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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빛나는 아침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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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10,335회 작성일 20-07-08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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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안동권의 강의가 계속되고있을 때 옆방에서는 좌현이와 괴이한 청년이 마주앉았다.

《당신은 누구요?》

좌현은 푸른빛을 내뿜고있는 눈으로 수상쩍게 청년을 쳐다보고있었다. 하지만 이쪽 기분에는 관계없이 청년은 손바닥으로 이마의 땀을 문대면서 후후 큰숨을 내쉬고있다. 그는 괴이한 사건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얼마간 후련한 기분에 잠겨있는것 같기도 하였다. 어깨를 들었다놓으며 다시한번 긴 한숨을 쉰 뒤에 그는 자세를 바로하면서 입을 열었다.

《저는 평양철도검차구에 있는 방문선입니다.》

《그래서 그게 사실이요?》

좌현은 상대자가 정신이 똑똑하다는것을 알게 되자 한층 더 긴장해졌다.

《사실입니다. 그 고뿌에는 독약이 들어있습니다. 비상을 탔습니다. 실험해보면 알수 있습니다.》

탁자에 놓인 물고뿌를 보면서 좌현은 다시한번 몸을 떨었다.

《계속하시오. 누가 그랬는가? 목적이 뭔가?》

방문선이 그것을 알게 된것은 지금부터 약 보름전 3. l려관 2층 민기환의 방에서였다. 함흥 흥남지방에 갔다온 민기환은 기분이 대단히 좋아서 이제 안동권이만 돌려세우면 《만사는 오케이》라고 하였다. 어제 경상골에 있는 백씨네 집에 갔다와서는 안동권을 없애치워야겠다고 하였다. 오늘아침 일찌기 오라고 해서 민기환의 방으로 찾아갔는데 어느 한 청년에게 요새 방문선이 좀 수상한데 뒤를 밟으라고 하면서 새로 세운 대학에 나가보라고 하는 말을 엿듣게 되였다. 민기환은 어떤 청년에게 유리고뿌에 약을 쳐서 교탁에 가져다놓으라고 하는것이였다.

《령감태기는 1시간수업에 두세번 목을 추기는 습관이 있어. 서울대학에 있을 때부터라는거다. 십중팔구는 성공한다. 그러면 공산당의 협박에 못이겨 교단에 서기는 했지만 절개를 지켜 자결했다고 소문을 퍼뜨리면 된다. 아니면 공산당작간이라고 해도 무방하구…》

방문선이 그길로 달려왔는데 그가 대학현관에 들어섰을 때는 안동권이 한창 강의를 하는 도중이였다. 그래 그는 엉겁결에 교실문을 열었던것이다.

《알만하오. 그런데…》

좌현은 방문선의 이야기를 다 듣고나서 한층 더 우울한 낯빛을 지었다.

《그게 다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방문선의 시선이 좌현의 가슴에서 의자로 그다음에는 옆에 앉아있는 김책의 발등으로 옮겨지는데 그의 손은 겨드랑밑으로 천천히 기여들어가고있었다. 방안의 시선이 일제히 그리로 쏠리는가운데 그는 번쩍 빛을 뿌리며 오싹한 기분을 자아내는 검은 물체를 하나 꺼내 탁자우에 덜컥 소리나게 내놓았다. 그것은 권총이였다. 총구는 엇비슷이 창문쪽을 향해졌다. 좌현이 와락 달려들려고 하는 순간 그는 마루바닥에 털썩 쓰러지였다.

《선생님!》 그의 음성은 처절하게 방안을 울리였다. 《못난놈을 이 총으로 쏴주십시오. 개잡듯 쏴서 죽여주십시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좌현은 팔을 비틀어잡고 밖으로 끌어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방문선은 마루바닥에 녹아붙은것처럼 엎드려 떨어지지 않았다.

《놔두시오. 무슨 사연이 있는것 같소.》

김책은 좌현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청년이 내놓은 권총을 집어들었다. 그는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것을 즉시에 알아차렸다.

《의자에 앉아서 차근차근 이야기하오. 울지만 말고.》

한참동안 울고나서 얼굴을 들고 방문선은 우선 자기 소개부터 하였다. 서울서 중학을 다니다가 중퇴하고 여기저기 뜨내기생활을 하던중 해방이 되였다고 하였다. 그가 듣기에는 남조선에는 아메리카식 정치제도가 서고 북조선에는 로씨야식 정치가 실시된다고 하였다. 최근에는 몰락하였지만 몇해전까지 한 열흘갈이땅을 소작준것이 있었던 그는 해방이 되자 인차 서울에 올라가 살아갈 길을 모색하였다. 그러다가 민기환의 줄에 걸려 평양역 검차구에 들어박히게 되였다.

어느정도 기분을 눅잦힌 방문선은 조리있게 사연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집게다리>는 말했습니다. 민기환의 지시다. 공산당을 녹이자면 철도를 녹여야 하고 철도를 옴짝 못하게 하자면 쌀공급이 안되도록해야 한다. 그러니 너는 해주에 가서 쌀이 못오도록 해야 한다. 그래 나는 <집게다리>를 따라나섰습니다. 신원역 급수장의 뽐프를 파괴하라고 해서 제가 기름을 치고 불을 달았습니다. 흑교를 지나서 기차굴을 빠지니 이미 약속한대로 우리 패거리들이 기차방통을 떼기 위해 달라붙었습니다. 박원식선생이 우리 아이들하구 결사적으로 싸우는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그 선생은 총을 가지고있었지만 쏘지 않았습니다. 말로만 자꾸 물러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정 위급하니까 공포를 놓으며 위협했습니다. 거기에서 실패한 우리는 중화에 와서 뒤를 따랐습니다. 과수원언덕에 올라섰을 때 <집게다리>란놈이 박원식선생을 먼저 쐈습니다. 박선생은 가슴을 움켜쥐고 도랑에 굴러떨어졌습니다. 이때 나는 머리속에서 번개가 번쩍하는것을 느꼈습니다. 나는 내들었던 이 총으로 <집게다리>의 골통에 대고 한방 쏘고 그다음에는 잔등에 대고 또 쐈습니다. 그리고 나는 추격해온다고 아부재기를 치면서 도망쳤습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방문선은 자기의 솔직한 자백이 상대편에 어떻게 리해되는가 알아보기 위해 두릿두릿 좌우를 살피고있다.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김책이 물었다.

《그러고보니 더 큰 의문이 생기는데 도대체 어떻게 되서 마음을 돌려먹게 되였는가?》

유심히 듣고있던 방문선이 고개를 주억거리고 대답하였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해주에 떠나기전에 박원식선생을 만난 일이 있습니다. 철도공장에 나오신 장군님 이야기가 나왔는데 내가 장군님은 참말 인자하고 너그러운분이라고 하였습니다. 박원식선생이 무엇을 보고 그렇게 말하는가 하길래 나는 다른것은 모르겠다, 팔이 하나 없는 아바이가 있지 않는가, 그 아바이를 보신 장군님께서는 친히 그가 앉은 자리까지 찾아가시여 팔이 없는 소매를 만져보시였다, 그 한가지 사실을 보고 나는 눈물이 날만치 인정이 있는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박원식선생은 당신 말이 옳다. 우리 장군님께서는 얼마전에 강선제강소에 나가셨는데 양춘만이라는 기사가 가족을 버리고 어데론가 도망가고 없었다. 그 집에는 3살난 아이가 앓고있었는데 칠골고개까지 왔다가 되돌아가 아이를 데려다가 치료해주시였다고 하였습니다.

박원식선생은 그 이야기를 하면서 길가에서 한 10분 가면 있는 고향집에는 들리지 않으시고 곧추 강선에 가셨다가 돌아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집을 떠난지 20년이나 되는 고향집이라고 했습니다. 박원식선생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기차방통에 앉아 나더러 배가 고프겠는데 밥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해주에서 가지고 떠난 줴기밥입니다. 박선생은 자기도 굶었는데 기어이 날 먹으라고 하더군요. 그런 사람이 죽어서는 안되지요. 나는 박선생이 총에 맞아 쓰러질 때 마음을 달리 먹었습니다. 김일성장군님의 뜻을 받들고 일하는 사람을 해쳐서는 안된다, 이렇게 마음먹었습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초들초들 마른 입술을 감빨고나서 방문선은 고개를 들어 방안을 둘러보더니 성급하게 말을 계속하였다.

《빨리 민기환을 체포하시오. 그놈이 흥남제련소 로도 폭파시켰습니다. 자기 부하 문가를 보내서 카봉에 물을 치게 했습니다.》

《제련소 로를 그놈이 폭파했단말이요?》

김책이 너무나 놀라와 큰소리로 웨치였다.

《그렇습니다. 지금 황금정에 있는 3. l려관에 있습니다.》

《좌현동무! 시보안서에 전화를 하시오.》


4

 

저녁노을이 서쪽유리창문을 붉게 물들이게 되였을 때 그닥 넓지 않은 방안에 식탁이 차려지고 한 50여명의 인원이 둘러앉았다. 모인 사람들가운데는 김용범이와 김책이 그리고 도당비서들,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지도간부들, 종합대학창립 준비위원회성원들, 교직원들이 참가하였다. 또한 중요공장기업소 책임일군들, 과학자, 기술자들, 모범로동자와 애국농민들, 상공인, 종교인들과 대학 학생대표들도 참가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 나오시자 참가자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고 만세를 불러 환영하였다. 그이께서 손을 들어 답례를 하신 다음 환호를 그만하라고 손을 흔드시자 이마에 내리드리운 몇오리 머리카락이 흔들리였다. 청춘의 기백이 온몸에서 풍기는데 그이의 얼굴에는 함뿍 웃음이 어려있었다. 자리에 앉으신 그이께서는 오른쪽에서부터 빙 둘러 하나하나 참가자들을 살펴보시였다. 옆에 앉은 교육국 책임일군이며 대학창립 준비위원회성원인 김시석이 그이께 몇마디 말씀을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제부터 김일성장군님께서 말씀하시겠다고 알리였다.

《동무들! 격식없이 모두 저녁식사를 같이 합시다. 우리 나라에 우리의 첫 대학이 나온것을 축하합시다. 개교식에서 다 말했기때문에 따로 더 언급할것이 없습니다. 다만 이자리에서 우리는 우리 민족사에 획기적인 의의를 가지는 인재양성의 큰걸음을 내떼였다는것을 기억해두면 되겠습니다. 지난 8월 29일 그러니까 한 보름전입니다. 우리는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을 합당하여 북조선로동당을 창립하였습니다.

우리는 로동당을 창립하면서 당기발과 당마크를 제정하였습니다. 로동자, 농민을 상징해서 마치와 낫을 엇가로 놓고 그 복판에 인테리를 상징하는 붓을 놓았습니다. 여기에 우리 당의 의지가 잘 나타나있습니다. 바로 이 3대구성성원의 하나인 인테리를 양성하는데 기여하게 되는 동무들을 축하해서 이 잔을 듭시다.》

그이께서는 식탁우에 간소하게 차린것을 둘러보시고나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여기에는 밥과 국이 있고 고사리와 도라지, 콩나물 한접시가 차려있을뿐입니다.

그러나 동무들! 그것만을 보지 말고 동무들이 각각 1개씩 들고 이자리에 찾아온 저 장안의 물건들을 보십시오.》 그이께서는 손을 들어 방 한쪽벽에 세워놓은 책장을 가리키시였다. 《저기에는 흥남제련소에서 뽑은 특수강1호가 있습니다. 이쪽에는 흥남비료공장에서 뽑은 류안비료가 있습니다. 또 이쪽에는 신창탄광 해방갱에서 캐낸 석탄이 있습니다. 강선제강소에서 만든 강철도 있습니다. 자,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삼천리>표 연필도 있습니다. 총 200종이 넘습니다. 저것이 그래 이 료리상만 못하단말입니까. 이것은 해방된 조선의 첫 년륜입니다. 해방이라는 첫 씨앗이 떨어져 이땅에서 싹을 틔우고 뿌리가 내리였습니다. 자, 동무들! 시선을 이쪽으로 돌리시오.》

그이께서는 오른손을 힘있게 높이 드시여 안경을 낀 강병철을 쳐다보시였다.

《식탁도 좋고 해방된 우리의 첫 제품도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 비교할수 없는 큰 위업을 시작하였고 마침내 첫 성공을 보았습니다. 얼마전까지 생판 모르던 사람들이 하나의 의지로 단합되여 여기에 모이였습니다. 특히 우리 나라 과학자, 기술자들이 10여명이나 여기에 참가했다는것과 목숨을 걸고 38°선을 넘어온 학자들이 수십명이나 있고 학생들도 있다는것을 동무들에게 알리는바입니다. 이것은 기쁜 일이고 잊을수 없는 인상을 남기는 하나의 사변인것입니다. 혁명가들이나 정치인들과는 달리 그들은 부유한 가정에서 나서자랐으며 높은 지식을 가지고있습니다. 그들이 우리한테 온것은 넉넉한 생활이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애국적인 감정과 량심의 지향에 의한것이였습니다. 그들은 우리한테 옴으로써 중산층이상의 생활을 버리고 한동안 허리띠를 졸라맬 각오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모든것 대신에 우리 인민과 우리 력사가 기억하게 된다는 긍지와 영예를 얻게 되였습니다. 과학자, 기술자, 교원, 의사, 작가, 예술인들인 동무들은 영원히 우리 당과 로동계급과 우리 인민의 보호와 사랑을 받을것입니다.

그런데 동무들!

우리는 어떻게 되여 인테리인 동무들과 결합되게 되였겠습니까! 우리들을 한덩어리로 이어붙인 그 접합점에는 선렬들의 피가 응결되여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동무들을 잊지 못하는것입니다.

동무들 하나하나는 또한 자기 생명을 내걸고 폭풍우와 싸워 인생의 대해를 건너 마침내 우리와 만난것입니다. 동무들가운데는 갈바를 모르고 헤매던 사람도 있었으며 조선사람으로 태여났고 더구나 기술과 지식을 가진것이 일종의 재난으로 되여 자기를 원망하며 생을 스스로 포기하려던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던 우리가 지금 어떻게 되였습니까. 이에 대해서 나는 구구히 설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이께서는 말씀을 잠간 중단하시였다. 활달하고 패기있는 몸동작도 그러하였지만 장내를 둘러보고계시는 그이의 시선은 흔히 볼수 없는 류다른것이였다. 불을 뿜는것 같은 강렬한 빛과 모든것을 압도해버릴수 있는 힘을 가지고있었다. 그것은 가장 높은 긍지와 쾌감이 온몸을 채우고 남아서 바깥으로 분출하는 때에 이루어지는것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이의 시선은 좌우에 둘러선 개개의 인물들과 또 방금전에 둘러보게 되였던 개개의 제품과 련결시키면서 그 하나하나에 깃든 깊고도 복잡한 사연들, 피어린 로정을 거쳐 이자리에 이르게 된 운명들을 모두 꿰뚫어보는것 같았다. 잠간 사이를 두었다가 그이께서는 다시 계속하시였다.

《그러나 반드시 한가지만은 말하여야 하겠습니다. 오늘 이자리에 없는 전우들에 대해서입니다. 그들은 바로 이 위업을 위해서 한몸을 바쳤습니다. 맨 첫번째로 표창과 축하를 받아야 할 그들은 지금 여기에 없습니다.》

그이의 목소리는 차츰 갈리더니 이 대목에 와서는 토막토막 끊기고말았다. 그이께서는 혁명이 주는 처절한 체험, 여직까지 가슴에 괴였던 그 모든것을 낱낱이 쏟고싶으시였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우정 평범한 표현을 쓰시여 감정을 누르시였다. 그 심정을 충분히 리해하고있는 장내 모든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숙인채 정숙을 지키고있었다. 뜨거운 그 무슨 덩어리가 올리솟는것을 애써 삼키시고 그이께서는 고개를 쳐드시였다.

《나는 지금 이자리에 박원식동무가 참가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하고 생각하고있습니다. 그는 나와 함께 10년이상이나 산길을 걸었고 총칼의 숲을 헤치면서 여기 평양에 왔었습니다. 그는 산에서 싸울 때도 그랬고 지난해 여름에도 나에게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해방이 되면 나는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싶습니다. 이것이 나의 소원입니다. 이것을 이룩하기 위해 나는 어떤 곤난도 이겨낼 각오가 되여있습니다.> 그러나 동무들, 박원식동무는 이자리에 없습니다. 북조선각지에서 남조선각지에서 수천명의 청년들이 공부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는데 그의 얼굴만은 볼수 없습니다.》

그이께서는 숨이 꺽 막혀 말씀을 더 이어대지 못하고 가슴을 움켜잡으시더니 약간 모로 서며 고개를 숙이시였다.

장내 여기저기서 흑흑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였다.

잠시후에 그이께서는 수건으로 눈굽을 찍어내고 거친 음성으로 말씀을 다시 계속하시였다.

《총포탄이 울부짖고 적아가 대치해서 공방을 겨룰 때 전우를 잃었다면 그것은 있을수 있는 일이고 각오한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공장을 돌리고 농사를 지으며 학교문을 열고 학생을 맞는 때입니다. 이런 때마저도 우리는 생명을 내걸고 적과 싸워야 합니다. 어제는 박원식이 갔지만 오늘은 공부하기 위해 길을 떠난 서울법정학교 학생들이 체포되였습니다. 38°선을 넘기 위해 선생들이 총탄을 피하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때문에 인재를 길러내는 이 사업이 하나의 전투라고 할수 있는것입니다. 이 전투에서 여기 모인 동무들이 꼭 승리하리라는것을 나는 믿습니다.》

한껏 흥분된 그이의 음성이 장내를 울리였다.

《자! 동무들, 선렬들의 명복도 빌고 우리모두의 성과를 위해서 이 잔을 듭시다. 우리는 동무들을 믿고 또 동무들은 우리를 믿고 모두 합심해서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에 매진합시다. 해방된 이 나라가 거목으로 자란것을 축원해서 자, 동무들!》

장내가 떠나갈듯이 박수와 환호성이 터졌다. 김용범이와 김책이 눈굽을 훔치였다. 이자리에 와서야 처음으로 서로 알게 된 강병철, 양춘만, 한명구들도 서로 마주보며 눈물이 글썽해서 잔을 들어올리였다. 잔을 비우고 다시 자리에 앉은 그들은 모두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 때 김일성동지께서는 잔을 들고 오른쪽 한끝에서부터 동지들을 하나하나 찾으시였다. 몇사람 건너 남조선에서 넘어온 학자들인 박문, 로창묵, 김원학 등과 마주서시였다.

《건강들은 어떻습니까?》

그이의 물음에 일제히 《건강합니다. 저희들은 아무런 애로도 없습니다.》하고 대답을 올리였다.

《그렇다면 마음이 놓입니다. 우리는 누가 무어라고 하든 선생들을 믿고 놓아주지 않겠습니다.》

《장군님!》 머리가 벌써 반백인 박문이 갈린 소리를 내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리였다.

그것을 보신 그이께서는 시선을 다음사람에게로 돌리시였는데 거기에는 서울법정학교에서 온 학생이 서있었다.

《공부를 잘하라구. 그래서 조국통일위업에 이바지해야지.》

《알았습니다. 장군님! 믿음에 보답하겠습니다.》

학생은 쓰러지듯이 장군님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끅끅 울음을 삼키였다.

잔에서 술이 넘쳐날만치 고개를 끄덕이시는 그이의 눈굽에서 이슬이 번쩍 빛을 뿌리였다.

그이께서 한명구앞으로 오시였다.

《한명구동무! 요새 어떻습니까?》

장군님께서 문안을 하셨을 때 그는 고개를 떨구고 다시 들지 못하였다.

《자! 잔을 듭시다.》

한명구는 고개를 들고 잔을 마주 찧고 말씀을 올리였다.

《장군님! 이 한몸을 바쳐 선렬들의 뒤를 따라 드팀없이 걸어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야 합니다.》

잔을 비우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리자 그이께서는 미소를 띠시며 다음자리로 옮겨가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강병철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술잔을 내드시였다. 그러자 강병철은 자기 잔을 들어 앞으로 내대며 약간 허리를 굽히는데 그이께서 소리가 나게 잔을 찧으시였다. 그러시고는 방안이 울리게 말씀하시였다.

《강동무, 수고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더 많은 수고를 해야 하겠습니다. 전기가 흘러서 인명에 피해를 주던 로를 없애버렸다니 참 잘했습니다.》

그때 강병철은 《장군님!》하고 친근하게 부른 다음 정중히 말씀을 올리였다. 《경제에 대해서 이제는 그렇게 마음을 쓰시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한나라와 한민족의 불행은 먹고 입는것이 얼마나 풍족한가 하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어데로 가야 할지 갈바를 모르고 헤매는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셔서 이제는 우리가 갈길을 명확히 찾았습니다. 저도 이제는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신적지탱점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그렇소. 대단히 감사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한걸음 옮기시여 옆에 서있던 박창술에게 잔을 내미시였다.

《공부를 해야 합니다. 동무들은 이제 과학과 기술을 점령해야 합니다. 꼭 그 요새를 돌파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장군님 뜻대로 꼭 뚫고들어가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때 오른쪽옆에 서있는 안동권을 띠여보시였다.

《안선생, 요새 건강은 어떻습니까?》하고 그이께서는 한걸음 나서시여 안동권이쪽으로 다가가시였다. 《안선생, 말씀하시오. 우리 로동계급이 공부를 해야겠습니까 안해도 되겠습니까?》

《장군님! 우선 먼저 우리 겨레를 배움의 길로 인도하시는 장군님께 감사와 축하를 드립니다.》하고 안동권은 이미부터 흥분되였던 감정을 즉석에서 쏟는것이였다. 《우리 로동계급은 어떤 일이 있어도 과학과 기술을 제손에 틀어쥐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또 망할수 있습니다.》

《자! 보시오, 박창술동무.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환갑을 넘긴 안동권선생이 일생을 바쳐 체험한 교훈입니다.》하고 그이께서는 안동권이앞으로 잔을 내대시며 말씀하시였다. 《안동권선생! 축하합니다. 우리는 배움의 첫 걸음을 잘 떼였습니다. 앞으로 대학을 많이 내옵시다. 그래서 무지와 몽매를 이 땅에서 깡그리 소탕해버립시다. 종합대학을 내오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금 군중들속에서 반영이 큽니다. 공장과 기업소들에서는 애국로동을 하겠다고 궐기하고있습니다. 애국미를 바치는 농민들이 있는가 하면 돈을 내는 상공인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인민들을 위해서 일을 하면 인민들은 꼭 그에 보답하게 됩니다. 이만하면 신심을 가질만하지 않습니까. 자! 그럼 배움의 나라 건설을 축하해서…》

《장군님!》 안동권은 다시금 머리를 숙여 인사를 올리고나서 부르짖었다. 《우리는 벌써 승리하였습니다. 우리의 지성에는 날개가 달리였습니다. 하늘높이 날을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장군님!》

《그런데 듣자니까 첫 강의를 하다가 큰일날번했다면서요?》

《위태위태한 사건이 하나 있기는 했습니다만 별일없습니다. 장군님!》

《무사했다니 다행입니다. 그러나 융단을 펴놓고 꽃보라를 뿌려주는 길은 지금 우리가 갈 길이 아니지요.》

《내 한생의 경험은 무슨 일에서나 생명을 내걸고 하는 때에만 성공할수 있다는것이였습니다.》

《그건 진리입니다. 우리도 그것을 체험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최준걸동무를 10년만에 만났다면서요?》

《그렇습니다. 뜻이 같으니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때 옆에 지켜섰던 박창술이 장군님앞으로 썩 나서며 말씀올리였다.

《장군님! 한가지 요청이 있습니다.》

《뭡니까? 박창술동무의 요청이면 들어줘야지.》

박창술은 상우에 놓인 병을 기울여 큰 고뿌에 술을 하나가득 채워들고 앞으로 다가섰다.

《우리 로동계급과 김일성종합대학 전체 학생들의 요청입니다. 장군님의 만수무강을 축원해서 들어주십시오.》

《하하하.》

그이께서 고개를 젖히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이 동무는 참말 걸작이거든. 누구든 자기 목적에 휘여들게 하니까.》하며 좌우를 둘러보시고 나서 《동무도 같이해야지.》하고 그이께서 술병을 집어드시였다.

이때 문득 그이의 뇌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박원식이 서울에 갔다온 보고를 다 하고나서 마지막에 덧붙인 문제였다. 서울역에 김일성장군환영준비위원회의 광고가 나붙었는데 그 위원장 홍명희를 찾아가 만났더니 남조선인민들은 김일성장군님께서 서울에 개선하시기를 기다린다는것이다. 2달도 좋고 3달도 좋다고 하였다. 지어 몇해가 가도 좋으니 기다린다는 말을 꼭 장군님께 전하라고 했다는것이다.

《동무들!》하고 김일성동지께서 잔을 높이 드시면서 갈린 목소리를 내시였다. 《우리 조국이 통일되는 날을 위해서 남조선 전체 인민의 건강을 위해서 이 잔을 다같이 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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