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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서 푸른산악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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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8,901회 작성일 20-05-24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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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jpg

36

 

눈을 뜨기도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눈부신 섬광이 일 때마다 뭔가 눈에 잡히는것이 있었으나 그것은 순간뿐이였다.

포판뒤에 엎드린 전사들은 쨍 하는 금속과 금속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날 때마다 놀란 눈길로 포를 살펴보고는 다시 땅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전화통을 붙안은 철규역시 잔뜩 몸을 움츠리고 파편의 휘파람과 포탄폭발시의 섬광을 두렵게 보았다. 절반쯤 열어제낀 갱도안에서 전방붕대소의 간호원들이 얼굴을 내밀 때마다 벼락같이 소리쳤다.

《꿈쩍말앗. 죽고싶어?》

첫 새벽에 미순이를 보낸것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미순이가 왔다간 골짜기는 룡트림하는 불길과 폭연으로 개미하나 얼씬거릴수 없게 되여있다.

전화발전자돌리개를 또다시 돌렸다.

《살았나? 왜 아직 소식이 없어?》

《살았습니다. 적들은 지금 조항골로부터 오른쪽골짜기의 릉선까지 꽉 뒤덮고있습니다.》

고지꼭대기에 있는 지휘감시소 소대장의 대답이였다.

《우리한테는 언제쯤 와서 뒈질것 같애?》

《30∼40분이면 사거리에 들어설것 같습니다. 지금은 우리 곡사포들의 몰이사격에 개떼처럼 뜀박질합니다.》

몰이사격이란 필요한 곳으로 적을 몰아 답새기기 위한 사격이다.

《그럼 이젠 사거리에 들어설 때까지 움안에 깊이 배겨있으라구.》

박격포지휘감시소는 ㄴ자형으로 굴을 완성하게 했으나 아직은 김치움처럼 수직으로 되여있다. 그러나 엄개를 두터이 한덕에 웬만한 포탄에는 끄떡없을것이다.

《중대장동지.》

《왜 그래?》

《콩나물을 잘먹었습니다.》

《건 나한테 할 소리가 아니야.》

철규는 기분이 좋아졌다. 전날밤 미순이가 끓인 콩나물국을 감시소에까지 올려보냈다. 그 콩나물국을 놓고 별의별 말들이 다 있었다. 미순이를 정식 중대원으로 등록하자거니 중대장의 련락병 겸 보좌관으로 둬두자거니 하던 끝에 중대부를 철규와 미순이의 살림방으로 만들자는 걸작들도 있었다.

미순이가 떠날 때 철규는 자기의 훈장과 메달을 건사해달라고 했다. 굴안에 습기가 많아 녹이 쓸수 있기때문이라는 설명에 미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 하는 말에 기가 질렸다.

《난 이제부터 계속 일루 나올터예요. 그러니 부상당하든가 하면 나부터 찾으세요.》

(나부터?! 헛, 그때면 만날수 없게 될지두 몰라.)

미순이와의 일을 돌이켜본 철규는 자기가 지금 여느때없이 몸을 움츠리고 긴장되여있는것이 바로 그와 나눈 말때문이 아닐가 하는것으로 헛웃음이 나갔다.

(젠장. 건 왜 와가지고.)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지휘소대장한테서 오는 전화였다.

《적들이 사격계선에 나타났습니다. 지금까지 감시하던 놈들이 아니고 어데서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사격제원을 부르오.》

전화수에게 송수화기를 맡기며 소리쳤다.

《자기 위치롯!》

그는 모든 전사들이 재빠른 동작으로 포에 달려가 꿇어앉는것을 보며 수기를 높이 들었다.

《목표 전방 앞고지 좌표 우로 ○○-》

전화수의 웨침을 되받을 때 철규는 이미 미순이도 파편의 휘파람도 죄다 잊었다.

(됐다. 나는 언제나 이랬지.)

철규는 모든 포들에서 눈깜박할새에 조준경을 맞추고 장탄태세에 들어선것을 보며 전화수가 받아 웨치는 사격좌표에 따라 일제사격구령을 주었다.

오직 적을 족쳐야만 한다는 전투적열정과 흥분에 자기를 잊게 되는 시간이 왔다. 비겁한 사람도 용감해지는 시간이다. 연신 《명중이다! 멋있다!》 하던 전화수의 웨침이 불시에 뚝 끊어졌다.

《뭐야?!》

《지휘소가 잘못된것 같습니다. 제가 올라가보겠습니다.》

전화기를 들어보니 잡음도 전류의 흐름도 없었다. 가슴이 덜커덩했다.

《중대부안의 전화기와 권선기를 가져오오.》

철규는 고지우에서의 전투를 가늠해보려 귀를 기울였으나 자지러진 총성과 폭음속에서 뭐가 어떻게 되였는지 알수 없었다. 모든 포들이 입을 다물고있는것을 보자 버럭 소리쳤다.

《같은 좌표로 계속 쏘시오. 2소대장, 지휘를 맡소.》

《중대장동무가 올라가자구?》

《그렇소. 빨리!》

전화기와 권선기를 멘 전화수와 함께 지휘감시소쪽으로 달려오르던 그는 물큰 하고 발에 채우는 사람을 발견하였다. 온몸이 피로 화락 젖어있는데 얼굴은 잘 알아볼수 없었다.

《중- 대- 장동지.》

가늘게 울리는 말소리에 그가 지휘감시소의 포병정찰수임을 알아보았다.

《병칠이, 어떻게 된거야.》

《지휘감시소가 직탄을 맞는통에… 적들은 2참호까지 올려붙었습니다.》

《2참호까지?!》

철규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럼 고지의 보병중대는?)

더 알아보려고 했으나 포병정찰수는 호흡이 끊어진것 같았다. 그를 붙안고 《병칠아! 병칠아!》라고 웨치는 련락병에게 꽥 소리쳤다.

《업으라. 가서 사격목표를 수정하라고 해. 1참호와 2참호사이.》

《사격제원은-》

《포신을 85° 상태로 세우고 자체판단사격을 할것. 정확한 목표시사는 내가 다시 알리겠다.》

《복창하겠습니다.》

《복창은 필요없어. 어서.》

철규는 나는듯이 산으로 올랐다. 고지등말기가 보이는 곳에서 《어쿠.》 하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젠장, 맞았습니다.》

전화수는 권선기를 벗으려는듯 몸을 뒤채다가 전화기만을 밀어주었다. 견갑골쪽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붕대는 맬만 하오?》

《네.》

철규는 자기 몸에 지니고있던 개인붕대포를 찢어 그에게 넘겨주었다.

《견뎌내라. 응?》

《걱정마십시오.》

철규는 신음을 씹어삼키며 그가 멨던 권선기와 전화기를 안고 지휘감시소쪽으로 올랐다. 귀설은 악청과 신음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미식중기관총과 카빙총소리만 높았다.

(먹혔구나.)

배밀이로 기여가며보니 폭연과 먼지발속에서 푸릿한 군복들이 보였다. 지휘감시소는 엄개 절반이 물앉았는데 그속에서 불그스레한 연기발이 피여올랐다. 미군들이 간혹 쓰는 소이수류탄 폭발시에 생기는 현상이다. 고지에 오른 놈들은 직탄에 맞은 감시소의 굴확에도 위험을 느껴 한방 던진것 같았다.

철규는 《음.》 소리를 내며 그리로 굴러떨어졌다. 예상한대로 사람만 아니라 전화기도 부서졌다. 전화선의 피복을 이발로 물어뜯고 새로 가져온 전화기와 련결시키는 시간이 천날맞잡이로 여겨졌다. 발전자돌리개를 돌리자 2소대장이 나왔다.

《월기봉, 월기봉입니다. 말씀하십시오.》

미순이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눈앞을 스쳐지났다.

《포신들을 수직으로 세웠소?》

《네.》

《잘 듣소. 명령! 포사격은 나에게 할것. 나는 적들속에 있소. 사격좌우구간은 종전과 같다. 알겠는가.》

《중대장동무!》

《들었는가.》

대답이 없었다.

《2소대장.》

《듣습니다.》

2소대장의 흐려진 목소리에 철규는 버럭 소리를 높였다.

《내 명령을 복창하라. 목표거리는 지휘감시소의 기준좌표… 사격구간은 종전과 같다. 준비되였는가?》

《됐습니다.》

《발사!》

《발사!》

흐느낌 비슷한 소리를 들으며 철규는 눈을 꾹 감았다.

열여덟발의 포탄의 새된 폭발음을 들으며 다시 눈을 떴다. 모래바람이 이는 속에 푸릿한 군복들이 무리로 쓰러지는것이 알렸다.

《명중이다! 명중! 계속 사격하라!》

《중대장동지, 엄개밑에 깊숙이 들어가십시오.》

《그래, 들어가겠소.… 이젠 내 구령이 없이도 계속 쏘시오.》

그는 전화기를 든채 허리에 차고있던 수류탄을 뽑아들었다. 불의적인 박격포사격에 갈팡질팡하던 적들이 그가 있는쪽으로 달려왔다.

《함께 있자는건가. 흥.》

그는 이상스러울 정도의 유쾌한 기분속에 자동총을 벗겨들었다.

(전우들, 난 우리 포탄엔 죽고싶지 않소.)

 

황영학이 철규네중대의 앞고지가 점령된것을 알게 된것은 철규가 지휘감시소로 채 가기전이였다. 1대대장한테서 올라온 전화보고와 육안감시를 통해 확인했다. 언젠가 최현이 이 산발을 돌아볼 때 가칠봉의 적들이 골짜기를 타고내려와 불시에 덮쳐들 위험이 있다고 하던 말이 사실로 된것이다.

대대부에서는 즉시 탈환전투를 하겠다고 했으나 황영학은 승인하지 않았다. 고지를 《잃은》 전사들모두가 갱도화된 은페부에 들어가 살아있으니만치 되찾는것은 어렵지 않다고 보았다. 문제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한개 대대의 출발지를 아는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을수는 없었다.

(련대적인 반돌격으로?!…)

이미전부터 생각던 결심을 되굴려보며 담배를 꼬나물었을 때 감시구밖을 내다보던 군사부련대장이 놀란 소리를 쳤다.

《1대대 박격포중대도 먹혔습니다.》

《먹혔다?!》

 그러고보니 철규네 진지와 앞고지에는 뽀얀 연기발만이 넘실거릴뿐 줄닿게 벙끗거리던 포탄섬광도 잦아버렸다. 급히 련포군장을 찾았다.

《보라매! 보라매! 나 무산령이다.》

《보라매 듣습니다.》

《목표 열하나 좌측.》

《목표 열하나 좌측.》

련포군장이 되받는 복창을 음미하며 망원경렌즈를 돌리던 그는 《잠간!》 하고 소리쳤다.

련포군의 일제사격으로 고지우에 오른 적들을 짓뭉개버리려던 그는 전혀 뜻밖의 현상을 보게 된것이였다.

적들이 몰켜있는 고지꼭대기에 82㎜박격포탄이 우박처럼 쏟아져 눈부신 폭발을 일으켰다.

《살았구나,》

기쁨이 격류치는속에 전날밤의 일이 피끗 떠올랐다. 뒤계선에 물러나 쏘는가 아니면 포신을 수직으로 세워쏘는가?

그는 칼릉선으로부터 가칠봉까지의 전선을 휘살피고 사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단포의 지원속에 적의 공격을 제압하는 계선사격을 하다가 일련의 대대들로 반돌격을 하여 적을 《함정골》(이것은 이틀전에 포로된 적중대장의 표현이였다.)에 몰아넣은 후 련포군의 일제사격으로 전멸시키려는 결심을 말했다. 련포군장에게도 같은 내용의 전화를 했다. 계선사격으로부터 전진사격으로 넘어가다가 《함정골》에 집중포화를 들씌우되 그 시간은 전화나 붉은 신호탄으로, 그것이 안되는 경우엔 두개 대대의 반돌격이 시작되는것을 개시시간으로 하라고 했다.

그는 비상한 흥분속에 련락병을 찾아 감시소밑 은페부에 있는 한개 소대를 불러내게 하였다. 그가 자동총을 메고 장화를 로동화로 바꿔신는것을 본 부련대장이 황급히 막아나섰다.

《련대장동무도 나가렵니까?》

《그렇소.》

신호권총까지 차고 탄알을 검사했다.

《달라진 정황이 생기면 1대대에 가서 다시 전화를 걸겠소.》

《한데 무엇때문에 꼭 나가야만 합니까?》

《산지전에서는 누가 높은데서 보는가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오. 잘 보고 잘 듣는것, 지금 얼마나 많은 수수께끼가 있소?》

밖에 나서자 사방사처에서 37㎜고사포들과 12. 7㎜고사기관총들이 맹렬히 울부짖었다. 그러고보니 적기들은 고공에서만 맴돌뿐 급강하폭격은 못하고있었다. 지난밤 이곳에는 최현군단장의 명령으로 두개 고사포중대가 증강되였다.

그동안 《예비대》로 붙박혀 엉뎅이가 썩어난다고 투덜거리던 한개소대의 병사들과 함께 1대대지휘부에 이르니 대대갱도입구에는 자동총과 보총, 수류탄을 빼든 전사들이 불등잔같은 눈들을 휘번뜩이고있었고 《은페》때문에 고지를 잃은 중대장은 당장 쳐나가겠다고 명령을 요구했다.

그와 대대장에게 전투조직을 말하고 떠나려는데 갱도안쪽에서 스산한 웨침이 울렸다.

《야! 찔러라. 덤벼,덤벼! … 이새끼들아.》

흰 위생복차림의 녀성군인들속에서 대틀진 사나이가 요동을 치고있었다.

저의 군사부중대장입니다.》 중대장이 침통한 얼굴로 말했다.

군사부중대장이라는 그 군관은 바줄에 묶여있고 피발진 눈에서는 핀지 눈물인지 모를것이 흘러내렸다. 입술도 터져 고함칠 때마다 피가 튕겨나왔다.

《육박전을 하는걸 겨우 구출해왔습니다. 사실은 〈은페〉 때 직일기관총수와 감시병만 남겼는데… 함께 떨어져서… 이제 좀 있으면 정신을 차릴것입니다.》

《진정제를 못놓았소?》

《없답니다.》

영학은 행여나하며 울먹거리는 간호대원들을 둘러보다가 엄하게 말했다.

《이제 고지를 되찾으면 깨여날거요. 그때까지 동무들은… 조용히… 노래를 불러주오. 평화시기의 노래든 뭐든, 조용한 노래를ㅡ》

밖에 나오니 쓰린 눈물이 내배였다.

고지탈환은 량면 협격으로 하기로 했다.

중대장에게는 교통호를 따라 왼쪽으로 치게 하고 영학은 《예비대》와 함께 철규네 박격포진지를 거쳐 정면으로 때리기로 약속했다.

철규네의 박격포진지는 온통 화염과 흙비말속에 묻혀있었다.

105㎜포탄의 파렬지점을 통과했을 때 영학은 너무나도 엄청난 광경에 또 한번 가슴이 울컥했다.

《발사!》

《발사!》

50m 뒤계선에서 사격하는것으로 알았던 포병들은 예전 좌지에 그대로 있었고 105㎜ 포탄파편이 앙칼지게 날아예는 속에서도 포병들은 하나같이 직립부동의 석상이였고 포신 역시 수직으로 곧추 세워있었다.

그 포신을 받치고 틀어잡은 어깨와 손들이 조금만 떨거나 움직여도 그 포탄은 그들의 머리우에 떨어질수 있는것이다.

사람도 포도 죄다 희박을 쓴듯 한 속에 연신 《발사!》구령을 웨치는 군인에게 달려갔다.빨간 수기를 든것으로 그가 화력부관임을 알아보았다.

《중대장은 어데 있소?》

《중대장동지는… 저곳에!.》

그가 가리키는 곳은 적들이 차지한 고지꼭대기의 지휘감시소쪽이였다.

포탄상자우에 나딩굴고있는 전화기를 들고 철규를 찾았다.

《련대장동지, 괜한 일입니다. 〈계속 쏘라!〉 이것이 그의 마지막말이였습니다.》

화력부관의 말에 영학은 가슴이 덜컹했다.

그때 《앗》 하는 비명이 울렸다.

《포장동무! 포장동무!》

《난 일없어. 포탄을 재우라. 재워.》

영학의 두세발자국앞에서 수직으로 세워졌던 포신이 기울어지고있었다.

《도찬이… 부탁한다.… 아, 이거…》

포신을 받쳐메고있던 사람이 서서히 쓰러졌다.

황영학은 마지막호흡을 할 때의 흑ㅡ소리와 《김일성장군 만세!》 하는 소리를 알아들었다.

《누구요?》

《우리 포장입니다. 로태진포장. 아 이걸…

동지들! 로태진포장이 희생되였다.》

도찬이라는 전사가 포신을 다시  곧추 세우자 누군가 포탄을 안고 달려왔다.

《발사!》

《발사!》

울음질린 소리들이 되받는 속에 악에 받친 숨결과 푱푱하는 발사음이 뒤섞여울렸다.

영학은 뜨거운것을 삼키며 화력부관의 손을 틀어잡았다.

《사격을 중지하오.》

《저건 도대체 어떤 작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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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누군가 험상스런 소리를 내지르는데 화력부관의 눈에서는 불찌같은것이 튕겨나왔다.

《왜 중지한단 말입니까?》

《이젠 됐소!》

영학은 웃어보이려 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박격포중대, 나의 명령을 들으라.》 그는 배허벅에 힘을 주며 소리높이 웨쳤다.

《포수들은 갱도로! 기타는 날따라 고지로!》

그는 억제할수 없는, 또 이러지 않으면 영원한 후회로 되리라는 아픔을 느끼며 고지정점을 목표로 만신의 힘을 다하여 내달렸다. 두번 딩굴었다. 두번째로 그를 부축여주는 손길에서 진한 소독약냄새를 느꼈다.

《만세!》와 《받아라!》 하는 웨침속에서 자동총사격과 수류탄폭음이 가슴을 시원히 트이게 했다.

미식기관총 총차에 걸려 또 넘어졌다. 그러면서도 적을 찾았다. 모래더미같은것이 움씰하는것을 보며 적인가 우리 사람인가를 확인하려 할 때 《련대장동지!》하는 새된 부르짖음이 울려왔다. 순간 따르륵하며 솟구치던 모래더미가 무너짐과 함께 자기의 몸을 밀치는 드센 충격에 모로 넘어졌다. 따쿵! 하는 카빙총소리와 《따르락》하는 소리를 들으며 일떠서던 그는 또 한번 진한 소독약냄새를 느꼈다.

《다치지 않았습니까?》

적을 쏴눕힌 련락병이 달려올 때 영학은 자기를 몸으로 막아준 군인이 녀성이고 지금까지의 소독약냄새도 그에게서 풍겼음을 알았다.

《동무!》

그를 잡아일으키던 영학은 눈앞이 아찔해졌다.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가.)

입술을 바르르 떨며 얼굴이 질려가는 군인은 다름아닌 미순이였다.

억이 막히는 일이였다. 1대대갱도에서 미순이 비슷한 간호원을 본듯 했으나 그가 여기까지 따라올줄은 몰랐다. 더구나 적탄으로부터 자기를 막기까지 할줄이야.

련락병이 그의 가슴팍상처를 동여맬 때까지 아무말도 못했다.

《모자?!…》

미순이가 손을 허우적거리는것을 보고 모래무지우에 떨어진 그의 모자를 조심스레 눌러씌워주었다.

《아프지?》

《안…》

《이제 엉엉 울게 되.》

가슴이 터져나갈듯 했다. 련락병에게 호령치듯 말했다.

《동무의 오늘 임무는 이 동물 살리는거요》

미순이의 손을 꼭 잡아주고 고지꼭대기로 내달렸다.

(아, 아, 이 무슨 일이람.)

고지의 적들이 《함정골》로 내빼는것을 보며 신호권총을 빼들고 세발의 신호탄을 발사했다.

좌우산고지와 릉선들에서 터져나오는 《만세!》의 함성과 련포군의 전진사격에 황급히 도주하는 적들의 산병선을 지켜보다가 철규가 있을 지휘감시소쪽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언제 앞섰는지 갱도에 있게 한 박격포중대 군인들이 울음질린 소리를 내지르며 불에 탄 석비레무지를 파헤치고있었다. 그 굴확주변에는 미군의 시체들이 줄느런히 널러져있는데 파헤친 석비레 더미우에는 토막진 동발목과 깨여진 전화통이 나딩굴고 그옆에는 멜끈이 끊어진 쌍안경과 함께 두명의 시신이 나란히 눕혀있었다.

《젠장.》

그가 입술을 강물고있을 때 《살았다!ㅡ》하는 웨침이 터져나왔다.

영학은 믿어지지 않았다.

엇가로 질러놓은 두대의 동발목사이로 들려나오는 사람이 과연 살았는지 죽었는지 또 그가 누구인지는 전혀 알아볼수 없었다.

견장을 보고 그가 철규임을 알았다.

《중대장동지! 중대장동지!》

위생가방을 멘 군인이 그의 어깨를 잡아흔들 때마다 철규의 입과 코에서는 모래알인지 흙인지 부슬부슬 떨어져내렸다.

《웃옷단추를 열어놓소.》

영학은 재빨리 군인들속을 비집고들어가 철규의 손목을 잡았다. 한가닥 온기와 함께 가는 맥박이 느껴졌다. 안도의 숨이 나갔다.

《다행이요. 빨리 처치를 하시오.》

목이 꺽 메였다.

전사들을 둘러보다말고 《함정골》에 시선을 주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지는듯 한 폭음으로 지금 군단포(152㎜곡사포)까지 그 《함정골》을 짓조기고있음을 알았다.

(《여우대가리》도 없어졌을가.)

련대장의 위치를 생각하려했으나 두명의 시신이 그를 떠날수 없게 했다.

《여우대가리》란 적들이 숨어배기는 은신처를 놓고 전사들이 지어붙인 별칭이였다.

 

밤은 례없이 조용하였다. 접동새의 울음소리가 그 고요를 짙게 했다. 하루 스물네시간 쉼없이 쏟아지는 불비속에서도 끈덕진 생명을 이어온데 대한 자랑인듯도 하고 태여난 고장을 떠날수 없다는듯 한 애절한 울음같기도 한 소리였다. 한가을철이라 썰렁한 기운밖에 없던 산골짜기의 사단장방은 시크무레한 땀내와 화약냄새로 숨막힐듯 한데다가 소금기 배인 속옷이 살에 착 달라붙을 정도로 끈적끈적한 땀을 내배게 하였다.

최현은 여느 때없이 안온하면서도 부드러운 태도로 하나하나 묻기도 하고 필요한 지적도 하였다. 큰소리보다 나직나직한 물음이 더 어려웠다.

거의 모든 지휘관들이 일어났다가 앉을 때면 손수건이나 팔소매로 얼굴의 땀을 문질렀다. 황영학은 오가는 말들에 주의를 집중하려 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미순이앞에서 눈물이 글썽해있던 철규의 모습이 떠날줄 몰랐다.

《여보, 죽지만 마오. 페같은것이야 뭐라오. 썩둑 잘라버리고 내 페를 절반 갈라넣으면 되지. 그렇지 않아, 응?》

철규는 적들이 던진 수류탄과 《우리 쇠만두》(박격포탄)때문에 모래무지에 묻혔는데 자기가 산것은 그 《쇠만두》덕이라고 했다.

미순이는 페에 관통상을 입었다. 군의들의 말로는 생명에는 일없다지만 안심할 일은 못되였다. 피를 많이 흘린것으로 너도나도 수혈하겠다고 나섰으나 황영학의 피가 O형인것으로 그만이 했다. 철규는 제피를 안넣어준다고 군의와 싸움질까지 할번 했다.

영학은 사단장의 눈짓신호를 받고서야 자기를 호명했음을 알았다. 애당초 자기부터라고 생각했는데 사단장의 보고에 이어 포병부사단장이 첫 대상으로 되였고 고사포대대장, 6련대장, 정찰과장을 걸쳐 후방부와 병기사업에 대한 료해로 넘어가는데서 약간 방심했었다. 하긴 방심이라기보다 자기 생각에 옴한때문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그는 최현의 눈살이 찌프려지는것과 그옆에 앉은 로병관이 최현의 얼굴색을 살피는것을 보고 자기를 제일 뒤늦게 일으켜 세운것이야말로 이 급작스러운 비상모임이 자기 련대때문임을 충분히 알수 있었다. 아닐세라 최현은 지금까지와 달리 처음부터 시까스르는 태도였다.

《동무네가 〈여우대가리〉를 연구해냈지?》

《연구라기보다… 전사들이 그 엄중성을 포착하고…》

《엄중성?! 그래 엄중성이지. 한데 그걸 다 없애치웠던가?》

영학은 비장한 감정을 느꼈다.

《다 없애지 못했습니다. 없애지 못했을뿐아니라 앞으로도 더 생길수 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련대장이 사면팔방 달리기를 하겠구만.》

《그에 대해선… 이렇다저렇다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저로선 〈여우대가리〉와 통신련계가 자주 끊어지는 상태에서 있을수 있는 여러가지 정황에 대처해 린접과 후군과의 협동조직에 대한 사전대책이 수립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 사전대책이란 어떤게요?》

《그건 이미 수립되고있습니다. 전사들과 전방지휘관들은 거의나 스스로가 판단하고 그에 따라 즉각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럼 련대장급부터는 다들 팔짱을 끼고 구령만 치면 되겠구만.》

최현은 말은 이렇게 했으나 긍정하는 기색이였다.

《그리고 또 한가지 말할것이 있습니다.》

《뭔데?》

《고지우에 직사포를 올려놓음으로써 여러가지 난관이 풀리게 되였다는겁니다.》

영학은 오늘 직사포의 위력을 새삼스럽게 절감했다.

그의 련대가 반돌격을 개시하고 《함정골》에 모인 적들에게 련포군과 사포군의 집중사격이 벌어질 때 가칠봉 좌측릉선에 석대의 땅크가 나타났다. 그 땅크의 포신들이 반돌격을 개시한 대대들쪽으로 움직일 때 권혁찬소대의 우측 북쪽고지에 있던 직사포가 단 네발의 사격으로 땅크를 요정냈다. 만약 오전 싸움에서도 그들이 보다 주변감시를 잘했더라면 불의적으로 덤벼드는 적의 공격도 제압했을것이다. 허나 그때는 심한 폭연속에서 감시시계가 불리한데다가 그때의 그들은 가칠봉화점들을 없애는데 전념하고 있었던것이다.

최현은 영학의 말에 모두가 머리를 끄덕이는것을 보자 싱그레 웃었다.

《앉소.》

모두가 예상외의 짧은 대화에 놀라운 얼굴이였다. 로병관만은 응당 그럴것이라는듯 고개까지 끄덕여보였다.

최현은 펼쳐놓긴 했으나 지금까지 한글자도 써넣지 않은 수첩을 내려다보다가 일어섰다.

《이젠 다들 알았겠으니 더 말할것은 없소. 문제는 방금도 말했지만 〈여우대가리〉를 없애는것이요. 오늘 1련대가 혼쌀이 난것도 그때문이거든. 오늘의 그 여우대가리는 우선 6련대가 책임져야 해. 놈들은 바로 동무네가 불리한 지점이라고 내놓은 무명고지에 똬리를 틀고있다가 덮쳐들었단말이요.

물론 105㎜에 맞은때문이기도 했지만 이 105㎜는 사단포병정찰에서 잘못한것이니 포병부사단장이 책임지고 처리해야 돼.》

《군단장동지, 그 105㎜곡사포는 정찰중대가 맡기로 했습니다.》

사단장이 그의 말허리를 끊자 최현은 얼핏 그를 스쳐보았을뿐 들은둥만둥 계속했다.

《놈들도 머저리가 아니란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쪽에서 불리한 지점은 곧 적들한테 유리한곳으로 되니만치 불리하다 해서 물러날것이 아니라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연구를 해야 하오.… 전사들하고 토론해서.

개별적인 사수들과 분대장, 소대장, 중대장들은 자기 방어구간의 유리성에만 집착할수 있는데… 여기 앉은 동무들은 바로 그것까지 헤아려보고 귀뜀을 해줘야 한단말이요. 그럼 우리보다 몇갑절 눈밝은 전사들과… 그 지휘관들이 어련스레 잘하지 않겠소. 6련대가 불리하다 해서 내놓은 〈여우대가리〉엔 갱도두 조금 뚫었댔지?》

《네.》

로병관이 대답했다.

《보란말이요. 우리가 갱도까지 만들어놓고 버티니까 놈들이 어떻게 했소. 거기에 영구화점까지 만들어놓고, 우리가 쏜 122㎜ 곡사포에도 무너지지 않았다며?》

영학은 최현의 눈길이 자기에게 닿아있는것을 보고 마지 못해 일어섰다.

《네. 오늘 포사격으로 들부셔보려 했는데 안되였습니다.》

《그래, 그렇지. 이제 그걸 까치운다는건… 간단치 않아. 그앞엔 철조망에 지뢰에… 또 가칠봉에서 내리사격을 하니… 접근할수가 없지 않나?》

《군단장동지, 까겠습니다.》

사단장의 말에 최현은 입귀를 일그러뜨리였다.

《그래 누가 뭘루 깐단말이요.》

《그것도 1련대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음, 그러니 영학이가 영웅이 된다 그거구만.》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탕!

최현이 책상을 쳤다. 눈빛은 사뭇 험악했다.

《난 이 며칠안으로 〈여우대가리〉소리가 더 없기를 바라오.》

그는 숨을 헐떡이다가 엄숙한 얼굴로 굳어졌다.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전달하겠습니다.》

모두가 화닥닥 놀라 일어섰다.

최현은 또다시 수첩을 내려다보고는 명령전달도 그에 대한 풀이설명도 아닌 말을 하였다.

《동무네 앞의 괴뢰5보사는 오늘 전투로서 염통이 터져나갔소. 오늘만해도 1천 3백여놈이 썩어졌으니까.

그런데 이제부터가 문제요. 장군님께서는 지금 덤벼드는 온갖 어중이떠중이들이 더욱 발악적으로 덤벼들것이라는걸 말씀하시면서 그놈들을 죄다 우리가 소멸해치울 영광을 안겨주셨소. 》

최현은 《영광》이라는 말을 힘주어하고는 엄엄한 눈길로 좌중을 둘러보다가 계속했다.

《동무들도 어느정도 아는지 모르겠지만 글쎄 릿지웨이라는 녀석이 말이요.… 소가 웃다 꾸레미가 터질노릇인데 글쎄 그놈이 우리 장군님께 정전담판을 해주십사하고 빌붙으면서도 그 동안에 공세를 한것이 우리 잘못이라고 줴치는가 하면 땅을 더 뺏을 흉심밑에 이러저러하게 하자구 뻐겨봤다는게 아니겠소. 그게 될턱이 있소? 어떻게 찾은 땅이구 어떻게 아끼시는 인민이요. 장군님께서는 단통 퇴를 놓으셨소. 이러니 놈들로서는 그냥 손들기가 어려우니 에라 끝까지 해본다하고 덤벼드는데 오늘 전투가 치렬한것은 그때문이요. 우리가 겁을 먹고 흰기를 들라고, 어떻소. 무서운 사람은 없소?》

《원, 군단장동지두… 그따위놈의 수작은 개방귀보다 못하게 봅니다.》

사단장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렇지. 별다른게 없다이. 오늘처럼 싸우면 되니까. 그럼 로병관동무가 이에 대한 군단결심안을 발표하겠소. 량해를 하오.

내가 오늘 머저리주사(진정제)를 맞아놔서… 장군님께서는 동무들과 우리 군단 전체 전사들에게 치하의 교시를 주셨소. 치하의 교시를!》

최현은 이 말을 하고나서 다들 앉으라고 하며 쿨럭쿨럭 기침을 하였다. 황영학은 그가 심한 흥분속에 있음을 알았다.

로병관의 구체적인 설명과 부대별 작전행동에 대한 계획을 들으며 최현의 흥분이 치하의 교시때문만이 아니라 예견되는 전투의 치렬성때문임을 알았다. 로병관이 말을 마치자 최현이 다시 일어났다. 좀전에 그가 말한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그때에야 전문 그대로 읽었다. 《2군단 앞》이라는 문구까지는 그대로 읽고 그 뒤부터는 사단과 련대에 해당되는것만 읽는다고 하며 마디마디에 힘을 주었다.

《…1211고지앞계선의 대소무명고지들과 가칠봉으로부터 1211고지사이의 중간지점들에 있는 적의 은페 및 공격출발진지들을 다시 확인하고 필요한 대책을 세울것이다.

우선 불시적인 접근돌입을 불허하기 위하여 가까운 거리에 자리잡은 적의 은페 및 공격출발진지들을 가능한껏 우리 수중에 장악하도록 할것이다.

다음으로 적의 불시적인 접근시 린접의 지원사격체계를 재검토하고 사계와 시계에 유리한 진지수립과 보강을 함과 함께 전방에 진출한 모든 포들로 하여금 제정된 사격구간과 각이한 방향에서 돌입하는 적들을 소멸할수 있게끔 제2, 제3의 사격구간을 확정하고 사전 제원구득을 하도록 할것이다.…

앞으로 예견되는 미10군단과 남조선군1군단 주력전체의 공격으로 전선의 횡선길이도 그만큼 넓어질것이다. 그러나 적의 기본공격방향은 의연 1211고지로 될것인바 여하한 악조건에서도 1211고지에 대한 집중방어를 소홀히 할수 없다.

나는 군단장과 군단장을 통해 2군단전체 전하사장병들에게 1211고지방위전에서 결정적인 시각이 왔음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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