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나는 아침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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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1
저녁때가 되자 본정에 자리잡은 2층 숙소는 전에없이 흥성거리기 시작하였다. 지방에 파견되였던 정치공작원들이 올라온것이다. 나들문이 쉴새없이 드르륵드르륵 울리였고 식당으로 쓰는 아래층 큰칸은 사람들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말소리로 가득찼다. 작식을 맡은 안명숙은 팔소매를 걷어올리고 이마에 송글송글 땀까지 내돋힌채 부엌과 물뽐프장에서 팽이 돌듯하고있다.
국수를 누르는것이다. 조리대에서는 질컥질컥 소리가 나게 메밀가루반죽을 하고있고 한쪽에서는 신바람이 나게 칼도마를 울리며 양념을 다지고있다. 마늘내, 고추내, 설설 끓는 가마에서 풍기는 메밀내가 한데 엉켜 부엌과 방안을 꽉 채웠다. 청년들은 저마다 분틀에 올라가겠다고 야단이다. 밀영의 국수분틀도 좋지만 해방된 조국에서 분틀타기는 비행기를 타고 창공을 날으는 기분에 못지 않다는것이다. 안명숙은 허여멀쑥하고 통개가 실한 반죽떡을 국수분통에 밀어넣다가 고개를 들었다.
《너무 바빠서 인사도 받을새 없구만, 명숙동무!》
그것은 키가 껑충한 김일이였다.
《김일동지 오셨어요.》 안명숙은 밝게 웃으면서 반죽감이 잔뜩 묻은 손을 들어보인다. 《그럼 평남, 평북쪽에서는 다 오신 셈인가요.》
《웬걸, 남포에 간 김경석동무도 아직 보이지 않는데.》
《그래요. 등잔밑이 어둡다더니 청진의 안길동지는 오늘새벽 맨 선참 오셨는데요. 혜산에 갔던 류경수동지랑.》
《나두 이자 만났소. 그런데 이거 뭐 오래간만인데 들고올기 있더라구. 자 받소.》
자루에 든것을 가마목에 털썩 내려놓는다.
《밤이군요.》
안명숙은 손가락으로 찔러보고 말한다. 안명숙의 얼굴은 장미꽃처럼 붉었고 눈은 빛나고있다. 마냥 기쁘고 즐거웠다. 밀영에 있을 때부터 체험해 아는바이지만 이렇게 전우들이 많이 모이면 틀림없이 인차 좋은 일이 있게 되는것이다.
안명숙이 밖으로 물길러 나갔을 때 경위대원 좌현이가 나타났다.
《안동무! 이거 야단이요. 상점들에두 신통한게 없구만.》
안명숙에게 과일을 가득 넣은 구럭을 들어보인다.
《14살에 떠나셨다가 34살에 찾아가시는 고향인데, 20년이 어데요. 그런데 빈손이구만그래. 떡이라도 만들어보잖겠소? 사는것보다야 우리가 만드는게 더 뜻이 있지.》
《그래 장군님께서 만경대에 가신다는건 틀림없어요?》
《만경대쪽으로 나가보겠소 했으니까.》
《그러니까 딱히 만경대고향집으로 가신다는건 아니지 않나요.》
《그렇게야 어떻게 말씀하시겠소. 우리가 알아차려야지.》
《하긴 그렇군요.》
안명숙은 찰랑찰랑 물이 담긴 바께쯔를 들고 힝하니 부엌으로 들어간다.
건너방에서는 쉴새없이 웃음소리가 울린다. 거기에는 이전에 련대장이나 련대정치위원으로 공작하던 파견원들이 들어있었다. 뒤벽에 등을 기대고 앉은 몸이 다부지고 유독 머리가 커보이는 류경수가 목소리를 높이고있다.
《우리들 가운데 누가 빨리 한번 모이게 해달라고 제기했소. 혹시 저 신의주의 김일동무가 아닌가?》
《원 천만에…》 맞은켠에 앉았던 김일이 불이 달린 성냥가치를 휘젓는다. 담배에 불을 붙인후에 그는 느릿느릿 까닭을 설명하였다. 《난 그런걸 제기할만한 여유도 없었단말이요. 신의주에 도착하는 그 이튿날부터 일감이 사태 밀리듯하는데 어디 정신을 차릴새나 있더라구. 매일밤 잠자리를 옮기는데두 하루건너 수류탄이 날아들고…》
《그럼 이 청진의 안길이 틀림없구만.》
류경수는 옆에 앉아 무슨 책을 뒤지고있는 안길의 팔을 건드려놓는다. 언제나 침묵이고 사색형인 안길이 고개를 끄덕여보인다.
《그다음은 또 누구요. 4~5명된다는데.》
류경수는 끝까지 알아맞춰보겠다는 기세로 좌중을 둘러본다.
《내 알아맞춰보라우?》 눈섭이 시꺼먼 최현이 빙그레 웃으면서 나무뿌리처럼 거치른 손을 앞으로 내들었다가 자기 가슴을 툭툭 두드린다. 《기본장본인은 여기 있소. 여기.》
그렇게 되자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 또 최현이다운 기지가 나타난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김책동무한테 우는소리 한것만은 사실이요. 내려가보니 너무 아름차서 어쩔바를 모르겠드란말이요.》
안길이가 책을 덮어놓으며 이렇게 실토정을 한다. 그렇게 되자 김일이도 조정철이도 전적으로 그에 동감이며 김책을 통해 한번 모여서 경험교환도 하고 사령관동지의 말씀도 다시 받아보고싶다는 의사를 비쳤다고 하였다.
부엌에서 안명숙이 방문을 열라고 소리쳤다.
《자, 받으세요.》
국수사발이 연방 올라왔다.
《곱배기는 안되겠어요. 한사람에게 한그릇씩입니다. 예상외로 식구가 불었어요.》
안동무는 불이 번쩍 나게 국수사리를 다루는데 그 솜씨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나만은 사전에 신청이 있었으니까 문제가 다르지.》
그것은 좌현이였다. 국수라면 오금을 못쓴다는 그였다. 육수를 붓는참 한쪽으로는 련달아 들어올린다. 영업집모양으로 만든 길다란 국수상에서는 벌써 양념을 놓고 사리를 풀고 저가락질이 시작되였다.
《여! 저 미인 누구지?》
부엌에서 안동무를 돕고있는 처녀를 눈으로 가리키며 좌현이가 앞에 앉은 동무에게 묻는다.
《박원식동무의 애인이라누만.》
대답하는것은 좌현이와 같은 나이의 경위대원 양동무였다.
《아니 뭐 벌써 애인?》
《벌써라니, 여기 오자 며칠만에 제꺽 눈이 맞았다는데.》
《허허 대단한 속도요.》
국수를 먹으면서 힐끔힐끔 훔쳐본다. 희한할만큼 아름다운 처녀가 불과 몇m 앞에서 왔다갔다 하고있다. 얼굴은 달덩이처럼 환하고 브라우스를 가뜬하게 해입은 몸매는 평양처녀다운 세련미를 풍기고있었다. 머리는 이때 류행이던 외태인데 대목을 질근 동이고 밑은 부채살처럼 풀어헤쳐져 어깨의 부드러운 곡선우에서 자유롭게 헤염치고있다.
《박원식이 그 친구 짬수군인데.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며칠새에 숲속의 억센 사나이를 그렇게 옴짝 못하게 만들었다나.》
《무엇에 반했는가구? 얼굴이 장미꽃같구 마음씨 또한 형편없이 아름답대. 박원식의 실토네.》
좌현은 시기심이 로골적으로 드러난 눈길로 처녀를 쳐다보면서 긴 한숨을 내쉰다. 유격대원들은 태반이 30이 다된 로총각들이여서 이성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컸다.
며칠전 철도로 떠나는 날 박원식이 양동무에게 실토한데 의하면 필남이라는 괴이한 이름을 가진 그 처녀는 해락관으로 들어가는 골목에 《동양양복점》이 있는데 그 집 딸이라고 한다. 옷을 맡기기 위해 몇번 드나들다가 어느새 눈이 맞아 언약을 맺는데까지 이르렀다는것이다.
2
김일성동지께서는 책상 한켠에 놓았던 수첩을 앞으로 당겨놓고 회의참가자들을 쭉 둘러보시였다. 오른쪽에 김용범이 앉고 맞은쪽에는 김책이와 김일, 안길, 최현, 류경수, 조정철, 박영순 등등 순서로 지방에 나갔던 파견원들 10여명이 앉았다. 《그럼 이제부터는 동무들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합시다.》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연필을 집어드시였다. 《그간 사업정형은 앞에서 초보적으로 총화되였으니까 이번에는 격식을 갖추지 말고 각지 실태를 놓고 대책적인 문제들을 토론해봅시다. 누가 먼저 발언하겠습니까?》 그이께서는 나들문쪽에 앉은 해주에 파견된 리봉수, 남포에 파견된 김경석 등을 차례로 둘러보시였다. 그이의 시선이 방안쪽으로 거의 옮겨지게 되였을 때 군복차림인 최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화로도 간단히 말씀올렸지만 제가 가있는 강계로 말하면 조선에서도 맨 산골막바지인데다가 만주와 국경을 린접하고있어서 생각지 않던 정황이 자주 생깁니다. 첫째 제가 해결받고싶은것은 식량입니다. 여느때는 만주에서 콩과 고량이 넘어왔는데 올해는 흉년이 들어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다음에는 자위대를 조직할수 있게 무기를 몇백정 받아가야 하겠습니다. 지난번 모임에서도 이야기되였습니다만 우리가 유사시에 대처할수 있게 준비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그곳 실정을 보아도 이것은 절실한 문제입니다. 강계근방에는 수전회사에서 언제공사를 하던 화약창고가 흩어졌는데 반동들이 남포약으로 피해를 주고있습니다. 또 관동군패잔병이 산에 있으면서 마을에 내려와 식량이나 마소를 끌어간다고 합니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저의 입에서 총을 줍시사 하는 말이 나온다는것은 좀 어색한 일인줄 압니다. 그러나 이전처럼 왜놈군대를 제끼고 벗길데도 없잖습니까.》 그는 잠간 말을 중단하고 좌우를 둘러보다가 계속하였다. 《평양에도 총은 없을거란말입니다. 일본군 77련대거나 좀 있겠는지 안길동무.》 이번에는 맞은켠에 앉은 안길을 쳐다보며 말을 건네였다. 《거기선 라남19사단을 쳤으니까 좀 있을거 아니요.》 안길은 얼마간 있었는데 각군에 조직된 보안서에 나누어주고나니 여유가 없다고 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제기되는 문제들을 수첩에 또박또박 적으시면서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또 토론들 하시오.》 이번에는 안길이 일어났다. 그러나 인차 입을 열지 못하고 주저주저하다가 말을 떼였다. 《저도 역시 몇가지 애로되는것이 있어서 김책동무한테 이미 제기한적이 있습니다. 그때 김책동무는 평양이라고 해서 다른데보다 유리한 점이 하나도 없으니까 그런줄 알고 모두 자체해결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얼마간 불만이 있었는데 정작 이번에 와보니 참말 손을 내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어서 말하시오. 해결여부는 후에 따지고 현재는 실정을 정확하게 료해해야 하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 재촉하시였다. 분위기가 이렇게 되자 얼굴이 검실검실하고 강인하게 생긴 안길은 수첩장을 번지면서 정확한 억양으로 말을 떼였다. 《지방에 파견된 정치공작원들의 중요임무는 우리 인민들에게 우선 조선이 나아가야 할 혁명로선을 정확히 인식시키는것이였습니다. 다음은 당, 정권기관을 꾸리고 파괴된 산업을 복구해서 인민생활을 하루빨리 안정시켜야 한다는것을 잊지 않고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함북도의 경우를 보면 군당이나 군인민위원회를 꾸릴 간부도 없습니다. 이전에 로조나 농조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평양이요 서울이요 하면서 떠나갔고 나머지 사람들은 제 나라 글도 똑똑히 읽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공장과 기업소 형편은 더 한심합니다. 청진제철소, 제강소, 화학공장, 유선탄광, 무산광산들을 보면 눈이 딱 감깁니다. 그곳 사람들이 말하는것처럼 공장설비들을 벼락맞은 소고기 뜯어가듯하고있습니다. 때문에 현재로서는 자치위원회를 조직해서 공장을 지키는데 급급하고있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나하나 복구도 하고 기계를 돌려서 제품을 내야 하겠는데 기술자가 없습니다. 청진제철소 례를 하나 들면 기사 4명에 준기사 11명이 있었는데 지금은 기사는 한명도 없고 준기사 2명이 있을뿐입니다. 때문에 용광로, 해탄로, 압연기들이 무용지물로 되였습니다. 우리 청진은 전쟁마당이였기때문에 이런 형편이 무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함남도 사정은 좀 다르다고 하는데 일부 기술자들을 좀 양보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안길동무!》 처음부터 꼿꼿한 자세로 앉아있던 김책이 끼여들었다. 《며칠전에도 말했지만 함남사정도 거기와 꼭같소. 내가 가보았는데 흥남 5대공장이 그렇고 함흥제사공장, 검덕, 만덕, 리원 광산이 다 그렇단말입니다. 거기에서는 오히려 함북에서 기술자들을 좀 받아왔으면 하는 형편이요.》 뒤이어 김일이 일어났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래두 다른데는 평북보다는 사정이 나은것 같습니다. 현재 신의주에는 하루에도 1 000여명의 사람들이 밀려들고있습니다. 만주쪽에 갔던 동포들이 줄을 지어 압록강다리를 건너옵니다. 온 거리에 사람이 차넘치고있습니다. 그러니 식량이나 다른 사정은 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현재 우리가 제일 애를 먹고있는것은 선천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세력입니다. 두덮어놓고 공산당의 시책을 반대하고있습니다. 하느님이 가르치기를 조선민족이 나갈 길은 미국식 자유의 길이라고 했다는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적은 인원이고 그 계급적토대는 모두 지주이거나 거리의 간상배들입니다. 이들이 요언을 돌리는바람에 당이나 인민위원회사업에 큰 지장이 있습니다. 다음은 일제때 기술자를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신의주에 왕자제지공장이 있는데 거기에 왜정때 기술자가 2명 있습니다. 그들을 인입하면 공장을 돌릴수 있고 제품도 곧 나올수 있습니다. 그래 우리는 그들을 쓰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며칠후에 공장장이 평양에 올라왔다 가서 그들을 떼버렸습니다. 문제는 그 인테리가 우리를 따라오겠다고 하는가 아니면 우리와 딴 길을 가겠다고 하는가 하는데 있다고 봅니다. 때문에 저는 제지공장기술자가 우리와 함께 일하겠다고 하는 이상 그를 써볼 생각입니다. 다음은 기독교계통의 나쁜 영향을 받는 학생층의 동향이 좋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해설선전을 적극적으로 들이대야겠는데 그럴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주대상이 중학생들인것만큼 그들을 설복하자면 지식도 어느 정도 있고 군중공작에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한 50명 선전원으로 쓸 사람을 한두달 파견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김일은 자리에 앉았다. 잠간사이기는 하지만 정책적으로 신중한 문제들을 언급하게 되였기때문에 이마전에 땀이 홍건히 내배였다. 다음에 일어선것은 혜산에 파견된 류경수였고 그다음에는 남포에 나간 김경석이였다. 그들도 여러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앞서 제기한것과 내용이 어슷비슷하였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파견원들 전원의 토론을 하나하나 다 들으신후에야 연필을 놓으시고 잠간 휴식하자고 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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