부르며 울다가 황영숙을 보자 《아지미!》 하고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 되여 처녀애의 《간호》는 황영숙이가 맡게 되였다.…

진정제주사때문인지 처녀애의 눈에는 졸음기가 실려있었고 알콜솜으로 깨끗이 닦은 얼굴은 희다못해 푸르게 보였다.

《얘야, 아지미는 이제 글을 써야겠는데 넌 좀 더 자려무나.》

《무슨 글을 쓰나. 나도 글자 볼줄 알어.》

《그-래? 지금 너 몇살이지?》

《일곱살. 엄만 이제 보름 있으면 학교 보내준다고 했어.》

《오, 그렇니.》

《아지미, 아지민 그런 종이 많나?》

《그럼, 많지.》

《그 종이 참 곱구나. 우리 오빠 만들어 준 공책종인 보기 싫어.》

《어떤 공책인데?》

《아이, 아지민 그것도 모르나? 미국놈들 삐라, 그걸 재물에 우려내면 쌍소리글이 다 지워지지 뭐. 그걸로 공책을 매, 우리 오빤 그런걸 잘해. 벌써 나한테 두책이나 만들어줬다.》

《그랬댔구나.》

장군님께서 드셨던 매다만 공책과 피로 물든 소년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지미, 아지미 왜 성내나?》

《안, 아니다. 내가 이제 네가 학교 갈 때 좋은 공책을 많이 만들어줄게.》

《정말?!》

《정말이구말구. 아지민 네가 멜 책가방도 만들어 줄테다.》

그 말에 처녀애는 머리를 살래살래 저었다.

《책가방은 없어도 돼, 어머니가 고운 꽃천으로 책보를 만들어 줬거든.》

여기까지 말하던 처녀애는 불시에 입술을 이지러뜨리며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얘야, 왜 그러니? 내가 이제 세상 제일 좋은 공책을 주마.》 영숙은 침대밑 트렁크를 열고 옷가지를 헤쳤다. 흰천에 싼 학습장들을 보게 되자 잠시 망설이게 되였다.

그가 대학에 가게 되였을 때 김정숙동지께서 주신 학습장들이였다.

(아니, 어머님께서도… 기뻐하실테지.)

그는 모조지로 된 학습장 한권을 꺼내여 처녀애에게 주었다.

《어때, 좋은 책이지?》

《응. 》

처녀애는 눈물이 가랑가랑한 눈길로 영숙을 올려다보다가 학습장을 번지였다. 간간히 흐느낌을 참지 못해 어깨를 떨면서도 매끈한 종이장을 쓰다듬기도 하고 줄친 칸에 글자 비슷한것을 그려보기도 한다.

《얘야, 이젠 난 글을 써야겠다.》

황영숙은 처녀애의 뺨에 어린 눈물을 닦아주고 책상에 마주앉았다.

어저께 온 최현군단의 련락군관과는 편지전달의 약속을 받아냈다. 편지를 부탁하자고 생각했을 때 처음에는 로병관과 오빠 두사람 모두에게 쓰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최전방에 나가있는 오빠에게 원망과 나무람의 편지를 보낸다는것이 경우나 도리로 봐도 맞지 않을뿐만아니라 인편에서 인편을 거쳐갈 그 편지가 다른 사람의 눈에 뜨이면 안된다는것으로 로병관에게만 쓰기로 했다.

어떻게 보면 오빠보다 로병관에게 할 말이 더 많았다.

(사랑하기때문에?)

황영숙은 자기의 심정을 놓고 아니라는 부정을 할수 없었다.

솔직한 말로 해방후 미끈한 군복차림의 그가 나타났을 때 일생 처음 당하는 가슴두근거림과 머리가 어질거리는듯 한 강한 흥분을 체험하였다. 그리고보니 자기가 어릴적부터 그를 따랐다는데 생각이 미쳤고 로병관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두 집 부모들까지 다 된 혼례련듯 떠들썩할 때 숨 막히는 기쁨속에 자기들의 인연이 미리부터 지어진 행복한 숙명이라고 생각했다.

고향의 북대천가를 거닐며 하던 로병관의 말은 그의 심장에 불을 질렀다. 로병관은 자기가 이역만리의 수만리 험한 길을 헤쳐온데는 《영숙이라는 별의 인도》가 있었다고 했다.

약혼과 결혼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질번 했다. 두집 부모들도 그랬고 로병관이도 은근히 그런 뜻을 비쳤다.

그러나 영숙에게는 자기가 정해놓은 목표를 달성하기 전에는 결혼을 잊기로 한 결심이 있었다. 목표란 크고 원대한것이였지만 당면하게는 대학공부를 끝내야 했던것이다.

로병관이도 그에 대해서 적극 공감했다.

《동문 공부를 더 해야 되오.》

영숙에게서 이 말은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되였는데 그후 로병관이가 한다하는 처녀들과 여러번 선을 보았다는것을 안 뒤에는 부정적인 각도에서 되새겨보게 되였다.

(장마당에서 물건 고르듯 한단 말이지. 하긴 나야 시골뜨기출신이니까.)

하는 옥생각속에서 로병관의 애정속에는 자신에 대한 존경이란 거의나 없다는 구슬픈 결론을 짓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렇게 놓고보니 로병관에게는 뭔가 한가지 크게 부족되는것이 있는것 같은데 그것을 딱 찍어 표현할 말은 없었다.

그저 땅에 발을 딛지 않고 둥떠 사는듯 한 사람이라는것이 그중 합당한 표현으로 된다고 할가. 놈들에게 잡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옆집사람의 말에 의하면 두 집 로인들이 잘못되게 된것은 로병관 아버지의 《량반님 자세》때문이였다.

두 집 가족들의 후퇴를 위해 군당에서 보내준 차가 왔을 때 로병관의 아버지는 고향땅을 떠난다는것이 말이 되는가고 대통을 두드리며 버티기를 했다고 한다.

영숙이 아버지는 물론 운전사까지 달라붙어 한겻동안이나 설복하다 못해 억지다짐이다싶이 차에 실었는데 이미 그때는 적들의 선견대가 고향 북쪽길을 가로막고있을 때였다.

로병관의 아버지는 최후시각에도 《량반님 고자세》를 변치 않았다고 한다.

《이놈들아, 옛날 무지막지한 오랑캐들도 적장의 자제들은 죽일지인정 그 부모들에 대한 시해는 삼갔다. 내 아들이 인민군장령인데 네놈들이 감히 내 몸에 손을 대?》

가슴아픈 희비극이였다.

그러니 로병관의 아버지야말로 옛 책속에서 살고 옛 책을 안고 돌아간셈이니 현실에 어두웠던 옛날 선비님들과 무슨 큰 차이가 있겠는가.

로병관에 대해선 전선사령부 녀성교환수들은 《미남자장령》, 《멋쟁이장령》이라고 한다고 했다. 녀성들뿐만아니라 남성지휘관들도 《로병관동지는 멋쟁이요.》라고들 했다.

그 말이 황영숙에게는 불쾌하게 들렸으니 어찌보면 로병관은 멋을 부리는 《멋》에 사는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우산전투때 오빠가 실책을 범한데는 로병관의 잘못도 크다는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그의 이런 생각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이런속에 그의 장점을 추슬려보기도 했다.

머리가 좋고… 인간으로서 깨끗하지, 솔직한 품성도 있고…

전쟁직전에 로병관을 만난 영숙은 지나가는 소리로 《선을 많이 본다지요?》라고 한마디 스쳐 물었는데 로병관은 그때는 대범히 웃는듯싶더니 밤에는 기숙사까지 찾아와 자기가 만났던 녀자들에 대하여 빠짐없이 말하며 루루히 잘못을 빌었다.

영숙에게는 이것이 그라는 인간의 깨끗함과 솔직함을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로 되였다.

그가 오늘 로병관에게 편지를 쓰려는것도 또 지금까지 그를 마음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리지 못한것도 어린 시절부터의 인연도 있겠지만 바로 그 깨끗함에 대한 믿음때문이라고도 할수 있었다.

강연과 학습, 최고사령부 일군들의 대화에서 오가던 《기동전》의 오유문제까지 거들며 석장을 내리쓴 끝에 오늘 있은 일을 썼다.

8월 16일에 공습을 한다는 삐라를 떨구고 오늘 새벽부터 초토화폭격을 들이댄 사실을 놓고 적에 대한 환상을 꼬물만큼도 가져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 글을 쓸 때는 눈물이 나왔다.로병관의 아버지의 처사와 비극적최후가 겹쳐 떠올랐기때문이였다.

영숙은 학습장을 뒤적이던 처녀애가 솔곳이 잠든것을 지켜보다가 계속해 썼다.

-저는 이 처녀애의 어머니가 될것을 결심했어요.-

더 글이 나가지 않았다.

어머니라는 말을 쓰니 별난감이 들었고 자기가 이곳에서 과연 이 아이의 어머니노릇을 할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였다.

편지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기 시작하였다.

그때 문밖에서 인기척이 울렸다.

동숙하는 무선전대장이 교대를 마치고 돌아왔는가고 생각하며 편지를 치울가 말가 하는데 문기척과 함께 정찰국장이 불쑥 나타났다.

《장군님께서 오시오.》

《네?!》

황영숙이 발딱 일어서며 치마주름을 바로잡을 때 김일성동지께서 들어서시였다. 자리가 좁아 강성찬이 문밖으로 나선 대신 남일이 뒤따라 들어섰다.

《얘가 잠들었구만.》

그이께서는 누구에게라 없이 말씀하시며 처녀애의 모습을 애처롭게 바라보시였다.

《애가 어머니를 계속 찾지 않았소?》

《어머니와 오빤 병원에 갔다고 했습니다.》

《애가 동무를 보자 울음을 그쳤다지.》

《네, 허락하신다면 제가 이 애를 전쟁이 끝날 때까지 맡아 키우겠습니다.》

《동무가?!》

커다란 트렁크를 든 그이의 호위부관이 들어섰다.

황영숙의 눈길이 트렁크에 멈춰진것을 보신 그이께서는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이건 저애 재산이라고 생각되는걸 전부 모아가지고 온것이요.》

그이께서는 처녀애의 손에 쥐인 학습장을 보시다가 영숙이가 준것인가고 물으셨다.

영숙이가 그렇다고 말씀드리자 부관을 향해 《그걸 꺼내오.》라고 하시였다.

부관의 손에서는 장군님께서 처녀애의 집에서 들고나오셨던것과 같은 푸릿푸릿한 색갈의 공책 두권이 들려나왔다.

영숙은 그 공책이 바로 처녀애가 《보기 싫어.》라고 하던 공책임을 알아보았다. 오빠가 그 책을 꿰맬 때 분명 처녀애는 기쁜 웃음을 지으며 지켜보았을것이다.

《저것이 무언지 알겠소?》

김일성동지의 물으심에 영숙은 처녀애한테서 들은 사실을 그대로 말씀드리지 않을수 없었다. 그이의 얼굴이 흐려지시였다.

《나도 그렇게 짐작했소.》

《장군님, 제 생각엔 그 책은 꼭 이애한테 줬으면 합니다. 오빠가 없는데 오빠를 대신하는것으로 되지 않겠습니까.》

《그럴가? 한데 오늘, 래일은 보이지 마오.》

그이의 음성은 무척 쓸쓸하게 울렸다.

《지금 무얼 쓰던중이였소?》

그이께서는 방안의 무거운 분위기를 깨치려는듯 한결 밝은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영숙은 《로병관동지에게》라고 서두를 뗀 편지 첫장이 그대로 놓여있는것을 보고 얼굴을 붉혔다.

《편지를 쓰댔습니다.》

《영학동무에게도 썼겠지?》

《저… 로병관동지에게 쓰는 편지에 다 담았습니다.》

《허, 오빠보다 로병관동무가 앞자리를 차지하는구만.》

영숙은 얼굴이 화끈해졌다.

《내가 좀 봐도 일없을가?》

《저… 잘 쓰지 못했습니다.》

《하긴 처녀의 사사로운 편지를 볼수야 없지. 한데 그 <기동전주의자>라고 쓴건 무슨 말이나?》

김일성동지의 물음에 영숙은 초대처럼 꼿꼿이 굳어졌다.

《혹시… 무슨 비판을 들이대는건 아니니?》

《저… 전… 제 느낌과 생각을 썼습니다.》

《기동전주의자라?!…》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영숙이의 눈이 뽀잇하게 흐려지는것을 보시고 아프게 말씀을 떼시였다.

《나도 영숙이의 속마음을 안다. 하지만 너무 그러지 말아라. 지금의 우리 싸움에선 큰 사람이든 작은 사람이든 실책도 범할수 있고 과오도 범할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람들이라고 할 때 그것이 큰 문제로 되는것은 아니다. 매질이란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수 있는 권리인데… 물론 영숙이는 그런 권리가 있지. 하지만 지금 그들에겐 힘과 고무가, 영숙이 같은 사람들의 따뜻한 인정이 무척 그립다. 내 말뜻을 알겠니?》

영숙은 목이 꽉 메여올랐다.

《장군님, 명심하겠습니다.》

그때 부관장이 헐떡이며 달려왔다.

《최고사령관동지!》

거수경례를 붙이며 김일성동지를 우러러보는 그의 눈에는 홰불같은 빛이 얼른거렸다.

《무슨 일이요?》

김일성동지의 물으심에 부관장은 《최용건동지가》 하고는 영숙이를 기이듯 더 말을 못한채 숨만 바삐 쉬였다.

김일성동지께서 그냥 대답을 기다리신다는것을 안 그는 남 들을가 저어하는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최용건동지가 방금 전화를 걸어왔는데 장군님께서 하라고 하신대로 해서 재가루를 만들었답니다.》

《크게 말하오. 무엇으로 무엇을 재가루로 만들었다는거요?》

《저… 최사직속 곡사포대대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걸로 계획된 지점들을 때렸는데 적어도 한개 련대가 소멸된것으로 보고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장군님을 전화로 만났으면 합니다.》

《그러니 적어도 이삼천이 재가루로 되였다 그 말이겠소?》

《네, 그렇습니다.》

《들었소?》

그이께서 영숙이를 돌아보시였다.

《들었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영숙은 차렷자세를 취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큰 숨을 내쉬시였다.

《저 처녀애가 깨여나면 방금 들은 이 사실을 얘기해주오. 오늘 평양에 폭탄을 떨군 놈들에게 무서운 징벌을 내렸다고, 앞으로는 그보다 더, 산만큼 아니, 하늘만큼 더 큰 복수를 하겠다는것도 말해주오.》

그이께서는 잠든 처녀애의 머리가 베개머리에서 흘러내린것을 바로잡아놓고 밖으로 나서시였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