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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계승자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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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284회 작성일 20-07-15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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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푸른빛이 누런 가을색으로 변해가는 두봉천뚝에서 김정일동지께서는 걸음을 멈추시였다.

키낮은 개버들과 새초, 억새같은 잡풀이 우거진 기슭으로 열댓마리의 소들이 풀을 뜯으며 느릿느릿 움직여오고있었다.

소무리뒤에서는 한쪽바지가랭이를 정갱이쯤에 대충 걷어올린 농장청년이 무리에서 삐여지는 검정얼룩소꽁무니에 회초리를 갈겨대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멀찌감치에서도 얼굴이 길숨하고 이마덕이 두드러져 고집스럽게 생긴 그 청년이 어딘가 낯익어보이시였다.

어찌보면 유성칠관리위원장의 젊은 시절과 모습이 비슷해보이시였다.

(유성칠의 아들 준오가 아닐가?… 그가 벌써 저렇게 컸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의혹과 반가움이 단꺼번에 겹쳐드시였다.

자신께서 15년전 찌는듯이 무더운 여름에 수령님을 모시고 여기에 왔을 때 준오는 아홉살잡이 철부지소년이였다.

…박박 깎은 머리에는 새끼고슴도치털같이 짧은 머리칼이 한벌 내돋았고 걷어올린 잠뱅이아래 장딴지에는 개구리밥풀이 잔뜩 묻어있었다.

들에서 얼마나 돌아쳤는지 흑인아이처럼 까맣게 탄 얼굴에서 눈만 반짝반짝했다.

《준오야, 고기를 얼마나 잡았니?》

김정일동지께서는 손님들이 가득한 집마당에 들어오지 못하고 반두그물을 어깨에 멘채 머뭇거리는 소년에게 다정히 물으시였다.

그러자 소년은 큰 자랑이라도 하듯 의젓하게 옆으로 비켜서서 코물을 훌쩍 들여마시고 뒤에 선 소녀애를 소개했다.

《이앤 송아예요. 뒤집에 살아요.》

제비꽁지머리를 한 소녀애는 발씬 웃으며 옷섶이 젖도록 무겁게 끌어안은 다래끼를 그이께 보여드리였다.

《저런, 많이 잡았구나!》

다래끼안에는 미꾸라지, 붕어, 뚝중개따위들이 살아서 펄떡거렸다.

《두봉천에서 잡았어요. 거긴 기슭에서 반두질해야지 물이 깊어 빠질수 있어요.》

소년은 자기 성과를 알아주는것이 흡족한지 흰 이새를 드러내며 벌씬 웃었다.

묻지 않은 말도 앞질러 친절히 하기 좋아하는걸 보면 아버지를 닮은데가 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지금도 그때 동구길까지 송아지처럼 따라다니던 두아이의 귀여운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계시였다.

두봉천뚝길에서 뛰놀던 염소새끼들을 쫓으며 밀짚모자를 쓴 사람이 도금장식이 번쩍거리는 새 《제비》표 자전거를 몰아왔다.

도시에선 아직 철이 늦지 않은 연회색의 반소매샤쯔를 깨끗이 차려입고 바지가랭이를 장화에 밀어넣은 그 사람은 소들을 몰아오고있는 농장청년을 보자 당장 자건거를 멈춰세웠다.

《여, 준오!》

두손을 허리에 얹고 큰소리로 위엄있게 부르자 청년은 뚝쪽에 엇비스듬히 고개를 돌렸다.

《이달 동맹원들의 생활자료를 다 썼나?》

《못 썼습니다.》

《초급단체위원장이 아직 그걸 쓰지 않으면 어떻게 하오? 당장 군사로청에 문건을 올려가야겠는데.》

《인차 쓰겠습니다.》

《소는 왜 동무가 관리하나?》

《영식이 할아버지가 독감이 와서 제가 좀 도와주고있습니다. 오후엔 소들을 가지고 벼단을 꺼들이려고 합니다.》

《누가 동무더러 소궁뎅이를 따라다니라는가. 초급단체사업이나 똑바로 할게지.》

준오는 그 말에 화가 나는지 회초리를 휘둘러 무리에서 삐여지는 소들에게 분풀이를 하였다.

《오늘중으로 써가요.》

볼부운 소리를 한마디 던지고는 소들을 건너편 뚝으로 몰아갔다.

자전거에 올라앉으려던 그 사람은 길에 세워놓은 승용차와 김정일동지를 보자 큰 간부가 왔다고 생각했는지 놀라서 밀짚모자를 벗어들고 황황히 반달음쳐왔다.

《동무는 무슨 일을 합니까?》

김정일동지께서 물으시였다.

《리사로청위원장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마흔살이 넘어보이는 그를 유심히 살펴보시였다.

얼굴이 볕에 조금 탔을뿐 흙 한점 묻지 않은 장화와 반소매차림새에서는 농촌청년일군이라기보다 도시의 사무일군맛이 더 풍겼다.

《그런데 어데 가는 길입니까?》

《농장사무실에 가서 문건을 마저 작성해가지고 군사로청에 올라가려고 합니다.》

《어떤 문건입니까?》

김정일동지께서 흥미를 가지고 파고드시니 그는 좀 당황해서 머뭇거렸다.

《저… 분기간 동맹원들의… 조직사상생활자료하고… 토끼기르기정형에 대한 문건입니다. 그리고… 청년동맹원들이 가을걷이에 사상적으로 동원될데 대한 문건은 사무실에 있습니다.》

《세건이나 되는구만. 내가 좀 봐도 되겠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리사로청위원장이 자전거뒤꽁무니에 실었던 삼면쟈크가방에서 꺼내드리는 두툼한 서류를 받아보시였다. 사로청원들의 토끼기르기문건은 채 작성하지 못한것이였다. 글씨는 한사람의것이 아니였다.

《초안은 제가 좀 쓰고… 부위원장동무가 쓴것을 글씨 잘 쓰는 처녀사로청원들한테 정서시켰습니다.》

《군사로청에서 이걸 다 요구합니까?》

《그렇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서류를 돌려주시였다.

《리사로청에서 이렇게 분량이 많은 문건들을 만들자니 품이 여간 들지 않았겠습니다.》

《예, 그래서 이달은 벌에 한번 제대로 나가보지 못했습니다.》

좀전의 당황과 긴장이 풀린 얼굴에는 스스로 자기 사업이 분망하고 또 중요하다는 인식이 갈마든 일종의 자부심이 엿보였다.

《저기서 소몰이를 하는 동무가 유성칠관리위원장의 아들이지요?》

《그렇습니다.》

《사로청위원장동무, 저기 준오를 나한테 좀 보내주시오. 그리고 동무는 군사로청에 보내는 문건을 미루더래도 리내사로청원들을 가을걷이전투에 조직동원하는 사업을 벌리는게 좋겠습니다. 벼단무지들이 젖은 논판에 그대로 쌓여있는데 뜨락또르운반이 걸리면 청년들이 저 준오처럼 소를 가지고서라도 벼단을 빨리 탈곡장에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리사로청위원장은 면구해서 서둘러 밀짚모자를 쓰고 오던길을 되돌아 자전거를 밀고갔다.

김정일동지께서 소들이 풀을 뜯는 두봉천기슭으로 얼마쯤 내려가시는데 준오가 마주왔다.

소몰이공청년은 뜨아해서 걸음을 멈추더니 급기야 어둡던 얼굴이 활짝 피여나서 풀숲을 걷어차며 정신없이 달려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너무 기뻐 어푸러질듯 뛰여와 품에 쓰러지는 준오를 부둥켜안으시였다.

해볕과 바람에 그슬리고 땀에 절은 체취가 들판의 청신한 냄새와 엇섞여 물씬 풍겼다.

송아지소년이 어깨가 쩍 벌어지고 바위처럼 든든한 청년이 되였다.

그 사나이어깨와 흐트러진 큰 머리가 김정일동지의 옷자락을 파고들며 울었다. 아버지를 잃은 설음덩이가 부서져 녹아내리는 눈물이였다.

그이께서는 준오의 먼지오른 꺼슬꺼슬한 머리와 땀내나는 잔등을 쓰다듬어주시였다.

《그만 울음을 그치라구. 어디 좀 보기요. 준오는 원래 아버지를 닮았지.》

김정일동지께서는 주먹등으로 눈물을 훔치는 준오의 량어깨를 잡고 볕에 탄 얼굴을 들여다보시였다.

길숨한 얼굴에 고집스럽게 둔덕진 이마, 검은 자위가 많은 눈, 두툼한 입술새에 엿보이는 큰 대문이… 뜯어볼수록 유성칠의 특징적인 얼굴세부를 꼭 그대로 닮았다. 어찌보면 광복직후의 젊은 유성칠농촌위원장이 자신의 앞에 서있는것만 같으시였다. 기쁘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하시였다. 사람은 비록 죽지만 그의 생명의 피줄기는 결코 사라진것이 아니라 자식의 몸에서 살아 굽이친다. 자식은 아버지의 생명의 연장이고 아버지의 삶은 자식의 삶으로 옮겨지는것이다.

생명의 유전과 창조법칙으로 굳건히 이어지는 인생의 대가 있음으로 하여 사람의 죽음은 영원한 슬픔으로 될수 없는것이다.

《어머니는 건강하오?》

《예, …아버지장례를 치르고 며칠 앓아누웠댔는데… 인젠 일없습니다.》

《아버지묘는 어디다 썼소?》

《두암산골짜기에다…》

두암산골짜기면 마을에서 이십리나 먼곳이다.

《어떻게 그 골짜기에다 썼소?》

《농장에서 인제는 거기다… 묘를 쓴다고 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준오의 마음속에 가라앉은 아픔을 퍼내는것만 같아 말머리를 돌리시였다.

《송아라고 준오의 소꿉시절동무는 잘있소?》

《예…》

준오의 얼굴은 대번에 발기스레 되였다.

고개를 떨구는 그 얼굴에서 부끄럼은 잠시뿐이고 이내 어두운 그늘이 덮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15년전 여름, 마당가에 준오를 따라왔던 제비꽁지머리를 상기하시였다. 고기다래끼를 안고 보조개 패이게 웃음짓던 귀여운 애였다.

《송아도 농장에서 일하겠지?》

《농산반에서 일하는데 뜨락또르를 몰겠다고… 저랑같이 기술을 배우고있습니다.》

《처녀가 대단하구만.》

《성미가 좀 셉니다. 리당비서인 아버지가 시집을 가라는것도 거절하고 뜨락또르를 타려고 합니다.》

잔바람이 풀숲을 어루쓸고 내물에 실무늬를 일으키며 지나갔다. 이따금 턱을 하늘로 쳐들고 영각을 뽑아내던 검정얼룩소가 목마른지 두봉천기슭에 발통을 잠그고 물을 들이켰다. 그러자 풀을 뜯던 소들이 꼬리를 저어 소파리를 쫓으며 하나둘 내가로 들어선다. 제비들이 높이 나는 가을빛 하늘로 흰 구름송이들이 들판에 커다란 그림자를 끌며 떠갔다.

얼마후 김정일동지께서는 마을어구에서 리당비서를 만나시였다.

작업반에 내려왔던 리당비서는 숨이 턱에 닿아 달려오느라 구리빛얼굴에서 땀방울이 주름곬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마가 반쯤 벗어진 머리는 숱이 적었는데 염색을 한지 오래서 불색과 희검은색, 흰오리가 뒤섞여 볼품없어 보였다. 흰서리가 내린 본래의 깨끗한 머리가 훨씬 자연스럽고 미감상에도 보기 좋았을것 같았다.

《만나지 못하는가 했는데… 반갑습니다. 어딘가 낯이 좀 익습니다. 내가 그전에 왔을 때 송아아버지는 무슨 일을 했습니까?》

《축산반 세포비서를 했습니다.》

리당비서는 송아아버지라는 말에 더 당황했는지 반차렷자세로 허리에 붙인 손을 떼지 못했다.

준오는 회초리를 들고 소들이 널려있는 내가쪽으로 슬밋슬밋 피해갔다.

《리당비서동무는 지금도 준오네 뒤집에서 삽니까?》

《그렇습니다.》

《유성칠관리위원장이 심은 돌배나무에 열매가 많이 달렸습니까?》

그 돌배나무는 김정일동지께서 어렸을 때 들리셨던 새초지붕이 낮추 드리운 울안에 있던 나무였다.

유성칠은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집들을 두봉산기슭에 지으면서 사연깊은 그날의 증견자인 돌배나무를 자기집 뒤울안에 떠옮겼다.

늦가을이면 서리맞은 돌배알들이 유성칠이네 울안보다 뒤집의 마당에 더 많이 떨어졌다.

《돌배나무가 너무 나이먹어 그런지 금년엔 열매가 얼마 달리지 못했습니다.》

《그 나무도 주인을 잃고 기력이 쇠진한 모양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내가의 풀숲에서 낫을 휘둘러 풀을 베고있는 준오를 이윽히 보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리당비서동무, 유성칠관리위원장의 묘를 두암산골짜기에다 썼다지요?》

《예…》

《내가 알기엔 관리위원장이 운명하기 전에 자기가 죽으면 저 두봉산중턱에 꼭 묻어달라고 했다는데… 사실입니까?》

《그런 말을… 했습니다.》

《유언대로 해줄걸 그랬습니다. 유성칠관리위원장은 수십년동안 자기가 피땀을 바쳐 가꾼 벌과 온 마을이 잘 바라보이는 곳에 묻히고싶어한것 같습니다. 농사일에 그토록 마음쓰신 수령님께서… 자기를 늘 농촌친구로 불러주시던 수령님께서 그 전날처럼 벌판길을 지나가실 때 령혼이라도 살아 바라보고싶었을것입니다.》

리당비서의 얼굴은 그믐밤처럼 컴컴하게 빛을 잃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픔이 그지없이 되살아나셨지만 산 사람들이 알고있어야 하고 깨닫고 잊지 말아야 할것이 있어 죽은 사람에 대해 말씀하지 않을수 없으시였다.

《유성칠관리위원장을 너무도 무심하게 장례지낸것 같습니다. 그는 고향땅을 살붙이처럼 여기고 이 땅에 심혼을 바친 사람입니다. 땅처럼 성근하고 가식없는 사람이였기때문에 수령님께서 그토록 사랑하고 친구로 삼은것입니다.》

낟알향기를 실은 소슬한 바람이 그이의 옷자락을 들추며 어리광 부렸다.

《사람은 죽지만 그가 지녔던 사상정신과 생의 흔적은 남는 법입니다. 그런데 옥천마을일군들은 당을 따라 한생을 농촌혁명가로 근면하게 살아온 사람을 죽었다고 홀시하고 의리없이 대하는것 같습니다. 난 아까 저기 벌판에 차를 세우고 마을길로 오면서 관리위원장이 병원뜨락에서 쓰러지면서도 구해놓은 버드나무가지들이 길옆에 심어있을줄 알았습니다. 유성칠관리위원장은 수령님께서 차에서 내리시여 늘 걸어오시는 그 길에 서늘한 버드나무그늘이 지게 하고싶었던것입니다. 그가 묶어놓은 버드나무단은 어떻게 했습니까?》

리당비서는 고개를 들지 못한채 솔직히 말씀드렸다.

《저희들이 관심을 돌리지 못하고있다가… 생각나서 가보니 다 말라버렸고… 더러는 불을 땠습니다.》

《이제라도 버드나무모들을 얻어다 그 자리에 심어주시오.》

김정일동지의 음성은 나직하나 엄하게 울렸다.

《죽은 사람에 대한 의리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장례를 지낸다는건 단순히 관을 묻고 봉분을 만들어놓는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생전에 품었던 고결한 정신과 그가 남긴 공적을 깊이 추모하는 의식입니다. 그리고 젊은 세대가 그런 사람의 뒤를 이을 결심과 의지를 굳히는 엄숙한 계승의 과정으로 되는것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두봉천뚝길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마을에 가봤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허락치 않습니다. 준오의 어머니한테랑 인사를 전해주시오. 그리고 비서동무, 내 보니까 농장사로청사업이 잘되지 않는것 같은데 관심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리사로청이 문건에만 몰두해있고 활발하게 패기있게 움직이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리당비서가 사로청사업을 실무적으로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농장사로청위원회는 유성칠관리위원장이나 리당비서동무네 세대를 대신해서 우리 당의 농촌진지를 지켜갈 청년들을 키워내는 정치조직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리당비서의 손을 잡아주시고 승용차에 오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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