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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빛나는 아침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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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6,533회 작성일 20-06-0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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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을 옆에 끼고 절승을 이룬 층암절벽, 부벽루를 향해 휘여돌아간 경상골 한길에는 사람들로 몹시 붐비였다. 경치를 감상하려고 찾는 사람도 많았지만 골안어구에 자리잡은 로천장마당은 또 그대로 사람을 무한정 끓이게 했다.

강병철은 머리를 숙일써하고 사람들틈을 헤치고나가면서 이제 만나게 될 원시범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매사에 굼뜬 그는 보름전과 같이 백추화와의 관계에서 전진이 있을것 같지 않았다. 작곡가가 될것을 지망하고 서울에서 음악공부에 열중하고있는 백추화를 사랑한다는 원시범의 말을 들었을 때 강병철은 쌍수를 들어 찬성하였다. 그 리유는 매우 단순한것이였다. 강병철은 부모들의 권유와 나아가서는 강요에 못이겨 《봉건결혼》을 한 반면에 원시범은 《자유결혼》의 길을 택한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었기때문이다. 그런데 한달전, 서울에 있을 때만 해도 백추화의 부모를 찾아가 만나기만 하면 즉석에서 아퀴를 짓게 되리라던 약혼문제가 뜻하지 않게 암초에 걸려있었다. 추화의 말을 들으면 독실한 기독교신자이며 목재상인 그의 아버지는 어떤 문제에서나 처음에는 전적 반대이다가 나중에는 벌컥 뒤집어 꼿꼿이 찬성하는데로 나간다는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특이한 립장을 취하였는데 가도 아니고 부도 아니고 매우 애매하였다. 매양 《서울젊은이》라고 한다든가 또는 《시범군》하고 일정한 간격을 두면서 《손님》으로 와있는데는 반대가 없노라고 하였다. 한생 그런것을 보아온 그 안해는 사위감을 고르는데서도 양덕골안에서 동발목 흥정하듯하고있으니 과히 걱정말고 좀 기다리라고 했다는것이다. 결국 원시범은 두 짬에 끼워버렸다. 한데 량부모의 갈등이 심하면 심할수록 백추화는 눈물이 가랑가랑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정 아버지가 반대하면 자기는 이 집을 버리는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원시범은 여직까지 높이 가려올렸던 자존심무지를 한치한치 헐어 처녀를 위로하면서 끈덕진 제성미대로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고있었다.

그러나 강병철이 우려하는것은 저쪽 녀자편이 아니라 원시범의 《령리》한 머리였다. 어떤 경우에서나 원시범은 인차 몇개의 구성안을 만들어내군한다. 성공의 봉우리에 오르는 길은 하나만이 아니라 여러 갈래가 있다는것이 그의 생활철학인것이다. 때문에 강병철은 원시범이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있는지 짐작해낼수 없었다.

강병철은 경상골막바지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추녀가 높이 들리고 지붕에 이끼가 한벌 내돋은 위풍있게 생긴 기와집이 보이였다. 벽돌담장이 한길이나 되는데 그우에는 병깨미들을 일궈세워 그 무엇도 얼씬 범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낮인데도 대문은 닫겨있었다. 주인을 찾자 잠시후에 빗장이 삐익 뽑히고 으르렁거리는 세빠드를 몰아세우는 소리가 나더니 수수하게 생긴 녀인이 나타났다.

녀인은 이쪽을 알아보더니 《계십니다요, 서울도련님이.》하고 공연히 몸을 옹송그리면서 뒤걸음질을 하는데 강병철은 벌써부터 기분이 축 처져내리고 심사가 비틀렸다. 마치 한세기전에 어느 읍거리의 봉건관료네 집에서나 볼수 있을 고리타분한 가풍이 문명대야에 놓인 평양한복판에서 그대로 재현되고있는것이다. 여기서 《자유결혼》이 생겨나길 바란다는것은 사막에서 꽃을 찾는격이며 이런데를 한사코 뚫으려는 30이 된 로총각, 이름난 미녀들을 다 대상했던 교또대학 공과출신의 《서울도련님》은 또 어떤 역을 이제 감당하게 될것인지 알수 없었다.

《어! 벌써 다녀왔는가?》

수심이 가득한채로 원시범은 고무신짝을 덜덜 끌고 나오면서 손을 잡는다.

《벌써라니, 어느새 20일이 지나갔네.》

《그래 어떻게 됐나, 갔던 일이.》

《어떻게 될게 있나. 오천식의 어머니를 만나 기별을 전했지.》

《소식을 전혀 모르고있던가?》

《물론.》

그들간에 이야기되고있는 오천식이란 이런 사연을 가지고있었다. 일제가 대동아전쟁을 대대적으로 준비할 때 강철생산을 늘이는 조치로서 만주에 있는 제철소들을 여러개 개발확장하였다. 그래서 강병철이 근무하고있던 야하다제철소에서는 안산제철로 기술자, 기능자들을 뽑아보내였다. 그때 강병철이와 친했던 흥남출신인 오천식이 가게 되였는데 그와 헤여지면서 시국이 시국이니만치 누구든 조선에 가는 기회가 생기면 서로 고향집에 안부를 전하기로 약속했었다.

《친구간의 의리가 대단하이.》

《그런걸 의리라고나 할수 있겠는지.》

《그러니 이북에 온 용건은 홀가분하게 다 벗어치운셈이군. 안동권선생은 인차 떠난다고 했겠다.》

《한쪽은 벗었는데 다른쪽에는 더 무거운것을 걸머멘셈이네.》

원시범은 허리를 꼿꼿이 펴더니 정열적인 눈을 크게 뜨면서 다그쳐 묻는다.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이 땅의 공업은 완전히 페허네.》

완강하게 생긴 억센 턱을 재빨리 놀려 마치 격분한것처럼 대답하고있는 강병철은 이때 안동권의 처량한 얼굴을 언뜩 상기하게 되였다.

《그래 어데어데를 가보았나? 형편을 좀 자세히 말해보게.》

《북조선의 기간공업은 일제가 패망하면서 파괴해놓은것만 해도 10년안으로는 복구가 불가능하네.》

그리고나서 강병철은 자기가 돌아본 공장들의 실태를 하나하나 이야기하였다.

한동안 그들은 말이 없었다. 강병철의 말이 절반만이라도 진실을 띠고있다 해도 그것은 실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수 없다. 하지만 이자리에서 그것을 론의했대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것을 그들은 잘 알고있었다.

《한데 자네의 그 이른바 결혼문제는 어찌됐나?》

강병철은 우정 화제를 돌려놓는다.

《언어로 표현하기는 바쁘이. 고등수학이네. 차차 알게 되겠지. 이것도 아마 운명이 선도하는거나 아닌지 모르겠네.》

《그렇다면 여기서 공연히 시간을 보내지 말고 서울로 가는게 어때?》

《좀 지내봐야지.》

《자네는 추화양이 있지만 난 뭐가 있나, 이 북조선에.》

《자네 리념대로 강철이 있지 않나. 아직은 철광산갱도막장의 막돌에 섞여있기는 하지만.》

《강철? 하하하.》

그사이 하녀가 음료를 가져왔다. 진주조개로 자개를 박은 쟁반에 유리잔이 2개 놓이고 얼음에 재웠던 삿뽀로비루 3병이 온몸에 이슬을 돋힌채 세워져있다.

《어쨌든 한잔씩 듭세. 장모로서의 턱인지 인심좋은 이 집 마나님의 선심인지 알수 없지만, 하여튼…》

《이사람, 추화양이 들으면 가슴이 섬찍하겠네.》

공교롭게도 이때 추화가 진한 불란서 장미향수내를 앞세우고 안방에서 나오고있었다. 무도장이나 어느 연회에라도 나서려는것처럼 성장을 하였다. 파도형으로 어깨를 흘러내린 장발머리에 유한곡선으로 쭉 내리그어진 주름이 많은 까만 비로드원피스의 신선미가 눈을 강하게 자극한다.

어느땐가 지나가는 말로 《오. 케》레코드인기가수 장세정의 머리치장과 옷맵시가 그리도 마음에 든다고 하더니 그것을 그대로 모방했다는것이 한눈에 알린다.

《여기서도 그 무슨 혁명이라는것을 하는거나 아니예요, 아니면 어떤 정당이라도 하나 만드는가요? 막 심각한 기운이 정원에 꽉 차넘치는걸요. 어쨌든간에 한잔씩 들고 계속하세요.》

추화는 희고 날씬한 손으로 잔을 채우고나서 긴 살눈섭을 애교있게 치켜올리며 처음에는 그가 무뚝뚝하다고 보는 강병철을 그다음에는 그 무엇으로써나 자기를 옴짝 못하게 압도해버린 원시범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한동안 말없이 그들은 잔을 들었다.

《그럼 가보지 않겠어요?》 추화는 이미 약속이라도 되여있었다는듯이 강병철을 쳐다보며 말을 건네였다. 《련광정앞에 있는 <백선행기념관>에서 요란한 시국토론회가 있다는군요.》

《그래요?》

강병철은 듣느니 처음이기도 하였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고 묻는듯한 눈으로 원시범을 쳐다보았다.

《병철이? 내 말 좀 들어보라구.》하고 원시범은 담배갑으로 가져가던 손을 멈추고 침착하게 설명을 시작하였다. 《자네는 이미부터 강철은 강철로서 자기를 유지해야지 그 무엇과도 혼합해서는 안된다고 했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그 견해를 버려야 하네. 시대와 환경이 달라졌거든. 자네도 아다싶이 중세기에는 종교가 사회의 모든것 즉 정치, 경제, 문화, 륜리를 지배하고 판을 쳤다면 지금은 모든게 정치네. 정치밖에 서있는 그 무엇도 있을수 없다는것이 오늘이야. 우리는 이 현대의 한복판에 서있는셈이네. 그런데 자네는 엄연한 이 현실을 고의적으로 외면하려들거든…》

《가만가만.》 강병철은 손을 내저어 중단시키고나서 계속하였다. 《그러니 결국 나더러 어떤 권력을 위해 복무하라는거지? 정치란 곧 권력이 아닌가. 로씨야의 레닌도 말하지 않았나. 정치의 첫자리에는 정권이 놓여있다고말일세. 여보게! 이에서 신물이 나고 몸서리쳐지네. 야하다에서 8년동안 대일본제국의 국권을 위해 복무한것이면 한정량을 넘겼단말일세. 개짐승도 몽둥이로 얻어맞은 골목으로는 다시 발길을 돌리지 않는다네.》

《그렇다면 대답해보게. 자네는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복무를 원하는가?》

《내 나라 조선을 위한거지. 왜 웃나. 마음에 안드는 모양이지. 난 우리가 행해진 모든것의 맨 웃자리에 조선이라는것을 놓아야 한다고 보네.》

《하하하! 그것 참 신통한데. 구라파 어느 누구의 좌우명과 매우 류사하구만.》

그들은 한달가까이 헤여졌던 생활공백을 메꾸어버리려는듯 극성스럽게 객담을 벌리면서 대동강쪽으로 시적시적 걸어나왔다. 언제나 이들 두사람이 말씨름을 벌릴 때에는 추화가 어간에 나서서 극단한 량편을 능숙하게 조절하군 하였다. 추화는 그동안 보고 들은 평양녀성계의 움직임을 흥미있게 소개하였다. 지식층 녀성들의 한 반은 정치운동에 나서고 한 반은 침묵하고있다고 하였다. 수가 많지는 않지만 로동녀성들은 열성이 충천했고 벌써 그들의 영향으로 녀성동맹조직을 내오고있다고 하였다. 색다른 화제는 곧 흥미를 끌어 련광정까지 오는 사이에 전혀 다른데 정신을 팔수 없게 하였다.

어느새 그들은 련광정옆에 있는 《백선행기념관》에 이르렀다. 담장풀이 벽에 한벌 기여오르고 마당에 등나무덩굴이 우거진 그늘밑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데 활짝 열어제낀 창문으로 열기를 띤 웨침소리가 벌써 흘러나왔다. 시국토론회가 시작된 모양이다. 그들은 서둘러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안은 만원이였다. 그리하여 세사람은 아래층 뒤켠에 겨우 자리를 차지할수 있었다.

《만약 우리가 이 천재일우의 시각에 주저하기만 하다가 기회를 놓치거나 뜻하지 않은 실수를 하여 한발 빗디딘다면 우리 백의민족은 영원히 영원히…》 흰두루마기앞자락을 활 가르고 허공에 팔을 내흔드는것은 반나마 머리가 벗어진 50대의 장년사나이였다. 키가 후리후리하고 틀이 진 그는 전조선에 알려진 독립운동자라고 한다. 《그렇게 된다면 여러분! 헤그에서 창자를 뿌려던진 리준이나 안중근이와 같은 렬사가 땅속에서 우리를 원망할것이요. 그뿐인줄 압니까. 3. l운동때, 6. 10만세때 내 나라의 넋을 안고 쓰러진자 그 얼마입니까. 그 피가 이 땅에 젖어있소. 그러니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우린 리조왕권을 복활하여 천세만세 복락하도록 하여야 할것이요. 그런즉 소인은 조선의 행로는 어데인가라는 물음에 단마디로 대답해가로되 조선은 끊어졌던 혈맥을 다시 이어 리조 500년의 대를 그대로 계승하는 길로 나가야 한다 그거요.》

여기까지 단숨에 쭉 이어댄 연설자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장내를 쭉 둘러보았다. 강한 빛을 뿜고있는 크지 않은 그 눈은 청중들이 자기 의도를 어느 정도 리해하고있는가 알아보는듯하였다. 몇초동안 긴장한 시간이 흐르는데 청중석 맨앞에서 덜커덕 의자 드티는 소리가 나더니 나비넥타이를 매고 머리에 기름기가 도는 중년신사가 불쑥 일어났다.

아마 그는 연설이 끝난것으로 알았던모양인지 《여보, 조선생!》하고 부르더니 거침없이 뒤를 이어대였다. 《소인은 조선생의 연설을 경청하면서 여러가지 의문이 생겼소이다. 리씨조선 500년은 통털어 우리 배달족의 치욕의 력사로서 나중에는 을사조약과 같은 망국의 신세를 불러온 책임이 리왕조에 있다는것을 당신은 아는지 모르는지 또 다음은…》

질문을 하고있는 신사의 말이 한턱없이 길어질것으로 짐작한 사회자는 책상을 손끝으로 똑똑 두드려 발언을 중단시키고나서 주의를 주었다.

《연설도중에 끼여들면 안되겠습니다. 만약 의견이 있으면 질의응답시간에 하든지 아니면 집행부에 청해서 직접 연단에 나서든지 해주시오.》

질문하던 신사는 자리에 앉고 청중들은 술렁술렁하였다. 기분이 돌변해버린 연설자는 청중의 반응은 어떻든간에 제할 소리를 내처 해야겠다고 결심한것 같았다.

《우선 나라라는것은 임금이 있어야 생겨나는것이며 임금이 곧 나라를 세웁니다. 임금을 부정하거나 욕되게 하는것은 우리 백의민족 자체를 부정하는것이며 그것은 기왕의 망국노의 처지를 계속 강요하는것외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상에는 별의별 나라가 다 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확고부동하고 백성에게 복락을 안겨주는 나라는 례외없이 임금을 모신 왕국이라 하겠습니다. 대영제국을 봐도 그렇고 구라파복판에 있는 항가리야도 그렇고 아세아에 와서 타이나 네팔을 봐도 잘 알수 있습니다. 이 나라들과는 달리 여하튼 왕권을 부정한 나라는 나라이로되 불한당이 살판치는 지옥이며 백성의 피가 즐퍽한 묘지올시다. 황제를 둘러메친 로씨야를 보시오. 또 청조를 없애치운 지나의 꼴을 보시오. 자, 보시오. 어느 길인가 명백하지 않습니까. 어느 나라나 력사가 흐르는동안 국세가 왕성할 때도 있고 쇠진할 때도 있는것이 세상의 리치인즉은 고종, 순종에서 비운을 맞았다면 그것은 국왕의 책임이기전에 먼저 우리 백성이 임금을 모신 충정의 결핍에서 온것으로 볼것이요. 그런즉 오늘에는 우리 3 000만이 충군의 정을 한결같이 가다듬어 리은황태자를 모셔다가 왕계를 잇는것이 왜 나쁘며 그것이 불…》

《사회! 긴급 동의요.》 중간쯤에서 키가 꺽뚝한 청년 하나가 손을 들고 일어났다. 《저놈을 당장 끌어내시오! 저놈은 필시 왜놈의 주구요. 리은이가 일본천황가의 사위가 된지 어느 옛날인데 지금에 와서 저따위 미친 소리를 줴치고있소.》

《옳소! 끌어내오.》

《질서를 유지합시다.》

《론리로 해야지 인신을 건드리지 맙시다. 언론은 자유가 아니요!》

장내가 벌둥지 끓듯 한다. 그렇지만 연단을 두손으로 꽉 붙잡고 선 흰두루마기는 입술을 짓씹으면서 잠간 사이를 두었다가 지지눌리는 목소리로 다시 웨치였다.

《만약 우리 백의민족이 혹 다른 국체를 요구한다 칩시다. 가정해서말이지요. 백보천보 양보해서요. 설사 그렇다 해도 우리는 일단 리왕조를 복구했다가 다른것을 선택해야 할것이요. 왜 그런가? 우리는 왜놈들에게서 빼앗겼던것을 당당히 되찾는것, 즉 원상복귀를 해야 우리의 기개와 민족의 얼을 지키는것으로 될것이기때문이요… 우리의 얼, 우리의 얼을 위해…》

그는 얼굴이 시뻘개서 연탁을 두드리며 애타게 부르짖는다. 그와 함께 장내에서는 또다시 숭얼숭얼 항의가 일어났다. 하지만 참을성이 있고 날카로운 시선을 가진 사회자가 일어나 손을 들어 제지시켰기때문에 누구도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치지는 못하였다.

강병철일행이 이쪽저쪽에 시선을 날리고있는데 어느새 연단에는 흰두루마기가 자취를 감추고 깜장색 제낀옷을 입은 신사풍의 사나이가 나타났다. 키가 크고 풍채가 름름한 그 사나이는 들고나간 개화장을 연탁 한쪽에 걸어놓고 청중의 시선이 자기에게 쏠리기를 기다렸다. 한 1분동안 그러고있다가 드디여 숙였던 고개를 번쩍 쳐들며 《여러분!》하고 거쉰 목소리로 첫마디를 떼였다.

《저로 말하면 텍사스주에 있는 조선문제연구소의 주조성원으로서 오래전에 이미 바로 지금 론하고있는 문제는 론진된것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론의의 마당이 마당인만큼 침묵할수 없어서 한마디 하려고 나왔다는것을 전제해둡니다. 조선의 행로는 어디인가? 우리는 지금 이 대답을 찾고있습니다.

여러분! 인류발달에서 불을 리용하게 되였다는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불이 인간을 만들었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바로 이처럼 데모크라시가 인간에 의해 발견되고 장악했다는것은 실로 인류에게 둘도 없는 행운의 행운인것입니다. 이 행복이 가장 큰 열매를 맺은것이 어데냐? 그것은 두말할것 없이 아메리카입니다. 하느님의 아들 워싱톤이 인류앞에 자랑스럽게 선포한 미합중국입니다. 아메리카 할 때 그것은 5대주 6대양 만천하에 자유의 나라, 부유한 나라, 강대한 나라로 세상에 공인되여있습니다. 만천하에 소리높이 민족자결을 주장한 윌슨의 조국도 바로 이 나라입니다. 때문에 나는 미국식 자유세계를 이 땅에 펼쳐야 한다고 확신성있게 말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느님이 친히 인도하는 길이며 따라서 그것은 주의 보호를 받게 될 나라로 마땅히 우리가 따라야 할 나라로 가는 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예수께서 가로사되 <나는 길이고 진리이며 생명이다. 누구든 나에 기탁함이 없이 하느님께 가지 못한다.> 바로 이렇습니다. 우리는 이 길에서 한걸음도 빗나가서는 안될것입니다. 미국으로 말하면 주의 총애에 의해 세워진 부강한 나라로서 그 세력을 누구도 당할자가 없습니다. 가난한 우리 나라는 미국의 동정에, 지원에 의해서만 부흥할수 있으며 참된…》

여기까지 거침없이 내리엮고난 연단의 신사는 문득 정신을 차린듯 두리번두리번 좌우를 살피였다. 청중속에서 너무나 반응이 없다보니 자기가 지금 한창 어느 례배당에서 성서풀이를 하고있는것으로 착각을 일으킨 모양이다. 아닌게아니라 청중은 한절반 졸음에 취한듯한 얼빤한 눈길로 쳐다보고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앞장이 뻔히 내다보이는 서투른 연극을 보는 맥빠진 기분들이였다.

《어때?》

하고 강병철이 옆에 앉은 원시범을 쿡 찔렀다. 담배질을 하면서 왕청같은 생각을 하고있던 원시범이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 강병철이 무엇을 묻는지 짐작할수 있었다. 우선 연단의 신사가 내놓는 정치적견해가 어떤가 하는것이다. 이전에도 매양 미국이나 예수가 언급되는 경우에 강병철은 그의 반응을 원시범에게 요구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것은 원시범이 오래전부터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선포하였으며 따라서 종교에 대해서는 그것을 아편에 비긴 맑스와 견해가 같다고 해도 이의가 없노라고 한적이 있었기때문이였다.

《좀더 들어보지. 지금까지는 에취, 투, 오(맹물)인데 이제 무엇이 좀 나올수도 있으니까.》

하고 원시범은 강병철의 손을 힘주어 붙잡았다. 그가 이렇게 한것은 먼저달초 서울 종로에 있는 어느 기독교교회당에서 흡사 이러루한 모임에 끼여들었다가 10분도 못가 강병철이 퇴장해버린적이 있기때문이였다.

《걱정말게. 오늘은 인내성을 발휘할테니까.》

강병철은 원시범이 우려하는것과는 정 반대의 기분으로 앉아있었다. 애당초 기대한것이 없었기때문에 실망할것도 없는 그였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쉰밥을 먹은것처럼 속이 차츰 메슥메슥해나면서 이마가 달아올랐다. 그는 코끝까지 처져내린 안경을 밀어올리고나서 넥타이를 늦춰놓고야 숨을 제대로 내쉴수가 있었다.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연단에 나설쯤 하면 그래도 정치라는것을 초보적으로는 알수 있겠는데 이것은 너무 무지막지하다. 리왕조를 복구해야 한다는것이나 아메리카의 본을 따야 한다는 등의 주장은 곧 망국노의 신세를 계속 유지하자는것이나 다름없다. 리왕조가 조선민족을 팔아먹었다는것은 삼척동자도 알고있는 사실이며 또 아메리카식으로 하자는것은 나라가 독립되기도전에 어떤 체제부터 본따야 한다는 주장인데 이것은 순서전도이며 모방이며 지어 맹물을 졸여서 강철을 만들겠다는 식의 허황한 소리이다. 강병철은 가슴속에서 무엇이 뿌지지 끓어오름을 느끼면서 컬럭컬럭 헛기침을 하였다. 그는 수건으로 입을 훔치고나서 항상 미국에 대한 동경이 있는것으로 보았던 원시범의 맥을 짚어보았다.

《원! 아메리카식으로 해보자는데 자네 구미에 맞잖나?》

《아메리카식?》 원시범은 조소를 띤 얼굴로 넘겨다보면서 말하였다. 《아메리카를 리해하기엔 지식이 모자라! 너무 유치해. 데모크라시에 대해서 저런 식으로 리해한다면 이 원시범이도 일류급 정치인이 될만하네. 고대희랍인들이 도시국가를 세우고 데모크라시를 하게 되였던 까닭은 그것이 좋아서가 아니라 고급한 체제를 생각해낼수 없었을 정도로 리성이 미숙했던때문이네. 더구나 아메리카는 데모크라시가 아니라 자유화란말일세. 그것을 동일시한다는것은 수준이하야. 안그래?》

이러는 원시범의 입술이 한껏 비웃음을 담고 한쪽으로 삑 돌아갔다. 원시범의 말을 듣고보니 강병철은 한층 더 분기가 치밀어올랐다. 언제나 정치문제에서는 원시범의 의견을 따르게마련이였던 그는 원시범에게 손짓을 하여 추동하였다.

《나가게, 나가서 한마디 하란말일세. 이자 그대로만 해도 모두다 압도해버릴수 있네!》

《이 사람! 누굴 뭐 연설쟁이로 만들셈인가.》

《연설쟁이가 되자고 해서 되는것이 아니라 자기 주장을 억지로 꿍져넣어둘 필요가 있는가. 우리도 해방된 조선민족의 한 성원인데.》

하건만 원시범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어보일뿐이다.

강병철이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왼쪽켠 앞줄에서 푸른 군복을 입은 우리 군대가 눈에 띄였다. 얼핏 생각난것이 신창탄광 청년이였는데 혹시 이제 기회가 생기면 그를 만나 군대의 거처를 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장내에서 폭소가 터졌다. 연단에서는 례의 그 신사가 아직 연설을 끝내지 못했는데 한옆에 머리칼이 채 자라지 못한 중년사나이가 차례를 기다리고있었다. 중년사나이는 허름한 국방색 닫긴옷을 입었는데 일본군대옷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느 병기공장 로동복같았다. 그는 어서 말을 계속하라고 손짓을 하건만 결국 바투 다가선 그의 시선의 압력때문에(신사는 무례하다고 보는것 같았다.) 연설이 잘되지 않았다.

《그만하고 내려오시오. 우리 조선은 예수의 도움으로 건지기에는 너무나 참혹하오.》

누군가 앞줄에서 크지 않은 목소리로 한마디 한것이 신사의 정열을 단번에 쭉 뽑아놓고말았다. 신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였다. 하지만 그는 이를 사려물고 분노를 참으면서 몸을 꼿꼿이 세우더니 두어깨와 이마 그리고 가슴을 차례로 찍어 십자를 긋고 연탁에서 조용히 물러났다.

기다리고있었다는듯이 연탁에는 새로운 연사가 나타났다. 장내 여기저기서 수군수군하였다. 한마디씩 하는 가운데 《저 사람은 이번에 서대문형무소에서 나왔다누만.》하는 소리가 들리였다. 장내는 다시 새로운 기분으로 물결치는데 사람들은 연단에서 무슨 말이 울려나오는가에 대해서보다 그자리에 어떤 인물이 나서는가 하는데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것 같았다.

《여러분! 형제들! 나는 10여년간의 령어생활로 해서 내 나라에 있으면서도 내 나라의 실정을 잘 모릅니다. 때문에 기대에 어긋나고 적절하지 못한 발언이 있을수 있다는데 대해서 량해해주기 바랍니다.

나는 우선 본 연단에 <조선의 행로> 다시말해서 조선이 갈길은 어디냐? 하고 붙인 론제가 적당치 않다고 보기때문에 스스로 그것을 수정해서 <조선은 어데로 가야 하느냐?>라는 물음에 대답해보려고 합니다.》

박수가 일어났다. 첫마디부터 기지가 있고 예리한 그의 론리가 청중의 마음에 든 모양이였다. 여기저기서 《공산주의자》라고 수군거렸다. 뭇시선이 다부지게 생긴 까까머리연사에게 집중되는 가운데 장내에는 자못 근엄한 공기가 휘익 물결쳐나갔다. 대체로 네모진 얼굴인데 감각이 예민한 연사는 입을 한 반쯤 벌린채 장내분위기를 쭉 둘러보더니 집게손가락을 꼿꼿이 펴서 연탁 앞모서리를 쿡쿡 찌르면서 연설의 본론을 꺼내였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번째 행성은 20세기중엽에 이르는동안 벌써 두번에 걸친 큰 충격으로 해서 흔들리고있습니다. 그 첫번째는 l차세계대전의 결과에 일어난 충격인데 여기서는 로씨야에서 프로레타리아가 정권을 장악하는것으로 인류사에 새 장을 펼쳐놓았습니다. 다음 두번째는 바로 지금 그 충격파가 아직 세차게 울리고있는 중인데 2차대전의 결과에 일어난 또하나의 대변화입니다. 앞서의것이 로씨야 한 나라에 국한했다면 이번것은 여러 나라가 동시에 집단적으로 생활의 키를 돌려 맑스-엥겔스-레닌이 명시한 그 길로 전환하고있다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항가리아, 부르가리아, 체스코, 포랜드 등이 벌써 로농정권을 세웠습니다. 력사의 흐름은 바로 이렇고 이것이 현실입니다. 하다면 이 세찬 흐름에 뜬 조선이라는 쪽배가 이제 어데로 가게 될것인가. 그리고 또 어데로 가야 하는가 이것을 놓고 우리가 그 무슨 수수께끼처럼 풀이를 해야 하며 그것이 어떤 불가사이한것 같이 취급되여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새로운 시대에 살고있습니다. 지구우에 몇개의 대륙이 숨어있을수 있었고 인간이 자기 육안만을 가지고 사물을 판정하던 때가 아니라 지금은 자기 앞날을 과학적으로 내다보고 모든것을 설계하는 시대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조선은 주저없이 프로레타리아혁명을 해야 하며 사회주의길로 나가는것으로 이미 운명지어져있습니다. 우리가 나갈 길을 위해서 예수의 신세를 질 필요도 없고 샤만호를 끌고와서 로략질을 한 양키놈네 본을 딸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만국의 로동자는 단결하라 이 구호를 높이 들고… 하느님도 임금도 우리를 구제 못하리…》 시간이 감에 따라 열기를 띠기 시작했던 연설은 이 대목에 와서 하나의 과격적인 절정장면이 연출되였다. 연사는 오른쪽손을 허공을 향해 번쩍 추켜들었다. 《하느님도 임금도》하고 한음계 높은 목소리를 내면서 그는 온갖것을 부정하듯 들어올렸던 손을 번개같이 연탁우로 내리후리였다. 《우리를 구제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다만 제손으로…》

어떻게나 정열적으로 웨쳤던지 연사의 웅변은 장내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내던진 불만의 목소리를 한동안 압도하였다.

《사회! 긴급동의를 제기합니다.》

오른쪽 청중석에서 청년 하나가 손을 들고 일어났다. 그는 얼굴이 시뻘겋게 되여 씨근거리였다.

사회자는 연사의 지나친 표현때문에 의견이 있는데다가 손을 들고 긴급동의를 요구하는 청년의 기세에 질려 《무엇인지 말씀하시오.》하고 언권을 주었다.

언권을 합법적으로 얻게 된 청년은 손을 내흔들면서 《하느님을 모독하지 마시오.》하고 소리쳤다. 《시국을 론하는 신성한 마당에서 하느님을 욕되게 하는것을 참을수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호응이 일어났다. 회의장에는 주최자가 이름있는 목사 조만식이였던것만큼 기독교신자들이 한 절반은 차지하고있었다. 때문에 청년의 제기는 기름가마에 불을 던진격이 되였다. 장내가 술렁거렸다.

《저 사람은 붉은마귀올시다.》 소란한 가운데 청년은 기독교도다운 침착성과 참을성을 가지고 온건한 목소리로 자기 할 말을 계속하였다. 《붉은마귀나 노랑마귀나 다를것이 없습니다. 일본에 나라를 판 5적이나 로씨야에 파는 공산주의나 다 같습니다. 예수 크리스토께서는…》

《그만하시오. 강연도중입니다.》

질서유지를 위해 사회자는 눌러버리였다. 도고하게 서서 지켜보고있던 연사는 말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대상이 되지 않아 경멸해버린다는듯이 긴급동의자를 잠시 지켜보다가 연단에서 내려섰다.

장내에 침묵이 깃들었다. 누구도 일어나지 않았고 고함치지 않았다. 마치 숨가진 모든 존재들이 질식된것 같은 분위기였다.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던 강병철은 공산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은 완강한 그 사나이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았다. 위선같은것을 전혀 찾아볼수 없는 류창한 주장인데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공감시켜내지 못하였다. 이미전부터 공산주의자에 대한 불쾌한 인상을 가지고있던 강병철은 징그러운것을 보는듯한 혐오감까지 생겨났다.

이때 그의 눈앞에서는 다른 얼굴이 또 떠올랐다. 그것은 볼에 고랑이 깊이 패이고 머리가 벗어진 안동권이였다. 안동권은 동정어린 시선으로 쳐다보면서 현 단계에서 조선사람이 지녀야 할 최대의 관심사는 피페해질대로 피페해진 경제를 일쿼세우는것이라고 하였고 그것은 역시 다른데가 아니라 북조선에서부터 시작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유물론자들이 한결같이 말하는것처럼 인간은 어떤 리념이나 제도를 선택하기에 앞서 먹고 입고 불때고 사는 방식을 선택하여야 하며 그우에 제도나 나라라는 구축물을 얹어놓아야 한다고 하였다. 비록 작기는 하지만 예리한 빛을 뿌리고있던 안동권의 눈이 강병철 자기자신을 줄곧 지켜보고있다. 컴컴한 세멘트바닥에서 석양이 깃든 창유리쪽으로 시선을 옮겼는데도 안동권의 얼굴은 그냥 따라오고있다. 그의 심장이 갑자기 들뛰기 시작하였다. 온몸의 피가 우로 솟구치고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순간 그는 끙하고 안깐힘을 쓰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바람에 침묵에 잠겨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연탁으로 나가고있는 강병철에게로 쏠리였다. 어깨가 쩍 벌어지고 두툼한 근시경을 낀 강병철은 자기자신이 이때 어떤 기대와 불안속에 휘말려들어가고있는지 알지 못하였다. 오직 그는 이 란장판속에서 한가닥 희망이나마 깃들기를 바라는 어질고 선량한 마음에 이끌리고있을뿐이였다. 그는 두팔을 벌려 연탁을 억세게 틀어잡고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그때 대모테안경이 번쩍 빛을 내면서 록록치 않은 그의 기상을 장내에 확 뿌려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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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나는 정치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강병철은 어렵지 않게 첫마디를 뗄수 있었다. 그렇게 되자 그는 자기가 연설마당에 섰다기보다 원시범이와 항상 론쟁을 하던 문제거리들을 터칠 생각을 하게 되였다. 《그러나 나는 그 누군가가 나를 깨우쳐준것처럼 오늘에 와서는 정치밖에 서있는 그 어떤 리념도 있을수 없다는 견해를 용납한 조건에서 한마디 하려고 나왔습니다. 여러분들이 방금 격분을 자아낸 그 사회주의도 좋고 또 예수의 감투를 애모하게 써서 비난을 받은 데모크라시도 좋다고봅니다. 또 리왕조를 복귀해야 한다는 그 주장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론자들이 주장하는대로 다 그대로 나는 받아들이자는것입니다.》

여기까지 말했을 때 오른쪽 구석에서 《허어-》 하고 누군가가 김빠지는 소리를 내였다. 《어데서 저런 맹물단지가 하나 나타났어. 두덮어놓고 다 좋다?》

《잠간 기다려주십시오.》 강병철은 배에 힘을 주면서 침착하게 뒤를 이어대였다. 《무엇을 하든 다 좋다고 나는 전제합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해결을 보아야 할 근본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이것이 곧 론제에 대한 해답으로 될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내 나라를 떠받드는 경제라는 기둥입니다. 리왕조를 복귀하자는 제씨들 들어보시오. 일본사람들이 속사포를 쓸 때 우리는 화승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다름아닌 강약의 부동 그 요인에 의해 연연 500년간 지속한 리조는 망한것입니다. 또 미국식 독립의 주장자들에게 말하겠습니다. 그것은 독립이 아니라 미국의 창자속으로 우리가 스스로 들어간다는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경제로 우리 자신을 지탱할만한 받침대를 세워야 하는것입니다. 현대국가는 모두 경제, 다시말해서 강철에 의해 지탱됩니다. 대동아전쟁도 미국과 일본은 경제대비에서 승패가 결정됐습니다. 일본이 경제에서 엄청난 렬세에 있었던것입니다. 때문에 여러분, 나는 어떤 사상이나 주의를 앞세우기전에 반석같은 경제를 구축할수 있는 내 나라를 세우자는것입니다. 하느님을 믿지 마시오. 하느님의 자비에 의해 나라를 건지기에는 너무나 정도가 지나칩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크리스챤입니다. 예수의 42대조상이 아브라함이라는것도 알고있습니다. 또 예수크리스도가 베도우레헤므에서 탄생하였을 때 유별나게 밝은 별의 인도에 의해 동방에서 3명의 도사가 각각 무엇을 하나씩 가지고 찾아왔다는것도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전지전능하고 자비지대하신 크리스도님께서 5대주에 널린 그 숱한 기아자들에게 한숟가락의 밥도 나누어준적이 없었다는것을 알고있습니다. 먹을것, 입을것, 땔것은 하늘에서 떨어져본 일이 없습니다. 우리모두는 강철기둥으로 나라를 떠받드는 길로 나가야 합니다.》

비난의 목소리가 터졌다.

《여보! 그만하고 내려오우.》

예수에 대한 비난이 거듭되자 여직까지 참고참았던 신자들의 분노는 터지고야말았다.

《어데서 저런 유다같은 자식이 나타났어.》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내대라는 마태복음의 구절대로 할것이요. 그러니 내 말을 좀더 들어주시오. 그러면 공산주의는 또 어떤가.》

사회자가 탁자를 탕탕 울리면서 질서를 지킬것을 요구하건만 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함소리가 더 요란하게 터진다.

《저 정신병자를 끌어내라.》

그러거나말거나 강병철은 연탁을 붙잡은채 꺼떡하지 않고 서있다. 공산주의도 받아들일것이 못된다는 론거를 세우려는데 그럴 짬을 얻어낼수 없다.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턱밑에서는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예수를 모독하는자를 끌어내라!》

《저놈은 불한당이다!》

강병철은 실신한 사람처럼 아무런 반항이 없이 얼굴을 들고 서만 있었다.

사회자가 휴식을 선언하였다.

강병철은 부산해진 회의장 한복판에 장승처럼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초점을 잃은 그의 시선은 밖으로 내끄는 원시범의 얼굴에 갔다가 그다음에는 무리등이 달린 천정으로 또 그다음은 희미하게 석양을 받고있는 창문으로 옮겨갔다.

이윽해서 그는 짓씹어서 시퍼렇게 이문 입술을 천천히 열어 뜨거운것을 내불었다.

《내 민족, 내 나라를 구원할 위인은 과연 어데 있는가. 운명이여, 있으면 있다고 말하고 없으면 없다고 알리라.》

그의 눈앞에는 이때 역전앞거리 세멘트담벽에 나붙었던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한장의 구호가 언뜩 나타났다.

《장군님께서는 지금 어데 계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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