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푸른산악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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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군단 좌익의 고성고개로부터 2군단우익의 석사리앞 전방까지의 넓은 전선에서 벌어진 맹렬한 기습, 타격전은 그 기세와 타격의 무자비성에서 전대미문의것이였다.
적진은 련 사흘동안 불길속에 휘말려있었다.
제2제대계선의 포들까지 전방에 진출하여 적진을 때렸고 소대, 중대로 된 수백개의 습격조들이 적의 중요력량집결처와 포진지, 땅크진지들을 짓뭉개버렸다. 어떤 습격조들은 적의 련대, 사단본부까지 들이쳤다.
적들속에서는 아우성이 일었다.
전투기피자와 자총자가 속출하는속에 전선의 총 붕괴가 온다고 떠들었다. 일선부대의 지휘장교들은 안전지대에로의 퇴각까지 요구해나섰다.
밤마다 유령처럼 나타나는 습격조가 전선의 붕괴를 촉진시킨다는것을 안 릿지웨이는 2차세계대전시기 쏘련의 쥬꼬브원수가 착안한 탐조등의 광학적효과를 생각해냈다. 쥬꼬브는 탐조등빛으로 적의 시각을 마비시키고 공격하여 커다란 성과를 보았던것이다.
릿지웨이는 그 방법을 다른 방식으로 응용발전시켰다. 수십개의 탐조등을 하늘에 비춰 구름에서 반사되는 빛으로 유령들의 움직임을 사전에 발견한다는것이였다. 그런데 이것이 더 큰 화를 빚어낼줄은 몰랐다. 이 나라의 풀과 나무와 땅에 익숙된 인민군 습격조원들은 그 빛의 도움으로 철조망과 지뢰원구역을 무사히 빠져나가 적의 지휘본부까지 들이쳤던것이다.
공세는 더이상 할수 없게 되였다. 릿지웨이나 밴플리트의 의지와 희망만으로써는 어쩔수 없는 일이였다. 11월 3일 도꾜의 릿지웨이는 워싱톤의 미합동참모본부에서 보내온 한통의 무전문을 받았다.
《…백악관과 미합동참모본부는 전선동부작전에서 귀하와 귀하의 군대가 이룩한 업적을 응당하게 평가하면서 차후의 작전방안을 새롭게 연구할것을 권고하게 된다.
당면하게는 고착방어로 이전함과 함께 정전담판을 효률성있게 하도록 할것이다.
이를 위해 조중측이 요구하는 군사분계선설정문제에 동의할수밖에 없는데 대하여 심심한 유감을 표시한다…》
릿지웨이에게 있어서 이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는것이였다. 희망도 앞날의 출세도 끝난셈이다. 다른 때라면 여사여사한 리유와 원인을 밝힌 끝에 계속되는 공세와 그 가능성을 가지고 즉시 텔레타이프앞에 마주 섰겠으나 그럴수 없었다. 리유와 원인은 밝힐수 있었으나 가능성은 더이상 찾아볼수 없었기때문이였다.
그는 지금까지 1211고지일대에 대한 공격에서만도 10여만의 유생력량과 400여대의 땅크, 600여문의 각종 포와 수만정의 저격무기를 잃어버렸던것이다.
《젠, 우리도 이젠 집에 가보게 되였소.》
하루아침에 실각당한 맥아더가 안해에게 했다는 그 말을 되돌이켜보았다. 비운의 실각, 자기의 래일이 빤히 보였다.
…송우인은 우울한 눈길로 비행기에 오르는 보튼과 그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가죽띠로 두팔을 묶이운 보튼은 강력한 진정제주사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히히 웃기도 하고 뭔가 알아들을수 없는 소리를 연신 중얼거렸다. 비행기 안내양을 보자 보튼은 《으으.》 하며 덤벼들다가 그의 아버지가 후려치는 주먹에 풀썩 꿇어앉았다. 이런 히스테리환자에 익숙된듯 싶은 두명의 안내양이 그의 옆구리를 껴들고 조심스레 비행기안에 끌어들여갔다. 아들의 뺨을 후려친 늙은 보튼은 밴플리트에게 사나운 눈길을 주는것으로 인사를 마치고 비행기안으로 사라졌다. 송우인이 밴플리트와 함께 8군사령부 야전병원에 찾아갔을 때도 늙은 보튼은 말한마디 없이 쏴보는것으로 인사를 대신했었다. 그때는 늙은 보튼의 분노보다 작은 보튼의 발광이 더 무서웠다. 뒤골을 총탁에 맞아 한눈이 빠져나온 보튼은 《아… 인민군이다. 쏴라. 쏴…》 하는가 하면 《송… 쿠크… 개자식.》 하고 연신 쌍욕질을 했는데 우인은 《송》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몸서리를 쳤다. 그의 말과 튀여나온 눈알을 송우식과 결부시켜 생각했기때문이였다. 우식은 행방불명자라고 했지만 백선엽군단의 한장교는 인민군화선방송에서 우인의 앞으로 보내는 송우식의 방송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거듭된다고 했다.
《그만 들어가지.》
밴플리트는 침울한 눈길로 수원들을 둘러보고는 고개를 푹 떨군채 걸음을 옮겼다.
(무엇을 생각할가. 늙은 보튼을?…)
밴플리트는 공세중지와 정전담판에서의 양보가 늙은 보튼의 상소질과도 적잖게 관계되여있다고 했다. 늙은 보튼은 조사단이 떠난 뒤끝에도 천성의 호전적기질때문이였는지 미10군단 야전지휘소에 계속 남아있었다. 미쳐난 작은 보튼을 본 뒤에도 거기서 떠날줄 몰랐다. 그런 그가 이틀전인가 불시에 돌아와 도꾜의 릿지웨이며 워싱톤의 국방성에까지 무슨 전화질을 하더니 드디여 오늘 떠나간것이다. 방에 돌아온 송우인은 그동안 정리하던 사품들을 다시 펼쳐놓았다. 송우식이 화선방송으로 《미국놈의 주구》가 되지 말라거니 황영학형님이며 로병관형님이며 모두가 그를 생각한다는 말을 들은 날부터 문건들을 정리하고 이러저러하게 흠잡힐수 있는 일기장의 대목들과 편지들을 없애치웠다. 우식이와 영희가 찍은 사진이 그냥 남아있는것을 보고 쪼각쪼각 찢어 커피 끓이개인 석유곤로에 올려놓을 때 밴플리트의 부관이 들어섰다.
《각하께서 찾으십니다.》
부관의 표정이 례없이 차겁게 보였다.
《알겠소.》
그는 석유곤로의 불을 켜 사진쪼각들이 재로 되였을 때야 방을 나섰다.
밴플리트는 좀전과 다름없이 침울한 얼굴이였다.
《송준장, 나로서는 반갑지 않은 일이 생겼소.》
《무슨 일입니까?》
《이건… 송준장에게는 반가운 일일수도 있지만…》
밴플리트는 담배진이 푹 배인 손가락을 매만지며 그를 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도꾜사령부에서는 전쟁의 장기성에 대처하여 우수한 한국군장교들을 웨스트 포인트사관학교 연구원에 보내기로 하였소. 그 대상들을 당신네 국방부에서 추천하게 되는데 당신에 대해서는 릿지웨이사령관이 직접 말이 있었소. 어쩌겠소. 나로서는 아쉽지만 당신의 전도도 그렇고 전쟁의 앞날도 생각해야 되니 반대할수 없구만.》
다음날 송우인은 대전비행장을 향해 출발하였다.
차에는 언제나 그랬듯이 미군헌병 두명이 호위원격으로 올라앉았다. 그런데 차가 떠날 때 쉘슨2세중좌가 나타났다. 급한 용무가 있어 대전까지 가게 되니 차를 함께 탈수 없느냐고 했다. 우인은 뭔가 께름직한것을 느꼈으나 거절할수 없었다.
차가 려주를 떠나 어느 한 산굽이를 돌 때 송우인은 이상한 직감에 고개를 돌렸다. 그것이 마지막이였다. 골트권총 총탁이 이마를 치는것과 쇠뭉치 같은것이 또 한번 뒤끝을 치는것을 느꼈을뿐이였다.
(어떻게 되여…)
순간에 한생이 스쳐갔다.
그 다음날 미8군사령부신문 《성조기》에는 《…한국군 보좌관이였던 송우인준장이 차사고로 사망》되였다는 부고가 실렸다.
송우인을 처리하고 온 쉘슨2세중좌에게 밴플리트는 이렇게 말했다.
《아까운 사람을 잃었소. 한데 그는 너무 많은 비밀을 알고있었거든.》
송우인은 밴플리트와 릿지웨이의 전화토론끝에 사망자의 명부에 오르게 되였다.
그의 선택은 자유로왔으나 이런 죽음은 바라지도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죽을 때도 무엇때문에 자기가 죽는가 하는것을 깨닫지 못했다. 개란 필요할 땐 쓰다듬기우지만 필요없으면 도살장이나 무인지경에 버려지게 되는것이다. 그가 잘못된 선택이였다는것을 안것만 해도 상당하다고 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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