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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빛나는 아침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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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3,504회 작성일 20-06-10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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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강병철과 원시범은 종로거리를 빠져서 화신백화점앞을 걸어가고있었다. 그들의 기세는 자못 요란하였다. 강병철의 머리에는 채양이 넓은 메히꼬형 중절모가 삐딱하니 걸려있었으며 앞을 활짝 열어 제낀 가슴에는 물방울무늬넥타이가 잉어뜀을 하였다. 근시경을 이리 번뜩 저리 번뜩하며 사람들 틈을 가르고나갔다. 그러나 기세를 보이는데서는 언제나 원시범이 우월하였다. 그는 두툼한 입술을 꽉 다물고 권투선수가 적수를 향해 나가듯이 약간 모재비로 서서 보폭을 넓게 잡고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원시범은 대동강변을 거닐지 않겠는가고 물었다. 그렇지만 강병철은 좋은 일은 서둘러야 한다는 말그대로 김일성장군님을 빨리 만나뵈워야겠다고 단호히 말하였다.

강병철은 거리를 걸어가면서 마치 그 누가 자기 의견에 반박이라도 하는것처럼 거듭 자기 견해를 력설하였다. 그는 이제 장군님을 만나뵈옵고 자기도 새 조국건설에 진력하겠다는 결의를 말씀드리고 과업도 받을 작정이였다. 이에 대해서 원시범이도 쾌히 동의하였고 행동을 같이하기로 하였다.

본정에 있는 2층집에 찾아갔더니 그런 용무라면 먼저 김책을 만나라고 하였다. 김책은 외성쪽으로 나가다가 대동강쪽에 나앉은 왜정때 심상소학교자리에서 일한다고 하였다. 심상소학교자리에 찾아가니 거기서는 건물보수작업이 한창 진행되고있었다. 무너졌던 벽을 쌓기도 하고 문짝을 갈아대고 지붕도 손질하고있었다. 일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청년들이였고 간혹 가다가 귀바퀴에 연필을 끼운 목수령감네들이 보이였다.

강병철은 지게에 벽돌을 까맣게 올리가리고 디뚝디뚝 힘겹게 걸어가는 중년사나이에게 김책이 어데 있는가고 물었다. 사나이는 먼지가 까맣게 오른 얼굴을 돌려대고 맞갖잖게 쳐다보았다.

《당신넨 누구요?》

시끄럽게 군다는 투다.

《우린 기술자들입니다. 일자리를 받자고 왔습니다.》

하고 원시범이 가로맡아나섰다. 성미가 꽛꽛해서 강병철은 자주 이런 외교에서 실패를 보기때문이다.

《기술자?》

키가 껑충하고 목이 기름한 사나이는 짐을 진채로 그냥 서서 아래우를 찬찬히 훑어보더니 《좀 기다리오.》하고 현관으로 들어갔다. 얼떠름해진 원시범은 옆을 지나는 청년을 붙잡고 또 물었다.

《여기 김책동지라고 나와있다는데 어데 있는지 모르겠소?》

《김책동지요?》하고 청년은 의아해하면서 김책이 현관으로 들어가는것을 보면서 말하였다. 《이자 마주서 이야기하구선, 저기 짐을 지고 가지 않습니까.》

몇마디 말을 주고받는데 김책은 짐을 부리우고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미안하게 됐소. 내가 김책이요.》하면서 벽돌가루가 뻘겋게 묻은 손을 툭툭 털면서 《저쪽에서 벽돌이 딸려서 그랬소. 그런데 무슨 기술자요?》하고 반가와하였다.

이번에도 원시범이 나섰다.

《이 친구는 전기와 야금이 전문이고 나는 화학입니다.》

《그렇습니까. 하하하 이거 정말.》 김책은 마냥 반가와하면서 한쪽손에 하나씩 잡고 널판자가 무둑히 쌓인데로 끌고갔다. 《정말 반갑소, 반갑소…》

노상 성난 사람같던 김책인데 아이들처럼 기뻐하며 어쩔줄을 몰라한다. 원시범이와 강병철을 번갈아 쳐다보던 김책은 두팔을 쩍 벌려 한아름에 안으면서 《당신네는 아무데도 못가. 나와 같이 일하자구, 당신이 역전려관에 있던 그 사람이지.》하면서 감격에 목메인 소리를 하였다. 《아!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군 그래. 복이 저절로 굴러들어온다더니 며칠전에 당신은 장군님을 직접 만나뵈웠지. 참 잘됐소. 장군님께서 기뻐하실거요.》 이러면서 김책은 40줄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하였다. 《여기가 뭘 하자는덴지 아오? 당신네 같은 기술자를 키워내자는 학교요. 우리가 처음 가지게 되는 공업전문학교지. 시작이 절반이라고 하지 않소. 이제 우리는 자기의 기술인재를 키워내게 되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우리앞에 천만가지 중요한 사업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인재를 키우는 사업이 첫째라고 하시였소. 알겠소. 그래서 이 일이 벌어졌소. 그래 난 이러고있으면서도 힘든줄을 모르겠소. 같이 일하기요. 여기에 이제 채광, 기계 등 전문과들을 여러개 두게 되오. 11월초부터 개교하자는데 아직 우리는 교원이 모자라오.》

김책은 두손을 펴서 자꾸 무엇을 끌어들이는 형용을 하다가는 두 기술자의 손을 다정하게 붙잡고 거듭 《우리와 같이 있자구!》하군 하였다.

《그러니 우리더러 남의 검에 날을 세워주는 숫돌이 되라는거지요.》

강병철이 웃으며 롱담을 하는데 김책이 대답하였다.

《그렇소! 그것이 요구되오.》

《우리는 지난날 남의 검을 위해 등때기를 너무 많이 소모했습니다. 그 검은 또 우리 목을 내리치고요.》

《그러나 오늘은 아니란말이요. 남의 검이 아니라 우리 검이요.》

김책은 계속 온화한 말로 대하였다. 《우리를 찾아온것을 보면 진심으로 우리와 함께 일하자는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소. 어서 말하오.》

《우리의 요구는 별것이 없습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건국에 이바지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공장으로 가야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기요. 전번날 장군님께서는 역전려관에 있는 기사를 만났다고 하시면서 흥남지구에 그런 기술자가 몇명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말씀하신적이 있소. 흥남으로 가시오. 비료가 나와야 쌀이 나오니까 흥남에는 비료, 제련, 기계, 화학이 다 있소. 이쪽 동무도 같이 가는것이 좋겠소.》 김책은 시꺼먼 눈섭을 치켜올리며 흥분해서 말하였다. 《그럼 이렇게 하기요. 내 이제 사람을 하나 붙여줄테니까 최준걸이라는 사람을 만나오. 그 동무도 동무네들과 같은 기술자요. 서울서 대학을 나온 선광기사요. 그 동무를 만나 토론해서 흥남으로 내려가는 수속을 하시오.》

《감사합니다.》 강병철은 김책의 손을 잡고 여러번 흔들었다.

방문객과 헤여진 김책은 또 아까처럼 벽돌지게를 지고 마당에서 현관쪽으로 힘겹게 걸어갔다. 강병철은 백양나무밑에 못박힌채 잠시 움직이지 못하였다. 참으로 감회가 깊었다.

허물어진 교사를 수리하면 이제 여기에 몇명의 학생이 앉아 공부하게 될것이다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이것은 어느모로 보나 큰일이 아니며 더구나 그 어떤 사변도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큰 위업을 위한 하나의 시초임에는 틀림없다. 마치 그는 어느 산골짜기의 맨끝머리 바위돌밑을 들여다보고있는것 같았다. 락엽을 헤치면 한공기 되나마나한 물이 보인다. 그것이 넘쳐 실오리같은 줄이 생기고 그것이 또 뻗어 개울, 강, 대하를 이루게 된다. 총과 배낭을 메고 산줄기를 타던 빨찌산투사들이 지금 가랑잎을 헤쳐 물줄기를 모으고있는것이다.

《빨리 갑세.》

원시범이 재촉하는데 강병철은 코멘 소리를 하였다.

《발걸음이 떨어 안지누만.》

그들은 다시 역전거리를 빠져 김책이 달아준 사람과 함께 최준걸이 있는데를 찾아갔다.

정원을 끼고 서있는 2층집은 매우 조용하였다. 키가 자그마하고 안경을 낀 리지적인 사람이 맞아주었다. 자기가 최준걸이라고 하였다.

마당에 선채로 통성을 하고 용무를 말하였을 때 최준걸은 장군님께서 대구에서 온 기사이야기를 몇번에 걸쳐 하시는것을 들었노라고 하였다.

《그러니 결국 우리는 동업자군요.》

강병철은 스스럼없이 롱담을 하였다. 간데마다 정치인들이 차넘치는 때에 그것도 공식적인 마당에서 자기와 같은류인 기술자를 만났다는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다. 더구나 장군님께서 거처하시는 곳으로 짐작되는 울타리안에서 경성제국대학 공과를 나온 선광기사를 만날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사려깊은 근시안을 가졌고 조용조용히 말하는 성미인 최준걸은 매우 기뻐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인테리들이 제일 꺼려하는 자기소개와 같은것도 서슴없이 내놓으면서 같이 일해보자고 손을 붙잡았다.

이렇게 하는것이 최준걸이로서는 대단한 결심이였으며 매우 견결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였다. 그는 지금까지 그 누구를 자기편으로 끌어당기는 행위를 단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다. 다만 자기혼자 조심스럽게 살얼음판을 걸어가는것처럼 그렇게 살았다. 하여 별로 큰 곡절없이 이날에 이르게 했던것이다.

그는 나라의 경제형편과 그에 기초해서 제시하신 장군님의 방침을 놓고볼 때 아닌게아니라 강철과 비료 그것이 제일 중요한 고리라고 하면서 전기와 야금전문인 강병철은 흥남비료에 가는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질소비료는 전기가 기본이고 흥남에는 제련도 있기때문에 그것도 같이 볼수 있을것이라고 하였다. 원시범은 화학기사니까 본궁화학에 가는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마당 한켠에 장의자가 2개나 놓여있어서 그들은 평온한 기분으로 앉아 대화를 할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중 키가 제일 작고 조용한 최준걸은 시종 긴장을 늦추지 않고 서있었으며 그와 마주선 강병철은 좀 조폭할것 같은 그 외형과는 딴판으로 뜨직뜨직 말하면서도 매번 적중한 표현을 가지고 자기 용무를 한걸음씩 접근시켜갔다. 그런가 하면 원시범은 이미 자기 태도는 다 결정하였으며 이제는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기분을 나타내고있었다. 그들이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 부엌에서 나온 젊은 녀인(안명숙)이 마당 한쪽구석에 있는 물뽐프에서 물을 길었으며 그때마다 치마꼬리를 붙잡고 2~3살 나보이는 사내애가 따라다니군 하였다. 아이가 《아줌마 아줌마》하는것으로 보아 모자간같지는 않았다. 강병철은 그 애가 신통히도 대구에 있는 자기 아들 영남이와 비슷하다고 생각되였다.

《만약 당신네들의 용무가 단순히 직장배치문제만이라면 구태여 장군님을 만나뵈올 필요가 없을것 같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런 취지로 가르침을 주시면서 당신네들의 직장배치문제를 저에게 구체적으로 위임하시였습니다. 그이께서 오늘과 래일까지는 여기에 계시지 않고 다른데 나가계십니다. 그러니 내가 김책동무와 토론해서 보고를 올리게 하면 안되겠습니까?》

강병철은 머리를 가로흔들어보이였다.

《이것은 직장배치문제이기전에 우리들의 운명문제입니다. 또 겸해서 나는 사전에 론의한것도 있었기때문에 누가 대신할수 없습니다. 또 내가 장군님앞에서 직접 표명해야 할 결심도 있는거구말입니다.》

옆에서 듣고있던 원시범이도 역시 같은 심정이라고 첨부하였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문제가 다르지요.》

최준걸은 마루에 놓였던 담배를 집어서 권하였다. 강병철이 자기한테도 있노라고 하면서 불을 다는동안 최준걸은 상대방 두사람을 유심히 쳐다보고있다가 다시 말을 떼였다.

《내가 보건대 당신네나 나나 공통점이 대단히 많다고 봅니다. 그렇기때문에 개인적인 어떤 사사용무가 아니라면 서로 터놓고 이야기 못할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인테리가 처한 운명문제와 같은데서는 내가 한걸음 먼저 내뗐다고도 할수 있습니다.》

최준걸이 겸손하게 웃었고 뒤미처 강병철이도 안경을 번뜩이며 원시범을 쳐다보았다.

그때 마당에서 놀이감자동차를 끌고 수도가를 빙빙 돌고있던 사내애가 《아저씨, 이거.》하고 소리쳤다. 자동차가 하수도구멍에 빠져나오지 않았다. 최준걸이 급히 달려가 자동차를 꺼내여 감탕이 발린것을 물에 씻어주고있다.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고있던 강병철이 입가에 웃음을 띠고 말을 떼였다.

《물론 개인용무는 아닙니다. 그러나 누가 대신하기도 힘든것입니다. 하지만 말해봅시다.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 인테리를 앞으로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데 대한 확고한 담보를 요구합니다. 이건 최준걸씨도 우리와 같은 립장이라고 보기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건 개선연설에 있잖습니까.》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민주조국건설에 나서라는것말이지요.》

《그 이상 더 명확한 대답이 필요한가요?》

《그렇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답변이 아니라 그에 대한 담보가 요구됩니다.》

《담보? 그러니 그것을 믿을수 있게 해달라 그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확답을 드릴수 있습니다.》

《확답을 말입니까?》

《그렇지요. 확답이지요. 좀 야박하게 해석한다면 우선 언약이 필요하고 그다음에는 관념만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볼수 있게 해달라 그것이 아닙니까.》 최준걸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여갔다. 《우리 서로 외교를 하지 말고 솔직하게 자기들을 드러냅시다. 나도 얼마전까지 그것이 필요했고 그것으로 해서 주저도 했고 모대기기도 했습니다.》

최준걸은 그 누가 들어도 무방하다는투로 어성을 높여가며 개성에 있는 부유한 자기 가정형편과 조선에 오직 하나뿐이였던 세력자와 수재들만이 모인다고 하던 경성제국대학시절이야기 그리고 북해도, 장춘근교, 무산 등 지방을 전전하면서 일제 대륙침략을 경제기술적으로 안받침한 이른바 《죄상》도 내놓았다. 해방은 황해도 신평 백년광산에서 맞았다. 기술자라고는 오직 자기 하나뿐이였다. 갱도에 물이 차고 식량은 떨어져서 행여나 무슨 수가 있을가 해서 평양에 왔다가 조선군대를 찾아갔다. 김책을 만난 그는 즉석에서 환영을 받았으며 같이 일하자고 해서 광산에 내려가 후임자를 정해놓고 올라왔다는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당신네가 묻고싶은것은 이런거지요? 프로레타리아와 적대되는 자산계급출신을 용납하겠는가. 언제까지. 그리고 의식적이든 불가피한것이든 일제에게 복무한 인테리를 당신네들이 용납하겠는가, 끝까지? 어떻습니까? 이밖에 뭐가 또 있습니까? 나의 경우에는 이것밖에 없었습니다. 말해보시오. 뭐가 또 있는가?》

온화할것이라고 보았던 최준걸의 거동은 매우 정열적이였으며 주장은 강경하였다.

강병철은 소탈하게 대답을 주었다.

《그렇소. 바로 그것입니다. 한데 우리는 그에 대한 대답을 장군님한테서 직접 받자는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체험했기때문에 이 자리에서도 정확히 말해줄수 있소.》

단호한 최준걸의 대답에 이쪽은 약간 얼떠름해졌다. 주제넘은 태도라고 보았지만 그것이 너무나 힘을 가지고 울려왔기때문에 립장이 얼마간 흔들리게 되였다.

《당신들이나 나나 우리는 지금 치명적인 결함들을 가지고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이전의 습성대로, 말하자면 이전의 눈으로 새 현실을 보고 평가하려고 하는것입니다. 회의, 의심, 불안, 공포 그것으로 해방된 오늘을 보고있는거지요. 지금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이 속았고 의심을 당했댔습니까. 그리고 의심을 당한것만치 우리 또한 얼마나 의심을 했고 공포에 사로잡혀있었습니까. 나는 장군님을 만나뵈온지 아직 한달이 못됩니다. 그러나 나는 만나뵈올적마다 느껴지는 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신네들한테 내가 확답을 할만큼 심각한 체험을 했습니다. 오직 나는 믿으라 이외에 할말이 더 없습니다. 그이께서는 공개적언명과 내적심리가 서로 다르지 않으며 언어와 행동이 일치하다는것을 나는 이몸으로 체험했습니다.》

최준걸은 계속해서 자기를 처음 대해주실 때 장군님께서는 과거를 묻기전에 먼저 현재의 결의를 듣자고 하시였고 애국적이라고까지 명명할수 없는 작은 소행과 의견에 대해서까지 크게 치하를 하고 상하없이 서로 의지하고 믿고 나라를 세우자고 하시였다는것을 실지 생활장면을 펼쳐가며 이야기하였다. 특히 그가 놀랍게 생각한것은 강선제강소에 갔을 때 얼어붙은 전기로를 만져보시며 여기 로동자들이 복구하겠다면 자신께서는 그대로 믿겠다고 하신 그 말씀과 그때 그윽한 눈길로 둘러보시던 그 모습이라고 하였다.

최준걸은 장군님께서 지니신 이런 관점에 기초하지 않았기때문에 우리 나라 경제실태로 미루어보아 5년안으로 복구가 불가능하며 더구나 전국의 경제를 동시에 들어일구어야 하겠다고 하시는 그이의 주장에 선뜻 지지해나설수 없었다고 하였다.

빈틈없이 째인 최준걸의 설명을 듣고나니 강병철은 갑자기 할말이 없어졌다. 모든 의문이 풀렸을뿐아니라 이미 그렇게 신뢰에로 쏠리였던 심정이 확고한것으로 되였다. 그렇지만 고집스럽게 가슴속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는것은 장군님을 한번 다시 만나 자기의 결의를 직접 표명하고싶은 강한 충동이였다. 또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경우라 해도 아무런 의미없이 그냥 뵈옵고싶은 누를길 없는 흠모심이였다. 그들사이에는 한동안 오가는 말이 없게 되였다.

《아저씨, 이거!》

사내애가 노끈이 끊어진 자동차를 안고 와서 그것을 비끄러매달라고 한다. 최준걸은 마루우에 놓은 주전자를 기울여 물을 마시고있었다.

《이리 온, 내 매줄게.》

사내애는 코를 훌쩍거리며 강병철이 있는데로 다가왔다. 강병철은 눈이 큰 사내애의 머리며 어깨며 이마를 만져보면서 물었다.

《이름이 뭐지?》

《이루이.》

《뭐 이룽이?》

《응.》

《몇살이지?》

《요렇게.》

손가락을 펴보인다는것이 제대로 되지 않아 뭐가 뭔지 모르게 되였다.

《3살? 응, 3살.》

그러면서 강병철은 아이의 생김새와 옷차림을 살펴보았다. 아이가 다시 자동차를 끌고 저쯤 대문가로 나갔을 때 강병철이 물었다.

《장군님네 자제분이겠지요?》

《그렇게 보입니까?》

《그럴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머리를 기웃거리며 강병철이 웃고있었다. 그에는 응대를 하지 않고 최준걸은 아이를 불렀다. 최준걸이 아이의 코를 수건으로 훔쳐주며 물었다.

《아버지 이름이 뭐나요?》

《아버지? 양춘만!》

《뭘하나요?》

《공장에서 강철 만듭니다.》

이때 강병철은 전류에 닿은것처럼 와뜰 놀랐다. 양춘만 할 때까지만 해도 무심히 들었는데 그것이 강철과 결부되자 그의 뇌리에는 강선제강소 양춘만이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지나갔던것이다.

《양춘만! 강선제강소가 아닙니까?》

강병철은 꽛꽛이 얼어드는 입을 겨우 놀려 물었다.

《그렇습니다. 이미 아는 사이입니까?》

최준걸은 역시 그럴수도 있다는투로 이상한것을 느끼지 않으면서 물었다.

《아는 사이는 아닙니다. 그러나 조선의 금속전문가치고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것입니다.》

《그렇습니까. 나도 역시 그런 정도는 알고있었습니다.》

강병철은 온몸이 옥죄이는것 같았다. 어쩌면 이렇게 공교로울수 있겠는가 생각하였다. 얼마전에 장군님을 만나뵈웠을 때 양춘만은 자기들과 처지가 다르다고 하였는데 그 양춘만의 아들이 여기에 있는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연을 알리 없었던 최준걸은 상대방의 감정변화에는 아무 관계없이 아이와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지금 아버지 어데 있나요?》

《저기 먼데 갔어요. 이제 온대요.》

《누가 배아픈거 고쳐줬나요?》

《장군님!》

유리창이 달린 2층을 가리킨다.

《일웅이 용타, 가서 놀아라.》

최준걸은 멀어져가는 아이를 쳐다보면서 석쉼한 목소리를 내였다.

《들었습니까? 아이가 말한 그대롭니다.》

《그런데 양춘만의 아들이 어떻게 되여 여기 와있습니까?》

강병철은 놀라운 눈길로 최준걸이와 사내아이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물었다.

《이 이야기만은 당신들이 믿어지지 않아할것 같아 그만두자고 했댔는데 이젠 해야겠습니다.》

최준걸은 벌써부터 흥분이 앞서 음성이 고르롭지 못했다. 그는 8. 15해방이 되자 양춘만이 자취를 감춘 이야기로부터 장군님께서 가정방문한것을 말하고 일웅이를 데려다 치료해준 사연을 감명깊게 말하였다.

아이 하나를 둘러싼 이야기가 너무나 심각하고 뜻이 깊어 그렇게도 침착했던 최준걸이도 조리있게 형상해내지 못하였다. 듣고보면 생활에서 곤경을 당하고있는 한 강철기사네 모자를 그대로 버려둘수 없어서 얼마간 도와주었다는것이 전부였던것이다. 그때 최준걸이 들은것은 장군님께서 《그들도 우리 사람입니다.》라고 한 단 한마디 말씀뿐이였다.

(아! 어쩌면 이렇게 될수 있는가?)하고 강병철은 속으로 부르짖었다. 일제에게 충실히 복무한 야금기사 양춘만이가 아닌가. 출신으로 보면 지주, 더구나 공산주의리념을 한사코 반대한 그가 아니였던가. 그는 해방이 돼서 자기스스로 자기가 어떤 인간이라는것을 세상에 드러내놓지 않았는가. 양춘만이는 일본놈들과 운명을 같이하기로 결심한것이다. 그런데 그 아들과 그 안해가 김일성장군님의 극진한 보호를 받고있다니. 앞서 만났을 때 강병철은 장군님께 《양춘만은 우리와 사정이 다릅니다.》라고 했던것이다. 그는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하자고 해도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하나의 물방울과 같이 작은것에 비낀 실로 놀랍고 위대한것을 진작 받아들이기가 아름찼던것이다. 그는 숭엄한 얼굴로 장군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짐작되는 2층을 쳐다보았다.

《장군님! 알겠습니다. 그날 그때의 말씀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우리들같은 인간에게 내민 따뜻한 손길이라는것을 똑똑히 알았습니다.》

강병철이 두손을 내흔들며 혼자소리를 하고있는 그 바로 뒤에 원시범이 서있었다. 그는 실성한 사람처럼 무심히 놀고있는 아이만 계속 바라보고있었다.

시간이 얼마간 흘러서였다. 강병철이 천천히 돌아서더니 묵묵히 서있는 원시범의 팔을 건드렸다.

《갑세!》

원시범이도 인차 일어나 대문쪽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최준걸은 얼굴이 벌겋게 된 강병철을 향해서 물었다.

《언제 다시 오겠습니까?》

《아니요. 다시 오지 않겠습니다.》

《그럼.》

《이길로 흥남으로 가겠습니다. 이 원시범은 본궁화학으로 갈것이고. 그렇지?》

원시범은 그것은 응당하다는듯이 고개를 끄덕하였다.

《나는 다 알았습니다. 나는 모든 대답을 다 받았습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공산주의혁명을 하기에 앞서 인간혁명을 하고계십니다. 그것이면 다지요. 수십만이 목소리를 높여 웨치는 환성, 그것은 참으로 훌륭합니다. 대중을 선도하는 현명한 리론, 선언, 그것도 또한 훌륭합니다. 그러나 나는 인간을 귀중히 하고 끝없이 사랑하시는 그 성품을 모든것가운데서 가장 크고 고귀한것으로 봅니다. 그속에 우리가 바라는 모든것이 다 있으니까요.》

이처럼 격한 말을 남기고 강병철은 거리로 나왔다.

원시범이와 헤여진 강병철은 거리를 말없이 걸어가다가 문득 당과류상점으로 들어갔다.

《저 알사탕 1봉지 주시오.》

어느것을 골라야 한다는것도 없이 그는 손짓을 하였다. 그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 진렬장유리우로 쭉 밀어줄 때 그 유리판에 집에 두고 온 4살짜리 아이얼굴이 언뜩 나타났다. 아이는 웃고있었다. 몸이 오싹해진 그가 다시 여겨보게 되였을 때 아이얼굴은 온데간데없고 몹시 이지러진 자기 얼굴이 비쳐있을뿐이였다.

사탕봉지를 움켜잡고 상점에서 급히 돌아나온 그는 다시 오던길을 되짚어 최준걸이와 이야기하던 그 마당으로 들어갔다. 최준걸은 보이지 않고 양춘만의 아들이 혼자 봉당을 헤집으며 아직 놀고있었다. 강병철은 그 애앞에 알사탕봉지를 내밀었다.

《자! 받아라.》

뜻밖의 횡재를 하게 된 아이가 눈이 둥그래지는데 강병철은 와락 어린것을 가슴에 그러안으며 눈을 지그시 내리감았다.

대구에서 떠나올 때 한길까지 따라나오는것을 아버지가 사탕 사다준다고 얼려서 떼놓고온 아들 영남이의 얼굴이 못견디게 그리웠다.

그가 눈을 떴을 때 아이는 이슬이 고인 고마운 아저씨의 눈을 쳐다보면서 입을 뚜 내밀고있었다.

《잘 있거라. 일웅아, 너는 우리와 달리 행복하게 살수 있다.》

그는 능금알같이 포동포동한 아이의 볼을 한번 다독여주었다.

이윽해서 그는 거리로 나와 역전려관으로 총총히 걸음을 옮기였다.


4

 

하루동안에 길떠날 준비를 해가지고 저녁녘에 그들은 평양역으로 나왔다.

강병철은 국방색광목으로 만든 배낭에 트렁크를 넣어 등에 졌고 원시범은 크지 않은 가죽가방을 손에 들었다.

10개로 편성된 라진행 렬차는 객차칸마다 벌써 송곳끝도 들어갈짬없이 사람들이 들어섰고 층계와 련결부 그리고 방통지붕꼭대기에까지 사람이 앉았고 기관차대가리에까지 하얗게 매달렸다.

강병철은 손으로 헤집고 머리를 휘두르면서 사람들을 밀고나갔다. 그리하여 끝내 그는 객차안에 들어서고야말았다.

《이 철도는 해방이 됐는데도 왜 이모양이야!》

《아야야, 내 다리 누가 뽑아간다.》

그 혼잡속에서도 역시 강병철의 머리는 잘 돌아가는축이여서 인차 묘한데 착안을 할수 있었다. 공중에 떠있으면 될것이였다. 그래 그는 짐을 얹는 선반에 올라가기로 하였다. 그는 공설운동장에서처럼 원시범의 등판을 디디고 훌쩍 현수동작을 해서 어렵지 않게 선반에 올라갈수 있었다. 그다음에는 원시범을 올리끌었다. 그러나 원시범은 발을 헛디뎌 허양 모자로 떨어졌다. 그통에 벌써부터 극성스럽게 무엇을 먹고있던 뚱뚱한 아낙네가 《아구 나 죽는다! 내 모가지가 부러졌다!》하고 비명을 질렀다.

어떻게나 그 고함소리가 요란했던지 차칸에 그 녀편네 목소리만이 꽉 들어찼다. 아닌게아니라 누가 하나 죽는것이 아닌가 했던 모양인지 차칸은 한순간 조용해졌다.

《아이구, 모가지야. 나 죽는다, 나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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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함경도내기녀편네의 아부재기가 계속되자 이번에는 그옆에서 웅글고 거쉰 목소리가 울리였다.

《고함소리 들으니끼니 아직 숨넘어갈라면 멀고멀었시다레. 고만하고 참으라구요.》

《이러다 죽지 죽는게 별겐줄 아오, 나 죽으문 뉘기 우리 박서방 노친네 돼주겠소.》

《쩌쩌쩌. 데거 보디. 죽었다는게 어드르케 말은 하나?》

《곰시 죽었는데 몇마디 말을 못할수야 없지앙이요.》

그통에 온 차칸이 떠나가게 웃음이 터졌다.

해질녘이 되여 덜커덩하고 차방통에 충격이 생기더니 마침내 라진행렬차가 자리를 드티였다.

강병철은 다리를 꼬부리고 누워 밑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마치 우주공간에 떠서 인간세상이 펼쳐진 지구덩어리를 한눈으로 굽어보는 기분이였다. 고생은 막심했지만 그런대로 이제는 고향땅 함경도에 가게 되였다고 기뻐하는 사람, 징병에 걸려 남양으로 가다가 배가 깨져 널판대기 하나를 붙잡고 이틀동안 물에 떠있다 살아났다는 사람, 해방덕으로 과부가 령감 얻어간다는 아낙네, 자기 형을 주의자로 몰아서 감옥에 가게 한 고원경찰서 고등계형사 양가놈을 잡아치우러 간다는 청년, 해방되는 날 보국대합숙에서 왜놈십장 2놈을 아예 편포짝을 만들었다는 결패있는 사나이, 사돈끼리 마주앉아 어느 당에 들든지 같은 당에 들어야지 사위 며느리사이가 버그러질지 모른다는 중로배 등등이 각기 제나름으로 떠들어대고있다. 어디를 보든지 사람들과 이야기거리는 싫지 않은데 뽀얗게 담배연기가 서리고 숨이 꺽꺽 막히게 고약한 냄새가 올라온다. 골치가 빠개져온다. 얼마간 있노라니까 원시범은 벌써 잠이 들었다. 강병철은 허리와 무릎이 쑤시고 숨이 막혀와서 창문쪽으르 돌아누우려고 몸을 뒤채였다. 그때 그의 한쪽구두짝이 벗어져 떨어지면서 밑에 앉았던 아까 그 함경도녀인의 정수리를 때리고 열려진 창문밖으로 날아났다.

《어, 어.》

강병철이 미안하다는 말도 할새 없이 당황해하는데 이번에는 그 아낙네가 밥곽에 떠다놓았던 물을 올리끼얹었다.

《이 옹기없는 인간들, 날 끝내 죽이고야말 차비 아잉가.》

또 한참동안 떠들썩하였다.

그러나 강병철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죽은듯이 누워있었다. 렬차는 순천을 지나서 양덕을 향해 달리였다.

차칸은 혼잡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렬차는 자기 궤도를 잃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있었다.

양덕역을 떠난 렬차는 천을역에 채 이르지 못한 산중에 멎어섰다. 량쪽 다 깎아지른 절벽이고 앞에도 뒤에도 굴이 있는 어간이였다. 한시간이나 기다리는데 누군가가 내렸다가 올라와 알리였다.

《기관차가 배가 고파 못간답니다.》

《뭐? 배가 고파.》

강병철은 인차 기관차의 연료를 생각하였다. 양덕에서 보급이 없이 무턱대고 떠났단말인가.

《그래 어쩐다오?》

누군가가 물었다.

《그래 모두 돈도 좋고 먹을것도 좋고 있는대로 좀씩 내라는거요.》

그때 강병철이 화가 난다는듯이 한마디 하였다.

《기관차가 돈을 먹으면 증기가 오른다는가?》

《여보 여보! 안경쟁이신사나리.》

무딘도끼로 대강 다듬어놓은것 같이 막 생긴 사나이가 로동복앞자락을 열면서 시비를 청하였다.

《당신이 뭘 안다고 입이 나불나불이야.》

그런다고 무맥하게 물러날 강병철이 아니였다.

《증기기관차는 5천카로리이상의 삐찌탄이 있으면 그만이란말이요.》

《저 신사 끌어내라. 보아하니 돈냥이나 있는 부르죠아같은데 해방맛을 보여야지.》

사나이는 군중을 향해 명령조로 나온다.

《옳당이. 저 안경쟁이 온기 있는가 봐줍세. 평양서부터 사람을 못살게 굴재이켔소. 아재 이리 옵세.》

이런 식으로 차칸이 끓게 되자 인차 어느 한 청년이 나서서 《번역》을 해주었다. 양덕고개는 임당수에서처럼 《고수레》가 있어야 무사히 넘어갈수 있다는걸 왜 모르느냐고 했다. 기관사아저씨들도 먹어야 살지 않는가. 돈이면 돈, 먹을것이면 먹을것, 그것도 없으면 아무것이라도 좋다고 하였다. 청년은 모자를 벗어들고 십시일반으로 모아다주자고 하였다. 불평으로 끓던 손님들이 저마다 돈도 던지고 먹을것도 내놓았다. 선반에 누운 강병철은 그때에야 새로 생긴 《양덕고개풍속》을 알아차리고 손목에서 시계를 풀어 훌쩍 던지였다.

《난 이것밖에 없소.》

고수레를 모으고있던 청년이 《어!》하고 놀란다.

《이거 통채로 다요? 아니면 가승이 있어야겠소?》

《다 주고 빨리 가자고 하시오.》

그것을 보고있던 함경도아낙네가 자리에서 일어나 구두를 신지 못한 발목을 툭툭 치면서 웃었다.

《안경쟁이생원. 내려옵세. 떡이나 하나씩 나누기오. 내 입이 걸어 그렇지 맘은 앙이 그렇소. 이재 보이 괘이찮은 생원이구마.》

무엇이 어떻게 되였는지 까닭을 알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렬차는 다시 떠나 동서를 가르는 분수령 천을고개를 가까스로 톺아오르더니 고원으로 향해 미끄러져내려갔다. 이렇게 가기도 하고 멎기도 하면서 강병철이 이제는 입버릇처럼 돼버린 《해방》이라는것을 하나 가득 실은 렬차는 옹근 하루만에 지쳐빠진 바퀴를 끌고 함흥역에 겨우 들어섰다.

강병철은 줄창 잠만 자고있는 원시범을 들어일구어 홈에 내리였다. 본궁이나 흥남역에서 내려야 하지만 그사이에 무슨 일이 또 생길지 알지도 못하거니와 도소재지 구경도 하고싶었다. 홈에 내렸지만 강병철은 한쪽발의 신이 없었다. 한쪽은 구두, 한쪽은 양말발, 두루 뭉개지고 단추가 떨어져 달아나기는 했지만 본바탕은 아직 유지신사풍이 그대로 남아있는 안경쟁이가 함흥역광장을 걸어나가는것이 볼만하였다.

원시범은 신통히 일본인피난민과 같다고 놀려주면서 차라리 한쪽것을 마저 던지라고 하였다. 그러나 강병철은 그래도 한짝이 있다는것만으로도 전체의 50%는 되는셈이니까 그것이 낫다고 하다가 끝내 더 걸을수 없게 되여 한짝마저 하수도도랑에 던져넣고 솔직하게 맨발신사가 되고말았다.

그길로 그들은 장마당에 들려 만 3끼를 건너뛴끝에 설렁탕을 한그릇씩 제끼고 문수가 큰 일본군화를 사신고 뚜거덕뚜거덕 소리를 내며 흥남비료공장을 향해 걸었다.

흥남비료공장자치위원회는 강병철을 환영하였다. 평양에 있는 최준걸한테서 전화도 왔다고 하였다.

때마침 공장에서는 흥남지구인민공장을 짜고있는중이였다. 공산당 함남도당 파견원의 립회밑에 흥남지구에 있는 5대공장, 비료공장, 제련소, 화학공장, 화약공장, 기계공장들의 관리기구를 하나로 통합하는것이다. 원시범은 화학기사로서 본궁화학공장 기술사업을 전적으로 담당하였다.

강병철은 원시범을 딱 붙잡았다. 화학공장도 중요하지만 우선 발이 닿은곳에서부터 일을 착실히 시작해야 할것이 아닌가고 졸랐다. 비료공장을 필두로 5개 공장을 다같이 돌아보고 복구대책만 같이 토론해주어도 좋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되여 강병철과 원시범은 다시 한짝이 되여 해방이 가져다주는 첫 작업에 발을 들여놓게 되였다. 밤낮 잇대서 현장에 나가보고 계획을 세우고 설계를 하는 한편 기능공들을 모아오고 하는 가운데 날자는 급히 흘러갔다. 가능한 공정들에서는 먼저 일을 시작하고 수리보수는 그것대로 따로 공정표를 짜서 내밀기로 하였다. 닷새, 열흘, 보름, 시간은 빨리 흘러갔다. 강병철은 끈덕지게 원시범을 잡고 놓지 않으면서 기술협의를 하였다. 원시범은 원시범이대로 본궁화학공장에 빨리 가야겠다고 엄살을 하였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강병철에게만 맡겨놓고 훌쩍 떠날수도 없는 형편이였다. 흥남제련소만은 강병철이 전문분야지만 그밖의 대부분은 결국 화학과 련관이 있기때문에 모른다고 할수 없어서 억지에 못이기는척하면서 강병철에게 끌려다니다가 맨 나중에야 본궁에 와닿았던것이다. 화학공장합숙에서 이틀 묵고 강병철은 짐을 싸들고 본궁역으로 나왔다.

《나는 비료를 찾아 떠나야겠네.》

아무말없이 역으로 따라나왔던 원시범이 기차가 들어오는것을 보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한 낯을 들었다. 거리로 보면 한정거장사이인데 타국으로라도 가는것처럼 심각해진다.

《할수 없지. 서로 길이 다르니까.》

왜 그런지 원시범은 직무나 거처가 다르다는 뜻으로가 아니라 그 어떤 합칠수 없는 운명을 말하는듯하였다. 원시범이 이 마당에서 그렇게까지 처량해지는것은 평양에서는 애인을 떨구게 되고 이제는 벗과 헤여지게 되기때문에 상심한것일수 있다.

그러나 성공을 바란다고 진심으로 축원해주었을 때 강병철이도 코마루가 찌르르해왔다.

차에서 손님들이 쏟아져내릴 때 어디선가 귀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선생, 나예요. 내가 왔어요.》

그것은 백추화였다. 하늘에서 떨어진것처럼 그렇게 나타난것이다. 원시범은 정신없이 달려가 처녀를 부둥켜안았다.

《추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그들이 만나는것과 동시에 강병철은 차에 오르지 않으면 안되였다. 마치 숨박곡질을 하고있는것처럼, 이런것이 결국 운명의 희롱일수 있다는 유모아를 생각할새도 없이 강병철은 평양역에서처럼 또 그런 식으로 머리를 휘저으며 사람들 틈을 뚫고 올라가 란간에 붙어섰다. 기차가 떠날 때 차창으로 머리를 내밀고 뒤를 돌아다보니 원시범이와 백추화가 손을 흔들며 나란히 서있었다. 그의 시야에 환상으로 확대되여 나타난 백추화는 역시 서리꽃처럼 그렇게 깨끗하며 싸늘한것이였고 원시범은 정신을 못차리고 멍청히 서있는것으로 보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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