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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계승자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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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11,720회 작성일 20-08-09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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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항구쪽에서 불어오는 정초의 맵짠 바다바람이 도시의 음산한 지붕들에서 눈얼음알갱이들을 쓸어내리고 끊어질듯 팽팽한 전선줄과 거리의 나무우듬지를 잡아흔들며 휘파람소리를 내였다.

도사로청위원장방의 덧창문 틈사리에 붙인 문풍지오리가 떨어졌는지 줄곧 듣기 싫게 붕붕거렸다.

쇠꼬챙이로 톱밥난로의 불구멍을 한참 쑤시느라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도사로청위원장은 이마살을 찌프리고 덧창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바깥창문에 성에가 두텁게 얼어붙고 조그만 뙤창을 내놓고는 안으로 든든히 봉해버린터여서 문풍지울리는 소리를 어찌할수 없다는것을 느끼고는 난로건너편에 앉은 중앙사로청위원장 림원국에게 슬그머니 미안쩍은 눈길을 건넸다.

도사로청위원회가 세운 사업계획서를 보느라 여념이 없던 림원국은 얼핏 고개를 들고 그에게 친절히 말했다.

《왜 그렇게 섰습니까. 앉아 담배나 피우십시오. 조금만 보면 됩니다.》

원국은 도사로청에서 사상담당부위원장을 하던 그에게 깍듯이 존칭을 썼다. 서른두살난 수산사업소 어로공출신인 그는 이전 도사로청일군들중에서 제일 젊은 축이였었다.

원국은 항구기계공장 사로청위원장을 할 때 까다롭거나 멋없이 틀을 차리지 않고 바다사람답게 솔직하고 호방스런 성격을 가진 그와 어지간히 가깝게 지냈었다.

그런 인연이 있어 원국은 중앙사로청위원회를 떠나 첫 지방사로청위원회지도사업으로 이곳을 택한것이였다. 사로청사업의 성과와 실패, 경험과 교훈을 터득한 고장이라는 리유도 있었지만 보다는 지방사로청사업지도경험이 없는 그로서 생소한 다른 도에 가느니보다 사람들도 알고 파악이 있는 이곳 도사로청위원회와 청년들속에 내려와 료해하고 배우고 조언도 주는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한것이였다.

그래 여러날째 머무르면서 도사로청일군들과 담화도 하고 협의회도 열어 도의 실정에 맞는 청소년교양방법문제를 가지고 기탄없는 론의도 벌렸다. 시내의 공장, 기업소들에 가서 그곳 사로청초급위원회가 진행하는 사업을 료해하고 청년학교운영에도 참가했다.

그 과정에 림원국은 공장사로청위원장시절에는 익숙해서 범상히 지내보내던것들이 중앙사로청위원장의 시점에서 보니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깨닫게 되고 배우게 되였으며 현실에 부합되지 않고 지방의 특성에 맞지 않는 일률적이고 도식적인 요소들은 고쳐야 할것이 적지 않다는것을 알았다. 그런 점들은 중앙사로청위원회사업에서 변화를 가져와야 할 보편성을 띠는 중요한 문제이므로 당중앙위원회 해당부서와 론의해야 할것이였다.

그러나 원국은 도사로청위원회가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몇가지 문제들에 대해서는 말하고싶었다. 그는 톱밥난로가 달아올라 반외투앞섶자락을 헤쳐놓았다.

《사업계획서를 괜찮게 세웠습니다.》

원국은 난로옆의 걸상에 듬직이 앉아있는 도사로청위원장에게 겸손하면서도 상급으로서의 실무성을 갖춘 친절한 어조로 말했다.

《명환동무는 지난 시기 늘 계획보다 더 많은 사업을 창발적으로 하군 했지요.》

《에- 생각이 뿔어나 몇번 한걸 가지고 뭘 그럽니까.》

《그렇지만 도내 청소년들의 사상교양사업측면에서는 보충할 점이 좀 있습니다.》

사업계획서내용에 자신감을 가졌던 도사로청위원장은 의문스럽다는듯 어깨를 약간 으쓱했으나 인차 허심한 표정을 지었다.

《명환동무도 전번에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회의에 참가해서 알겠지만 지금 우리 사로청사업에서는 무엇보다도 중앙사로청위원회로부터 말단초급단체에 이르기까지 전 동맹내에 당의 유일적령도체계를 세우는 문제가 가장 절박한 과업으로 나서고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의 대가 바뀌는 이 시기에 무엇때문에 우리 청년일군들을 모여놓고 사로청이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를 중심으로 뭉치라는 뜻깊은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수령님의 혁명위업의 유일한 후계자이신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를 받들어모시는 사업은 사로청사업의 생명이고 오늘의 복잡한 정세하에서 혁명과 건설의 승리를 담보하고 나라의 장래운명과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때문에 당 다음으로 우리 사로청이 앞장에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령도를 견결히 받들어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원국은 도사로청위원장이 입을 꾹 다물고앉아 불만스러워하면서도 구체적인 비판을 기다리고있음을 알았다.

《도사로청위원회가 짠 당의 유일적령도체계를 세우는 사업내용은 빈약하고 참신하지 못합니다. 연구가 없이 이전 도사로청위원회의 사업계획서에 준하다보니 소심하고 실무적으로 되였습니다. 위원장동무는 주견이 세고 열정이 있는데 무엇때문에 구태의연하고 창발성이 없는 도식적인 남의 사업계획서를 모방합니까? 그런 낡은 문건은 집어치우고 새맛이 나게 사로청원들의 특성에 맞는 사업을 설계하십시오. 청년학교들에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위대성과 고매한 풍모를 학습시키는것과 함께 업적토론회나 웅변모임같은것을 조직하면 좋지 않습니까. 다가오는 2월 16일을 맞으며 충성의 시와 노래모임이라든가 로동직장청년들의 예술경연을 초급사로청위원회들에서 벌리게 합시다. 그러면 온 도내 사로청원들이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에 대한 흠모와 충성의 감정으로 들끓을수 있습니다. 그렇게 감정으로 승화돼야 아래 사로청조직들과 동맹원들속에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지시와 방침, 말씀을 무조건 관철하는 기풍을 더 확고히 세울수 있다고 봅니다.》

도사로청위원장은 멋적은 표정으로 난로에 눈길을 박고서 말했다.

《당의 유일적령도체계를 세우는 사업을 정중하게 해야 한다고만 생각하다보니… 그렇게 되였습니다.》

원국은 원래부터 견해가 솔직하고 내심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 그를 좋게 생각하고있었다. 격했다가도 깨달으면 허심하게 뉘우치고 성근하게 받아들일줄 아는 그였다.

《말이 났던김에 도사로청위원회의 경제사업측면을 놓고 생각되는걸 터놓을가요?》

《잴것 있습니까. 위원원장동지, 그래주시오.》

도사로청위원장은 바다청년답게 시원히 말했다.

《청년돌격대활동말입니다. 계획서에는 대단히 관조적으로 취급되여있습니다. 공장, 기업소들에서 필요에 따라 조직하는걸 집계해서 반영한데 그쳤습니다.》

《사로청원들의 경제과업이 해당 공장, 기업소에 매여있는데 다른 방도가 없지 않습니까.》

《도당위원회와 토론하고 도사로청에서 자체로 큼직이 청년돌격대를 조직하는게 어떻습니까? 사로청원청년들이 한바탕 어깨를 들이밀어 들썩하게 해제낄 대상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 도사로청위원회의 잠잠한 영상이 달라지고 쇠소리가 울릴겁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우리 젊은 청년일군들에게 사로청사업을 맡겨주신것은 사로청사업이 그렇게 생기발랄하고 패기있게 진행되기를 바라서입니다.》

《알겠습니다. 집행하겠습니다.》

도사로청위원장은 벌씬 웃으며 시원히 대답했다.

원국은 걸상에서 일어나 반외투단추를 채웠다. 도사로청위원장은 황급히 마주 일어났다.

《이제 어데 가겠습니까? 뜨뜻한데 좀 더 앉았다가 해저물문 <갈매식당>에 갑시다. 뭘 좀 준비해놨습니다.》

아닌게아니라 속이 출출해났다. 원국은 이 며칠간 도사로청합숙에서 잡곡밥에 김치와 배추국으로 만족한것이였다.

《성의는 고마운데…》

《뭐 먹자판을 벌리자는게 아닙니다. 우리 도를 떠나갈 때 송별회도 못했는데 모여앉읍시다. 도사로청부위원장들과 부장들이 다들 위원장동지와 아는 사이가 아닙니까.》

도사로청위원장은 쉽사리 물러설 차비가 아니였다.

원국은 도사로청일군들의 친근한 얼굴들을 떠올리자 어쩔수 없이 승낙했다.

《그럼 내 항구기계공장에 갔다가 오겠습니다.》

《그러구보니 여직껏 그 공장엔 못갔댔군요. 박웅수랑 반가와할겁니다.》

도사로청위원장은 걱정되는지 눈보라치는 마당가에서 다시금 당부했다.

《위원장동지, 항구기계청년들한테 붙들리지 말고 어둡기 전에 돌아와야 합니다.》

원국은 머리를 끄덕이고 승용차문을 열었다.

《참. 명환동무, 이전 도사로청위원장동지가… 시직맹에서 일한다지요.》

《예.》

《만나보고싶습니다.… 은식동지하구는… 배운것도 많지만 다툼질도 많이 했지… 우리들과 한자리에 앉았으면 좋겠는데…》

원국의 의리심깊은 말에 도사로청위원장은 감동돼서 선뜻 대답했다.

《데려오겠습니다. 중앙사로청위원장동지가 찾는다면 몹시 기뻐할겁니다.》

거리의 아빠트벽체들에 부딪쳐 방향을 잃은 바람이 차창에 눈가루를 휘뿌렸다.

세정기가 분주히 앞유리를 닦아내였지만 별반 소용이 없어 운전사는 엷은 얼음층이 덮인 뿌연 시창에서 불안스런 눈길을 떼지 않은채 차를 천천히 몰았다.

뒤좌석에 앉은 림원국은 성에막이 낀 차창으로 길 량켠의 크고작은 아빠트들과 건물들의 형체가 뚜렷치 않았지만 지난날의 추억으로 하여 정다운 눈길로 거리를 내다보았다.

승용차가 아빠트구역을 지나 오른편으로 눈덮인 모래불과 바다를 낀 교외도로에 나서자 바람이 차를 뒤집어버릴듯이 세차게 불어쳤다.

가로수와 해변가소나무들을 뿌리채 넘어뜨릴듯 뒤흔드는 바람소리는 승용차의 발동기소리를 집어삼키며 귀를 멍멍하게 했다.

희고 검푸른 파도줄기를 일궈세우는 바다는 원국의 가슴에 쓰라린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심장에 묻어두었던 비애를 몰아왔다.

진수옥의 상냥한 목소리가 귀전에 울린다.

《공장사로청위원장동무는 어떤 바다를 좋아하는가요? 해뜨는 아침의 잔잔한 바단가요 아니면…》

《나는 파도사나운 바다를 좋아합니다.》

《그럴것 같애요. 원국동무 성미는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 용맹스레 기슭에 밀려드는 파도와 비슷한데가 있어요.》

하얀 모래불과 아침해빛이 수면에서 비단무늬마냥 아롱지는 푸른 바다물을 배경으로 서있는 처녀의 아름다운 모습…

공장사로청위원장방의 출입문이 밖으로 걸린것을 알자 당황하고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수치감을 나타내거나 성을 내지 않고 말없이 서있던 처녀의 얼굴이 못견디게 떠오른다. 새로운 공구강의 성공을 바라서 아버지의 기술문건을 가져다주며 진심을 바치고, 화상을 입은 박웅수에게 피부를 떼여준 처녀… 그렇게 아름다운 진수옥의 헌신적인 사랑의 고백을 무엇때문에 물리쳤는가?!

친구의 불행우에서 사랑을 성취한다는것이 량심에 괴로왔다. 평양의 아릿다운 신문기자처녀를 데려다 고생시키는것이 량심에 걸려서였다. 진정 너무도 처녀를 사랑했기에 거절했다. 어쩌면 사랑을 위해서 사랑을 거절하는 비참한 결과를 낳는가?! 가책되는 량심에 모대겨서였다면 청춘의 사랑과 량심은 량립될수 없는것인가? 량심이 사랑을 지배하는가? 사랑이 량심의 구속을 받는가? 량심의 자양우에 자란 사랑이건만 사랑은 이 세상 그지없이 독자적이고 개성을 가진 신성한 감정이 아닌가!

《원국동무는 사랑을 몰라요. 진실로 사랑을 아는 남자는 처녀의 고백을 그렇게 론리적으로 대하지 않아요.… 고통스레 량심을 지킨 동무의 행동은 아름다운게 아니라 사랑의 위선이예요.》

《심장이 하나인것처럼 사랑도 하나예요. 죽으면 다시 태여나지 못해요.》

진수옥의 서글프고도 강렬한 부르짖음이 메아리친다.

아니, 공장사로청위원장에서 떨어지고 공구강열처리로마저 터져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당하던 그때의 고립무원하던 처지에서 과연 어떻게 진수옥의 사랑을 받아들일수 있겠는가. 그때로서는 사랑, 행복 같은것이 리상적인 세계로 생각되지 않았던가… 그래, 그렇게 처녀의 사랑을 물리치고 단호히 결별했으며 심장을 찢는것 같은 아픔을 억누르고 자신을 이겨내였다.

그런데… 아, 사랑, 청춘의 감정은 검질기기도 하구나. 모욕을 받아도 량심의 가책으로 떨어버려도 찢고 베여도 죽지 않고 고통의 재무지속에 불씨처럼 살았다가 끝내는 불길이 되여 타오르누나. 씨앗을 품은 땅이 녹고 비내리면 솟아오르는 푸른 싹처럼 시련이 물러가고 생활의 안정과 명예, 한가한 시간이 차례지니 꺾어진 그루터기는 아랑곳 않고 줄기를 뻗고 가지를 치는것이 아닌가!

《수옥이, 리해해주오. 나도 역시 심장이 하나고 사랑도 하나요. 도저히 동무와 헤여질수 없소. 지금 여기 해변에선 파도가 땅과 바다를 만나게 해주는구만.》

원국은 바람과 파도가 울부짖는 소리가 가슴을 에이는 애정의 신음소리처럼 여겨졌다.

《위원장동지, 항구기계공장은 왼편길로 가지요?》

길이 생소해서 묻는 운전사의 말에 원국은 정신을 차렸다.

그는 손으로 아직 한가닥 주름살도 패이지 않은 이마를 괴롭게 문지르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였다. 그리고 괴로운 추억과 번민을 낳은 바다가에서 고개를 돌렸다. 눈내리던 평양거리의 버드나무곁에서 가다듬었던 의지가 그토록 물러진 나약한 자신을 놀랍게 돌이켰다. 어찌하여 가느다란 련정의 끈에 매여 과거와 결별하지 못하는가. 청년사업이라는 산같은 임무를 걸머진 청춘이 그런 목가적인 감정에 매달려 부질없이 정열을 불태운다는것은 얼마나 불미한 일인가. 안일과 허영, 교만에 빠지지 말고 언제나 자각속에 살며 의리를 귀중히 여기는 인간으로, 사업의 성공으로 줄달음치는 청춘이 되여야 할것이다. 사업은 청춘에게 참다운 명예와 투신의 보람과 긍지를 가져오고 사람들의 존경과 마음속에 남는것이 아닌가.

승용차는 사택마을과 공장으로 가는 왼편길로 꺾어들었다. 그에게 있어서 도랑옆의 나무 한그루와 뿌리돋은 돌맹이마저 낯익은 출퇴근길이였다. 붉은 글자로 《사상도 기술도 문화도 주체의 요구대로!》라고 큼직이 써붙인 아치형의 공장정문이 가까와졌다.

공장당비서와 일군들은 도당에 회의가고 없었고 공장사로청위원장은 외출했다.

원국은 바람질에 눈이 반나마 날려간 넓다란 공장구내 한켠에 차를 세우게 하였다. 만나는 몇몇 로동자들과 인사를 나눈 림원국은 곧장 열처리작업장으로 갔다.

언젠가 전화로 열처리직장장한테 알아본대로 마사진 공구강열처리로를 벽돌로 다시 쌓은것이 첫눈에 띄였다. 그전보다 플라즈마가열장치허리가 길쑴하고 용적이 훨씬 커보였다. 로를 굳히느라고 그런지 아구리문을 열어놓았다. 환기때문에 채광창이 높은 열처리작업장은 추웠다.

어지러운 헌 솜옷을 걸치고 이쪽에 등을 돌리고앉은 박웅수가 낯익은 두명의 사로청원들과 마주앉아 구리틀고리에 열처리할 드릴을 매달고있었다.

원국은 성큼성큼 다가가 박웅수의 잔등을 툭 쳤다.

《이게 누구야?! 원국이!》

박웅수는 부르짖으며 용수철에 튕긴것처럼 뛰쳐일어났다.

《웅수! 잘 있었어?!》

원국은 친구를 힘껏 끌어안았다. 친구의 몸에서는 구수한 쇠비린내와 류황, 내화물냄새가 물씬 풍겼다. 오래간만에 맡아보는 열처리현장의 냄새였다.

원국은 변함없이 듬직한 웅수의 어깨를 틀어잡고 피부수술자리가 아문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화상에 무섭게 부풀었던 얼굴, 그가 공장을 떠날 때만도 붕대를 풀지 못했던 얼굴이 수술자리를 내놓고는 원래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제 수술자리가 더 아물구… 날이 지나면 피부색갈도 좋아진답니다.》

박웅수는 말투를 고치였다. 그는 걱정스레 잠자코 들여다보는 원국을 안심시키려는듯 푸수하게 웃으며 존칭을 썼다.

원국은 한순간 친구와 간격이 멀어지는것 같은 서운함을 느꼈지만 어쩌는수 없었다.

《그런데 얼굴이 찬바람을 맞으며 일해도 일없겠소? 의사의 허락을 받았소?》

《그러찮구요. 걱정마십시오. 집에 갈 때는 털모자를 쓰고도 처녀애들처럼 마후라로 얼굴을 감싸거든요.》

《타박상후유증은?… 머리가 뗑 하지 않소?》

《맘놓으라는데… 야, 이제 보니 위원장동문 때벗이를 쭉 했구만요. 멋쟁이가 됐습니다.》

박웅수는 원국의 두팔을 부여잡고 우아래를 훑어보았다. 말투는 존경어지만 행동거지는 허물없던 친구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원국은 언젠가 웅수가 자기한테 양복과 샤쯔를 입히고 진수옥이와 마주세웠던 일이 생각나 눈시울이 뜨끈해났다.

《웅수… 내가 이렇게 차려입고 공장에 왔다고 탓하지 않지?》

《왜 탓하겠소? 당당한 중앙사로청위원장동지의 체모를 갖추었는데. 떠나갈 때도 그랬지만 눈물이 나게 기쁜걸요. 공장에 온다고 작업복차림을 하면 위선이지요.》

《난 도사로청에 온지 며칠 됐는데… 사실 시간을 내여 여기 와 웅수랑 열처리직장사로청원들과 같이 일하고싶었소.》

《중앙사로청위원장동지가 이런 일에 몸뺄 시간이 어데 있겠습니까.》

박웅수는 원국의 팔소매를 잡아 열처리로쪽으로 이끌었다.

《어때요? 로의 형태가 달라졌지요?》

박웅수는 허리를 굽히고 로천정과 가열벽체를 손으로 가리키며 갱신된 부분을 설명했다.

《진원삼연구사선생의 소결로원리와 우리걸 배합한겁니다. 기발한 착상이 된걸요. 확실히 그 선생이 연구한 열처리로가 고열에 끄떡없이 안전하구 재질변형이 적습니다. 실험적수치가 그걸 증명했습니다. 우리가 전에는 왜 그 연구사의 열처리로우점을 몰랐을가요?》

《그건 우리가 그 선생의것이 재래식이고 낡았다는 관점을 앞세우면서… 배척했기때문이지… 옳지 않았지.》

원국은 생각깊은 얼굴로 뜨직이 말했다.

《참, 진원삼선생은 왜 안보이나? 공장에 있소?》

《사흘전에 부인이 앓아서 집에 갔습니다. 며칠내로 돌아올겁니다. 로가 다 굳어지면 인차 공구강열처리시험을 해야 하니까요. 진원삼선생은 우리 열처리직장에 와서 한달나마 합숙에조차 거의나 들어가지 않고 로와 씨름했습니다.》

《진원삼선생은 우리가 연구하는 공구강열처리로가 사고날가봐 걱정하고 자기 기술문건들까지 보내주었지… 그렇게 진지하고 성실하고 사심없는 연구사를 랭대했던것이 정말 부끄럽소.》

원국은 작업장 한곁에 있는 낡은 장의자에 웅수와 같이 걸터앉았다.

《원국동무… 전달에 진수옥동무가 도사로청에 취재왔다가 공장에 들렸습니다.…》

박웅수는 은근히 그의 눈치를 살피였다.

《아버지를 만나보고싶었겠지.》

원국은 애써 무심히 반응했지만 친구는 끈덕지게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중앙사로청위원장동지는 잘있는가고 물었더니 대답을 안하더군요.》

《수옥동무 이야긴 후에 하자구. 웅순 집에 가야지? 내 차를 타고 같이 가자구.》

《난 요즘 집에 안가요. 당비서동지가 정양소에 넣어줬는걸요. 원국동무, 딴전을 피우지 말고 대답하라요. 진수옥동무와 왜 그런 사이가 됐습니까?》

《웅수, 열처리직장장동지가 잘 도와주나?》

《당비서동지의 추궁을 받고 발벗고 나섰는걸요. 기사장동지도 자주 내려와 걸린 문제를 풀어줬습니다. 우리 사로청원들을 도와주려고 공장기술과에서 기사들이 여러명 동원되고있어요.》

《공장사로청위원장동무를 만나지 못하고 갈것 같은데…》

원국이 시계를 보고 자리를 뜨려 하자 웅수가 그의 무릎을 꾹 눌러 붙들었다.

《말해보라요. 원국동무, 진수옥인 이젠 흥미가 없어요?》

《…》

《중앙사로청위원장이 됐다고 신문기자처녀쯤은 거들떠보지 않는가요?》

《웅수…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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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웅수… 날 괴롭히지 말아주렴. 난 바빠. 중앙사로청위원장이란 직무가 어디 가벼운거야? 처녀문제를 생각할 틈이 없어. 그래서도 안되고. 당에서 사로청사업경험도 적고 나이도 어린 날 믿고 기대가 큰데 자나깨나 청년사업을 생각하고 해나가야 하지 않겠니. 그런데… 친구인 너한테 하는 말이지만 사실 내겐 능력이 부족해. 시야가 좁다는것을 스스로 아프게 느낄 때가 많아.》

《너무 걱정말어. 어떻게 첫술에 배부르겠어. 해나가느라면 미립이 트겠지.》

열처리작업장통로를 따라 밤색솜옷을 입은 청년이 잦은걸음으로 다가와 깍듯이 인사를 했다.

《중앙사로청위원장동지, 안녕하십니까?》

박웅수가 공장사로청위원장을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원국은 그의 손을 힘있게 잡아주었다. 그는 여드름이 많은 불깃한 얼굴에 굽신거리는 기미가 조금도 없는 공장사로청위원장이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 대바르게 공장사로청사업을 잘해나갈것 같았다. 그러지 않아도 도사로청위원장의 평가가 괜찮았다.

《공장사로청사업은 처음이라지요?》

《예, 수산사업소 공무직장에서 일하다가 사로청중앙학교에 갔댔습니다.》

《그럼 기계공장특성을 모르지 않겠구만. 기계공장사로청사업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것은 사로청원들을 당이 제시한 기술혁명과업수행에 조직동원하는겁니다.》

《예, 저도 그 사업을 계획서에 주요하게 반영했습니다. 그런데 실지… 어떻게 관철해나가겠는가 하는 구체적인 대책을… 초급단체들에 과업을 주지 못했습니다.》

공장사로청위원장은 열적게 웃으며 뒤머리를 긁었다.

《공장사로청위원회가 기술과가 아닌것만큼 기술적인 과제들을 사로청원들과 초급단체들에 내려보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공장행정과 기술과 그리고 직장들에서 청년로동자들에게 제시된 과업을 장악하고 그것을 계획서에 반영하고 밀어주는데로 사업을 해나가면서 공장사로청위원회가 당비서동지와 기사장동지랑 토론해서 따로 큼직한 기술대상을 맡아 수행하는게 좋습니다. 례를 들면 이 박웅수동무네 초급단체가 그전부터 해오는 새로운 공구강열처리로 같은겁니다. 내 경험과 교훈에 의하면 이런 공장기술대상을 맡아하는데서 실무적인것, 기술적인것들을 잘 가늠하는것도 중요하지만 보다는 그 과정을 통해서 사로청원들을 당의 기술혁명수행에 떨쳐나서도록 교양사업을 잘하는겁니다.》

원국은 공장사로청위원장과 박웅수를 데리고 열처리작업장통로를 천천히 걸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것은 동무에게 내 경험과 사업수완을 자랑하자는것이 아닙니다. 동무도 들어서 알겠지만 지난 시기 난 기술혁명과업수행에 사로청원들을 동원하는데서 과오를 범했습니다. 나 자신이 기술을 좀 안다고 해서 공장사로청위원회의 성과를 올리는데 옴하다보니 이 열처리직장초급단체위원장동무와 사로청원들을 공명주의와 소총명에 빠지게 했습니다. 교만해지고 독선을 부리면서 우리 공장에 내려오군 하던 금속공학연구사의 경험과 방법이 낡았다고 밀어버렸지요.》

세청년은 열처리작업장을 나서는동안 잠자코 말이 없었다.

찬바람이 구내의 나무숲쪽으로 눈가루를 몰아갔다. 날은 벌써 어둑컴컴해졌다.

공장관리부건물의 현관문에서 한 처녀가 급히 이쪽으로 달려왔다.

《도당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당중앙위원회에서 중앙사로청위원장동지를 빨리 올라오시랍니다.》

원국은 처녀에게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그는 운전사가 승용차에서 가져온 큼직한 보약꾸레미를 서운해하는 박웅수에게 안겨주었다.

《어머니가 보낸거네. 찬바람을 맞지 말고 어서 들어가라구. 요다음에 내려오문 집에랑 들리겠어.》

《공구강열처리로를 시험할 땐 내려와야 합니다.》

박웅수는 눈물이 글썽해서 승용차문을 붙들고 닫지 못하게 했다. 그는 차안에 머리를 디밀고 원국에게 속삭이듯 당부했다.

《봄에… 바다날씨가 좋을 때… 진수옥이와 같이 내려오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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