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나는 아침 40 (마지막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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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철은 대동강가를 걸어가고있었다. 가을바람이 선들선들 불어 옷자락을 날리였다. 원시범이와 함께 여기를 같이 걷던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해가 되여온다. 원시범이 생각이 떠오르자 왈칵 가슴이 흔들리면서 온몸이 화끈 달아났다.
《시범이!》
대동문에 이른 강병철은 더 걸음을 내뗄수가 없었다. 숱한 사람들이 대동문루각과 련광정 그리고 평양인경 두리에 모여들어 구경을 하고있었다.
《원시범이! 너는 지금 어데 있느냐?》하고 강병철은 또 부르짖었다.
(원시범이! 우리가 그토록 모대기며 찾던 조선의 지성인이 나가야 할 길은 드디여 열리였다. 자네가 항상 말하던것처럼 인생의 길은 여러 갈래도 아니며 또한 내가 말하던것처럼 두갈래도 아니고 오직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김일성장군님을 따라가는 단 하나의 길뿐이다. 우리는 끝내 자기가 가야 할 정로를 찾은것이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청소년시절에 서로 저도 모르게 현혹되였던 예수 그리스토가 이끄는 그 길도 아니였으며 더구나 알라신이나 석가모니도 아니였다. 우리가 쓰거운 낯을 짓고 넘겨다보던 명예와 향락과 치부를 위한 그것도 아니였더란말이다. 그래 우리는 끝내 그 가냘픈 인정의 끄트머리, 우리의 량심이라는것에 매달렸었지. 그러나 그 량심이란 일제의 권력앞에서 무색한 낯을 짓고 염낭에 쑤셔넣지 않을수 없잖았던가. 그래서 우리는 신앙도 재능도 금력도 량심도 믿을수 없게 되였으며 나중에는 허탈상태에 빠지고말았었지. 그래 나도 허무한 이 인생을 스스로 포기할 생각을 할만치 어리석어졌었다. 그러다가 나는 한줄기 빛을 붙잡을수 있었다. 그 빛이란 곧 김일성장군님께서 우리에게 돌려주신 믿음이다.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믿는 그이의 밝은 빛이 나의 령혼을 밝혀주었다. 아! 그이께서 우리 인테리에게 안겨주신 믿음, 그것은 실로 놀라운것이다. 내가 오늘저녁에 보고 들은것만 해도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만한것이다. 평양철도국장 한명구, 그를 위해 1명의 유격대원이 자기몸을 바쳤다. 강선제강소 양춘만은 제도와 리념을 따지기전에 인간을 존중하고 인정의 리치에 서있는 장군님을 따라 끝까지 가겠다고 땅과 재산을 내놓고 나섰다. 원시범이! 내 말을 듣는가. 우리 민족이 김일성장군님과 같은 그런분을 모시게 되였다는것은 전민족의 행복이고 영예이다. 무엇으로 그렇게 말할수 있는가. 만약 우리에게 밤이 가고 낮이 온다는 그 단순한 하나의 자연현상에 대해서 그것을 믿을수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면 모든것이 비정상적으로, 부조리로 얽히게 될것은 물론이고 물질진화의 최고성과인 리성이라는 그자체마저도 부정하게 될것이 아닌가. 그러나 다행히도 인류는 그에 대한 드놀지 않는 믿음에 기초하여 살아가고있는것이다. 이 리치와 마찬가지로 무궁무한한 우주공간에 떠있는 삼라만상이 하나의 통일성을 이루고 조화롭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영원히 자기 존재를 유지하고있는 그 힘과 법칙이 있는데 그것을 만유인력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다면 우리 민족, 우리 겨레가 바로 그렇게 각기 제나름의 생활양태와 방식을 가지고 영원무궁할 번영의 길에 들어서게 된것은 무엇때문인가. 바로 그 《만유인력》은 김일성장군님에 의하여 베풀어지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 그 위대한 사상이다. 그것은 온 민족을 뗄래야 뗄수 없는 하나의 덩어리로 융합시키는 인력이며 그것을 통채로 번영에로 이끌어나가는 대견인력이다. 원시범이! 너도 이제 어데 가서 무엇을 하든 이 인력권외에 서있지 못할것이다. 같이 가자. 그래서 그이를 중심으로 해서 돌고있는 하나의 자그마한 행성으로 되자.)
강병철은 모지름을 쓰면서 껄껄한 대동문 돌벽에 볼을 비비였다.
눈물에 젖은 들판은 달빛을 받아 거울처럼 푸른빛을 반사하였다. 고뇌에 젖어 늙어보이는 얼굴에 어린애와 같은 순결하고 평온한 기운이 물결치고있다. 마치 그는 너무나 큰 격동을 이기지 못하여 가뭇 잠든것처럼 보이였다.
6
집무실에 계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석양이 비끼기 시작한 창문을 내다보시다가 문득 본래 계시던 외성리합숙으로 나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시였다. 숙소를 옮기신후 한동안 나가보지 못하시였다.
마당에 들어서시니 물을 긷던 안명숙이 뛰여와 반갑게 맞아들였다. 몇마디 합숙형편을 물으시고난 그이께서는 천천히 마당을 거닐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전해 가을에 유자덩굴이 기여올랐던 바자턱에 아이들 가오리연이 걸린것을 보시고 그쪽으로 다가가시였다.
《그런데 안명숙동무!》 그이께서 댕기오리처럼 뱅뱅 탈린 연꼬리를 풀어내시면서 쳐다보시였다. 《왜 이렇게 빈집처럼 조용하오. 이 집이...》
《두루 일보러 제가끔 나가다보니 그렇습니다. 2층에 좌현동무가 있습니다.》
《가만 보니까 요샌 아이들이 자주 찾아오지 않는것 같은데 이상하지 않소. 이것도 쓸만한건데 내버려둔채로 있고.》
그이께서는 한쪽손에는 대가리를 다른쪽에는 꼬리끝을 드시고 신문지장으로 만든 연을 내보이시면서 마당 한가운데로 나오시였다.
《혹시 동무들이 시끄럽다고 오지 못하게 하는거나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잠간 동안을 두었다가 듣게 된 안명숙의 대답에서는 웬일인지 처량한 음조를 느낄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
그이께서는 향나무우에다가 연을 조심스럽게 드리워놓고 고개를 돌리시였다. 그때 안명숙이 손등으로 눈을 가리우며 돌아서는것을 띠여보시였다.
《장군님!》 갑자기 코멘소리를 내고있다. 《아이들은 오래전부터 여기 오지 않습니다.》
《어째서 그렇소?》
다그치신다.
그러나 인차 대답이 없다가 가까스로 떨리는 소리를 냈다.
《박원식동무가 없은 담부터 딱 끊어졌습니다.》
《...》
가슴이 섬찍하는 순간 뒤에서 《스륵》하는 소리가 났다. 향나무에서 연이 미끄러져떨어지는 소리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뒤를 돌아다보지 않으시고 안명숙이 앞으로 급히 다가서시였다.
이윽해서 김좌현이 나오자 김일성동지께서 물으시였다.
《좌현동무, 그걸 어떻게 했소?》
얼떠름해서 대답을 못하고 쳐다만 본다.
《흥남에서 만들어온것이 있지 않소. 그걸 어쨌는가말이요.》
《박원식동무가 만들던 권총말입니까. 가지고있습니다. 저기 책장안에.》
《어서 가져오시오.》
잠간사이에 좌현은 2층에 올라갔다가 종이에 싼것을 들고 내려왔다.
마당을 거닐으시던 그이께서는 좌현에게 《옆집에 있는 인동이를 찾아보오.》하시며 대문쪽으로 걸어나가시였다.
양철지붕이 이마에 닿을만치 키가 낮은 단칸집에는 40세 되나마나한 녀인이 풍구를 돌리며 밥을 짓고있었다. 아궁이 내서 부엌이며 방안이며 온통 연기가 뽀얗게 차있었다. 좌현이가 덤볐다치며 인동이를 찾는바람에 녀인은 어리둥절해서 풍구를 놓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아!》 녀인은 입을 딱 벌리며 걸음을 멈추었다. 《장군님께서!》
어쩔바를 몰라하다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녀인은 방금 배고프다고 칭얼대던 애가 어데 갔는지 모르겠다면서 안절부절 못하였다. 방문을 열자 내굴이 차서 안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한길을 건너 자전거방쪽에서 《인동아! 인동아!》하고 부르는 좌현이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어서 풍구를 돌리십시오. 벼겨를 때는것 같은데 불이 달렸을 때 와짝 돌려야 합니다.》
《아유 글쎄 앉으실 자리도 없어서. 모처럼 오셨는데.》
《여기가 좋습니다. 인동이가 보고싶어 찾아왔습니다.》
영문을 몰라하는 녀인에게 사연을 이야기하고계실 때 좌현이가 인동이의 손목을 잡고 달려들어왔다.
《장군님, 안녕하십니까?》
머리가 수팜송이처럼 빳빳이 일어난 인동이가 머리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더니 어머니를 흘끔흘끔 쳐다보며 두걸음이나 뒤로 물러난다. 그런후에 어린 짐작에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던지 새까만 눈을 더부럭거리면서 이쪽저쪽을 쳐다본다.
그이께서는 아이를 덥석 안아서 높이 들어올리시였다.
《어데 갔댔나, 인동이!》
《뽈을 찼어요.》
주눅이 대판인 인동이는 장군님의 목을 힘껏 그러안고 좋아라 다리를 버둥거린다.
《왜 놀러 오지 않았나요, 인동이!》
《아저씨! 대장이 높나요 장군님이 높나요. 우리 엄만 대장아저씨라고 하지 말고 장군님이라고 하래요.》
《녀석두!》
인동이 어머니는 장군님 옷이 덞을가봐 절절매면서 내리라고 야단을 한다.
《인동아! 총을 만들어왔다.》
《총! 야! 좋다.》
땅에 내리선 인동이는 손벽을 짝짝 친다.
그이께서 포장한 종이를 헤치시고 총을 인동이에게 들려주시였다. 인동이는 총가목을 만져도 보고 총신구멍을 들여다보기도 하더니 《이거 박원식아저씨가 만들던거 아니야요?》하고 좌현이를 쳐다본다.
《그렇다, 쏴봐라!》
인동이는 격발기를 당기고 빨래장대기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였다.
《따 따 따》
련발로 소리가 났다. 인동이는 총을 머리우에 쳐들고 깡충깡충 뛰다가 끝내는 《만세!》하고 고함을 질렀다. 어린 넋은 벌써 적을 족치고 승리한 통쾌한 기분에 사로잡힌 모양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아이의 손목을 잡고 합숙마당으로 돌아오시였다. 인동이는 아무데나 대고 련발사격을 해댄다. 벽돌담장에다가도 쏘고 측백나무에다 대고도 쏘았다. 어느새 소문이 퍼졌는지 몇분후에는 고또래 아이들이 마당이 가득차게 모여들었다. 권총은 아이들손에서 손으로 옮겨갔다. 그럴적마다 련발사격소리가 나고 뒤이어 《야! 멋있다.》하는 탄성이 일어났다.
돌걸상에 앉으시여 아이들 노는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계시던 그이의 얼굴에는 웃음이 함뿍 어리였다. 내 나라 특수강이 처음 나온것을 보실 때도 그랬고 오늘 안동권이 첫 강의를 무려 2시간에 걸쳐 했다는 말을 들으시였을 때도 그런 웃음을 지으시였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짧은 한순간이고 다음에는 인차 긴장한 빛을 보이시였다. 박원식의 얼굴이 우렷이 떠올랐던것이다.
그이께서는 애써 아픈 추억을 밀어버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시였다. 그러다가 인동이를 불러세우시였다. 그이께서는 포동포동한 인동이의 두볼을 싸쥐고 눈을 들여다보시였다. 흑진주같이 검고 빛나는 눈동자가 빤히 올려다보고있었다. 벌써 그 눈에는 때이르게 무엇인가 생각하는 빛이 어려있다. 남실남실 솟아오르는 샘물구멍을 들여다보시는 느낌이였다. 고요한것 같지만 안에서는 끝없이 설레고있다.
그이께서는 인동이를 와락 당겨 가슴에 안으시였다. 어린것은 무턱대고 좋기만 해서 그이의 턱에다 대고 머리를 자꾸 비비였다.
때마침 저녁노을이 한창 무르익었다. 황금빛장막이 온 누리를 덮은것 같았다.
맑은 새날이 올 징조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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