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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빛나는 아침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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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2,110회 작성일 20-06-19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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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동지께서는 다락이 있는 고향집으로 가시다가 문득 걸음을 돌리시여 오른쪽 수수밭으로 들어가시였다. 수수밭에서는 할아버님과 형록삼촌께서 수수그루를 뽑고계시였다. 형록삼촌께서 허리를 굽히고 나가시면서 쭉쭉 뽑아 흙을 털어서는 한군데 무져놓으시였다. 할아버님께서는 기력에 맞게 쇠스랑으로 찍어당기시였다.

《그새 안녕들 하셨습니까?》

중절모를 벗으며 인사를 하시는데 삼촌께서는 저만치에 계시는 할아버님이 들으시도록 《장군이 왔수다!》하고 고함을 치시였다. 그제서야 할아버님께서는 쇠스랑을 땅에 박은채 《어찌된 일인가.》하고 반기시였다.

《할아버님! 감기로 누워계신다는 말을 들었는데 일없겠습니까. 몸조리를 하셔야지.》

《농민한테야 별기 있나. 땅냄새를 맡는것이 몸조리구 천하명약이지.》

할아버님께서는 손에 묻었던 흙을 털면서 밭뚝으로 나오시였다. 인사가 끝난후 세분은 아직 잎이 푸르싱싱한 배추밭머리에 앉으시였다. 삼촌께서는 냄새가 향기로운 잎담배를 종이에 말아피우시면서 요새 성안형편이 어떤가고 물으시였다. 삼촌께서 념두에 두신 성안형편이라는것은 혁명사업에 대한 여부라기보다 장군님의 기거하실데라든가 침식의 마련이 어떤가하는것을 아시자는것이였다. 공설운동장에서 연설이 있던 날에 가보시였던 숙소라는데는 유격대원들이 모두 한곳에서 먹고 자는 합숙이였던것이다.

《별일없이 지내고있습니다.》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삼촌의 의도에 맞게 대답을 하시고 탐스럽게 자란 배추잎을 만지면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배추가 참 잘됐습니다. 통이 잘 져서 살이 만문할것 같습니다.》

《그러기말이네.》하고 이번에는 할아버님께서 말씀하시였다. 《사람들이 그러는데 배추도 해방을 만나 기껏 자란거라고 하더군. 그래 내가 말인즉은 듣기 좋은데 올해에 조이흉년벌충을 하느라고 내 거름을 곱절이나 더 냈다고 말해줬네. 그건 그렇고 내 듣는말이 장군은 공산당이기때문에 로동자를 위한 정치를 하지 농민을 위한 정치는 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다고 하더란말일세. 그래 내가 여보, 우리 장군은 천하지대본인 농사집 자손이요, 근본을 잊을리가 없은즉 그런 말 말고 안심하오, 하니 그러면 그렇겠지 하고 무릎을 치더란말이다.》

그이께서는 참 정통을 찍어 명철한 대답을 주셨다고 하면서 껄껄 웃으시였다. 이렇게 대화가 오고가는 사이에 오늘 있은 《기쁜 일》에 대해서도 말씀하시였다. 우리 나라 과학자, 기술자를 양성하는 첫 학교가 개교되였다고 하시였다.

《허허, 그거 참 경사가 틀림없다. 농사라는건 호미를 쥔 농군만 짓는것이 아니라 비료를 만들고 보습도 만들고 지어는 낫가락까지 만들어야 한즉 그 로동자나 기술자들도 결국 농사를 짓는거나 같은거 아닌가.》

김일성동지께서는 놀라운 기색을 보이며 웃으시였다.

《할아버님은 훌륭한 경제학자이십니다.》

《학자? 다른건 몰라도 농사물계에서야 내가 박사지, 흐흐흐.》

두석대 자리가 빈 이틀을 보이면서 할아버님께서 웃으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방안에 들어앉아 옹색하게 이야기하는것보다 이런 분위기에서 그냥 식량문제에 대해서 의논하는것이 좋겠다고 보시였다. 처음 여기 남리에서는 성출미운동이 어떻게 되고있는가 물으시였다. 삼촌께서는 마을에서 보고 들은것을 솔직하게 그대로 말씀하시였다. 왜놈들이 전쟁을 하면서부터 어느해나 농사가 제대로 돼본적이 없었다. 비료도 농약도 살수가 없었고 농번기에도 제꺽하면 부역에 내몰리였다. 가을이 오면 곡식은 물론이고 곡초와 터밭수확물까지 모두 공출로 빼앗겼다. 특히 이번 여름에는 비가 많이 와 농사가 어느해보다도 안되였다. 그래도 농민들은 나라를 세우는 일에 곡식이 필요하다니 너도나도 성출미운동에 참가한다고 하시였다. 그것이 한두집으로 볼 때는 큰것이 아니더니 마을이 떨쳐 일어서니 남리에서만도 10달구지를 실어냈다고 하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대단히 만족해지시였다. 역시 곤난이 있을 때에는 군중에게 의거하는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것을 다시 느끼게 되시였다.

《리치라는거야 뻔한것이 아닌가.》하고 할아버님께서는 매끼가 풀어진 배추통을 다시 손질하시면서 말씀하시였다.

《나라를 세우자면 로동자와 농민이 힘을 합쳐야 하는데 로동자들이 굶게 되였다는데 우리 농민이 가만있겠나. 어쨌거나 쌀이야 우리 농민이 가지고있는거니까 십시일반을 해서라도 이 고개를 넘겨야지.》

《말씀이 옳습니다. 그래 지금 로동자들은 공장과 철도를 복구하는데 달라붙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상의를 벗으시여 수수동가리에 얹으시고 밭에 들어서시였다.

《삼촌, 이 밭이 그때 열무를 팔아서 서울로 면회가는데 로비를 보탰다는 밭이 아닙니까?》

수수그루를 붙잡은채 삼촌께서는 침울한 음조로 《옳네. 한데 그건 왜 묻나?》하고 나서 대답을 기다리시지도 않고 성큼성큼 이랑을 타고나가시였다. 이 밭에 심었던 열무이야기가 하도 가슴에 사무쳐서 물으신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더이상 말씀을 안하시고 수수그루를 뽑으며 뒤따라나가시였다. 공설운동장에서 개선연설이 있은후 처음으로 집에 들리신 그이께서는 그날밤 눅눅한 방에 지적을 깔고 누우셔서 할머님과 함께 날이 밝을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시던 생각이 떠오르시였다. 스무해동안 쌓이고쌓인 이야기는 순서없이 이리저리 뻗었지만 그것은 어차피 하나하나 식솔들의 운명을 짚어나가는것으로밖에 달리 될수 없었다. 낯설은 이국땅에 묻히신 아버님과 어머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어데서 어떻게 되였는지 알길 없는 동생들 이야기, 그다음에는 만경대의 삼촌네들, 칠골외가집 그렇게 더듬어나가시였다. 그러다가 할머님께서는 둘째삼촌이 막냉이삼촌(김형권)을 마지막으로 만나시던 때 이야기를 하시였다. 열무가 한창 자랐을 때니까 그해 여름이였다. 서울에서 전보 1장이 날아왔다. 발신인을 밝히지 않은 그 전보에는 서대문형무소에 있는 삼촌의 생명이 위급하니 빨리 와서 만나라는것이다. 해마다 재난이 덮씌우는 이 초가집에 또 하나의 슬픈 소식이 사립문을 세차게 두드린것이다.

할아버님께서는 너무 기가 막혀 《그건 가봐 뭘해, 차라리 안보는게 낫지.》하시였지만 할머님께서는 부득부득 길차비를 하시였다. 려비를 구할데가 없어 여기저기 친척을 찾아가는 한편 할머님께서는 지금 이 배추밭에 심은 열무를 뽑기 시작하시였다. 두광주리를 겹쳐이워 삼촌어머니를 성안장에 보내 얼마간의 돈을 사들고 돌아오시자 삼촌께서는 곧 서울로 떠나가게 되시였다. 아닌게아니라 막내삼촌은 감방에 누워있지도 못하시였다. 누군지 알아볼수도 없이 뼈만 남았다. 모다구판에 굴리워 온몸에서는 진물이 흐르고 살썩는 내가 났다.

《네가 형권이 옳으냐?》

하고 팔을 붙잡고 우는데 막내삼촌은 온 얼굴이 이그러진채 울지도 못하더라는것이다. 우실 기운도 없고 눈물이 날만치 몸에 물기도 없었다. 사람이 설음과 슬픔을 보이자고 해도 기력이 있어야 하는줄 그때야 알았다고 하시였다.

《여보, 간수! 동생 대신 형이 징역사는 법은 없소?》

서울 갔다오신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면서 할아버님, 할머님과 이 집 식구 모두가 울지 못하시였다. 울음으로 나타내기에는 너무나 큰 고통이였던것이다.

그후 얼마 안있어 또 전보가 왔다.…

《할머니, 이제는 주무십시다.》

그이께서는 세파에 부대끼우고 빈궁과 고통에 지지눌리워 작아진 할머님을 가슴에 꽉 다그어안으시였다. 더 이야기를 못하게 하시려는것이다.

할머님께서는 소리없이 울고계시였다. 열손가락 어느 마디를 깨물어보아도 아니 아픈것이 없다는 인생철리를 벌써부터 깨닫고계시는 녀인이시였다. 그토록 인간애와 모성애에 차넘친 십여명 대가정의 할머님께서는 어느새 빈 구멍이 없이 아드님과 며느님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내시고 손자들까지 잃어 이제는 몇명 남지 않은 단출한 식솔을 끼고계시였다. 한데 문득 20년만에 이제는 까마득히 얼굴모습도 떠오르지 않게 되시였을무렵에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것처럼 손자가 나타나 지금 그이와 함께 누워계시는것이다. 나서 이날까지 너무 많이 우시여 눈물마저 진해버린 그 눈, 한생 슬프고 억울해서 울었던 그 눈에서 지금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고계시는것이다. 할머님께서는 손자의 팔목을 적시시였고 또 그이께서는 할머님의 볼을 적시고계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가슴이 찌르르 울리는것을 참으시며 수수그루를 세괃게 뽑아나가시였다.

해가 질녘에 그이께서는 할머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집에 들리시였다. 마당에서 김장고추를 고르시다가 《이게 어찌된 일이냐.》하며 손을 붙잡으시였다.

《할머님께서 무고하신가 해서 들렸습니다.》

《음 그래. 난 이렇게 잘 있다. 너를 보게 되니 30년은 젊어졌나보다. 네 어머니는 집걱정을 하면 큰일을 못한다하고 돌려세웠다지만 난 그렇게 하진 않겠다. 그래두 네가 와야 보지 난 가기 힘들어.》

잡은 손을 놓지 않으시며 기뻐서 어쩔바를 모르신다.

《증손이 소식이랑 아느냐?》

《지금 청진에 가있습니다.》

《무슨 집안이 이 꼴인지. 이젠 그만하면 한데 모여도 누가 탓하지 않으련만…》

그이께서는 더 대답할 말이 없어 고추가 잘 익었다고 하면서 할머님과 마주앉으시였다. 불이 달린 숯덩이처럼 고추가 빨갛게 익었다. 어떤것은 끼뼘 한기장이나 되는것도 있었다. 아직 채 마르지 않아 눅진눅진한것도 있는데 손에 잡힐 때마다 말큰한 감촉이 오면서 맵싸한 향기가 풍기였다.

그이께서는 고추를 가리시면서 할머님의 얼굴을 쳐다보시였다. 얼굴모습은 스무해전 그대로인데 볼이며 인중이며 미간에는 깊은 이랑이 생기였다. 그렇지만 붉은 고추빛이 반사되여서인지 기쁨이 담긴 눈자위에는 혈기가 한벌 번져있었다. 친척네들이 그새 어떻게 지내고있는가하는 이야기가 시작되였다. 남리, 칠골, 두루섬에 있는 친척집소식이 하나하나 소개되였다.

그러다가 문득 할머님께서 《내 이제 비지를 해주지. 콩이 잘 여물어 기름지다.》하며 일어서시였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급히 가야 할 일이 있는데 후날 다시 와 먹겠다고 하시며 할머님을 마루에 앉게 하시였다. 이때 그이께서는 박원식의 결혼식이 있다던 저녁시간 생각이 떠오르신것이다.

《할머니, 한가지 의논할 일이 있습니다.》

《뭔데, 나같은것한테 의논할게 있겠니.》

《다른게 아니구 산에서 같이 싸우던 유격대원총각이 장가를 갑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기쁘게 해줄수 있겠는지 몰라서 그럽니다.》

《에구나, 이런 기쁜 일이 어데 있니. 그런 일엔 부모들이 제일 기쁜건데…》

《부모들은 왜놈들한테 다 희생됐습니다.》

《쯧쯧, 간데마다 왜놈들때문에…》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던 할머님의 얼굴이 금시 흐려지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공연한 말을 꺼내 할머님을 괴롭힌다고 후회하고 계시는데 《이렇게 하면 어떻니.》 하고 팔을 잡아흔드시였다. 《무슨 옷감이라도 하나 보내줄가?》

《할머니, 그것이 좋기는 하겠는데 어디 마련이 있겠습니까.》

《어디 좀 보자.》

《밥그릇같은것을 사주면 어떻겠습니까.》

《글쎄 그것도 좋겠지만 사주는것보다야 아무거나 집에것이 더 낫지.》

할머님께서는 방안에 들어가더니 농짝문을 열어제끼시였다. 정작 손을 대시기는 했지만 농안에는 어느것 하나 눈에 차는것이 없었다. 몇해를 두고 기워붙이고 빨고 하시여 물이 다 날은 옷가지들이였다. 무명잠뱅이가 있는가 하면 꽛꽛한 베치마도 있다. 벌써 겨울차비로 볼을 대서 기우신 버선들, 형체가 무엇인지 가리기 힘든 천쪼각들, 넝마들이 나왔다. 또 다른 농짝을 열어보시였지만 거기에도 신통한것이 보이지 않았다. 할머님께서는 어느곳에 무엇이 있다는것을 모르시지 않았다. 너무나 잘 알고계시는 가난이 스민 이 집 총재산의 주인이신것이다. 하지만 지금 경황없이 뒤지고계시는 그 마음의 갈피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하나의 애릿한 감정이 감돌고있었다. 한동안 내놓기도 하고 또 들여놓기도 하면서 망설이던 할머님께서는 끝내 떨리는 입술새로 이런 말씀을 내놓으시였다.

《이걸 보고 네 마음대로 해라.》

털썩 소리가 나게 내놓으시는것은 헌 뜯게를 무어서 만든 보자기에 정성들여 싼것이였다.

《이게 뭡니까, 할머니.》

《무명 한끝이다.》

《무명이요?》

감히 손댈념을 못하고계시는것을 보시자 할머님께서는 보자기를 펼치시였는데 아닌게아니라 그안에는 하얗게 볕에 바랜 무명이 포개져있었다. 별로 신기한것도 아니였다. 하지만 할머님께서는 그것을 펴놓고 구리가락지가 헐럭헐럭한 손으로 쓸어만지며 말씀하시였다.

《이걸 내가 몇해동안 간수해뒀구나. 행여나해서말이다. 이제 증손이 에미가 오면 내가 뭘로 체면을 차리겠니. 이거래두 그저 비단옷 못지 않게 입어달라고 사정을 하려고 했던거란다. 많지두 못해 치마저고리 1벌이 빳빳할것 같다.》

시선을 떼지 못하시는 그 초점끝에서 마디가 굵은 손이 그칠새없이 떨고있다. 마치 가난하다는것이 그 무슨 큰 죄로 되기나 하는것처럼 의리와 세속앞에서 용서를 빌고계시는것이다. 조상에게서 물려받으신 손재주에 의해서 몸을 가리우기 위해 만들어진 무명 한필이다. 그것이 지금 할머님의 고된 로동과 이 집식구로 찾아드는 사람을 극진히 사랑하시려는 갸륵한 가풍을 안고 방바닥에 누워있는것이다.

《할머니! 이것을 우리 혁명군총각한테 주면 정말 기뻐할것 같습니다.》

《그래?》

서글퍼보이던 할머님의 시선이 번쩍 빛을 뿌리였다.

《네가 좋다면 가져다주어라. 후에 일은 또 그때 가볼셈치자.》

이렇게 되여 김일성동지께서는 보자기에 싼것을 차에 얹어놓고 할머님과 헤여지시였다.

어느새 룡악산마루에 해가 걸리게 되여 유자빛 노을이 칠골우에 현란하게 드리워있었다.


7

 

김일성동지께서 집무실에 올라가신후 좌현이는 급히 합숙으로 달려왔다. 결혼식장으로 짐작했던 넓다란 식당칸에는 누구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부엌에 있는 안동무에게 물었더니 그런 말이 아침에 있긴 있었는데 딱히 어떻다는 말을 누구도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무슨 곡절이 있을것이였다. 날자를 물렸던가 아니면 어느 식당이나 료리집에 차리게 할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이것도저것도 좌현이로서는 수긍이 가지 않았다. 날자로 말하면 사령관동지께 보고까지 된것이고 또 장소를 고려한다해도 그것은 전혀 실정과 어울리지 않는다. 합숙 찬거리도 그날그날 대는 형편인데 료리집을 차지할수는 없는것이다. 약간 기미가 이상한것은 안동무와 필남이가 국수를 누르는것인데 그것도 무슨 근거로 될수는 없고 태반이 모두 국수를 좋아하기때문이라고 하면 그만인것이다. 좌현이는 만경대에서 가져온 보자기를 자기방에 가져다놓고 리발을 하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그럭저럭하다가 저녁때가 되여 합숙으로 돌아오니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아래웃방에 지휘성원들과 경위대원들이 하나 가득 모이였다.

한쪽구석에서 자리를 찾는데 거기에 앉았던 김책이 《좌현동무, 빨리 가서 사령관동지를 모셔오우.》하고 지시하였다.

아무 생각도 할새 없었던 좌현이는 장군님 집무실로 달려갔다. 일본에서 학도병으로 끌려나갔다가 탈주해서 최근에야 돌아왔다는 어느 한 젊은 작가와 만나고계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래일 다시 만나기로 하고 자리를 뜨시였다.

《동무들이 다 모였소?》

《예! 저녁은 국수를 눌렀습니다.》

《박원식이 결혼식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오?》

《전혀 그런 기미는 없고 모두 식사를 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김책동무가 있소?》

《예, 있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 방안에 들어서시자 김책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이께 자리를 권하더니 선자리에서 《박원식동무 어데 갔나?》하고 찾았다. 박원식은 대답이 없는데 옆의 동무들이 여기 와있다고 팔을 당겨 아래방으로 내리끌었다. 《이쪽으로 들어서라.》하고 김책은 박원식을 자기옆에 세우더니 《안동무!》하고 부엌에 대고 소리쳤다. 《거 처녀를 올려보내오. 아니, 데리고 같이 올라오오.》

어떻게 된 일인지 방안에는 엄숙한 분위기가 쭉 흘렀고 김책이 지시하는대로 사람들이 움직이였다. 박원식이와 필남이를 나란히 세우더니 김책은 가뜩이나 긴 목을 좀더 뽑아올리고 말을 떼는것이였다.

《별것이 없습니다. 나는 오늘 우리 전우인 박원식동무와 한필남동무가 결혼을 한다는것을 동무들앞에 선포합니다. 때가 때니만치 아무것도 차린것이 없습니다. 해방이 됐지만 먹을것, 입을것이 넉넉지 못해서 이제부터 유격대풍습대로 국수를 한그릇씩 같이 나누자고 합니다. 이상입니다.》

이렇게 한 김책은 약간 어색해져서인지 방안을 둘러보고 량옆을 살피였다. 너무나 단순하고 너무나 무감정한데 모두 질린듯 하였다. 그러나 김책의 가슴속에서는 용암같은것이 소용돌고있었다.

《그러나! 신랑신부는 정말 행복하오!》

갑자기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숨이 꺽 막히였다.

《여기에는 상다리가 휘도록 차린 음식도 없고 청실홍실 드리운 비단옷도 없고 술도 없소. 아무것도 없소. 그러나 박원식동무, 고개를 들고 이 방안에 누구들이 와있는가 둘러보오. 백두산에서 사선을 같이 넘던 전우들이 가득 와있소. 그리고 사령관동지를 이 자리에 모시였소. 조선인민혁명군에게 이것이면 됐지 무엇이 더 요구되겠는가. 동무들! 이 자리에는 우리만 왔다고 볼수 없소. 해방된 조국을 못보고 먼저간 전우들도 와있소. 그 가운데는 장가도 못가고 처자가 무엇인지 모르는 청년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종시 그는 끝을 맺지 못한채 목이 메여 끅끅하더니 마침내 컬럭컬럭 기침을 터뜨리였다. 천식기가 있어서 숨을 제대로 톺지 못해 한동안 몸을 비틀다가 겨우 허리를 폈다. 그는 다시 정색해져서 방안을 둘러보는데 눈물속에 잠긴 그 시선은 번개불처럼 섬광을 내쏘았다.

《동무들!》하고 그는 한호흡 사이를 두었다가 말을 계속하였다. 《지금까지 우리는 김일성동지를 따라 천만리를 걸어 오늘 여기에 와닿았소. 그러나 우리는 김일성동지를 따라 또 그만한 길을 가야 하오. 박원식동무, 알겠지. 그것을 알았다면 둘이 손을 잡으라. 백년가약하는 날 혁명의 지조 변함이 없다는 표시다.》

처녀 총각이 금시 신랑 신부로 되는 뜻있는 례식은 이것이 전부였다. 김책은 바지주머니에서 술병을 꺼내더니 한잔의 술을 가득 부어 둘이 마시게 한후 다 앉아 국수를 먹자고 하였다. 이런 때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것을 방안사람들은 잘 알고있었다. 박수가 터지고 노래가 시작되였다.

 

왔고나 왔고나 혁명이 왔고나

혁명의 기세는 전세계를 덮었다

 

노래는 그칠새가 없었다. 그들은 평양 한복판, 그것도 크지 않은 방안에 앉아있으면서도 여기를 그대로 이깔나무 우거진 숲속 밀영지로 알고있는듯 하였다. 끝없이 펼쳐진 밀림 어느때나 그칠줄 모르는 바람소리, 가도가도 끝없이 뻗은 길 아닌 길, 거기에서 담을 키웠고 거기에서 투지를 닦고 생활의 의의를 체득한 그들은 전우에게 차례진 이 기쁨이 얼마나 큰 값을 가지고있는가를 누구나 잘 알고있었다. 하기에 그들은 박수를 쳐도 노래를 불러도 춤을 추어도 모두다 진심이였으며 참된 감정의 정수로 만들어내는것들이였다.

한창 흥이 났을 때 누군가가 《사령관동지 독창을 들읍시다.》하였다.

《옳소!》 환성이 터져올랐다.

김일성동지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시여 신랑신부가 있는쪽으로 자리를 옮기시였다. 신랑신부가 일어나 그이께서 부어주시는 잔을 받았다. 몸이 좋고 얼굴이 검실검실한 억센 사나이와 왼가리마를 따서 곱게 빗어넘긴 머리에 항상 새별처럼 빛나고있는 눈을 가진 처녀, 이들을 잠시 보고계시는 사이에 그이께서는 많은것을 생각하게 되시였다. 김책이 목이 메여 말한것처럼 해방된 이날을 보지 못하고 또 아릿다운 처녀를 안해로 맞는 오늘과 같은 기쁨을 보지 못한 전우들이 얼마나 많은가. 바로 그들의 기쁨도 한데 담아안고 지금 박원식이 서있는것이다.

《행복하라구 박원식이!》

사령관동지의 다정한 시선이 온몸에 미쳐지고있다고 느낀 순간 박원식은 술을 단숨에 쭉 마시였다.

그때 좌현이가 만경대에서 가져온 보꾸레미를 들고 옆에 다가왔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거기에까지 관심이 미치지 못하신듯 자못 흡족한 얼굴로 방안을 쭉 둘러보더니 노래를 시작하시였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그것은 너무나 뜻밖이였다. 방안 사람전부가 그이께서 좋아하시는 《내 고향을 떠나올 때 나의 어머니》가 아니면 《광막한 백두밀림의 밤에》가 나올줄 알았던것이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그닥 높지 않으면서도 정서가 함뿍 어린 선률이 물뿌린듯 고요해진 방안에 천천히 흘렀다. 잔잔한 노래소리는 억세고 거칠게만 보이던 사나이들의 가슴속을 헤치고 각기 제나름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고향! 고향!》

하고 모두 한마디씩 외워보는것이였다. 그렇게 불러만 보아도 정답고 기쁨이 솟아오르는것이 내 나라, 내 고향이건만 그들의 태반은 아직 그 고향에 가보지 못하고있는것이다.

노래가 끝난후에도 잠시 침묵했던 사람들이 일제히 손벽을 치며 재청을 요구하였다. 그렇게 되자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책동무가 도와주겠다고 하기에 그렇게 하기로 양보한다고 하고는 자리에 앉으시였다. 여적 한번도 노래를 불러본적이 없다는 김책이였는데 성큼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대바람 첫마디를 떼였다.

《우리는 누리에 붙는 불이요》

이것은 노래라기보다 통채로 가사를 줄줄 내리읽는것이다. 고개는 열어제낀 창밖을 내다보고있었으며 두손은 건사할데가 없어서 앞으로 돌려잡기도 하고 뒤로 가져가기도 하였는데 그 동작이 매우 우습강스러웠다. 그러나 너무 진지하고 심각해서 누구도 웃지를 못했다. 듣는 사람이야 어쨌든 관계치 않고 2절이 나오고 또 3절이 나왔다. 자칭 음치라고 흉보던 사람에게서 어떻게 토하나 틀리지 않는 가사가 술술 나오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끝내 젊은축에서 킥킥 웃는 소리가 났다. 그러거나말거나 그는 장대같은 기세로 마지막 종결토까지 정확히 번지더니 제편에서 먼저 박수를 치는것이였다. 그때에야 숨막히게 참았던 웃음보가 폭발하였다. 천정이 들썩할만치 웃어제끼는데 김책은 마치 딴 사람이 웃긴것을 구경하는것처럼 같이 웃었다. 그것이 또 우스워 와하 웃어대였다. 그러다가 문득 김책이 《어? 어!》하고 반벙어리같은 소리를 지르면서 사람들틈을 헤집고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이건 또 무슨 희극인가 해서 모두 그뒤를 쳐다보는데 안마당으로 만경대할머님이 들어오시는것이였다. 이것은 참말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아래우 흰옷을 입고 귀잡이를 해서 흰 머리수건을 쓰신 할머님께서 김책의 부축을 받아 현관쪽으로 들어서시였다.

《만경대할머님이 오셨다!》

온 방안이 왁작 끓어번지며 밖으로 달려나가기도 하고 창문으로 내다보기도 하였다. 김책은 방안에 들어와 신랑신부가 앉은 바로 옆에 할머님을 모신 다음 좌중에 대고 크게 알리였다.

《동무들, 내 말을 들으시오.》 김책은 방안을 둘러보며 계속하였다. 《만경대할머님께서 결혼식을 축하하려고 오셨습니다. 오늘 저녁켠에 장군님을 통해서 알게 되셨답니다. 장군님을 떠나보내신 후에도 마음이 걸려 속을 태우시다가 마침 여기 오는 차가 있어 앉아오셨습니다. 다른 사람같으면 그렇지 않겠는데 에미애비 다 없는것이 잔치를 한다는데 얼마나 섭섭해하겠는가, 친한 동무들이야 많겠지만 에미나 할미야 누가 대신할수 있겠나 해서 찾아오셨답니다.》

김책이 무엇이라고 하든 관계없이 할머님께서는 박원식의 얼굴을 두손으로 쓸어만지기 시작하시였다. 마디가 굵은 손가락이 진한 눈섭과 관자노리를 더듬더니 그다음에는 볼과 턱을 싸쥐였다. 할머님께서는 다시 민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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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할머님께서는 다시 민틋한 목줄기와 어깨를 붙잡더니 차츰 아래로 내려와 팔을 당겨 자신의 가슴에 안으시였다.

《섭섭해 말아라. 나를 고향의 어머니나 할머닌셈 쳐라 응!》

다음에는 신부의 얼굴을 또 그런 식으로 어루만져주신다. 이렇게 되자 박원식은 처음부터 혀를 깨물며 참아왔던 감격을 끝내 터치고야말았다.

《할머니!》

목메인 그의 목소리가 단번에 온 방안사람들의 가슴을 후려갈기면서 신부를 울려놓았다. 옆에 서있던 신부의 아버지, 어머니가 할머님께 인사를 올리였다. 그 짬에 좌현이는 만경대에서 가져온 보꾸레미를 할머님 가슴에 안겨드리였다. 그것을 본 할머님께서는 이것이 왜 아직 여기에 있느냐고 하시면서 간단히 몇마디 말씀을 하더니 신부에게 넘겨주시였다.

《좋지는 못하다. 그러나 내 손끝에서 생겨난것이니 그리 알고 아무거나 해입어라. 어찌겠니, 이런것밖에 없는걸.》

장내에서 박수가 터져올랐다. 팽팽히 켕기였던 감격적인 장면이 훌떡 번져져서 춤판으로 변하고말았다. 젊은축들이 마당에 나가서 발을 구르며 윽윽 소리를 질렀다. 팔과 허리를 꼬아올리기도 하고 발을 들었다놓으며 허공에 뛰여오르기도 하였다.

 

인민주권을 세우자 붉은 주권을 세우자

 

박수장단에 맞추어 합창이 터졌다. 다같이 손을 잡고 돌아가기도 하고 일제히 팔을 들어 흔들기도 한다. 김일성동지께서도 춤판에 끼이시였다. 신통히도 일제를 소탕한 전승의 거리에서나 고난을 뚫고 밀영에 찾아온 전우들을 환영하던 때에 보던 그런 장면이며 그런 기분이였다. 그이께서는 박원식의 팔을 잡아돌리면서 《좋다!》하고 흥을 돋구시였다. 만경대할머님께서도 젊은 시절의 기분이 되살아나 어깨를 추어올리고 팔을 흔들며 웃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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