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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푸른산맥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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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5,501회 작성일 20-05-1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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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매봉뒤의 한 산턱밑에는 밤낮없이 뚝딱거리는 마치질소리와 풍각쟁이의 흥타령 같은 소리로 전선풍경에 이색을 보여주는 야장간이 생겨났다. 일명 《전진병기수리소》라고 부르는 이 야장간에는 각양각색의 군인들이 모여왔는데 크게는 선발되여온 《쟁이》들과 림시조력공으로 온 《무재간》으로 나누어져있었다. 선발되여온 《쟁이》들은 례외없이 자기의 일솜씨에 취해 어깨바람을 피우며 기세를 돋구지만 림시로력으로 온 《무재간》들은 아예 무반응, 무표정인데다가 《쟁이》들의 흥겨움에 《멸시》어린 눈길을 주기도 한다. 그럴만도 하다. 선발되여왔다는 《쟁이》들은 태반이 전투시에는 뒤전에 밀려나는 아바이들이기때문이다.

여기서는 군관이건 전사이건 쇠붙이다루는 기술여하에 따라 등차가 매겨지고 그에 따라 지시를 주고 받는 복종관계가 생긴다.

《무재간》들은 잘돼야 파편덩이나 수집해오고 《쟁이》들의 잔사설을 들으며 풍구를 돌리고 함마질을 해야 한다. 드디여 동원날자가 끝나 커다란 도장이 박힌 종이장을 받아들었을 때야 그들의 본얼굴, 본색이 나타난다.

《존경하는 야장쟁이여러분들, 수고를 많이 해주시오. 이 일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고지에 나가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싱글벙글 웃으며 떠나는 그들의 얼굴에는 한가득 기쁨이 실려있고 그럴 때면 《중요한 일》이라는 칭찬을 받은 《쟁이》들도 부러움과 선망에 찬 눈길로 그들을 바래운다. 갱도굴설을 위한 정대며 곡괭이, 삽을 벼리는 일이 제아무리 중하다 해도 적과 맞붙어 싸우는 전투에는 비할수 없기때문이다.

철규는 오늘도 시름없이 풍구를 돌렸다.

그제 아침 아버지며 미순이앞에서 영웅은 못돼도 그 뒤줄에는 서리라고 굳게 마음먹고 직동령을 넘어선 그는 뜻밖의 《단속》에 걸려들어 여기까지 오게 된것이였다. 현인석은 더 말할것 없고…

문제는 뜻밖인데도 있지만 머리가 팽이처럼 돌지 못한데 원인이 있었다.

여느때없이 증명서와 후방행의 용건을 자상히 따져보는 경무원들뒤에 한물커리의 군인들이 굴비두름이 되여있고 그앞에 기고만장한 얼굴의 군단병기부일군이 수만적병을 사로잡은 기상으로 뚜거덕뚜거덕 오가는것을 보았으면 응당 낌새를 알아차려야 했을것이다.

담가병, 통신병, 정찰병은 물론 전투시《2부류》인 쌀마대운반병들까지 몇마디 말 안팍에 무사통과할 때 여사여사하여 《속사리로 갔다가 오늘안으로 돌아올데 대한》 련대장의 명령에 따라 귀대중이라는 말 한마디로 그와 현인석은 굴비두름속에 들어서게 되였던것이다. 이 굴비두름은 무슨 강습과 훈장수여식때문이거나 혹은 련락임무와 부상병후송으로 부대를 떠났던 군인들과 《기진맥진해가는 적》의 마지막숨통을 죄일 기세로 군의소를 떠나 부대로 가는 군인들로 된 대렬이였다.

군단병기부일군들은 그러루한 군인들로 한개 소대가 넘게 되고 더 오는 군인들이 없자 군단장명령이라고 하며 직위와 직종에 관계없이《전진병기수리소》에 가서 닷새동안 갱도공사용기재제작사업에 인입되게 됨을 엄숙히 선포하였다. 모두가 웅성웅성하며 제가끔의 사연을 내들고 항변과 청원을 들이댈 때 철규는 《잘못 걸려들었구나.》하고 머리를 치면서도 그때까지만 해도 완전히 절망하지는 않았다.

《군단장의 명령》이라는것을 희망의 바줄로 꽉 붙잡고 모든 청원을 짓뭉개느라 얼굴이 수수떡처럼 된 병기부일군에게 조용히 할 말이 있다고 하고는 《속사리행》의 전반사연을 밝히고 《군단장동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것만큼 례외로 되여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속심을 은근히 내비추었다.

그의 말을 다 듣고 난 병기부일군은 구면지기나 만난듯 반색을 하였다.

《아, 그렇댔구만. 축하를 하오. 한데 동무들이야말로 이런데 적임이요. 처들을 만났다면 어지간히 맥도 뽑았겠다 여기서 기운을 보충한 다음 전투장에 나가오.》

그다음엔 말도 붙이지 못하게 했다.

일인즉 참으로 너절하게 된셈이였다.

그제 아침 부상병후송때문에 갔다오다가 잡혀왔다는 한 특무장의 말에 의하면 적들은 미군까지 동원해 1211고지에 대한 공격을 해온다는것이였다.

중대장이 전사한것으로 그의 대리가 된 자기가 여기에 꿍져박혀있다니 이처럼 맹랑스러운 일이 어데 있는가.

미순의 정찬 눈길과 군복을 입고 가까이 있겠다고 할 때부터 구름우에 오른듯 했던 기분이 깊은 개펄에서 헤염치는 미꾸라지의 꼴로 되였다.

(오늘 밤에는 어떤 수를 쓰든 빠져나가야 한다. 잘못돼야 경고처벌이나 받을테지.)

그는 풍구통이 터져나가라 하고 세게 힘을 썼다. 그바람에 바지주머니에 넣었던 이삭강냉이가 삐여져나와 누가 볼세라 얼른 주머니에 도로 밀어넣었다.

이것 말고도 네이삭이나 더 있다. 여기서는 모두가 비전투원이건만 임무의 《중요성》과 심한 로동강도때문에 고지전투원들과 똑같은 야전급식의 우대를 받아 끼당 두개씩의 이삭강냉이를 공급받고있다.

첫날과 두번째 날에는 현인석의 집에서 받은 푸짐한 대접때문에 남기게 된것이였고 그다음부터는 소대원들에 대한 생각으로 한이삭씩 남겨놓은것이다.

이렇게 된데는 음식도 과히 당기지 않는 속썩임때문이기도 했다.

《수고들 합니다.》

불빛막이 마대천이 들썩하며 들어서는 사람은 군단장 최현이였다. 병기부일군과 로병관장령이 따라서고 모두가 급급히 차렷자세를 취하며 긴장되여있을 때 철규는 양덕골짜기에서의 일을 더듬으며 가슴이 풍구통이 되고말았다.

일재미가 어떤가, 힘들지 않은가 하는 식의 물음으로 몇명의 군인들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그지간 벼려놓은 정대를 매만져보기도 하고 곡괭이날을 시험삼아 모루우에 대고 두들겨보기도 하던 최현은 철규앞에 이르자 얼굴이 환해졌다.

《아니 이게 누군가. 박격포소대장이 아니야.》

《넷, 박격포지휘소대장 김철규!》

철규는 군단장이 직접 자기 이름까지 알아부르는것과 모두의 눈길이 자기에게 쏠리는것을 기분좋게 느꼈으나 시뿟한 기색으로 고개를 짓숙이였다.

《그런데 동문 어째 여기 있나?》

철규는 목이 꽉 메여 올랐다. 그가 억이 막힌 사연을 토설하려 했을 때 최현의 뒤를 따르던 병기부일군이 그의 귀바투 입을 가져다 대고 뭐라 수군거렸다.

최현은 잔뜩 눈섭을 이지러뜨리고 듣다가 《응, 그랬지. 그랬던가? 응, 그래.》 하고는 《허.》 하고 김빠진 소리를 내였다.

철규의 시선과 마주치가 멋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보라구, 박격포! 이 일도 포쏘기보다 못하지 않아, 아주 중요하지.》

그리고는 화약과 뢰관을 뽑아낸 불발탄무지쪽으로 다가가다가 철규를 다시 되돌아보았다. 간잔지런히 쪼프려진 눈에 익살궂은 웃음이 비꼈다.

《이보, 처와 가까이 있고싶었는가?》

《네?!-》

《난 동무 아버님한테 졌다. 장한분이야.》

최현은 이 말을 하고는 병기부일군에게 불발탄에서 뽑아낸 화약을 발파용폭약으로 쓰는 문제를 캐여물었다.

철규는 두사람의 대화를 여겨듣다가 현인석이가 옆구리를 찌르며 눈짓, 코짓하는 바람에 용기를 내였다.

《군단장동지, 한가지 청원할만 합니까?》

《무스겐데?》

《저와 이 동무를 련대에 보내주십시오. 저도 이 동무도 전투도중에 떠나왔습니다. 지금 저희들이 맡은 쪽으로 미국놈들까지 밀려들고있답니다.》

《이 동무란 누구요?》

철규는 현인석이 귀까지 벌개지는것을 보며 재빨리 대답했다.

《이 동문 가칠봉린접 돌출부를 맡은 소대의 부소대장입니다.》

《상사 현인석.》

《아, 동무였구만.》

최현은 버그러지는 웃음을 감추지 못한채 로병관과 얼핏 시선을 맞추고는 현인석의 짚신짝같은 귀를 탐스럽게 여겨보며 물었다.

《애기도 동무를 닮았나? 그래 생남턱은 냈겠지. 여기 이 동무들한테 말이야.》

《저, 못했습니다.》

《그러면사 안되지. 이 박격포소대장동무야 우리 장군님의 특명을 받은 군관이니 요구대로 들어줘야지만 동무야 명분이 없지 않나. 생남턱도 안내다니.》

《무스게요?》

《쑥떡입니다.》

현인석이 가쁜 숨을 내지르며 철규와 반분하기로 했던 쑥떡보자기를 끄집어 냈다. 최현은 난처한 얼굴로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하는 눈길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못한것 같았다.

철규는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자기와 현인석의 일에 대하여 군단간부들속에서 뭔가 말들이 있었다는것을 느끼며 인차 돌아갈수 있다는 희망에 마음이 촉급해졌다.

그때 다부진 몸매의 군관이 최현앞에 다가섰다.

《군단장동지! 77사직속 반포대대 정치부중대장 최수산 만날만 합니까?》

거수경례를 붙인 손은 와들와들 떨렸고 네모져보이는 얼굴은 붉어지다 못해 검스런 빛을 띠였다.

《반포도 왔구만.》

최현은 현인석의 《쑥떡》에서 풀려나게 된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듯 군관의 열기어린 눈에 시선을 주었다.

《군단장동지!》

최수산이라는 군관은 당장 무슨 재구를 칠듯 한 태도와 달리 나지막하면서도 설득력있는 어조로 말을 꺼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것은 신소라고 할수 있습니다. 무엇때문에 반포대대에는 다른 구분대보다 배의 인원을 동원시켰는가 하는것입니다.》

《정확한 말이요?》

《네, 보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보병전투구분대보다 2배입니다. 때문에 정치부중대장인 저까지 오게 되였습니다.》

《그야 잘한게지. 동무넨 사태리쪽에서 옮겨왔지?》

《네, 반포전때문에 이동되여왔다가… 싸움 한번 못하고 일루 왔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리해를 해야지. 1211고지에서 반포전은 못하는게니 이리루 보낸셈이 아닌가.》

《군단장동지, 그 말씀은 옳습니다. 그렇지만 저희가 있을 때도 사태리쪽에서의 전투가 어려웠던만큼 이런 휴양을 할바치고는 다시 그리로 가는것이 좋을것 같아서 말씀드리는것입니다.》

《1211고지는 어떻게 하구.》

《반포투쟁을 못할바치고는 어데서든 싸워야 할것이 아닙니까.》

《여기가 바로 그 전투장소야.》

《알겠습니다. 하지만 직사포가 지금처럼 천대를 받는것은 억울합니다. 사실 지금 1211고지뒤에 남아있는 동무들도 의견이 있습니다. 골바닥에 꾸겨박혀 남들이 싸우는 소리만 들으며 속을 태우기보다는 보병이 되여서라도 싸워야 하겠다고… 어떤 동무들은 포를 끌고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고까지 하고있습니다.》

《직사포를 산으로?…》

《네, 그건 해보는 소리지만… 싸움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수산은 더 말을 할수 없었다.

소형무선기를 둘러멘 통신병이 달려들어와 최현에게 뭔가 말하자 이제까지 허물없는 태도를 보이고있던 최현의 표정이 홱 달라졌다. 그는 쑥떡보자기를 들고선 현인석은 물론 진지한 눈길로 대답을 기다리는 최수산마저 잊은듯 누구에게라 없이 말했다.

《후에 다시 오겠소. 그때 이야기도 마저 하고… 동무네가 족칠 적은 얼마든지 있으니 너무 덤벼치질 마오. 장군님께서 고지전투못지 않게 갱도에 대해서 관심하고계시오. 알겠소?》

최현은 수고하라는 말을 남기고 밖을 나섰다. 그에게 미처 인사도 못한 철규는 다 성사되게 된 일을 망쳐놓은 최수산을 원망스럽게 쏴보며 입술을 깨물었고 쑥떡보자기를 든 현인석은 이것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가 하는 눈길로 사방을 둘러보며 어설픈 웃음을 지어보였다.…

최현이 탄 차가 먼지를 휘감아올리며 군단지휘부마당에 들어선지 5분도 안되여 또 한대의 풍친 승용차가 들어서고 거기서는 얼룩배기샤쯔차림의 사나이가 뛰여내렸다.

최현의 걸음길을 되돌리게 한것은 바로 이 얼룩배기샤쯔때문이였다. 그로 말하면 최현과 전쟁전전날에 알게 된 림운학이다. 적후투쟁초기까지 52사 정찰부과장으로 있던 림운학은 최현의 추천과 강성찬의 공작으로 올해 초부터 최고사령부정찰국 상급지도원으로 있다가 열흘전에 적후전선을 넘어갔다 오는 길이다.

《그래, 하나도 빼지 않고 죄다 말해라.》

림운학을 자리에 앉힌 최현의 눈에서는 불이 일었다.

림운학의 애인인 성련화가 아니였더면 어쩔번 했는가. 련화를 군단이 아니라 전선사령부에 있게 한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는… 무슨 영문인지 채 모르겠습니다.》

리승엽의 《영접조》성원들에게 붙잡혀있다가 최현이 보낸 차에 마대짝처럼 실려온 림운학은 꿈을 꾸다가 깨여난 사람처럼 어리둥절한 얼굴이였다.

최현은 뜨적뜨적 이어가는 그의 말을 들으며 머리를 기웃거리기도 하고 《음》소리를 내지르기도 하였다.

열흘전 림운학이 이리로 나타났을 때 그는 최현에게 강성찬이 보내는 편지를 보여주었다.

편지에는 림운학을 적후로 파견한다는것과 전선을 넘는데서 2군단과 5군단의 린접점을 통로로 한만치 2군단정찰의 안내와 방조가 필요하다는것, 서울까지의 밀로문제는 리승엽과 토론이 있었다는것이 밝혀져있었다. 리승엽이라는 이름자를 보면서부터 신경이 곤두서게 된 최현은 림운학의 위장증명서까지 리승엽의 비밀사업부서에서 제공한것임을 알게되자 그냥 방임해서는 안될 문제라고 생각하였다.

지난해 말의 적후투쟁때부터 리승엽이라고 하면 아예 도리머리를 젓게 된 최현이였다.

그때 군사위원이랍시고 군단에 내려와있던 리승엽은 군단이 적의 포위속에 들게 된것을 간파하신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즉시적인 탈출기동을 명령하셨건만 그 무선전문을 숨겨둔채 집행은 물론 최현에게조차 알리지 않으려 했던것이다. 그때도 성련화의 도움이 컸다. 리승엽의 담당간호원과 친분이 있었던 성련화가 그 사실을 알고 최현에게 사태를 바로 잡을수 있게 했던것이다.

이로부터 최현은 강성찬에게 전화를 걸어 밀로변경을 요구했고 증명서도 군단잠복정찰을 위하여 마련한것을 쓰자고 하였다. 그로하여 림운학의 출발은 하루가 지연되였으나 이처럼 무사히 갔다가 돌아온것이다. 그런데 전선을 넘어서는 시각에 림운학은 실책을 범한것이다. 아군지역이라는것을 방심한 탓에 림운학은 강성찬이 리승엽과 토론했다는 통로로 들어서다가 리승엽의 《영접조》성원들과 먼저 만나게 되였던것이다.

《…그 동무들은 저의 위장신분이 공개되면 안된다고 하면서 혀랍치용마대를 쓸것을 요구하더군요. 기분은 나빴지만 할수 없었습니다. 차에 실려 20여분가량 달린 다음 마대를 벗기는데… 거기엔 우리 정찰국사람들이 아니라 리승엽동지가 있었습니다. 첫마디 질문이 누구와 접선했고 받은 정보내용은 무엇인가 하는것이였습니다. 원칙상 그에게 보고할 의무가 없는지라 대답을 피하자 위협조로 나오더군요. 자기에게 무슨 숨길것이 있는가 하고 설복도 하고… 그래서 전 정찰국사람들이 오지 않았는가를 되물었지요. 그에 대해선 리승엽동지는 자기네가 와 있기때문에 구태여 그들까지 마중 나올 필요가 없었다는것이였습니다. 일리가 있다고 보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규정을 어길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적당히 넘겨 버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접선대상들에 대해선 밝히지 않고 적의 움직임과 관련한 자료와 제가 목격한 군수차량들의 이동만은 얼마간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리승엽동지는 몹시 성을 내더군요. 동무야 장인되는 사람의 친구분들을 거의나 알지 않는가, 그 친구분되는 령감쟁이들 거의다가 성시백동지와 련계가 있는 사람인데 그중의 누구와도 만나지 못했다는것이 말이 되는가 하면서, 그때부터 뭔가 께름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와 있는 곳이 어딘가도 알아보고 혹시 정찰국동무들이 주변 어디에 있지 않겠는가 하여 소변을 보러 밖에 나가겠다고 하였습니다. 마지 못해 승낙을 하는데 한 사람이 따르더군요. 성련화와는 복도에서 만났습니다. 그와 제가 아는 사이라는것을 알자 뒤따르던 동무가 몹시 당황해하더군요. 비밀정찰이 로출되였다는때문인가, 그것만 같지 않았습니다. 하여 저는 련화에게 중매군아바이한테 인사를 전해달라고 하였습니다. 련화도 뭔가 나한테서 불안한 기미를 포착한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군단장동지를 찾아 전화를 건것이겠지요. 군단장동지를 중매군아바이라고 한데 대해서는 량해해주십시오.

정찰일군 반년동안 그런 은어가 버릇처럼 되였습니다.》

《잘했소, 내 이미 련화한테는 한주일전인가 동무에 대해서 알려 주었댔소. 인차 한번 만나게 될것이라고.

그래 받은 임무는 제대로 수행했나?》

《네, 저로서 볼 땐 대단한 자료입니다.》

림운학이 만난 사람들은 성시백공작조의 기본성원들은 아니였다. 그러나 그들은 정계와 재계의 거물들로서 성시백의 중요한 정보원천으로 되던 사람들이였다. 개중에는 성시백의 실체를 모르고 정보를 제공한 사람들도 있지만 알면서도 그의 인품과 친교관계에 끌려 정보를 제공한 사람들도 있었다. 지난해 6월에 있은 성시백의 희생으로 하여 성시백이와만 련결되였던 사람들을 찾아내는것이 조련치 않았다. 정찰국에서는 그들을 찾기 위해 여러모의 선을 늘였는데 림운학은 바로 그런 사람들중의 몇몇을 알고있는것으로 이번의 적후정찰에 뽑혔던것이다.

《시간적으로 급한가 아닌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 급한것 같고…》

《그럼 다 쏟아놓소. 특히 나한테 도움될 자료는 빠짐없이. 어제 아침부터 우리 전선은 고요하오. 무슨 내속인지 모르겠거든.》

《그럴겁니다. 정보출처는 밝히지 않아도 되겠지요?》

《그래그래, 그까짓건 나한테 필요없소. 내용만 말하오.》

《군단장동지는 미합동참모본부 의장인 브랫들리가 도꾜에 날아든것은 모르겠지요?》

《부시돌인지 브랫들리인지 여러번 들었다만 도꾜에 왔다는 소린 처음이다.》

《그자가 도꾜에 온것은 <대일단독강화조약>체결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부시돌이 일본당국내의 인물들과 만난것은 몇번 안되고 거의 모든 시간을 <유엔군>사령부안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는 <유엔군>사령부 출입기자들도 그를 만날수 없었는데.》

《요점만 말하오.》

《알겠습니다. 가장 중요한것은 그자의 입에서 이번 <하기공세>, 말하자면 군단장동지네 담당지역에 대한 공세작전을 놓고 <잘못 고른 장소에서 잘못 고른 대상을 놓고 잘못 고른 시각에> 벌린 무모한 싸움이라고 비난했다는것입니다.》

《비난했다구… 그럼 그만두겠다? 이런 결론에 떨어진다는게 아닌가.》

《네, 저도 지금까지 그 정보를 놓고 기연가미연가했는데 군단장동지가 말씀하신대로 이곳 전선이 조용하다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것과 같은 리치가 아니겠습니까.》

《그만둔단 말이지.》

최현은 입안의 소리로 중얼거리며 까딱않고 굳어져있었다.

저녁녘에 있은 부장급이상모임에서 적들의 약화된 공격을 놓고 이런저런 말들이 오갈 때 군단참모장이 그 사실을 반증하는 여담거리의 일화를 공개했다.

가칠봉의 적들이 2∼3일간의 《정화》를 요구해왔다는것이다.

메가폰과 손나발로 된 말싸움으로부터 적측의 대대장과 우리측 소대장간의 정식 《담판》에서 제기된것이라고 했다.

여느때라면 최현은 이러루한 심심풀이의 《장난》을 스쳐들었을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까끈히 따져물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말들이 오고갔다오?》

《그 동무들이 써보낸것이 있습니다.》

최현은 참모장이 펼쳐보이는 신문지 절반만큼크기의 포장지를 받아들었다. 연필로 박아 쓴 자름자름한 글씨가 빼곡 차있었다. 안경을 쓰고 보았다.

《야, 너희들은 새로 온 <형님>들이지.》

《오냐, 시라소니들을 잡으러 온 <형님>들이다.》

《수백리를 걸어 오느라 무척 지쳤겠구나.》

이밑에는 참모장의 글체로《이놈들은 6군단의 지원을 알고있는것 같음》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이 어리석은것들아, 우린 너희들의 갈비뼈를 부러뜨리던 호랑이님들이다.》

《그러니 늬들은 서화원통에서 싸우던 패들이구나.》

《개코냐 쇠코냐. 우린 백두산에서 왔다.》

《어랍쇼, 형님들.》

《그래 무슨 지랄이 나서 말수작질이냐.》

《우린 좀 친해보자는거다.》

《뭐 친해?… 그런 소린 태안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와서 해라.》

《아니, 우리가 친하자는건 진짜다. 다문 하루이틀만이라도 죽일내기를 그만두자는거다.》

《거 비슷한 생각을 했구나. 그럼 당장 집으로 되돌아가렴.》

야 형님들아, 허튼 소린 하지 말구 진짜루 말하자. 우리 대대장이 늬들 지휘관과 <담판>을 하겠다고 하신다.》

《담판을, 무슨 떡대가리 같은 담판이냐.》

《정화담판이다. 이건 진짜다.》

《정화? 좀 기다려라.》

(대대부에 전화로 승인을 받았음.)

《여, 우리 지휘관은 담판을 하기로 했다, 그러니 저밑 골짜기로 내려오라.》

《골짜기로?》

《그렇다. 거긴 중간지대가 아니니.》

《쏘지 않을테냐?》

《이 떨보들아. 우린 너희네 수양애비인 터너 죠이가 아니다.》

《여, 그런 말은 좋지 않아. 그럼 두명씩 만나자.》

(소대사격지점 좌표00-3지점에서 만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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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소대사격지점 좌표00-3지점에서 만났음.

적측에서는 대대장이라는자와 한명의 사병이, 우리측에서는 소대장 권석찬, 분대장 리수복이 내려가 만났음. 악수는 하지 않고 10여보 거리를 두고 대화를 함.)

적대대장: 당신은 소대장이구만.

권석찬: 대대장이다. 이 별은 위장별이고, 이 중사동무는 련대장 부관이고.

적대대장: 아, 그렇소? 실례했소.

권석찬: 담판용건을 말하오.

적대대장: 우리 사람들이 말한것과 같은 내용인데… 당분간 우리끼리의 싸움은 중지하자는것이요.

권석찬: 그건 무슨 리유때문이요?

적대대장: 특별한 리유란 없소. 그동안 추석도 못 쇤만큼 얼마간이라도 인간다운 생활을 해보자는것이요.

리수복: 여보시오, 인간다운 생활을 바란다면 애당초 이런 싸움에 나서질 말아야 하지 않소.

적대대장: 그런 문제는 더 말하지 말기요. 현재로서는 우리들간의 정화만이 절박한 문제라고 보오. 그리고 솔직히 말하지만 래일은 내 생일이요.

권석찬: 한데 이런 문제를 당신자신의 권한으로 결정할수 있소? 당신네한텐 미군고문도 있겠고 독전관들도 눈이 시퍼래있겠는데.

적대대장: 지금 우리한테 미군고문도 정훈장교도 부재중이요.

그들은 휴식차로 뒤에 들어갔소. 그리고 독전관들자체가 안전이 담보된 휴식을 바라고있소.

권석찬: 그럼 좋소. 이 문제에 대해선 나로서도 완전결심하기는 어렵지만 일정한 기간의 정화에 대해서는 동의하오.

적대대장: 그런데… 완전결심을 못한다면서 동의한다는것은 무슨 소리요?

권석찬: 상급에서 오늘이라도 당신네 고지를 타고앉으라면 우리는 단 한두시간동안에 당신네를 짓뭉겨놓을수 있소.

적대대장: 허허, 당신네는 오산하고있소, 우리는 한개사단이 덤벼들어도 끄떡없을 대책을 갖추고있소.

리수복: 그건 당신네의 기준으로써 본거고 우리한테는 그 몇갑절 방어도 고무풍선터치기와 같은것이요.

적대대장: 그러니 그냥 싸우자는것이요?

권석찬: 물론이요. 하지만 당신의 생일도 있고 추석도 못 쇠였다고 하니 래일까지는 가만있겠소. 그러나 당신네의 총탄이 단 한방이라도 날아올 경우엔 그것은 무효로 되오.

적대대장: 그 문제에서 한가지 량해를 구할것이 있소. 우리가 전혀 총을 쏘지 않으면 린접에서 알게 되는것이고 결국 그렇게 되면 우리로선 곤난하오. 때문에 우린 드문히 사격할수밖에 없는데 이 사람없는 골짜기에 대고 쏘겠소. 맹세컨대 당신네 진지에는 단 한발도 날아가지 않게끔 말이요. 그런데 한가지 나로서 담보못할것은 우리 뒤계선에서 하는 포사격과 항공대의 폭격에 대해선 어쩔수 없다는것이요.

권석찬: 그건 리해할만 하오. 한데 당신네 같은 《정화》제기가 요즈음 꼬리를 물고있소. 혹시 그런 지시가 떨어진것이 아니요?

(군단참모장의 글체로 감탄부호가 쳐있었다.)

적대대장: 그건 나도 잘 모르겠소. 지금 후방에서 위문단과… 그저… 연예인들이랑 많이 와있는데 우리같은 1선장교들은 거기에 코빼기도 들이밀수 없소.

권석찬: 알만 하오. 그럼 래일까지를 《정화》기일로 봅시다.

적대대장; 이틀은 안되겠소?

권석찬: 이틀, 정 바란다면 그렇게 하기요.

(이러자 적대대장은 무척 감동하여 경례를 붙이고는 같이 온 사병이 들고온 짐을 내려놓게 했음. 통졸임과 술이라고 하며 받으라고 하였으나 받지 않고 돌아왔음.)



최현은 빨찌산투쟁때도 이 비슷한 일이 자주 있었음을 상기했다. 위만군들은 이 비슷한 《정화》를 제기하고는 무기, 탄약, 식량까지 가져다 바쳤다. 하지만 왜놈들과는 그런 일이 단 한번도 없었다.

어찌된 일인가.

위문단과 예술인들이 왔다는것만 아니라면 전적으로 림운학의 정찰자료가 사실임을 증명하는 실례로 된다고 생각되였다.

위문단과 예술단은 흔히 큰 전투를 앞두었을 때 벌려놓는 위군놀음이다.

《저 문서장은 어떻게 여기까지 왔소?》

《그 담판인지 뭔지 하는것에 참가했던 리수복이라는 동무가 가져왔습니다.》

《아니 저것때문에 여기까지 불렀단 말이요?》

《황영학동무를 후송해 오는 차편에 그를 보내왔습니다.》

《영학이가 후송되였다는건 무슨 소리요?》 최현은 껑충 뛰듯 놀랐다.

군단참모장이 당황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이제 보고드리려던 참이였는데 그 동문 첫날전투때 다친 부상처가… 도진것 같습니다.》

전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중에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고 합니다.

사단군의소에서 하는 말로는 그 동안의 심한 출혈과 상처부위의 화농성감염때문이라고 합니다.》

《에익, 곰같은…》

최현은 저도 모르게 책상을 쳤다. 모임이 끝나기바쁘게 사단군의소로 가니 황영학은 방금 수술을 끝내고 죽은듯 잠들어있었다. 그가 자칫하면 패혈증까지 겹쳐 죽을수 있었다는것과 이제는 고름덩이들도 다 긁어내고 수술도 했으니 생명에는 위험이 없다는것을 알고 한숨 놓았다.

황영학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는 조금도 아픈 빛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리수복이네 중대원들앞에서 김진이며 최희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던중에 《음》소리를 내며 모제비로 쓰러졌다는것이다.

기가 막힌 일이였다.

그동안의 온갖 걱정과 시름이 그를 쓰러뜨린듯싶었다.

그 크고 많은 걱정과 생각속에 부디 리수복이네쪽으로 간것은 너럭바위굴과 같은 허점이 없게끔 하려는것이 주요한 동기였을것이라는데서 가슴이 더욱 저려들었다.

군단공병부장의 말로는 김일성동지께서 보내주신 갱도설계안과 황영학이 그려보낸 너럭바위굴완성안에는 공통점이 많았다고 했다.

(허허 참, 살이 썩는것도 모르고 이 지경이 되다니.)

황영학의 침상을 지켜선 리수복이와 만나 이말저말 묻느라니 한 시간은 훨씬 넘게 지체하였다.

자기가 그한테 준 신발이 그동안 누데기처럼 된것이 또하나의 짐으로 되였다.

(놈들이 정신을 차리고 주저앉았다면 좋은 일인데.)

돌아오는 길에서는 줄창 이 생각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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