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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빛나는 아침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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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4,594회 작성일 20-06-07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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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회의가 끝나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갑자기 밖에서 문기척소리가 났다. 김책이 급히 나가보았다.

얼마후 그는 난처한 기색을 보이며 되돌아들어오더니 김일성동지께 무엇인가 나직이 말씀올리였다.

《신창탄광로동자가 틀림없습니까?》

그이께서 따져 물으시였다.

《그렇습니다. 오늘아침부터 와서 기다린다고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장군님을 만나뵙겠다는것입니다. 그것이 정 불가능하면 정치위원도 무방하다고 합니다. 두분중 누구든 만날 때까지 열흘이고 한달이고 기다리겠다고 합니다.》

만면에 웃음을 띠우신채 잠간 무엇을 생각하는듯하던 그이께서는 《신창탄광 로동자대표를 만납시다.》하시며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잠시후 그이께서는 나이로 보나 생김새로 보나 모두 어슷비슷한 3명의 청년로동자들을 앞세우고 방안에 들어서시였다.

《자! 어서들 앉으시오. 먼길에 오느라고 수고했습니다.》

뜻밖에 친절히 맞아주는데 어리둥절해진 로동자들은 의자에 앉지 못하고 창문가에 서서 주춤거리고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한사람씩 팔목을 끌어다가 차례로 의자에 앉게 하시였다. 하는수 없이 의자에 앉게 된 3명의 로동자들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방안을 두릿두릿 살피였다. 흔히 볼수 있는 마루방에 책상 하나가 놓이고 검소한 쪽걸상 몇개가 눈에 뜨일뿐이다. 류다른것이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문앞까지 마중나와 손을 잡아끌어주신 부드럽고 인정미가 넘쳐흐르는 환한 얼굴, 활기에 넘친 몸가짐 그리고 추호도 위엄을 느끼게 하거나 마음을 긴장시키는데가 없는 안온하면서도 명확한 말씨, 이분이 바로 땅을 주름잡고 가랑잎을 타고 강을 건느신다던 그 김장군님이 아니실가. 일단 이렇게 마음이 쏠리기 시작하자 걷잡을수 없이 이분이 장군님이시다! 라는 생각에로 심장이 움직이였다. 하여 방금전에 정치위원을 만나게 된다는 김책의 안내같은것은 아무 소용이 없게 되였다.

한편 김일성동지께서도 규모가 큰 기업소라고 알고계시던 신창탄광에서 온 로동자대표가 20전후로 보이는 청년들이며 소박하고 어진 눈을 가진 천진한 사람들임에 놀라시지 않을수 없었다.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았던 가운데청년이 일어났다.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키가 크고 앞가슴이 쩍 벌어진 구리빛얼굴의 청년이다.

《우린 방금 인사를 하지 않았소.》

김일성동지께서는 팔을 잡아 자리에 도로 앉히시였다. 하지만 눈섭이 진하고 관골이 두드러져 록록치 않게 보이는 청년은 고집스럽게 일어서서 깊숙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올리였다.

《저는 채탄공 박창술이라고 합니다. 이 동무들도 저와 같이 일합니다.》

이렇게 되자 그이께서도 얼마간 정색해져서 한옆에 앉은 김책을 소개하시고나서 《그래 탄광에서들 얼마나 수고가 많습니까? 모두 무사히들 있습니까?》하고 다정하게 안부를 물으시였다.

박창술이 또 《네!》하며 벌떡 일어나 대답하려는것을 그이께서 붙잡아앉히시면서 《동무는 마치 일본군대식이요. 동작이…》하고 웃으시였다.

박창술은 얼굴이 벌겋게 되며 《아닌게아니라 왜놈군대에 끌려가 생 혼이 났습니다.》하고 뒤덜미로 손을 가져갔다.

어느덧 박창술 등은 어려움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마치 구면의 친지와 오래간만에 회포를 나누기라도 하듯이 다정스럽게 이야기를 펼쳐나가게 되였다. 우선 탄광의 현실정에 대한 문제부터 화제에 올랐다.

《외람되게 이렇게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찾아온 목적은 우리 신창탄광을 책임질 사람을 하나 보내달라고 청을 드리자는것입니다. 해방이 되였다고 모두 춤을 추는데 식량이 떨어졌고 <간조>줄 돈도 없습니다. 굴에는 물이 찼습니다. 여기저기 다녀보았는데 누구도 어떻게 하면 된다는 지시를 못합니다.》

그이께서는 《그렇소?》 하고 긴장해진 얼굴로 달빛이 은은하게 흐르고있는 창문가를 쳐다보시면서 알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이미 짐작하실수 있었고 또 그 짐작이 큰 편차없이 들어맞은것이다.

《담배를 피시오.》

담배갑을 박창술이 앞으로 밀어놓으시며 자신께서도 불을 다시였다.

밤은 퍼그나 깊어졌다. 이따금씩 멀리 지나가는 전차의 고르로운 음향이 아스레하니 들려올뿐 거리는 고요한 정적속에 묻혀있다.

그이께서는 며칠전에 평양철도국에 나가 기술자 한명구를 설복하던 그때 정황을 상기하시였다. 한명구는 인테리여서 사정이 달랐다. 한데 이 순박한 로동자들한테 어떻게 오늘의 내외정세와 조국이 처한 불가피한 정황을 납득시키며 그것으로 해서 창조적열정이 끓어번지게 할수 있을것인가. 난처한 일이 아닐수 없다.

그이께서 잠간 생각에 잠겨계실 때 담배를 피우고있던 박창술이 재털이에 불을 끄고나서 상의앞섶을 헤치며 허리춤에서 무엇을 찾기 시작하였다. 얼마간 부시럭부시럭하더니 허리띠에 매였던 끈을 풀어 끼뼘 한기장이나 되고 번쩍번쩍 광택이 나는 금고열쇠를 하나 내드는것이였다. 열쇠를 두손으로 받쳐든 박창술은 그것을 장군님 앞으로 내밀면서 정중히 말씀을 올리였다.

《이것은 우리 탄광 금고쇠대입니다. 그 금고에 로동자들에게 주는 <간조>돈도 있었고 돈표도 있었습니다. 왜놈들한테서 우리가 뺏아냈습니다. 받아주십시오.》

실로 이것은 뜻밖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때 분명히 끝이 떨고있는 열쇠를 볼수 있었고 그것을 받쳐든 마디가 굵고 거밋거밋한 젊은 탄부의 억센 손도 같이 떨고있는것을 보실수 있었다.

《그래 이것을 어떻게 하라는것입니까?》

《이 쇠대를 간직할 우리 탄광의 주인을 보내주십시오. 주인이 이 쇠대를 차지해야 합니다.》

그제서야 김일성동지께서는 로동자대표가 내민 열쇠의 사연을 짐작하실수 있었다. 열쇠는 차츰 그이께서 계시는쪽으로 접근해 갔다. 앞으로 한치한치 다가오고있는것을 보고계시던 그이께서는 성큼 자리를 뜨시고 몇걸음 나서면서 박창술의 손을 덥석 움켜잡으시였다. 그리고는 으스러지게 손을 꽉 그러쥐시였다. 이때 섬광처럼 빛을 뿜는 그이의 시선은 탄부의 젖은 눈을 응시하고있었다. 그이의 넓은 어깨는 힘차게 오르내리였다.

《박창술동무! 이것은 내가 가질것이 아니라 동무가 가져야 합니다. 다름아닌 바로 동무가 탄광의 주인이요.》

《저는 주인이 아니라 로동잡니다. 임금을 받고 품을 파는 삯군이지요.》

《아니요. 동무가 바로 주인이요!》

방안을 쩡 울린 웅글고 확신에 넘친 목소리에 압도되여 일시에 모든 움직임들이 정지되는듯하였다. 처음부터 창문쪽에 서서 방안분위기를 줄곧 지키고있던 김책이도 움직이지 않았다.

천근무게로 지지눌리운 방안공기를 흔들며 그이의 음성이 또다시 울리였다.

《박창술동무, 동무의 신세는 달라졌습니다. 일제의 노예로 멍에를 끌던 과거 로동계급이 아니라 동무는 이 나라의 주인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일제에게서 빼앗은 그 열쇠를 누구에게도 넘겨주어서는 안됩니다. 탄광의 주인인 로동계급이 틀어쥐여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제가 가진단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주인이 가져야 한다고 동무자신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주인인 동무가 가져야 합니다.》

순간 박창술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동무가 바로 주인이요!》

이 평범한 그이의 한마디 말씀이 탄부의 가슴을 세차게 흔들어놓은것이다. 해방이라는 참뜻이 이때에 비로소 끓어오르는 격정을 안고 심장으로 육박해왔다. 한순간에 그는 자기 처지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것을 온몸으로 느끼였다. 그는 허리를 비틀며 모지름을 쓰다가 끝내 흑 하고 소리를 내여 흐느끼였다. 박창술의 눈굽에 기름처럼 찐득한것이 솟아오르더니 주르르 볼을 타고 흐르면서 마주잡은 김일성동지의 손등에 떨어졌다. 그것은 불찌처럼 뜨겁기도 하고 또한 연알처럼 그렇게 무게를 느끼시게 하는 눈물이였다. 가만 놔두시면 끝없이 그러고있을것 같았다.

《자! 그만하고 열쇠를 허리에 매시오. 든든히 매시오.》하고 그이께서는 열쇠를 혁띠에 걸어주시면서 말씀하시였다. 《금고는 지금 아무것도 없이 텅 비였을거요. 이제 우리가 벌어서 넣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우리 로동계급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을 해야 합니다. 식량이 그중 곤난하겠는데 우리가 어떤 수를 써서라도 해결하겠습니다. 탄부들한테 전하시오. 우리들이 있는한 로동계급이 굶는 일이 이제부터는 절대로 없을것이라고말이요.》

이때 박창술은 비장한 결심이 어린 그이의 얼굴을 볼수 있었고 탁자우에 놓였던 주먹이 여러번 흔들리는것을 목격할수 있었다.

그이께서는 계속해서 탄광을 운영할 구체적인 문제들까지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오래동안 말씀하신 그이께서는 이제는 동무들이 물을것이라든가 제기할것이 있으면 제기하라고 하시였다.

《이제는 앞이 내다보입니다. 그런데 애로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 탄광에 착암기에 쓰는 정대가 없습니다. 정대가 있어야 굴을 뚫고 석탄을 캘수 있습니다. 왜놈들이 쓰다남은 꽁다리밖에 없습니다.》

그이께서는 평양철도국 한명구가 제기한것을 상기하시면서 《역시 강철이 요구된단말이지. 그래 기술자들은 있소?》하고 물으시였다.

《없습니다. 그러나 얼마간은 이전에 하던 눈짐작으로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차차 기술을 배우겠습니다. 그런데 기술자만 있으면 제철소나 제강소같은데서는 정대를 만들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소. 만들수 있을거요. 그런데 탄광이면서 석탄을 못캐는 동무네나 그곳 로동자들이나 사정은 마찬가지가 아니겠소.》

《려관에서 기술자를 한사람 만났는데 그 사람이 아는것이 정말 많습니다. 하루밤 의논해보니 좀 노력하면 될수 있다고 합니다.》

《될수 있다? 어느 려관에 있었소? 역전근방이 아니요?》

《네! 역전 평양매일신문사뒤 대동강려관 2층에 들었습니다. 집이 경상도 대구라고 하는데 얼마전에 서울서 볼일이 있어 왔다가 이제 돌아갈 소리를 했습니다.》

《서울로 간다고 했겠소. 김책동무! 이 동무가 지금 동무가 찾아낸 그 사람을 말하는것이 아닙니까?》

《그 사람인것 같습니다.》

김책은 매우 공교롭다고 생각하면서 명확히 대답하였다.

동켠하늘이 휘붐히 트이기 시작하였다. 김책이 새날이 밝았는데 그만하는것이 어떤가고 하였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좀더 이야기해야겠다고 하시면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로동계급이 령도하는 나라를 세울데 대해서도 말씀하시고 며칠후에 공산당이 창건된다는데 대해서도 진지하게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야기를 하면할수록 힘이 생기고 앞이 트이는것을 느끼시였다. 이런 계급, 이런 인민이면 못해낼 일이 없을것 같으시였다. 곡산공장이나 평천병기공장 같은데서는 기술자없이는 한걸음도 나갈수 없다고 했는데 이들은 그래도 자체로 해보겠노라고 한다. 설사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 결의와 기개가 천금같이 귀중하고 듣는 사람에게 큰 고무로 되는것이다.

《동무는 내려가서 탄광주인노릇을 잘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사람을 파견하겠습니다. 무슨 어려운 일이 제기되면 아무때고 찾아오시오. 또 전화를 해도 좋고 편지를 써도 좋습니다. 동무는 건국사업을 떠메고나가는 역군이 돼야 하겠습니다.》

《저는 다른건 다하겠는데 건국사업은 못하겠습니다.》

《그건 어째서.》

《그런걸 하자면 연설을 잘해야 하는데 저는 연설을 할줄 모릅니다.》

《석탄은 캘줄 알지 않소.》

《그건 얼마든지 할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나라를 세우는 건국사업이요.》

《그렇습니까? 그렇다면야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하하하…》

김일성동지께서는 박창술의 순박한 얼굴을 보고 크게 웃으시였다. 그통에 장밤을 새워가는동안 한번도 말이 없던 김책이도 크게 웃었다.

창문에 아침해가 비쳐들게 되자 김일성동지께서는 조반이나 같이하자고 하시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열쇠가 있는가 잘 보오.》

《여기 있습니다. 그걸 잃어서야 되겠습니까.》

식사를 끝내신 장군님께서는 현관밖까지 3청년을 바래우시면서 김책에게 박창술을 료해해보고 지배인을 시키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한길에 나온 박창술이들은 어깨가 빠져달아날만치 활개를 저으며 창광산쪽으로 올라갔다. 느티나무가 서있는 산마루에 이르니 평양의 번화거리가 한눈에 안겨왔다. 세청년은 약속이나 한듯이 발을 돋우어 바야흐로 아침해가 솟고있는 동녘하늘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청동색인 박창술은 해빛을 향해 한참동안이나 묵묵히 서있다가 허리에서 열쇠를 벗겨내서 그것을 머리우에 흔들어대였다. 억실억실한 그의 눈은 불덩이처럼 이글거렸고 억센 턱은 희열이 흘러넘친 그의 입모습을 받들어내지 못해 축 처져내리였다. 이 순간 박창술은 눈부신 태양의 광휘속에 밤새껏 눈에 익혀둔 그이의 영상을 겹놓아보는것이였다. 언제나 예지와 자애에 빛나는 눈, 인정미 넘쳐흐르는 입가 미소 그리고 마디마디 가슴속 밑바닥까지 텅텅 울려주는 웅글은 음성, 안기고싶고 한껏 응석을 부리고싶은 넓은 가슴, 그 모든 표상을 눈앞에 그려보던 박창술은 천만갈래 마음의 금선이 단꺼번에 떨면서 행복과 영예의 음향을 울리는것을 감각하였다. (그렇다. 그분은 분명 장군님이시다. 장군님이 아니시고야 어찌 그처럼 큰 뜻을 한꺼번에 안겨주실수 있겠는가!) 그는 입을 크게 벌리고 《아! 우리의 장군님! 김일성장군님!》하고 두팔을 쩍 벌렸다가 와락 가슴에 부둥켜안았다. 실성한 사람처럼 몸둘바를 몰라하는 세청년은 서로 닫고 뒤쫓고 하다가 마침내 융단을 펴놓은것 같은 잔디판우에 벌렁 나자빠졌다. 그들은 기쁨에 겨워 몸부림치면서 잔디판을 북북 뜯기도 하고 딩굴기도 하였다. 때마침 한가닥 초가을바람이 휘익 스치면서 사시나무가지를 흔들어 여러장의 잎을 뜯어다가 그들의 머리우에 휘뿌려던지였다.


5

 

강병철은 오래간만에 머리를 감고 비누세수를 하였으며 깐깐하게 의복차림을 하였다. 이제 서울까지의 로정에서 몇번이나 죽탕이 될는지 알수 없지만 그래도 당장은 제 본색차림을 하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삯을 주었더니 와이샤쯔 목깃이 눈부시게 희여졌고 바지주름도 나무랄데가 없었다. 거울앞에서 찌크를 발라 머리를 재우고 향수를 뿌린 다음 작년에 야하다에서 산 물방울무늬의 곤색넥타이를 매였다. 이제 트렁크를 들고나서서 원시범을 만나 《난 간다. 잘 있으라.》하고 거뜬히 발걸음을 돌리면 될것이였다. 하지만 그는 어덴가 딱히 짚어댈수 없는 미흡한것때문에 몹시 망설이고있었다. 시간은 벌써 중낮이 지났다. 우선 그를 이렇게 바재이게 한것은 원시범이 잘가라 할것 같지 않은 위구였다.

(이제 내가 서울로 간다치자)하고 그는 한걸음 내떠 추리해보았다. 거기는 또 거기대로 예측할수 없는 운명의 오솔길이 나질것이다. 여태 모든것이 그러했으니까 거기서도 또 몇바르가 될지 알수 없는 생활파고를 필사적으로 헤염쳐넘어야 한다.

강병철은 상의를 다시 벗어 벽장에 걸고 다다미우에 번듯이 누워 천정을 올려다보면서 명상에 잠기였다. 생각할수록 천평의 바늘은 쉴새없이 북과 남사이에서 한들거리고있다.

그런데 박창술은 어제아침에 떠난후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가면 간다고 할것이고 또 결과가 어떻게 됐다고 기별이라도 있음직한데 통 소식이 없다. 하긴 아직도 길거리를 무작정 헤매고있을지도 모른다.

삐걱삐걱 마루 밟는소리가 나더니 문기척소리가 난다. 《누구요?》하고 강병철은 누운채로 고개를 들었다.

《이 방이 강병철선생이 계신 방이 옳습니까?》

《네!》

하고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신통히도 박원식이와 비슷한 푸른 옷의 군대가 앞에 서있다. 놀라움과 함께 이름할수 없는 기쁨이 앞서서 반갑게 맞이하는데 저편에서는 자기네 정치위원동지께서 면회를 청한다고 하였다.

《아! 그래요. 저는 강병철이라고 하는데 이름을 혹시 혼돈한것이 아닙니까?》

《일본서 건너와 대구에 있다가 온 야금전문가 강병철씨가 틀림없겠지요.》

《네. 네! 그렇습니다.》

강병철은 쾌히 대답하고나서 그러면 어데로 가면 만나뵈올수 있겠는가고 하였다.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군대의 뒤를 따라 대동강쪽이 내다보이는 본정으로 올라갔다.

자그마한 정원이 있고 2층으로 되였는데 지은지 오래지 않은 일본식 건물이였다. 2층층계를 오르는데 젊은분이 마주나오시였다.

《강병철선생입니까.》

《네! 제가 강병철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려관으로 갈가 하다가 조용히 의논할만한 장소를 택하다보니 이렇게 되였습니다. 량해하십시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저같은 사람을 찾아주신것만해도 감사합니다.》

강병철은 허리를 굽혀 경례를 하였다.

그분은 키가 후리후리하고 목소리가 우렁우렁하였으며 얼굴에는 인자한 웃음이 함뿍 어려있었다. 때문에 옷이 군복이다뿐이지 군인다운 엄격성이나 어떤 격식같은것은 전혀 느낄수 없었다.

다다미방에는 키낮은 탁자가 놓이고 량옆에 눈부시게 흰 방석이 놓여있었다. 자개를 박은 옻칠쟁반에는 차잔이 놓여있었는데 려관에 안내하러 왔던 젊은 군인이 차를 부어 권하였다.

그이께서는 담배를 피우라고 하면서 담배와 성냥을 앞으로 밀어내놓으시였다. 그러는 순간순간에 강병철은 전혀 예상할수 없었던 상대편의 표상과 인품을 가늠해보려고 하였다. 군대, 그러니까 김일성장군님부대의 높은 간부이심에 틀림없을것이였다.

강병철의 머리에는 한순간에 여러갈래의 의문이 떠올랐다. 김일성장군님의 군대와 강병철 자기자신과의 관계를 그 무엇으로써도 도저히 련결시켜낼수 없었다. 사상과 리념에 있어서나 기술면에 있어서 또는 개인적인간의 관계에 있어서 어느것에서도 류사한 점은 찾아볼수 없었다. 때문에 그는 존대해야 할 손님의 인사치레에만 급급하면서 정신을 극도로 긴장시키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앞에 놓인 차잔을 한옆으로 밀어놓으시며 나직이 말머리를 떼시였다.

《강철문제를 좀 의논하자고 이렇게 수고를 끼치게 되였습니다.》

《네? 강철문제라구요?》

그것은 정말 뜻밖이였다.

《그렇습니다.》

《군사적목적에 필요되는 강철이라면 그것은 높은 질적지표를 예견해야 할것입니다. 더구나 저는 조선에서의 강철은 생소합니다.》

그는 무엇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그분의 예지에 빛나는 시선이라든가 구구한 전제가 없이 직발 용무에로 끌어들이시는 과감성같은데 질려 자기를 무턱대고 낮추어야겠다는 생각밖에 드는것이 없었다.

《군사적목적이 아니라 우선 탄광, 광산에서 쓰는 정대를 만들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철도에서 기관차나 화차를 수리하는 강철이 필요합니다. 빠를수록 좋고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이께서는 성급하게 대답을 기다리시지 않고 해빛이 눈부시게 비쳐들고있는 유리창을 쳐다보시였다. 창문에는 알룩알룩한 말벌 한마리가 웅웅 소리를 내며 날아돌다가 유리에 부딪쳐 미끄러져 내리였다.

《어떻습니까? 우리의 요구가 리해됩니까?》

잠간 시간이 흐른뒤에 그이께서는 상의단추를 하나 테놓으시면서 물으시였다.

강병철은 공연히 여러갈래의 의문에 질려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면서 자기 심정을 터놓았다.

《저는 강철을 위해 여직 살았고 또 한생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첫 걸음부터 똑같은 점에서 출발하게 됩니다. 매우 기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첫 인상이 좋기는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좀 까다로울것 같던 상대편에서 어렵지 않게 자신을 개방하는것을 보고 마음을 놓게 되시였다.

《그렇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오늘 이자리에서 우리가 조선의 강철을 론의하는것은 일종의 환상입니다. 왜 그런가고 물으시겠지요? 그 리유는 이렇습니다. 현재 조선의 공업실태는 너무나 참혹합니다. 너무나 많이 혹사당했고 파괴되였습니다. 제가 목격했거나 들어 알고있는데 의하면 조선의 기간공업은 전적으로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강병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계속하였다.

《지금 북에서나 남에서나 현재로서는 먹고 입고 불때는것을 중시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서울도 그렇고 또 여기 평양도 그렇습니다. 제가 여기서 강철이라고 표현하는것은 조선의 공업을 말하는것이며 따라서 과학과 기술을 가진 인간의 지성을 말합니다. 지성을 존중한다는 말은 3천리 어데가나 한마디도 들을수 없고 다만 왕권이다, 공산주의다, 공화제다 하는 정치제도에 대한 주장들뿐입니다. 제가 보건대는 지금 이 땅에는 정치가 너무 많아 넘쳐나는데 지성인을 위한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실상 기존정치는 복잡한것같으면서도 뻔드름하지 않습니까. 한데 맑스주의자들은 지성인에 대해서 이것은 사회간층인데 항상 통치계급에게 복무하게 되여있으며 동요계층이라고 합니다. 요컨대 이 각양한 정치의 속심에는 공통된 점이 있는데 이것이 현재 강철을 론의하는것이 하나의 환상이라는 론거입니다.》

여기까지 말한 강병철은 문득 하던 말을 중단하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정도이상 론리가 벗어져나갔고 자신의 기분을 너무 로골적으로 그리고 장황하게 늘어놓았다는 위구가 생기였다.

하지만 김일성동지께서는 참을성있게 일단 들어보기로 하시였다.

방안에 한동안 침묵이 흘렀을 때 그이께서는 《내가 보기에는 이자 그뒤의것이 무엇보다 중요한것 같습니다.》하고 저편의 표정을 살피시였다.

강병철은 다시한번 상상외의 반응에 부닥치게 되여 의아쩍은 시선으로 그이를 쳐다보았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강병철을 마주보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우리는 강철에 앞서 그것을 만드는 사람을 중시합니다. 다시말해서 기술을 가진 인간을 말입니다. 우리한테는 강철에 얽매인 기술자가 아니라 강철을 자기 손에 장악한 기술자가 필요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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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그렇습니까?》

강병철은 담배를 손에 들기는 하였지만 불은 달지 않고 성냥갑만 방바닥에 굴리고있다.

《리해가 가지 않는다면 잠간 설명을 해야겠습니다.》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의혹에 잠긴 강병철을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시면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우리는 얼마전까지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해왔습니다. 그때 우리의 최대의 관심사는 조선인민이 가지고있는 불타는 적개심과 반항심 그리고 끝없는 희생정신으로 적을 치고 이기는것이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장기간의 무장투쟁을 전개하게 되였고 마침내는 승리할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오늘 인민의 무한한 창조적열정과 비상히 높은 재능을 요구합니다. 그래야 강철을 만들고 석탄도 캐고 식량을 생산할수 있습니다. 이것이 없이는 정치도 없고 독립도 없으며 우리 민족의 장래도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인차 어느 강대국에 다시 먹히우고맙니다. 또 지금 당장 우리 인민을 굶주림에서 구원할수도 없습니다. 자, 보시오. 사정이 이런데 우리가 조선의 지식인을 무시할수 있겠습니까? 해방이 좋다고 하지만 사흘만 굶고나면 그 기쁨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말것입니다.》

강병철은 고도로 신경을 긴장시키고 앉아있었다. 어느 하나도 반박할것이 없었고 수긍되지 않는것이 없었다. 하지만 기왕 시작한바에는 여직까지 그의 가슴에 옹이로 맺혔던 몇가지 문제를 가지고 론의해보고싶었다.

그는 침착한 어조로 다시 말을 떼였다.

《참말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남북3천리 어데가도 지성을 귀중히 한다는 말을 들어볼수 없고 먹을것 입을것을 걱정하는데가 없었는데 처음으로 가슴에 사무치게 감격스러운 말을 들어봅니다. 마치 어둔 밤에 한점의 불꽃을 보는것과 같습니다. 그러나…》하고 그는 괴로운 낯을 지었다. 그의 얼굴에는 기쁨절반 비관절반이 엇섞여있어서 한마디로 표정을 가늠할수 없었다. 《그러나… 재삼 말씀드립니다만 조선에서 강철은 현재 불가능합니다.》

《그건 어째서요?》

김일성동지께서는 긴장해지시면서 상대편의 감정변화를 지키고계시였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경제는 군사와 다릅니다. 명령해서 되지 않습니다. 물론 설비를 장치하고 로력을 배치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에 들어가서는 명령이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현재 기술이 너무 무시돼있습니다.》

이때 강병철은 시장에서 기술도서를 파지로 팔고있던 장면을 상기하였다. 그렇게 되자 가슴이 조여들면서 숨도 제대로 쉴수 없었다.

《그것은 우리의 탓이기보다 일제의 우민화정책에 의한것입니다. 때문에 강선생과 같은 기술자들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는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 힘은 너무나 미약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강철은 철광산 막장에서 시작돼서 분괴기의 압착틀을 빠져나올 때까지 기술의 바다를 헤염쳐야 하는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지금 형편을 본다면 경제도 0이고 기술도 거의나 0입니다. 저도 기술자로 자처해왔지만 시체처럼 식어든 공장을 소생시킬 힘이 없으며 그럴 용기도 나지 않습니다. 왜정때는 일본놈때문에 그렇다치고 해방이 된 오늘에야 우리가 왜 허리를 펴고 일어서지 못하겠습니까.》

감정이 이 방향으로 나가다가는 원시범의 앞에서처럼 곧 가슴을 두드리며 눈물을 쏟는데로 나갈것 같아 그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알만합니다. 그러나 선생이 가령 이런것을 목격했다면 어떻게 평가하겠습니까.

며칠전에 우리 동무들이 사창장마당에 나갔던 일이 있습니다. 그때 어느 한 녀인이 파지를 팔고있었는데 그것은 모두 야금학과 관련한 기술도서들이였습니다. 떡장사, 지짐장사들이 5전이나 10전을 내고 책을 하나씩 들어가고있었습니다. 그때 어느한 젊은이가 나타나 그렇게 팔지 말고 집에 되가져다 잘 보관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에 잘 응하지 않게 되자 안경을 꼈다는 그 젊은이는 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털어주면서 이제 내 나라가 생기면 이것이 금덩이처럼 귀중한것이니 잘 간수해두길 바란다고 애원하더랍니다. 보시오. 이것은 웃지 못할 하나의 일화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이것은 암흑의 대지에 떨어진 하나의 불꽃입니다. 이런 애국자가 한둘이 아니겠는데 왜 우리가 그 암흑을 태우고 일어서지 못하겠습니까. 우리 인민은 일어섭니다. 지금 전체 인민이 제 나라를 세우겠다고 활화산처럼 열기를 내뿜고있습니다. 며칠전에 우리가 철도에 나가보았는데 기차손님들이 달라붙어 전복된 기관차를 들어일구고있었습니다. 현실은 이렇습니다. 강선생도 이제 시작만하면 사창장마당에 나타났던 그런 불꽃이 사방에서 날아들것입니다. 강선생! 이래도 안되겠습니까?》

정열에 불타고계시는 그이의 얼굴을 지켜보고있던 강병철은 가슴이 울렁거려 몸을 진정할수 없었다. 별치 않은 일로 생각되였던 일이 그토록 값높이 인정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수건으로 입을 싸쥐고 돌아앉은 그는 저도 모르게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였다. 그러면서 그는 어느모로 보나 비범한분앞에서 흥분을 앞세우거나 또는 그런것으로 해서 경망해져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였다.

잠시후 그는 마음을 진정하고 말하였다.

《그가 어떤 인간인지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 사람은 기술자이긴 하지만 자본가의 자식입니다. 이를테면 공산당에서 꺼려하는 프로레타리아독재대상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약간 놀라시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시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으시였다.

《강선생은 그 사람을 어떻게 되여 알고있습니까?》

강병철은 그만 당황한 표정을 짓고 머뭇거리였다. 자기라고 말씀드리자니 어색한 일이고 그저 아는 사람이라고 하자니 근거를 캐실것만 같고 해서 공연히 안절부절 못하고있다.

그의 이상한 거동을 낱낱이 여겨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아니, 그게 강선생이였단말입니까?》하고 대뜸 물으시였다.

《용서해주십시오. 제가 그만 실언을 한것 같습니다.》

이윽토록 감심어린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새겨보시던 그이께서는 천천히 눈길을 돌리시며 말씀하시였다.

《나는 그래도 지금까지 그 안경낀 고마운 젊은이를 마음속으로 늘 잊지 않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강선생은 그 젊은이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도대체 공산당에서 독재대상으로 취급한다는 말은 어디서 들은 소립니까.》

《그거야 공산당선언에 그렇게 씌여있고 또 로씨야에서 실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강선생, 우리는 지금 조선혁명을 론하는중이지 로씨야를 론하지 않습니다. 거기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기 위한것이였고 우리는 일제식민지에서 해방돼서 새 나라를 세우자고 하는중입니다. 그러기때문에 우리는 자본가의 자식뿐아니라 자본가자체도 건국사업에 나서라고 호소합니다. 우리는 로동계급혼자서 나라를 세우고 독판치자는것이 아니라 전체 인민이 참가해서 나라를 세워 전체 인민이 번영하고 잘살게 하자는것입니다. 우리는 이미전부터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을 내고 지식이 있는 사람은 지식을 내서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래 이외에 무엇이 또 요구되며 무엇을 더 해명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러면 기왕 말이 난김에 한가지 더 묻겠습니다. 이거 자꾸 따지는것 같아 매우 안됐습니다만 량해해주기 바랍니다. 저는 까박을 붙이고 언치를 잡자는것이 아니라 실지 알고싶어서 그럽니다. 부탁입니다. 진실을 말씀해주십시오.》 강병철은 올방자를 틀고앉았던 자세를 풀어 무릎을 한데 모으고 단정히 앉았다.

《어서 말씀하시오.》

그이께서는 미소를 짓고 손을 들어 권하시였다.

《듣자니까 공산주의자들은 인테리를 일정한 기간 써먹다가 자기네 난관이 해제되면 모두 청산해버린다고 합니다. 이에 대하여는 어떻게 리해해야 할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질문은 매우 중요한것입니다. 인테리들에게 가장 사활적인 근본문제가 꺼리낌없이 제기되였다고 생각합니다. 인테리를 써먹다가 청산한다, 그것은 일제의 악선전입니다. 반공분자들은 인테리를 자기편에 끌기 위해 그런 허무맹랑한 말을 꾸며내는것입니다. 혁명직후 로씨야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고리끼라는 이름있는 작가가 레닌을 만난 기회에 지금 볼쉐비크들은 인테리에 대해서 너무 가혹하게 다루고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얼마후 레닌은 에쎄르당원에게 저격을 당해 치명상을 받고 병원에 누워있었습니다. 레닌은 병문안을 온 고리끼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가혹하게 다룬다던 그들이 나를 이렇게 <관대>하게 다루었소 하고 웃었습니다. 그렇지만 레닌은 범죄자를 극형에 처할데 대한 법무일군의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기사선생, 알만합니까. 가혹한것, 배신적인것 모두는 우리 편에서가 아니라 상대편에서 생겨났습니다. 기사선생! 우리가 인간의 지성을 존중히 하며 그들과 더불어 우리 조국을 명실공히 완전한 자주독립국가로 만들자는데 무슨 의문이 생깁니까. 이외에 도대체 무엇이 또 있어야 하며 무엇이 더 요구됩니까?》

아직도 그 무슨 이름할수 없는 심리적중압때문에 모대기고있는 강병철을 동정어린 시선으로 쳐다보시였다. 그런 기미를 강병철이도 느꼈던지 방금전과는 달리 몹시 갈린 목소리로 서둘러서 말을 떼였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강병철은 고개를 두세번 숙여보이고나서 계속하였다. 《지성을 존중하는 제도면 저는 어느것이나 무관계합니다. 부유하고 향락할수 있는 제도, 그것을 저는 요구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것이 저에게 필요한것이라면 저는 이미 그것을 가지고있습니다. 대구에 있는 우리 집에는 큰 철공소를 차려놓고있고 땅도 또한 구차하지 않을 정도로 가지고있습니다. 명예나 공명 그것도 필요없습니다. 나는 대학을 나왔고 전기기사이며 또 야금기사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우리 집 재력을 합치면 명예를 얼마든지 얻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예라는것은 언제나 권력의 부산물입니다. 명예를 위한 지성일 때 그것은 벌써 지성에 대한 배신이며 협잡입니다. 공산주의, 그것도 필요없습니다. 그것이 필요하다면 제가 로씨야로 가면 될것입니다. 자본주의, 그것은 제가 이에서 신물이 나게 체험한것입니다. 때문에 제가 바라는것이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정신적보금자리입니다. 다리로 서는것이 아니라 머리로 선다는 현대인은 빵만으로는 살지 못합니다. 제 말을 리해해주십시오.》

《알만합니다.》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진심으로 기쁨을 표시하시였다. 여태 지향을 알수 없이 외로 돌고 바로 돌고 하던 강병철이 끝내 자기 속심을 드러내게 된것이다.

미소를 띄신 그이께서는 온건한 음조로 그러나 명확하게 력점을 찍어 물으시였다. 《기사선생은 지금 자기의 정신적지탱점을 찾고 있는것이지요. 나라는 인간이 무엇에 의탁해 살겠는가 그것이지요?》

이때 강병철은 예리한것으로 가슴을 찔리는것 같이 흠칠하였다.

그는 자기를 지탱할수 있는 그 무엇을 찾고있었으며 그것으로 해서 한생 모대기고있었다고 할수 있었다. 깃을 들일데가 없었던 넋은 정처없이 방황하였으며 국경도 량심의 계선도 함부로 넘나들면서 방황하였던것이다. 강병철을 이윽히 지켜보고계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구태여 그들이 아파하는데를 다쳐 더이상 대답을 요구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시였다.

《한가지 물읍시다.》하고 그이께서 다시 말씀하시였다. 《우리 나라에 강철전문가가 또 어데 있습니까? 하긴 강철만이 아니라 고등교육을 받은 전문가라면 그 누구든 다 필요합니다.》

강병철은 고개를 번쩍 쳐들었는데 약간 침울했던 눈이 금시 밝아지였다.

《강철전문가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다른것은 잘 모릅니다. 저는 동업자의 눈으로 보고있으니까요. 조선에 강철공장이 몇개 있지만 모두다 일본기술자에 의해 운영되였습니다. 그러나 강선제강소는 사정이 좀 달랐습니다. 강선제강소에는 특출한 머리를 가진 양춘만이라는 룡강사람이 있었습니다. 양춘만에 의해서 전기로 2기가 돌아가고있었고 앞으로 대대적으로 늘일 계획을 했던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알아본데 의하면 해방이 되자 행처를 감추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어데로 갔을것 같습니까?》

《그 사람을 찾아서…》 그는 손으로 턱을 만지더니 안경속의 눈을 쪼프리면서 가까스로 뒤를 이어대였다. 《혹시 그를 데려다가 다시 강철을 만들게 하자는 생각이 아닙니까?》

《물론 그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도 역시 방황하고있지나 않을가 해서 그럽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양춘만은 결코 방황하지 않을것입니다. 또 설사 그를 만났다 해도 이쪽으로 끌지 못합니다.》

《그건 어째서 그렇습니까?》

너무나 뜻밖이여서 다그쳐 물으시였다. 그러나 오히려 강병철은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이 침착하게 자기 음조대로 설명을 하였다.

《양춘만은 일본인들이 전적으로 믿고 의탁할만한 모든것을 다 가지고있습니다. 그가 아직 학교에 있을 때 뛰여난 두뇌를 가졌다는것이 알려졌습니다. 일본인들이 점을 찍어놓고 면비교육을 시켰습니다. 어느해인가 독일의 유명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동경에 와서 자기가 체계를 완성한 특수상대성원리에 대한 강의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강의를 끝내고나서 질의응답시간이 되였을 때 20살도 되지 않은 양춘만이 일어나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전개한 특수상대성원리를 일반상대성원리의 다른 차원에서의 전개… 아니 이거 미안합니다. 이야기가 너무 가로 달아나서…》

《어서 다 말씀하십시오. 자꾸 듣는 과정에 혹시 리해하게 될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이께서는 손을 흔드시며 자유롭게 말해줄것을 요구하시였다. 그러나 강병철은 추호도 지식을 자랑하는것과 같은 느낌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말을 계속하였다.

《강의에 참가했던 태반 사람들이 아직 문제의 본질을 어렴풋이 리해했거나말았거나 한때에 즉석에서 적중하고 요긴한 질문을 한것때문에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후에 돌아간 이야기였지만 그것이 또한 조선청년이라는 점에서 더 반향이 컸다고 합니다. 양춘만은 강선에 와서 2년만에 전기로를 세우고 천황의 표창장을 받았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방황할것 같지도 않고 또 그 사람이 조선의 강철을 위해 복무하려면…》

강병철은 서두르지 말고 심사숙고해야 할것이 아닌가고 말하려는듯 하였지만 그것을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알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결코 방임할수는 없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마디마디에 힘을 주어 말씀하시였다. 강병철은 좀 뻥해졌다. 너무나도 뜻밖의 말씀이였다. 그속에서 표면화되지 않는 진심과 솔직성을 느낄수 있었다.

강병철은 시간이 갈수록 담이 커지고 무한정 무엇이든 론의하고싶었다. 앞에 앉아계시는분의 실제적인 사회적위치에 대해서부터 무척 알고싶었다. 정치위원이라면 간단한 직분이 아니라는것이 명백한데 그것만으로서는 도저히 설명할수 없는 존엄과 힘을 가지고계시는것이다. 산악처럼 막아서는 굳건하고 호협한 기상이 풍기면서도 어느 한 귀퉁이에서라도 상대방을 위압하려는 허세같은것은 찾아볼수가 없다. 우정 겸손성과 소박성을 나타내려고 꾸미는것도 없고 더구나 이쪽을 부러 괴여올리는것 같은 가식은 꼬물도 찾아볼수 없다. 모든것이 솔직하고 명백하며 또한 투철하였다. 어느덧 텅 빈것 같던 강병철의 가슴속에 그 무슨 하나의 점과 같은것이 생겨나더니 순식간에 가슴을 꽉 채울만치 커지는것을 느끼게 되였다. 《우리는 인간의 지성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또 《강철에 앞서 그것을 만드는 사람을 중시합니다.》라고 하시던 말씀이 더욱 가슴을 울리였다.

어느덧 해가 기울었다.

《오늘은 이만합시다. 앞으로 만날 기회가 또 있을것입니다. 오늘 나는 조선의 강철을 위해서 모든것을 아끼지 않겠다는 한 조선인테리의 결의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안았습니다. 미안합니다. 시간을 많이 뺏아서… 이제 구체적인것을 토의하기 위해 누구를 보내든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깊은 사색에 잠기였던 강병철은 총망중에 인사를 차리고 현관으로 나왔다.

그는 악수를 청하시는 김일성동지의 손을 잡고 애원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매우 죄송합니다만 어느 기회에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올수 있도록 힘써주실수 없으시겠는지요. 특별한 용건은 없습니다만 오늘 론의한것 같은 그런걸 두고 다시 말씀을 드려보고싶은 심정입니다.》

《그렇습니까. 아무때나 찾아오십시오.》

이때도 그이의 얼굴에는 신심이 차있는 사람에게서만 볼수 있는 흐뭇한 웃음이 어려있었다.

《도와주십시오. 믿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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