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나는 아침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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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을 떠난 렬차는 차츰 기세가 죽더니 어떻게 된 일인지 달팽이걸음을 하기 시작하였다. 석탄이 나빠서 김이 잘 오르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렇게 되여 사리원까지 도착하는데 옹근 하루가 걸리였다. 이제 한고비만 잘 넘기면 황주, 중화 그다음에는 평양에 들어설것이였다. 한데 이런 식으로 간다면 아직 며칠이 걸릴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박원식은 별로 초조해하는 기색도 없이 참을성있게 수첩에 적어넣은 수십개의 역을 하나하나 찍어나가면서 쌀방통을 지키고있었다. 다만 걱정거리는 해주에서 꾸려주던 줴기밥을 다 먹어치웠기때문에 배를 채우는 문제였다. 원래 식성이 좋아 군대밥통 하나론 한끼에도 성차지 않은 그였는데 그것을 3번에 갈라먹고도 쌀이 다 떨어졌다. 그래 기차가 멎으면 수도칸에 달려가 랭수만 한배 채우군 하였다. 《군대동무! 우리 떡을 1개씩 해보지 않겠어요?》 기름모자를 쓴 청년이 보자기를 헤치며 권하였다. 《난 떡을 먹지 않아.》 그것은 거짓말이였다. 그는 하도 떡을 좋아했기에 떡보라고까지 불리웠다. 《아니 그럼 빵도 안먹는대 떡도 안먹는대 그럼 엿은 어때요?》 《엿? 엿도 좋아안해.》 《그럼 옹근 하루 굶었는데 그 타고앉은걸 퍼내서 한통 끓이지요.》 《내 걱정은 마오.》 이런 식으로 청년의 유혹을 물리쳤다. 급수모터가 타는 아짜아짜한판인데 떡이나 엿에 독이 들지 않는다고 누가 담보하겠는가. 여태 쌀수송에서 사고없이 지낸적이 한번도 없다는것을 그는 잘 알고 있는터이였다. 《군대동무! 그럼 우리 흑교쯤 가서 국수 한그릇씩 제낍시다.》 청년은 주눅이 좋게 치근거린다. 그는 검차원이라고 하면서 역에 설 때마다 방통에 기여올라와 이런저런 수작을 늘어놓는것이였다. 《동문 내가 누군줄 알고 군대군대 하며 그래.》 《시치미를 떼지 말라요. 다 알아요. 군대동문 김일성장군님 부하지요.》 《하! 점점 한다는 소리가.》 이야기가 시작되였다. 청년은 어찌된 일인지 긴 한숨을 쉬고나서 불쑥 《저번날 보니까 김일성장군님은 정말 인정이 많으신분이던데요.》하고 박원식을 쳐다보는것이였다. 그래 박원식은 《그렇소.》하고 철도공장에서 있었던 일을 상기시키면서 장군님께서는 14살에 압록강을 건느신 그때로부터 혁명의 진두에 서계시는데 사상과 리론이 명철할뿐만아니라 덕성이 또한 높은것으로 해서 사람들이 높이 우러러모신다고 하였다. 먼 실례를 들 필요가 없었다. 얼마전에 강선제강소에 가셨는데 양춘만이라는 기사가 왜놈들에게 복무한것이 가책이 되여 서울로 도망치고말았다. 집에는 3살짜리 아이가 있었는데 급병에 걸려 다 죽어가는것을 장군님께서 평양에 실어다가 치료해주시였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래요?》 청년은 눈을 크게 뜨고 감탄하였다. 박원식의 말을 들으면서 청년은 앉은 자리가 불편한것처럼 여러번 자세를 바꾸면서 안절부절 못하였다. 《아! 그렇군요.》 청년은 자리를 뜨면서 같은 말을 두번이나 반복하였다. 침울한것 같기도 하고 큰 의문에 질린것 같기도 한 청년의 심상치 않은 눈길을 보면서 박원식은 신경을 팽팽히 긴장시켰다. 어느 역엔가 기차가 또 멎어서자 청년은 괴상한 몸가짐을 해보이면서 《조심하십시오. 그래야 한명구국장을 만날수 있고 또 허리가 잘룩하고 어여쁜 애인도 만나지요.》하고 지나가는것이였다. 이것은 분명 어떤 징조이다. 징조가 아니라 로골적인 도전일수도 있다. 박원식은 한껏 긴장해져서 옆구리에 찬 권총을 다시 확인하였다. 또 날이 어두워졌다. 밤은 그에게 큰 공포를 안겨주었다. 아무데서나 차방통에 기여올라 벼가마니를 내리굴릴수 있기때문이다. 그는 벼가마니를 밟으며 5개 차량을 다 순회하고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렬차는 흑교역에 들어섰다. 이제 한고비만 넘기면 곧 중화벌이 나질것이였다. 흑교역을 떠나 한 5분 달리는데 철길 량옆에서 검은 그림자가 얼찐얼찐 하였다. 그것이 사람들이 아닌가 하고 내려다보는데 렬차는 차굴에 들어가고말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육감으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있다는것을 감촉하였다. 차굴에서 빠져나온 렬차는 중기와 연기를 온통 뒤집어쓰고 헐떡헐떡 구배를 톺아오르고있었다. 그때 또다시 사람그림자가 얼씬하였다. 짐작컨대 철길옆에 숨었던 괴한들이 차가 굼뜨게 움직이는 길목에서 방통에 기여오르는것 같았다. 박원식은 벼가마니우를 벌벌 기여 앞으로앞으로 나갔다. 호송원들에게 알려 도적을 물리쳐야 하였다. 첫번째 방통은 별일 없었다. 두번째도 무사하였다. 세번째도 역시 별일 없었다. 네번째 련결부에서 좀 이상한것이 눈에 띄였다. 검은 형체들이 올라붙었는데 우로 기여오르지는 않고 련결부의 삥을 뽑고 압축공기호스를 떼려고 하고있다. 놈들은 한두개의 벼가마니를 노리는것이 아니라 몇개 방통을 떼내자는것이다. 박원식은 전지불을 비쳐대면서 고함을 질렀다. 《누구얏! 물러나라.》 아래놈들은 한번 피뜩 올려다보더니 더 극성스럽게 망치질을 하고있다. 삥이 뽑히지 않아 애를 먹는 모양이다. 《물러나지 않으면 쏘겠다.》 박원식은 겨드랑밑에 찼던 권총을 뽑아들었다. 《물러나라, 물러나라!》 그때 유개차지붕우로 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두개의 그림자는 능숙한 동작으로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있었다. 그들도 이쪽놈들과 한패인것 같았다. 우선 방통을 떼자는놈들을 제압해야 하였다. 《물러나라. 물러나지 않으면 쏘겠다!》 두번 세번 네번 거듭하다가 끝내 박원식은 권총을 허공에 올려대고 공포를 놓았다. 급해맞은 괴한들은 철뚝으로 내리굴었다. 박원식은 방통우를 달려나가면서 또다시 공포를 놓았다. 《따당!》 야음을 째면서 총소리가 울리였다. 렬차는 별일없이 곧 중화역에 들어섰다. 박원식은 평양역사정때문에 렬차가 한시간가량 서게 된다는것을 알게 되자 곧 쌀을 호송하던 경비인원을 차장칸에 불러 다시 주의를 주었다. 그 누구도 쌀방통에 접근시켜서는 안된다는것과 이제 1시간후이면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게 되니 긴장해서 경비를 서라고 하였다. 뜻밖에 놀라운 사건에 부닥쳤던 박원식은 요행 그것을 무사히 넘길수 있어 얼마간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마의 땀을 훔치며 그런 정도로 수습되기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동켠이 희붐히 밝아오는것을 보면서 양춘만을 만나기 위해 떠났다. 그가 물을 길으면서 시간을 다그친것은 쌀을 빨리 운반하자는데도 있었지만 양춘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역에서 나와 한길을 따라가다가 길을 물어 양수환의 과수밭을 향해 올라갔다. 수수더미가 듬성듬성 서있는데를 지나는데 언덕밑에서 키가 꺽두룩한 사나이가 나타나더니 뒤미처 또 하나의 그림자가 얼씬하였다. 박원식이 흠칫 걸음을 멈추는데 저쪽에서 먼저 권총을 발사하였다. 두방의 총소리가 미명을 안은 하늘을 흔들었다. 그것은 철도공장에 있던 《집게다리》였다. 렬차방통을 떼서 혼란이 빚어지는 틈에 갈기려고 했던것인데 그것이 실패하자 양춘만을 만나러 가는 길목을 지켰던것이다. 박원식은 허공을 붙잡으려는것처럼 팔을 펴고 허우적거리다가 밭뚝에 털썩 쓰러졌다. 뒤미처 또 한방의 총소리가 울리였다. 이번에는 《집게다리》가 허리를 붙잡고 딩굴었다. 사고현장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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