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푸른산악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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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은 로획품인 영국제라이타로 담배불을 붙이고 담배갑을 뒤로 내밀었다.
《한대 피우오.》
응답이 없었다.
《잠들었습니다.》
련락병의 말소리에 고개를 돌린 최현은 방금전까지 자기의 눈치만 살피는듯싶던 황영학이 목을 외로 꺾은채 굳잠에 빠져든것을 알아보았다. 라이타불을 다시 켜 가까이 가져가보았으나 매한가지였다. 무슨 먹는 꿈을 꾸고있는지 입술을 감빠는것이 10대의 소년을 련상시킨다. 그 좋던 볼살이 다 빠져 홈이 패이고 맛스럽게 감빠는 입술에 조갈이 든것이 알렸다.
(그래, 그때도 저 모양이였지.)
6년전 아지트주인의 안내를 받으며 지하실에 내려갔을 때 수수마대 짬사이에 끼여앉아 코를 골며 자고있던 청년의 모습이 방불히 살아올랐다.
사람을 알아보는데서는 잠잘 때와 성날 때가 맞춤이다. 그 순간만은 가식의 연막이 벗어지기때문이였다.
황영학에게는 순진성이 느껴졌다. 아지트주인이 그를 깨워 일으켰을 때 대뜸 주먹을 부르쥐며 반격태세를 취하는것도 최현이에게는 좋은 인상으로 받아들여졌다.
《내가 동무가 찾는 조선인민혁명군이야. 어디 입대할만 한가 시험쳐보자.》
《어떤 시험입니까?》
《팔씨름이지.》
최현은 수수마대를 옮겨놓고 그우에 팔을 올려 놓았다.
《이기랍니까, 지랍니까?》
최현의 강마른 팔뚝을 (최현은 당시 지하에 들어가 조직선을 찾아헤매느라 2∼3일씩 굶기를 밥 먹듯 할 때였다.) 스쳐본 그는 상대가 안된다는듯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기게, 지면 퇴짜라니.》
《저… 정말 조선인민혁명군이 맞습니까?》
황영학은 그의 손을 잡으며 다시금 확인하듯 묻는것이였다.
《허, 자네는 사이껭이라는 이름을 들어봤나. 내가 사이껭이야.》
최현의 말에 황영학은 어이없어하는 눈길로 그를 마주보다가 《하여간 팔씨름부터 하고 봅시다.》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최현은 그의 손힘이 간단치 않음을 알고 《자!》 하는 순간 팔목을 안으로 꺾으며 황영학이 미처 기운을 쓸새없이 팔을 굽혀 넘어뜨렸다.
《이… 이건 반칙입니다.》
황영학은 대번에 얼굴이 오지독처럼 되여 된불맞은 사람처럼 팔을 내뻗쳤으나 최현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임잔 퇴짜네…》
《반칙입니다.》
《이게 유격대수법이야.》
최현은 그의 약을 더 올려주려다가 눈에 눈물까지 그렁해있는것을 보자 정색하여 물었다.
《동문 품팔이군이라고 하는데 내 보기엔 그런것 같지를 않거던. 그러니 좀 들어봐야겠다. 살아온 경력과 왜 유격대에 입대하자는가.》
최현은 긴 이야기를 나눌 잡도리로 담배를 꺼내다말고 하마트면 이마통이 터칠번 하였다. 허술한 농군복자락을 들추고 안에 입은 왜놈군대 장교복주머니에서 금빛도는 《히로》갑을 꺼낼 때 황영학의 주먹이 언뜻하며 그의 이마로 날아들었던것이다. 최현이 하도 날쌘 덕에 첫 주먹을 피했을 때 다행히도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던 아지트주인이 그를 붙안았다. 한데 황영학은 아지트주인마저 왜놈군대의 밀정으로 생각했던지 《응》소리 한번에 그를 내동댕이치고 재차 최현이한테 날아들 태세였다. 《왜놈군대장교》가 포복절도의 웃음을 터치는것을 보자 두눈만 뜨부럭거렸다.
《여보게, 이걸 좀 보라구.》
아지트주인이 몇년전 만주국경찰당국에서 발행한 《지명수배장》을 그의 코앞에 내흔들어서야 황영학의 주먹이 풀리였다. 그는 수배장에 붙은 최현의 사진을 이슥히 보다가 수수마대에 털썩 주저앉는것이였다. 남들 같으면 오해에 대한 변명도 하고 무슨 말이든 하겠으나 황영학은 최현이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곰처럼 웅크린 자세를 흐트리지 않았다. 최현이 무슨 일인가 하여 고개를 기웃하여 훔쳐보니 황영학은 콩알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고있었다.
(괴짠데.)
최현은 자기도 모를 감동을 느끼며 은근히 말을 떼였다.
《그래 이제는 대답하겠니?》
그 소리에 황영학은 소스라치듯 일어섰다. 잔뜩 흡떠진 두눈에는 놀라움이 비껴있었다.
《그러니 저를 용서해준다는것입니까.》
《이자 일로써 퇴짜를 취소했다.》
황영학의 두눈이 번쩍했다.
《고맙습니다.》
한동안 고개를 짓숙이고있던 그는 가늘게 숨을 내불며 입을 열었다.
《대답하겠습니다. 저는 일본군학도병 탈주자로서 농민과 인테리의 중간치라고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3년간의 품팔이로동을 통해 자신을 프로레타리아트로 만들었다는것을 말하게 됩니다.》
《그건 어째서?》
《저는 프로레타리아군대건설에 관한 글들을 읽어본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프로레타리아 핵심분자들만이 혁명군대로 될수 있다는것이 밝혀져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농민출신의 집안인데다가 일본에 가서 대학공부까지 한 소부르죠아인테리다보니-》
《그렇다면 어떻게 되여 3년동안이나 우리를 찾아다녔나?》
《저는 우연한 기회에 조국광복회10대강령도 보고 몇가지 혁명군의 가요들을 접하게 되면서 조선인민혁명군의 성격과 투쟁목표가 조국해방과 로동자, 농민주권쟁취라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이로부터 저는 조선인민혁명군에 농민도 참가할수 있다는것을 확신하게 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저는 10대강령과 혁명군가요를 연구하는 과정을 통해 조선인민혁명군에는 지식분자, 인테리들도 있다는것을 추리하게 되였고 결국 농민이건 인테리이건 혁명성과 해방의 열정이 있으면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할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였습니다. 그렇지만 프로레타리아로 되여야만 무사입대를 기할수 있다는것으로 품팔이로동의 길을 밟은것입니다. 물론 먹고 살기 위한데도 있었지만.》
《항일을 하자면 연안에 가도 되는데 부디 조선인민혁명군을 찾은건 무엇때문이였소?》
《저는 조선사람이니만치 조선을 찾으실 령도자를 따라야 했던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저의 인식과 파악으로 놓고 볼 때 조선을 일떠세우실분은 김일성장군님이시기때문입니다.》
《괜찮다!》
최현은 지금까지 수많은 유격대원들과 입대지망자들의 참군동기와 희망을 들어봤지만 황영학이와 같은 꽤 까다로운 리론풀이로 입대요청을 하는 사람은 처음이였다.
최현은 그의 속내를 더 알고싶어 짐짓 위엄을 보이며 재차 물었다.
《그런데 장군님부하가 되는것이 간단치 않아. 장군님의 진짜배기부하가 된다는건 장군님과 같아진다는것이야, 그래 자신 있나?》
《제가?!… 장군님과 같게…》
《그래, 장군님과 같게 되는게지. 물론 동무가 생각하는 그런 의미에서는 아니구. 이 세상 누구도 우리 장군님의 높이에는 이를수 없으니까. 내 말하는것은 사상과 신념에서 장군님과 딱 같게 되여야 한다는 그 말이지. 내 말을 알겠나?》
《말씀의 뜻은 알겠지만 제가 과연 그렇게 될수 있을가요?》
《음, 그저 장군님만 믿고 따라배우느라면 진짜배기혁명군이 될수 있지.》
그 당시 조선인민혁명군은 원동지구의 수림속에서 조국해방작전의 최종준비를 다그치는 정규전훈련으로 하여 새로운 입대생들을 거의 받지 않는 상태였으나 최현은 그를 부대로 데리고 갔다.
황영학은 믿었던바 그대로였다. 《농민과 인테리의 중간치》인데다가 《프로레타리아화 3년》의 작용이여서인지 어떤 궂은 일과 훈련에서도 지칠줄 몰랐고 학습에서는 단연 1인자들의 대렬에 들어서게 되였다.
장군님께서 집필하신 로작들과 훈련제강내용도 단 며칠사이에 전부 통달하였고 남들이 몇달씩 걸려도 소화하기 힘들어하는 쏘련군과 일본군의 야전교범과 규정들을 한두번 보고듣는것으로 휑하니 외워대는 수준이였다. 그런데다가 틈만 있으면 장군님께서 조직지휘하신 전투들에 대하여 캐묻고는 그 전법과 전술들을 학습노트에 꼭꼭 적어놓군 하였다. 이로하여 그는 항일무장투쟁일지를 작성하던 림춘추와 거의 대등한 수준에 올라섰고 그 반연으로 해방직후 조선인민군 야전규정과 군사용어들을 새롭게 제정할 때 그 준비집단에 포함되게까지 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친히 맡아하신 조선인민군 군복시제품준비사업에도 그가 인입되게 되였다.
이 모든 사업에서 황영학은 모두의 마음을 흡족케 하였다.
황영학은 조선인민혁명군전투용어에 없던 해, 공군과 관련된 군사술어들로부터 군복제정에 이르기까지 장군님의 의도를 따르기 위해 무척 애썼다. 우리 말에 없는 어휘들이 많아 적잖은 사람들이 외국술어로 대치하려 할 때 그는 오랜 유격대지휘관들을 찾아다니며 그 비슷한 경우에 쓰신 장군님의 말씀을 발굴하였고 옛 병서들과 옥편까지 들추며 새로운 명사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는 웃지 않을수 없는 실수도 하였다. 장군님께서 조선인민군군복을 다른 나라들의 형태를 참작하되 우리 나라의 지형과 자연풍색에 맞게 민족적특색을 살려야 한다고 하신 가르치심을 받은 그는 민족적특색을 연구하던 끝에 아버지가 한때 입었다는 구한국군대의 군복을 가져와 많은 사람들의 웃음을 사게 되였던것이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 의장대군복의 몇가지 장점을 밝혀내심으로써 흔들릴번 한 황영학의 《지위》가 그대로 유지되게 되였다.
지휘관인선 시험시 제출한 그의 답안도 마찬가지였다. 시험제목은 쏘련의 군사대학들에서 졸업생들에게 내는 문제였다. 황영학은 북부훈련기지에서의 정규전학습때 그런 문제들이 뜬금으로 외울 정도였으나 우리 땅에서는 우리 식 전법이 필요하다는 장군님의 말씀에 따라 그동안 연구체득한 유격전술리론을 참작하여 말 그대로의 독창적인 답안을 썼다. 그러나 그 독창성에는 최현이 보기에도 허다한 약점이 있어 급으로 평가되였고 시험관들은 대대장이상의 직무는 수행할수 없다는 총평을 내렸다. 최현으로서는 의견이 없는바 아니였으나 《자기 사람》이라는것으로 침묵을 지킬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시험답안과 점수총평을 보신 장군님께서 황영학의 총평에 련대장이라고 밝히심으로써 황영학의 《독창성》이 새롭게 론의되였고 《교조적군사학습》에 열기를 올리던 사람들의 머리도 식혀주었다.
황영학은 장군님의 믿음과 기대대로 조국해방전쟁 1계단시기부터 적후투쟁에 이르기까지 용감하고 지략있는 지휘관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런 그가 졸지에 전투실패자가 되고 《군사재판》에까지 오르게 된것이다.
(무엇때문에?)
착잡한 생각속에 마음이 무거워들었다.
김웅이며 로병관의 얼굴이 떠오르는가 하면 피를 토하듯 웨치던 무정의 마지막말이 귀전에 쟁쟁히 울려오기도 했다.
장군님의 사상과 전법을 너무나 늦게 깨달았다고 하던 그 말이…
무정은 죽어서도 편히 눈을 감을수 없을것이다.
무딘 칼날로 가슴을 에이는듯 한 아픔에 최현은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래 나도 마찬가지였을것이다. 내가 장군님을 만나뵙지 못하고 장군님의 가르치심속에 싸우지 않았더라면… 지금쯤은 어디 로씨야땅이나 만주땅에 갇혔거나 산포수군이 되였을테지.)
최현은 어둑진 차창밖을 내다보았다.
파란곡절의 한생이 눈앞으로 흘러갔다.
최현은 어릴적부터 자기이상 없다는 자부심에 사로잡혀있었다.
주변사람들도 그렇게 보았다. 아버지를 찾아오는 한다하는 독립군 두령들도 그만 보면 《귀동》이요, 《신동》이요, 《최영장군의 강림》이요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서당공부는 하는둥마는둥 하면서도 공자왈맹자왈을 물을 때면 서당훈장이 무릎을 칠 정도로 줄줄이 외워댔고 아버지와 독립군들의 덕에 일찍부터 배워낸 승마술과 총쏘기는 린근 수백리에까지 소문을 뿌려놓았다. 허나 독립운동무대에 발을 옮기고 수다한 지사들과 이른바 쏘베트주의자들과 상종하게 되면서부터 그는 아는것보다 모르는것이 더 많음을 통탄하게 되였고 그가 그처럼 사숙하던 안무가 쓰러지고 홍범도며 리범진이며 하는 독립군두령들이 피눈물을 쏟으며 아라사로, 북간도로 흩어져 갈 때 《막능당의 위인》은 없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이것은 자기자신에 대해서는 물론 그가 숭상하였거나 존경하던 독립지사전반에 대한 허무와 환멸로 바뀌여졌다. 하지만 경신년 《대토벌》을 전후하여 부모를 잃게 된 그는 왜놈들을 복수할 일념 하나로 간도땅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였다. 독립군의 와해, 감옥과 철창, 5. 30폭동의 피비린 바람… 그런속에서도 그는 부나비마냥 싸움의 불길이 이는 곳이면 무작정 내닫군 하였다. 허나 그끝에 차례지는것은 쓰라린 실패와 좌절뿐이였다. 1931년 연길 감옥에서 나왔을 때 그는 김일성장군님의 성함을 처음으로 듣게 되였다.
(어떤분이실가.)
1933년 봄, 소왕청 마촌에서 장군님을 만나게 된것으로 그의 의문에 종지부가 찍혀졌고 동토대의 얼음처럼 굳어져있던 《막능당의 위인》이 없다는 생각에 눈석이가 일어났다.
장군님과의 담소로 지새운 한밤은 그로 하여금 찬란한 태양이 비치는 지평선을 바라보게 된 새날맞이로 되였다. 장군님께서 주신 호박물부리를 가슴에 품고 마촌을 떠날 때 그는 자기자신이 비할바없이 높은 령마루에 올라선듯 한 감을 느꼈다. 이제는 모를것도 막힐것도 없고 모든것이 눈아래로 보였고 앞길은 창창히 열려보였다. 허나 장군님곁을 떠나 얼마 안되여 그는 또다시 자기를 의심하는 허무의 진창속을 걷지 않으면 안되였고 심산유곡을 방황하는 나그네가 되여 《쏘베트바람》과 《숙청》, 《민생단》의 회오리속에 무엇을? 어떻게? 하고 가슴을 쥐여뜯지 않으면 안되였다. 바로 그럴 때도 그의 눈앞의 안개를 가셔내고 리정표를 세워주신분은 장군님이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코민테론》과 《만주성당》을 등댄 어중이떠중이《지도자》들의 랑설과 좌우경적인 《로선》으로 생겨난 혼돈과 파국을 막으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 친히 통신병을 파견하시여 최현으로서 지켜야 할 처신으로부터 금후 활동에서의 원칙과 방도들을 세세히 일깨워주셨던것이다. 이로하여 최현은 또다시 자신만만하고 배심있는 인간으로 돌아갔고 그 어떤 회오리바람속에서도 끄떡하지 않고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는 《맹호》로 명성을 떨치게 되였다. 이 과정을 통해 최현은 뿌리깊은 신념을 얻었으니 태양의 빛을 받아야만 만물이 무성하듯이 장군님을 따르고 받드는 길에서만 인간의 존재가치도 광복도 승리도 있다는것을 뜻깊은 철리로 깨닫게 되였다. 이 깨달음은 최현으로 하여금 아버지와 서당훈장이 늘 가르쳐주던 말들을 생각하게 하였고 그에 따라 자기로서의 지론을 만들게 하였다.
《하늘도 하나요 태양도 하나인데 그밑에서 사는 초목과 금수(짐승)는 무수하고 중생(사람)역시 끝없이 많다. 옛 성현들의 가르치심에는 그 모든 초목금수와 중생들의 흥과 부는 천도에 따른다고 했다 하지만 만물의 령장인 인간이라고 볼 때 어찌 천도에만 의거하겠느냐. 사람이 뜻을 높이 세우고 기개를 떨쳐 앞길을 헤쳐간다면 천도 역시 그에 무심할수가 없지 않을가. 정감록이나 도학쟁이들의 말루는 나라의 운이 정해진 천도라고 하지만 시체학문으로 봐도 그것은 가당치 않다. 나라임금과 대신들의 뜻과 기개가 개천의 미꾸라지나 다름없고 자연 백성도 그 뜻과 기개를 구명도생에만 묻었으니 결국 나라가 패한것이 아니겠느냐. 하니 사람으로서 더구나 사내대장부로서 뜻과 기개를 높이 아달지게 갖추는것은 <수신제가>의 근본일뿐아니라 <치국평천하>의 기초로 될 일이다.》
이것은 아버지의 말이였고.
《옛날 맹자의 모친은 자제의 대성을 바래 집이사만도 세번씩 하였느니라, 인생은 유아적부터 바른 길에 들어서야 굳건한 성장을 보거니 어릴적 바른 길을 밟자면 그가 선 방바닥우부터 집천정 동리집 개들과 닭소리, 오가는 어른들의 언어행동이 다 때묻지도 어둡지도 않고 잡스러움도 없어야만 깨끗이 커가는것이니 맹모께서는 주변공기와 소음, 잡스러운 사람들의 언어행동이 자제에게 미칠 영향이 두려워 그처럼 집이사를 세번씩 하였으니 이를 가리켜 맹모삼천이라 하였다.
늬들은 비록 타향천리 외지와 험한 황야를 보는것으로 정갈함은 못 얻을바나 사람에게는 사람의 덕화가 첫째로 되는 환경이거니 이것은 구국광복의 성업에 떨쳐나선 지사들이 들끓는 곳이라 잡념말고 오직 그분들의 장한 애국심을 따라배우면 인간으로 대성할것이요 나라에는 기둥이 될것이다.》
이것은 서당훈장의 훈시였다.
그들은 비록 다같이 《옛 성현들의 말씀》과 구학문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 말들에는 진리가 있는것이였다.
만약 자기가 조선독립의 뜻과 기개를 지니지 않고 또 애국열에 불타는 독립지사들과 상종하지 못했더라면 미꾸라지와 같은 구명도생의 인생을 살았을것이다. 그러나 그 길에서도 장군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 역시 독립군잔병들의 서산락일처럼 어느 산속의 무주고혼이 되든가 망향객의 차디찬 외로움속에 떠돌았을것이다.
그럴진대 매 인간은 누구를 만나 누구의 지도를 받는가에 그 진퇴가 있는것이고 나라와 민족으로 말하면 그 령도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흥과 망이 결정되는것이다. 그런데 해빛이 제아무리 따사롭고 리롭다 해도 두더쥐처럼 땅속만 파고든다면 그는 한평생 어둠속에서 사는것이고 해빛을 향해 따르고 아지를 펼치면 탐스러운 꽃과 열매를 맺게 되는것처럼 인간사도 마찬가지다.
무정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자기가 보다 일찍 장군님을 뵈옵고 장군님사상과 사고로 체질화했더라면 마지막길을 그처럼 가게 되지 않았을것이라고.
(장군님과 같게!…)
황영학의 코고는 소리가 풀무질소리처럼 들리며 그의 가슴을 더욱 쑤신다.
그래, 누구도 장군님높이에 이를수는 없다. 하지만 노력과 모지름! 이것이 문제다.
(그렇다면 황영학은…)
최현은 어금이를 지그시 깨물었다. 김웅과 로병관의 모습이 또다시 불쾌하게 떠올랐던것이다. 그는 이미 《군사재판정》에 가기전에 대우산전투의 전후사와 그 실패의 모든 과정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았다.
황영학에게는 무엇이 잘못이였는가.
그는 《기동전》이 아니라 적극적진지방어전을 해야 한다는 장군님의 작전방침을 잘 알고있었을것이다. 또한 그의 준비와 성미로 볼 때 장군님의 작전방침과 어긋나는 명령에는 절대로 응하지 않으려 했을것이다. 그러나 그는 응했고 그로하여 《죄인》이 된셈이다.
그렇다면…
장군님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피동이 아니라 주동에 서는것을 전투에서 하나의 원칙으로 내세우셨고 렬악한 방어전시에도 부단한 역습과 반타격으로 적의 기도를 꺾어버리시였다. 그것을 리론적으로 체계화해본 황영학이였으니만큼 끄당겼다가 다시 내친다는 식의 전술에 의혹을 품으면서도 장군님의 유격전법을 상기하며 《철수》와 《재탈환》전투에 림했을것이다.
또 하나 이번 전투에 대한 전선사령부의 지시와 조직지휘가 최고사령부의 작전구상에 따른것이라는데서 온 순진한 믿음도 있었을것이다.
최현은 어깨가 무거워졌다. 장군님의 사상과 전법을 누구보다도 깊이 파고들던 황영학이 전선사령부의 지시라 해서 덮어놓고 움직였다면 다른 지휘관들은 더욱 그럴수 있지 않을가.
《…때와 시간에 관계없이 항시적으로 전화를 걸어주시오. 전투조직과 지휘로부터 생활문제에 이르기까지 나와 상론하여 합시다.》
장군님의 말씀을 되살려보며 최현은 불안스러운 마음을 달래였다. 남들앞에서는 땅땅 큰소리를 치는 그였지만 최현 역시 전선사령부의 김웅이나 누구가 최고사령부의 작전방침이라고 하면서 이래라저래라 하면 혼돈속에 빠져들어 수동적인 기계가 될수 있는것이다.
최현은 덜커덩하는 충격에 눈을 번쩍 떴다. 방금까지 캄캄하던 밖이 훤히 들린것을 알아보았다.
차는 계속 달리고있었다. 얼핏 뒤돌아보니 자던것 같지 않게 단정한 자세로 앉은 황영학의 어깨뒤로 사품쳐흐르는 물이 보였다. 슬죽은 비발속에서 길을 토막치듯 배수로를 친것이 알렸다. 홈진 량쪽에는 길이 패일가봐 통나무를 질러놓았다.
차가 산굽인돌이를 돌자 왼켠에 좁은 골짜기가 나타났다. 희스름한 어둠과 비발속에서 그 골바닥에 한대의 차가 들어선것이 보였다. 좁은 길이여서 차들이 맞부딪칠 때 어기는 장소이고 항공신호시의 대피처이면서 운전사들이 자동차랭각기에 물을 넣는곳이다. 가물철에도 줄닫게 솟아나는 샘은 기갈든 사람들에게 더없이 훌륭한 《청량음료》를 제공하고있다.
지금까지 엄엄한 얼굴로 앞창만 내다보던 운전사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힐끔 그를 돌아보고는 알릴듯말듯 웃음을 머금었다.
《무슨 일이야?》
《고사총동무들도 사태막이작업을 나온것 같습니다.》
《동무들》이란 보이지 않고 단지 운전칸곁에 섰던 두사람이 그들의 눈길을 피하려는듯 적재함뒤로 사라지는것만 보였다. 이곳 고사총소대는 금강다리를 지키는 고사총중대의 소속으로 순 처녀들로 꾸려져있다.
최현은 차를 세우라고 했다.
운전사는 그의 말을 기다렸던듯 잽싼 동작으로 제동변을 당기며 다래넌출이 뻗어올라간 소나무밑에 차를 들이세웠다. 최현이 비옷도 걸치지 않고 차에서 내리자 적재함 반대쪽을 은신처로 생각했던듯싶은 두사람이 놀라는 자세로 경례를 붙였다. 작달막한 키에 날씬한 몸매의 군인의 어깨에는 적들의 락하산천으로 지어입은듯 한 비옷이 걸쳐져있고 그보다 두뽐정도로 훨씬 큰 키의 군인은 아래우 맞달린 운전사복을 입고있었다. 옷이 퍼그나 젖은것으로 봐서 그렇게 있은 시간이 오랜것 같았다.
(누구였더라?)
최현은 운전사복을 피끗 훑어보긴 했으나 남들의 눈을 기이듯 하는 그들의 이상스러운 태도로 하여 먼저 샘터쪽부터 가보았다. 한두사람의 힘으로써는 들기 어려운 이끼낀 돌들을 빽 둘러쌓은것이 사태진 물을 막으려 한것 같았다. 그때문인지 채 밝지 않은 미명속에서도 샘물은 평소나 다름없이 맑았다. 잘디잔 비방울들이 토닥토닥 떨어지며 샘물우에 무수한 물방울을 만들고있었다.
《이 석축을 동무네가 했소?》
《네, 그렇습니다. 저의 소대동무들이-》
날씬한 몸매가 대답했다. 말소리를 듣고보니 처녀였다.
《고사총소대요?》
《넷, 그렇습니다. 고사총중대 분대장 마정옥!》
처녀의 또랑또랑한 목소리에는 반가움과 기쁨이 어려있었다.
《대단한데.》
최현은 뚜벅뚜벅 그들쪽으로 마주갔다. 뻣뻣이 서있던 운전사의 얼굴이 앞으로 숙여졌다.
《동무도 도왔소?》
《전… 늦게 와서…》
더듬거리는 말소리가 최현의 기억을 살려냈다.
《동문 나와 구면이 아니던가?》
《넷, 군단후방부직속 운전사 장천일!》
《그렇지, 맞다. 천일이라고 했지. 》
…지난해 12월 밤새 퍼붓던 눈이 설핏한 눈발로 변하던 새벽 최현의 천막으로는 군단경비중대장과 함께 견장이 떨어진 남조선군 군복차림을 한 이 운전사가 총살형직전의 죄인마냥 부들부들 떨며 들어섰다.
《뉘기요?》
《남조선군들과 흑인부상병들을 싣고가다가 우리한테 걸려들었습니다.》
경비중대장은 사뭇 기세등등하여 말했고 장천일은 분명 울고난듯 한 뿌잇한 눈길로 최현을 바라볼뿐 입을 다물고있었다. 그러자 경비중대장은 서슬찬 눈길로 그를 한번 지릅떠보고는 계속해 말했다.
《그런데는 흥클하기 짝이 없습니다. 글쎄 우리를 찾아 저절로 왔다는것이 아닙니까. 전략적일시적후퇴시기 그 무슨 력사유물을 운반하던중 적들에게 잡혀 본의아닌 심부름을 했다면서… 주제에 당원이라고까지 하며 군단장동지를 꼭 만나겠다는겁니다. 정찰이나 간첩치고는 보통놈같지 않습니다. 위장물로 적 부상병들을 한차 가득 실은데다가 운전칸에는 죽어너부러진 군의인지 호송병인지 하는 녀석까지 앉혀놓았으니까요.》
최현은 살은 좀 빠졌으나 미끈하게 잘 생긴 《간첩》의 기름한 얼굴과 일매지게 곧은 눈섭밑의 둥실한 두눈을 한동안 여겨보다가 무뚝뚝하게 물었다.
《우리가 여기 있다는것은 어떻게 알았소?》
《그건 차에 실린 괴뢰군놈들까지 다 알고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나를 만나자는건 무엇때문이야?》
《군단장동지는 쉽게 리해하리라고 믿었기때문입니다. 저는 유물운반과업을 받을 때 군단장동지가 남쪽학자들이 가지고오던 고려자기들을 평양에까지 가져가게끔 도와주셨다는 말을 들었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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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군단장동지, 보십시오. 얼마나 준비를 시켰는가. 작년 10월의 일까지 다 알고있지 않습니까.》
경비중대장이 시간을 늦잡는것이 무익하다는듯 《간첩》에게 눈을 흘기며 성급히 말했다. 최현은 더 말하려는 그를 손짓으로 제지시키고 다시금 《간첩》에게 물었다.
《유물운반과업은 어떻게 받고 어데까지 날라가게 되여있었나?》
《유물운반과업은 도인민위원회 부위원장동지한테서 직접 받았습니다. 그 과업은 장군님께서 직접 하달하신것이라고 하는데 최고사령부 련락군관이 가져갈 품목을 적은 중앙유물보존관리소 소장선생의 편지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그 소장선생이름은 아나?》
최현이 이렇게 묻는데는 리유가 있었다. 그는 지난해 가을에 있은 고려도자기운반방조건으로 성송암이라고 하는 력사학자로부터 장문의 감사편지를 받았었다. 그런데 중앙유물보존관리소 소장을 한다는 성송암의 편지에는 고려자기에 대한 방조건과 함께 자기 딸을 잘 돌봐준데 대해 사의를 표하는 내용도 있었다. 알고보니 성송암은 최현이 전쟁초기부터 알게 된 성련화의 아버지였다.
《간첩》은 최현의 질문이 너무나 뜻밖인듯 또 한번 겁기어린 눈을 껌벅이며 머주히 보다가 자신없는 태도로 대답했다.
《이름이 좀 괴상한데… 제 기억이 틀림없다면 성송암입니다.》
《그건 맞다.》
최현의 얼굴빛이 누그러지는것을 알아본 장천일은 한가닥 희망의 실줄을 잡은듯 서둘러 말했다.
《전 솔송자 바위암자란것으로 잊어먹지 않은것 같습니다.》
최현은 그의 전체적인 인상과 한차의 부상병을 싣고 왔다는것으로 볼 때 《간첩혐의》는 공연한것임을 알았다. 그러나 늘 경각성을 강조하던 그로서 경비중대장의 《높은 경각성》에 대뜸 찬물을 끼얹을수 없었다.
《그런데 유물운반호송원들은 어디에 있냐? 동무 혼자 나르지는 않았을테니까…》
그러자 장천일의 얼굴은 또다시 흐려지고 휘둥그런 두눈에는 제발 믿어달라는 애원의 빛과 함께 그 희망을 단념한듯 한 어두운 그늘이 서렸다.
《그… 그들은 전부 희생되였습니다.》
장천일은 믿는가 안 믿는가를 확인하려는듯 최현과 경비중대장의 얼굴을 두렵게 훔쳐보며 그 과정사연을 설명했다. 운반도중 차가 고장났고 그걸 수리하는 과정에 적의 모터찌클병들이 나타났다. 내무부 지도원이였던 호송조장은 수리되는 즉시 떠나라고 하고… 세명의 대원과 함께 적의 모터찌클병들을 맞받아나갔다. 다행히도 인차 발동이 걸리여 그들을 찾으려 했으나 이미 그때는 모터찌클의 적들을 쓸어눕힌 그들이 산굽이너머에서 따발총을 쏘고있을 때였다.
장천일은 기다렸다. 그런데 자동총소리가 멎더니 좀 있어 땅크의 우르릉거리는 발동음이 울려왔다. 하여 장천일은 차에 올랐고 힘껏 가속변을 밟았다. 일이 안될 때라 얼마 못가서 또다시 발동이 꺼져버렸다. 그는 수리를 단념하고 실었던 짐들중에서 중요하다고 본 유물들을 사태진 벼랑의 어느 한 홈타기에 날라가기 시작했다. 마지막짐짝까지 다 나르고 다시 차를 수리해보려고 할 때 적의 모터찌클이 나타났다. 손을 들라는 바람에 손을 들었고 그들이 하라는대로 움직일수밖에 없었다. 양덕에 이르러 적장교의 심문을 받고 양덕군병원에 전개한 적들의 야전병원 운전사로 《심부름》을 하게 되였다. …
최현은 그의 말을 다 믿을수는 없었다. 분명 녀성들앞에서는 호남아로 담기를 펼쳐보일 때도 있었겠지만 처음부터 겁에 질려 벌벌 떤다든가 자기의 말투와 표정변화에 따라 절망하기도 하고 공포에 질리기도 하는 그의 태도를 봐서는 땅크의 폭음소리를 들으며 유물을 나를만 한 용기와 담은 없다고 생각되였기때문이였다.
《지도 볼줄 아나?》
《네, 장거리수송을 자주 하게 된 관계로 지도공부를 했습니다.》
《유물감춘데를 찾을수 있겠지?》
《네.》
최현이 펼쳐놓은 군사지도를 오래도록 내려다보던 그는 법동의 상서리와 양덕군 구룡리사이의 아호비령고개를 짚었다. 최현은 눈이 석자나 깔린 천막밖을 보다가 지금은 믿는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어딜 가겠나?》
그의 물음에 장천일은 바람맞은 허수아비의 태도를 싹 버리고 열정와 투지에 넘친 사람으로 일변하였다.
《군단장동지, 절 여기서 싸우게 해주십시오. 저는 싸움으로써 지난 기간의 수치를 씻겠습니다. 정말입니다. 부탁입니다. 일생을 걸고 맹세합니다.》
최현은 그의 눈굽에 물기가 어리는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는 원래 다사스러운 말에 대해서는 경계감을 앞세웠으나 상대방의 눈물앞에서는, 특히 사내들의 눈물에는 쉽게 넘어가는 사람이였다. 이렇게 되여 장천일은 그의 적후부대에 편입되게 되였고 재진공시기에는 운전사로 되여 정식 군복을 입게 되였다. 장천일은 군인선서를 하고 차를 받는 날 최현에게 찾아와 인사를 했다. 그통에 최현은 그의 차번호를 보게 되였고 그 번호가 신통히도 자기 생일과 같다는것으로 기억에 새겨두게 되였던것이다.
《그래 무스걸 실어가나?》
최현은 만나서 반가와할 대신 허둥이는 눈길로 어쩔바를 모르는 그의 태도를 의아쩍게 살피며 물었다.
《고등어를 싣고갑니다.》
《고마에를?!… 어디메로?》
《52사로 가져갑니다.》
《동문 52사를 맡았나?》
《저… 드레가 없습니다. 전 부식물운반만을 …》
장천일은 말하다 말고 처녀쪽을 흘끔 스쳐보고는 시죽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처녀때문인지 그는 숙였던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그 눈빛에는 더 묻지 말기를 바라는듯 한 빛이 엿보였다. 최현으로서는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달포전인가 그의 책상우에는 군단안전부에서 올라온 그에 대한 문건이 놓여있었다. 그 문건에는 해방전 그의 집안이 과수원을 가지고있어 꽤 잘산 축이였고 그가 감춰두었다는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적들의 부상병운반에 상당한 열성을 보였다는것이 지적되여있었다. 그에 대해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제기는 없었으나 내용으로 봐서는 수상한 인물로 점찍고있다는것이 알렸고 군단안전부자체에서 처리할 일개 운전사의 문제를 최현에게까지 상정시킨것은 그의 입대가 군단장의 결심에 의한것이였다는데서 최현의 결론에 따르겠다는것 같았다. 최현은 그 문건우에 동그라미만을 쳐서 내려보내였다.
동의수표로 통하는 그 동그라미는 안전부일군들에게 군단장이 문건을 보았다는것과 그에 대해서는 그냥 둬두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을것이다. 그러나 부식물운반만을 맡겼다는것은 적후투쟁시기 부대내에 잠입한 적잖은 암해분자들과 간첩들을 잡아낸 안전일군들로서 볼 때 만약의 경우를 예상하여 취한 조치일것이다.
최현은 장천일을 통해 운전사들의 시점에서 본 후방물자운반정형과 수송과정의 난점을 료해하고 유물문제도 더 알아보고싶었지만 시간도 시간인데다가 처녀앞이여서인지 몹시 난감해하는 그의 어줍은 태도로 하여 물음을 단념하였다.
《요즘은 하루에 몇번씩 총질을 해보나?》
최현은 운전사의 옆모습을 날카롭게 스쳐보는 처녀에게 말을 걸었다. 동그스름한가 하면 반대로 갸름하게 보이기도 하는 처녀의 얼굴에 화색이 피여올랐다.
《군단장동지! 답변하겠습니다. 3일전까지는 하루 15∼20회씩 대공전투를 벌렸습니다. 그런데 어제와 그저께는 정찰기들이 높이 떠 나는통에 휴식하였습니다.》
《휴식하였다?!》
《네.》
처녀의 얼굴에 방긋 웃음이 피였다. 놀랄만치 예쁜 얼굴이였다. 일년열두달 해빛과 설풍에 타고 얼었겠지만 희디흰 얼굴과 새별같이 빛나는 눈이며 깜찍스러울 정도로 작으면서 도툼한 입술이 보던중 절색이라는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근데 어째서 놈들이 3일씩이나 날아들지 않은것 같나?》
《요즘 우리 상공엔 늘 적란운이 덮여있습니다. 적란운에 들어서면 비행기에 방전이 일어 추락될수 있다고 합니다.》
처녀는 자기가 무슨 《지식》을 자랑했다고 생각해서인지 얼굴을 붉혔다.
《내 생각엔 동무말이 틀린것 같애. 놈들이야 구름우에서도 날수 있고 구름아래로도 날아오지 않나.》
《네. 그렇지만 저흰 괴뢰군비행사놈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락하산을 타고 내리다 저희들한테 붙잡힌 그놈은 모든것을 다 자백했습니다. 괴뢰군비행사들은 비오건 흐렸건 명령이 있으면 무조건 뜨지만 미국놈비행사들은 그렇지 않답니다. 놈들은 적란운이 생겼거나 비가 내리면 이런저런 핑게를 대며 뜨려고 하지 않는답니다. 그렇게 되면 상관놈들도 모르는척 하며 눈감고… 그대신 <전투점수>가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놈들은 출격회수에 따라 점수를 받고 그 점수에 따라 휴가나 표창이 있답니다.》
《허, 대단한걸 알아냈구만.》
최현은 미군인 경우 비행사들만이 아니라 일반보병에게도 점수제가 적용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지만 처녀의 장해하는 기분을 떨굴가보아 이렇게 감탄해보인것이다.
《놈들은 고용병들이니 동무말이 옳아, 하지만 이제부터는 오늘 같은 비에도 날아들수 있지. 그것도 상당한 수자로… 그러니 단단히 경계태세를 취해야 돼.》
《넷, 알겠습니다. 군단장동지.》
《동무네 보유하고있는 탄약은 얼마나 되나?》
《하루 20회씩 싸우는것으로 계산하면 보름분은 있습니다.》
《아니, 그건 적다.》
최현은 혀끝까지 나온 말을 삼켜버렸다. 이 처녀에게 할 말은 아니였던것이다.
《그럼 잘 싸우라구.》
최현이 손을 내밀자 처녀는 옆의 운전사같은것은 무시한다는 자세로 제 먼저 최현의 손을 꼭 잡았다.
《군단장동지, 금강교를 건넌 다음 고개마루에서 조심해주십시오. 운전사들이 말하는데 진흙감탕이 쏟아져내려 미끄럽답니다.》
《고맙소.》
최현은 우두커니 선 장천일과도 악수를 하고 지나가는 소리처럼 물었다.
《차가 고장났소?》
《저… 그렇습니다.》
《뭐 도울건 없을가.》
최현이 자기 운전사를 찾으려 하자 장천일은 황급히 말했다.
《군단장동지, 수리개소는 퇴치했습니다. 이제 배선만 련결하면 됩니다. 》
《그럼 수고하겠소.》
최현은 차에 오를 때 자기 운전사가 마정옥이라는 처녀의 손을 잡고 뭐라 상냥히 말하는것과 그의 태도에 비할 때 매몰차다고 할 정도의 대답을 들었다.
《어서 가요.》
운전사는 그런 쌀쌀한 인사를 받고도 운전대를 잡았을 때는 무슨 큰 일을 치른 사람처럼 환한 얼굴이 되였다.
《그 처녀를 잘 아나?》
《네, 이곳을 지나다니는 운전사들치고 저 <독가시>를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수인사나 하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거 <독가시>란건 무슨 소린가. 처녀가 형편없이 얌전하던데.》
《어휴, 말씀도 하지 마십시오. 겉보기엔 그래도 속에는 <독사>가 틀고앉았습니다.》
《허, 난 그래도 뚝바우같던 동무가 찰미역처럼 감겨도는걸 보았는데두.》
최현의 롱말에 운전사는 덴겁한 상을 하였다. 하지만 최현과 오래동안 지내는 과정에 운전사와 군단장이라기보다 한동리 늙은이와 젊은이관계로 습관된 운전사는 인차 자신을 다잡으며 천연스레 대답했다.
《거야 군단장동지를 봐서 그랬지요. 군단장동지가 살뜰하게 대해 준 처녀를 제가 막돌 대하듯 하면 되겠습니까?!》
《그랬댔구만. 한데 난 또 전쟁이 끝난 다음 동무와 그 처녀가 함께 살게 했음 좋겠다 하고 생각했지.》
《아니 정말입니까.》
운전사는 조향륜만 잡지 않았다면 껑충 뛰여오를듯 한 자세였다.
《군단장이 일구이언을 하겠나.》
최현의 눈에 실웃음이 어린것을 본 운전사는 게면쩍게 웃다가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건 안될겁니다. 어떤 <독가시>라구요.》
운전사가 실심한 기색이 된것을 알아본 최현은 또 한번 떠보듯 말했다.
《<독가시>란거야 동무같이 지부렁거리는 사람들을 차버려서 하는 소리겠지.》
《그… 그건 사실입니다. 물론 저는 그러지 않습니다만 그 처녀를 본 사람들은 죄다… 좀… 지부렁거리지요.》
《처녀가 너무 차거우면 안되겠는데-》
《아 그건 잘못 생각하신겁니다. 그 동무로선 그래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 조금만 받자 했다간 벌떼같은 성화에 못견딜겁니다.》
《아니 너는 우리 군인들을 무스걸루 보는거니?》
최현은 버럭 큰소리를 쳤다. 웃는 소리이긴 했지만 진짜로 분격이 왔다. 하지만 그의 성미를 잘 아는 운전사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군단장동지, 군대라 해서 고상한 사랑심의 표현이야 잘못될것 없지 않겠습니까. 어떤 책을 볼라니 인간의 본심은 어려운, 특히 이런 전쟁같은 때 잘 나타나고 고상한 사랑은 시련이 클수록 더 고상해지구 깨끗해지구 열렬하다고 했습니다.》
《허, 넌 운전학습보다 사랑철학을 더 많이 공부한것 같다.》
《저… 말씀이 계셨으니 하는 소리지만 그런 처녀의 마음을 산다는거야 행복이지요. <독가시>란건 공연히들 하는 소리고… 하긴 적기와 싸울 때 보면 처녀라기보다 무슨 신선님 같답니다. 쌕쌔기들이 정면으로 날아들며 로케트포와 기관총을 갈길 때도 눈섭 한번 까딱 않고 마주 쏘는데 기가 막힐 정도랍니다. 그래서 벌써 전사영예훈장 1급 하나에 국기훈장 2급을 둘씩이나 탔답니다. 공부도 고중까지 나왔구, 한데 난 중학을 겨우 나온데다가 아바이를 모신통에 훈장은커녕 군공메달 한개밖에 못 달고있으니… 그한테야 어림없지요.》
《허, 너무 락심말아라, 내가 있지 않니. 그런데 그 운수차 운전사에 대해선 무스거 좀 아나?》
《얼굴이야 알지만 이야기는 못해봤습니다. 누구한테도 곁을 주지 않고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니까요.》
최현과 운전사가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군단지휘부가 있는 순갑리로 들어설 때 마정옥과 장천일사이에는 심각한 말들이 오고갔다.
최현이 탄 차가 시야에서 벗어나기 바쁘게 입을 뗀 마정옥의 말이 도화선으로 되였다.
《그러니 동문 군단장동지한테도 자기 정체를 숨기고있군요.》
《난 숨긴것이 없소.》
《숨긴것이 없다구요? 동문 방금 내가 듣는 이 자리에서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나요. 차는 무슨 고장이고 배선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였어요.》
《건… 어쩔수 없지 않았소.》
《그럴테지요. 나쁜짓은 다 어쩔수 없는것으로 감추었을테니까요.》
《마음대로 생각하오. 하지만 난 자기 량심을 속인적은 없었소.》
《동문 언제나 그랬지요.》
《너무 그러지 마오.》
《너무하다구요?! 그래 동문… 우리 사람들이… 바로 동무가 싣고 온 놈들한테 생매장당하고 불타죽은걸 모른단 말이예요? 그래… 그런짓을 하고도 감히 량심에 대해서 말한단 말이예요?》
《…》
《이젠 헤여지자요. 마지막으로 부탁컨대… 난 동무가 두번다시 나를 찾지 않기를 바래요.》
《아이가 있는 곳만은… 알려주오.》
《동무한텐 아들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잘 가요.》
처녀는 돌아섰다. 물창을 튕기며 좁은 골짜기로 오르는 그를 망연히 쳐다보는 장천일의 얼굴은 밤처럼 어두웠다.
(어떤 관계들일가? 한데 그 멀쑥한 녀석은 완전히 기 죽은 상이였거든. 《독가시》라?!… 그한테 홀렸다 채운겔가. 아니 그렇게 볼 일이 아니지. 내앞에서는 더욱 우거지상이였거든.)
최현에게 있어서 일종의 휴식과 같았던 이러한 생각은 군단지휘부에 들어섬과 동시에 깨끗이 잊혀지고말았다.
차소리에 뛰쳐나온 군단참모장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그를 맞으며 전선사령부에서 긴급통보가 왔다고 했다.
최현은 황영학을 부관실에 있게 하고 참모장과 함께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작전탁에는 참모장이 미리 준비해놓은 20만분의 1의 지도가 펼쳐져있었다.
1951년도판의 백지도에는 점선으로 된 푸른색 화살표 다섯개가 전선서부의 세개 지점을 넘어서고있었다.
참모장은 최현의 눈길이 그 화살표에 닿는것을 보자 재빨리 그러면서도 엄숙할 정도의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적들의 주타격이 전선서부로 지향되고있다는것 같습니다.》
《?!…》
《방금전에 전선사련관동지로부터 알려온 통보입니다. 그후 작전직일관실에도 같은 내용의 통보가 오고-》
참모장은 손톱을 바투 깎아 더욱 몽틀지게 보이는 손가락으로 세개의 공격지점을 짚으며 말을 이었다.
《적들은 지난해 6월처럼 정각 4시경에 강력한 포병화력의 지원밑에 공격을 개시했다고 합니다. 매 지점들에는 적어도 한개 사단이상력량이 투입되였고 그 공격주로들엔 군단급이상의 포화력이 통로개척을 하고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대- 여섯개 사단이 덤벼들었다는거요?》
《그렇습니다. 때문에 전선사령관동지는 자기도 보고하겠지만 군단장동지도 이런 돌발적인 사태에 대하여 최고사령관동지께 보고드리고… 6군단의 기동을 고려하였으면 좋겠다는것입니다.》
참모장은 최현의 낯빛을 살피며 말허리를 끊고는 우연인듯이 시계를 보았다. 최현은 속이 벌컥 뒤집히는듯 한 속에 여느 때 같으면 스쳐지날 그 동작을 날카롭게 주시했다. 시계를 보는것은 매사에 빈틈없는 그의 습관에서 나온 행동일수 있지만 이 시각 최현에게는 다른 의미로 해석되였다.
《전선서부가 주타격이라는것도 전선사령관동무의 통보요?》
《네.》
《그에 대해 동문 어떻게 생각하오?》
참모장은 최현의 얼굴빛이 험악하게 이지러진것을 보고 한박자 늦추듯 푸른색 화살표들을 내려다보다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전… 그 견해에 일리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우선 적들이 우리의 전선동부방어작전을 간파하고 주공방향을 달리 했을수도 있다는것입니다. 지난 기간에도 우리의 작전비밀이 적잖게 새여나갔다는것을 놓고 볼 때-》
《오래동안 준비한 작전을 하루이틀새에 변경시킬수 있다고 생각하오?》
《저는 놈들의 발전된 기동력을 전제로 하면 하루이틀새라도 충분한 기동과 배비변경을 할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참모장은 또 한번 지도를 내려다보고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저는 전체적으로 전선서부주타격설을 부정합니다. 이 자리에서 그 근거를 말하라면 어렵습니다만 저로서 확신하는것은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이 모든것을, 적들에게 우리의 기밀이 새여나갈것까지, 또 그에 대처하여 릿지웨이나 밴플리트가 꾸며낸 흉계까지 다 내다보셨을것이라는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적들의 전선서부공격은 기만이고 연극일것이라는것입니다. 이로부터 저의 개인적인 의견을 묻는다면 6군단기동중지는 불허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현은 모두었던 숨을 후- 하고 내쉬였다.
《그에 대해서 전선사령관동무는 무어라고 하오?》
《그는 저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무선교신인데도 있고 또 저로서 의견을 말할 의무도 권리도 없다고 보았습니다.》
《앞으로 나에게는 묻건 안묻건 의견을 말해주오. 거기엔 의무도 권리도 작용하지 않소. 한데 진지굴설정형은 어떻소?》
《오늘아침 다섯시 현재로 확인한데 의하면 일부 구간의 교통호들과 엄페호들을 제외한 1선 전호들은 전부 완료되였다고 합니다.》
최현은 갑자기 심한 피곤을 느꼈다. 모자를 벗으며 통나무벽의 옷걸개를 찾아보던 그는 어저께까지 누렇게 말라보이던 통나무벽짬에 박은 이끼들이 퍼렇게 물이 오른것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그냥 모자를 눌러쓰고말았다.
《아침 조회모임을 몇시에 하겠습니까?》
참모장이 물었다.
《조회를?!-》
최현은 뭔가 뒤덜미를 콱 치는듯 한 충격을 받았다.
《현재 6군단은 어데까지 왔소?》
《엊저녁 총참모부 작전직일관실에서 알려온 통보에 의하면 선발대는 오늘안으로 판교에 들어선다고 합니다.》
《판교?… 모임은 저녁으로 미룹시다. 식사후에 전방진지들을 돌아봐야겠소. 그렇소. 동행으로는 포병사령관과 현지 사단장들 그리고 동무도 갑시다. 무전수도 포함시키고…》
최현은 참모장이 나간뒤 무너지듯 의자에 주저앉았다가 전화기앞으로 갔다. 붉은 비로도우에 놓인 전화기를 보는 그의 심정은 착잡하였다. 풀어놓으면 15m 잘될 통신선이 그의 복잡한 생각처럼 뱅뱅 감겨 또아리져있다.
그 전화기는 곁방의 침상에 누울 때도 안고 자는 최고사령부와 직결된 전화기였다. 그가 이제 전화로 찾으면 장군님의 밝고 따뜻한 음성이 우렁우렁 울려나올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의 마음속 어지러움과 불안은 말끔히 가셔질것이다.
손은 저절로 전화기에 가건만 최현은 자기의 행동을 다잡았다. 장군님께 무엇을 말씀드린단 말인가. 김웅이와 같은 우려를?…
(아니, 그건 좀 더 두고보자.)
의자에 다시 앉은 그는 젖은 장화를 벗고 책상밑에 놓아둔 병사용지하족을 갈아신었다.
부드러운 발싸개로 발을 감고 신을 신자 단 10분만이라도 눈을 붙이고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